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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5.09.17 바이칼에 가다(6/8)
  3. 2015.09.16 바이칼에 가다(5/8)

광복 70년 한겨레 바이칼 평화 대장정(8/8)

(제5회 민족의 시원 바이칼을 향한 평화대장정)

 

(8) 2015.08.24.(월) : 알혼섬 ~ 이르쿠츠크 ~ 귀국(8.25)

 

7시 반쯤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알혼섬을 떠나 이르쿠츠크로 가는 날이다.

밤하늘의 별을 보지 못해 몹시 아쉽고, 바이칼 호수에서 수영을 못해본 것이 못내 아쉽다.

아침을 먹고 그동안 배급 받았던 큰 물병 2개와 작은 물병 2개를 숙소에 남겨두고

1리터짜리 물병 1개만 챙겨 미니버스를 타는 곳으로 모였다.

길다면 긴 여행이었지만 돌아가는 길이 아쉽기만 하다.

 

10호차 미니버스를 같이 탔던 이 선생이 갑자기 뛰어 온다.

“찾았어요! 찾았어!”

어제 지갑을 잃어버린 것을 알고는 우리가 탔던 10호차에 맨 처음 달려가 차 안을 뒤져서 지갑을 찾은 것이다.

아, 이렇게 고마울데가....

남의 일을 자기 일처럼 챙겨주는 정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된 것이 어쩌면 이번 여행에서 가장 큰 기쁨이 아닐까 싶다.

 

우리를 태운 미니버스는 그제와 마찬가지로 사람이 살지 않는 황량한 길을 쏜살같이 달려 알혼 선착장에 내려 주었다.

이제 알혼 섬과 작별이다. 언젠가 다시 오겠지?

 

다 스비따니야(До свидания)!

우리는 알혼섬을 향해 손을 흔들며 건너편 선착장으로 출발했다.

물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얕은 곳은 바닥이 보인다.

검푸른 곳은 수심이 아주 깊은 듯하다.

신생대에 생긴 이 섬은 수많은 동식물의 보고인데 우리처럼 많은 사람이 찾아오고 전기가 들어오니 이제 훼손 속도가 더 빠를 것이다.

다음에는 이 모습이 사라지고 없겠지? 오랫동안 원래 모습을 간직하기를 빈다.

 

여객선 두 척이 알혼섬과 사휴르따 선착장을 번갈아 오간다.

사휴르따 선착장에 내리자 그제 우리를 내려 준 그 버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한국에서 수입한 탓에 우리말이 그대로 문에 남아 있다.

물범을 물고 있는 전설속의 동물 흑범을 지자체 문장으로 쓰고 있는 곳.

 

우리는 다시 황량한 스텝지대를 지나 이르쿠츠크를 향해 달렸다.

중간에 메텔리쨔(МЄТЄЛЦа)라는 간판이 달린 브리야트 전통음식점에 들러 점심을 먹었다.

우리나라 삼계탕과 비슷한 닭요리가 나왔다.

끝없이 넓은 초원에는 소와 말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고 날씨가 더워서 그런지 강변에 텐트를 치고 수영을 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이르쿠츠크에 도착한 뒤, 오후 4시경 즈나멘스키 수도원에 들렀다.

수도원 옆 공원에는 적백 내전 때 백군 사령관이었던 꼴차크의 동상이 있었다.

우리나라에는 <제독의 연인>이란 제목으로 개봉한 영화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즈나멘스키 수도원은 1689년 여자수도원으로는 시베리아에 처음 설립된 곳이라고 한다.

현재 건물은 대화재 이후인 1762년에 새롭게 돌로 지은 것이라고 한다.

쿠릴열도와 알래스카를 처음 탐험한 셀레호프의 묘도 이 수도원 안에 있다.

데카브리스트 유배자 가운데 처음으로 유형지로 따라 온 예카테리나 트루베츠카야 부인의 묘도 이 수도원 마당에 있다.

 

본당 안에는 전형적인 동로마제국스러운 이콘 상들이 가득하다.

경건한 마음으로 초를 사서 봉헌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도 성호를 그으며 경건한 정교회 본당의 엄숙함에 젖어들었다.

 

수도원을 나온 우리 일행은 데카브리스트 가운데 한 사람인 트루베츠코이 부부가 살던 집으로 갔다.

지금 기준으로봐도 상당히 큰 규모의 저택이었는데 몰락한 러시아 귀족의 생활을 볼 수 있는 박물관이었다.

트루베츠코이의 부인은 초상화가 남아 있는데 매우 우아하고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그녀는 안락한 모스크바의 귀족생활을 포기하고 반역자로 유형에 처해진 남편을 따라 이 오지에 와서 평생을 살았다고 한다.

그녀가 가꾼 이 집은 지금은 데카브리스트의 흔적을 볼 수 있는 박물관이 되었다.

또 한명의 데카브리스트인 발콘스키 공작의 집은 오늘 휴관이라고 한다.

 

이르쿠츠크에서 마지막으로 돌아본 유적은 1920년 고려공산당(이르쿠츠크파) 창당식이 있었던 건물이었다.

갑작스럽게 일행들이 나에게 이 역사적 건물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해서 당황한 나는 완강하게 사양을 했다.

 

박 사장이 건물에 대한 설명을 마치고 우리 일행은 저녁을 먹기 위해 버스를 타러 가는데 요시다카 선생이

우리 행동이 이해가 안된다고 부인에게 얘기했다고 한다.

한국사와 직접 관련이 없는 데카브리스트 관련 유적은 자세히 관람하면서,

정작 한국사와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고려공산당 창당 건물은 들어가보지도 않고

먼발치에서 보며 설명하는 것으로 끝내는 것은 이해가 안된다는 것이다.

 

이르쿠츠크 공산당을 결성한 같은 장소에서 같은 해에 몽골공산당도 창당을 했는데

그들은 1924년 적군의 도움으로 중국과 백군을 몰아내고 세계에서 두 번째로 소비에트 정권을 세우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우리는 상해파와 이르쿠츠크 파로 갈려 주도권 싸움을 하여 내부의 갈등을 불러왔고

항일무장군대 지휘권을 놓고 다투다가 자유시 참변이라는 끔찍한 내분을 초래한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민족주의 계열과 반목하면서 민족주의자와 공산주의자는 다시 건널 수 없는 골을 만듦으로써

지금까지도 분열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관계로 고려 공산당은 묻혀버린 역사가 되고 말았다.

자유스(스보보드니) 참변은 항일전쟁 중에 아군이 아군에게 총을 쏘고 아군을 서로 죽인 동족상잔이라는 점에서

씻을 수 없는 역사적 타격이었다.

 

그러나 고려공산당이라는 이름은 동시대에 많은 청년들에게 영향을 미친 듯하다.

1943년 인도네시아에서 연합군 포로감시원으로 일했던 조선 청년들이 비밀리에 고려공산당을 조직해

항일 투쟁을 하다 적발된 사례가 있었던 것을 보면.

 

이르쿠츠크 시내 구경을 마치고 우리는 저녁을 먹으러 불두구제(Бурдугуз) 파크호텔에 들렀다.

이르쿠츠크 시내에서 앙가라 강을 따라 바이칼 호 쪽으로 40km를 내려가면 나오는 이 호텔은

바이칼에서 흘러나오는 앙가라 강변에 있다.

식사를 마치고 어코디언 반주에 맞춰 러시아 민요 공연을 구경했다.

처음 듣는 노래지만 왠일인지 익숙한 느낌이 드는 그런 노래였다.

우리나라 강강술래처럼 모두 손을 잡고 둥글게 둥글게 도는 놀이도 하며 러시아를 떠나는 아쉬움을 달랬다.

결혼식을 마치고 놀러온 러시아 사람들도 있었는데 강변에서 아주 재미있게 노는 모습이 숲 사이로 보인다.

 

밤 하늘의 별은 아주 밝았다.

이르쿠츠크 시내로 돌아와 비행기 시간까지 각자 자유시간을 가졌다.

이르쿠츠크는 인구 60만 정도로 큰 도시지만 우리나라 도시에 비해 가로등도 별로 없고 조용한 편이었다.

슈퍼마켓에 들러 연우가 주문한 기념이 될만한 것을 살펴보았지만 없다.

한결이는 여동생 주겠다고 귀여운 바이칼 물범인형을 샀다.

우리는 살게 없어서 기념으로 초콜렛을 한 상자 샀다.

푸틴이 만들게 했다는 루스키 스탠다드 보드카는 찾을 수가 없었다.

가게에서는 러시아 법을 철저하게 지키느라 밤 9시가 넘은 시각이 되자 술을 팔지 않았다.

제한 시간 전에 계산대에서 계산을 끝낸 사람을 사 가지고 나왔지만,

바로 뒤에 사람은 시간이 넘었다는 이유로 술을 진열대에 다시 갖다놓고 와야 했다.

 

현지시각으로 8월25일(화) 새벽 12:30분에 공항에 도착했다.

우리나라의 조그마한 지방도시 시외버스 터미널만한 이르쿠츠크 국제공항은 승객이 밀리거나 말거나

게이트 4개 중에 2개만 열어놓고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보안검색과 보딩체크를 한다.

공항 안에 조그마한 가게에서 마뜨요시카를 발견하고 2,000루블을 주고 한 개 샀다.

상당히 조잡해 보였지만 다른 가게가 없다.

 

길고긴 보딩체크 시간, 비행기 출발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대한항공 직원이 나와서 뭐라고 한참 얘기하고 나서야

게이트 4개를 다 열어서 처리했다.

우리 기준으로는 짜증날 일인데, 저 사람들 기준으로 생각해보면 그 사람들이 아쉬울 게 없다.

우리도 비행기에 짐을 부쳤으니 그냥 출발하지는 않을거라 생각하고 느긋하게 생각했다.

보딩체크를 마치고 나니 바로 면세점 비슷한 조그만 가게가 하나 보였다.

거기에서 사무실 직원들에게 줄 루스키 스탠다드 보드카를 한 병 샀고,

한별이는 2,000루블짜리 마뜨료시카 인형을 발견해서 한 개 샀다.

보안 검색 구역에 있던 가게 제품보다 훨씬 품질이 좋아 보였다.

 

가게에서 물건을 사는 사이에 비행기 트랩까지 타고 갈 버스에서 우리를 찾으러 러시아 안내원이 왔다.

얼른 뛰어가 버스를 탔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일행들에게 미안한 인사를 건넸는데

다들 여유롭다. "얘네들도 느긋한데 우리라고 는데 조금 있다가 비행기를 향해 버스가 출발했다.

“음! 러시아는 아직 아프리카스러운 곳이 많군!” 하는 생각이 스친다.

 

한국시각으로 새벽 3시반이 넘어서 우리를 태운 비행기는 한국을 향해서 출발했다.

 

안녕! 러시아여! 다시 오마!

다음에 올 때는 가족 모두 동참하여 이르쿠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가는 기차를 타고

유럽 러시아 지역을 배낭여행을 하겠노라고 다짐하며 깊은 잠에 떨어졌다.

 

 

시베리아 호랑이를 그려 놓은 미니버스.

 

 

알혼섬이여 안녕!

 

 

여행은 때로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인 시대도 있었다.

황량한 스텝지역에 죽은 이를 기념하는 정교회 십자가와 꽃이 돌 무더기 위에 놓여 있다.

 

 

알혼섬을 건너서 이르쿠츠크로 돌아오는 길 가운데 2시간은 이런 길을 달려야 한다.

 

점심을 먹으러 들린 브리야트 전통식당 마당에 사루비아 꽃을 비롯한 꽃이 예쁘게 피었다.

 

 

점심 때 나온 음식 중에 항아리에 담긴 닭백숙 같은 요리

 

 

넓고 넓은 평원에는 소도 방목을 하고

 

말도 방목을 한다.

 

경비행기 학교 같은 풍경도 보이고

 

드문 드문 집이 보인다

 

시베리아는 대륙성 기후라 여름에 몹시 덥다.습도가 낮아서 지낼만 할 뿐.

더운 날씨에 강물에서 물놀이를 하는 가족인 듯

이르쿠츠크는 겨울에 영하 40도 정도까지 내려가는데

시베리아 고기압의 중심지라 바람이 불지 않는다고 한다.

습도도 낮고 바람도 불지 않아서 겨울 체감온도는 영하 5도 정도로 지낼만하다고 한다.

 

 

1918~1922년 적백내전 당시 짜르의 백군 총사령관 꼴차크(Алекса́ндр Васи́льевич Колча́к) 동상

제정러시아 해군 제독이었으며 1차대전 러시아의 전쟁영웅이었다.

적백 내전 때 적군에게 쫓겨 시베리아로 퇴각 도중 이르쿠츠크에서 적군에게 사로잡혀

처형당한 뒤 시신은 바이칼 호에 던져졌다고 한다..

지금은 세상이 바뀌어서 동상도 세우고 추모하는 꽃도 놓여 있다.

 

 

1689년 이르쿠츠크에 여자 수도원으로는 처음 세운 즈나멘스키 수도원

 

수도원 안에는 데카브리스트 유형자 가운데 한 사람인 발콘스키 공작 부인이 묻혀 있다. 

수도원 주교관

 

예배당 정면 감실, 동방정교회의 특징인 이콘과 화려한 금색 치장이 가득하다.

 

 

수도원 종탑

 

 

짧은 여름과 긴 겨울이 극명한 러시아에서 꽃은 우리가 바라보는 것과 다를 의미일 듯 싶다.

 

트루베츠코이 공작이 유배에서 풀려 살았던 집

 

내부에는  트루베츠코이 공작 부인의 초상화가 있다.

모든 사회적 부와 명예, 지위를 포기하고 머나먼 시베리아 유형지로 남편을 따라온 그녀는 대단한 사람임에는 틀림없는 듯.

안타깝게도 그녀는 이 집에서 살지 못했다고 한다. 이 집을 짓는 도중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트루베츠코이 공작부인이 사용하던 찻잔. 유럽의 귀족들만 사용할 수 있었던 도자기 찻잔이 그들의 생활수준을 보여준다.

 

유형이 풀릴 때까지 데카브리스트 들은 쇠사슬과 차꼬를 한 채 노동을 해야 했다.

 

 

발콘스키 공작의 집 뜰에 핀 꽃

 

 

이르쿠츠크 시내에도 레닌의 동상이 있다.

 

 

러시아 땅에 망명을 해 항일투쟁을 했던 사람들이 저 붉은 벽돌건물에 모여 1920년 고려공산당 창당대회를 열었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해에 몽골 공산당도 창당식을 열었다.

몽골 공산당은 1924년 세계에서 두번째로 몽골 땅에 소비에트 정부를 수립하는데 성공했다.

반면 우리는 고려공산당 창당 이후 이르쿠츠크파와 상하이 파로 갈려 공산당 내부에서 큰 갈등을 겪었다.

특히 연해주 일대에서 이만전투에서 활약한 우리 항일 무장군대와 청산리 봉오동에서 승리한 항일 무장군대는

1921년 적백내전 때 자유시(러시아 지명 스보보드니)에 집결해 단일 교전단체를 결성하여 적군과 협력함으로써

일본군을 격퇴하고 러시아 내 한인 자치주를 획득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으나 항일 무장군 가운데 자유대대와 이항군대 사이에

군 통수권을 두고 분쟁이 일어났다. 이르쿠츠크파는 자유대대와 연계되었고, 이항군대는 상해파와 연계되었던 바

이 들 사이의 갈등은 결국 적군의 개입을 불러왔고 무장해제를 거부한 부대에 대해

러시아 적군과 단일부대 통합에 찬성한 측이 공격을 가함으로써 우리 무장군 960명이 전사하고

1,800여명이 전사하거나 적군에게 체포되는 타격을 입었다.

이 일로 항일투쟁기간 내내 우리는 통합된 항일무장군을 갖지 못했고, 진영간 갈등으로 반목을 거듭했다.

지금도 그 불행한 역사는 반복되고 있다.

 

 

불두구제(Бурдугуз) 파크호텔에서 마지막 식사를 했다. 민속음악 공연 관람 중

 

 

우리나라 강강술래 같은 원무를 하는 것에서 묘한 동질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이 호텔은 앙가라 강변에 있고, 배를 타면 바이칼호로 갈 수 있다.

결혼식을 마친 사람들이 한가득 몰려와 시베리아의 밤을 밝히고 있었다.

하늘의 별이 정말 깨끗하게 보였던 이르쿠츠크의 밤이었다.

 

 

밤 12가 다 돼 가는 이르쿠츠크 시내

 

 

드디어 우리를 태우고 갈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여행과 관광의 차이를 확연하게 느낀 여정이었다.

 

 

기념으로 사온 마뜨료시카. 인터넷을 찾아보니 마뜨료시카는 모스크바나 상뜨 뻬제르부르크 쪽이 다양한 것 같다.

옛날 이야기를 할 때 이야기의 단락이 바뀔 때마다 한개씩 열어 사용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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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연우아빠.

광복 70년 한겨레 바이칼 평화 대장정(6/8)

(제5회 민족의 시원 바이칼을 향한 평화대장정)

 

(6) 2015.08.22.(토) : 이르쿠츠크~바이칼 알혼섬

 

이르쿠츠크에 가까이 갈수록 엘라 차장은 정신없이 바쁘다.

객실을 돌며 베갯닛과 매트리스 커버, 이불 커버를 회수하고 매트리스를 둥글게 말아 제자리에 정리했다.

바닥에 쓰레기를 처리하고 카펫도 정리하면서 바쁘게 뛰어다녔다.

40명 승객이 동시에 협조를 해주지 않으면 혼자 처리하기 힘든 일일 듯하다.

 

예정시각 보다 10분쯤 늦은 현지시각 새벽 1시 20분(서울시각 02:20),

기차는 마침내 이르쿠츠크 역에 도착했다.

 

깊이 잠든 준기와 한결이를 깨워 7번 플랫폼에 내렸다.

마침내 75시간 28분에 걸친 TSR 기차여행이 끝이 났다.

기차에서 내리는 것이 이렇게 섭섭할지 처음 탈 때는 예상치 못했다.

우리 일행 대부분은 이대로 모스크바까지 가고 싶다고 했고

박 사장님은 "우리 그냥 모스크바로 가요?"하며 웃었다.

 

그동안 고생한 엘라 차장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싶었으나 이미 플랫폼은 아수라장이었다.

우리 일행이 내리는 9번~11번 객차에 타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표를 확인하고 자리를 배정하느라 

엘라 차장은 정신이 없었다.

 

시베리아의 파리라는 별명을 가진 이르쿠츠크 시내는 조용했다.

일행을 기다리고 있는 버스를 타고 시내에 있는 매리어트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 로비에는 새벽시간인데도 손님을 환영하는 러시아 전통 호밀빵과 소금을 받쳐든 직원이 서 있었다.

 

다들 호밀빵 한조각을 떼서 소금이 찍어 먹으며 이르쿠츠크에 도착한 것을 확인했다.

호텔 객실은 서유럽 호텔에 비해서도 결코 손색이 없는 훌륭한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와이파이가 되길래 메일과 메신저를 확인했다.

사무실에서 일이 차질없이 잘 진행되고 있다고 걱정하지 말라는 소식이 들어와 있었다.

연우는 러시아 기념품을 사오란다.

그런데 이번 여행은 그런 패키지 관광 여행과 좀 다른데 어쩌나?

 

아침에 일어나서 관광을 하려면 잠자는 시간을 최대한 확보하는게 필요하다.

사흘간 제대로 씻지 않았으므로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포근한 잠자리에 들었다.

준기가 “이 멋진 호텔에서 하룻밤도 제대로 자보지 못하다니!”라며 아쉬워한다.

 

재빨리 샤워를 하고 잠을 청했다. 

아침 7시쯤 눈을 떴다.

현지 기온은 24도 정도에 습도가 낮아 상쾌한 느낌을 주었다.

시베리아가 서늘할 것이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아침을 생각없이 뜨다보니 평소 식사량의 1.5배는 먹은 것 같다.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나도 모르게 과식을 한다.

 

짐을 챙겨서 호텔을 나와 이르쿠츠크 관광을 시작했다.

이르쿠츠크는 "힘센 사나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브리야트어라고 한다.

 

처음 간 곳은 이르쿠츠크 개척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데카브리스트 기념관.

대학 때 불온서적(?) 반열에 들었던 김학준의 <러시아 혁명사>에서 읽었던 기억이 새로운

데카브리스트당의 기념관에 실제로 와 있다니.

강고한 소비에트 체제와 전두환 반란정권이 무너지고 이런 세상이 될 줄 꿈도 꾸기 어려웠던 시절인데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진리를 되새겨본다.

여행에 동참한 내 또래 사람들은 전두환 정권과 싸우며 보낸 세대라 다들 감회가 새로운 듯.

 

도시를 가로지르는 앙가라 강 옆에 파스텔 톤의 건물. 러시아에 와서 처음 횡단보도를 보았다.

깐깐하게 생긴 엘레나 도브뤼니나 관장은

우리 일행을 위해‘시베리아의 파리, 이르쿠츠크 문화의 기원’에 대해 강의를 해 주었다.

우리 가이드 가운데 모스크바 대학에서 정치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김@@씨가 순차 통역을 해 주었다.

 

강의실에는 멋진 샹들리에 3개가 있고, 역대 이르쿠츠크 총독의 초상이 벽에 걸려 있었다.

총독 가운데는 중국인 어머니를 둔 사람도 있었고 하이든 같은 외모와 패션을 갖춘 사람도 있었다.

변경 지역이라 그런지 무관 복장을 한 총독이 대부분이었다.

 

이곳은 1년중 6개월이 겨울이라고 한다.

겨울 추위 때문인지 건물 벽의 두께는 50cm를 넘어 보였다.

엘레나 여사는 데카브리스트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으로 이 박물관을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건물은 전형적인 19세기 제국주의 시대 양식인 것 같다.

1804년에 처음 세운 이 건물은 1899년까지 이르쿠츠크 총독의 관저로 쓰다가

1970년 12월 박물관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데카브리스트 봉기는 전형적인 계몽주의적 하향식 혁명이었다.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침략했다가 패주할 때 나폴레옹 군대를 추격해 파리까지 진격한 젊은 귀족들이 있었다.

그들은 파리에서 프랑스 혁명으로 변화된 유럽을 보았다.

러시아가 나폴레옹 전쟁에서 승리를 거뒀지만 농노제 같은 중세적인 조국의 현실에 분노를 느꼈고

니콜라이 1세 황제 대관식에 맞춰 1825년 12월 무장봉기를 한다.

 

그러나 정부군에 진압되어 주동자 5명은 교수형을 당하고

대부분 교수대 위에서 사면을 받아 이르쿠츠크 등지로 유배를 당하게 된다.

유형을 당한 사람 가운데 18명만 기혼자였는데

정부는 이들의 부인에게 남편을 버리고 귀족 신분을 유지하던가

귀족의 특권을 버리고 남편을 따라 시베리아로 가던가 선택을 요구한다.

주동자인 트루베츠코이 공작 부인, 발콘스키 공작 부인 등 11명은 동토의 땅으로 남편을 따라와 살게 됨으로써

이들이 중심이 되어 이르쿠츠크는 시베리아의 진주가 될 수 있었다.

조선 후기, 귀양을 간 사대부에 의해 지방의 유교 문화가 번성한 것처럼.

 

예전 같으면 여성들의 순애보라고 생각했겠지만, 현대 여성에게 이런 해석은 용납하기 힘들 것이다.

경험이 얕은 순진무구한 청춘들이어서 가능한 일이었을까?

다시는 귀족사회에 편입될 수 없는 가시밭길을 간 사람들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데카브리스트에 대한 러시아의 평가에 대해 질문을 받고

엘레나 관장은 소비에트 시대에는 최초의 러시아 혁명가로 평가를 받았으며

지금은 변화를 지향한 지식인 그룹이며 러시아에 활력을 넣어준 혁명가로 평가하고 있다고 답했다.

덧붙여 한국과 이르쿠츠크는 관광을 비롯한 문화교류가 점점 커지고 있으며,

모스크바나 상트 뻬쩨르부르크보다 한국과 더 밀접한 관계이며

많은 한국인의 방문과 교류를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는 19세기 중반의 시베리아 극동 탐험보고서 같은 귀중한 자료를 볼 수 있었다.

당시 연해주로 이주한 조선사람의 삽화도 있었는데 시간이 제한적이라 자세히 볼 수는 없었다.

후에 다시 이르쿠츠크에 배낭여행을 오고 싶다.

 

이르쿠츠크는 깔끔하고 조용한 도시였다.

1879년 이르쿠츠크에 큰 불이 나서 나무로 된 당시 주택 대부분이 타버렸고

지금 이르쿠츠크는 그때 이 후에 지은 건물들이 대부분이다.

 

우리를 안내하는 여행사 가이드 청년들 대부분 이르쿠츠크에서 유학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 유학중인 한국인 학생은 약 100여명 정도라고 한다.

 

오늘은 바이칼 호 안에 있는 알혼섬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이르쿠츠크를 조금만 보고 가는 것으로 일정이 잡혀있다.

 

데카브리스트 박물관에서 나와 길 건너 강변 공원으로 갔다.

러시아 도시에는 대개 광장만 있는데 이르쿠츠크는 데카브리스트의 영향으로 인해 공원이 있다고 한다.

공원 앞에는 바이칼 호에서 나오는 유일한 강인 앙가라 강이 흐른다.

앙가라는 브리야트 어로 '커다란 구멍'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앙가라 강은 예니세이강과 합류하여 북극해로 올라간다.

예니세이강과 한반도는 선사시대에 동일한 문명벨트로 유서가 깊은 지역이다.

 

앙가라 강에서 시원한 바람이 분다.

한강 정도로 폭이 큰 강인데 거대한 수중 분수가 있었다.

청둥오리와 개리 같은 철새들이 삼삼오오 물질을 하며 먹이를 찾고 있는 평화로운 풍경이다.

 

우리는 강으로 내려가 손을 담궜다.

물이 따뜻했고 정말 맑았다.

한강과 달리 호안에 시멘트를 바르지 않아서 사람들이 직접 강물에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있다.

강에는 제트 스키가 일렬로 서서 달려간다.

 

공원에는 주말을 맞아 시민들이 놀러 나왔다.

흥겨운 음악소리가 들려서 돌아보니 나무그늘 아래에 젊은 남녀 한 무리가 춤을 추고 있다.

방송국에서 나온 것인지 카메라 앞에서 인터뷰 하는 사람들도 있고

드론을 띄워 광장을 촬영하는 듯 하다.

 

광장 한 가운데는 알렉산드르 3세 동상이 자리잡고 있다.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톡까지 TSR을 처음 착공한 사람이 바로 이 짜르이다.

이 동상은 이르쿠츠크 역 개통 10주년을 기념해 1908년에 세운 것이라고 한다.

아이들이 놀 수 있도록 트렘블린과 전기자동차도 있다.

비둘기가 모여 있는 것을 보고 러시아 꼬마가 달려가자 비둘기는 하늘로 날아 오른다.

재미를 붙였는지 이리저리 광장에 모인 비둘기 떼를 향해 계속 달려간다.

결혼신고를 마친 신랑신부와 하객들 모습도 보였다.

 

공원을 떠나 점심을 먹으러 시내로 들어갔다.

시내를 들어가다가 하얀 부조가 새겨진 비석을 보았다.

적백내전 당시 백군에게 포위되어 싸우다 전사한 적군병사 153명을 기리기 위해 레닌이 세운 비석이라고 한다.

어느 나라나 피어린 역사를 품지 않은 경우가 없는 모양이다.

 

점심은 이르쿠츠크 시내 올드카페(Old Cafe)에서 먹었다.

이르쿠츠크 시내는 다른 도시와 달리 영어 간판이 드문드문 보였다.

 

대화재 때 살아남은 이르쿠츠크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러시아는 창문을 보면 부유한 집안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고 한다.

부유한 집은 창문 모양도 아름다운데 가난한 집은 창문 모양이 사각형이라고 한다.

이제 오늘의 목적지인 알혼 섬을 향해 출발했다.

 

도시를 가로질러 나가는 동안 말을 탄 사람, 쌍봉낙타를 탄 사람들이 드문 드문 보였다.

그 가운데 10살 조금 넘은 듯한 여자 아이가 말을 타고 낙타를 끌고 가는 모습도 있었다.

시내를 벗어나자 다시 끝없이 평원이 이어졌다. 지평선과 숲 그리고 초원.

 

박대일 사장님은 바이칼 호수 주변 지역은 스텝지역으로 매우 건조한데다

최근 2~3개월 사이에 건조한 날씨 때문에 동시다발로 초원에 불이 일어났다고 한다.

마찰열로 인한 자연발화인데 러시아 정부에서 한 달 전에 평원의 불을 끄기 위해 군대까지 동원했으나

더 많은 불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고 한다.

아마 지금까지 봤던 자작나무 숲의 나무가 어려보였던 이유 대부분이 이런 산불 때문에

숲이 타버리고 새로 자라서 그런 현상이 일어난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아무튼, 그래서 알혼섬에서 밤하늘의 별을 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알려준다.

사람들이 실망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왔다.

 

약 4시간 동안 달려야 알혼섬 선착장에 도착하는데 길 가에는 새로 짓고 있는 건물들이 많이 보였다.

숲을 배경으로 작은 마을이 옹기종기 앉아 있다.

한가롭게 풀을 뜯는 소도 보이고, 말을 키우는 곳도 드문드문 보였다.

 

1시간 반쯤 달렸을 때 브리야트 사람들이 신성하게 생각하는 <우스찌아르다> 성황당에 도착했다.

마침 결혼신고를 마친 부리야트 신혼부부가 친구들과 사진을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얼떨결에 그들 부부를 축하하는 기념사진의 배경도 되어 주고 악수도 하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보낼 것을 축원해 주었다.

 

러시아에서는 결혼식이 따로 없단다.

먼저 결혼등록소에 가서 혼인신고를 한 뒤 친구와 친척,

가족들이 모여 다니며 여기저기서 하루종일 즐겁게 논다고 한다.

음주 운전이 걱정스러울만큼 술도 많이 마신다고 한다.

하긴 도로가 넓고 끝없는 평원인데다 다니는 차도 없어서 특별한 사고를 내기는 힘들겠다 싶은 생각도 들었다.

 

성황당에는 자손의 번성을 비는 곡식과 재물의 풍요를 비는 동전이 어지러이 쌓여있다.

성황당에 있는 재물은 손을 대면 천벌을 받기 때문에 아무도 손을 대지 않고 쌓이기만 한다.

여행이 무사하기를 텡그리에게 축원했다.

 

다시 출발한 길에서 좁은 지역에만 울타리가 쳐져 있고

가축은 돌보는 이 없이 떼지어 다니며 풀을 뜯고 있다.

워낙 목초지가 넓다 보니 주인은 재배해서 먹는 채소와 곡식이 있는 곳만 가축이 손을 댈 수 없도록

울타리를 쳐서 보호하고 그 외 바깥 쪽은 맘대로 뜯어먹게 놔둔다고 한다.

시간이 되면 동물들은 알아서 집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너무 넓은 나라에서 상식이 반대로 움직이나 보다.

 

러시아는 화장실이 정말 열악했는데

푸세식인 것도 그렇지만 사람 숫자와 전혀 맞지 않게 화장실을 지어서 사용하고 있었다.

알혼섬에 들어가기 전 2번 화장실 때문에 정차를 했는데

박 사장님은 1사람이 1분씩만 사용해도 70분이니 2번이면 140분 약 2시간 반이 지체된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유로 화장실은 여성들이 줄을 서 있고,

남자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 들어가 볼 일을 볼 수 밖에 없었다.

중간에 땅을 사서 화장실을 현대식으로 만들어 볼까 하는 생각도 든다며 웃었다.

 

두 번째 정차한 곳에서 커다란 변전소 시설을 보았다.

알혼섬에 작년말부터 전기가 들어온다고 한다.

러시아 부자들이 알혼섬에 별장을 짓기 시작하면서 전기공급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알혼섬을 향해 가는 동안 러시아에서 인기를 많이 얻은 유행가를 보여주었는데

<모래시계>를 통해 우리에게 잘 알려진 '백학'을 비롯한 대부분의 곡이

2차대전, 적백내전 중에 죽은 병사의 영혼을 위로하는 노래들이나

2차대전 중에 승리를 이끈 소비에트 병사들을 기리는 노래가 대부분이었다.

처음 듣는 노래 같지않게 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마침내 초원지대가 끝나고 비포장 도로가 시작되었다.

"길이라도 좋다, 아니라도 좋다"가 맞는지

"처음부터 길인 곳이 어디 있느냐? 한 사람, 두 사람 다니다가 보니 길이 된 것이지"하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

자동차가 다니는 곳은 곧 길이 되었고 황량한 스텝지역 가운데로 어지럽게 많은 길이 나 있다.

 

우측 통행, 좌측 통행 개념 따위는 필요없다.

대도무문이라더니 끝없이 넓은 평원은 차가 몇 번 다니면 길이 되었다.

반지의 제왕에서 레골라스와 김리, 아라곤이 오크 군대에게 잡혀간 메리와 피핀을 구출하기 위해

추적하는 길처럼 황량한 스텝지역이 계속이어졌다.

 

바다와 가장 먼 내륙 깊은 이곳에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 수 있었던 것은

곳곳에 있는 소금호수 때문이었다고 한다.

바이칼 호수로 가는 길 중간 중간에 크고 작은 소금호수들이 보였다.

 

이 황량한 땅을 다니다가 죽는 사람도 있나보다.

길 가에 러시아 정교회 십자가와 죽은 이를 기리는 사진과 꽃다발이 가득 놓인 장소가 드문 드문 보인다.

두터운 연기 때문인지 나무가 거의 서 있지 않는 스텝지역에 들어서자 하늘이 어둡다.

황사가 낀 것처럼 공기도 누렇게 보인다.

4시간 조금 더 걸려서 마침내 바이칼 호수에 있는 사휴르따 선착장에 도착했다.

태양은 붉은 색을 띤 채 마치 달처럼 동그랗게 보였다.

 

알혼섬은 포장도로도 없고, 대형 버스가 들어가기엔 배가 작다.

해서 우리가 타고 온 버스는 이 곳에 머물고,

알혼섬 안에서는 옛날 소비에트 시절에 개발한 쇳덩어리 같은 미니버스로 돌아다닌다고 한다.

선착장에는 대형 기중기가 호안 공사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마침내 바이칼 호수에 도착했다는 느낌도 잠시,

바이칼 호수는 어릴 때 사진으로 봤던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

깨끗하지 않은 탁한 색이었고 물 이끼도 끼어 있었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검푸른 호수를 건너는데 10분도 걸리지 않은 것 같다.

배 위에서 본 알혼섬은 황량한 모습이었다.

초목도 보이지 않고 갈색 흙덩어리만 보인다.

알혼 쪽으로 들어와 바이칼 호수에 손을 담궜다.

물은 따뜻한 느낌이었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미니버스 10대. 전자장치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가장 튼튼하고 정비도 쉽기 때문에 알혼섬 안에서는 이 차가 제일 좋단다.

세계테마기행에서 봤던 바로 그 자동차였다.

알혼섬의 어부들이 운전을 하는데 우리가 머물 숙소인 바이칼 뷰 호텔까지

비포장 도로 70km를 2시간 가까이 걸려서 달렸다.

로울링과 피칭이 심했지만 우리 차를 몰던 노련한 운전자는

흙으로만 된 도로를 찾아 달려준 덕분에 충격이 덜했다.

"야! 마치 매드맥스 영화 속에 들어온 것 같다." 

 

현지시각 오후 8시 40분쯤 바이칼의 유일한 호텔인 바이칼 뷰 호텔에 도착해 짐을 풀었다.

공기 속에 나무가 타는 냄새가 섞여 있고 하늘은 연무가 낀 것처럼 뿌연상태였다.

숙소와 식당은 기대 이상으로 훌륭한 시설이었다.

바이칼은 빠른 속도로 원래 모습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다.

거기에 나도 일조를 한 셈이지만....

 

저녁을 먹고 사람들은 저마다 흩어졌다.

준기와 한결이를 데리고 반야(러시아식 사우나)를 하러 갔다.

샤워를 하고 반야에 들어가니 무척 뜨겁다.

5분도 되지 않아 땀이 쏟아졌다.

일단 야외 수영장으로 달려가서 시원하게 물에 뛰어 들었다.

 

물안경을 가져가지 않아서 아쉬웠다. 생각보다 넓은 수영장이었다.

반대쪽 벽에 도착해 바닥에 발을 대고 서려고 했더니, 헐! 내 키보다 더 깊은 물이었다.

다시 위로 올라와 대각선 건너편으로 헤엄을 쳤다.

물은 매우 깨끗하고 시원했는데 24시간 내내 수중 청소 로봇이 돌아다니며 물을 청소하고 있었다.

수영장 구조는 두 변만 130cm 깊이였고 전체의 2/3는 180cm 깊이였다.

두어바퀴 돌고 나서 다시 반야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제대로 땀을 낼 수 있었다.

젊은 러시아 부부가 물을 뿌려 습도를 조절하다가 한국사람만 잔뜩 들어오자 자작나무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남녀 혼욕을 하지만 옷을 벗지 않아도 되니 별로 거리낄 것은 없었다.

땀을 충분히 흘린 뒤 다시 수영장으로 달려가 물속으로 뛰어 들었다.

한결이는 수영을 배우지 못해서 수영장에 들어가기를 사양했다.

물안경이 없어서 오래 수영을 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워다.

 

술잔을 기울이며 맘 놓고 밤을 만끽하는 사람들이 많다.

다양한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이 호텔에 투숙해 있었다.

 

새벽에 내린 이르쿠츠크역(사진-한겨레통일문화재단)

 

 

한밤중인데 이르쿠츠크 메리어트 호텔 로비에서 우리를 환영하는 빵을 들고 직원이 서 있었다.(사진-한겨레통일문화재단)

 

 

이르쿠츠크 앙가라 강변에 있는 데카브리스트 박물관

 

데카브리스트 박물관 관장이 우리를 위해 강연을 하고 있다.

 

 

데카브리스트 박물관 안에 있는 도서관에서 극동지방에 대한 탐험기록과 이르쿠츠크로 유배당한 데카브리스트 사람들이 사용했던

자료를 볼 수 있었다.

 

이르쿠츠크 시내를 관통하는 앙가라 강

 

앙가라 강의 맑은 물. 얘네들도 밤 늦게 여기서 술을 마시고 병을 깨는 짓을 하는 모양이다.

깨끗한 강물 안에 깨진 유리병 조각이 보였다.

 

 

강변에서 젊은이들이 단체로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춤을 이렇게 공개적인 장소에서 배우고 출 수 있는 문화가 정말 좋아 보였다.

 

결혼등록소에서 혼인신고를 마친 부부가 가족, 친구들과 앙가라 강변으로 놀러 나왔다.

 

 

이르쿠츠크 철도역 개통 10주년을 기념해서 세운 알렉산드르 3세 짜르 동상

그는 모스크바에서 이르쿠츠크까지 횡단철도 건설 사업을 처음 시작한 짜르이다.

 

앙가라 강에는 공원이 있다.

러시아에는 광장은 있어도 공원은 거의 없다는데 이르쿠츠크는 파리의 영향을 받아 공원이 있단다.

 

작은 아이가 비둘기 쫒아 다니는 놀이에 신이 났다.

 

1918~1922년 사이에 있었던 소비에트 적군과 짜르 왕당파 백군 사이의 내전 기간 중

이르쿠츠크에서 전사한 적군 병사 153명을 기리기 위해 레닌의 지시로 세웠다는 기념비.

 

 

 

이르쿠츠크 대화재에도 살아 남은 이르쿠츠크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

 

 

이르쿠츠크 시청사인 듯...

 

 

시내에 말이나 낙타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이 보여서 찍었는데 달리는 버스 안이라 흔들렸다.

12~3세 정도 돼 보이는 소녀가 말을 탄 채 쌍봉낙타를 끌고 가고 있다.

 

 

이르쿠츠크 시내를 벗어나 바이칼 호수로 가는 길

 

브리야트족의 성지 우스찌아르다 오보

 

 

우스찌아르다 오보에 놓인 동전과 곡식. 즐거운 여행을 기원하며 동전을 올려 놓았다.

아들은 여행의 무사함과 러시아에 다시 올 수 있게 해 달라고 기원했다.

 

우스찌아르다 오보에 마침 브리야트 신혼부부가 친구들 수십명을 이끌고 왔다.

이 친구들의 요청을 받고 나를 포함해 우리 일행 수십명이 기념사진 찍히는데 동참했다.

 

 

그냥 지평선, 끝없는 초록 평원

 

 

드문 드문 마을과 인가가 보인다.

울타리 안에는 사람이 먹을 채소를 경작하는데, 가축들이 뜯어먹지 못하도록 울타리를 쳤고

울타리 바깥 쪽은 방목하는 가축의 천국이었다.

 

 

트랙터로 밭을 가는 모습

 

 

잠시 들린 휴게소에는 누가 특별히 돌보지도 않는 듯한 개가 몇마리 있었다.

이 녀석은 익숙한 듯 포즈를 취해주고 사람들에게 살갑게 대했다.

 

 

바이칼 호수에 도착하기 2시간 전 쯤에 잠시 쉰 곳에는  변전소가 있었다.

작년말부터 알혼섬에도 전기가 들어온다고 했다.

 

 

 

캠핑을 다니는 삶인지 트레일러를 달고 있는 차량이 보였다.

여기서도 보이는 자동차는 대개 혼다나 토요다가 있었고 가끔 독일제 차들이 보였다.

 

 

반지의 제왕 2편에 에 나오는 풍경 같았던 자연지형.

일교차와 연교차가 심한 기후라서 땅 속에 있는 바위가 이렇게 무덤처럼 부풀어 올랐다가 부서진다고 한다.

 

 

바다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지역인 이 곳에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 수 있는 것은 소금호수가 있어서라고 한다.

사람과 가축의 생존에 필수인 소금이 바이칼 호 가까이 갔을 때 호수 형태로 남아 있는 것이 보였다.

 

 

몇달째 불타는 초원 때문에 초목을 태운 연기가 하늘을 가렸다.

맑은 날이지만 흐린 날처럼 보이는 하늘

 

 

드디어 알혼섬으로 건너가는 사휴르따 선착장에 도착했다.

지금도 선착장 확장공사가 진행 중이다.

 

 

우리를 알혼섬으로 태우고 갈 배가 다가 온다.

 

 

알혼섬 입구에는 나무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10분도 안돼서 알혼섬 선착장에 도착했다.

 

 

아들과 한결이는 바이칼 호수에 손을 담궈보았다.

 

알혼섬 안에 있는 유일한 호텔, 바이칼 뷰 호텔. 올해 초에 문을 열었다고 한다.

외부는 컨테이너처럼 생겼고 내부는 이렇게 나무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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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연우아빠.

광복 70년 한겨레 바이칼 평화 대장정(5/8)

(제5회 민족의 시원 바이칼을 향한 평화대장정)

 

기간 : 2015.08.17~2015.08.25

참가인원 : 73명

 

(5) 2015.08.21.(금) : 꾸엔가~슬류지얀까(17개 역)

 

기차 여행은 요람에서 자는 것처럼 편안하다.

시속 50~60km로 달리는 광궤 열차가 일으키는 진동은 우리와 너무 잘 맞았다.

아침에도 햇살과 함께 잠이 깼고 상쾌한 공기를 맛보기 위해 세수를 하러 갔다.

 

세수를 하고 나서 차장을 내다보며 해뜨는 평원을 감상했다.

블라디보스톡 방향으로 가는 화물열차에 탱크와 장갑차 같은 군용물자가 한참 지나간다.

고등학교 때 밀덕 생활을 조금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본 대로 러시아 탱크는 높이가 낮은 것이 아주 다부지게 보였다.

조금 뒤에는 대형 트랙터와 콤바인 같은 화물을 실은 열차가 한참동안 지나갔다.

 

예정 보다 조금 빠른 오전 7시 40분경 치타 역에 정차했다.

엘라 차장은 부지런히 복장을 갖추고 모자를 쓰더니 깃발을 들고 기차 아래로 내려갔다.

근무 교대자는 커다란 쓰레기 수거 봉투를 들어 플랫폼에 내려 놓았다.

내가 탄 10호차는 엘라 차장과 검은머리를 가진 젊은 여자 차장 2명이 교대로 근무를 한다.

 

치타역에서 박대일 사장님이 우리에게 잠시 도움을 요청했다.

가이드 가운데 한 청년이 어젯밤 여행객들이 권하는 술을 마다하지 않고 마시다가

아침에 일어나지 못하는 불상사가 생겨 도시락과 물 배달에 사람 손이 부족하단다.

장거리 여행에 이미 한 식구처럼 된 일행은 기꺼이 그 일에 동참했다.

 

치타 역에 고려인 3세인 반씨와 그의 아들이 우리가 점심으로 먹을 도시락과 물을 한가득 가지고 들어왔다.

우리는 잽싸게 73인분의 물병과 도시락을 기차에 실었다.

여행사에서 매일 주는 물 한병은 그대로 객실에 쌓였다.

이러다가 이르쿠츠크에 내릴 때 물을 모두 버려야 할 지도 모르겠다.

마시는 물보다 공급하는 물이 너무 많다.

 

중국 쪽 TCR 열차와 갈라지는 기차역이라 그런지 러시아와 영어 그리고 한자 표기 안내판이 보였다.

치타역 바깥에 하늘색 벽과 금빛 찬란한 돔을 가진 정교회당이 빛을 받아 반짝였다.

 

카메라를 든 여행객들이 제복을 입은 사람들에게 함께 사진을 찍기를 요청했지만

이 나라에서 제복을 입은 사람들은 한사코 사진 찍기를 거부한다.

관광 수입에 관심을 갖고 있는 서유럽 국가와 다른 점이다.

 

치타 시내 쪽으로 낮은 건물들이 많이 보였다.

날씨는 쾌청하고 기온은 20도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우리나라 가을 날씨 같은 느낌이다.

 

저 아래 쪽 차량부터 옛날에 많이 본 듯한 트럭이 올라오더니 우리가 타고 온 객차 아래에 호스를 연결한다.

오! 우리는 그 차의 정체를 금방 알아차렸다. 분뇨를 수거하는 차였다.

예전에는 역에 도착하기 30분 전, 출발한 뒤 30분 이내에는 화장실 사용을 금지했었다는데

아마도 용변을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에 그대로 배출 하는 시스템이었던 모양이다.

가이드의 안내와 달리 화장실 사용에 전혀 제한이 없어서 가이드들이 잘못 알려준 것이 아닌가 했는데

이제는 이렇게 분뇨 수거차를 이용함으로써 사용시간 제한이 없어진 모양이다.

 

여행 중에 차장이 돌아다니면서 술을 테이블 위에 몇 병 올려 놓고 마시는 사람들을 제지했다고 한다.

블라디보스톡에서 산 캔 맥주가 제범 용량이 큰 것이었는데 3캔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4사람이 마시는 것을 보고는 그렇게 쌓아놓고 마시면 안된다고 제지를 했단다.

차장의 말을 듣지 않으면 차장은 경찰에 신고를 하고 다음 정차 역에서 바로 경찰서로 가야 하는 무시무시한(?)

제도가 있기에 얌전하게 말을 들어야 했다.

 

이런 제도에 대해 동참한 여성분들이 국내 도입이 필요하다고 환영했다.

 

예정된 25분보다 조금 더 치타에 머문 기차는 곧 힐록을 향해 달렸다.

힐록까지 거리는 4시간 반 정도.

가는 도중에 번듯한 건물도 있지만 오래된 나무집으로 된 마을도 지나갔다.

멀리 화력 발전소인지 공장의 굴뚝인지 커다란 굴뚝이 줄지어 선 것이 보였고

지금까지 달라온 지역과 다르게 작은 마을이 자주 보였다.

타이가 삼림지대를 넓게 가진 나라 답게 나무로 울타리를 만든 마을들이 자주 보인다.

빛나지는 않지만 다들 고만고만한 모습을 가진 마을이었다.

 

아침은 지금까지와 똑같이 혼자서 만들어 대느라 도시락 2개가 30분 이상의 시차를 두고 도착했다.

아침을 잘 먹고 난 아이들은 객실 안에서 지루함을 느낄새도 없이 잘 논다.

 

점심때 쯤 힐록에 도착했다. 힐록부터는 한국표준시각보다 1시간 느리게 간다.

힐록에 내려 작고 아담한 역을 배경으로 기록사진을 찍었다.

치타역에서 받은 점심 도시락을 먹었다.

과일과 채소, 삶은 달걀, 그리고 빵이 들어 있는 도시락이었다.

 

2시 35분쯤 역 앞에 벽화와 동상이 서 있는 뻬뜨로자보트 역에 도착해 잠깐 머물렀다.

고르혼과 자이그라예보 역을 통과한 뒤에 오후 4시 50분경 울란우데에 도착했다.

 

울란우데는 바이칼 호수에서 가까운 부리야트 자치공화국의 수도이다.

울란우데가 자치공화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17세기 후반 부리야트족이 카자흐 기병에게 강력하게 저항을 해서

러시아가 이 지역을 장악하는데 큰 곤욕을 치른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부리야트족의 강한 저항에 부딪친 러시아는 부리야트 사람들의 자치권을 인정해 주었다고 한다.

 

부리야트 사람들 외모는 한국사람과 구별이 안된다.

입 다물고 있으면 한국사람과 부리야트 사람을 구별하는 것은 매우 힘들다.

 

울란우데는 몽골횡단철도(TMR)와 시베리아 횡단철도(TSR)가 만나는 분기점이다.

울란우데 역에는 우리에게 너무 친근한 곰 동상이 있다.

마치 곰나루성 전설과 같은 브리야트 사람들의 곰 전설이 전해온다고 한다.

이런 여러가지 동질성 때문에 부리야트가 부여족의 한 갈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울란우데를 떠난 기차는 우리의 목적지인 이르쿠츠크를 향해 달렸다.

우리는 저녁을 먹으며 <개성에서 본 한반도 평화경제>를 주제로 한 강의를 들었다.

강사는 개성공단 입주기업 협의회 부회장을 지낸 신한용 선생님이 하셨다.

 

남북 경제협력이 우리 제조업의 경쟁력을 회복하는데 얼마나 중요한지

현장에서 직접 겪은 사장님의 체험담은 기업지원을 담당하는 나에게는 정말 공감이 가는 말씀이었다.

실제로 통일비용보다는 분단비용이 월씬 큰데도 이런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다.

오죽하면 Korea Discount라는 말까지 있지 않은가?

 

동행한 배 선생님도 도 여러차례 얘기했지만 블라디보스톡을 벗어나 이르쿠츠크를 향해 가는 동안

기차에서 본 러시아의 SOC 상태는 형편없었다.

포장된 도로는 보이지 않았고, 길은 진창이 많았다.

고압 송전탑도 없었으며, 대부분 일반적인 전봇대에 연결된 가는 전선 뿐 이었다.

러시아는 인구가 희박한 이 극동 땅에 아직 손을 쓸 여력이 없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동해안과 연해주를 비롯한 동부 시베리아에 상호이익이 될 경제진출을

할 수 있는 국가전략이 조속히 실현되었으면 하는 아쉬움과 기대가 컸다.

 

울란우데를 떠난 기차는 이전과 달리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강의가 거의 끝날 무렵 진행방향 오른쪽으로 바다 같은 곳이 나타났다.

현지시각 저녁 7시 25분경 우리가 탄 기차는 마침내 바이칼 호수 남쪽 호안을 따라 달라기 시작했다.

기차 방향에 따라 저녁해는 황금색으로 또는 붉은색으로 변하며 출렁이는 호수를 따라 다양한 빛을 보여주었다.

모두들 정신없이 사진을 찍으면서 노을을 바라보았다.

객실로 돌아온 뒤에도 한참 동안 저녁노을이 빛나는 장관이 계속되었다.

차장인 엘라는 각 칸마다 다니면서 "바이칼! 바이칼! 선셋! 선셋!" 하면서 우리에게 바이칼의 노을을 보라고 알려준다.

 

기차는 약 200km정도 바이칼호 남쪽을 따라 달려 바이칼스크에 도착했다.

바이칼스크에서 4시간 정도만 더 가면 우리가 하차할 이르쿠츠크에 도착한다.

이르쿠츠크가 가까워지자 사람들은 이대로 모스크바까지 가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

길고 지루할 줄 알았는데 3일 동안 이야기 꽃을 피우느라 지루할 틈이 없었다.

 

가이드는 도착 1시간 전까지 짐을 모두 챙기고, 베갯닛과 매트리스 깔개 등을 거둬 차장에게 반납해야 한다고 준비를 부탁했다.

현지시각 새벽 1시10분에 이르쿠츠크에 도착하는지라 미리 짐을 챙기고 잠깐 눈을 붙였다.

그 사이에 아이들이 깊은 잠에 떨어지고 말았다.

 

 

까림스카야 역에서 치타를 향해 가는 길

 

부서진 건물도 있고 짓다만 다리와 건물도 있어서 뭔가 정리가 안된 듯한 느낌

 

탱크와 장갑차를 실은 화물차가 지나가더니 트랙터와 콤바인 같은 것을 실은 화물열차가 지나갔다

 

치타역에 도착. 정교회 예배당이 아침 햇살을 받아 빛을 내고 있다.

 

치타 역 광장

 

블라디보스톡을 떠난 뒤 처음 만난 지은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 건물

 

치타 역에는 구름 다리가 있어서 조금 멀리 조망할 수 있었다.

 

 

푸세식 화장실을 쓰던 옛날에 시골에서 자주 보던 수거차량.

 

 

왼쪽에 내가 탄 10호차 엘라 차장, 오른쪽에는 무뚝뚝한 9호차 차장

차장들은 큰 역에서는 이렇게 완전한 복장을 갖추고 점호를 받는 것처럼 도열한다.

 

 

어제 한결이 열심히 만든 블랙베리 주스

물병에다 넣고 설탕을 풀었다.

 

 

공장 굴뚝인지 화력발전소 굴뚝인지....치타를 출발해서 힐록으로 가는 길

 

나무가 많은 나라답게 나무 울타리를 친 마을이 보였다.

 

겉보기에 아주 오래되고 낡은 듯한 나무집

 

습지를 끼고 있는 마을

 

기찻길에 제일 가깝게 붙어 있는 마을. 마을마다 색깔이 통일되어 있는 듯 지붕 색깔이 비슷한 집이 모여 있다.

 

 

꼭 제재소 같은 풍경

 

 

산이 아닌 평지에 침엽수림 같은 숲이 너무 흔하게 많은 러시아

 

 

점심 때 도착한 힐록 역

 

 

힐록을 떠난 지 3시간 뒤에 도착한 빼뜨로자보트 역

저 인물상과 벽화에 대해 설명을 들었는데 메모를 까먹었다.

 

 

브리야트 자치 공화국의 수도 울란우데

갑자기 우리일행과 닮은 사람들이 많이 보여서 한국 관광객이 중국 쪽에서 온 줄 알았는데

우리와 구분이 안되는 외모를 가진 사람들이 알아 들을 수 없는 말을 한다. 브리야트 사람들이었다.

 

 

브리야트 전설에는 곰과 관련된 것이 매우 많다고 한다.

브리야트는 카자흐스탄 용병에 맞서 용감하게 싸운 덕에

러시아의 직접 지배를 당하지 않고 자치 공화국으로 민족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마침내 도착한 바이칼 호수. 울란우데를 떠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황금빛으로 물든 바이칼 호수의 노을을 보게 되었다.

 

 

200km 가까운 길을 바이칼 호수를 따라 달린다.

 

거대한 바이칼 호수는 파도가 치고 있었다. 호수가 아니라 바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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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연우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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