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산자연휴양림에서 보낸 아버지 생신


2016. 6. 4~6. 5(1박 2일)



아이들이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

휴양림 여행은 물론 가족여행은 꿈도 못꾸는 상태가 되었다.


올해 아버지 생신 역시 집에서 보낼 생각이었는데

제수씨들이 고등학생 빼고 모이자고 해서 부랴부랴 휴양림을 알아 보았다.


다행히 사전추첨에서 당첨되지 않은 빈방을 선착순 예약하는 날이

지나지 않아 정말 다행이었다.


1년 동안 쉬었다가 예약을 하는 것이라

쉽지 않았는데 다행히 8인실 하나를 잡을 수 있었다.


연휴 첫날이라 그런지 느즈막히 출발했는데도 차들이 많았다.

집에서 청북IC까지 무려 2시간이 걸렸다.


그 다음부터는 안성에서 잠깐 막혔을 뿐

다행히 평소보다 1시간 반정도 더 걸리는 정도로 준수하게 황정산 휴양림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휴양림 들어가는 길이 생전 처음 와보는 길처럼 낯설었다.

이번이 세번째인데....



후기를 검색해보니 2~3년전에 왔었다고 생각했는데

무려 6년전에 온 것이 마지막이었다.

세월 참 빠르다.



휴양림 다니길 뜸하게 한 사이에 황정산휴양림 입구는 아스팔트로 깔끔하게 포장을 해 놓았다.

예전에 울퉁불퉁 들어가던 길이 아니라 왠지 유원지에 들어가는 느낌은 살짝 아쉬웠다.

하지만 이렇게 편안한 접근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니...




예약한 방에 들어와서 파노라마로 찍어 본다.

일체형 통나무 집이라서 많이 울리는 편이니 아이들이 뛰지 않도록 해 달라고

관리사무소 직원이 여러번 당부했다.


우린 이제 뛸 아이들이 없어요. ㅠㅠ




삼형제와 부부가 다 모였다.

저녁 먹기 전에 산책이나 하자고 해서 숙소를 나왔다.

숙소 드나드는 길에 놓인 디딤돌들.




우리가 예약한 연립동 숙소



경내에 핀 함박꽃(일명 산목련)

그러고 보니 계절이 산목련이 한창 피었다가 질 때구나.

휴양림을 열심히 다닐 때는 꽃이름도 많이 알고 식물들을 보며 계절이 움직이는 것도 알았는데...



물푸레나무 꽃.



2000년 이후에 개장한 국립휴양림은 초창기에 개장한 휴양림에 비해 경내가 좀 옹색하다.

하지만 도시 생활에 익숙한 사람들에겐 이 정도 휴양림도 감탄을 자아내니 사람의 눈은 상대적인 것.



6년전에는 없던 계곡 탐방 나무 데크도 만들어 놓았다.



6년 사이에 나무도 많이 자라서 이제는 숙소동 대부분이 나무에 가려서 더 멋있어졌다.



계곡 옆으로 낸 산책로를 따라 밑으로 내려간다.

바위산이라 계곡물은 바위 아래로 흐르는 소리만 날 뿐 겉으로 보이진 않았다.

비가 온 지 매우 오래된 듯



휴양림 경내가 좁고 경사가 심한 편이라 청태산이나 대관령과 비교할 때 좀 옹색하지만

이렇게 해 놓으니 나름 눈을 시원하게 해 준다.

작은 휴양림을 아기자기 가꾸느라 휴양림관리사무소 직원들이 그동안 애쓴 흔적이 보인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구름다리를 건너 숙소로 돌아왔다.



그동안 숲을 다니며 원없이 숯불바베큐를 해 먹었으니

이제 조용히 숙소에서 전기그릴로 고기를 구워먹을 요량이다.

이런 시원한 풍경을 바라보며 베란다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숙소에 음식냄새 베이는 것도 막을 겸...




널찍한 발코니를 보니 한참 휴양림 다닐 때 생각이 나기 시작했다.


"매트 가지고 올 걸" "그러게?"

"벌레 유인할 전등을 가지고 올 걸" "그러게?"

"야전침대랑 침낭 가지고 올 걸, 여기서 별 보며 자면 좋은데" "그러게?"

.

.

.

아, 우리의 여행감각이 무지 녹슬었음을 깨달으며 아쉬운대로 신문지를 깔고 저녁을 준비하기로 했다.

시원하고 청량한 바람이 우리를 어루만져준다.

머리 아프고 힘든 느낌이 바람과 함께 멀리 사라졌다.






먼 산을 바라보며 1년만에 휴양림의 맑은 공기를 느껴본다.



일요일 아침

아버지의 78번째 생신을 축하하는 케이크 절단식을 하고 다시 산책을 하러 나섰다.


6년전에 비해 야영장은 데크 숫자가 2배로 늘었다.



일요일 아침, 우리는 102번째 국립자연휴양림 여행을 확인하는 스탬프를 찍었다.

산책로 중간에 1개, 야영장에 1개 이렇게 2개가 있는데 이 곳은 야영장 앞에 있는 장소.



그런데 어떤 싸기지 없는 인간이 여기에 쓰레기를 넣어두고 갔다.

아마 아이들이 장난하다가 잊어버리고 간 것이겠지?

스탬프를 찍고 쓰레기를 들고 집하장에 갔다 분리수거통에 넣었다.



야영장 앞에는 이렇게 멋진 샤워장도 생겼다.



내부는 이렇게 깔끔하다.

다시 야영 하고 싶은 생각이 마구마구 일어난다.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가면 아내와 함께 다시 여행을 시작해야겠다.



10여년전 우리 아이들이 그러했듯이

아이들이 다람쥐를 좋아라하고, 나비를 쫒아다니며 즐거워한다.

귀한 제비나비를 잡은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이 녀석 이름을 아니?"

"그럼요, 제비나비예요."


"오호! 대단한 걸. 아저씨 아들이 너만했을 때 제비나비 알을 키워서 제비나비를 산에 날려보내곤 했지."

"와! 정말요?"


"그럼! 그런데 너 이 제비나비 집에 데리고 갈거니?"

"아뇨! 이따가 집에 갈 때는 여기 놔주고 갈거예요."



"오호! 그렇구나! 제비나비가 다치지 않게 잘 데리고 다니렴"

"그런데 할아버지. 여기에 왜 제비나비가 많나요?"

"그건 여기가 숲이 좋아서 제비나비가 살기에 좋은가 보구나"

"아항! 그렇구나."

.

숲을 나와 장다리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우리는 각각 자기 집으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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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연우아빠.

자연에 가깝게 사는 생활을 꿈꾸다


(황정산 자연휴양림 여행)

2010.9.11~12

유럽여행에서 돌아온 뒤 8월부터 대구에서 근무하라는 인사발령을 받았다. 아직 가족들과 휴양림 여행을 더 해야 하는데 가족들과 떨어져 살아야 하는 상황. 유진아빠는 떠나기 전에 야영이라도 함께 하자고 했는데 아쉽게도 시간이 나질 않아 함께 하지 못했다. 이제는 멀리 갈 수는 없을 것 같아 대야산 휴양림을 예약했다. 방 2개를 잡았다가 1개는 취소했는데 뒤늦게 동생 가족들이 모두 참여하겠다고 해서 다시 대기를 걸었다.

대구에서 이럭저럭 생활하고 있는 가운데 현지아빠께서 예천에서 편집회의를 하자고 연락하셨다. 성영아빠께서 9월11일에 시간을 낼 수 있다고 했단다. 워낙 바쁜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다른 날을 다시 잡는 것은 더 어려울 것 같아 밤에 숙소에서 예천을 다녀오면 될 것 같아서 그날을 회의 날짜로 정했다. 회의장소는 현지맘께서 기거하시는 곳인데 작년부터 거기 한번 가보자고 하다가 이리저리 날을 맞출 수 없어서 미뤘던 곳. 현지맘님의 건강은 요즘 어떠실까? 사시는 곳의 모습이 궁금하기도 하다.

출발 몇일 전 막내 동생이 회사 근무 때문에 11일에 오지 못한다는 연락을 해왔다. 금요일 밤 12시가 다 된 시간에 유진이네 가족도 형님네와 함께 황정산휴양림을 잡았다는 카페 글을 보고 나서 아무래도 밤에 대야산에서 예천까지 가는 산길이 부담스러워 위약금을 조금 내고 대야산을 취소한 뒤 예천과 가까운 황정산휴양림의 빈방을 잡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9월처럼 비가 몇날 몇일 내린다. 처서 지나서 비가 오면 곳간에 쌀이 줄어든다는 속담도 있는데 올해 날씨는 정말 비도 많고 무덥다.


아내가 낯설다는 표현을 할 정도로 정말 오랜만에 챙겨보는 짐. 준기는 지도 상자를 뒤져 충북과 단양 일대의 지도를 한 묶음 찾아서 배낭에 넣었다. 기특한 녀석. 연우는 요즘 배우기 시작한 기타를 가져가면 어떻겠냐고 하는데 습기 많은 날에 악기를 가지고 다니는 건 악기에 좋지 않다고 해서 집에 두고 출발했다. 오랜 여행 경험으로 비가 오건 말건 여행은 나름대로 재미있다는 것을 알기에 아버지의 걱정을 귀에 담으며 휴양림으로 출발했다. 주은아빠에게 맛있는 집을 문자로 받았는데 너무 늦게 출발한 탓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었다. 비가 오는 곳이랑 오지 않는 곳이 왔다갔다 한다.

황정산자연휴양림 연립동 숙소 앞에 산이 비구름과 안개에 휩싸여 있다.


비 때문에 주변 구경은 아무래도 지장이 있다. 휴양림에 도착하니 처음 개장했을 때보다 많이 안정돼 보인다. 좁은 야영장에는 데크도 3~4개 만들어 놓은 듯. 휴양림에서 숯불구이 해 본 지도 꽤 오래 되었다. 아이들이 먹고 싶어하니 우선 야외 탁자에 비를 막을 수 있게 타프를 쳤다. 오랜만에 쳐 보는 타프. 젖은 탁자를 덮을 돗자리를 가져 오지 않은 게 아쉽다. 현지아빠께 연락이 왔다. 7시 정도 돼야 성영아빠가 도착한다는 소식. 여기서 저녁을 먹고 들어간다고 답을 했다.

 

연우 담임 선생님이 내주신 “자녀를 격려하는 부모님 일기” 한편을 썼다. 쓰다보니 격려 내용보다 뭐가 되었으면 하는 희망사항 쪽으로 자꾸 기운다. 동생이 도착할 무렵 숯불을 준비했다. 타프 위에 도르르 구르는 빗방울. 다행히 저녁을 시작할 무렵 비는 그쳤다. 오랜만에 맛보는 숯불구이의 맛. 저녁을 마치고 8시가 넘어 아내와 둘이서 예천으로 출발했다. 가로등도 없는 캄캄한 길, 다시 비가 내렸다. 예천으로 나가는 길에 자동차 앞으로 다람쥐만한 작은 동물이 길을 건너는 모습을 보고 차를 얼른 세웠다. 새끼 너구리 같은데 우리차에 불빛에 놀랬는지 반쯤 건너던 길을 되돌아 숲으로 들어갔다. 저수령 못미쳐 언덕길에서 왼쪽 숲에서 노루가 뛰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급하게 차를 세웠는데 불빛에 놀랬는지 노루가 길 건너기를 포기하고 다시 숲으로 들어간다. 가는 길에 개구리도 열심히 길을 가로질러 간다. 동물들이 다니는 길에 사람이 차를 끌고 다니니 얼마나 괴로울까.

저수령을 넘으면서 예전 죽령길 넘던 생각이 났다. 거리는 멀지 않았지만 속도를 전해 낼 수 없는 구불구불한 산길. 네비게이션에만 의지해서 가다 보니 이상한 산골동네로 올라가는 길을 안내한다. 올라가다 보니 아무래도 이건 잘못된 길인 것 같다. 차를 돌리기 어려운 좁은 산길에서 간신히 차를 돌려 네비게이션을 축소시켜 보니 가야할 곳보다 한참 지나쳐 온 것 같다. 다시 산길을 올라가는데 그제서야 입구 간판이 보였다. 저수령에서 산길을 조금 내려오다가 왼쪽으로 꺽으면 우리가 가야할 곳이 나오는데도 교통규칙을 준수하는 네비게이션은 U턴을 할 수 있는 곳까지 계속 내려가도록 안내한 것. 30분이면 갈 수 있는 길을 거의 한시간이나 걸렸다. 두메산장에 도착해 주차를 하고 우산을 들고 마중을 나오신 현지아빠님을 따라 저녁을 드시는 곳으로 갔다. 마당에는 허름하게 얽어 놓은 지붕을 갖춘 초막이 있었는데 빗소리를 들으며 정감있는 식사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오는 도중에 길을 헤맨 일을 이야기 하며 노루랑 너구리를 보았다고 했더니 현지맘께서 그때는 자동차 불을 끄고 기다려줘야 동물들이 길을 건너간다고 한다. 다음에 이런 일이 생기면 꼭 그렇게 해야겠다. 성영이네는 올라오다가 차 앞으로 날아오는 부엉이(부엉이라고 하셨던가? 기억이 제대로 안나는군)를 봤다고 한다.

여섯 사람이 오붓하게 앉아 음식을 먹으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했다. 성영맘께서 가져오신 와인으로 분위기를 돋우니 무릉도원이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는 없을 것 같다. 시골생활에 익숙치않아 힘들거나 우리가 생각지 못한 어려움도 많겠지만 도시에서 느꼈던 스트레스가 확 줄어든 것만으로도 충분히 해 볼만한 생활인 것 같기도 하다. 이웃과 비교할 필요도 없고 먹을거리는 주변 텃밭과 산에 지천으로 있으니 사는게 너무 평온하다는 말씀. 현지맘님의 경험을 듣고 우리도 도시 생활을 떠나야 할 날이 그닥 멀지 않았음을 느낀다. 찬찬히 준비해야 시행착오를 줄이고 제대로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40대 중반 이후에 갑자기 나타나는 노안, 신체의 변화를 서로 얘기하며 많은 공감을 했다. 사춘기를 맞는 아이들의 변화와 부모의 욕심이 부딪치는 상황이 예기치 못하게 흘러갈 수도 있다는 경험담. 그리고 직장에서 점점 의욕을 잃어가는 중년 아저씨들의 심리적 변화에 대해 서로 경험을 얘기하면서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공감대를 넓혀간다. 현지맘님은 여기를 떠나 새로 이사갈 집을 사진으로 보여 주셨다. 파란 하늘, 하얀 구름, 그리고 장독대와 가마솥이 걸린 아궁이. 그리고 텃밭. 보는 것만으로도 편안한 시골집이었다. 도시에서 오래 사셨음에도 시골에서 잘 적응하신 모습이 새삼 멋있다. 외형적으로 보이는 멋스러움보다 식탁에 올려놓은 살림살이와 음식들이 자연을 닮아 편안하고 아름답다.

비가 줄기차게 왔건만 해발 700미터가 넘는 고지대에서 느끼는 편안함 때문일까? 아니면 너무나 정서가 비슷한 사람들이 만난 때문일까? 맘 속에 담고 있었던 자기 상태에 대해 스스럼없이 말을 했다. 명예욕이나 금전, 지위상승을 위한 노력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은 미묘한 변화. 설령 연봉을 몇억을 받은들 날밤을 지새우며 일을 해야 한다면 그 돈을 쓸 시간도 없으려니와 가족과 함께 지낼 시간조차도 없으니 수억원짜리 연봉은 받을 의미가 없는 돈이 되고 만다. 효율적으로 일하려고 후세에서 누려야 할 것까지 모두 빼앗아 와서 다 써버리면 세상은 미래가 없다. 전산화, 자동화를 통해 생산은 향상되었다지만 사람이 행복을 눌릴 수 있는 시간을 빼앗아 가버리는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 일인가? 돈을 버는 목적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쓸 수 있는 재원을 마련하려는 것이 중요한 목적이 아닌가? 이제 가족과 함께 행복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를 더 깊이 생각해야 할 시점을 맞았다.

현지아빠님은 내 몸을 상해가며, 가족과 함께할 시간을 빼앗겨 가며 일하고 싶지 않아 꼭 필요한 일만 맡으려고 했더니 오히려 전보다 더 주문이 늘어나더라는 얘기를 한다. 돈을 벌려고 애 쓸 때는 달아다더니 이제 없어도 사는 지혜를 터득하고 휴식을 원할 때는 휴식을 빼앗으려고 일이 몰려드는 아이러니.

나이가 들수록 국가의 GDP보다는 개인의 행복지수가 더 중요하게 다가온다. 누군가 안식년을 준다면 몇 년이라도 세계를 여행할 수 있을 것 같다. 중학생 아이들이 어떤 변화를 겪는지 성영이네와 현지네가 번갈아 얘기를 해 준다. 아이가 부모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게 하려면 부모가 합리적으로 아이의 요구를 수용해야 한단다. 아이가 부모와 신뢰관계를 계속 가지려면 아이에게 부정적으로 대해선 안된다고 얘기하신다. 필요한 것을 무조건 못하게 하면 아이는 꼭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거짓말을 해서라도 그걸 하게 된다고 한다. 부모 자식간의 신뢰가 깨지는 악순환에 발을 들이게 된다는 것.

성영맘은 아빠들은 아이들에게 대개 부정적인 말로 물어본다고 한다. 그러면 아이들의 답도 대개 부정적으로 나온다고 한다. 알면서도 어떤 때는 모르는 척 해 주 는게 필요하단다. 아이들도 사춘기가 되면 부모님 없이 완벽한 자유를 잠시나마 느껴보고 싶어 한단다. 하긴 우리가 어렸을 때 다 겪은 일인데 마치 겪은 일이 없는 것처럼 잊어버리고 산다는게 안될 말이다. 아이들도 우리와 같은 과정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서로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라 우리 얘기는 끝없이 이어졌지만, 내일을 위해 이젠 자야할 시간이다. 마지막으로 현지아빠는 우리 카페 사람들의 여행기를 출판하는데 필요한 자료를 성영아빠와 나 이렇게 두 사람이 만들어달라고 한다. 휴양림 가는 길과 주변에서 가 볼만한 곳을 정리해 붙일 계획이라고 한다. 우선 정리를 해서 어떤 것을 넣고 뺄지 선택하기로 정했다.

현지네는 주인집에서 내 준 빈방으로 자러 올라가고 성영이네 부모와 우리부부만 현지네 숙소에서 자기로 했다. 현지네가 기거하는 숙소는 겉모습은 양옥집이지만 내부는 황토로 만든 따뜻한 분위기였다. 한지를 발라 놓은 방안에는 사방으로 작은 창문을 내 놓아서 밝고 아담하다. 완벽한 어둠을 제공해 주는 잠자리. 창밖에서 들려오는 빗소리. 얼마만에 느끼는 빗물소리인지. 새벽 1시가 넘어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빛이 창문을 통해 우리 방으로 밀고 들어와 어슴프레 사물을 보여줄 때 눈이 저절로 떨어졌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상쾌함. 오직 빗물 떨어지는 소리만 들리는 고요한 시골집. 성영아빠께서 커튼을 걷으며 “사방이 너무 멋있지 않나요?” 하신다. 창문에 보이는 풍경은 아직 어둠이 완전히 가시지 않아 검은 빛을 띠고 있는 나무에 오랫동안 뿌린 비가 만든 안개가 걸려있다. 진경산수화는 이런 풍경을 보고 영감을 얻은 것일까?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한 풍경을 깨고 싶지 않아 우리는 방안에 불을 켜지 않았다. 다시 이어진 이야기들. 유럽의 균일한 지역분포처럼 우리도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데... 부러운 모델을 우리도 현실로 만들 수 있는데.
 
그렇게 한시간쯤 흘렀을까? 현지아빠와 맘이 내려오셨다. 비에 젖은 호박잎과 애호박을 하나 들고서. 그래! 시골에 살던 시절에 아침에 된장찌개를 끓이기 위해서 우린 마당에 있는 호박을 땄었지. 호박잎을 데쳐서 쌈을 싸먹었지. 너무 익숙한 모습을 오랫동안 잊고 살았구나.

아침을 바깥에서 먹자는데 공감을 한 우리는 세 여자분이 부엌에서 오물조물 음식을 만드는 동안 소박한 식탁보를 가져가 준비를 했다. 빗물에 젖은 탁자에서 물이 스미지 않도록 덮개를 덮었다. 황토를 닮은 소박한 도자기 그릇에 연두색 호박 볶음, 고추장에 버무린 감자볶음, 속새김치, 초록색 노랑색 파프리카, 초록색 브로콜리, 그리고 아삭한 맛이 너무 좋았던 고추, 쌈채소와 강된장, 현지맘님이 담그신 빨간 고추장, 호박잎 쌈, 짙은 초록색 오이. 소박한 식탁보와 자연색이 아름다운 반찬들이 먹기에 아까울만큼 아름답다. 카메라가 있었다면 사진을 찍어두고 싶군 하고 생각하는 사이 성영아빠께서 스냅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현지맘님이 가져오신 맛있는 현미밥을 나눠 자연과 함께 먹었다. 성영맘님이 가져오신 독특하고 귀한 커피(차가운 물을 한방울씩 떨어뜨려 한방울씩 커피를 우려낸다고 하는데 커피향이 아주 구수했다)로 아침을 마무리를 했다. 더 길게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성영이네는 대구로 우리는 휴양림으로 돌아왔다.


단양적성비각. 신라가 가야를 병합한 다음 가야세력을 이용해 처음으로 죽령을 넘어 북쪽으로 진출한 기념비


단양적성비. 진흥왕은 이 비석에 나라를 위해 헌신하면 보답을 하겠다는 약속을 새겼다.
이 비석에는 김유신의 할아버지 김무력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방곡도예촌을 갈까? 온달산성을 갈까? 했지만 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랑 반대쪽인데다 지형상 먼 산길을 돌아가야 하는 곳이라 동생가족은 온달산성 쪽으로 우리는 단양적성비를 찾아 헤어졌다. 도예촌을 가지 못하게 된 연우는 아쉬움에 입이 한참 나왔다. 만들기를 좋아하는 녀석인데...단양 적성은 한글 뜻으로 보면 같은 말인 것 같다. 산길을 좀 올라가니 주차장이 나오고 거기부터 걸어 올라갔다. 가다가 보니 중앙고속도로 단양휴게소 바로 뒤였다. 휴게소에서 차를 대고 뒷문으로 걸어올라가도 되는 곳. 남쪽으로 내려갔던 신라가 가야를 합병한 다음 가야 세력과 함께 다시 죽령을 넘어 북쪽으로 세력을 넓힌 첫 번째 영토였던 것. 거기에 대한 기쁨이 컸던지 진흥왕은 여기에 적성비를 세우고 공을 세운 사람들의 이름을 기록하고 장차 이런 공을 세우는 사람들을 중용하겠다는 뜻은 밝혀놓았다. 그 인물 가운데는 이사부도 있고 김유신의 할아버지이자 구형왕의 아들인 김무력의 이름도 있다. 단양 땅에 이르러 남한강 물줄기에 발을 들인 신라는 여기를 발판으로 지금의 충북 진천까지 세력을 넓혔고 그 자리에 가야 유민들을 이주시켜 고구려를 막는 전진기지로 삼았다. 김무력의 아들 김서현은 진천에서 김유신을 낳았다. 비가 많이 와서 시야는 그닥 좋지 않았지만 적성은 사방을 감시하기에 아주 좋은 곳이었다. 교과서에서 박제처럼 보이던 단양적성비가 현장에 와서 보니 힘차게 신라의 기쁨을 드러내고 있었다. 3백여년 만에 죽령을 처음 넘어 여기에 섰던 진흥왕은 얼마나 기뻤을까?

준기가 단양수양개 유적을 보고 싶어 했지만 내가 저녁에 다시 대구로 내려가야 하기 때문에 시간을 더 지체하기가 부담스러웠다. 강 건너편에서 수양개 유적이 있다는 표지도 보이고 구석기 시대 동굴 안내문도 보이는데 날씨도 좋지 않으니 다음을 기약할 수 밖에 없다. 사전에 지도를 살펴봤더라면 유적을 보면서 올라갈 수도 있었는데 여행을 준비하는데 점점 소홀해지는게 아쉽다. 도담삼봉을 지나가면서 초등학교 때 정말 비가 많이왔던 가을을 회상했다. 고모 환갑 때 서울에 올라가시던 아버지께서 제천에서 비 때문에 길이 끊겨 돌아와야 했던 일이 있었다. 그때 단양의 도담삼봉도 물에 완전히 잠길 정도였다고 한다. 하긴 우리가 살던 동네의 큰 다리도 무너졌었으니까. 단양에서 장다리 유명한 장다리 식당(043-423-3960)에 들러 점심을 먹으려고 했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서 1시간 이상 기다려야 한다는 주인장의 말씀에 원주 청솔보리밥집으로 길을 떠났다. 늦은 점심에 아이들이 몹시 투덜대고 막히는 길을 피해 국도와 고속도로를 적절하게 타고 집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5시 반쯤. 이제 여행을 다니는 일이 쉽지 않음을 느꼈다.


단양적성비가 서 있는 적성을 등지고 바라본 모습.
여기에 서면 사방이 훤하게 보여 군사요충임을 알 수 있다.


단양적성. 신라가 쌓았다고 한다.
단양이나 적성이나 우리말로는 똑같이 붉은성이란 뜻.

Posted by 연우아빠.
2008.10.25~26

2004.8.10 시작한 전국 국립자연휴양림 가족일주여행 마지막으로 황정산자연휴양림을 다녀왔습니다.
4년 2개월만에 36개(제주도 2개 포함)를 모두 돌아봤네요. ^^


청풍명월...청풍호수를 끼고 단양을 향해 미끄러지다가 능강솟대문화공원에서 잠시 구경을 합니다.


공원 앞에 있는 충주호는 그냥 그림입니다.

 


작은 들국화가 모여 진한 국화향을 흩날립니다.

 


솟대가 전깃줄에 걸려 있는 것 같습니다. 전깃줄 어떻게 해결했으면 하는 맘이네요.

 


옥순봉 휴게소 전망대에서 지나가는 유람선을 구경합니다. 가라앉을 것 같이 많은 승객들이 배 안에 가득합니다.

 


전망대 건너편에 보이는 저 봉우리가 옥순봉이겠지요?

 


일요일 아침 창밖을 보니 아름다운 산이 앉아 있습니다. 눈으로 본 실물의 1/10에도 미치지 못하는 사진이 남는군요.

 


마실가듯 설레설레 올라갔던 산책로에서 본 바위인데 정선의 진경산수화에 나오는 바위같이 생겼습니다.

 


이미 능선위로 올라온 해를 있는대로 조리개를 조여 찍어 봤습니다.

 

 


다락방이 있고, 거기에도 발코니가 있는 숲속의 집.
아이들 다 크고 은퇴하면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농사일을 배워가면서 살고 싶지만 그럼 여행을 못다니게 되겠지요?

 


말이 필요없는 파란 하늘, 하얀구름, 부서지는 햇살, 그리고 단풍을 이고 있는 바위 덩어리들

 


그냥 하늘인데 너무 예뻐서 의미없이 자꾸 찍어 봅니다.

 


계곡에는 작은 웅덩이만 몇군데 남고 물을 말라버렸습니다.
작은 물고기와 개구리가 나뭇잎 아래에서 헤엄치고 있었습니다.

 


숲해설을 해 주셨던 멋진 숲해설사님과 함께 열심히 목공예 악세사리를 만들고 있습니다.
준기는 작은 나무조각 두개를 붙여놓고 동물발자욱이라고 하면서 만들기를 끝냈습니다.

 


그리고 나서 좋아하는 생물들이 헤엄치고 있는 웅덩이로 직행

 


이 하늘도 파랗고 저하늘도 파랗고, 하얀구름과 단풍이 있어 더 파란 하늘

 


목공예를 끝내고 노니는 물고기를 잡고 싶어하는 아이들이 웅덩이에 모여 입맛을 다십니다.

 


다른 나무에 기생하는 겨우살이 풀이라고 하네요.

 


옥순봉, 구담봉 가는 길 삼거리에 있는 억새

 


구담봉을 향해 가는 길에서

 


장회나루쪽 모습입니다. 왼쪽 아래에 보이는 봉우리를 넘고....

 


앞서서 두번째 봉우리에 올라가는 일행들

 


교행하기가 어려울만큼 좁은 길입니다.

 


미끄러지면 하염없이 내려갈 것 같은 바위덩어리

 


두번째 봉우리에서 구담봉 가는 길을 포기하고 장회나루를 찍어 봅니다.

 


여기는 금수산과 구담봉 사이로 흐르는 충주호

 


북쪽으로 보이는 파란 호수가 아릅답습니다.

 


그 사이에 구담봉으로 가는 우리 일행들은 저 바윗길을 열심히 올라갔습니다.

 


제가 서 있는 봉우리에서 2개를 넘으면 이 구담봉에 올라간다고 합니다.

 


내려오는 길에 오색 딱다구리가 열심히 나무를 쪼고 있는 것을 촬영. 딱다구리가 보이시나요?

 


오랫만에 파란하늘을 봐서 그런지 파란 하늘만 열심히 찍습니다.^^ 


2008.10.25~10.26

은주네(이웃사촌 재성이네), 유진이네(유진맘 언니네 가족), 배달은석님 가족, 우리(21명)

10월을 넘기지 않고 국립휴양림 가운데 못가본 두 군데를 마저 가보려고 했지만, 9월 전체 조회 때문에 예약을 운문산 하나밖에 하지 못했다. 남은 곳은 황정산 휴양림. 처음엔 야영도 생각했지만, 캠퍼들 블로그에서 보니 데크도 없고 경사진 맨땅이라 좀 걱정스러웠다. 나는 좋겠지만 가족들이 즐겁지 않다면 행복보다는 불화를 가져올 일이 아닌가. 그런데 올해 일주를 끝낼 운이 닿았는지 한해동안 정말 열심히 함께 다녔던 은주네와 유진이네 가족이 황정산을 예약해 놓고 같이 가자는 고마운 제안을 해 왔다. 만사 다 제쳐놓고 가야할 일이다. 박무와 스모그로 컬컬한 목구멍, 그리고 따가운 눈을 시원하게 해 줄 환경을 기다렸는데 유진맘님 바램대로 수요일과 목요일에 비가 오고 하늘은 깨끗해 졌다. 그야말로 파란 가을하늘을 볼 수 있는 기회.

어수선한 세상이라 준비도 대충대충, 금원봉 → 청풍문화재단지 → 능강솟대문화공원 → 옥순대교 → 옥순봉/구담봉 이런 구도로 대충 내려가면서 보리라 생각하며 토요일 아침 11시에 집을 나섰습니다. 같이 가시겠다던 아버지는 시골에 다녀오시겠다고 해서 동생과 황정산에서 만나기로 하고 저녁만 같이 휴양림에서 먹고 영주로 내려가는 것으로 정리했습니다. 소백산 올라간다는 유진이네 계획에 동참하면 어떻겠냐고 했더니 아내가 “택도 없는 소리”라고 잘라 버립니다. 바람이 심하게 부는데다가 비가 올 것 같은 구름이 몰려와서 타프 가져가야겠다고 했더니 “오늘 비 온다는 예보 없었네요”하고 또 자릅니다. 아내 말을 들으면 꼭 나중에 후회하는 일이 많음에도 이상하게 그냥 듣게 됩니다. 나원참.

아침 6시가 되기 전에 영동, 서해안 고속도로가 막힌다는 라디오 교통정보를 듣고 출발 전에 고속도로 상황을 한번 체크해 보니 역시 안막히는 고속도로가 없네요. 좀 돌아가는 길이긴 하지만 39번 국도를 타고 청북IC까지 내려가서 남안성으로 가는 평택-안성간 고속도로를 타고 가기로 했습니다. 출발한지 1시간 쯤 지났는데 도착예상 시간이 1시간 늘어났습니다. 차는 많았지만 속도는 정상적으로 낼 수 있었고 남안성까지는 차가 거의 없어 잘 달렸습니다. 여기를 지날 때 늘 먹는 송학 쌀밥집에 들어가 맛있는 햅쌀밥을 먹고 제천으로 해서 잠깐 고속도로를 타고 금월봉휴게소 쪽으로 충주호를 끼고 내려왔습니다. 햇살은 따스하고 바람은 서늘하고 마치 금강산이나 북한산 같은 바위들이 알록달록한 단풍과 어울려 눈을 즐겁게 합니다. 금월봉 휴게소에 들렀더니 기암괴석은 사진보다는 실망스러워 화장실만 들렀다가 바로 내려왔습니다. 청풍문화재단지 역시 지나가면서 보니 드라마 촬영장 안내만 있을 뿐 문경새재 세트장이랑 별반 다를 것 같지 않아 패스합니다. 잔잔한 충주호의 물과 호젓한 풍경, 그리고 황금빛으로 부서지는 햇살이 3주만에 길을 나선 저에게 여유를 가져다 줍니다. 운전대를 계속 잘 돌려야 하는 불편함은 있지만 이만한 드라이브 코스라면 만족할만 합니다.

좀 더 내려와 능강솟대문화공원에 차를 세우고 올라가봤습니다. 역시나 휴양림과 깊은 숲에 익숙해진 우리가족에게는 그냥저냥 시들합니다. 휴양림 여행을 하는 4년동안 너무 좋은 것만 많이 봤나 봅니다. 고등학생 때만해도 수몰되기 전이라 친구들과 여기 와서 아름다운 풍경을 봤던 기억이 있는데 사람의 눈이 간사해진 모양입니다. 솟대공원 앞에 있는 호수 주변에 핀 들국화, 그리고 커다란 무당거미(암컷), 호수에 부서지는 햇살을 구경하다가 옥순봉휴게소로 내려왔습니다. 능강솟대문화공원은 봄에 꽃이 필 때 오면 아주 아름다울 것 같습니다. 아이들 심심하지 않게 산에 만들어 놓은 꽃밭에서 꽃구경을 많이 할 수 있겠더군요. 옥순봉 휴게소 전망대에 올라 장회나루에서 충주호를 오르락내리락 하는 갖가지 유람선을 찍어 봅니다. 유람선 탄 사람들이 무척 많아서 배가 가라앉을 것 같더군요. 옥순봉 올라가려다가 그냥 지나쳐왔습니다. 장회나루에는 사람과 차가 너무 많아서 국도까지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단체로 다니는 사람이 많은지 관광버스가 좁은 길을 이리저리 돌리느라 다른 차들이 한참 기다려줘야 했습니다. 네비게이션에 국립황정산자연휴양림과 황정산휴양림이 있는 것을 모르고 엉뚱한 길에 가서 좀 헤매다가 급한 마음에 사인암도 팽개치고 5시가 거의 다 돼서 휴양림에 들어갔습니다. 알게 모르게 휴양림을 다니는 동안 우리가족 눈이 많이 업그레이드 됐나 봅니다. 왠만한 볼거리에는 반응이 시시해졌습니다.

역시나 은주네는 먼저 도착했더군요. 가까운데 사는 동생은 이곳저곳 구경하고 우리보다 먼저 휴양림에 도착해 있었습니다. 재성이네 가족은 소백산 올라갔다하고 유진이네와 배달은석님 부부도 도착했습니다. 저녁준비를 위해 은주아빠와 불을 피우고 고기를 굽고 세상 어떤 진수성찬도 부럽지 않은 즐거운 식사를 했습니다. 사진을 찍어 두려고 했습니다만 은주아빠님 차에 제 차를 너무 붙여 대 놓는 바람에 삼각대 꺼내기가 귀찮아서 그만두기로 하고 밥없이 숯불구이만 먹었습니다. 밥이 집 밖으로 나오질 않고 집안에서만 놀고 있습니다. 술병 숫자를 제한한다는 이야기에 다들 자제심을 발휘하셨는지 정말 적게 가져와서 많이 웃었습니다. 아버지는 동생네와 함께 영주로 떠나셨습니다. 그렇게 다들 웃으며 음식을 나누고 있을 때 심상치 않았던 하늘에서 비를 뿌립니다. 순식간에 후다닥 정리하고 대피했는데 준기맘 얘기 듣지 말고 타프 가져올 걸 하는 생각이 스칩니다. 구석에 작은 공간에서 비를 피해 이야기를 이어가는데 많은 시간이 지난줄 알았건만 저녁 8시 정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당면한 최대 관심사 경제문제, 내년에는 여행을 하기 어렵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를 하며 좀 우울해집니다. 어쩌면 여행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그나마 배부른 사람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비가 오락가락 하더니 9시가 넘어서는 제법 굵은 비가 쏟아집니다. 방으로 들어가 따뜻한 봉지커피를 마시며 살아가는 얘기가 화기애애하게 계속 이어지고, 소백산 위에 부는 엄청난 바람얘기를 들으며 내일은 뭘할까 고민합니다.

숲속의 집은 6인실, 7인실 이라고 하는데 새로 지은 건물답게 다락에도 난방을 해서 10명 정도는 널널하게 잘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연립동 1층 소나무 방으로 내려와 배달은석님 부부는 거실에서 자고 저희 가족은 방에서 잤는데 여기도 10명은 충분히 잘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른 휴양림에 비해 숙소가 넓고 개장한지 얼마되지 않아 휴양림의 불편함(?)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참 좋은 인상을 줄 것 같습니다. 잠을 청하고 있는데 위층에서 축구를 하는지 쿵쾅소리가 좀처럼 잦아들지 않습니다. 대충 뭉개고 자려고 했는데 1시간 쯤 지난 듯 한데도 여전합니다. 아이들 체력이 좋은가 봅니다. 그냥 두면 안될 것 같아 2층으로 올라가 조용히 해 달라고 했는데 그 집여 여러가족이 왔나 봅니다. 아래층이 비어 있는 줄 알았다고 미안하다고 합니다. 나무집이라서 바로 아랫방이 아니라도 건물 전체가 울린다고 싫은 소리를 했습니다. 시스템 창호라서 그런지 밖에서는 바람이 엄청 부는데도 방 안은 고요해 졌습니다.

일요일 아침인가요? 눈이 자동으로 떨어지고 휴양림 특유의 절절 끓는 방에서 일어나 커튼을 걷으니 창 밖에 보이는 앞산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옷 대충 걸치고 은주네 숙소까지 올라가서 카메라를 꺼내와 사진을 찍습니다만 역시나 사진은 실물에 미치지 못합니다. 은주, 유진 두분 아빠님과 엮어서 아침산책길이라고 나섰는데 1.2km 정도 걸어가면 있다는 봉우리까지 가는 길이 땀 좀 나게 만듭니다. 3주만에 산을 걸었더니 역시나 부실한 오른쪽 무릎이 신호를 보냅니다. 빡세게 올라가서 좀 널널한 짧은 길로 다시 내려와 오늘 일정을 얘기하다가 장회나루에서 유람선 타기로 했습니다. 휴양림 숙박객에게 30% 할인권도 있고 해서...오후 4시 편은 여유가 있고 그 앞에 유람선은 다 매진이라고 합니다. 휴양림 안에서 오래 뭉개다가 옥순봉, 구담봉 구경하고 유람선 타러 가는 것으로 계획을 바꿨습니다. 숙소로 돌아오니 배달은석님은 잘 생긴 앞산이 보이는 발코니에서 책을 읽고 있습니다. 저런 모습이 휴양의 참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침을 먹기도 전에 배달은석님 부부는 다른 일정 때문에 서둘러 나가시고 재성이네 가족도 아침을 먹고 바로 길을 떠났습니다.

늦게 나가는 것으로 일정을 바꾼 관계로 아침 먹고 목공예하는 곳으로 갔습니다. 작은 악세사리를 만들더니 숲해설 한다고 하자 아이들이 모두 도망가 버렸습니다. 그동안 휴양림에서 들은 숲해설만 10번이 넘으니 시들할만 하지요. 목공예와 숲해설은 야영장 앞에서 시작했는데 야영장에는 리빙쉘을 가진 한 가족이 머무르고 있었습니다. 듣던 것 보다 경사가 심해서 야영장으로 쓰기에는 좀 아니다 싶은 곳입니다. 숲 해설사께서 어른들만 데리고 아주 짧지만 감칠맛이 좔좔 흐르고 입안에 착 감기는 인상적인 숲해설을 해 주셨는데 한 두어시간 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점심을 서둘러 해 먹었지만 1시가 넘었다. 재촉하는 사람도 없지만 청소하시는 분께 폐를 끼칠 것 같아 서두르는데 휴양림 관리사무소에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느긋하다. 은주아빠는 부지런히 아랫집 윗집 오르락 내리락하며 쓰레기를 모으고 부리나케 설거지 하는 나는 맘만 급하다. 아무래도 설거지용 앞치마가 있어야겠다. 짐을 싣고 막 출발하려는데 성영아빠님 전화가 왔다. 장회나루 근처에 있다고 해서 옥순봉 입구에서 만나기로 했다. 장회나루에는 차랑 사람이 바글바글하다. 옥순봉 근처에 도착하니 차들이 길 옆에 줄서있다. 빈 공간에 차를 대고 잠시 어슬렁 거리고 있는데 성영이네 가족이 도착했다. 제비봉을 올라갔다가 왔노라고 한다. 반가운 인사를 하고 늘 반대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옥순봉과 구담봉으로 가는 삼거리까지 갔다. 성영아빠 말로는 유람선 오늘 예약이 다 끝났다고 한다. 오전에 전화했을 때 예약을 해 놓았어야 했는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니 장회나루가 몸살을 앓고 있겠다. 구담봉이 그래도 덜 험하다고 해서 그쪽으로 갔는데 작은 봉우리 하나 넘어가니 내가 딱 싫어하는 구조다. 바윗길을 두손두발로 가야하는 길을 봉우리를 앞으로 2개 넘으면 저 건너편에 보이는 강변 봉우리가 구담봉이라고 한다. 당연히 포기했다. “가다가 아니가면 아니간만큼 이익이니라”라는 소싯적 경구로 나를 합리화하면서.

구담봉 가는 일행들이 바위를 기어 올라가는 모습을 보며 남아있는 사람들은 장회나루와 금수산을 배경으로 기념촬영하고 잠깐 노닥거리다가 다시 되돌아 왔다. 미끄러지면 바로 충주호로 다이빙하는 길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밟고 갔는지 바위가 계단처럼 패여 있고 손으로 잡았던 나무들은 껍질이 반질반질하다. 산은 결코 해발고도로 말하지 않는다. 유진맘이 유진아빠님을 호출했더니 지금 두손을 다 써야하니 전화 그만해야 한다고 그랬단다. 옥순봉이나 구담봉을 올라갈래 방태산을 올라갈래 라고 묻는다면 나는 당연히 방태산 길을 갈거다. 방태산 같은 산길이라면 2박3일을 가더라도 구담봉 기어 올라가는 길보다 좋다. 그러나 멀리서 보면 위태해 보이는 길이라도 가까이 가보면 이리저리 올라가는 길이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아이들에게 등산화를 사 줘야 하는데.....

아름다운 가을 햇살을 받으며 함께했던 사람들과 아쉬운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찾는다. 유진이네와 은주네는 옥순봉휴게소 쪽으로 가고 우리는 36번 국도를 따라 충주로 향했다. 좀 돌아가는 길이긴 하지만 맛있는 저녁을 먹으며 막힘없이 달리니 귀경길 피로가 훨씬 줄어든다. 3주만에 나선 휴양림 여행길에 두 녀석은 지치지도 않고 집에 도착하는 시간까지 재잘재잘 끝없이 놀이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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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8.10 국립자연휴양림에 첫발을 들여 놓은 날, 가족과 함께 전국에 있는 국립자연휴양림을 일주하리라 결심했습니다. 사실 결혼 전에 숙박을 한 여행이라고는 수학여행을 간 것 밖에 없습니다. 결혼 후에 아내가 여름휴가 계획을 내보라는 말에 무지 당황했었습니다. 낯선 세상에 대한 호기심도 별로 없었고...

처음에는 예약도 쉬웠고 숙박비도 쌌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예약은 힘들어지고 가격도 어느 순간 곱절 가까이 올라버렸습니다. 2006년 과천에 파견 나가있는 동안 정신적인 여유가 생긴데다 다유네를 통해 전염된 휴양림 바이러스는 날이 갈수록 가속이 붙어 1년에 두어번 가던 휴양림 여행을 10번이나 가게 되었고 작년에는 19번이나 갔습니다. 평생 걸릴 것 같던 국립휴양림 일주가 별로 안멀어 보이더라구요. 올해는 1월1일에 출근해서 야근을 했는데 휴양림 일주를 올해 안에 마치지 않으면 정말 힘들겠다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이럭저럭 제주도 휴양림 2군데를 포함해 36군데 국립자연휴양림 가족여행을 무사히 마친 것에 대해 감사를 드립니다. 신에게, 함께 한 사람들에게, 여행하면서 만난 모든 사람들에게....

Posted by 연우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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