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7.13(화)

 

아침에 일어나 보니 널어놓은 옷이 덜 말랐다.
밤새 시원한 에어컨이 돌아갔는데 온도가 낮아 증발이 제대로 되지 않은 모양이다.
호텔 식당은 4~50명이 먹을 수 있는 규모로 뷔페식으로 차려놓은 아침은 만족할만했다.
들어오는 손님마다 자리를 안내해해준다.
음식은 가짓수는 많지 않았지만 소박한 맛이 깔끔하다.
이 식당에도 깨진 사기그릇을 자주 보이는데 모두들 아무렇지 않게 쓴다.
아마도 도자기가 귀했던 시절부터 내려오던 풍습인 모양이다.

 

아침을 먹고 빨랫줄을 걷었다.
아무래도 룸 서비스 하는 사람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해서 약간 덜 마른 옷은 옷장에 따로 걸었다.
키를 맡기러 프런트에 갔더니 여권을 내주면서 이제 여권은 맡길 필요가 없다고 한다.
여권으로 뭔가 확인할게 있었던 것일까?
오늘 예약해 놓은 바티칸 투어에 늦지 않으려고 떼르미니 역까지 달음박질했다.
평일이라 그런지 안그래도 활기 넘치는 로마는 더 복잡하다.
투어팀은 8시까지 떼르미니 역에 모여야 하는데 5분 늦었다.
다행히 우리보다 늦은 사람이 있어서 아직 기다리는 중.

 

소매치기 조심하라는 주의사항을 듣고 모두 바티칸 미술관 개장시간에 맞춰 지하철로 이동했다.
출근시간이라 사람도 많다. 로마는 고대 유적 때문에 지하철을 만들 수가 없어서 외곽을 도는 2개 노선이 전부다.
가이드 말로는 요즘 사하라의 열풍이 유럽으로 밀려 올라와 당분간 이상고온이 계속될 거라고 한다.
이번 주 중에 41도까지 올라간다는 예보.

이미 파리에서부터 건조한 공기 때문에 목감기가 걸렸는데 점점 더 악화되고 있어 살짝 걱정이다.
이런 일을 대비해 아스피린을 사 놓으라고 출국전에 아내에게 얘기했었는데 이제와서 보니 어이없게도 감기약이다.
약사가 감기약은 이 정도면 된다고 하더라나. 어이없는 약사.
잔소리였지만 아스피린에 대해 주절주절 늘어놓을 수 밖에 없었다.
아스피린은 서양사람이 말하는 신이 내린 3대 명약 가운데 하나로 버드나무 생약성분을 이용해 만든 약인데
우리나라 인삼처럼 그 효능이 세월이 갈수록 점점 더 많이 발견되고 있고
유럽 날씨에는 우리나라 감기약이 아니라 아스피린이 더 필요하다는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투어 팀은 우리를 빼고는 모두 대학생이거나 젊은 직장인들.
뙤약볕에 기다리는 동안 건너편 올드브리지 젤라또 가게가 지금은 휴가가 아니라
오늘은 문을 열거라는 반가운 말을 가이드가 해 준다.

바티칸 투어는 이번이 두 번째였지만 역시나 훌륭하다.
미술사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가이드님은 십년이 넘는 경력을 갖고 있다는데 설명이 머릿속에 쏙쏙 들어온다.
인증샷 찍을 시간은 충분히 있으니 설명에 충실하게 따라와 달라는 말에 카메라는 배낭에 넣어두고 집중했다.
두 번째 들어서 그런지 바티칸의 전체 구조가 머릿속에 들어오고, 방의 배치가 전체적으로 그려졌다.
개인의 신앙은 존중하지만 종교조직에 대해서는 전혀 공감을 하지 않기 때문에
학교에서 훌륭한 미술작품으로 배운 종교화들이 내게는 그닥 흥미가 없다.

 

로마에 왔으니 로마숫자 읽는 법을 배워보자며 가이드께서 숫자읽는 법을 가르쳐 준다.
먼저, 로마 숫자는 5, 10, 50, 100, 500, 1,000 같은 중심 단위숫자를 기준으로
왼쪽에 있는 작은 숫자는 중심숫자에서 그만큼 빼야하고
오른쪽 작은 숫자는 그만큼 더해서 읽어야 한단다.
예를들면 먼저 기본 숫자를 알고 있어야 한다.

 

M = 1,000
D = 500
C = 100
L = 50
X = 10
V = 5
I = 1

 

우리가 알고 있는 MCM은 엠씨엠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M = 1,000 / C = 100 / M = 1,000 이런 구조인데
제일 앞에 있는 M은 그냥 1,000이고 끝에 있는 M에서 왼쪽에 있는 작은 수 C를 빼줘야 하므로
1,000-100 = 900. 즉, 1900이 된다는 사실.
또 숫자와 문자를 구분하기 위해 숫자 밑에는 언더바(Under_Bar)로 표시를 해 놓는다고 한다.

 

먼저 피우스 11세 교황이 기증해 시작된 회화실(PINACOTECA)로 들어가 중세부터 시대별로 종교화를 감상했다.
문자를 모르던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던 시절에 사람들에게 종교를 설명하기 위해 만든 수많은 작품들.
황금으로 장식된 수많은 그림을 문자를 모르던 사람들이 봤으면
예수가 사람으로서 사람의 친구로 왔다는 사실은 모른 채 우러러 경배해야할 대상으로 인식했을 것은 뻔한 일.
권력을 가진 주교, 대주교, 교황들은 그것을 악용해 세속적 재산과 권력을 누리며 귀족과 연합해 천년세월이 넘는 기간을 누려왔다.
하긴 카톨릭을 공인해 준 콘스탄티누스 황제도 
자기가 권력을 잡는데 기여해 준 카톨릭 세력을 이용해 먹은 대신
예수를 황제의 권력으로 신으로 공인해 줬으니 훌륭한 거래를 한 셈이다.
거래 당사자는 죽을 때까지 결코 예수를 신으로 믿지 않았지만...

 

회화실을 보고 나니 어느덧 점심시간.
구내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오전에 둘러본 회화실을 하나씩 다시 둘러보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오후에 다시 모인 사람들은 솔방울 정원에서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에 대해 설명을 듣고 그리스 로마 조각실로 자리를 옮겼다.

중학교 때 처음 유럽 미술에 대한 지식을 접했을 때 피에타 같은 종교적 미술작품들이 모두 독창적인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견문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그게 모두 이집트의 신전, 신화, 메소포타미아의 신화, 신전, 미술작품을 모방했거나 모티브를 따온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는 수많은 당대와 후대 작가들이 모방했는데 피에타의 모티브는 이집트의 호루스 신과 어머니 조각상에서 나온 것이다.
이탈리아가 낳은 르네상스 3대 거장 베를리니의 발다퀴노는 오리엔트 문명과 그리스 문명의 자손이며,
수많은 도시의 두오모, 그리고 수많은 도시의 뮌스터 등도 수천년 동안 내려온 문명의 어머니로부터 전래된 것이라는 사실이다.

거장 미켈란젤로가 그리스 조각상 토르소와 라오콘 군상을 보며 더 이상 손댈 것이 없는 완벽한 인체미라고 평가하며
그걸 완벽하게 재현해 내는 것에 일생을 걸었다는 사실도 놀랍긴 마찬가지다.
이런 사실을 알고나니 무조건적 외경심은 사라지고 좀 더 객관적으로 사물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이 문명의 원류인 오리엔트 지역을 여행해보는 것이 꼭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오리엔트 문명은 동쪽으로는 석굴암까지 서쪽으로는 런던까지 전방위적으로 영향을 준 위대한 문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바티칸 투어의 마지막 코스는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
고집과 아집 그리고 집념과 끈기로 똘똘뭉친 인간 미켈란젤로의 역정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보수 비용을 부담할 수 없어 판권을 독점하는 조건으로 NHK에 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만약 일본이 “너희들보다 우리가 이 작품을 더 잘 관리할 수 있으니 이걸 뜯어서 일본에 가서 박물관 하나 만들어 전시해 주마” 라고 했다면
이탈리아나 유럽인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자기들이 약탈한 물건을 본국보다 더 잘 보전할 수 있고 인류공동의 문화유산이니 돌려줄 수 없다고 하는 논리를 그대로 자기자신에게도 적용할 수 있을까?

 

겨울철 보다 몇배나 많은 사람들이 시스티나 성당 바닥과 의자에 앉아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바라본다.
이것으로 바티칸 박물관 투어는 끝났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에게 시스티나 성당 한 켠에 있는 장소를 설명해 주었다.
콘끌라베 결과를 알려주는 장소. 한국에 돌아와 ‘천사와 악마’를 보며 너무 신기해했던 그 장소.




셀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찾아 온다는 바티칸 박물관을 보기 위해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립니다.
엄청나게 더운 날씨는 사진의 노출을 맞추는데도 애를 먹을 정도..



교황 피우스 11세가 개인 소장물을 기증해 만들기 시작했다는 바티칸 회화실 입구



중세에는 달걀 노른자와 금가루를 이용해 이렇게 도식적인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이걸 접어서 다녔다고 합니다. 종교 전파를 위해 시청각 자재로 사용했답니다.
말이 통하지 않고 글도 모르는 이민족에게 그림이나 영화만큼 공감하기 쉬운 수단이 없죠.



역시 중세의 지극히 도식적인 종교화
이런 그림을 바니스타화라고 한답니다.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서서 라파엘로 같은 화가들이 등장해 중세와 다른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답니다.
라파엘로는 남의 그림을 모방하는데 천재였다고 하는데 "예수의 변모"라는 작품으로 거장으로 인정받았습니다.



다빈치의 고향 이탈리아, 그곳 최대의 미술관에 다빈치의 회화 작품이 없다는게 약점이라고 한답니다.
유일한 다빈치의 회화작품. 성 제롬.

구두수선을 하던 사람이 이 그림의 얼굴부분만 잘라서 사용하다가 미술전문가에게 발견되어 원형전체를
찾아냈다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따라 다닙니다. 이 각도에서 아래에서 위로 쳐다보면 얼굴부분에 정교한 칼자국이
보이는데 복원전문가의 솜씨에 감탄을 하게 됩니다.

참고로 기독교 종교화는 등장인물의 상징이 있는데

1. 긴 머리에 수염이 있는 남자 : 예수
2. 열쇠를 들고 있거나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사람 : 성 베드로. 예수가 그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었다고
 하고, 스승과 같은 방법으로 처형당하는 것이 제자로서 온당치 않다고 거꾸로 매달려 죽은 것을 상징합니다.

3. 붉은망토 : 사도 바울(로마 시민권자였기 때문에 붉은 망토를 입고 있었다고 합니다)
4. 빨간모자 도는 사자와 함께 등장하는 사람 : 성 제롬. 사자의 목에 걸린 가시를 빼내줘서 사자를 살려줬기 때문에
사자가 평생 성 제롬을 따라 다니며 지켰다고 합니다.

5. 손바닥과 발등에 못자국이 있는 성자 : 성 프란치스코(아씨씨의 성인)
6. 가죽옷을 입은 사람 : 세례요한
등등입니다.



중세의 종교화를 그리는 방법을 보여주는 전시물
왼쪽 연필 소묘는 탁월한 기술을 가진 스승들이 그린 밑그림이고
오른쪽은 스승이 그린 밑그림에 제자들이 색을 입힌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아는 중세나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들 작품은 이런 식으로 제작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당연히 밑그림의 가치가 훨씬 높다고 합니다.
공방에서 대량생산하는 느낌이 듭니다.



르네상스 시대에 비로소 실제 모델을 두고 그림을 그린 흔적이라고 합니다.
거꾸로 매달려 있을 때 나나타는 신체 변화를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고 사람들의 근육 움직임
같은 것이 실제와 같이 나타납니다.



바로크 시대의 그림을 전시하고 있는 방입니다.
화살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표정은 전혀 고통이 없는 "허무맹랑한" 그림들의 시대라고도 합니다.



유태인의 설화에 나오는 유디트 이야기를 그린 작품입니다.
화가가 여성인데 이름을 메모를 해 놓지 않았네요.
남자화가들은 이 설화를 그릴 때 유디트를 미모의 가녀린 여성으로 묘사한데 반해 이 작품은 강인한 여성상을 표출하고 있습니다.


솔방울 정원이라는 이름은 저 멀리 보이는 솔방울 청동상 때문에 붙었습니다.
정말 강렬하고 뜨거운 햇살이었습니다. 여기서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에 대해 설명을 듣고 그리스-로마 조각실로 들어갑니다.


아폴론이 활을 쏘고 있는 모습을 조각한 것인데 완벽한 인체의 균형미를 자랑합니다.



미켈란젤로가 궁극의 작품으로 경탄했다는 라오콘 군상.
정말 그리스 조각가들의 인체묘사는 더이상 완벽할 수 없는 경지에 올라가 있습니다.



미켈란젤로가 "완벽한 인체"라고 감탄했다는 토르소(몸통)
미켈란젤로는 이 토르소를 최후의 심판에서 예수의 몸통을 그릴때 모델로 삼았다고 합니다.
인체에 대한 묘사는 이미 이 시대에 완성이 되어 버렸다고 할 정도랍니다.



로마 황제의 청동욕조.


그 욕조 바닥에는 이런 대리석 모자이크가 있습니다.
로마시대에 이미 입체감이 완벽한 모자이크라니...게대가 수백년을 밟아서 닳아도 그 모습 그대로 보이도록 대리석을 쐐기모양으로
만들어 정교하게 바닥에 박아넣어서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신의 모습 : 주름이 없고 콧등이 휘지 않은 것은 신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헤라클레스.



인간의 모습 : 주름이 있고, 콧등이 휘었습니다.



사람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그림의 모습과 등장인물의 눈동자가 따라오는 특이한 양탄자.
예수가 무덤에서 부활했다는 모습



지도의 방. 교황의 집무실에서 복도 끝까지 교황의 지배아래 있던 이탈리아 전국의 모습과 주요 섬들의 모습을 지도로 만든 회랑입니다.



그 지도의 방 천정에는 이렇게 빈틈없는 그림들이 가득합니다.



아테네 학당.


[겨울에 본 바티칸 박물관과 성베드로 성당]

http://foresttour.tistory.com/92
http://foresttour.tistory.com/93
http://foresttour.tistory.com/94

Posted by 연우아빠.
2007.12.24


바티칸, 지도의 방.
교황의 집무실에서 복도를 따라 이탈리아 반도와 부속 섬들의 지도가 벽을 따라 배치되어 있다.



시칠리아 섬



이탈리아 반도.
현재 모습과 비슷하게 그려 놓은 것으로 보아 그들의 측량 수준은 상당했던 듯



아테네 학당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토론을 하며 걸어가는 그림



화면 왼쪽에 보이는 여자 모습은 그림을 그린 라파엘로의 애인이라고 하며 계단 가운데에 앉아있는 노인은 미켈란젤로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도착한 방. 마침내 시스티나 성당에 도착했다.
천장에는 천지창조가 그려져 있다. 평면에 그린 그림이 마치 조각을 한 것 처럼 입체적으로 보인다.
저 그림을 완성했을 당시 교황 역시 믿을 수 없어서 추기경을 시켜 직접 비계 위로 올라가 만져 보도록 했다고 한다.

이 그림은 수백년 동안 사람들의 입김과 그을음, 먼지 때문에 원래 색을 잃어버려 복원작업을 하게 되었는데
비용조달을 위해 스폰서를 구했다고 한다. 복원 비용을 댄 것은 일본의 NHK.
NHK는 복원 비용을 대는 대신 인쇄 판권을 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한다.
웃기는 것은 서양 사람들이 후래쉬를 터트리며 찍는 사진은 가만 놔두면서 동양인이 찍으려고 하면 득달같이 달려와 제지한다는 점.
후래쉬를 터트리지 않고 한장 찍었다.


그리고 조용히 앉아서 정면에 있는 최후의 심판을 찍었다.
이 그림을 보며 미사에 참여했던 보통사람들은 실제로 천국과 지옥이 있을 것 같은 환상에 사로잡혔으리라.



한 인간이 그렸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대단한 그림
나갈 시간이 되었다고 밀어내지 않았다면 그 자리에서 한참동안 천장을 쳐다보며 저 그림을 봤을 것이다.
이곳은 이제 그림 보호를 위해 미사를 드리지는 않고 있으며, 단지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 장소로만 사용한다고 한다.
콘클라베 결과를 알려주는 난로가 방 한 켠에 자리잡고 있다.



시스티나 성당에서 베드로 성당 본당으로 내려가는 길은 오후 4시에 잠근다고 했는데 예고한 시간보다 더 빨리 잠궈버렸다.
이로서 베드로 성당 안에 들어가 자정 미사에 참례하는 것은 불가.
조은영 사장은 베드로 성당을 지을 당시의 모습을 담은 그림을 보며 계속 설명을 해 주었다.



거장 미켈란젤로도 베를니니도 없었지만 우리나라는 이탈리아 못지 않은 경제강국이 되었다.
이제 그런 거장이 나타난다면 유럽 어느나라에도 부럽지 않은 대단한 나라가 될 것이다고 조은영 사장이 열렬하게 설명을 한다.
우리의 화강암 조각보다 유럽의 대리석 조각이 섬세해 보이는 것은 화강암은 단단하고 대리석은 무르기 때문에 세밀성에서 차이가 난다고 한다.
미술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나 기초지식 없이 무작정 감탄하거나 한 문명이 다른 문명보다 우월하다거나 열등하다거나 하는 평가는 웃기는 일이라고 한다. 문명에는 우열이 없으며 자연환경과 지리적 조건, 인문환경이 어떻게 영향을 미쳤느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것일 뿐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본 어떤 가이드 보다 훌륭한 문화가이드 였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아이들을 데리고 로마에 오게 된다면 헬로우유럽의 문화 가이드를 한번 체험하게 해 주고 싶다.



베드로 광장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들어차 있었고 사람들이 계속 밀려 들어오고 있었다.
본당에 8만명, 광장에 20만명...도합 30만명 정도가 자정 미사에 참례한다고 한다.
열렬한 신자도 아니어서 추위를 무릅써가면서 화면으로 중계되는 미사에 참례할 필요성은 못느꼈다.

헬로우 유럽 가이드를 따라 한번씩은 구경을 해 본 로마 시내 투어를 따라 나왔다.


영화 로마의 휴일로 유명해 진 스페인 광장. 근처에 스페인 대사관이 있어서 스페인 광장이라 부른다고 한다.

광장이라 부르기에 좁은 터에는 베르니니의 아버지가 설계한 나파선 분수가 있다.
16세기에 로마가 홍수로 잠겼을 때 여기에 떠 내려온 난파선을 모티브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정면에 보이는 거리는 콘도띠 거리로 세계적인 유명세를 타고 있는 <명품> 매장이 줄지어 있다.
저 가게에서 물건을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중동이나 동아시아 사람들이다.



어릴 때 보았던 영화 <로마의 휴일>
오드리 헵번과 그레고리 펙이 나왔던 이 영화에서 머리를 짧게 자른 오드리 헵번이 이 계단에 앉아
젤라또를 먹었었지. 지금은 그 젤라또 가게도 사라지고 오드리 헵번이 머리를 자른 미장원도 사라졌다고 한다.



로마에 온 사람들은 꼭 들린다는 트레비 분수
로마시민에게 맑은 물을 공급하던 공공샘물이었는데 지금은 로마를 다시 찾고 싶은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분수가 되었다.




왼쪽 어깨 너머로 동전을 한번 던지면 로마를 다시 찾아오게 되고
두번을 던지면 사랑을 이룰수 있고
세번을 던지면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게 된다는 전설(?)이 있는 분수
동전을 하나 던지며 다시 로마에 오기를 소원해 본다.



로마제국 초대황제 옥타비아누스의 절친이자 전쟁 참모였던 아그리파가 세운 판테온.
로마제국의 30만 신들을 위해 세운 신전으로 로마 건축의 정수를 보여주는 건물이다.



2천년 전에 지은 건물은 1세기 경에 불이타서 일부 훼손되었고, 1,800여년 전에 보수를 한 뒤에 지금까지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건물이다.



동물 외에는 변변한 기계 동력도 없던 시대에 이런 거대한 건축물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그저 감탄만 나온다.



아무리 돌이라고 하지만 지진도 있었을텐데 2천년 가까운 세월을 어떻게 견뎠을까?



동물의 힘을 제외하고는 변변한 동력도 없던 시대에 이렇게 거대한 돌덩어리들을 어떻게 이렇게 높게 올릴 수 있었는지 그저 신기할 따름...



신전 기둥과 주춧돌



맞은 편에서 본 신전 건물. 여기에도 오벨리스크가 있다.

밤 9시가 되자 모든 교통이 끊겼다. 천천히 로마시내를 동서로 가로질러 숙소까지 걸었다.
크리스트교 국가들의 최대 명절인데 정말 조용하다.
유럽 사람들은 이날 가족들과 함께 조용하게 집안에서 지낸다고 한다.

숙소에 도착하자 크리스마스 이브를 위해 민박집 아주머니께서 맥주와 과자를 준비해 주었다.
세상이 넓고도 좁다고 하더니 숙소로 들어오는 도중에 낯익은 뒷모습을 보았다.

몇일 전 스위스 인터라켄 유스호스텔에서 묵었던 최*남 군이 영국에 유학 중인 친구를 만나 이 숙소로 들어온 것이다.
그 많고 많은 로마 숙소 가운데 정말이지 우연히 같은 곳으로 들어 오다니...

최 군의 친구는 중국, 스페인에서 공부를 했고 현재 영국에서 유학 중이라고 한다.
나는 궁금해서 외국어를 잘 하는 비결을 물어 보았다.

그 친구의 대답은 "성격"일 거라고 한다.
하루 종일 한 마디도 안하는 과묵한 사람은 자기 나라 말을 할 기회도 잘 없겠지만
늘 사람들에게 말을 잘 거는 성격이라면 외국어는 금방 늘지 않겠냐고 한다.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할 수 밖에....

최군은 밀라노에서 평생 소원이던 세리에A 경기인 인터밀란과 AS로마 축구경기를 봤다고 한다.
암표 가격이 무려 120€였다고 한다. 
경기 시작하면 가격 내려가겠지 생각하며 안사고 버텼더니
한참 있다가 암표상이 다가와서 하는 얘기가 여기 암표상은 모두 마피아가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경기가 시작돼도 는데 가격 내려가지 않는다고 하더라나.

학생이라 돈이 없다고 했더니 "외국 사람이 왜 이 경기를 보려고 하냐?"고 물어보더란다.
인터밀란 경기를 보는게 평생 소원이라서 먼 한국에서 왔다고 했더니
얼마면 사겠냐고 해서 40€ 밖에 없다고 하자 40€에 표를 주더란다. 
덕분에 현장에서 멋진 경기를 봤다고..젊은 사람이 부럽다. ^^

배 팀장이 바람을 잡는 바람에 같이 술을 마시던 신혼여행 중인 윤** 부부의 손금을 봐주고
젊은이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느새 새벽 3시를 넘겼다.


Posted by 연우아빠.
2007.12.24


엄청나게 많은 그림들을 구경하고 나서 바티칸 박물관 정원으로 나왔습니다.
거대한 솔방울이 있다고 해서 이름도 솔방울 정원입니다.



겨울이지만 구름이 끼어서 그런지 이날은 참 따뜻했습니다.



파괴되 가는 지구를 형상화 한 것인가요?
지구를 닮은 구형 내부에 톱니바퀴가 조금씩 움직입니다.



가까이에서 본 모습입니다. 



해박한 미술지식으로 열정적인 가이드를 해 주신 조은영 대표님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이 있는 시스티나 성당 내부에서는 말을 하면 안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모든 가이드들이 이 정원의 안내판에서 상세한 설명을 한 다음에 시스티나 성당으로 들어갑니다.



가로로 두번째 열 제일 왼쪽 칸부터 작업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미켈란젤로는 회화 작업을 해 본 일이 없는 사람이라 자기 제자를 데리고 같이 작업을 했는데
제자의 회화기법을 모두 익히는 동안 두칸을 작업을 했다고 합니다.
그 다음부터는 모두 내 보내고 혼자서 작업했다고 합니다.

작업하는 동안 성당 바닥에서 올려다 볼 사람들의 시각과 천장 바로 아래에 붙어서 작업하는 사람들의 시각차이를 관찰한 뒤에
등장인물을 대폭 줄였는데 아무리 크게 그려놔도 등장인물이 많으면 바닥에서 보는 사람은 천장에 그려놓은 인물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왼쪽 두칸을 제외한 혼자서 작업한 칸은 등장인물을 고작 2~3명으로 줄였습니다.



시스티나 성당 벽면에는 당대의 거장들을 한꺼번에 불러모아 그린 대작들이 있습니다.
워낙 천지창조와 최후의심판이 유명해서 이들 거장이 그린 그림은 요즘은 관심을 끌지 못하는데
그릴 당시에는 거장들이 서로 더 나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했다고 하며
이 그림이 완성된 다음에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을 그린 관계로 미켈란젤로가 받은 스트레스는
정말 엄청났을거라고 합니다.



최후의 심판에 등장하는 예수의 몸은 바로 로마시내에서 발굴한 토르소를 적용한 그림이라고 합니다.
미켈란젤로는 라오콘 군상, 토르소 같은 그리스 시대의 대작에 충격을 받아 자기 그림의 인체 모델에
적극적으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바이블의 중심 스토리와 함께 성자들의 이야기도 그려 넣었습니다.



프로테스탄트의 저항운동으로 타격을 받은 카톨릭 측에서 사람들의 신앙심을 다시 고취하기 위해
최후의 심판을 통해 천국과 지옥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려는 의도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림을 처음 공개했을 때 신성모독이라는 원리주의자들의 비판을 받아 그림을 고치는
모욕을 당했습니다.

 

차가운 겨울, 초록색 잔디...사진으로 보면 꼭 가을 같습니다.
날씨가 따뜻해서 정원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제 그리스 로마시대 조각작품들을 보러 들어갑니다.
성이 시내보다 상당히 높은 곳에 있습니다.



메두사의 머리를 벤 아폴론, 이건 아래에 있는 조각상을 흉내내려고 만든 것이라고 하는데
작품의 완성도가 아래 조각상보다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합니다.

 

활을 들고 있는 아폴론의 모습.
조각상의 무게 중심을 잡기 위해 왼쪽에 기둥을 세워 지탱하고 있는데
가장 완벽한 인체 비례를 갖고 있는 작품이라고 합니다.



트로이전쟁 마지막에 등장하는 제사장 라오콘과 그 아들들의 죽음을 묘사한 라오콘 군상.
바티칸 박물관 입장권에 사용하고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뱀에 물린 자리가 실제처럼 부품풀어 올랐고 독이 온몸으로 퍼지는 모습과 근육의 뒤틀림이 실제처럼 생생합니다.
이 작품을 발굴할 때 참여한 미켈란젤로는 아주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역시 미켈란젤로가 발굴에 참여했던 작품 토르소.
완벽한 인체표현에 충격을 받은 미켈란젤로는 나중에 최후의 심판에 등장하는 예수의 몸을 이 토르소를 바탕으로 그렸다고 합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 때문에 돔 내부가 빛이 납니다.
고대 로마시대부터 아치를 이용한 거대한 돔은 로마 건축의 상징처럼 되었습니다.




로마 황제의 욕조. 지름이 4m가 넘습니다.



로마 황제의 조각



바닥 모자이크 장식



파라오의 관과 비슷하게 생긴 로마 황제의 석관



바닥을 장식하고 있는 대리석 모자이크.



천장, 바닥, 벽...
어디를 둘러봐도 작은 빈틈하나 없이 빽빽한 장식과 그림, 그리고 미술 작품들이 있습니다.



오리엔트 지역의 여신 조각상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를 조각한 것인데 자세한 내용이 생각이 안남




교황의 문장



교황 레오 13세의 소장품으로 만든 방



사람의 방향에 따라 그림속 사람의 시선이 움직이는 양탄자.



로마 황제
Posted by 연우아빠.
2007.12.24 바티칸



미켈란젤로가 디자인한 제복을 입고 있는 교황의 스위스 근위병.
군인이라 그런지 얘들은 반응이 상당히 까칠하다.



삐에뜨로 광장 가운데에 오벨리스크가 있고 남북 축선을 따라 원주열 건물과 오벨리스크의 1/2 지점에 분수가 있다.
분수 근처에는 이렇게 생긴 장소가 있는데 여기에서 원주열 건물을 바라보면 4열 기둥이 1열로 보이는 지점이다.



저 원안에 서면 이렇게 4열 기둥이 일렬로 보인다.
이 광장은 하늘에서 보면 타원으로 생겼는데 옛날 열쇠 모양으로 생겼다.
베드로가 예수에게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의 열쇠를 받았다는 전설을 상징하는 것이라고도 한다.

이 광장에서 다치거나 쓰러지는 사람이 있으면 바티칸 의사들이 득달같이 달려와서 퇴원할 때까지 무료로 치료해 준다고 한다.
이 광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신의 뜻"이라서 그렇다나. 어째 무슬림들이 "인샬라"라고 하는 것과 같은 풍습이 아닌가?

기둥 위에 보이는 인물상은 사도들이나 성자들의 석상이라고 한다.


크리스마스 이브 자정 미사를 준비하기 위해 광장에 있는 사람들이 분주한데 이 바리케이트는 아마도 자정미사 때문에 쳐 놓은 것 같다.
광장 한가운데 크리스마스 트리는 진짜 살아있는 나무다.



이제 11시가 다 되서 바티칸 박물관에 줄서러 나간다.
알렉산더 문을 나와 성벽을 끼고 왼쪽으로 돌아서 올라간다.
이 건물 왼쪽면 오른쪽에서 2번째 창문이 교황의 집무실이라고 하는데
크리스마스 이브 자정미사 때 교황은 저 문을 열고 수십개 언어로 크리스마스 축하인사를 한다.



바티칸 박물관을 가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섰다.
왼쪽 벽은 로마와 바디칸을 나누는 국경선.



우리 가이드님. 조은영 사장님의 남동생이라고 한다.
줄서서 기다리는 동안 이것저것 많은 이야기를 해 주었다.
유로화로 통합된 이후에 이탈리아는 정말 살기 힘들어졌다고 한다.
소득수준은 독일에 미치지 못하는데 물가만 독일수준으로 올라갔다고...
그래서 2008년 1월에도 대규모 시위가 있을 예정이란다.



바티칸 성은 전체적으로 배처럼 생겼다고 한다.
노아의 방주처럼 세상을 구하는 배.



교황의 문장이 보입니다. 박물관 입구가 멀지 않습니다.



벽이 워낙 높아서 외부에서 저기로 쳐들어 가는 것은 아주 힘들것 같다.



로마에서 맛있기로 세손가락 안에 드는 올드 브리지 젤라또 가게.
크리스마스 시즌에 무려 한달간 휴가를 갔다. 그래서 로마에 머무는 동안 그 맛있다는 젤라또를 못먹어봤다.
다음에 로마에 올 기회가 있으면 꼭 먹어보리라.



로마에는 교통체증을 막기위해 자동차 진입이나 등록을 규제하고 있어서 이런 작은 오토바이나 스쿠터가 많다고 합니다.
로마에 등록되지 않은 차가 로마시내에 들어오면 들어올 때 75유로, 나갈 때 75유로의 벌금을 부과하고 주차 허가증이 없으면
엄청난 비용을 부과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중소형차 정도 되면 차고지 증명을 반드시 제출해야 차량 등록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모닝이나 스마트 같은 경차가 잘 팔린다고 합니다. 검소한 것이 아니라 제도가 그렇게 사람의 행동을 이끌어 가는 거지요.



바디칸 박물관 입구 방향 표시



성벽 모서리에 있는 교황청 문장



드디어 박물관 입구입니다. 10시에 줄을 섰는데 여기까지 오는데 12시가 넘었다.
연간 1억명 이상이 이 박물관을 관람한다고 한다.
입장료는 1인당 13유로...1억명이면 도대체 얼마냐?



먼저 바티칸 박물관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투어를 시작한다.
점심을 먹고 모이기 전까지 짧은 시간이지만 정원에 나가 보았다.

바디칸은 독립국가이기 때문에 독자적인 화폐발행, 방송국이 따로 있다고 합니다.
방송국 송신탑이 보입니다.



성 베드로 성당의 돔이 보입니다.



마당에서 보면 아까 들어올 때 봤던 건물의 지붕들이 보이네요.



피에타. 진품은 성 베드로 성당 예배당 방탄유리 안에 모셔 놓았습니다.
모조품이어서 이렇게 가까이 볼 수 있다는...



중세 종교화. 금을 사용해서 그림을 그렸다고 하고 접어서 다녔답니다.
영어로는 아이콘(Icon), 라틴어로는 이콘이라 읽는다.



중세 종교화의 특징은 이렇게 금색이 넓게 자리잡고 있다고 합니다.
글자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설명과 함께 눈으로 보여주는 그림은 포교 효과가 매우 높았다고...



이콘은 대개 3단 모양으로 금색으로 화려하게 장식하였으며, 정형적인 모습을 띠고 있다.
제일 왼쪽에 거꾸로 매달린 사람은 베드로.



프레스코화



어두운 곳에서 후래쉬 없이 사진을 찍어서 많이 흔들렸다.
잘 찍은 사진은 인터넷에 널려 있지만 자기가 찍은 사진만이 자기 기억을 오래 간직할 수 있는 메모지라고 누가 그랬던가?



지오토 그림부터 종교화에 등장하는 사람의 표정에서 사실감이 나타난다고 한다.
즉 인간의 모습과 표정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한다는 것.



천상과 지상세계, 둘로 나뉘어 묘사하는 전형적인 르네상스 초기 종교화
화면을 천상의 세계와 지상의 세계로 1/2로 나눈 것이 구도상의 특징



라파엘로가 거장의 반열에 들 수 있었던 작품 "예수의 신비한 변모"
라파엘로는 남의 장점을 복사해서 그리는데 명수였는데 그 덕분에 교황의 주문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어서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합니다. 카피맨의 놀림에서 벗어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마침내
이 작품을 남겨 거장이라는 평가를 얻었다고 한다. 역시 1/2 구도.



가죽옷을 입고 등장하는 세례요한
세례 요한의 광야에서 석청을 먹으며 설교를 하는 사람으로 그의 상징은 짐승가죽 옷이라고 한다.
중세 종교화는 예수의 제자와 성인들에게 각자 상징성을 부여하고 있다.



바디칸 박물관의 유일한 다빈치의 작품. 성 제롬.
구두수선공이 수선용 받침대로 사용하던 것을 우연히 발견해 이 박물관에 들어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제롬은 다친 사자를 고쳐줘서 평생 사자가 그를 수호했다고 한다.
사자가 보호하는 이가 등장하는 그림은 성 제롬이다.
2마리 사자에게 뜯어 먹히며 웃고 있는 성자는 안티오키아의 성자 이냐시오.

 

인간에게 관심이 돌아섰던 르네상스 시대에 마침내 성인의 머리에 표시하던 후광이 사라졌다.
Posted by 연우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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