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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여행/가족배낭여행(2010년)

(15일째) 융프라우 요흐

by 연우아빠. 2010. 8. 26.

□ 2010.7.10(토)

 

날씨가 너무 덥다.
트래킹을 포기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무럭무럭.
눈 덮인 융프라우요흐를 찾아가 이 더위를 조금이나마 피해보기로 했다.

더운 날씨 때문에 매일 옷을 갈아입다 보니 빨래를 자주해야 했다.
아침에 빨래를 해 놓고 점심 때가 다 돼서야 역으로 나갔다.
루체른-인터라켄 구간은 80km 정도 거리인데 기차가 산을 넘어 다녀야 하는 관계로 2시간이 걸린다.
아내가 루체른 역 옆구리로 들어가는 길을 발견해 숙소와 역 사이의 거리를 1/4정도 줄일 수 있었다.

독일과 달리 스위스는 기차 시간표 뽑는 기계가 없다.
아이폰 검색이 너무 느려 쓰지를 못하겠다. 우리나라 인터넷 환경은 유럽에 비하면 천국이다.
하긴 여행을 이토록 급하게 하는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 밖에 없는지도. 유럽에서는 흔하다는 3주 휴가가 우리에겐 꿈 같은 행운에 속하니까.
인터라켄 행 기차를 찾아 이리저리 헤매다가 승무원에게 물어서 플랫폼을 찾았다.
이번 여행에서 왜 이렇게 헤매는지 뭔가 계속 꼬이는 듯한 느낌.

 

기차가 산을 넘었다.
눈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지만 비취색 호수와 마을은 몇 번을 보는 풍경인데도 여전히 아름답다.
호수 주변에는 캠핑카와 텐트들이 보인다.
수영하는 사람들과 선탠하는 사람들. 정말 수영하고 싶다.
카이저스툴(Kaiserstuhl) 근처의 호수는 정말이지 물감을 뿌려 놓은 것처럼 아름답다.
도대체 왜 호수 색깔이 이렇게 신비로운거야?
브뤼닉 하슬리베르크(Brünig-Hasliberg) 역에는 작은 기차역 문고가 있어서 정겹다.
마을 사람들이 필요 없는 물건을 서로 교환하는 작은 시장인 듯 많은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다.
드디어 눈에 익은 브리엔츠 호수가 보인다.
돌아올 때 인터라켄 동역에서 유람선을 타고 브리엔츠까지 와서 기차를 타고 가보자고 했다.
스위스에 와서 한번도 유람선을 타보지 못했다. 오늘만은....

 

융프라우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시가 넘었다.
한국에서 받아간 할인 쿠폰을 냈더니 따뜻한 미소가 멋진 중년의 여자 역무원이 유레일 패스 소지자인 것을 확인하고
추가 할인이 가능하다며 더 싼 기차표에 체크를 해 준다.

기차표와 함께 컵라면 무료쿠폰을 주면서 어린이는 기차비가 무료라고 한다. 이런 고마운 일이,
아주 좋은 스위스.
3년전 겨울, 융프라우요후 전망대에서 컵라면 먹던 사람들이 부러웠던 생각이 난다.

역 앞에 있는 Coop에서 점심이 될만한 음식을 장만해서 요기를 하고 오후 2시쯤 융프라우요흐를 향해 출발.
겨울 풍경만 보다가 초록색 알프스를 보니 나름 새롭다.
눈이 보이기 시작하자 승객들 모두 사진찍기 바쁘다.

지구 온난화 때문에 융프라우의 눈과 얼음이 해마다 줄어든다는 말이 실감났다.
바위가 다 드러난 앙상한 빙하.
하지만 처음 본 아이들에겐 마냥 신기한 듯.
마지막 환승역인 클라이네샤이덱 역에서 내렸다.

여기도 그닥 시원하지 않았다.
염소 한 마리가 역에서 어슬렁거린다. 그런데 이 염소가 아주 재미있다.
기차가 도착해 사람들이 내리면 역으로 들어와서는 사람들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관심을 끌다가 사람들이 떠나면 다시 풀밭으로 가서 풀을 뜯는다.
아이들이 만져도 가만히 있고 같이 사진도 찍어준다.
사람들이 지천으로 핀 꽃밭 사이로 난 길을 따라 트래킹을 하며 산을 내려가고 있다.

 

“우리도 이따가 내려올 때 저렇게 한번 가보자. 한 정거장만”

“반대! 반대!” 아이들의 한 목소리.

 

변변한 기계가 없던 20세기 초에 스위스 사람들이 클라이네샤이덱 역에서 융프라우요흐까지 바위를 뚫어 터널을 만들었다.
피와 땀이 서린 스위스.
고산병을 걱정하며 천천히 융프라우 요흐 역에 내렸는데 3년전 보다는 고산병 증세가 훨씬 덜해 다닐만 했다.
그런데 내려가는 기차 시간표를 보니 5시 45분에 출발하는 막차 밖에 없다.
그럼 인터라켄 역에서 거의 막차를 타야 할 것 같고 브리엔츠 호수 유람선은 물건너 간 듯.

 

연우와 준기는 이 높은 곳에서 뛰어다니는 놀라운 적응력을 보였다.
높은 기온 때문에 눈이 거의 다 녹고 빙하만 남아 있어 위험한 듯 아쉽게도 발코니 전망대는 개방을 하지 않았다.
스핑크스 전망대에 나가보니 바닥에 있던 그 많던 눈이 사라지고 금속 발판이 다 드러나 있었다.
사람을 겁내지 않는 까마귀와 함께 사진도 찍고 Top of Europe을 배경으로 가족사진을 찍었다.
중고등학생 쯤 돼 보이는 학생에게 부탁했더니 센스 있는 이 친구. 멀리서 한 장, 당겨서 한 장 이렇게 두 장을 찍어 준다.
아이들이 얼음 궁전을 가보자고 한다. 

고산병 증세엔 차가운 공기가 상쾌하다. 아이들이 썰매타기를 한다고 끌어달란다.
에궁, 얘들아 힘들다.

 

전망대 휴게소로 가서 컵라면을 받아 맛있게 먹었다.
우리가 좋아하는 라면회사가 아니라서 조금 실망했지만 정상에서 먹는 라면(6.5 프랑)은 꽤 맛있다.
막차를 타고 하산. 깎아지르는 아이거 북벽을 보며 저 산을 오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알피니스트들이 죽었는지 이야기를 해 준다.
기차 안에서 별로 할 일이 없으므로.

하산 길에 마침 루체른 백팩커스 호스텔에서 묵고 있다는 한국인 커플과 아내가 마주 앉아 갔다. 
남자 분이 말하길 리기산 트래킹은 안 가길 잘했단다. 어제 자기들이 갔을 때 너무 더워서 죽는 줄 알았단다.
대화를 나누며 우리나라 강원도도 이만한 자연경관을 갖고 있는데 조금만 다듬으면 세계적인 관광지를 만들 수 있을 거라는데 서로 공감을 했단다.
하긴 첨에는 굉장해 보였는데 4번째 와서 보니 우리나라가 유럽에 거의 근접한 것 같고,
조금만 더 노력해 사회간접자본을 갖추고, 경관을 다듬고, 인간답게 사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면 더 아름다운 나라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려가던 기차에서 알피글렌(Alpiglen)역 근처에서 안내방송이 나왔다.
고장이 나서 중간에 기차를 갈아타야 한다는 내용.
스위스의 기차가 고장이 났다는 것도 신기했지만 고장이 난 뒤에 처리가 정말 놀라웠다.
잠시 후 우리가 탄 기차가 내리막길에 멈춰섰고 승객들은 내려서 아래에 있는 역으로 걸어갔다.
본의 아닌 아름다운 트래킹.
궤도를 고치는 사람들이 열심히 작업을 하고 있었고 우리를 태우고 갈 기차는 벌써 다음 역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역시 대단한 나라다.

 

연우가 “아빠. 이가 빠졌어”라고 하며 작은 이를 건네준다.
헐, 벌써 두 개 째.
어떻게 할까 하다가 다음에 융프라우 올 이유를 만들어야지 하면서 내려오는 기차역 주변에 던졌다.
이거 쓰레기 투기랑 비슷한 짓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공해를 일으키는 것은 아닐거야 라고 위안을 하며
“좀 더 크면 이거 찾아보러 여기 다시 오거라”라고 이야기 하며 웃었다.

 

인터라켄 동역에 도착할 무렵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피어 오르는 산 안개. 늦은 시간이라 아쉽게도 유람선을 타고 브리엔츠 호수를 건너가려던 계획은 다음으로 미뤄야 했다.
인터라켄 오스트 역에서 루체른 가는 기차가 없다.

늦은 시간이라 중간쯤인 마이링겐까지 가는 기차만 있고, 거기서 루체른 가는 기차를 갈아타야 한다는 차장의 설명.
차장은 아이들을 보더니 빙그레 웃으면서 "잠깐만, 내가 너희에게 줄게 있지" 하며 작은 가방에서 뭔가를 꺼냈다.
원하는 것을 이뤄준다는 매직티켓이란다. 
작은 카드에 불과했지만 아이들에게 호기심을 일으키는 배려.
사람이 살만한 나라는 바로 이런 배려와 여유가 있는 곳이 아닐까?

마이링겐에 내려 루체른 행 기차를 갈아타려고 출발 플랫폼으로 걸어가는데 갑자기 무엇인가 날아와서 발 앞에서 터졌다.
고개를 돌려 보니 오른쪽에서 갑자기 후다닥 하며 도망치는 아이 2명이 보였다.
"녀석들. 우리나라 애들이랑 비슷한 장난을..... ^^ "

루체른 역에서 Coop을 발견했으나 영업시간이 이미 끝나서 아무것도 살 수 없었다.
남은 음식으로 요기를 하고 내일은 몽트뢰에 있는 시용성을 보러 가자고 했더니 준기가 베른도 가야한다고 고집을 부린다.
거기 곰 공원과 분수시리즈가 있다고. 우린 모르겠는데 나름 혼자서 어딘가 책을 본 모양이다.



루체른을 출발한 기차는 Giswil을 지나면서 산으로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때론 코발트색, 때론 비취색.
알프스에서 보는 호수와 마을은 동화속에 들어온 것 처럼 너무 아름다워서 비현실적이기도 합니다.



서로 필요없는 물건들을 교환하는 아나바다 장터인듯
시골 역의 풍경입니다.



여름이라서 그런지 눈이 보이지 않습니다.
눈이 없는 알프스는 낯선 풍경입니다.


저렇게 아름다운 호수를 앞에 둔 야영장
저기에서 바로 물 속으로 다이빙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정말 부럽습니다.


인터라켄 동쪽에 있는 브리엔츠 호수
이 호수를 건너는 배를 타면 인터라켄 동역에 도착합니다.


인터라켄에서 융프라우요흐로 올라가는 산악열차
저 멀리 빙하가 보입니다.



알프스에서 방목하는 소
스위스는 네번이나 왔었지만 산에서 방목하는 소는 처음 봤습니다.


융프라우로 다가갈수록 바위산을 덮고 있는 빙하가 가까이 다가옵니다.
초록색 초원과 숲, 그리고 검은 바위와 하얀 빙하. 다른 나라와 왔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는 풍경이죠.


융프라우요흐로 올가가기 전 마지막으로 환승하는 클라이네샤이덱 역입니다.
여름이라서 그런지 겨울철보다 관광객이 별로 없습니다.



우리를 태울 산악열차가 아래로 내려가는 사람들을 태우고 내려옵니다.


클라이네샤이덱에서 트래킹하는 사람들
이맘때 강원도 고산지대처럼 여기도 봄에 피는 꽃들이 만발하는 계절이라 트래킹하기에는 아주 좋은 때입니다.


겨울에는 저 길을 따라 스키를 타고 내려가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는데
여름에 올라오니 또다른 세계네요.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정말 아름다운 꽃들이 융단을 펼쳐 놓은 것처럼 지천으로 널려 있습니다.


지구 온난화의 영향 때문일까요?  생각보다 눈이 많이 녹았습니다.
융프라우요흐 전망대 창문에서 보는 빙하는 앙상한 뼈대가 보이는 것 같습니다.


까마귀는 이 높은 산까지 올라왔습니다.
바람이 워낙 강해서 날갯짓한번 없이 상승기류를 타고 다니는데 날아다니는 모습이 마치 매나 수리처럼 보입니다.
1m 앞에서도 사람을 피하지 않습니다. 여기 오는 사람들은 절대 얘들을 괴롭히지 않는 모양입니다.


스핑크스 전망대 밖에는 발판에 눈이 전혀 없습니다.
해발 3천미터는 설선(여름에도 눈이 녹지 않는 영구 동결지대)인데도 이렇게 눈이 많이 녹았습니다.
이맘때 유럽으로 몰려온 사하라의 열풍 때문인지 스핑크스 전망대의 바깥온도가 8.5도까지 올라갔습니다.


일반인들이 올라올 수 있는 알프스 지역 최고봉 융프라우요흐.
그래서 스위스 사람들은 Top of Europe라고 부르지만 알프스의 최고봉은 프랑스에 있는 몽블랑(4,807m)입니다.


얼음궁전 가는 길
빙판을 보더니 미끄럼타겠다고 끌어달라고 합니다.


하산길.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면서 사방이 캄캄해집니다.


철도 궤도에 문제가 있어서 응급 복구를 하는 바람에 우리가 탄 열차는 이 언덕에서 멈췄습니다.
덕분에 저 아래에 보이는 역까지 짧은 트래킹을 하게 되었습니다.
강원도처럼 알프스의 공기는 정말 상쾌합니다.


나무로 만든 의자가 있는 산악열차.
결국 비가 쏟아졌습니다.



언제봐도 신비한 모습. 알프스와 융프라우.

2007년 겨울 융프라우요흐 올라갔다온 이야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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