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펠탑'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0.08.13 (7일째) 파리 : 센강 유람선 (4)
  2. 2010.08.12 (6일째) 파리 : 루브르와 에펠탑 (2)
  3. 2010.08.11 (6일째) 파리 : 오르세 (2)
  4. 2008.01.26 개선문에서 에펠탑까지

□ 2010.7.2(금)

 

아침 6시 알람보다 좀 일찍 일어났다. 

어제 너무 고생한 탓인지 가족모두 일어날 줄 모른다.
아침을 주는 시간은 10시까지. 8시 반쯤 가족을 깨워 식당으로 9시에 내려갔다.
오늘은 구름이 껴서 그런지 기온이 좀 내려갔다. 아침을 먹고 11시 쯤 시내로 나갔다.

유레일패스를 개통하고 그것으로 베르사이유나 오를레앙을 가 보기로 했다.
넓은 베르사이유 정원을 돌아보기 위해 연우와 준기는 작년 여름부터 열심히 자전거 타기를 배웠다.
두 녀석은 베르사이유에서 자전거를 탈 생각에 들떴다.
시내에서 RER선을 타면 베르사이유까지 40분밖에 걸리지 않기에 가볍게 생각했는데 프랑스는 이번에도 우리 기대를 저버렸다.

 

파리 북역에 도착해 유레일 패스 취급 창구를 찾았으나
여러층으로 된 복잡한 북역에서 유레일 패스 개통하는 곳을 찾기는 정말 어려웠다.
위층으로 위층으로 가라고 안내하는 각 창구를 지나 제일 위층으로 올라갔는데
결국 제일 위층으로 올라와서야 작년에 북역에 와서 표를 끊었던 창구가 생각이 났다.

세월이 가니 총명했던(?) 기억력도 녹이 스는구나.
다시 창구에 가서 물으니 유레일패스 개통은 바깥쪽으로 돌아 나가면 있다는 안내.
그들의 안내는 정말 많은 인내심과 시간낭비를 초래했다.
출발전에 더 철저하게 준비를 해야 했는데 출발 2달전부터는 아예 들여다 볼 여유가 없었던게 정말 뼈아팠다.

 

제대로 된 창구를 찾아 줄을 섰는데 다행히 우리 앞에는 겨우 4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먼저 창구상담을 시작한 사람 한명이 한없이 시간을 끈다.
다들 혀를 내두르고 있는데 무슨 문제가 있는지 그 사람과 부인인 듯한 사람이 목소리를 높이며 창구직원과 언쟁이 붙었고
기다리던 한 남자가 그 사람에게 불만을 토로하자 시비가 더 커졌다.
창구직원이 나와서 상담실로 데려가고 나자 근무시간이 끝난 창구에서 바로 셔터를 내려 버린다.
상담 창구가 하나 줄어들자 시간이 더욱 지체되었고 우리가 유레일 패스를 개통한 것은 오후 2시가 넘었다.
RER선을 타기 위해 가장 가까운 RER 역으로 전철을 타고 갔건만 기차는 아예 오지를 않는다.
안내도 없고 1시간이 넘도록 감감 무소식. 시계는 이미 4시를 훌쩍 넘겼다. 뭐가 잘못되었을까?

 

결국 다음에 파리에 와서 베르사이유를 가 보기로 하고 어제 하지 못한 센강 유람선을 타기로 했다.
에펠탑 아래 바토무슈 유람선 탑승장으로 가서 표를 끊어 유람선에 올랐다.
작년 여름과 달리 이번에는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가 없었다.

구름이 두텁게 하늘을 덮고 있어서 시원한 것이 그나마 다행.
사진을 찍어달라는 다양한 사람들에게 사진을 찍어주며 느긋하게 그리고 아쉬운 파리를 구경했다.
시간만 많이 쓰고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파리 일정이 정말 아쉬웠다.
베르사이유에서 자전거를 타 보겠다던 아이들의 희망도 날리고, 결국 다음에 다시 파리를 와야할 이유를 하나 만든 것으로 만족해야 하나.

 

폭이 그다지 넓지 않은 센강, 그리고 주변에 고색 창연한 옛 왕궁들이 많아서 볼만한 강이다.
지하철 역에 들어갈 때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시원했다.
아쉬움을 남기고 일찍 들어가 저녁을 숙소에서 먹고 독일로 갈 준비를 하기로 했다.

라데팡스 역에 내려 부족한 아이들 여름옷도 좀 사고,
식품점에서 재료를 사서 저녁을 해먹으려니 금요일 오후라 일찍 문닫을 시간이다.
아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라데팡스 쇼핑몰에서 옷을 사고 그 사이에 나는 식품점에 들러 재료를 사기로 했다.
가족들과 헤어진 다음부터 이상하게 길을 헤매기 시작했다.

라데팡스 복합건물을 빠져 나오는데 30분이 걸렸고 다시 숙소 근처 식품점으로 가는데도 그 이상이 걸렸다.
이상하리만치 파리에 있는 동안 지리감각이 무디어졌다.
간신히 9시 15분 전에 식품가게에 들어가 필요한 것들을 사고,
연우가 먹고 싶어하는 크로와상을 파는 친절한 빵가게로 달려갔지만 예상대로 금요일 늦은 시간이라 이미 문을 닫았다.
이 집 빵은 이제 다시 올 때까지 못 먹는구나.
아쉽지만 숙소로 내달려 아이들이 오기 전에 저녁준비를 시작했다.

감자를 삶고 스시에서 나온 간장으로 고기를 굽고 달걀을 삶았다.
삶은 달걀이 역시 여행 중에 간식으로 최고였다.
비에 젖은 옷과 그동안 땀에 쌓인 옷을 빨아 널었다.
건조한 여름 날씨라 그런지 목이 마르고 기침이 나기 시작했다.
아스피린이 없는 것이 괜히 짜증이 났다.

늦은 시간이라 세탁실은 작동 불가. 아내와 빨래를 해서 널었다.
긴장과 어긋남 속에 우여곡절 끝에 파리의 마지막 밤은 깊어지고 날씨를 대비해 짐을 재정리하고 잠을 청했다.
내일은 파리>브뤼셀>쾰른>브레멘 긴 여행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일찍 일어나야 한다.



오지 않는 베르사이유행 기차를 기다리다 결국 포기하고 센강 유람선을 타러 갔습니다.
왜 오지 않았는지 안내 방송도 없고 참 답답한 날이었답니다.



 
바토무슈 유람선.
작년에는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가 있었는데 올해는 없더군요.




센강에는 다리가 수십개나 있는데 독특한 아름다움을 한개씩은 갖고 있습니다.




눈부시게 아름답던 에펠탑도 낮에 보면 그냥 철골구조물이라는 썰렁한 느낌.




한강에도 이런 멋진 다리가 좀 많았으면 하는데
한강은 폭이 너무 넓어서 이런 집중효과는 불가능 하겠다라는 생각도 드네요.





날씨가 더워서 그런지 다리 위로 건너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네요.




오르세 미술관. 기차역을 개조해서 만든 것이라고 믿기 힘든 모습




강변에 멋진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있다면 서울의 모습도 좀 더 품위있어 보이지 않을까?






아쉬운 파리 여행을 마치는 마지막 장소.
출발점인 에펠탑 아래에 내려 기념사진을 찰칵.
처음이었다면 더 많은 사진을 유람선에서 찍었을텐데...

Posted by 연우아빠.

센강 건너 루브르는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 서 있었다. 

우리는 4시쯤 들어갔는데 오늘은 6시에 문을 닫는다고 한다.
입구 1층에서 나눠주는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는 이번에도 동이 나서 구할 수 없었고, 직원들 불친절하기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유럽이 원래 일하는 사람을 우선하는 문화지만 특히나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내 기준으로 볼 때 불친절하다.
오르세처럼 자기들 작품도 아닌 약탈품과 도적질한 유물을 비싼 값을 받고 보여주는 것도 별로 아름답지 않지만
항상 불진철한 안내 데스크의 사람들을 보면 그들이 외부 문화나 사람들에게 겁을 상당히 많이 내는 사람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오디오 가이드 안내 데스크 근무자 가운데 자그마한 동양인은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참 친절하고 열심히 대응을 하는데
프랑스 본토인 같은 사람은 영어도 안되고 말도 무지 짧다.

 

문 닫을 시간이 2시간 밖에 남지 않아서 가족들에겐 미안했지만 팜플렛을 들고 족집게 과외하듯 돌 수밖에 없었다.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관을 열심히 돌면서 인류최초의 성문법전인 함무라비 법전을 비롯한 고대 오리엔트 문명의 찬란한 유산을 훓어갔다.
그 다음에는 문화재복원 전문가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니케 여신상, 다빈치의 명작 모나리자, 밀로의 비너스를 찾았다.

2시간 만에 넓은 미술관의 겉만 핥고 난 다음,
"다음에 너희들이 대학생 쯤 되면 스스로 여길 찾아와 찬찬히 보라"고 얘기해 주는 것으로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문을 닫는 시간에 떠밀려 밖으로 나왔다.

루브르는 이번이 세 번째였지만 브리티시 뮤지움을 보고 난 다음이라 그런지 처음 봤을 때의 감동은 없었다.
남의 유산을 훔쳐와서 장사하는 것도 내 좁은 눈에는 제국주의 시절에 대한 반성이란 것이 관념상으로만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긴 저런 보물을 돌려주고 싶진 않겠지.
저걸 보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만도 1년에 수천만명은 될텐데.

아이들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관을 보고 나서는 브리티시 뮤지움과 너무 비슷하다고 했다.
하긴 비슷한 시기에 이집트와 중동에서 차례로 훔쳐온 것이니 비슷할 수 밖에.
루브르를 나와 센 강을 따라 동쪽으로 노틀담 성당을 찾아갔다.

 

시간에 쫒겨 아이폰에 담긴 지도를 믿고 파리 지도를 제대로 챙기지 않아서 가이드 북을 보며 감으로 대충 가다보니 이번에도 예상과 달랐다.
내 기억보다 시테섬까지 거리가 제법 멀었다.
라데팡스와 달리 시내에서는 아이폰으로 지도 검색도 잘 안된다.

이런 도시라면 공공 WiFi 망을 구축해서 유적지를 잘 찾아갈 수 있도록 해 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더위에 지친 아내의 짜증 소리가 높아질 즈음 시테섬에 도착해 노틀담 성당에 들어갈 수 있었다.
마침 저녁 미사를 집전 중이었는데 이 큰 성당에 미사 참례자가 겨우 20여명 남짓. 유럽의 탈 종교화 정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

성당 내부를 찬찬히 돌아보며 아이들에게 아빠가 졸업한 카톨릭의 간단한 교리,
성모 마리아에 대한 의미를 설명해주고 아내는 빅톨위고가 쓴 노틀담의 꼽추에 대해서 이야기 해 주었다.
잠시 앉아서 아이나 아내는 처음 구경하는 미사 광경을 보도록 했다.
미사가 끝나고 벽면에 있는 성모 마리아 앞에서 봉헌초를 사서 불을 밝혀 봉헌하며 그 의미를 설명해 주었다.
처음 보는 장면에 호기심을 보이는 아이들. 작고 귀여운 초가 불을 밝힌다.
이번 여행의 무사함을 기원하며 성당을 나왔다.

 

짧은 이야기님이 자세하게 소개해준 보주광장과 빅톨위고의 집을 찾아갈 계획도 있었지만
이미 시간도 늦었고 아이들이 이해하기에는 조금 더 나이가 들어야 할 것 같았다.
성당 길 건너편에 있는 간이카페에서 팬케익과 음료수를 사서 노틀담 건너편 건물 난간에 앉아서 요기를 했다.
이것도 재미있다는 아이들.

지친 몸을 어느 정도 추스린 뒤 강 건너편 RER선을 타는 전철역으로 갔다.
어린이용 까르네를 사고 에펠탑으로 가기 위해서. 하지만 어린이용 까르네를 파는 기계가 없다.
다시 지하철역을 찾다가 또 길을 헤맸다.
눈에 익은 성 미셀광장이었지만 이번에도 헤맨 것. 역시 지도가 필요한데...

지친 아내의 잔소리가 하늘을 찌르고 나도 당황스럽다.
이상 고온 때문인지 아내의 체력과 인내심이 예상했던 것에 미치지 못한다.
30분을 더 헤맨 끝에 다행히 절반 가격인 어린이용 까르네를 파는 역을 찾아서 RER선을 타고 에펠탑으로 갔다.
왜 어린이용 까르네를 이렇게 어렵게 사게 만들어 놨는지 이해를 못하겠다.
하긴 잠시 지나가는 여행객이 그들 사정을 다 알 수는 없겠지만.

 

시간을 많이 낭비한 탓에 에펠탑에 도착했을 때는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했다.
오줌이 몹시 마려워 공중 화장실을 찾고 있는데 에펠탑 앞에 무료 화장실을 설치해 놓은 게 보였다.
3명이 먼저 줄을 서 있다. 헌데 완전 자동 시스템이라 한사람이 들어갔다 나와서 다시 세팅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5분은 넘어 걸리는 것 같다.
급한 사람은 숨 넘어 갈 것 같은 시스템. 그래도 있는 게 정말 다행이다.

일을 마치고 에펠탑 매표소로 갔다.
하나둘씩 몰려오는 관광객들이 장사진을 이뤘고 광장에는 젊은 친구들이 묘기 축구 내기를 한다.
엘리베이터를 타는데는 무려 한시간이 걸렸다.
1층에서 꼭대기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타려는 사람들은 지상보다 훨씬 더 많았다.

한없이 시간이 늘어진다. 이미 밤 10시.
에펠탑 구경을 끝내고 유람선을 타고 센강 야경을 구경하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늦었다.
까르네 사려고 헤맨 것이 아깝다.
고소 공포증이 있는 지 아내는 바닥을 보며 무섭다고 울상이다.

줄을 지어 탑승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 앞뒤로 한가족으로 보이는 중동계 사람들이 있어서 노인을 위해 자리를 양보했는데
우리 뒤에 서 있는 아줌마인 듯한 사람이 계속 밀고 들어온다.
안 그래도 몹시 더워서 짜증나는데 계속 눈짓을 하며 경고를 했건만 효과가 없다.
30분을 참다가 조금 인상을 썼더니 미안하다며 얼른 물러선다.
짜증이 밀려온다. 살과 살이 맞닿으니 안그래도 더운데 짜증이 밀려온다.
그 뒤에도 별로 달라지지 않는 이 가족의 태도.

 

생각없이 사람들을 올려 보낸 것일까?
적정 인원을 훨씬 넘은 것 같은 인파에 꼭대기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40분 넘게 걸려 꼭대기에 올랐을 때는 완전히 지쳤다.
사진을 제대로 찍을 수는 없었지만 파리의 은은한 야경은 한번은 볼만한 가치가 있다.
일몰에 맞춰 올라가서 봤으면 더 좋았을 것을.

몽파르나스 타워를 제외하면 균일한 밀도로 낮은 건물이 부챗살처럼 펼쳐져 있는 파리는 아름답다.
20분쯤 구경을 하다 전망대로 내려와 세계각국의 주요 도시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표시해 놓은 표지판에서 한국을 배경으로 아이들 사진을 찍어 주고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서둘러 내려왔다.

숙소로 가는 가장 빠른 지하철 역을 찾아보니 700m나 떨어진 Bir-Hakeim역. 여긴 어린이 까르네를 팔지 않았다.
라데팡스 역에 내려 숙소까지 가는 길은 주변이 너무 넓어서 찾는데 쉽지는 않았지만 똘똘한 준기와 연우가
숙소로 가는 엄지손가락 동상을 기억해 헤매지 않고 제대로 들어갔다.
숙소에 도착하니 12시가 거의 다 됐다.
내일 입을 옷이 마땅치 않아 간단한 빨래를 하고 더위에 지친 몸을 시원하게 씻고 내일을 위해 잠을 청했다.




너무 더운 파리.
강렬한 햇살에 인증 사진을 찍는 아들의 눈이 반은 감겼다.
개선문과 사륜전차. 로마가 남긴 문화의 흔적은 지금도 유럽을 지배하고 있다.




3번째 찾는 루브르. 가족들에겐 처음이었는데 시간이 너무 짧았다.
다음에 파리를 간다면 루브르 근처에 숙소를 정하리라.

강변에 이런 건물이 가득한 것만으로도 파리는 문화의 도시다.
백제 정도 2,000년, 조선 정도 600년을 자랑하는 서울이지만 근현대의 식민지 침탈로
문화기반이 무너진 것이 더 아쉽게 느껴지는 파리여행이었다.


 

약탈과 침탈,
우리도 광복이 늦어졌더라면 조선왕궁 전체가 일본으로 반출될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게 했던
이집트의 성벽. 이 거대한 유적이 파리에 와 있다니...그들의 침략은 깊고도 넓었다.




오디오 가이드도 없으니 무슨 유물인지 자세히 알지도 못하겠다.
유물이 제 자리에 없으면 골동품 전시장에 불과한 것 아닌가?




앗시리아 왕궁 약탈의 선두주자 프랑스.
그들에게 오리엔트의 찬란한 문명은 경이로움이었을까? 졸부가 된 사람들이 느끼는 성취감이었을까?
강화도 외규장각을 불지르던 문화수준을 가졌던 프랑스. 이 박물관을 보며 현대 프랑스 사람들은 자기 조상의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을 할까?




현존하는 인류 최고의 성문 흠정법전 함무라비 법전.




수백개 파편으로 출토된 유물을 복원 전문가들이 심혈을 기울여 하나씩 붙여 지금 모습으로 재현해 냈다는 니케 여신상
계단 위에 설치해 놓아 힘찬 모습이 더 멋진 여신상이다.




아이구 힘들다.
루브르에 처음 갔을 때 제일 멋져 보였던 장면은 저 의자에 앉아 어떤 젊은이가 하루종일 그림을 모사하고 있었던 장면이었다.
다리가 아프면 편안한 의자에 앉아 하루종일 멋진 회화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루브르의 여유가 좋다.
우리나라 박물관이나 미술관도 이런 곳이 많았으면 좋겠다.




완벽한 사람의 몸을 조각해 낸 그리스의  비너스상




파리를 유명하게 만든 노틀담 성당
성당 내부에서 미사를 참관중이랍니다.
관광객만 가득한 성당에서 종교가 세상의 으뜸이었던 시절의 잔영을 봅니다.
노틀담의 꼽추 같은 명작은 귀로 전해들은 얘기만 많지 읽었던 기억은 초등학교 때 가물가물한 기억뿐.




방학숙제용 인증샷.
언제든 틈만나면 누나의 인증샷 찍기를 방해하는 준기.




너, 이리와!
싫어 싫어. 힘든 여행에도 지치지 않는 두 남매는 성당앞 공터에서 쫒고 쫒기는 장난을....




에펠탑 올라가는 길고도 긴 탑승객 행렬.
황금색으로 빛나는 탑의 설계자 구스타프 에펠의 흉상이 보입니다.




공 하나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축구.
에펠탑 공터에서 묘기 축구를 보이는 아이.




에펠탑을 올라가면서 본 파리시내.
지구가 둥글다는 느낌이 납니다.
낮고 넓게 퍼져있는 도시는 답답한 느낌이 전혀 없습니다.



저 멀리 몽파르나스 타워가 보이네요.
에펠탑 동남쪽으로 보이는 모습. 삼각대가 있었더라면....

Posted by 연우아빠.

□ 2010.7.1(목)

 

여행자의 긴장 때문일까? 가족을 다 챙겨야 한다는 무의식의 발로일까? 
생각보다 너무 일찍 잠이 깼다. 05:35.
런던에서 하지 못했던 밀린 빨래를 해야 할 것 같다.

예상치 못한 더위에 매일 옷을 갈아입어야 했고 가져간 여름옷이 너무 모자랐다.
1층(우리나라로 하면 2층) 빨래방에 드럼 세탁기와 건조기가 있다.
세탁 한 번에 4.5유로, 건조하는데 3.5유로.
농촌에서 사는 사람들이 아니면 유럽은 빨래 말리는 것도 건조기에 하나보다.
하긴 마당이 없으면 널어놓을 곳이 좁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호텔 시설 관리를 하는 분의 도움을 받아 사용 방법을 배웠다.
동전을 넣고 세탁기와 건조기를 쓸 수 있는 코인을 뽑아서 사용하는 방식.
동전은 0층에 있는 프런트에서 바꿔와야 하고. 빨래를 돌려놓고 아침을 먹으로 0층 식당으로 갔다.

응접하는 여자 분은 세련된 사람이었는데,
서빙 하는 여자 분은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듯 우리가 머무는 3일 동안 단 한번도 완벽한 식탁 세팅을 하는 것을 못 봤다.
포크나 나이프를 빼먹거나 잔을 빼먹거나 컵을 빼먹거나. 냅킨을 빼먹거나...
처음엔 우스웠고 3일 계속 그러니까 나중에는 안스러웠다.

아침 식사가 끝나고 퇴근하는 그 분을 우연히 호텔 앞에서 보게 되었는데
바쁘게 어디론가 가는 모습에서 여기도 이주민들이 사는 게 만만치 않음을 느꼈다.
음식은 간결하면서도 맛있었다.
런던 사람들에게는 좀 미안하지만,
우리가 만난 런던의 식사는 배고픔을 지우는 역할만 하는 음식이었다면 파리는 보고 먹는 즐거움을 주는 매력이 있다.

 

오늘은 시내로 나가 오르세 미술관, 루브르 박물관, 시테섬, 에펠탑을 구경하기로 했다.
아내는 어제부터 가져간 여행안내 책자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시내버스를 타러 숙소 뒤편으로 나갔다.
어제 봐 둔 작은 공원은 아이들에게 좋은 놀이터였지만 우린 관광하러 왔으니 시내를 보러 가야지?
가는 길에 프랑스 아이들도 우리나라의 사방치기 비슷한 놀이를 하는 게 아닐까 싶은 흔적을 발견했다.
잠시 연우와 준기가 놀이를 하는 동안 아이폰을 가지고 앱을 찾다가 오르세로 나가는 64번 버스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에투알 개선문을 지나 오르세로 가는 노선이라 가는 길에 개선문을 보면서 지나가는 괜찮은 노선이다.
시내버스를 타고 목적지를 찾아갈 수 있으면 그 도시의 시민이 다 된거지.

 

시내버스를 타고 가는 것만으로 훌륭한 여행이지.
런던보다 넓은 도로지만 좀 더 시끄러운 파리 시내로 들어가는 길.
역시나 에어컨이 없는 시내버스는 이상 고온으로 따끈따끈하다. 그래도 그럭저럭 참을만한 더위.
에투알 개선문을 지나 오르세 근처에 온 것 같은데 기사 아저씨의 잘못된 안내로 한 정거장 앞에서 내려 잠시 당황했다.
그러나, 파리 지도와 나침반으로 길을 잡아 곧 오르세에 도착했다. 그 사이에 기온이 한참 더 올라갔나 보다.

 

오르세를 첫 번째로 선택한 이유는?
루브르는 내가 두 번이나 본데다 이미 영국박물관(British Museum)을 봤기 때문에 겹치는 부분이 많았다.
런던에서 아이들 성화에 내셔널 갤러리를 제대로 다 못봤기 때문이기도 하고 교과서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친숙한 작품이 많기도 해서.
어른 8유로, 어린이는 무료라 부담도 상대적으로 적었다.
하지만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는 아직 없다.
유럽의 문화예술은 동양사람들이 유지시켜 주는 것 같다.
고건축물, 미술품의 수리와 복원 그리고 각국의 오디오 가이드 시스템마저도 한중일 삼국이 경쟁적으로 지원해 주고 있으니.


입장을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앞 뒤에 서 있는 사람들이 우리더러 손가락으로 저 앞쪽으로 가라는 시늉을 한다.
"왜 그러지?" 라고 생각하며 줄 옆으로 나와서 보니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이 입장하는 문이 따로 있었다.
덕분에 땡볕에서 줄서지 않고 그냥 바로 들어갔다.
"아! 멋진 사회군. 사회적 약자를 배려해 주는 문화. 이런 게 프랑스의 역량인가 보구나." 
 
 

입구에 들어서자 에어컨 시설은 전혀 없어 자연채광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이 만만치 않은 열기를 담고 있다.
내부에서는 사진을 아예 찍지 못하게 해서 그림 감상에만 충실할 수 밖에 없었다.
고갱, 고흐의 작품을 천천히 감상하며 안으로 들어가니 뜻밖에도 중학교 때 제일 좋아했던 화가 꾸르베의 작품이 엄청나게 많았다.
"나는 천사를 본 적이 없다. 그러므로 나는 천사를 그리지 않는다" 신
에게 바친 미술을 인간에게로 돌린 그의 명언은 미션 스쿨의 황당한 종교적 소아병에 넌덜머리를 내던 나에게 귀가 번쩍 뜨이는 충격이었다.

그 꾸르베의 명작이 내 눈앞에 있다니.
광산에서 일해 거칠어진 손, 감자를 먹는 사람들, 가을 걷이가 끝난 농장을 돌며 떨어진 이삭을 줍고 있는 아낙네들.
가장 힘들게 일하지만 구조적으로 가난할 수 밖에 없는 Working Poor 계층의 삶을 상세하게 묘사한 꾸르베와 밀레의 작품은
프랑스가 왜 혁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 밖에 없었는지 그림으로 잘 설명해 주었다.
그들의 그림 앞에서 발길을 옆으로 옮기는 것조차 엄숙한 일이었다면 그림에 대한 문외한의 과장일까?
루브르에 비해 규모가 아주 작은(?) 편이었지만 인간의 모습을 다룬 친숙한 명작들이 너무 많아서 주마간산격으로 훓어 가는데도 시간이 모자랐다.

 

간신히 절반을 보고 다리도 쉴겸 점심을 먹으러 구내 레스토랑을 찾았다.
몇일동안 영국을 여행하면서 생긴 노하우.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레스토랑은 싸고 맛있다는 경험이 프랑스에서도 통할 것을 기대하고.

천정이 높고 창문을 통한 자연채광이 잘되어 밝은 분위기였던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자리를 안내해준다.
자리를 잡고 앉자 머리가 희끗희끗한 웨이터가 와서 메뉴판을 주고 사라졌다.
주문 준비를 하는 동안 연우와 준기가 웨이터 아저씨가 아빠보다 나이가 많은 것 같다고 한다.
그래서 서유럽의 웨이터에 대해 한참 설명을 해 주었다.
전문적인 학교에서 3년 이상 교육을 받는 전문가들이고 레스토랑에서 제공하는 모든 음식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손님들에게 자문을 해 주기 때문에 우리나라 식당에서 서빙하는 분들과는 좀 차이가 있다고.
나이가 많을수록 그는 더 노련하고 세련된 전문가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파리에 왔으니 음식에 맞는 포도주 한잔을 해도 괜찮을 것 같아 아내에게 포도주를 주문해도 괜찮다고 했더니 한참을 들여다보다 모르겠다고 한다.
술을 한방울도 못하는 나도 당연히 모르는 분야.
웨이터가 전문가일테니 그 분에게 우리가 주문한 음식에 잘 어울리는 포도주를 추천해 줄 것으로 요청했고
그 분이 추천한 적포도주 한잔을 주문했다.

나는 포도주 전혀 모른다. 그냥 검붉은색과 맑은 색이 있다는 것 밖에는.
우아하게 비교적 비싼 점심(57.8유로/4인)을 먹었다.
음식에 따라 나오는 기본 후식은 어른은 아이스크림 3덩어리, 어린이는 2덩어리였다.
너무 좋아하는 우리 아이들. 그 후식 때문에 불친절한 프랑스는 조금 괜찮은 점수를 받았다.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오른쪽에 전시돼있는 작품들을 계속 감상했다.
어차피 다 볼 수는 없는 일정. 3시가 넘어서야 루브르를 봐야 한다며 아내를 재촉해서 오르세를 나왔다.
바깥은 숨이 막힐 것 같은 더위.




라데팡스 공터에서 발견한 아이들 놀이공간
우리나라의 사방치기와 비슷한 놀이가 아닌가 싶네요.




오르세를 가는 길.
센강은 여전히 잘 흐르고 있고 폭이 아담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센 강변의 국회의사당.
프랑스는 공공기관에는 모두 국기가 걸려 있습니다.




아무리 멋진 작품이라도 배가 고프면 눈에 안들어오죠.
예술가는 배고플 때 멋진 작품을 만들지 모르지만
여행객은 배가 불러야 작품이 눈에 들어옵니다. ㅎㅎ
오르세 미술관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고요.




회화는 촬영을 못하게 하는데 조각품은 괜찮았습니다.
그런데 사진 찍는 것보다 같이 작품 감상하는게 더 재미있어서
오르세 내부에서는 사진을 이것 밖에 찍지 않았답니다. 




너무 더운 날이라서 유람선을 보는 것 만으로도 시원한 느낌이 듭니다.



햇살이 어찌나 따갑던지 오르세에 왔다 간 기념으로 인증사진을 찍었지요.
물론 방학 숙제 가운데 하나라고 합니다.
인증사진은 정말 자연스러운 표정이 잘 안나오는데 준기는 유럽여행 내내 너무너무 즐거워해서 좀 걱정스러울 정도였죠.

Posted by 연우아빠.
2007.12.13

몽마르뜨 언덕을 내려와 에뚜알 개선문을 찾아 갑니다.
언덕 아래로 내려오는 동안 경사면을 쉽게 오르는 푸니쿨라를 운행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린 뭐, 튼튼한 다리가 있으니까."

언덕 아래에 북아프리카인이 피를 이어받은 듯한 아이들이 축구를 하고 있습니다.
"넌 꼭 지단처럼 축구를 잘 하는 구나" 동료가 말을 걸었습니다.
아이들은 아랑곳없이 공차는데만 열중합니다.
그 꼬마들이 영어를 알아들었을까?

개선문을 향해 골목길을 내려가다 보니 이런 자전거가 있네요.


사용법을 몰라 그냥 찍어만 왔는데 나중에 알아보니 리용에서 성공한 자전거 대여 시스템이라고 하더군요.
저걸 대여해서 타고 다니면 시내 구경하는데 훨씬 편할 것 같습니다.
등산화를 신고 다니긴 했지만 유럽의 독특한 도로포장 때문에 오래 걸으면 발바닥이 많이 아픕니다.
지하철은 빠르고 편하긴 하지만 풍경을 볼 수 없으니 관광이나 여행 수단으로는 별로 선택하고 싶지 않지요.

시내버스도 잘 되어 있다는데 정보파악을 제대로 하고 오질 못해서 타기에는 자신이 없고...
다음에 온다면 저 자전거를 한번 이용해 보고 싶습니다.



독일에서 많이 봐서 이제 익숙해진 골목 풍경

처음에는 우리랑 다른 건물과 풍경 때문에 감탄사가 계속 나왔지만 일주일정도 지나니 슬슬 유럽 도시 풍경이 식상해 지기 시작합니다.^^
이 골목 끝은 샹제리제 거리와 이어져 있습니다.
대도시에서 이런 골목을 쉽게 보게 되니 서울의 빌딩숲이 더 한심해 보였습니다.



유럽 대학(?). 프랑스에는 캠퍼스가 있는 대학은 없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몇일 뒤 소르본 대학에 갔을 때도 골목길에 있는 건물이라 조금 실망...
하긴, 대학이 뭐 대단한 벼슬도 아닌데 사람들과 고립되서 혼자 잘난척 하는 것도 별로 좋은 모습은 아니죠.




좀 오래된 듯한 아파트인지 호텔인지? 아마 호텔인 것 같은데 허술하다 싶은 건물이 없습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벌써 때려부시거나 재건축한다고 난리났을텐데..우리랑 좀 다른 점입니다.
저런 오래된 건축물을 그냥 놔두고도 GDP가 우리 몇배가 된다고 하니 그들의 저력이 새삼스럽습니다.
오래 된 건물이 이 도시의 품격을 보여 주는 듯 합니다.



점점 어두워집니다. 이 길을 따라가다 주 프랑스 한국문화원을 발견했습니다.
빠리도 독일처럼 요란한 가로등은 보이지 않습니다. 
도로만 정교하게 만들수 있다면 굳이 가로등으로 세상을 밝혀 놓을 필요는 없을 듯하네요.
사실 밤에 불빛은 깊고 편안한 잠을 방해하는 빛공해의 주범이니까요.



드디어 도착한 에뚜알 개선문. 이날 저녁은 정말 지독하게 추웠습니다.
개선문은 로터리 가운데에 있는데 우리는 일부러 횡단보도를 계속 건너서 개선문을 한바퀴 돌아봤습니다.
나폴레옹 1세가 만들게 했다는 개선문은 그가 살아 있는 동안 완성하지 못해 이 문을 통해 개선한 병사는 단 한명도 없다고 합니다.

지금은 프랑스를 위해 전쟁터에서 죽은 병사들의 이름을 새겨 놓고 있다고 합니다.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죽은 나폴레옹의 유해가 영구 귀국했을 때 이 문을 통과했다고 합니다.




샹제리제 거리. 크리스마스 시즌에 TV에서 보던 그 거리 풍경을 실제로 가 보니 너무 소박하고 차분했습니다.
거리를 질주하는 차들은 프랑스 사람들 성격을 보여 주는 것 같더군요. 
독일에 비해 정신없이 바쁘고 요란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보다는 조용...




가까이 다가갈수록 개선문의 크기를 실감합니다.



샹제리제 거리는 추워서 구경하고 싶은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고 차들이 많이 다녀서 조용한 독일에서 지내다 온 사람들의 혼을 빼 놓더군요.
샹제리제 거리는 세계적인 명품으로 유명한 상표를 달고 있는 가게들이 줄지어 서 있습니다.



특이한 장식품. 일명 명품거리에 있는 가게들 앞에 독특한 장식물들이 많습니다.



개선문을 지나 쁘레지동 윌송거리(Av. du Président Wilson)를 지나 에펠탑을 향해 가는 중입니다.
유명한 기메 박물관(MUSÉE GUIMET) 로터리에 서 있는 동상
미국의 윌슨대통령 이름이 왜 이거리에 붙었을까? 1차 대전 때 협력의 댓가인가?
그럼 이 동상은 윌슨대통령의 동상인가?



에펠탑은 빠리에서는 어느 곳에 있던 다 보이는 것 같습니다.
밤이 되자 불을 밝혀 여기가 빠리라는 것을 실감하게 합니다.
다가가면서 계속 찍어봅니다.
날씨가 엄청 추웠는데 탑 꼭대기에는 탑의 조명이 내뿜는 열기 때문인지 안개가 감싸고 있습니다.



디에나 다리(Pont d'Iéna)를 건너가며 찍습니다.
만약 에펠탑이 없었다면 빠리의 밤 풍경이 얼마나 심심할까 생각해 봅니다.



디에나 다리 위에서 센 강변의 밤 풍경을 찍어 봅니다. 물에서 아주 차가운 기운이 감돕니다.



드디어 에펠탑 아래에 도착했습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그런지 경찰들이 쫙 깔렸습니다.
베레모를 쓰고 경기관단총을 맨 모습으로.....
차가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많이 나와 있었습니다.



이 각도에서 에펠탑을 찍은 사람은 별로 없겠지? 이런 생각을 하며 에펠탑 아래 돌의자 위에 누워서 찍어 봤습니다.
정말 거대한 철구조물입니다.
사진에서만 보던 탑 아래에 실제로 왔다는 생각이 겹쳐 묘한 흥분 상태



에펠탑 바로 아래에서....



이 탑을 세운 구스타브 에펠. 그의 흉상이 한쪽 다리 귀퉁이에 서 있습니다.
그는 맨하탄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을 만든 사람이기도 합니다.
자유의 여신상은 미국 독립 150주년 기념선물로 프랑스가 미국에게 준 것이라고 하더군요.
19세기 말에 이런 대단한 철골구조물을 만들었다는게 믿어지지 않습니다.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를 둘러보았으니 이제 저녁을 먹으러 가야죠?
에펠탑 뒤쪽으로 계속 걸아가 봅니다. 가다보면 저녁 먹을 곳이 나오겠죠.
여행 안내책자에는 가까운 곳에 속칭 먹자골목이 있다고 되어 있는데....
걸어가다 뒤로 돌아보니 환타지 영화에 나오는 모습같네요.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매시 정각부터 15분동안 에펠탑은 이렇게 반짝이는 불빛쇼를 합니다.
실제로 보면 참 아름답습니다. 사진의 한계....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명 '먹자골목'이라고 부르는 곳
한국말로 호객하는 가게도 꽤 있더군요.
크리스트교 국가의 최대 명절 가운데 하나인데 너무 조용하고 차분합니다.
크리스마스 시즌에만 거리에 이런 불빛 장식을 한다고 합니다.



독일에서 숙박비를 현금으로 지불하고 나니 빠리에 도착해서 현금의 궁핍함을 느끼는 중...
유럽은 불황으로 각국이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고, 사람들이 생각보다 신용카드 사용을 별로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중국 아저씨가 경영햐는 수퍼마켓에서 식자재를 샀습니다.
빵이랑 우유를 사서 달타냥 호스텔로 갔습니다.
식료품 가격은 생각보다 많이 싼편입니다. 
술을 좋아하는 우리 일행은 포도주 값이 너무 싸다고 여기 계속 있었으면 좋겠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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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연우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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