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0.11~12


장모님 생신이라 3년만에 통고산자연휴양림에 다녀왔습니다.

원래 9월 하순에 황정산휴양림 잡아 놓았다가, 아이들 시험 때문에 취소하고 대기 걸었다가

간신히 하나 주워서 다녀왔네요.


단풍철 차 막힐 것을 염려해 금요일 밤에 출발하기로 했는데

낮에 출발준비 해 놓으라고 여러번 문자질, 전화질을 했는데

달음박질 쳐서 평소 퇴근보다 30분 일찍 집에 도착했더니

뜨악하니 아무것도 준비해 놓지 않았더군요.


급하게 정리해 집을 나섰는데

다행히 차가 별로 없어서 처가까지 2시간 반정도 걸려서 도착했습니다.


토요일 아침, 일찍 출발할 생각을 안했습니다.

평소 동작을 보건데 혼자서 일찍 서둘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12시가 되어서야 가자고 하더군요.


점심은 울진 죽변항에서 하자고 합니다.

거리는 얼마 안되지만 구불구불한 불영계곡을 통과하기 때문에

2시간이 걸립니다.


가는 도중에 아름다운 산천에 쇠말뚝을 꽂듯이 자동차전용도로화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불영계곡을 자르고 왕피천을 파괴하는 방식으로 꼭 도로작업을 해야 하는건지

토건업자들이나 도로건설 계획을 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은게 있습니다.

아름다운 계곡을 살리고, 직선화할 구간만 터널을 뚫어서 길을 만들순 없는 걸까요?

스위스나 오스트리아, 독일 사람들은 하고 있는데 왜 우리나라는 안될까요?


핵발전소 때문에 앞으로 울진은 가급적 출입하지 않겠노라고 했지만

어쩔수 없이 울진 죽변항에 가서 회도 먹었네요.

울진 핵발전소랑 직선 거리가 6km 되더군요.


별로 신경 안쓰고 살다가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사고 이후

30년 이상 노후화 된 핵발전소의 위험성에 대해 심각하게 느끼고 있는데

울진 핵발전소는 26년 되었다고 하더군요.


대게를 파는 집이 압도적으로 많고 횟집은 하나 밖에 없더군요.

딸내미가 꼭 넙치회(한자어로 광어)를 먹어야 한다고 해서

주인아주머니께 얘기를 했더니

"넙치회는 양식횟집에 가서 드셔야 쌉니다. 저희는 비싸요" 하시면서 곤란해하더군요.


그냥 자연산 넙치회를 시켜서 먹었는데 된장에 절인 콩잎으로 싸 먹는 회가

초고추장 맛으로 먹은 회하고는 맛이 다르더군요.

뭐랄까, 은근하고 약간 짭조름한 묵힌 된장 맛과 콩잎, 그리고 신선한 회가 어울려서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았습니다.


이날 동해안에 태풍주의보가 발령되어 배가 바다로 나가지 못해 해산물이 귀해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관광객도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휴양림에서 만날 처가 식구들을 위해 회 한마리를 떠 달라고 주문했는데

아쉽게도 그 맛있는 콩잎절임은 포장물품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하네요.

조개를 살만한 곳을 여쭈어 보았더니 울진 나가는 길에 있는 집을 알려줘서 가리비랑 조개를 샀습니다.


휴양림에 도착해 오랫만에 바베피아와 웨버를 꺼내 숯에 불을 붙여 고기를 구웠습니다.

장모님과 처가 식구들의 호평을 받으며 조개구이, 숯불구이, 

그리고 입가심으로 장모님이 가져오신 밤을 잔불에 구워 맛있게 먹었습니다.

몇일 굶어도 될 만큼....


일본에 상륙한 태풍 때문인지 기온은 생각보다 높았지만 밤이 되니 산속 공기가 싸늘합니다.




울진에 들렀다가 토요일 느즈막히 통고산휴양림에 도착


숯불구이 준비하기 전에 호젓한 휴양림 속을 산책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 좋아라 뛰어 다니던 출렁다리와 맑은 계곡이 여전합니다.


늘 찍은 사진을 또 찍습니다.이번에도 저 산 위에는 올라가지 못합니다. 언젠가 올라갈 날이 오겠지요.


수도권에서 멀어서 그런지 야영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습니다.

장비를 들고 올 걸 하는 뒤늦은 아쉬움이 절로 듭니다.


하늘은 참 깔끔합니다. 칩엽수림과 푸른 하늘 그리고 햐얀 구름.

평화라는 단어를 연상하게 하는 기분 좋은 풍경입니다.

내일은 태풍이 가까이 다가와 울진쪽에는 태풍주의보가 내렸습니다.



일요일 아침, 혼자 등산을 하기에는 집에 돌아가야 할 길이 걱정스러워 자연관찰로를 따라 산 중턱을 돌기로 했습니다.

가족 구성원의 기상시간에 제각각이라 아내는 아침을 먹고 나서 같은 길을 혼자 돌았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통고산휴양림을 10년동안 다섯번이나 다녀갔으면서도 이 산책로는 처음 돌아보네요.


산책길 초입은 편편하고 경사가 거의 없는 편한 길입니다.


폭우에 대비한 사방댐입니다. 갈수기라 계곡물이 거의 없지만 몸과 마음이 상쾌해집니다.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계곡물이 많습니다.

깊은 산속이라 그런지 완연한 가을모습을 보여줍니다.



깊고 넓은 산과 계곡으로 이뤄진 곳이라 바위에는 이끼가 왕성합니다.

이런 자연을 계속 볼 수 있다면 핵발전소를 줄여갈 수 있도록 고통을 감내할 각오가 되어 있는데,

다음 세대가 이 아름다운 풍경을 계속 즐길 수 있게 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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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연우아빠.

후다닥 다녀온 통고산 여행

2011.10.1~10.02(1박2일)

장모님 생신 때 특별히 해 드릴게 없는데, 아내가 백운산 휴양림 잡아서 처가 식구들과 같이 여행을 가자고 했다. 마침 군대간 처조카도 외박을 나올 수 있다고 해서 10월 둘째주에 원주 백운산 예약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추석 전에 벌초를 하러 가느라 아내와 동생에게 예약을 부탁했는데 실패. 일단 대기를 걸어 놓고 한달이 다 되도록 기다리는데 입질이 전혀 없다. 그런데 9월 25일에서야 외박이 아니라 휴가라고 한다. 뒤늦게 대야산, 구수곡 기타 등등 주변 휴양림 다 뒤져 봤지만 빈틈이 없다. 게다가 지난주 화요일에서야 처질녀와 얘기가 서로 잘못 전달됐다면서 처가 식구들은 10월1일날 여행가는 걸로 알고 있다는 머리가 핑 도는 얘기를 전한다.

기가 꽉 막힌다. 연우는 중간고사 준비한다고 아무데도 가지 않겠다하니 연우와 연우맘이 빠지면 설령 숙소를 구한들 준기와 나만 갈 수 있는데....다행히 주은아빠가 통고산 예약을 해 놓은 8인실이 있다는 게시판 글을 읽은터라 주은아빠에게 전화를 했더니, 주은이가 교통사고를 당해 크게 다쳐 병원에 급히 왔다는 얘기를 한다. “어이쿠!” 횡단보도를 건너는 주은이를 비보호 좌회전 하던 차량이 치었다는 아찔한 사고. 나도 급하게 가다가 이런 비슷한 일을 저지를 수 있으니 운전할 때 정말 조심해야 할 일. 소식을 전해 들은 아내도 경악하고, 주은아빠에게 말로 위로하는 것 외에 딱히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 주은이가 무사히 낫기를 기도할 뿐....


주은아빠가 잡아 놓은 산철쭉. 정작 주인공은 빠지고 객들만 다녀온 미안한 여행
저 세 집 앞에 바베큐 통을 하나씩 가져다 놓으면 안될까 싶다.


시작이 어수선하니 여행자체도 어수선했다. 30일 밤 늦게 집에 도착했더니 처가 식구들이 다들 일이 있다고 장모님을 제외하고는 2일날 다 집으로 간다고 한다. 갈수록 태산이다. 주은아빠에게 부탁해 1박2일로 다시 줄이고 연우를 설득해 함께 갔다 오기로 정했다. 주은아빠가 마련해준 소광리 소나무 길 탐방은 아쉽게도 취소할 수 밖에 없었다. 아이들이 학교 간 사이 안양농수산물 시장에 가서 새우와 조개를 사고, 아이들을 태우고 출발했다. 추석 때 보다 더 많은 자동차 행렬. 게다가 처조카를 원주에 가서 픽업해야 하는 관계로 다른 길로 갈 수도 없고 그냥 계속 갈 수 밖에. 원주에 도착하니 벌써 4시가 훨씬 넘은 시각. 처가에는 먼저 통고산으로 들어가라고 연락은 했지만 음식은 대부분 우리가 준비해 가기로 한 탓에 갑갑하다.


그림 같이 아름다운 통고산 휴양림 입구 계곡



그 계곡에 있는 아름다운 제1야영장. 평지가 많아서 야영장 조건은 좋다.


쉬지 않고 달렸지만 통고산까지 가는 길은 멀다. 현동을 지나서는 구절양장 같은 길이 계속이니 속도도 나지 않고, 통고산에 도착한 처조카는 배고파 죽겠다고 전화를 했다. 가는 도중에도 지난 여름 휴가 때 상린아빠께서 가져오신 닭꼬치 파는 걸 찾겠다 하고, 돼지고기 목살도 꼭 먹어야겠다고 딴죽거는 아내 땜시 스팀이 오른다. 큰처남이 그 맛있다는 영주한우를 세근이나 사가지고 들어갔다는데 새우 1kg, 조개 1kg, 게다가 생신 음식 잔뜩 만들어 가면서 그 많은 걸 어찌 1박2일동안 다 먹겠다고 이러는 건지. 결국 닭꼬치는 찾지 못했고 목살만 현동에서 사서 통고산에 도착한 시각은 거의 8시가 다 됐다.


그런데 산철쭉, 개나리, 진달래 방 모두 숯불구이 통이 없다. 바람은 초겨울 인데 배가 고프니 이런 상황들이 은근 짜증났다. 산림경영실 앞에 야외식탁과 바비큐 통이 있는데 거기 가서 구워먹자고 했더니 아내가 싫단다. 아니, 여기서 불 피우면 옆집에도 민폐인데 우길걸 우겨야지? 하지만 융통성 없다고 막무가내. 결국 장정 둘이 가서 바비큐 통을 가져오고 바베피아를 꺼내고 토치로 불을 붙였다. 바베피아에는 새우 소금구이를 올리고 바비큐 통에는 소고기를 먼저 구웠다. 새우 굽는 동안 몇 마리가 살아서 튀어 나오니 처조카가 질색을 한다. “에이! 형아. 군인 아저씨가 새우가 무서워요?” 하고 준기가 까분다.

역시 뭐니뭐니 해도 참숯에 구워먹는 영주한우가 제일 맛있다. 영월, 태백, 정선, 평창, 횡성, 정읍, 봉계....다 먹어 봤지만 소백산 기슭에서 자란 영주와 봉화의 한우가 제일 맛있다.(우리 가족 입맛에...^^;;)


이거 구절초 맞지요?



한의사 선생님이 육고기는 소화가 잘 안되니 해산물을 많이 먹으라고 했다고 한동안 육고기는 손을 안대던 준기가 쪼르르 달려와서는 한번 맛보더니 새우를 밀쳐놓고 소고기 먼저 먹는다. 숯불 붙이느라 바베피아에 숯을 넣지 않고 가스불로만 새우를 구웠더니 새우가 제대로 익지 않았다. 역시 바베피아에는 숯을 넣는 게 정답이다. 뒤늦게 숯을 넣고 한 번 더 구웠다. 완전히 굽자 새우 전체가 바삭바삭해졌다. 통째로 다 먹어도 될만큼. 안에서 식사를 하시던 장모님도 숯불 피워 놓은 곳으로 내려 오셨다. 원래 술을 잘 마시는 집안이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저녁 식사. 장모님께 술을 따르고 친정 식구들에게 하는 모습을 보니 평소의 표정이 아니다. 영락없는 장모님의 딸. 그런 모습이다. 등심과 안창살도 다 먹지 못할 만큼 양이 많았다. 게다가 새우와 조개구이까지 더하고 마지막에 군고구마까지 등장하니 돼지고기 목살이 명함을 내 밀 틈이 없다.

무척 늦게 시작한 저녁은 숯불이 사그라들 때쯤엔 너무 추워서 바깥에 있을 수가 없었다. 방으로 들어와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느라 새벽 1시가 넘었다. 내일 울진 여행을 생각해서 이제 그만 잠을 자야할 시간. 2인용 침구 4세트 밖에 없어서 8명이 자는데는 좀 곤란했다. 다음에는 어딜가든 침낭 두어개는 꼭 가지고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울진 죽변항.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 그리고 검푸른 겨울색을 띠기 시작한 바닷물.
오징어 잡이 배가 한가득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7시가 넘었다. 그래도 잠이 모자란 듯하여 다시 잠을 청했다가 눈을 뜨니 9시가 넘었다. 아내가 아침을 하는 동안 숙소에서 나와 주변을 잠깐 산책했다. 아침 먹고 설거지하고 짐정리 하니 벌써 12시가 넘었다. 다들 시간약속이 제각각이라 울진에 들어가기도 뭣한 시간.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점심으로 회를 먹고 온천욕이나 하러 가자고 죽변항으로 길을 잡았다. 구름 한점 없이 티없이 파란 가을하늘. 그러나 바다는 벌써 검푸른 겨울색이다. 계절의 변화는 참 무섭다. 죽변항 회센터에 들어가 어느 집에 가서 먹을까 왔다갔다 하다 보니 사람들이 맛있는 집을 찾는게 아니라 손님 많은 집에 몰려 들어가는 듯 하다. 맨 앞에 있는 집은 울진에서 어업을 하는 분인 것 같아 손님 한명도 없는 그 집으로 들어갔다. 8명이 자리를 잡고 있으니 금새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와 식탁을 다 채워버린다. 개시 손님이라 그랬을까? 회도 넉넉히 주시더니 “요즘도 오징어 값이 비싸죠?”하고 물었더니 주인 아주머니가 오징어 한 마리를 서비스로 회쳐서 주신다.


이 동네에 넙치는 주종이 아닌가 보다. 넙치를 비롯해 5종류나 되는 활어회
오징어 한접시는 서비스. 매운탕 포함 10만원.


먹을 만큼 먹었더니 밥 생각도 없고, 매운탕도 손을 못 댈 정도였다. 10만원. 이제 온천을 하러 가자고 했더니 장모님께서 힘이 드신가 보다. 그냥 집으로 가시겠단다. 울진 들어오는 길이 너무 구불구불 하니 운전하는 사람도 멀미를 느낄 정도인데 여긴 정말 고속도로나 자동차 전용도로가 필요한 지역이다. 울진 들어가는 아름다운 불영계곡 곳곳에 거대한 교각을 세우고 있었다. 인간의 편리성이 아쉽긴 한데 그러자니 아름다운 불영계곡을 훼손할 수 밖에 없는 이율배반적인 상황이다. 관광자원의 활용이 절실한 지역민들이 울진이 육지의 섬이 되었다고 한탄하고 있다. 처가 식구들은 각각의 일정으로 영주로 돌아가고, 우리만 덩그라니 남았다. 어차피 내일은 휴일이니 오늘 늦게까지 여기서 할 수 있는 것을 하기로 했다.



서기 524년 신라 법흥왕 때 이 동네의 심각한 분쟁을 해결하고 그 처리과정을 비석에 새겨 놓은 것을 우연히 발견해
이렇게 전시관을 만들었다. 비석 하나 때문에 전시관을 만들어야 할 만큼 역사학계에 충격을 안겼던 봉평신라비.
자세한 내용은 골치가 아프다. 이거 하나로 예전에 역사21 사이트에서 1년 넘게 갑론을박 했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일단 가까이에 있는 울진 봉평신라비 전시관을 들렀다. 신라 법흥왕 때인 서기 524년에 세웠다는 이 비석은 6세기 신라와 울진의 사회모습을 신라인의 손으로 기록한 1차 사료다. 원본은 박물관 한 가운데에 모셔놓았고 사진 촬영은 금지. 전시관은 단순히 봉평비에 대한 것만 다루지 않고 삼국의 금석문에 대해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다. 당시의 삼국의 모습과 시대상황 등을 함께 다루었더라면 더 풍부한 전시관이 될 수 있었을 텐데 조금 아쉬웠다. 건물 구조는 개방형이며, 자연채광을 통해 밝은 구조를 갖춘 것이 인상적이었으나 여름에는 무척 덥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관 옆, 체험공간. 달팽이 경사로를 따라 내려가면서 찍은 사진.
유리 외벽이라 밝고 시원한 느낌을 주지만 여름에는 비닐하우스 못지 않게 더울 것 같더라는....



체험의 여왕 연우. 여섯살 때부터 지금까지 체험에는 결코 빠지지 않는다는....
중간고사를 코앞에 두고도 따라와준 네가 고맙구나.



4시가 넘자 가을 햇살이 서서히 사선을 그리고 있었다. 덕구온천에 들어가 온천욕을 하며 피로를 푸는 것도 좋을 듯 하여 온천으로 향했다. 수영이 가능한 구간은 20m 정도도 채 안되는 짧고 얕은 온천이었으나 넷이서 수영을 하며 재미있게 잘 놀았다. 아이들 수영 가르친 것은 참 잘한 일이라는 생각에 속으로 흐뭇하다. 피로가 싹 풀리면서 얼굴도 뽀송뽀송해졌다. 예전에 유니맘님이 여행 마지막은 꼭 온천욕으로 마무리 했었는데 그럴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당랑권의 원조. 사마귀. 사람이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 보는데도 전혀 겁내는 기색이 없다.


노천 온천에서 해가 벌써 진 것을 보고 온천욕을 끝내고 집으로 갈 준비를 했다. 온천 근처에서 칼국수 간판을 보고 들어갔더니 다들 닭백숙을 먹고 있다. 점심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라 칼국수를 시켜서 먹었는데 옛날 홍두깨로 편 그런 칼국수 였다. 맛도 좋았고 양도 너무 많았고 가격은 싸고 김치는 맛있고. 저녁을 먹고 나니 8시 30분이 되었다. 네비게이션으로 보고 삼척을 거쳐 38번 국도로 가는 길을 선택했는데 네비 말 안들었다가 구불구불한 높은 산길을 넘느라 시간을 엄청 써버렸다. 사북에서 38번 국도를 탄 시각은 이미 10시가 훨씬 지난 시간. 12시가 넘어 문막에 도착했지만 차가 너무 많다. 졸린 눈을 비비며 여주까지 와서 이대로 가다간 큰 사고 낼 것 같아 잠시 눈을 붙였다. 잠시 후 눈을 떴더니 벌써 40분이 지났다. 다시 출발해 집에 도착한 시각은 새벽 2시 반. 2박3일 같은 1박2일 여행은 이렇게 끝났다.


야외 전시공간에 있는 광개토태왕릉비 실물 모형.
"아빠! 이거 보러 만주에 가요!"라고 말하는 우리 아들. 돈 많이 벌어야 겠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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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연우아빠.

벌초, 그리고 아버지와 함께 한 통고산휴양림 야영

2009.9.18~20

9월18일(금)

지금까지는 큰집과 우리집이 조상님 묘지의 영역을 나누어 벌초를 해왔다. 묘지간 거리가 멀기도 했고, 큰아버지와 아버지께서 주로 해 오신 관계로 자식들은 세월 가는 줄 모르고 묻어둔 상태. 작년까지는 가끔 따라갔었지만 험한 산속을 오르내리느라 지형지물도 파악이 안되고 당최 기억이 정리가 안됐다.

큰아버지 여든셋, 아버지 일흔하나.

이젠 험한 산을 오르내리며 벌초할 기력도 없어지고, 늦기전에 자식들에게 제대로 위치라도 가르쳐줘야 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계시긴 한 것 같은데 두 분 다 형제간에 말이 그리 없는 편이시라 사촌형은 큰 아버지 따라 나는 아버지 따라 각자 맡은 영역만 벌초를 해왔다. 연세드신 어른들 벌초에 계속 따라다니는 것을 바꿔야 할 것 같아 지난 주 사촌형에게 전화를 했더니 예초기를 가지고 온다고 한다. 그렇다면 지금까지처럼 할 필요없이 같이 만나서 함께 벌초를 하자고 했다. 봉화가 고향인 블로거 가운데 ‘뭉크’님 벌초 이야기를 읽다가 우리도 벌초와 캠핑을 연계해서 가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기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지난해 지리산을 다녀온 이후에는 잘 따라 나서지 않는 아버지께 아들과 함께 어쩌면 단둘이 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야영이 될지도 모르는데 벌초하고 나서 이 아들과 함께 통고산에서 야영이나 하자고 권했다. 아버지 특유의 긍정반 부정반 답변. 전화를 하는 나에게 “야영을 하러가는 건지, 벌초를 하러 가는 건지”하고 아내가 핀잔을 준다. 애들이 학교가는 토요일이라 혼자 내려가는 김에 야영을 아버지와 야영을 하는 일은 벌초만큼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아내가 대충 정확하게 싸준 짐.

심플하게 챙긴다고 했건만 야영짐은 침낭과 웨버 때문에 차안에 가득하다. 출발준비는 전혀 해 놓지 못한채 연일 계속되는 야근과 철야. 게다가 목요일은 12시가 거의 다 돼서 퇴근하는 바람에 금요일 밤에 출발하는데 상당한 부담이 갔다. 금요일 일과 마치자 마자 사무실에서 달려나와 택시를 탔는데 대방역까지 가는데만 걸어가는 것 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집에 도착해 밥을 입에 넣고 씹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챙기고, 또 밥을 입에 넣고 씹고 짐 챙기고...이런 분주한 상태로 짐을 차에 던져 넣고 아버지와 함께 출발한 시간이 8시 40분. 다행히 고속도로가 막히지 않아서 영주에 있는 막내동생 집까지 11시 40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내일 아침 9시 봉화 애당에서 사촌형을 만나기로 했기에 막내동생과는 변변한 얘기도 못하고 바로 잠자리에 들기.

 

9월19일(토)

아버지는 새벽부터 일어나서 준비한다고 왔다갔다 하신다. “5분만 더” 하다가 일어난 시간이 7시 15분. 세수하고 밥먹고 나서니 8시 20분. 36번 국도를 타고 춘양까지 냅다 달렸다. 동생 둘은 일정이 안맞아 함께 갈 수 없고, 막내동생은 대신 시원하게 마시라며 큰 PET병 2개를 꽝꽝 얼려 놓았다. 1년전에 비해 36번 국도의 자동차전용도로화 공사는 별로 진척이 없는 것 같고, 춘양부터 애당으로 들어가는 길에는 작년 수해 흔적이 곳곳에 깊게 남아 있다.

도로 보수 복구 공사 때문에 결국 만나기로 한 곳에서 8백미터 떨어진 곳에 차를 대고 뛰어 올라가 사촌형과 큰아버지를 만났다. 의외로 큰어머니도 함께 오셨다. 반갑게 인사하고 70도가 넘는 경사진 길을 직선으로 올라가는 난코스를 따라 첫 번째 벌초 장소까지 올라갔다. 큰아버지와 큰어머니는 아래에서 기다리기로 하고 아버지는 정확한 장소를 알려 주시러 같이 올라갔다. 이 길은 송이버섯 따는 사람들이 다니지 않으면 1년내내 길이 보이지 않는 급경사 너덜지대. 옛날 널을 지고 어떻게 이 길을 올라왔을까 하는 생각이 늘 드는 길이다. 아버지 가라사대 이 땅은 우리 선대의 공동묘지 구역인데 옛날에는 밭뚝에 가묘를 해서 1년 정도 모셨다가 뼈만 수습해 지게에 지고 여기까지 올라오셨다고 한다. 꼭 전라도 지역의 옹관묘 매장 풍습 같은 세골장.

다행히 작년 큰 비에도 별다른 피해는 없었는데 축대를 쌓아놓은 바윗돌 몇 개가 군데군데 이빠진 것처럼 빠져서 아래쪽으로 굴러 떨어진 채였다. 바위를 임시로 다시 채워놓고 다음에 보수하기로 했다. 대대로 자손이 귀한 집안이다 보니 후손이 끊어진 묘도 많아서 가까운 친척 묘는 우리가 벌초를 해 드린다. 아버지는 “얼굴을 직접 뵌 조상까지만 벌초해라. 이젠 이런 풍습도 너희들까지 하면 더 이상 남을 것 같지 않다. 우리 대는 모두 화장해라. 이 무슨 생고생이냐. 조상 묘 돌보는 정성을 들이는 시간에 자신을 다듬는 노력을 해서 잘살도록 하는 게 더 생산적인 일이다”라고 하시며 지금까지 고생한 이야기를 대신하신다. 이성적으로는 수긍하지만 감성적으로는 씁쓸한 면이 있는 조상 모시기. 그래도 작년과 재작년 수해 때 피해가 없는 것을 보니 다행이긴 하다. “예가 명당이다. 개발에 눈먼 사람들이 눈독을 들이지도 않고 그 덕에 묘를 이장할 일도 없고, 송이 따는 사람 외에는 여기까지 오는 사람도 없으니 그야말로 돌아가신 분들에겐 명당이지” 아버지 말씀을 듣고 보니 하긴 그렇다. 조선시대 왕조실록을 분산보관한 곳이 여기 가까운 곳에 있는데 사람 손이 많이 닿지 않는 곳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명당이긴 하다.

너덜이 미끄러지는 길을 따라 다시 내려와 곳곳을 파헤쳐놓은 길을 건너 다시 도심까지 들어갔다. 예전에 할아버지와 같이 다녔을 때는 하룻만에 다 할 수 없어서 꼭 하룻밤 이상은 자고 나가야 하는 곳이었는데 이제는 도로도 잘 되어 있고 차를 타고 다니니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하신다. 개천 보수공사를 어떻게 해 놓았는지 맑은 물이 콸콸 흐르던 동네 거랑에 물이 거의 다 말랐다. 사람이 떠나니 물도 마르는가? 물이 마르니 사람도 떠나는 건가?

다시 산길을 한참 올라가 이번에는 예초기로 넓게 작업을 하고 돌이 많은 곳은 낫으로 일일이 작업을 했다. 오랜만에 잡아보는 낫은 3시간 정도 작업을 하고 나니 손아귀에서 저절로 빠져 나간다. 이 곳 작업을 마치고 할머니 산소를 찾아 거의 90도 가까운 산비탈 길을 나무등걸을 잡으려 간신히 헤쳐나간다. 이 곳에서 올라온 길로 내려가 할머니 산소를 찾으려면 올라오는 길이 한참 멀기 때문에 늘 이 위험한 길로 길없는 산을 헤치고 나가야 한다. 몇 번 미끄러진다. 이 길은 바위산은 아니기 때문에 굴러도 좀 덜 아플 것 같긴 하지만 거의 90도에 가까운 경사길이라 서서 가는 건지 엉덩이를 산에 붙이고 가는 건지 구별이 잘 안될 정도. 진땀을 흘리며 산을 넘었다. 헌데 재작년 왔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광경. 그 우거진 숲을 완전히 쪼개버린 계곡이 생겼다. 폭이 10m 깊이 3m는 넘을 것 같은 엄청난 계곡을 보니 수해 피해가 정말 엄청났을 것 같다. 이 지역에서 작년인가 재작년 수해 때 6명이 죽었다고 했는데 먼 친척들 가운데는 끝내 조상님 관곽을 찾지 못한 경우도 여럿 있다고 한다.

할머니 산소는 아버지가 여러 가지 표시를 해 두었지만 벌초 때마다 와서 보면 사람 키의 2~3배가 넘는 풀이 자라서 어디가 어딘지 전혀 구분이 안되는지라 몇 번을 헤매곤 했는데 이번에는 훤하게 보인다. 할머니 산소 옆에 흐르는 약숫물 나던 샘길이 계곡으로 변해 버렸다. 50년 생은 넘을 것 같은 아름드리 전나무와 소나무가 곳곳에 쓰러져 있다. 재작년에 벌초 중에 벌집을 본 적이 있어 약간 긴장했는데 다행히 벌이 없다. 예초기로 쳐 내고 낫질을 하니 금방 끝이 났다. 계곡을 내려오며 올밤이 떨어진 것을 몇 개 줍다가 산간수 암거를 내 놓은 곳에 떨어진 밤을 주우러 내려갔다가 흠칫했다. 갈색 나뭇잎 같은 것이 움직인다 했더니 독사였다. 쇠살무사 같은 모습. 사촌형이 얼른 나오라고 소리치고..그러고 보니 암거가 깊어 독사가 숲으로 다시 나오긴 어렵겠다. 도와주자니 독사라는게 꺼림칙해서 그냥 놔두고 나왔다.

계곡을 따라 내려와 보니 1시가 거의 다 됐다. 그 사이에 먼 친척 가운데 한 분이 큰 어머니께 사과를 두 꾸러미를 선물로 주셨나 보다. 하나씩 가져가라고 주신다. 마지막으로 할아버지 산소를 벌초하고 점심을 먹자고 하고 차를 타고 할아버지께로 갔다. 내가 태어나기 한해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 아주 어렸을 때 사진으로 한 번 본 적이 있긴한데....할아버지는 힘이 장사여서 앉은 자리에서 술 한말을 드시고 장정 3사람 일을 할 정도였다고 한다. 나라도 망하고 집안도 몰락해서 자식들에게 제대로 해 준 것도 없이 고생만 같이 엄청나게 하시다 돌아가신 어른. 묘터가 너무 좁아 할머니와 합장을 할 수도 없는 곳에 자리잡고 계시지만 큰 길에서 가까워 벌초하기는 제일 쉽다. 예초기 덕분에 금방 벌초를 마치고 내려오니 큰 어머니께서 집에서 싸 온 밥을 내 놓는다. 직접 담그신 된장이며, 맛있는 채소에 쌈을 싸먹는데 큰어머니께서는 옛날처럼 커다란 대접에 고봉밥을 만들어 주신다. 2시 넘어 늦은 점심이라 그런지 주는대로 다 넘어간다. 3시 조금 넘어 다음을 기약하며 큰 집 식구들과 작별을 고하고 우리는 춘양시장으로 갔다.


새롭게 단장한 춘양재래시장. 다음에 이 지역에 야영을 가면 꼭 이용하고 싶은 곳

돼지목살과 상추를 사러 갔더니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춘양 장날이다. 상인단체에서 주최하는 노래자랑 행사가 한창인데 역시나 젊은 사람은 없다. 중기청에서 주는 재래시장 현대화계획 자금을 받아 시장을 정비했는지 시장이 깔끔하다. 돼지고기 한근을 주문했는데 주인이 760g을 준다. 11,000원. 그런데 10,000원만 내란다. 그렇게 깎아 주면 이문이 남느냐고 물었더니 자기네는 취급물량이 많아서 한번에 돼지 몇 마리 분을 처분하는 관계로 다른 집보다는 훨씬 사정이 좋다면서 웃는다. 목살이 상당히 좋아 보인다. 다음에 이쪽에 휴양림 여행을 오면 이집을 이용하리라 마음을 먹는다. 채소가게에서 상추 반근을 천원에 샀는데 거의 한근을 준다. 깻잎도 3꼭지에 천원.

늦으면 데크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얼른 통고산으로 달렸다. 다행히 수도권이나 충청권과 달리 자리가 많이 비어있다. 우리 집까지 6집. 얼른 텐트를 치고 그 사이에 아버지는 샤워를 하러 가셨다. 조용히 앉아 있으니 별로 할 일이 없다. 숯불을 피워 고기를 구우려고 했더니 아버지께서 배가 고프지 않다고 그냥 주무시겠다고 한다. 하긴 점심을 워낙 많이 먹어놔서 밥 생각이 없다. 아래에 동서가족끼리 놀러 온 듯한 두 가족은 장비도 깔끔하게 제대로 갖추고 아이들을 위해서 해먹도 설치하고 아주 즐겁게 지낸다. 가정학습 휴일 신청하고 아이들 그냥 데리고 올 걸 하는 생각도 든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춘양장날이라서 노래자랑이 있었다.


노래 자랑을 구경하는 사람들. 한때 이 지역은 춘양목으로 때돈을 번 갑부들이 살던 곳이었다

7시쯤 찬물만 나오는 샤워장에서 씻었다. 상쾌하다. 하얀 구름과 파란 하늘이 잘 어울리는 숲에 서서히 어둠이 내렸다. 어제 오늘 잠을 제대로 못잤으니 잠이나 푹 자보자고 누웠는데 잠이 오지는 않는다.

“내가 이젠 먼길 나서는 것이 힘들어 이번 야영도 할까 말까 망설였는데 숲이 참 좋긴 좋구나. 전혀 피곤하지 않구나”
“그럼요. 가끔은 좋은 숲으로 다녀야 한다구요. 몸이 무겁다고 집안에만 계시면 더 힘들어진다구요”

“꼭 그런 건 아니다. 너도 나처럼 나이가 많이 들면 체험하게 되겠지만 아이들 데리고 재미있게 놀 수 있을 때 어른이 방해가 되면 좋지 않다”
“야영은 몰라도 저희가 방을 잡아 놓고 같이 가자고 할 때는 같이 가세요”
“이렇게 왔으면 됐지. 나이 든 사람 챙기느라고 시간 많이 잡아 먹는 건 좋지 않다. 함께 다니는 나한테도 즐거운 일이 아니고”

바람이 서늘하니 4인텐트에 두사람만 누워서 그런지 더 썰렁하다. 그래도 침낭 속은 따뜻한 것이 기분이 좋다. 주변 텐트에 야영객들은 12시가 넘어서도 잠을 자지 않는 듯. 알게 모르게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통고산자연휴양림 제2야영장에서 아버지와 캠핑. 아래텐트에 온 아이들. 아마도 사촌사이인 듯. 

 

9월20일(일)

아침에 일어나니 7시 15분. 나무가 해를 가려 시간이 이렇게 지난 것을 몰랐다. 일어나 밥을 올려 놓고 숯불을 붙였다. 훈연한 목살의 부드러움. 이가 좋지 않은 아버지는 보통 숯불구이와 전혀 다른 맛에 감탄을 하시고 두 사람은 밥 3인분과 돼지고기 750g, 그리고 상추 절반을 아침으로 먹었다. 숲에서 먹는 아침밥은 정말 새로운 상쾌함을 준다. 커피 한잔까지 하신 아버지는 숲을 살펴보러 산책 올라가고 그 사이에 짐을 싸기 시작했다. 혼자서 하니 3시간 가까이 걸린 것 같다. 짐을 챙겨 1시에 휴양림을 나와 처가에 들러 장모님께 추석 때 오지 못하는 대신 선물을 드리고 고춧가루 등속을 받아 집으로 출발했다. 중간에 풍기에 들러 그 유명하다는 정도너츠 집에 들러 생강찹살도너츠를 3개 사서 하나는 점심겸 간식으로 먹었다. 아버지는 10개들이 한상자에 칠천원이면 너무 비싸다고 하시고, 나는 명품은 그만한 대접을 해 줘야 명품이 된다고 하면서 “맛있다”를 연발하며 어느덧 9개나 먹었다. 원주까지는 고속으로 달렸건만 역시 라디오에서 전국 고속도로가 60~70km씩 지체구간이 있음을 알려준다. 원주에서 집까지 100km를 오는데 3시간이 걸렸다. 미안한 마음에 전화를 한 동생들에게 내년에는 가족 모두를 데리고 야영삼아 가자고 얘기하며 덕분에 재미있게 잘 다녀왔음을 알렸다.

Posted by 연우아빠.

제 맘 속에 유일한 대통령, 우리 노무현 대통령님! 
인간이 만든 필설로 어찌 이 맘을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을 지지하는 사람이었고 지금도 지지하고 앞으로도 지지할 것입니다.
존경했고 사랑하고 제가 살아있는 동안 기억할 것입니다.
부디 편안히 쉬십시요.

제 맘 속에 유일한 우리 대통령님!
눈물이 나서 더 못쓰겠습니다.......

국민을 위해, 원칙을 위해,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하신
당신의 영전에 이 꽃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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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양림 계곡을 아름답게 수 놓고 있는 꽃사진 


이름 모릅니다. 가르쳐 주시면 수정해 넣지요. ^^;;
유진맘님 힌트를 가지고 찾아보니 쇠별꽃이 제일 비슷하게 생긴 것 같네요.


쪽동백꽃, 마치 아카시아 꽃처럼 화사하고, 향기는 행운목 같은데 훨씬 부드럽고 은은한 향이 납니다.


삼각대가 없어서 손각대로 찍었는데 역시 저속셔터는 무리(셔터 속도 1.3초)


함박꽃(일명 산목련)


층층나무 꽃이 이렇게 아름답고 향기로운 줄 왜 예전에는 몰랐을까요?


휴양림 순환산책로의 작은 계곡. 작년 수해 피해가 굉장히 컸던 모양입니다.
아직도 흔적이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식당동 옆에와서 뭔가 먹고 있던 다람쥐. 카메라를 가지고 다시 나와서 찍었는데 한참을 기다려 주더군요.


광각이 아니라서 싱그러운 녹음을 시원하게 담지 못하겠네요. 수련관에서 아래쪽으로 본 모습


이름 잊어버렸습니다. 졸방제비꽃과 비슷한데 흰색 꽃잎이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색깔은 태백제비꽃을 많이 닮은 것 같습니다.


등산로 중턱 쯤에 사진 찍으라고 장승 10여개를 세워 놓았습니다.

 


수련관 앞에 핀 붓꽃


고기 구워 공급하느라 바깥에서 식사 중인 두 동생


1,700원 주고 산 일회용 석쇠와 남들이 한번 사용하고 버린 일회용 석쇠를 구부려 만든 숯망.
여기에 모닥불을 붙여 밤늦게까지 3형제 부부가 끝없이 이야기를 이어 갔습니다.


준기맘과 준기 사촌 여동생. 맑디 맑은 계곡에 꽃 배를 띄워놓고 어서 흘러 가라고 물을 뿌립니다. 



통고산자연휴양림 여행(2009.5.23~24)

아버지 생신을 맞이하여 4남매 가족이 모두 모여서 휴양림 나들이 하는 것은 어떠냐는 아내의 말에 뒤늦게 경북지역 휴양림을 뒤져 봤지만, 빈방은 없다. 대기를 몇 개 걸어 놓고 당일까지 빈방이 나오지 않을 경우 타프 들고 낮에 휴양림에 들어가 가족끼리 놀다가 밤에 돌아오는 것으로 일단 정하고 누나와 동생들에게 알렸다. 누나는 주말근무 때문에 못온다 하여 3형제만 모이기로 했다. 21일 밤 11시쯤 확인해 보니 1순위 대기가 4개가 걸려있다. 약간의 기대를 하면서 금요일 오전에 다시 체크해보러 들어갔더니 대기가 모두 자동취소로 되어 있다. 휴양림관리사무소에 알아보니 어이없게도 예약시스템은 하루 전날 대기는 모두 자동취소되도록 프로그램 되어 있단다. 어처구니가 없다. 해당일이 지난 다음에 자동취소되도록 프로그램 수정을 강력하게 요청하고 홈페이지에 민원글과 답을 남기도록 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되는 일이 없다. 금요일 오후, 퇴근 시각이 됨과 동시에 인사를 남기고 용수철처럼 사무실 밖으로 튀어나갔다. 집에 도착하니 7시 20분.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8시에 출발했다. 준기는 키우던 사마귀가 지난번 도룡뇽처럼 죽을 것이 걱정되었는지 출발하기 전에 숲속에다 사마귀를 풀어주고 왔다. 고속도로에 차는 많았지만 생각처럼 속도는 줄지 않고 잘 나간다. 밤 11시 조금 넘어서 셋째네 집에 도착했다. 평일과 별반 차이가 없는 속도.

23일 아침, 눈을 뜨니 하늘이 우중충하다. 비도 약간 뿌리고 연무인지 안개인지 스모그인지 황사인지 암튼 뿌옇다. 막내동생이 수련관이 비어 있으니 수련관을 예약하자고 한다. 낮에 비가 올지도 모르고 부산에서 동생도 오는데 거기까지 몇시간을 달려와서 하룻밤 자지도 않고 나온다면 너무 힘들지 않겠냐면서....13명이 자기에는 너무 크지 않냐 싶었지만 오가는 번거로움보다 그게 낫겠다 싶어 예약을 했다. 출발 준비를 끝내고 여자들이 내려오길 기다리는데 10:37분 (시민광장 모임에서) 문자메시지가 날아왔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이게 무슨 소리야? (곧이어 노사모에서도 같은 문자가 날아왔다) 라디오를 켜니 청천벽력 같은 자살 소식. 헉! 순간 속이 메스껍고 기운이 빠지면서 눈앞이 흐릿해진다. 이럴 수가...어머니가 돌아가셨던 순간만큼 충격이었다. 온갖 상념이 순식간에 머리속을 헤집고 지나갔다. 한동안 마음을 진정시키고 11시가 넘어서야 출발했다. 아버지도 충격이 크셨던 듯, 여기까지 오지 않았으면 오늘 진영으로 갈 수 있었을 텐데라고 하신다.

12시 조금 지나 통고산에 도착해 눈이 시원하고 마음이 상쾌한 녹색향연 속으로 들어갔다. 슬픔, 기쁨, 고통....희로애락애오욕, 4단 7정 모두 녹여버리는 이 아름다움은 진정 내 인생의 복이다. 이 아름다운 날에 몸을 던져버린 그 분의 명복을 빌어본다. 평생 기억하겠노라고. 

아이들과 함께 5년만에 다시 찾은 통고산에서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아이들은 올챙이 잡으러 개울에 들어가서 그들 방식대로 신록을 즐기고, 어른들은 아버지를 따라 천천히 등산길을 오르며 그 동안은 눈으로 보았으되 알지 못했던 많은 꽃들을 챙겨본다. 층층나무 꽃이 이토록 아름다운 줄 몰랐다. 너무나 확실한 층층나무 꽃과 산목련을 제외하고는 아버지에게 여러번 듣지만 금방 잊어버린다. 바람을 따라 일렁이는 하얀 꽃들이 저마다 천상의 향기를 흩날린다. 단순한 녹색향연이 아니라 그 속에는 별보다 아름다운 꽃들이 저마다 빛을 낸다. 텅 빈방인데도 3시가 되어서야 열쇠를 받을 수 있으니 이용자 개인은 좀 짜증나는데 관리하는 사람들은 열쇠가 다 모여야 내 줄 수 있으니 그들도 짜증나리라. 열쇠를 받아 들어간 수련관 숙소는 축구장만한 방이 2개에 거실이 하나. 각 방마다 20~30명은 거뜬하게 잘 수 있을 것 같다. 단지 이부자리가 군용담요 비스므리 한 것이라 좀 황당했다. 식사를 할 수 있는 건물은 제일 위쪽에 있는데 한 테이블에 8명이 앉을 수 있고 모두 식탁 6개나 있다. 작은 마을 하나를 통째로 전세 낸 것 같은 규모다. 주변에 달리 놀러갈 곳을 정하지 못한 분들이 있으면 모두 불러오고 싶었다.

부산에서 출발한 둘째는 도착하는데 무려 6시간이 걸렸다. 점심을 간단하게 때우고 기다렸던 관계로 둘째가 도착하자마자 저녁밥을 안치고 바로 숯불을 붙였다. 숯은 집안에서 냄새 제거용으로 두세달 진열해 놓았던 것이라 그런지 습기 때문에 탁탁튀면서 불이 잘 붙지 않는다. 10여분 쯤 고생해서 겨우 불을 붙였다. 돼지고기 직화는 고기가 딱딱해지는데 웨버에서 훈제를 만든 돼지고기는 너무 부드럽고 맛이 좋다. 부드러운 것은 이가 좋지 않은 아버지께 먼저 드리고 나머지는 아이들 주고...오랫만에 만난 사촌들이 예전과 달리 밥도 잘먹고 잘 어울려 논다. 초록 숲에는 생명력을 끌어 올리는 뭔가가 있다. 저녁을 먹고 나니 오후 6시, 아직 해는 한참 남았다. 은주네, 상린이네도 대공원 야영장에 있겠지 생각하며 주변을 어슬렁거리다 은주아빠와 유진아빠에게 배운 게 있어서 굴러다니는 작은 나뭇가지들을 주워 모았다. 잠깐 사이에 꽤 많은 양을 모았다. 남자들이 모두 설거지를 마친 다음 마당에 둘러 앉아 모닥불을 붙여 놓고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가끔 모이긴 했지만 애들 돌보랴 정신없어서 제대로 우리끼리 얘기해 본 일이 거의 없었는데 모닥불 주변에 둘러 앉아 가져간 포도주 한 병으로 2시간 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8시가 넘어서 아버지와 함께 생신 케이크를 자르고 아이들은 제각각 방안으로 몰려 들어가서 놀기 바쁘고 어른들은 계속 불놀이를 했다. 우리에게 이런 여행을 할 수 있도록 해 준 모든 이에게 감사하며 작은 행복을 느껴본다. 11시쯤 자리를 파하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수련관에는 아쉽게도 온수샤워를 할 수가 없다.



24일 아침, 시간이 제법 된 듯하여 눈을 떴는데 겨우 5시. 차가운 물이지만 샤워를 간단하게 하고 낙엽송이 내뿜는 청량한 느낌을 온 몸으로 받는다. 새벽부터 날씨가 영 종잡을 수 없다. 심한 바람과 먹구름이 몰려와 기온이 뚝 떨어지면서 큰 비가 올 듯 하다가는 금방 햇볕이 쨍한다. 그러더니 금방 또 빗방울이 떨어지고 어디선가 확성기 왕왕대는 소리와 시끄러운 노래 소리가 귀를 거슬린다. 아침을 먹고 다시 등산로를 따라 가는데 아니나 다를까 일요일 아침 이 고요한 숲 제1야영장 데크와 떼로 몰려와 앉아 있는 사람들이 내는 소음. 그 확성기 소리는 바로 교회에서 몰려와 예배를 보는 소리였다.

아이들은 개울가로 우르르 몰려 내려가 그 차가운 물 속에 발을 담고 물속에 사는 작은 생물들을 쫒아 다닌다. 그들을 뒤로 하고 아버지, 부산 동생부부와 함께 등산로를 따라 올라갔다. 한참 올라가니 통고산 정상으로 가는 길이 왼쪽과 오른쪽으로 갈라지는 곳이다. 다시 되짚어 내려오는데 정말 큰 비가 올 듯이 바람과 먹구름이 몰려온다. 12시 조금 넘어 남은 음식으로 요기를 하고 휴양림을 나서려니 아이들이 너무 싫단다. 계속 놀고 싶어 하는 아이들...하지만 어쩌랴. 너희들도 이젠 조금씩 깨달아야 할 것이다. 이걸 오랫동안 즐기기 위해서는 너희들에게 힘든 나날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손바닥에 티눈이 생긴 준기는 시멘트 바닥에 몇일 문지르면 티눈이 사라진다고 했더니 외가에서 발견한 작은 시멘트 조각을 들고서 열심히 티눈을 문지르고 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처가에 잠깐 들러 장모님을 뵙고 30분쯤 눈을 붙인 뒤 4시에 귀가 길에 올랐다. / 쫑

Posted by 연우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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