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곳에 숲 향기가 있다(방태산의 가을단풍)

 

2012.10.13~10.14

멧돼지방(주은네, 우리가족, 유진아빠/맘, 상린채린아빠, 채린, 은주아빠 : 12명)

 

“아빠! 시험공부해야 되니까 나보고 방태산 가자고 하지마.”

영원히 아빠랑 같이 여행을 할 것 같았던

아들이 드디어 휴양림 여행에 태클을 걸기 시작했다.

 

계획을 세워서 자율적으로 공부하기를 바랬던 딸 아이가

우리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습관을 가진 것에 대해 잔소리를 자주 하는데

그 여파가 아들에게 미쳤다.

 

“초등학생은 시험공부에 그렇게 목 매달지 않아도 돼.”

“흥, 아빠 엄마도 등수 높은 아이들을 원한다며?”

“그건 네 누나가 좀 관심을 가지고 사냥 기술을 배우라는 뜻이었지. 넌 아직 아니야.”

“싫어, 그래도 난 안 갈래.”

“그럼, 공부할 자료를 챙겨가지고 가면 되지.

방이 4개니까 넌 방에서 목표만큼 공부를 하면 되잖아?”

 

이렇게 겨우 설득을 해서 방태산으로 가게 되었다.

“그런데 아빠, 멧돼지 방 앞에 전에 놀았던 그 통나무가 그대로 있을까?”

“글쎄? 이미 치우지 않았을까?”

“그대로 있었으면 좋겠는데...”


방태산 멧돼지방 테라스


 

 

금요일 밤, 집에 도착해 발표자료 만들어야 한다는 아들을 지켜보았다.

‘귀뚜라미 키우기’를 주제로 한 자료인데 초등학생이 만든 것 치곤 제법이다.

다 만든 것을 봐주고 자료를 조금 보완시켰다.

같은 내용에 대한 전달효과를 높이기 위한 자료 배치, 표현 방법 등을 이야기해 주고

완성한 자료를 메일함에 담는 것으로 끝.

내일을 위해 얼른 자라고 재촉했다.

 

아이들이 한 살 두 살 자랄수록 여러 가족이 함께 모이는 것에 장애가 많아진다.

 

이번 모임 역시 한달동안 참 우여곡절이 많았다.

토요일 아침에 상린아빠께서 동참하기로 약속했던 친구들이

모두 오지 못한다는 연락이 와서 자기도 가기 어렵다고 한다.


멋진 폭포지만 이름이 없다는 슬픈 폭포. 그냥 2단 폭포(이 폭포, 저 폭포)


 

‘채린이가 안오면 연우도 안간다고 할텐데...’

채린이랑 과천 쪽으로 내려 오시면 우리가 픽업하면 된다고 하니 가겠다고 하셨다.

10시에 과천 청사 역에서 상린아빠와 상린이를 만났다.

외곽순환을 탄다는 것이 잠시 착각으로 네비를 따라 그만 서울 시내로 들어가고 말았다.

상당히 막히긴 했지만 올림픽대로와 경춘고속도로는 그런대로 주말치곤 괜찮았다.

막국수를 먹겠다는 생각으로 길을 재촉했다.


언제봐도 넉넉한 마당바위.



 

상린아빠께서 민물고기 매운탕을 하시겠다고 하여

상남의 수퍼에 미리 전화를 해서 알아보고 왔는데

가게를 찾아 갔더니 얼마 전에 포획이 금지된 어류가 포함되어

이 지역 판매처들이 관계 당국의 조사를 받은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팔지 않는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해 준다.

결국 현리 읍내까지 올라가서 샀는데

한번 단속을 받으면 일반 민물고기도 팔지 않는 상인들의 몸조심이 대단하다.


일요일 아침, 햇살과 함께 방태산 트래킹을 나서다.




 

저녁에 구워먹을 돼지고기도 현리 시장에서 구하고

방동막국수(033-461-0419)에 들러 늦은 점심을 먹었다.

 

막국수 먹고 싶다는 생각에 점심이 너무 늦었지만 아이들이 잘 참아 주었다.

하긴 녀석들 차 안에서 잠들어서 그닥 보채진 않았지만...

점심으로는 한참 늦은 시간인데도 관광버스를 타고 단체로 와서 먹는 사람들이 많다.

이 집에서 점심을 먹고 10분쯤 지났을까?

주은이네 가족도 점심을 먹으로 들어왔다.

 

방태산 들어가는 진입로는 맞은 편에서 관광버스가 나올까봐 가슴을 졸인다.

다행히 버스를 만나지는 않았다.


사람이 단풍으로 물들어 가는 방태산 단풍길



 

방태산 입구부터 방태산 만이 풍기는 좋은 향기가 우리를 반긴다.

세월은 정말 빨리도 흐른다.

꼭 3년 만에 다시 방태산을 오다니...

 

멧돼지방 열쇠를 받았는데 4가족이 들어가는 방도

스탬프는 달랑 1개 밖에 찍어주지 않는다고 해서 준기가 실망을 했다.

 

관리사무소에서 멧돼지 방까지도 마주오는 버스를 만날까 걱정스러웠다.

주차장에는 관광버스가 12대나 있더라고 주은아빠가 말했다.

너무 많아서 일부러 헤아려보았단다.

 

하늘을 찌르는 낙엽송. 강한 바람에 상단부가 심하게 흔들리며 쏴~아~아 하는 소리를 낸다.

낙엽 흔들리는 소리까지 카메라에 담을 수 없어서 안타깝다는 은주아빠의 말처럼 방태산의 가을 풍경은 공감각적으로도 멋있었다.



 

멧돼지 방에 도착했는데 주변이 좀 어수선하다.

너무 많은 등산객들이 몰려와서 화장실이고 집안이고 마구 들어오고

주변에 차도 많이 세워 놓아 사람들이 와글와글 몰려 다닌다.

길 아래 쪽에 새로 화장실을 만들고 있었다.

동홍천까지 고속도로로 접근을 할 수 있게 돼서 그런지

방태산도 점점 유원지처럼 변해간다.

지금 공사하고 있는 고속도로가 양양까지 개통되면

방태산도 이제 오고 싶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호젓한 길을 따라 짧게 돌았기에 이런 조용한 풍경도 찍어볼 수 있었다.


 

3년전에도 멧돼지 방에서 묵었는데 방 내부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주방은 리모델링을 했는지 새 것 같다.

짐을 내리고 계방산 등산을 하고 들어온다는 유진네와 은주아빠가 올 때까지

산책을 하러 나갔다.

 

산 위쪽에서 사람들이 끊임없이 내려온다.

등산객, 사진애호가...

머리 위에는 자연이 만든 단풍이,

땅에는 단풍을 닮은 울긋불긋한 등산객들이 시장통 같다.

“다음 주에 SLR클럽에 방태산 2단폭포 사진이 드글드글 하겠군”

 

 

유진네와 은주아빠를 기다리다 주은아빠와 둘이서 숯불을 준비했다.

숯에 불을 반쯤 붙여놓고 배달은석님이 하던 대로 부채로 열심히 부쳤다.

30분쯤 지났을까? 숯불이 아름답게 피었다.

발갛게 달아오른 숯을 보며

“은주아빠 없이 우리끼리 붙인 숯불 가운데 최고인데!”하며 서로 웃었다.

 

늦게 들어오는 유진네와 은주아빠에게 민물매운탕용 고춧가루를 사 오시라 부탁하고

술도 부탁하고 한참 지났는데 주은아빠가 난감하다는 듯 한마디 한다.

 

“형님, 제가 훈제오리를 가져왔는데 아이들이 머스타트 소스가 있어야 한다는데요.”

“어, 그럼 은주아빠께 전화를 다시 하지?”

“아, 이거 참. 벌써 여러 번을 주문해서 전화걸기가 미안할 지경이예요”

“그럼 내가 해 줄게. 이렇게 계면쩍을 때는 문자로 하면 되지.”

 

하지만, 전화로 했어야 했다는...

문자를 뒤늦게 봐서 다시 되돌아 나가서 소스를 사왔다는 얘기를 해서 허거덕 했다는...

 

매운탕에 고춧가루를 빼먹고

훈제 오리에 머스타트 소스를 빼먹고

배추국에 된장을 빼먹고

숯불구이에 사용할 야외 조명, 라이터, 부탄가스 등등을 빼먹고 나온 우리 일행.

 

이번에 누가 오니까 ‘그걸 가지고 올거야’라는 굳은 믿음과 팀웍은

세월과 함께 구멍이 숭숭 뚫렸다.

 

베란다 한 쪽 편에 만들어 놓은 야영물품 전용창고를 열어 놓고도

“뭘 가져가야 하지?”하는 단기 건망증을 일으킨다.

 

잘 익은 장맛처럼 깊은 맛이 나는 지금 모임도 좋지만

주은이 또래 아이들이 많아져서

야외에서 활기 넘치게 뛰어 노는 아이들이 생겼으면 하는 욕심이 생긴다.

준기는 3년전 여기에서 놀았던 통나무를 기억하고 있었다.

아이들끼리 신나게 놀았던 그 통나무가 없어진 게 몹시 서운한 듯...

 

 

한밤중의 이바구는 늘 재미있는데 메모를 하지 않으니

주옥같은 이야기들이 느낌만 남고 세부내용은 다 날아 가버렸다.

아메리카노를 비롯해 각종 커피를 한잔씩 들고

신선노름 같은 대화의 세계로 깊이 들어갔다.

(아메리카노는 한 잔에 물을 부어서 두 잔으로 만들어 마시는게 농도가 제일 적당했다)

 

 

아이들을 재우고 이야기 꽃을 피우다 보니 어느 덧 새벽 1시가 되었다.

내일을 위해 잠을 청했다.



 

 

일요일 아침, 상쾌한 기분으로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6시가 조금 넘었는데 벌써 사람들이 몰려 올라온다.

방태산 단풍과 폭포를 찍으려는 사람들이 많이도 올라온다.

아침을 먹고 다음 모임을 기약하며 주은이네 가족이 먼저 곰배령 탐방을 떠났다.

대구 내려가는 것만 아니라면 곰배령에 같이 가고 싶었는데,

어제 서울에서 빠져 나오는 차량 숫자를 감안할 때

곰배령에 갔다가는 대구 내려갈 기차 시간에 대기 힘들 것 같아 포기하고 말았다.

 

준기가 졸라 은주아빠가 단풍잎 물타기 경주를 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제일 좋은 아저씨 은주아빠.




베이붐 세대 장년층이 은퇴를 시작하는 시기가 온 것일까?

쉼없이 들어오고 쉼없이 오르내리는 엄청난 등산객들은 이제 고즈넉하던 방태산이 아니다.

이제 휴양림 여행도 등산객이 찾지 않는 조용한 곳으로 점점 축소될 것 같다.

 

9시 즈음 아침을 마친 우리는 짧은 구간 트래킹을 하기로 했다.

좁은 계곡에서 순간 순간 부는 돌풍은 오색 찬란한 단풍을 하늘로 날렸다.

“아, 마치 눈이 내리는 것 같구나” 절로 감탄이 나왔다.

 

등산로 입구에서 짧게 도는 길을 따라 천천히 산책을 즐겼다.

등산객과 최대한 중첩되지 않게 5km 정도 트래킹을 마치고 돌아오니 2시간이 지났다.

 

짐을 챙겨 휴양림을 체크아웃하고 바지락칼국수를 먹으로 평촌으로 갔다.

휴양림을 빠져나올 때 들어오는 버스가 많아서 걱정을 했는데

결국 좁은 길에서 버스 한 대와 마주치고 말았다.

버스와 내 차 사이에 간격은 10cm도 안될 것 같다.

아슬아슬하게 교행을 하고 입구까지 버스를 만나지 않기를 바라며 내달렸다.

 

다행이 정오 무렵이라 고속도로는 크게 막히지 않아서 3시간 정도 걸려 평촌에 도착했다.

맛있는 바지락 칼국수를 먹고 채린이네 두 식구와 은주아빠는 지하철로 귀가 길에 오르고

우리는 유진네를 따라 주말 농장으로 가서 자색 고구마를 얻어 왔다.


나무다리의 단풍나무는 언제나 아름답다. 

 

 

세상이 변하는데 아름다웠던 숲이라고 변하지 않을 수가 없겠지.

방태산 가는 길에 있는 깊고 높은 산도 서울-양양 고속도로 공사가 한창이었다.

숲 냄새가 나는 방태산이 점점 유원지처럼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 아쉽다.

숲의 복원력이 허용하는 범위를 넘어서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이런 바램 역시 나의 욕심이겠지.

Posted by 연우아빠.

방태산 단풍 (3)

숲여행 2009.10.14 19:10

2009.10.11 


당장 형들이나 누나들처럼 멀리 뛰어 보고 싶기도 하지요. 



보다 못한 엄마와 은주맘께서 멀리 뛸 수 있게 막내를 도와 주겠다고 나서보지만 "싫어! 싫어!"를 연발합니다.



나도 그냥 혼자 뛰어 본다니까요...



두 걸음을 더 뛰게 해 줘도 4학년 형의 뜀뛰기를 당할 수가 없어요.



비호처럼 뛰어가는 채린이 모습



놀이에 관한한 최고 달인 은주의 멋진 뜀박질



하늘을 날을 듯 상린이도 날아가고



사뿐사뿐 뛰어도 또래보다 2걸음 이상 더 멀리 뛰는 대단한 지환이는
살살 뛰라는 어른들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최선을 다해 날아 갑니다.



또래 보다 작지만 노는 것에 관한한 남들에게 절대 빠지지 않는 연우도 날렵하게 뛰어 갑니다.



단골 술래가 된 준기는 뜀뛰기가 안되니 게걸음으로 보폭을 넓혀 형들이나 누나를 잡아보려 합니다.



하지만 이런 뜀뛰기를 어찌 당하겠어요?



반도 안뛰었는데 벌써 남들만큼 날아오는 지환이



준기를 술래로 잡아 놓고 다들 느긋합니다. 여기까지 못 온다는 것을 알고 있거든요.



핸디캡을 인정하는 신호등 놀이로 누군가 준기 대신 술래가 되겠지요.
놀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배려를 배웁니다.



그리고 이번 여행에 함께 하지 못해 아쉬운 유진맘께서 보내주신 땡감을 곱게 썰어 베란다에서 말립니다.
곶감만큼 맛있는 별미 간식이지요. 가을색이 환한 여행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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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연우아빠.

곰배령 천상꽃밭과 방태산 야영

기간 2009.8.14~16(2박3일) 야영

8월14일(금) 

정모 해 보겠다는 계획은 몇 번이나 연기하여 이젠 ‘되는 사람들만이라도 모이자’로 변경한 상태가 되었다. 장소도 몇 번 왔다갔다 하다가 결국 방태산 야영으로 낙착. 모라꼿 태풍이 몰고 온 때늦은 더위 때문에 국립 휴양림 야영장은 다시 미어터지고 있다는 소식. 그나마 미천골은 계곡이 너무 깊어 야영객이 들어가서 일일이 나갈 데크를 탐문해서 인수받는 방식이라고 해서 포기했다. 폭우 때문에 비었던 야영장이 방태, 미천골, 삼봉 모두 다 차버렸다고 한다. 이젠 방태산 참석 가능한 팀이 유진네, 현지네, 우리 이렇게 3가족만 확정. 다시 왔다갔다 하면서 머리 썩히지 말고 운에 맡기고 그냥 가자는 아내의 말에 동의하며 상린아빠님의 안깨산장 야영을 비상대책으로 생각하고 방태산에 가서 줄 서보기로 했다.

13일 밤, 내일 오후에 반차를 내고 출발하자고 아내와 얘기하던 중에 준섭맘님의 문자 메시지. 나연네와 함께 오겠다는 소식. 순간 더욱 고민은 깊어지고. 야영장 확보가 무엇보다 급해지기 시작했다. 14일 새벽 걱정 때문에 얕은 잠만 자게 되었는데 새벽에 꿈 속에서 빈 데크 4개를 발견했다고 좋아라 하며 잠을 깼다. 꿈이었다. 약간 허탈. 그리고 약간은 희망. 그래! 굳은 의지로 한번 밀어보자!


무심코 풀지 않고 버려둔 노끈이 1년 뒤에는 나무에 이런 상처를 입힙니다. 노끈을 제거한 뒤 선명하게 나무에 남은 노끈 자국

오전 근무를 마치고 오후 반차를 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급한 마음인데 버스에 탄 정신이 조금 온전치 못한 듯한 할아버지 한 분이 계속 신경 쓰인다. 승객들에게 산본역 간다고 내리는 곳 가르쳐 달라다가 금정역 간다고 했다가 금정역에는 내리지 않고 산본역 간다고 하고...그 버스 산본역 가지 않는 버스라 다른 버스 타야한다고 사람들이 얘기하는데 계속 오락가락 하신다. 우리 집 근처에 내리면 산본역 가는 마을 버스가 있으니 저를 따라 내리라고 말씀 드렸는데 사실 속으로 그러고 싶지 않았다. 얼른 가서 준비해도 2~3시간 걸릴 텐테 길 막히기 전에 출발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꾹 누르고 할아버지를 뫼시고 내렸는데 이분이 더 오락가락 하신다. 금정역 간다 하셨다가 산본1동 간다고 하셨다가 몇 번을 말을 오락가락 하시고, 걷는 것도 상당히 불편해 보였다. 에라. 늦게 가면 가지 뭐, 하면서 찬찬히 할어버지의 행선지를 확인하는데 결론은 군포역 앞에 있는 결혼식장 가는 것. 할아버지 혼자 횡단보도 건너기 위험할 것 같아 같이 모시고 우리집과 반대쪽으로 가는 버스 정류장으로 안내를 해 드리고 집으로 올라갔다. 오랜만에 ‘착한 일’ 한번 했다는 생각도 하면서(착한 일을 한다는 의식이 없이 해야 진짜 착한 일인데 하는 생각도 하면서...)

짐을 허겁지겁 싸고 차에 실으니 땀이 비오듯하고 급하게 서둘다 보니 문단속도 제대로 안됐었나 보다. 다음날 우리 집에 온 신문을 치우러 찾아오신 아버지께서 우리집 현관이 제대로 잠겨 있지 않더라는 전화를 하셔서 경악했다.


우리 식탁에 날아왔다가 준기에게 잡힌 여치. 관찰하고 나서 풀어 주었습니다. 그래도 여치는 많이 놀랐겠죠?

아무튼 경춘고속도로 위에 올라서니 그래도 아직은 여유 있는 속도. 맘 속으로 꿈에 본 데크 4개를 되새기며 열심히 달렸다. 현지아빠님은 일이 밀려들어 도저히 이번 모임에 동참할 수 없게 됐다고 연락해 주시고, 게다가 회사에서는 날아온 전화는 예산 심의를 지금 들어갔다고 일요일까지 할 것 같다면서 오늘밤과 일요일에 사무실에서 대기해 달라는 연락이 왔다. 내가 차를 돌릴 수도 없고 구조조정 워낙 심하게 해 놔서 대신 해 줄 인력도 없고...주말마다, 또는 일요일에만 골라서 예산심의 하는 것 같아 열도 났다. 사실 다 바빠서 그렇다는 것을 이성적으로는 이해하지만 감성적으로는 열 밖에 나지 않는다. 예산 담당 부서에 ‘나도 할 만큼 했다. 이젠 니들이 방어해라. 빼째라!’ 하고 싶었지만 사무실에 남아 있는 막내 직원에게 대기하다가 긴급상황 발생하면 연락을 달라고 해 두고 6시 조금 지나 홍천 IC를 빠져 나왔다. 여차하면 가족 모두 차 안에서 하룻밤을 자야 할 상황. 이때 걸려온 미확인 전화 한통. 배달은석님의 목소리. 부인의 휴대폰이라면서 혹시 방태산 오고 있냐고 물어 본다.


저녁 산책길(8월15일) 이단폭포 올라가는 중입니다.

이를 두고 천사의 목소리라고 해야 하나? 오늘까지 야영하려고 비용을 지불 했는데 지금 나가야 할 상황이라고 청소년지구 야영장으로 오라고 한다. 갑자기 머릿속을 울리는 환희의 송가. 오늘 낮에 만난 할아버지에게 왠지 잘 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심하게 들었었는데 그 보답을 이렇게 빨리 해 주시남? 하는 단순한 생각도 하면서 여유를 좀 가지면서 달렸다. 연료가 달랑달랑해서 아내가 저기! 하는 주유소에 들어가 기름을 넣고 나니 불과 1분만에 2주전에 넣었던 리터당 1백원 할인할 수 있는 카드제휴 주유소가 나온다. 현지아빠님은 아내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온다는데 나는 아내 말을 잘 들으면 매번 꽝이라고 아내에게 농을 던졌다.

저녁 7시 10분쯤 휴양림 도착해서 야영장으로 올라가 작년 청옥산 야영 이후 배달은석님 부부를 오랜만에 만나 반갑게 인사를 했다. 배달은석님이 짐을 정리하는 동안 먼저 쌀을 꺼내 밥 지을 준비를 했다. 사방에서 날아오는 구수한 밥 냄새와 음식냄새 때문에 배가 많이 고팠다. 배달은석님이 떠나고 어둑해진 가운데 텐트를 쳤다. 데크가 작아서 우리 텐트 하나 올라가니 공간이 20cm밖에 남지 않았다.


추위를 몹시 타는 연우. 겨울에 쓰는 1인용 담요를 두르고 이단 폭포로 올라갑니다. 앞에 가시는 분은 유진맘님.

야영객들 곳곳에서 숯불을 피워 고기를 구워먹고 있다. 준기도 숯불구이 먹고 싶다고 하고. 하지만 방태산에서는 휴양관 앞만 제외하고는 금지하고 있는 사항. 준기에게 후라이 팬에 고기 볶아 먹자고 달래고 밥을 지었다. 세면장 같다 온 아내가, 2군데 데크는 타프만 쳐 놓고 있는 집도 있다고 한다. 잠은 다른 데크에 텐트 쳐 놓고 자고, 놀 때는 타프만 쳐 놓은 데크에서...지난 11일, 12일 내린 폭우 때문에 모두 강제 철수 시켰다가 다시 들어올 때 이런 빈익빈 부익부가 생긴 모양이다. 2주전 눈 내릴 때 나간다는 어르신 부부는 여전히 그 자리에 그 모습 그대로 야영하고 있더라고 아내가 전해준다. 해서 일부러 찾아가 인사를 드렸더니 몹시 반가워 한다. 12일날은 철수령이 내려 다들 폭우 속에 텐트를 걷고 나갔지만 이 분은 텐트를 그냥 두고 산 아래 민박집에서 하루 주무시고 다시 올라오셨다고 한다. 정말 대단하신 분이다.

그 사이에 이미 8시 50분. 혹시나 싶어 차를 끌고 안내소를에 내려갔다. 벌써 내 앞에 한분이 먼저 오셔서 대기 중이다. 나도 두 번째에 줄을 섰다. 준섭맘님과 나연맘님도 거의 도착할 때가 되었다는 연락이 온다. 그 사이에 네 사람이 더 왔다. 조마조마하다. 10번 안으로 번호를 받아야 할텐데. 아내가 전화를 했다. 반찬을 넣어 둔 아이스박스를 내리지 않아서 저녁을 못 먹고 있다고. 헉! 지금 되돌아 올라갈 수도 없고. 번호표 받아서 빨리 올라가겠다고 하고 시간이 가기를 초조히 기다린다.


유진맘님이 이름을 얘기해 주시길 물봉선이랍니다.
이단폭포 앞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꼭 신라나 가야 사람들이 쓰던 뿔잔처럼 생겼습니다.

사람들이 먼저 접수해 주면 안돼냐고 한마디씩 했지만 휴양림 직원들은 게시해 놓은 원칙대로 해야 시비가 없다고 10시에 접수 시작한다고 다시 한번 얘기했다. 사무소 팀장은 나를 알아본다. “아니, 다녀 가신 지 얼마 됐다고 또 오셨습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너무 하시는 것 아닙니까?” 하고 웃는다.

“이번에는 자의반 타의반입니다 ^^, 그리고 청소년 지구 야영장에 한 집에서 데크 두 개씩 사용하는 곳도 3군데나 있던데 거기 비하면 양반이죠.” 했더니 어제 그제는 야영장이 상당히 비어 있어서 어쩔 수가 없었단다. 여기에도 빈익빈 부익부.

9시 좀 넘어 은주아빠가 전화를 했다. 줄 서 있다고 했더니 “상린아빠님 잡아 놓은 민박집에 가서 텐트를 치시지 뭔 생고생인가요. 나는 그리 못합니다”하며 웃는다. 상린아빠님의 확인전화가 다시 오고 이어 이어서 유진아빠께 전화해서 내가 대기하고 있으니 걱정말고 아침에 출발하라고 전화를 했다. 9시 40분쯤 준섭이네와 나연이네가 도착해 일단 줄을 먼저 섰다. 혜원이와 준섭이, 그리고 나연이가 씩씩하게 뛰어와 반갑게 인사를 한다. 준섭이가 준기를 찾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준기를 데리고 내려올 걸..하는 생각이 든다.


가족지구야영장에서 저녁을 먹습니다.

2주 전에는 밤새 차를 세워놓고 대기하느라 외통길에 차들이 오도가도 못했는데 휴양림 관리사무소에서 방법을 바꾸었다. 밤 10~12사이에 관리소에서 대기자에게 접수번호를 차례로 부여하고 다른 숙소에 가서 편히 자고 다음날 08:50분까지 관리소 앞으로 오면 순서대로 데크를 부여하겠다고 한다. 가족이 있는 사람들은 대기하기에 훨씬 편해졌다. 10시에 나는 2번, 준섭이네가 7번, 나연이네가 8번으로 접수했다. 두 분은 늦은 밤에 낯선 곳에 가서 텐트를 치는 것보다 여기 공터에 치고 하루밤을 새우는 게 낫겠다고 하신다. 벌써 다른 가족이 텐트를 쳤다. 남은 공간은 텐트 한 동 정도 들어갈 만큼. 얼른 직원주차장 공터에 텐트를 하나 치고 아이들은 거기에 들어갔다. 내일 아침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배고프다고 아우성치는 아이들을 향해 야영장으로 올라갔다.

10시 30분에 올라와 좁은 공간에 쭈그리고 앉아 헤드렌턴을 켜고 오징어 볶음으로 늦은 저녁식사를 마쳤다. 얼른 양치질을 한 다음 아이들을 재웠다. 밤 12시가 넘어 혼자 샤워장으로 올라갔다. 땀을 많이 흘려서 그런지 2주전과 달리 물이 별로 차지 않다. 날씨가 그만큼 더워진 것인가? 찬물로 샤워하고 머리감고 누우니 뽀송뽀송한 침낭이 천국 같다. 정말 몸도 마음도 바쁜 하루였다. 데크가 계곡 바로 옆이라 물소리가 엄청나다.

 

8월15일(토)

새벽, 잠자는 도중에 갑자기 온 숲속의 상쾌한 정기가 내 몸 안으로 밀려들어 오는듯한 느낌. 조금 불편했던 무릎이랑 어깨에서 상쾌한 느낌이 나고 더부룩했던 뱃속이 청소한 듯 가벼워진다. 아침인가 싶어 일어났는데 3시 45분.

오줌 누러 화장실로 올라가는데 그 시간에 들어온 등산객들인지 맨땅에 2~3인용 작은 텐트를 바닥에 치고 3팀이 술자리를 벌여 놓았고. 타프를 친 데크에도 그 시간까지 술자리를 이어가고 있다. 취사장 옆 공터에는 1인용 비박텐트 속에서 비박하는 두 사람이 있다. 대한민국에는 대단한 사람이 정말 많은 것 같다. 하늘에 그믐달이 초롱초롱하고 별이 쏟아져 내린다. 야영장에는 지난번과 달리 밤새도록 가로등을 끄지 않는다. 다시 들어가 잠을 청한다. 플라이 입구 쪽만 이슬이 맺혔다.


곰배령 가는 길. 노란조끼는 탐방안내소에서 지급하는 것입니다. 어린이는 입지 않아도 된다고 합니다.
얼마나 숲이 우거졌는지 ASA 800으로 놓고 사진을 찍었는데도 빛이 부족해 컴컴합니다.

아침, 눈을 뜨니 6시 15분. 일어나 텐트 밖으로 나오니 숲을 감싸고 있는 자욱한 안개. 오늘도 무척 더울려나. 숲 속은 추위를 느낄 정도라는데 나는 너무나 상쾌하고 기분이 좋다. 심호흡을 하고 주변 청소를 한 다음, 작은 나무에 작년에 묶어 놓은 듯한 낡은 노끈을 올라가 끊었다. 선명하게 남아 있는 노끈이 파고 든 자리. 한여름 야영객들 가운데 행락에만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 너무 많다. 노끈은 물론이고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나무 밑둥에 그냥 방치해 나무뿌리가 썩어 쓰러지는 거목들이 많다는 뉴스를 보았는데 우리 데크 앞 소나무도 자동차에 치이고 긁히고 해서 상처에 송진이 흐르는 녀석이 있다. 휴양림 데크 사이로 다람쥐들이 열심히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주워 먹는다. 맨날 사람들이 먹던 것만 주워 먹다가는 겨울에 도토리랑 밤을 어떻게 까서 먹으려고 저러나....

아침을 준비하고 있는데 유진이네가 5시에 출발해서 거의 다 왔다고 연락. 9시쯤에 도착 가능하다고 한다. 필요한 것이 없냐고 다시 물어본다. 아침을 얼른 먹고 준섭이 보겠다는 준기를 태우고 안내소로 내려갔다. 대기자 22명. 나온 데크는 24개. 다행이다. 그런데 혜원이가 손에 붕대를 감고 있다. 으잉? 준섭맘이 지난 밤에 혜원이가 가스렌턴을 만져서 화상을 입었다고 한다. 밤에 병원을 찾아 인제까지 나가서 응급조치는 했는데 서울에 화상전문병원에 전화를 했더니 시간이 지나면 안된다고 빨리 데리고 오라는 연락. 하지만 혜원이는 오른손에 붕대 감고 있으면서 야영하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준섭, 혜원, 나연 셋은 목공예실에서 열심히 뭔가를 만들고 있다.

준기와 준섭이는 이산가족 상봉하는 것 같은 분위기다. 너무 너무 좋아하는 준섭이와 준기. 함께 목공예하면서 신이 났는데 혜원이 치료 때문에 바로 돌아가야 한다는 얘기를 듣자 아이들 모두 야영하자고 고집을 부린다. 준섭이는 혼자 남아도 준기랑 야영한다고 해서 준섭맘만 괜찮다면 준섭이 우리가 데리고 있다가 집으로 보내겠다 했지만 그렇게까지 폐를 끼칠 수 없다고 하여 어쩔수 없이 집으로 가야만 하는 상황. 순간 준기는 눈물이 그렁그렁...대신 오서산 밤따기 할 때는 꼭 같이 가자고 준섭맘님이 달래고..나는 슬퍼하지 말고 짧은 시간 동안이지만 저기 계곡에서 물놀이라도 함께 하라고 아이들에게 얘기했다. 준섭이는 그 짧은 시간에 해 데크 번호표 받는 동안 둘은 앞 계곡으로 뛰어 내려갔다.


곰배령 가는 길. 강선마을 근처에서 찍은 작은 폭포. 이런 폭포가 상당히 많습니다.
그냥 풍덩 뛰어들고 싶은 곳입니다만 무척 춥습니다.

번호표를 나눠주기 전에 관리사무소 직원은 아름다운 계곡을 오래 보전하려면 여러분 모두 깨끗하게 사용하고 금지 규칙을 잘 지켜 주셔야 한다고 당부했다. 아침에도 고기를 굽고 있는 몇몇 가족들을 보고 내려온 터라 처벌 없는 규칙이 얼마나 사람들을 개선시킬 수 있을까 회의가 살짝 들었다. 협조를 하겠지만 여기저기서 날아오는 숯불구이 냄새는 계속 갈등을 일으킬 것이고 규칙을 지켜 가스렌지에 구워먹는 사람과 이웃에서 숯불을 구워먹는 사람 간에 비교가 안 될 수가 없다. 절대적 진리를 추구하는 성인군자들만으로 된 세상은 없으니까. 아침도 거의 못 먹고 데크 확보에 목매달고 있는 처지에 별 형이상학적인 배고픈 생각을 다 한다고 속으로 한번 웃고...

준섭맘님께 오늘은 데크 사정이 좋으니 귀가하시기 전에 준섭맘님 차례에 만약 가족지구 데크가 남는다면 그걸 선택해서 저에게 주십사고 부탁했다. 4팀을 가능하면 가까운 곳에 모두 모으려는 생각이었는데 현실적인 확률이 매우 낮을 거라 생각했다. 헌데 생각보다 가족지구 야영장 데크가 많이 나와서 잘하면 이곳으로 옮겨와 유진네랑 같이 있을 수 있겠다 싶다. 여기서라면 휴양관까지 가서 숯불구이 해 먹을 때 이동거리가 짧아서 좋을 것 같고 마당바위가 가까워 물놀이 하기에 좋을 것 같다. 준섭맘님이 그렇게 해 주시겠다고 하셔서 나는 가족지구 2번 데크를 잡았다. 다행히 사람들이 대부분 청소년 지구 야영장을 선택해 준섭맘님 차례에 계획대로 3번 데크를 확보할 수 있었다.


곰배령 가는길, 강선마을에서 옛날처럼 키우는 닭.

이때 유진네가 도착했다. 서로 인사를 시켜 드리고 오늘 바로 돌아가야 한다는 상황설명을 했다. 함께 하지 못하는 안타까움. 지난밤에 하루를 세운 보람이 없어진 아까움. 아쉽고 섭섭해 하는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손을 흔들며 다음을 기약했다. 아침을 드시고 가셔야 하기에 근처에 두부로 유명한 맛집을 찾으신다. 상린아빠님 블로그에서 예전에 본 기억이 있어 상린아빠님과 주은아빠께 연락해 고향집(031-461-7391) 전화번호를 찾아 네비게이션으로 찾아 드리고 아쉬운 이별. 혹시 병원에 가 보고 괜찮다고 하면 다시 오시라고 하고 배달은석님께 받은 데크는 반납하지 않고 갖고 있겠다고 했다. 어차피 오늘 들어오는 사람보다 데크가 많이 나왔으니....

준기 데리고 야영장 올라가 짐을 싸서 유진이네와 같이 가족지구로 내려갔다. 유진이네는 중간에 타이어가 펑크 나서 고치느라 시간이 많이 지체됐다고 한다. 새벽에 출발하지 않았더라면 도착하는데 애를 먹었을 거라고 한다. 아마도 개학 전 마지막 주말인 학생들이 많아서 여행 떠난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 우린 그런 생각도 없이 틈만 나면 짐싸는데....현실과 많이 동떨어진 생활인가? 텐트를 치는 동안 준기는 식탁으로 날아온 여치를 잡았다. 관찰만 하고 반드시 다시 돌려 보내기 할 것을 환기 시키고...


아내가 찍어준 사진 가운데 최근에 제일 잘 나온 듯.
뒤에서는 유진아빠께서 유진맘님을 찍고 있습니다. 제 뒤에 수백년 된 나무가 있습니다.

점심 때 휴양관 앞에 가서 고기 구워 먹자고 했다. 점심 때는 휴양관 사람들 가운데 숯불구이 하는 사람도 거의 없고, 또 점심 때 먹으면 활동하는데 에너지로 쓰지만 저녁에 먹으면 잠자면서 모두 살로 갈 것 같아 점심때 먹는 게 좋겠다고 했다. 하지만 가족 야영장에 도착하니 고기 굽는 냄새와 숯불연기가 야영장을 가득 채우고 있다. 데크에 텐트를 치고, 점심 먹으며, 우리도 작게 피워서 먹자고 굽기 시작. 원리원칙을 철저하게 지키는 유진아빠지만 작은 유혹에 슬쩍 넘어가는 인간적인 모습도 좋다. 웨버에 숯을 넣고 훈연을 하면 거의 표시가 나지 않는데 화로에 구우니 연기 징하게 퍼진다. 가족 야영장은 계곡 건너편에 지나다니는 휴양림 관리직원들에게 누가 뭔 짓을 하는 지 한눈에 금방 띄는 자리. 결국 주의 받고 잠시 후 종료(원칙을 지키려는 고생을 감수할 것인가? 남들이 깨는 원칙을 함께 깨뜨려 조금 편해 볼 것이냐? 이것에 대한 고민은 나를 포함한 소시민 누구나 피해갈 수 없는 덫이겠지요?). 차라리 한 곳을 정해 거기에서 숯불구이를 할 수 있게 해 주었으면 정말 좋으련만...

숲속 그늘에서 구워 놓은 고기를 안주 삼아 느긋하게 계곡물을 바라보며 자연냉장고에서 막걸리, 소주, 맥주를 차례대로 꺼내 천천히 즐기고, 수박도 먹고, 낮잠도 자고, 유진이의 종횡무진 태백산 종주기를 실감나고 재미있게 듣고 배꼽을 잡고 웃기도 했다. 정말 명랑 쾌활한 소녀. 아마 그 여행이 유진이 평생에 아주 진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누구는 입시 때문에 태백산 종주에 참여하기도 한다는 놀라운 사실도 처음 들었다. 아이들 키우는 이야기하며 정말 오랜만에 야영장에서 만난 즐거움을 만끽했다. 두 분은 내일 곰배령 탐방 4명을 예약해 놓았다고 하신다. 8시 출발 팀이라 아이들은 그 시간에 일어나지 않을 것이니 이번에는 부부 4사람만 갔다오자고 한다. 이렇게 고마운 선물을.....위로 2단 폭포까지 아래로 휴양관까지 산책을 하며 휴양림의 오후를 여유 있게 즐겼다. 유진아빠님 새로 산 렌즈로 열심히 테스트도 하고, 재미있는 표정과 동작으로 휴일의 여유를 맘껏 누려본다. 준섭맘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다행히 혜원이는 치료만 하면 괜찮을 거라고 한다.


곰배령에 도착하면 눈을 시원하게 해 주는 하늘꽃밭.

오후 늦게 한 분이 우리 주변을 돌며 애타게 빈 데크를 찾고 있다. 우리 데크에 오더니 오늘 나가는 팀이 있느냐고 물어 본다. 데크 배정 방법을 설명해 주고 오늘 24개 데크가 나왔는데 빈 데크가 없더냐고 물었더니 다 배정된 모양이다. 너무나 간절한 그 분의 얼굴을 보며 준섭이네가 혹시 돌아오면 쓸 생각으로 갖고 있던 데크 번호표를 그 분에게 드렸다. 데크 사용료를 주겠다고 하는 것을 거절했다. 나에게 선의를 갖고 데크를 양보해 주신 분들과 또 가족을 위해 데크를 간절히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이만한 행운은 거저 나눠 줄 만하지 않은가? 어제 우리가 생각지도 못하게 받았던 데크가 우리를 얼마나 기쁘게 했던가. 7천원으로 7만원 이상의 행복과 과분한 감사 인사를 받은 것으로 충분했다.

밤 10시가 넘어서야 곰배령 탐방 출발지점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공공기관 직원들은 모두 퇴근했을 시간. 어쩔 수 없이 휴양림 안내소에 내려가 인터넷 검색을 해서 그 근처에 있는 카페 전화번호를 알았다. 연락을 했더니 카페에서 4백미터만 더 가면 출발점이라고 알려 준다. 내일 우리 차를 타고 가기로 하고 네비게이션 검색해서 세팅완료. 계곡 바람이 시원하고 좋은데 여자분들은 춥다고 한다. 화롯불도 피우지 못하게 하니 가스렌턴을 켰다. 야영의 최대 장점을 꼽으라면 많은 대화와 자연현상과 생활패턴이 일치가 되는 점이다. 대화 분위기를 돋워 주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 가스렌턴은 나름 괜찮은 도구다. 전기가 없으니 해가 지면 자고 해가 뜨면 일어나는 생활이야말로 가장 원초적인 모습이 아닐까? 그러고 보니 오늘 대충 세수만 하고 머리도 감지 않고 이도 닦지 못했다. 그냥 문명화의 때를 벗지 못한 덜 된 원시인. 거울도 없으니 편하다. 어떤 모습이었을까? 여행을 계속 할수록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횟수는 줄어든다.


성영아빠님이 오셨으면 저 봉우리들 이름을 다 가르쳐줬을텐데....하면서 웃어봅니다.

가족 지구는 데크는 크고 좋은데 계곡 바로 앞이라 다이빙대 높이만큼 되고 물 소리가 너무 커서 좋지 않다. 밤에 놀 때야 좋지만 야영을 해 본 사람이라면 절대 이런데다 야영장을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해가 지자 습기 때문에 침낭이랑 텐트도 눅눅하다. 눅눅함을 불평하는 아이들과 아내를 위해 재작년에 자형에게 얻어 둔 핫팩을 꺼내 하나씩 침낭 속에 넣어주고, 나도 하나 시험삼아 써 보기로 했다. 가족 지구에는 계곡 물이 바로 앞이라고 그러는지 샤워장이 없어서 땀을 흘린 다음 씻는 게 영 불편하다. 화장실은 청소년 지구 보다 깨끗하고 취사장이 아주 가까운 것이 좋긴 했지만...세수하고 발만 씻고 침낭에 들어가니 상쾌한 잠자리가 아니다. 폭포 같이 떨어지는 물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꿈나라로 들어갔다.

8월16일(일)

아침 5시 35분 기상. 7시에 휴양림을 출발하기 위해 머리감고(사진 찍을 거니까 ^^) 세수하고 배낭을 챙겼다. 사진기, 사과 4개, 물병을 챙기고 유진이네가 가져온 옥수수를 쪄서 한 개씩 먹고, 나머지는 아이들 먹을거리로 남겼다. 빵도 1개씩 먹고 네 사람만 곤히 잠든 아이들을 두고 7시에 곰배령을 향해 우리 차에 네 명이 타고 출발했다. 휴양관 아래쪽 주차장에서 방향을 돌리는 대형 버스를 만났다. 우리가 비켜갈 길도 내주지 않은 채 방향을 돌리는데 아무리 봐도 초보 운전자가 분명하다. 앞길을 막고 있어 시간 늦을까봐 조마조마한데 이 차는 큰길까지 계속 앞길을 막으며 간다. 안내소에서 2번 데크는 반납하고 3번 데크만 오후까지 쓰기로 했다.

곰배령 찾아 가다가 진동산채 식당에서 점심 먹자고 찜해 두고. 속도를 냈다. 인적이 드문데 완만한 경사지라 아무 좋은 풍경이다. 아침가리골을 지나며 가을에 한번 단풍을 봤으면 좋겠다는 욕심을 또 내본다. 22km에 불과한 거리인데도 비포장 도로가 제법있어서 50분 걸렸다. 가는 길에 불쌍한 오소리 한 마리가 차에 치여 죽어 있다. 비포장 도로에 들어서자 아무도 없을 것 같은 숲 속 곳곳에 민박집, 팬션, 카페가 줄지어 있다. 대형버스를 타고 단체로 오는 사람들도 있나보다. 혹시나 예약하고 못오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했는데 곰배령에 오겠다는 사람들 가운데 그런 경우는 거의 없나보다. 탐방로 앞에 도착해(주차비 3천원) 예약자 이름 확인하고 개별 조끼를 받아 입고 올라갈 준비를 했다. 8시에 출발하는 우리팀을 이끌 숲해설가는 상당히 늦는 모양이다. 우리 탐방객들만 먼저 올라가라고 한다. 곰배령 정상 너머는 국립공원이므로 출입금지라면서 지켜 달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조끼는 반드시 반납해야 하고. 그러니까 조끼는 원점 회귀를 위한 인질인 셈?


우린 잘 찍어 줬건만 정말 성의없이 찍어 주신 어떤 분의 희안한 인증 사진. 이게 뭡니까?

삼삼오오 사람들을 따라 산길을 올라가는데 사람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는 극상림 숲은 서어나무 군락이 많고 모든 것이 깨끗하다. 햇빛은 숲을 사이사이에 뚫고 들어와 빛내림 현상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준다. 대나무 마디 같은 마디마디가 특징인 속새군락을 지나고, 옛날 화전민 마을이었던 곳에 심어놓은 잣나무 군락. 그리고 마지막 마을인 강선마을 전방 1.3km 표지판. 강선마을에는 닭을 방사하는 집도 있고 토종벌을 치는 집도 있다. 인공적인 자재를 많이 쓰지 않고 지은 집과 장독대는 가진 것은 별로 없었지만 참 편안했던 어린 시절 우리집을 보는 것 같다. 몇백년 된 거대한 나무. 넓은 계곡, 징검다리, 멧돼지를 막기 위한 나무울타리. 사람의 손길을 타지 않아 쓰레기가 없는 깨끗한 숲, 맑은 계곡, 작은 폭포들...국립휴양림을 다니며 좋은 숲을 많이 봤지만 곰배령은 그에 못지 않은 조용한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역시 자연은 사람이 더럽히지 않는 것이 정말 중요한 모양이다.(곰배령 정상에서 발견한 담배꽁초는 정말 기분이 나빴다.)

길을 오르내리며 여기 사는 사람들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 은퇴후 귀농에 대한 가능성, 아이들 교육에 대한 서로의 생각, 아이들의 천재성과 재능에 대한 이야기들. 정말 자연휴양림을 통해 너무 너무 좋은 이웃을 사귀었음에 감사하고 이런 행운을 누릴 수 있음에 감사했다. 아이들의 천재성과 재능을 부모가 기다려 주지 않고 발견하지 못해 꺾어 버리는 잘못을 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고 서로의 얘기에 진심으로 공감을 했다.


아쉽게 흔들렸지만 표정 정말 좋은 두분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고 노래했나 봅니다.

아침을 부실하게 먹고 출발한 길이라 그런지 시원한 숲속인데도 땀이 비오듯 한다. 곰배령 못미쳐 평평한 바위에 앉아 사과 1개씩 나눠먹고 사진기는 배낭에 집어 넣었다. 사진을 찍어봤자 실제 풍경에 미치지 못하고 직접 와서 보는 게 좋을 것이고 그리고 너무 힘들고....생각보다 오래 걸린 등산길. 완만한 트레킹 코스가 대부분이라 조금 지루한 느낌이 들 때쯤 도착한 언덕마루. 2시간 넘게 걸린 듯. 마치 5월처럼 화사하게 온 천지에 핀 아름다운 꽃.

작년 8월1일에 봤던 방태산 구룡덕봉의 꽃밭보다 훨씬 아름답고 멋진 꽃밭, 그리고 더위를 날려 버리는 탁 트인 시야와 상쾌한 바람. 사람이 별로 없는 호젓함이 주는 잔잔한 평화. 땀을 흘리며 올라올 만한 곳이었다. 예약자 중에 오지 않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다들 빠짐없이 올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시 한번 유진네 가족에게 감사. 오래 있고 싶었지만 아이들 걱정에 20여분 만에 산을 내려오기 시작.

내려오다 잠시 휴식하며 복숭아를 나눠 먹고 있는데 검은색과 갈색이 섞인 황조롱이(?) 한 마리가 계곡 낮은 수풀 사이에서 소리도 없이 날아오더니 순식간에 아내의 뒤편 둔덕에 있는 쥐를 사냥해 수풀 속으로 번개처럼 사라지는 모습을 보았다. 날개 소리조차 나지 않는 완벽한 비행. 쥐의 비명만 없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없는 훌륭한 사냥꾼 황조롱이. 카메라를 들고 있었지만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찍을 틈도 없었다. 이런 희귀한 모습을 직접 본 것만으로도 일생의 귀한 행운으로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솔바람의 식물박사 유진맘님이 앉은부채라는 식물을 보더니 설명해 준다. 멧돼지가 좋아하는 식물인데 저걸 먹으려고 온 산을 다 파헤친다고 한다. 다음에 산에 가다가 저 식물이 보이면 그 길은 피해야 겠다. 집에와서 찾아보니 앉은부채는 독성이 있다고....


오랫만에 만났으니 여러장 찍어도 되죠?

휴대폰이 되지 않아 아이들 소식이 궁금했는데 12시쯤 주차장에 돌아와서야 연락이 되었다. 지환이가 라면을 끓여서 나누어 먹고, 빵도 먹고, 다른 간식거리도 찾아 먹고 잘 놀고 있다는 연락. 돌아오는 길에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이야기, 부부간에 가족간에 대화없이 평생을 지내다가 퇴직 후에 “낯선 당신”이 되어 갈등을 겪는 사람들 이야기를 하며 가족이 함께 하는 시간들을 소중하게 해야 하는 것에 120% 공감하며 휴양림으로 돌아왔다. 그 와중에도 자료를 요청하는 감독관청 과장의 전화....나야 반갑긴 했지만 다들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 지. 레알 마드리드는 노는 것을 잘 기획해서 연간 1조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는데 우리도 좀 놀면서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법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휴양림에 돌아오니 12시 50분.

반납한 우리 데크 옆에는 벌써 다음 사람들이 들어와서 기다리고 있다. 서둘러 짐을 유진네 데크로 옮기고 빨랫줄을 널어 습기 가득 찬 침낭, 텐트를 널어서 말리며 맘님 두 분이서 전을 부칠 준비를 했다. 지환이가 요리에 관심이 많다고 해서 재료준비는 엄마들이 하고 처음 두어 장을 부친 다음에는 지환이가 전을 부쳤다. 요즘 아이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놀라운 요리 솜씨에 막걸리 한잔, 남은 맥주 한잔...간식으로 한 장씩 먹고 먹다가 어느새 다 사라지고. 옥수수 먹고, 남은 라면 5개 끓여서 먹고, 수박, 복숭아 먹고 유진아빠 말씀대로 정말 휴양다운 휴양을 즐겼다. 그리고 유진아빠는 꿈나라로..그리고 나도 유진네 텐트에서 아주 달콤한 한시간 낮잠. 아이들 모습을 보며 그 사이 많이 자랐다는 느낌. 정신적으로도 많이 큰 듯.

준기는 어제 내가 봤던 도마뱀을 발견하고 먹는 것에 동참하지 않고 열심히 바라본다. 지환이가 빗자루를 가지고 나무로 올라가는 도마뱀을 쓸어 내리니 준기가 질색을 한다. 나무위로 올라갔던 도마뱀은 한참 있다가 다시 내려왔다. 준기는 꼬리와 몸통 색깔이 다르다고 아마 꼬리를 한번 잘랐던 도마뱀 같다고 한다. 다람쥐도 사람들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아주 가까이 다가와서 심지어 사람들에게 밟힐 것 같은 불안감을 준다. 어제 우리에게 데크를 하나 얻어갔던 분은 오늘 나간 사람이 많은 지 가족지구 쪽 데크를 얻어 옮겨 왔다. 반갑게 인사를 하면서...

계곡에 발을 담그고 시원한 여름오후를 즐기며 “놀기 위해 일하는 사람”으로서 행복감에 젖어 본다. 유진이네가 검봉산에 야영데크가 있다고 해서 이번 주말에 우리 가족은 가리왕산 대신 검봉산 야영으로 급선회 했다.(돌아오는 길에 더 추워지기 전에 데크 위에서라도 비박 체험을 한번 해보자고 가족들을 꼬시고 있다. 어쩌면 더 간단한 장비로 야영의 재미를 느낄 수도 있을 것이라 설득하면서...별로 심한 반대를 안한다. 반대해도 내 고집대로 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어슬렁 어슬렁 야영장을 휘젓고 다니는 작은 도마뱀

황금색 햇빛이 비스듬히 계곡을 비추는 시간, 아쉬움을 접고 짐을 싸기 시작했다. 준기 맘은 나무젓가락으로 우리 데크 주변에서 우리 보다 먼저 버린거나 흘린 사람들 쓰레기까지 열심히 주워 쓰레기 봉투에 담았다. 짐을 정리해 휴양림을 나선 시간은 오후 5시. 관리사무소 앞에서 유진아빠는 2번데크 야영비라며 7천원 냈다. 관리직원의 의아한 표정. 오후 1시 넘었으니 하루치 더 내는 것 아니냐고 하니 그런 사람이 거의 없었던 듯 애매한 표정을 짓는 관리소 직원들. 유진아빠께서 “받으셔도 당연하고 안 받으시면 저는 좋고요 ^^” 하면서 웃으니 직원들이 웃으면서 됐다고 돌려주더란다. 대신 사용하지 않은 음식물 쓰레기 봉투는 그냥 반납하고.

안내소를 지나 좀 내려가다가 아내가 준섭이가 놓고 온 옷을 한번 찾아봐 달라던 준섭맘의 부탁을 상기시켰다. 아차! 싶어 차를 세우고 안내소에 연락해 놓고 다시 내려가는데 전화가 왔다. 직원들이 계곡에서 주워 놓은 옷이 있다고 와서 보랜다. 해서 차를 되돌렸는데 대형 버스가 밀고 내려온다. 피할 수 없는 외통길. 어쩔 수 없이 아찔한 길을 어렵게 어렵게 후진해서 한참을 내려왔다. 좁은 길에 양쪽 고랑에 처박거나 등산객들이랑 부딪칠까 진땀이 났다. 안내소에 올라가 확인해 보니 준섭이 옷이 맞다. 다시 유진이네를 쫒아 진동산채집에 올라가 저녁을 함께 했다. 목이버섯과 석이버섯을 먹어보라고 조금 내 주는데 특이한 버섯이다. 정말 맛있는 산채비빔밥을 먹고 6시 반쯤 유진네와 인사를 했다. 아쉬워하는 우리 아이들. 어쩌면 우리는 따뜻하고 다정하고 속 마음을 털어놓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이웃이 좋아서 휴양림을 열심히 다니는 것이 아닐까?


지환이가 전을 부치겠다고 해서 시범을 한번 보여주시는 중.
지환이가 부친 전을 아주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사위 삼고 싶으신 맘님들은 미리 줄을 서시오!!!!!  ^^;;

지난 번에 샀던 집에 들러 옥수수를 다시 사서 주유소에 들러 연료를 채웠다. 이제 집에 가는 길만 남은 셈. 주유소를 나와서부터 홍천 도착할 때까지 SUV차량 8대가 비상등을 켜고 시속 40km 속도로 달리고 있다. 동호회 회원모임인가? 느린 속도에 답답하게 늘어서는 차량들이 꼬리를 문다. 이건 교통방해다. 홍천 IC 진입하는 주변은 차가 엄청 막힌다. 경춘고속도 강촌IC에서 화도까지 34km 구간이 막힌다고 했지만 서울 진입 도로 가운데는 제일 나은 상황이라 그냥 홍천 IC올라 고속 주행 시작. 강촌IC 근처에 오자 막히기 시작한다. 상린아빠님 전화가 왔다. 유진네를 강촌휴게소에서 만났다고 한다. 강촌휴게소 도착하니 인산차해.

세면장에서 세수하던 중에 상린아빠를 우연히 만났다. 제대로 인사도 못드리고.. 오서산에서 만날 것을 기약하며 작별을 했다. 막 출발하려는데 앞서간 유진네에서 문자연락이 왔다. 꼼짝도 하지 않는다고. 다시 휴게소 가고 싶다고....출발을 미루고 연우가 산 오징어 구이를 간식으로 먹고 이를 닦고 10시 30분 다시 출발.

아이들은 유진이의 태백산 종주 여행기가 재미있다고 한다. “그럼 이번 여행기를 너희들이 한번 써 볼래?” 했더니 써 보겠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이젠 눈을 붙이라고 하고, 너희들이 가장 일어나기 싫은 상태일 쯤 집에 도착할 거니 깨우더라도 잠투정 하지 말고 얼른 집에 올라가 안락한 잠을 잘 생각을 하라고 미리 다독거렸다. 다행히 화도 IC를 지나 3차선으로 넓어지는 곳에서 제 속도를 회복해 12시 27분 집에 도착. 미리 알려준 때문인지 예전과 달리 별 투정 없이 일어나 얼른 베개를 들고 집으로 올라가는 두 아이. 제법 컸음을 많이 확인한 이번 여행이었다. 함께 못한 다른 가족들을 아쉬워하며 17번째 야영을 무사히 재미있게 마쳤다.

Posted by 연우아빠.

한여름에 입김 호호 불며 야영을 하다

2009.7.30~8.2(3박4일)

나도 정원 초과 하고 싶지 않다고요.

여름철 추첨에서 5년만에 당첨. 그것도 방태산 방태방. 작년에는 주워서 갔었는데 8월달 추첨에서는 탈락. 주어진 여건에서 활용성을 높이려고 같이 갈 일행을 수소문 했으나 다들 일정도 안맞고... 아버지는 너무 멀다고 자신 없어 하시면서 빠지겠다고 하고, 아내는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라고 나에게 얘기하지만 그 이유를 매번 고려해야 하는 것을 피하고 싶은 심정도 어느정도 있는 건 사실. 누나는 회사가 한참 바쁠때라 휴가를 낼 수 없다하고....그래서 너무 멀리 있어서 부르기 곤란하다고 생각했던 부산과 영주에 사는 동생들에게 의향을 물었더니 의외로 오겠다고 한다. 오랜만에 삼형제 가족만 함께 한 여름휴가.

29일 밤에 출발할 짐을 간단하게 챙기는데 아내가 한마디 던진다.

“야영 안해?”
(속으로 “아니 이게 웬일?” 하면서) “작년에 방태산 야영장 잡으려면 어떤지 겪어 봤잖나?”

“그럼 삼봉이나 미천골이라도 한번 들어가 봐야지. 2박 3일은 넘 짧잖아.”
“거기도 별반 차이 없을 걸”
“그래도 혹시 모르니 야영준비도 해 가지고 가자고!”

짐은 많았지만 속으로 얼마나 흐뭇했는지. 까짓거 하룻밤 줄 서서 자리 한번 잡아보지 뭐.

30일 오전 아내는 독서논술지도사 시험 치러 나가고, 그 사이에 자동차 정기검사를 갔다 왔다. 출발전에 곰배령 가보자고 신문 스크랩 한 것을 가지고 내려온 아내. 김밥 몇 개 사고 12시 30분쯤 출발했는데 양평에서 막힐 것을 생각해 새로 개통한 춘천고속도로를 이용했더니 방태산까지 겨우 2시간 30분. 갑자기 용화산, 삼봉, 방태산, 용대가 너무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민영 고속도로인 탓에 통행요금이 무려 6,400원(외곽순환도로와 44번 국도와 연결된 삼봉IC까지 포함하면 8,600원). 그래서 차들도 별로 없어 효과는 만점인데. 자고로 조세, 국방, 도로, 철도 등 사회간접자본을 민간에 맡겨서 오래 유지된 나라가 없다. 이건 국가가 해야 할 공공서비스고 우리 그 서비스를 무료로 이용해야 할 권리를 갖고 있는 납세자라고..... 뻥뻥 뚫린 고속도로를 무료로 질주하는 독일이 무척 부러운 순간이다.


방태산휴양림 청소년 야영장, 42번 데크에서 계곡 옆에 텐트를 친 모습을 봅니다.
정면에 보이는 3동은 7.31일 새벽에 제 뒤에 줄섰던 고교동창이라는 3가족입니다.

전날 날아온 문자가 조금 찝찝하다. “입실인원 초과하면 입실 거부합니다”. 작년에도 휴양림 관리소 직원과 한번 실갱이가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방태산 휴양림은 대기 1순위로 한달을 기다려도 도대체 예약을 취소하는 사람이 없으니 낸들 어쩌겠나. 조금 걱정스러웠는데 아니나 다를까 입구에서 규정인원 초과하면 벌점 부과한댄다. 최대한 자세를 낮추고 조용히 지내다 가겠다고 양해를 구하고 아이들에겐 절대 숙소 안에서 뛰면 안된다고 주의를 주었다. 아래층에서 시끄럽다는 항의가 들어오면 바로 퇴실조치한다는 어마어마한 조건을 걸고 입실하긴 했다. 요즘 야영장 사정을 물어보니 하루에 데크 10여개 정도는 교체가 된다고 하고 새벽 2시쯤 줄서면 가능하다는 얘기를 해 준다. 장담은 절대 못하고.

짐을 풀어놓고 저녁에 먹을 채소를 씻는데 손이 너무 시려서 호호 불어가며 씼었다. 밖에서 오랜만에 연우랑 배드민턴을 쳤다. 한시간 쯤 치다보니 5시쯤 막내동생이 도착했고, 둘째도 휴양림 입구라고 한다. 동생들 들어올 때마다 사람 숫자를 가지고 협박(?)을 하더란다. 내 돈 내고 들어온 곳이지만 이해한다. 당신들이 이 여름동안 얼마나 많은 민원에 시달리고 있는지...그래도 살짝 기분은 상한다.

휴양관 앞 데크를 잡고 오랜만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숯불구이 준비를 했다. 다른 집을 보니 다들 마트표 숯에다 번개탄 아니면 착화탄에 종이 불쏘시개에다가 부채질을 하면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아마도 여름에만 휴양림에 오시는 분들인 듯. 우린 은주아빠께 전수받은 경험과 나름 노하우가 많이 쌓여서 그물망 바닥에 불쏘시개용 마른 잔가지를 주워 깔고 그 위에 숯을 올렸다. 토치를 그물망 아래에 넣고 불을 붙이자 사람들이 손을 멈추고 우리를 신기한 듯 쳐다본다. 오랫동안 숯을 방안에서 냄새제거용으로 쓰다가 가져왔더니 습기를 머금은 듯, 2~3일 베란다에서 바짝 말렸는데도 조금씩 튄다. 그 소리에 사람들이 더 몰려오고.. 그러더니 옆에 자리잡은 가족이 착화탄에 불을 붙여 줄 수 있냐고 부탁한다. 우리 아래층에 들어온 가족이라 얼른 해 드리고 안면을 텄다. 이 집도 정원 초과한 듯해서 조금은 안심이 된다. 소세지를 구워 아이들을 먼저 주고 영주에서 사온 품질 좋은 목살을 직화로도 굽고 훈연으로도 익혀 맛있게 먹었다. 금년들어 한달에 한번 정도만 간신히 휴양림 출입을 한데다 숯불구이 금지 휴양림만 다닌 때문인지 준기는 “음, 숯불구이야 반갑다!”하면서 너스레를 떤다. 그동안 못만나 안달을 하던 아이들은 사촌들끼리 휴양림이 좁다고 뛰어다니면 놀고 제비처럼 가끔 들어와 한입씩 받아먹고 간다. 남은 불로 감자를 굽고 그래도 남은 숯불은 웨버에 넣어 밀봉해 불을 껐다.


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모습. 엄마없으면 절대 가만히 있지 못하는 네살된 질녀가 야영장 숲속에서 혼자 낮잠을 잡니다.

저녁을 먹고 야외 식탁에 앉아 느긋하게 차를 마시며 숲을 즐기자고 했지만 모닥불을 금지하고 있는데다 해가 넘어가고 나서는 기온이 뚝 떨어지는 다들 방안으로 들어가자고 한다. “시원해서 아주 좋은데....”라는 혼자만의 아쉬움을 접고 정리하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방안은 다락이 있어 어른 6명, 어린이 7명이 잠자는 데는 문제가 없지만 생활하기에는 좁긴하다. 이번 휴가기간 동안 뭘 할거냐고 아내가 묻길래, “이 많은 사람이 어딜 움직이겠냐고요. 그냥 숲속에서 숲을 즐기다 가는 쪽으로 하자고요. 부산에서 언제 방태산까지 와보겠어요?”라고 못을 박았다. 저녁 먹는데만 3시간 가까이 썼으니 다들 그냥 수긍하는 분위기.

건강을 위해 그리고 가족간 유대를 위해 아이들 어릴 때 여행도 자주하고 야영도 하라고 동생들에게 권유하며 함께 나이들어가는 동생 가족들의 건강을 걱정해 준다. 이번에는 아이들이 많아서 등산은 하지 않을 것이고, 2km 정도 되는 순환산책로나 숙소에서 야영장까지 오르내리는 길을 돌아볼 것을 권했다. 아이들은 밖에서 자기들끼리 잘 놀고 있길래 어른들만 데리고 이단폭포 구경 가자고 나섰다. 숙소에서 얼마 되지 않는 곳에 가족야영장을 들러 휴양림 야영장은 어떤 환경인지 설명해주고 2단 폭포를 향해 올라갔다. 이 길에는 길을 밝히는 불빛이 전혀 없다. 헤드렌턴은 내가 가진 것 2개 밖에 없고 인기척이 없으니 갑자기 오싹한 느낌이다. 중간 쯤 가다가 다들 돌아가자고 해서 내려오는데 동생이 얘기한다.

“이럴 때 뒤를 돌아보면 안돼!”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제수씨들이 뒤를 돌아보면서 “옴마야!”하면서 호들갑을 떤다. 이걸 시작으로 돌아가면서 어렸을 때 귀신얘기, 호랑이 얘기를 하고, 무서운 경험담이며 급기야 “빨간 종이를 줄까? 파란 종이를 줄까?”하는 아내의 이야기가 나왔을 때는 나도 갑자기 오싹해졌다. 역시 두려움은 심리적인 것이라고 하지만 캄캄한 산길에서 담담할 장사가 어디 몇이나 될까나?

한밤중에 줄을 서시오!


휴양관 위쪽 마당바위. 튜브를 가져 갔어야 하는데...그래도 작은아빠가 가져온 튜브랑 보트를 타며 즐겁게 잘 놀았다고 하네요.

숙소로 돌아와서 가져간 가벼운 침낭은 모두 사용하도록 내려놓고 혼자서 차를 끌고 어두운 길을 짚어 안내소로 내려왔다. 여기까지 왔는데 혼자서 하룻밤만 고생하면 여름철 방태산 야영기회를 가질 수 있겠다 싶어 야영 대기줄에 서기로 했다. 아내가 내일 아침에 내려가면 안되냐고 하는데 아무래도 확실하게 해 두는게 좋을 것 같았다. 헌데 안내소는 불빛도 없고 입구는 차단기를 내려놓은 채 관리소 짚차로 가로막아 놓았다. 나갈 수가 없는 상황. 2~3분쯤 고민하고 있는데 눈을 비비며 직원 한사람이 나온다. 내일 야영 번호표를 받고자 대기하려고 왔다고 하니 그냥 이 안에 있어도 된다고 한다. 입구에 1대가 와서 대기 중인데 그분에게만 말해두면 되지 않겠냐고 하면서. 하지만 밤새 먼 길을 달려올 사람들에게 그렇게 하면 새치기 당하는 느낌을 줄 것 같아 나가서 대기하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차를 치우고 밖으로 나가 두 번째에 차를 댔다. 밤 11시 30분. 의자를 뒤로 젖혀 침낭을 펴서 덮고 잠을 청했지만 영 불편하다. 4년전 덕유산 휴양림에서 폭우를 만나 우리가 예약한 산막이 침수돼 4인실에서 11명이 자고 아버지와 둘이서 차 안에서 새우잠을 자던 생각이 났다.

이럴만한 가치가 있나? 이거 괜한 욕심 아냐? 싶기도 하고,

아냐! 이런 경험도 나름 재미있잖아. 언제 이런 경험 다시 해보겠어. 그나마 숙소가 당첨돼서 이렇게 느긋하게 대기하고 있으니 지금 이리로 열심히 달려오고 있는 사람들에 비해 얼마나 여건이 좋으냐고...하룻밤 이렇게 자고 나면 한여름 성수기에 방태산 야영장에서 야영을 편안하게 할 수 있으니 충분한 값어치가 있다고...속으로 자문자답하며 빙긋 웃었다.

시트에 누워 잠자는 게 아무래도 불편해 이리저리 뒤척이고 있는데 밤 12시 조금 넘어 또 한 대가 도착했다. 부인에게 야영 짐 가운데 몇 개 빠진 것을 타박하는 남자 목소리. “내가 회사에서 돌아오기 전에 미리 준비를 해 두라고 했는데 이게 뭐냐?”며 티격태격한다. 차를 내 뒤에 대지 않고 관리소 옆 공터에 대고 작은 텐트를 꺼내 거기에 잠자리를 만든다.

“저러면 내일 다른 사람들에게 순서 가지고 시빗거리가 될텐데”

잠이 달아나자 또 불편한 시트가 영 맘에 안든다. 결국 2열과 3열 시트를 완전히 펼쳐 두 다리를 쭉 뻗고 자는 쪽으로 낙착. 자리를 다시 잡고 막 잠을 청하는데 내 뒤로 또 한 대가 들어와 차를 댄다. 새벽 1시.

“대단한 사람들이군!”


사진은 결코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준기가 혼나고 있는 것 같은 모습 같지 않나요? ^^

얕은 잠을 자는 동안 어느새 날이 밝고 사람들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아침 6시 15분. 관리사무소 앞에는 대학생인 듯한 사람 두명이 서 있다. 아마도 야영 데크번호표를 받으려는 모양이다. 휴양림 밖으로 나가는 사람들 때문에 관리소 직원이 바리케이트를 잠시 치우고 9시부터 접수번호를 부여한다고 알려준다. 뒤를 돌아보니 내 뒤에 7대가 더 서 있다.

“생각보다 많지 않네!?”

차 안에서 사람들이 하나 둘 나와 서로 이야기했다. 주로 수도권에서 오신 분도 있고 연령대도 40대, 50대, 60대 다양하다. 내 뒷차에는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녀 3쌍이 한차로 오셨는데 각각 데크를 하나씩 받는다고 하니 그 뒤에 서신 분이 걱정이 가득하다. 마지막에 선 분은 새벽 2시에 도착했다고 한다. 7시 반쯤 직원이 나와서 도착 순서대로 번호를 적었다. 일단 11번까지 줄 선 분들은 차단기 안으로 들어오도록 했다. 학생 두명은 아래쪽 민박집에 머물고 있는데 차가 없는 자기 같은 사람들은 표를 못받느냐고 항의했지만, 도착 시간을 확인해보니 6시. 결국 둘은 포기하고 민박집으로 돌아갔다.


베테랑의 포스가 보이는 위쪽 데크의 텐트.
부부께서 한 달 째 야영중이라고 합니다. 빨래집게와 보조폴을 이용해 완벽한 비닐하우스를 만드시고
데크보다 긴 텐트를 지지하기 위해 나무로 만든 틀까지 덧대어 장기야영자세가 완벽한 사이트입니다.
이 분들은 눈 내릴 때 쯤 내려간다는 우스개를 하십니다. 무척 부러운 모습.

야영장 확인하는 직원이 내려올 때까지 기다리며 서로 인사를 나누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야영에 한가락 하는 사람들도 있고, 여름에만 야영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 분은 고등학교 다니는 아이를 데리고 야영을 다닌다고 하는데 필요한 소품은 자기가 직접 만들어 쓴다고 한다. 국립휴양림 야영장을 안가본데가 없다고 하시는 분이 계셔서 물어봤더니 경기도와 강원도에만 국립휴양림이 있는 줄 알고 계셨다. 이런, 세상은 넓고 고수는 많다. 방태산 휴양림 개장하기 전부터 여기를 다니셨다는 50후반 아저씨는 세상에 20년 정도 방태산을 다니면서 주억봉을 한번도 올라가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아침가리골만 열심히 들락날락.. 사람의 취향은 참 다양하다. 서로 알고 있는 정보를 주고 받으며 심심함을 때우고 있을 때 야영장에 올라가신 분에게 무전 연락이 왔다. 오늘은 야영장에서 나가는 팀이 11개란다.

그 동안에도 차단기 바깥에는 10여대 넘게 줄을 선 차가 있다. 앞에 아무도 없으니 좋아라 하셨다가 이미 새벽 두시에 도착한 사람이 11가족이나 있고 야영장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을 듣고는 실망이 크시다. 휴양림 직원은 야영데크 예약제를 하면 관리비용 때문에 하루 3만원 정도로 금액이 올라갈 거라고 한다. 줄 선 사람들 모두 데크 예약제는 반대란다. 3만원이나 돈을 내면서 위치도 주변 지형지물도 모르는 데크를 누가 예약을 하겠냐고. 휴양림 숙소도 여름에 추첨제가 아니라 평소처럼 선착순으로 하는 게 옳다고 다들 한마디씩 하신다. 나도 데크 예약제랑 숙소 추첨제 반대다. 잠시 기다리는 동안 숙소로 올라가 어제 먹다 남은 구운 감자 두 개를 가지고 안내소로 다시 내려왔다. 그걸로 아침을 때우고...


야영장에서 엄마에게 엉겨 웃고 있는 준기. 세상에 걱정근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금년부터 방태산도 목공예 체험을 무료로 실시한다고 해서 아이들을 불러왔다. 목공예실이 작아서 연우와 사촌 희원이 둘만 들어가고 다른 애들은 나중에 해보자고 돌려 보냈다. 10시쯤 야영장 징수직원이 표 11개를 가지고 내려왔다. 가족야영장 1개가 있길래 내심 그걸 바랬는데 앞에 있는 분이 그 표를 가져간다. 부부만 오셨는데 제일 큰 데크를....나도 모르게 “그거 저에게 양보하시면 안될까요?” 하는 말이 튀어 나왔다. 하지만 누가 그걸 양보해 주겠어. 우리 텐트가 올라갈만한 크기인 42번 데크를 받았다. “드디어, 한여름 성수기에 방태산 야영을 하는구나” 아이처럼 신이 났다. “어렸을 때 해 봤어야 할 일을 뒤늦게 하는데도 그렇게 좋을까?” 아내가 한마디 던진다.

둘째 동생은 아침에 매봉령을 다녀왔다고 한다. 아침을 먹고 나서 오늘 생일을 맞은 조카 둘을 위해 케익을 마련했다. 한 녀석은 아침에 생일 케익을, 다른 녀석은 저녁에 케익을 자르기로 하고. 다들 서로 촛불을 끄겠다고 나서서 결국 촛불은 세 번을 끄게 되고...모두들 밖으로 내 보내 마당바위에서 물놀이를 하도록 했다. 수영을 배웠기에 튜브 같은 물놀이 도구를 가지고 오지 않았는데 수영을 할 만한 장소가 아니라서 연우랑 준기는 입맛만 다시고 말았다. 점심을 먹고 마당바위 물속에 드러누워 감전된 듯 짜릿한 차가움을 느끼며 한여름 더위를 날려보내다가 혼자 야영장으로 올라갔다. 막내는 옥수수를 사고 자동차 연료도 충전할 겸 아이들을 남겨놓고 밖으로 나갔다.


방태산 야영장에 사이트를 구축하다


청소년 야영장 한 가운데 자리잡은 42번 데크. 야영 16번만에 제대로 모든 것을 설치해 봅니다.
휴양림 야영장은 나무와 경사진 터 때문에 가는 곳마다 사이트 구축이 쉽지는 않습니다.
2시간 동안 치고, 이틀간 보강해서 이런 모습을 만들었습니다. 그 덕에 시간은 잘 갑니다.

텐트를 치고 있는데 위쪽 텐트에서 막 퇴직하신 듯한 분이 나오셔서 혼자 야영 왔냐고 물어보시더니 도와주신다. 앞에 자리한 텐트에서는 퇴직 하신 지 꽤 오래 된 듯한 분이 오셔서 관심을 보이시고...나중에 알고 보니 위쪽 텐트에 계신 분은 부부만 방태산에 여름부터 눈이 올 때까지 야영을 하신다하고 앞쪽 텐트에 계신 분은 한달 이상 동안 친구, 후배, 가족을 파트너로 번갈아 맞이하면서 함께 야영을 하신다고 한다. 성수기 직전에 여유 있게 들어오셔서 명당에 자리잡고 계시니 야영을 즐기시는 분에게 이보다 더 좋은 조건은 없을 듯하다. 앞쪽 텐트에 계신 분은 야영장비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분으로 내가 직접 만든 소소한 물품에 대해 관심이 많으시다. 그 분 질문에 대답하다 보니 내가 갖고 있는 장비들은 세트로 된 것은 하나도 없다. 두 분 모두 오랜 야영경험이 묻어나는 사이트를 구축해 놓으셨다. 주변에 텐트는 일반 야영장과 달리 형형색색 한가지도 같은 텐트가 없다.

탁 트인 평지가 아닌 곳이라 타프 설치하는 장소마다 여건이 달라서 고생을 하는데 빨리 치라고 성화를 하는 사람이 없으니 이모저모 궁리해가며 다음에 어떻게 사이트를 구축하는 게 편리한지 차근차근 생각해가며 작업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동생들과 조카들이 모두 올라와 사이트와 야영장 환경을 보더니 무척 땡기는 모양이다. 꼬맹이들은 야영장 주변에서 놀잇감을 찾아 신나가 놀고 아직 뛰놀지 못하는 막내동생네 조카 둘은 어느새 텐트 안에서 잠이 들었다. 휴양관 앞과 야영장은 10도 정도는 기온 차이가 나는 것 같다. 시원한 바람과 숲내음에서 제대로 된 “휴양”을 느끼고 숲속에 빠져 들어간다. 아내도 이젠 야영이 주는 편안함 때문에 휴양관 보다 야영장이 좋다고 한다. 숙소에 내려가 저녁을 먹고 아내와 준기 그리고 준기 형아를 졸졸 따라다니는 다섯 살짜리 조카 녀석 이렇게 네 사람은 야영장으로 다시 올라왔다.(요 녀석은 준기 형아 쫒아 다니느라 작년 5월달에 노고단에도 혼자 걸어 올라갔던 녀석이다)


사이트 윗쪽에 있는 나무에 독버섯이 보입니다. 꽤 예쁘던데요.

앞 텐트에 계시는 할아버지는 이것저것 궁금한 것이 많다. 우리가 저녁 먹으로 내려간 사이에 우리 텐트를 보다가 타프 스토퍼를 보고 한참을 들여다봤단다. 이 분, 나름대로 국내에 있는 거의 모든 장비를 다 알고 있다고 자부하시는 분인데 당최 처음 보는 스토퍼라 궁금해서 내가 올라오기만 기다렸다고 한다. 칫솔로 집에서 만든 것이라고 했더니 옆 텐트 아저씨도 불러서는 감탄을 거듭하신다. 수십년 야영 경험에서 나온 온갖 장비 얘기랑 산속에서 야영하신 경험담이 술술 나온다. 이 분은 비싼 외제 장비로 도배를 하고 다니는 요즘 세태가 별로 맘에 안들기도 하고, 또 국산제품들 너무 성의없게 만들어서 외국제품들이 밀려들어오게 만드는 것도 맘에 안들고, 싼 것만 찾아서 전체적으로 질을 떨어뜨리는 소비자들도 비판하신다. 내가 갖고 있는 물건이야 여기저기 따로따로 사 모은 것하고, 집에서 혼자 만든 것하고, 다른 폐품에서 재활용 하는 것이니 자기 취향에 딱 맞으신 듯 가족들 제껴놓고 우리 쪽에 자주 오신다.


8월2일 아침에 아주 큰 나방 한마리가 나무둥치에 앉았습니다.
맞은 편 사이트에 계신 할아버지 말씀이 얼마 못가서 죽는 나방이라고 합니다.
날아가지도 못하더군요. 거의 10cm는 돼 보이는 엄청 큰 나방이었습니다.

밤이 되니 겨울처럼 입김이 하얗게 나온다. 겨울 침낭을 2개만 가져오고, 4계절 침낭 4개를 두겹씩 겹쳐 쓰려고 가져왔는데 아무래도 춥지 않을까 싶다. 아내와 5살짜리 조카에게 겨울 침낭을 줬다. 자다가 오줌이 마려워 새벽 2시에 깼는데 차가운 기온 때문에 머릿속이 따갑다. 아내가 “한여름에 추워서 떨다니 제대로 된 피서네” 하는 것을 보니 이젠 제법 이런 환경에 익숙해 진 듯. 어쩌면 야영하는 분들은 몸에 열이 많은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남녀 모두 찬물만 나오는 샤워장에서 태연히 샤워를 하고, 이런 기온 속에서도 반팔소매, 반바지 입고 다니는 것을 보면. 따뜻한 모닥불이 있으면 참 좋을 것 같은 그런 환경. 텐트 안에는 이슬이 맺히지 않았는데 플라이 입구에만 이슬이 맺혔다. 볼일을 보고 다시 잠을 청했다.

누군가 우리를 깨운다. 눈을 떠보니 부산 제수씨. 시계를 보니 6시가 좀 넘었다. 숲이 우거진 야영장이라 다른 휴양림보다 야영장이 어둡다. 등산로 입구까지 올라가보려고 나섰는데 아무도 없고 큰 짐승을 만날까봐 같이 가려고 우리텐트로 왔다고. 얼른 옷을 입고 아내와 함께 셋이서 산으로 올라갔다. 하산길 입구까지 약 1시간 정도 걸어 들어갔다가 되돌아 나왔다. 입구 갈림길에서 방태산에 대한 정보도 없이 조개화석이 나오는 봉우리를 가겠다고 혼자 등산을 오신 분이 있어서 아마도 배달은석을 찾는 것 같아 주억봉을 거쳐 가는 길을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나도 작년에 멋모르고 혼자 일주를 했지만 역시나 혼자서는 위험하다. 코스도 길고, 큰 산이라 위험한 짐승을 만나거나 조난을 당하면 곤란하기 때문에 최소한 두 명 이상이 같이 움직이고 방태산 휴양림 전화번호를 가지고 등산을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이번 여름에도 상당히 많은 비가 온 듯 곳곳에 나무 다리가 제자리에서 옆으로 많이 밀려나 있다. 제수씨는 가을에 한번 와 봤으면 좋겠다고 한다. 하지만 부산에서는 너무나 먼 길...이번에도 오는데 8시간 걸렸다고 한다. 신불산과 영남알프스가 부산에서 다니기에 정말 좋은 곳이니 이번 10월달에 억새 구경하러 내려갈 때 부르겠다고 약속하고 아이들과 함께 아침 먹으러 숙소로 내려갔다.


짜잔! 정상정복! 택도없는 나무 밑둥치 위에 올라가 정상정복을 외치는 준기.
준기 뒤에 있는 텐트는 정말 크더군요.

퇴실준비를 마치고 마당바위에서 기념촬영을 한 다음 두 동생네는 휴양림을 떠났다. 아이들을 위한 별다른 프로그램이 없었지만 오랜만에 만난 사촌들끼리 너무 재미있었다고 한다. 방태산 우거진 숲이 주는 즐거움이 도시에서 갇혀 자라는 아이들에게 큰 선물이 되었으리라 생각해 본다. 막내 동생은 야영을 본격적으로 해 보고 싶어하는 눈치이고, 둘째 제수씨도 휴양림 여행에 너무 즐거워해서 영남알프스를 계절별로 다녀보라고 권했다. 아쉬운 작별을 하고 더 뜨거워진 햇살을 피해 야영장으로 올라왔다.

아침에 야영데크 배정문제로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고 한다. 다들 차를 차례로 대고 기다렸는데 아주머니 몇분이 자기들이 먼저 왔다고 해서 시비가 붙었고 결국 휴양림 측에서 줄선사람 1명, 차량대기 1가족 이런 식으로 지그재그로 데크를 배정해 평소처럼 차를 대고 밤새 기다렸던 사람들이 항의를 심하게 하고...결국 휴양림에서 데크 배정을 차량 주차 순서대로 한다고 공고문을 써서 붙였다고 한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이런 사회 정말 짜증이다. 연우가 휴양림 밖에 나가보자고 했지만 이 더운 날에 더구나 휴가 피크라는데 어딜 나가겠냐 싶어 살살 달래서 야영장 안에서만 놀았다. 점심으로 간식으로 라면을 끓여 먹고 잠깐 사이에 아내와 연우는 시원한 텐트 안에서 세상 모르게 잠이 들었다. 나도 낮에 자고 싶은데 이상하게 야영장에서 낮잠을 한번도 자질 못했다. 설거지를 하는데 물이 너무 차가와 뼈가 시리다. 다른 사람들은 세제가 잘 씻겨 나가지 않는다고 하고 특히 기름이 묻은 식기는 더 그렇단다. 내 뒤에서 밤을 샜던 아저씨께서 원두커피 찌꺼기로 기름묻은 그릇을 닦으면 아주 잘 닦을 수 있다고 하고, 맞은 편에서 설거지 하던 분은 쌀뜨물에 밀가루를 풀어서 닦으면 좋다고 한다. 손을 호호 불어가며 설거지를 마치고 준기와 함께 야영장 옆 개울에 내려가 바위에 앉아 얼음 같은 물에 발을 담궜다. 신음소리가 저절로 난다.

오후 3시쯤 둘째네가 인제에서 물놀이 하다 엄청난 소나기를 만났다고 전화를 했다. 그때부터 천둥이 치면서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온다. 다들 플라이나 타프를 치는데 어떤 텐트에는 커다란 비닐을 꺼내 데크 전체를 덮어 버렸다. 방태산 야영장은 나무가 우거져서 심한 바람이 숲 위로 지나가는 관계로 비닐을 쳐도 바람에 날릴 일은 없을 것 같다. 나도 재작년 검마산에서 달새님께 받아 두었던 비닐을 꺼내 타프로 가리지 못하는 데크 부분을 가려서 비에 젖지 않게 했다. 내일이면 철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몹시 아쉽다. 비구름이 몰려오자 다섯 가족이 철수를 했다. 그 데크는 순식간에 다른 사람들이 올라와 텐트를 편다. 일반 야영장에 가야할 거대한 텐트도 들어왔는데 360cm × 310cm 데크에 올라가질 않는다. 한순간 쏴아 하는 소리와 함께 야영장 숲 꼭때기 부분이 흔들린다. 하늘에는 비가 내리는 것이 분명한데 야영장 숲속은 빗물이 떨어지지 않는다. 울창한 숲은 비를 한참동안이나 막았다. 땅은 전혀 젖지 않고 10분쯤 내리던 비는 그쳤다. 야영장에서는 숯불 사용을 금지하고 있어 김치찌개를 끓여 저녁을 먹었다. 아이들은 일기를 쓰는 동안 물을 끓여 물병에 담아 유담포처럼 아이들 침낭 속에 밀어 넣었다. 아쉬운 야영의 마지막날 그냥 쉰다. 방태산 여름 성수기 야영을 해본 것에 나름 만족하며 잠을 청했다. 너무 추워서 샤워를 생략했다. 앞으로 항상 겨울 침낭을 챙겨가지고 야영을 다니리라.

아쉬운 귀가


방태산 2단 폭포. 17-70mm 광각렌즈는 상단과 하단 폭포를 한 화면에 다 잡더군요.

8월2일 한밤중에 2번이나 잠을 깼다. 너무 차가운 날씨 때문에 자주 화장실에 가야 하는 게 조금 흠이다. 계곡에서 제법 떨어진 곳에 자리잡았는데도 물소리는 정말 크다. 아침밥을 해먹고 아쉬운 짐을 쌌다. 3박4일 휴가는 너무 짧지 않냐고 앞 텐트에 계신 어르신이 섭섭해 한다. 다음에 다른 야영장에서 또 만나지 않겠냐며 악수를 청하신다. 손이 참 두텁고 따뜻한 분이다. 이런 곳을 찾는 분은 다들 온화함이 배어있어 마음의 평화를 더 많이 느낀다.


엄마에게 물 공격 했다가 된통 당하는 준기. 그래도 즐거운가 봅니다.

내려오다 이단폭포에 잠시 내렸다. 폭포 앞에 도착하니 서늘한 물보라가 차가운 기운을 뿜어 낸다. 한여름에 이보다 더한 천국이 없다. 새로 산 렌즈로 들여다보니 상단과 하단 폭포가 모두 파인더 안에 들어온다. 이 맛에 광각렌즈를 쓰겠지. 다음을 기약하며 방태산을 벗어나 근처에서 맛있는 찰강냉이를 한푸대(20개) 사서 싣고 홍천으로 내려왔다. 작년에 먹었던 장원막국수가 생각이 나지 않아서 양짓말화로구이에 들렀는데 이젠 그만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고기는 기름이 지나치게 많고 너무 많은 손님 때문에 밥 먹는 즐거움이 없다. 자욱한 연기와 뜨거운 열기 때문에라도 맛집이라는 유명세에서 이젠 벗어나야겠다. 홍천IC를 거쳐 춘천 고속도로를 타는데 라디오에선 고속도로마다 막히지 않는 곳이 없다고 하고 특히 영동고속도로는 세군데가 수십 km씩 막힌다는 소식. 여긴 비싸서 그런지 잠시 지체만 있었을 뿐 그야말로 고속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창문을 여니 시원한 수리산 바람이 내가 휴양림 같은 숲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


폭포 옆에 핀 며느리밥풀꽃.
이현세의 만화 <며느리밥풀꽃에 대한 보고서>를 대본소에서 봤을 때 며느리밥풀꽃이 어떻게 생겼나 되게 궁금했는데
특이한 모습에 슬픈 전설이 깃든 꽃이네요. 어쨋거나 며느리는 힘든가 봅니다.

Posted by 연우아빠.

아이들을 데리고 올라간 방태산 주억봉

일정 : 2008.7.31~8.2(2박3일)
동행 : 유진이네 가족

* 그냥 기록차원에서 정리만 해놓고 올리지 않으려고 했는데 유진맘님 한말씀에 마음이 약해져서 걍 올립니다. 
   유진이네 버전도 기대하면서....특히 김유진 표 설악산 등산기^^

★ 정말 어려운 방 잡기

8월달 휴양림 추첨, 예년과 다름없이 모두 물먹고 줄서기와 낚시에 매진하고 있던 중 7월17일 방태산 당첨자 가운데 숙박을 포기한 예약자의 취소분 하나를 운좋게 주웠다. 8월1일 점봉방. 작년에도 여름 방태산에 한번 가보려고 대기를 해서 6개나 1순위를 잡았으나 한달동안 단 한 군데도 취소자가 없었던 터라 용꿈 꾼 기분이었다. 더 이상 취소분이나 대기를 해 봐도 희망이 없을 것 같아 방태산 야영을 주말에 할 계획이었지만 우연히도 유진이네가 예약을 한 곳도 같은 방이고 날짜도 7월31일이라 유진이네 제안으로 방태산에서 최소한 2박3일은 할 수 있는 행운을 잡게 되었다. 회사일정 때문에 틀어질 것을 대비해 아예 2주전에 휴가원을 냈다. 7월25~27일까지 남도 여행을 하고 왔지만 휴양림 정기를 받아 그런지 몸 상태는 아주 좋았다.

 

★ 길에서 시간 다 버린 여정

7월31일 아침, 5시 30분쯤 눈을 떴다. 짐을 챙겨 테트리스 하듯 차곡차곡 차에 집어 넣었다. 잘 챙겨 넣으니 뒷열 의자 높이와 거의 같은 수준으로 짐을 정리할 수 있었다. 나름 흐뭇함. 그러나, 가족들은 세월이 가도 출발시간은 개선될 기미가 안보인다. 이번 주가 최대휴가인파일 것이라 예상하는 방송도 나와 길에서 시간을 다 버릴 것 같아 일찍 출발하자고 입이 닳도록 얘기했지만 굼뱅이 걸음은 하나도 개선되지 않았다. 9시부터 준비를 시작한 것이 11시가 거의 다 돼서야 출발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시골에 남매계 모임에 가신다고 해서 이번에도 함께 하지 못했다. 외곽순환도로에 올라서서 평촌을 지나면서부터 막히기 시작한다. 갑갑하다. 유진이네는 오후 2시쯤 출발한단다. 하남에서 외곽순환도로를 나왔으나 길은 더욱 막힌다. 한강 남쪽을 따라 양수리까지 가서 양근대교 쪽으로 접근하기로 하고 달렸다. 하지만 잠시 잘 나가던 이 길도 88번 도로 입구부터 하염없이 기어간다. 양근대교를 건넌 것이 1시가 훌쩍 넘은 시간. 중간에 강원도자연환경연구공원(033-433-1994)을 찾아 구경하려고 했으나 기약이 없고 간신히 2시가 넘어서야 6번 국도에서 제대로 속도를 낼 수 있었다. 장원막국수(033-435-5855)집에 들러 시원한 막국수를 먹고 유진아빠 생각나서 옥수수동동주 1병을 샀다. 집에서 2년째 잠자고 있는 산삼주 한병도 챙겼는데 이틀동안 이거면 될려나? 하면서 휴양림 가는 길을 재촉했다. 강원도자연환경연구공원은 돌아가는 날 찾아보기로 하고 인제 입구에 있는 강원참숯에 들러 숯 5kg을 사서 휴양림에 도착하니 5시가 넘었다. 200km도 안되는 길을 6시간이나 걸린 것이다. 이틀치 모두 체크인을 하려고 했더니 그렇게는 안된단다. 내일 것을 내일 내려와서 체크인을 따로 하란다. 손님 귀찮게 만들 필요가 없을 듯 한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점봉방에 짐을 내려놓으니 유진이네는 1시간 쯤 있으면 도착한다는 연락이 왔다. 얼른 밥 지을 준비를 해 놓고 준기를 대리고 계곡으로 내려갔다. 얼음처럼 차가운 계곡물에 세수를 하니 비 오듯 흘린 땀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기분이다. 그동안 비가 많이 온 듯 계곡물이 많이 불었다. 물놀이를 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역시나 물이 차갑다. 휴양관 앞에 숯불구이 통이 4개밖에 없는데 벌써 두 가족이 차지하고 있다. 얼른 짐을 갔다 놓고 아이들에게 지키라고 하고 저녁준비를 시작했다.

 

★ 맛있는 저녁, 행복한 이웃

6시 조금 넘어 유진이네가 들어왔다. 유진이는 사촌과 함께 용대휴양림에서 5박6일 수련회에 가서 지환이만 데리고 들어오셨다. 자주 보는데도 여전히 반갑다. 반가운 인사를 하고 씻어 둔 채소를 들고 먼저 자리를 잡으러 내려왔다. 토치로 숯에 불을 붙이는데 장마철에 만든 숯이라 그런지 불꽃과 숯 파편이 사방으로 튄다. 잘못하다간 화상입을 것 같은데 다음에는 숯불구이 통에 토치를 걸고 멀찌감치 피해 있을 수 있도록 고리를 만들어야 겠다. 마나님들이 준비한 음식을 모두 챙겨 내려오고 아이들도 작은 것 하나씩 들고 내려와 모두 자리를 잡았다. 유진이 아빠 주려고 집에서 가져온 산삼주를 꺼냈다. 옥수수동동주는 내일 등산가서 마시자고 한다. 신불산 가신 현지아빠께서 산삼 한뿌리 발견하셨을까 얘기하며 유진이네가 가져온 장어를 구웠다. 양념을 발라 잘 구운 장어를 먹으니 별미다. 아이들은 가시가 있다고 징징거리는데 싫으면 먹지말아라 내가 다 먹을란다 하며 맛있게 쌈 싸먹었다. 밥은 일부러 적게 했는데도 나만 두 그릇 먹고 그냥 남았다. 장어양념구이를 끝내고 목살을 굽는데 옆에 남은 식탁에 한 가족이 내려왔다. 경험이 많지 않으신 듯 불 피우는 게 영 신통치 않다. 유진아빠가 토치를 들고 가서 숯불 붙이는 방법을 알려주시고 직접 붙여 주시고는 꽁치 3마리를 받아왔다. 흐흣 ^^

맛있는 목살에 꽁치구이까지 골고루 맛보면서 산에서 불어오는 계곡 바람에 한기마저 느끼는 시원한 휴가를 맛본다. 숲에서 맛보는 고기에 가장 알맞은 술은 역시나 소주인가 보다. 유진아빠는 산삼주 반쯤 마시고 소주로 바꿨다. 나를 빼고 어른 셋이 산삼주 >소주 >옥수수동동주로 권커니 잣커니 한다. 물컵과 술잔을 같이 쓰다 보니 준기 녀석이 소주가 담긴 컵을 물인 줄 알고 마신 모양이다. 맛이 이상하단다. 아이고 이런....

41번째 휴양림 여행을 하게 되니 사진찍기가 게을러 진 것일까? 이야기하며 먹는데 열중하느라 사진기는 꺼내지도 않았다. 유진아빠 형님이 농사지은 초대형 수박이 나왔다. 45리터 아이스박스에 간신히 들어갈 정도로 큰데다가 맛도 정말 일품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단맛이 골고루 배어 있다. 역시 좋은 이웃 근처에 살아야 이런 행운도 있는 것이다. 시중에서 쉽게 맛볼 수 없는 상등품 수박의 아삭하고 단 맛은 서늘한 계곡바람과 함께 신선이 된 느낌을 준다. 빗방울이 두어방울 떨어지는 것을 핑계로 타프를 치고 유진맘께서 끓여주신 밀차(밀차였나 메밀차였나 뭐였더라? 단기 건망증이 심해지는 40대 중반이라 이젠 메모지를 달고 살아야 할 듯)로 뱃속을 따뜻하게 보하고 나니 한여름 밤의 휴가가 무릉도원 같다. 내일 등산을 위해 11시쯤 자리를 파하고 잠을 청했다.

★ 겨울 같은 주억봉 등산

8월1일 아침, 눈이 저절로 떠졌다. 창문 위로 하늘이 보인다. 아! 어렸을 때 한여름 서늘한 마루에 누워 하늘을 보고 이렇게 편안하게 여름 하늘을 쳐다본 것이 얼마만인가? 지난 주 낙안과 천관산의 느낌과 완전히 다른 서늘함이 온 몸을 편안하게 감싼다. 숲은 온통 짙은 안개에 둘러 싸였다. 유진아빠가 새로 산 캐논 450D를 들고 이단폭포에 가보자고 한다. 카메라 사용법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해 주고 유진아빠는 이단폭포와 주변을 열심히 찍으며 기계적응에 몰입했다.


2일 아침, 비를 맞아 더욱 초록빛 가득한 휴양관 앞 나무들


마당바위에서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는 유진아빠

아침을 먹고 아이들을 데리고 주억봉에 올라가기로 했다. 우리는 빵이랑 물만 가지고 올라갈 생각이었는데 유진이네는 유부초밥 재료를 준비해 와서 초밥을 싸고 컵라면 2개와 보온병에 물을 끓여 넣었다. 거추장스러울 것 같은 짐을 줄이려고 카메라는 50mm 단렌즈로 바꿔 끼웠다. 소매가 긴 등산복과 방풍자켓은 필요 없을 것 같아 뺐다. 우리 차에 모두 타고 등산로 입구까지 올라가는데 야영장은 꽉 찬 상태다. 데크 바로 옆에 차를 대도록 만들어 놓아 조용한 야영은 힘들 것 같은 분위기다. 아침에 유진아빠가 확인해 보니 매일 대기자만 25가족 정도라고 한다. 빠져 나가는 데크는 하루 10개 남짓...작년 맨땅 야영 때문에 불거진 민원 탓인지 휴양림 안내소에서 아주 딱딱하게 운영하나 보다. 어제도 체크인 하는데 그냥 둘러보러 온 사람들도 입장을 시키지 않고 다 되돌려 보내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등산로 입구 주차장에는 차가 10여대 남짓 밖에 없다.


매봉령 올라가는 길

11시 20분 우리는 왼쪽 매봉령(해발 1,249.2m)을 향해 출발했다. 계곡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과 이따금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은 땀으로 젖은 몸을 시원하게 감싼다. “산 위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 그 바람은 좋은 바람 고마운 바람” 노래가 절로 난다. 비가 많이 와서 그런지 등산로 두어 곳은 계곡물이 차지한 도랑이 되었다. 투덜거리고 지치지도 않고 종알대는 아이들을 달래서 완만한 계곡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능선이 보일 때 쯤 드디어 자세를 바꿨다. “자꾸 징징 거리면 여기 버리고 간다” ㅎㅎ. 효과가 좀 있다. 아이스크림 카드는 좀 더 있다가 내 놓아야겠다.

중턱쯤부터 주억봉 근처까지 멧돼지가 그랬는지 산을 온통 밭을 갈아놓은 듯 뒤엎어 놓았다. 산에서 멧돼지를 만날까봐 은근히 걱정이 들었다. 이거 호랑이라도 한 마리 방목해야 하는 것 아닐까 싶을 만큼 맷돼지 흔적이 너무 많았다. 산에서 아주 드물게 사람을 만났다. 이 시기에 여기까지 등산하러 오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인지 우리가 너무 늦게 등산을 나선 것인지. 아무튼 초겨울에 본 방태산과는 너무 다른 밀림 같은 방태산이었다. 처음에 완만하게 시작하는 매봉령 올라가는 길은 중턱쯤부터는 심한 경사길이라 아이들이 점점 짜증을 냈다. 그래도 올라간다. 니들이 결국은 올라갈 것이기 때문에.

오후 2시가 거의 다 돼서 매봉령에 도착했다(출발점에서 3.1km). 바람이 얼마나 심한지 한기를 느꼈다. 유진이네가 가져온 컵라면을 연우랑 준기가 거의 다 냠냠 해 버리고 유진이네가 준비한 작은 돗자리를 펴고 음식을 내 놓았다. 연우에게 냉두드러기 증세가 나타나서 유진이네가 가져온 비옷을 입혔다. 그러고 보니 거의 다 유진이네가 준비해 온 것이로군. 우리는 자두 14알, 빵, 그리고 얼음물. 한여름인데도 매봉령에서 부는 바람은 작년 10월 하순 영하 10도가 넘던 그날 그 바람이랑 별반 차이를 못느낄만큼 차갑다.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하늘을 완전히 가린 구름이 꼭 비가 올 것 같다. 잠시 갈등하다가 유진이네가 비옷 하나를 더 챙겨왔다고 해서 그냥 구룡덕봉으로 가기로 했다. 차 안에 아이들 비옷이 다 있는데 필요없을 것 같아 그냥 두고 온 것이 후회스럽다. 좀 무겁더라도 장거리 산행인만큼 챙겼어야 했는데. 작은 돗자리도 차 안에 그냥 두고 왔으니 앉아서 쉬는 것은 포기. 갑자기 저 너머에서 오토바이 소리가 요란하다.


매봉령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구룡덕봉(해발 1,388.4m)까지 1.5km인데 여기서부터는 완만한 능선길이다. 겨울과 달리 사방 우거진 수풀과 나무에 주변 조망은 겨울처럼 탁 트이진 않았다. 40여분을 걸어가는 동안 오토바이가 남긴 패인 흔적, 멧돼지가 남긴 흔적, 그리고 자동차 길처럼 넓은 임도가 마치 대로를 걷는 것 같다. 우리 어렸을 때는 거랑 근처에 흔하던 잠자리가 여기서는 산 꼭대기에 와글와글 모여 사나보다. 유진아빠는 날아가는 잠자리도 그냥 잡는다. 가히 소림사 무공이라 할 만하다. 잠자리 힘자랑 시키고 날려보내고 하면서 아이들 투덜거림은 많이 줄었다. 매봉령에서 40분 걸려 구룡덕봉에 도착하니 바람이 더욱 심하다. 하늘 가운데 휑하니 붉은 흙이 드러나 황량한 모습으로 구룡덕봉이 우리를 맞아 준다. 자동차 길이 아니라는 등산로 안내지도가 무색하게 자동차가 많이 올라오는 듯 벗겨진 구룡덕봉은 큰 비가 쏟아지면 흙이 아래로 쏟아질 것 같아 산사태가 나기 전에 잡초라도 덮어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 매봉령 방향을 보니 우리가 올라온 길이 산에 생채기를 남긴 것처럼 뚜렷하게 보인다.


구룡덕봉에서 매봉령 방향을 본 모습, 산의 생채기가 뚜렷하다.

잠시 서 있기도 힘들만큼 바람이 사방에서 덤빈다. 인증사진을 찍는 몸이 흔들려 유진이네 가족 찍어준 사진이 제대로 초점이나 맞았는지 모르겠다. 계절이 늦게 가는 때문인지 8월인데도 꽃이 한창이다. 꽃 사진만 본다면 꼭 5월달 같다. 꽃 이름은 대체로 잘 모르므로 패스.


구룡덕봉에서 유진아빠가 찍어준 가족사진, 바람이 장난이 아니었다


구룡덕봉에서 본 주억봉

구룡덕봉을 지나 이제 주억봉 아래 삼거리를 향해 길을 잡는다. 구룡덕봉에서는 그렇게 매서운 바람도 바로 옆 숲길로 들어서자 조용하다. 다만 머리 위에 있는 나무를 휩쓸고 가는 것처럼 바람소리가 요란하다. 늠름한 주목이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꿋꿋하게 서 있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 이라는 주목은 역시 주목받을만 하다. 준기가 미끄러운 길에 두어번 엉덩방아를 찧었다. 당최 끝없이 말을 하느라 앞길을 살피고 가는지 모르겠다. 원성이 하늘을 찌를 듯해서 드디어 아이스크림 카드를 꺼냈다. 6시 전에 내려가면 매점에 가서 아이스크림 사주겠다고 하니 언제 그랬냐 싶게 잘도 간다. 40분쯤 지나 4시가 거의 다 돼서 삼거리에 도착했다. 유진맘님 제안으로 아녀자들은 삼거리에서 휴식을 취하기로 하고 유진아빠와 나만 주억봉(해발 1,443m)으로 갔다. 카메라만 달랑 들고.

 
방태산 제1봉 주억봉 위쪽 꽃밭. 평지에 비해 계절이 2개월 쯤 늦게 가기 때문에 이 때 산 위에는 꽃이 한창입니다.


주억봉 인증샷, 심한 바람에 머리카락이 엉망이라 공개하고 싶지 않은 사진.

10여분 쯤 걸려 주억봉에 도착했다. 거기서 해발 70cm가 더 높은 언덕에 올라 주변 야생화 사진을 찍었다. 바람은 더욱 세차가 몰아치고 검은 구름이 하늘을 뒤 덮을 듯 몰아온다. 평소 벼락맞을 짓을 했는지 되짚어 봐야할 상황 같기도 하고. 사진기를 들고 제대로 사진을 찍을 수 없을 만큼 강한 바람을 맞으며 서로 정상 인증샷을 날리고 삼거리로 내려왔다. 정상에서 마시려고 했던 옥수수 동동주 남은 것은 잊어먹고 올라와 휴양관 냉장고에서 자고 있다. 가족들과 다시 만나 하산길을 재촉한다.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싫어하는 급경사 내리막길. 스틱이 없다면 이런 길을 절대 사절이다. 하산 길에는 언제 바람이 불었냐 싶게 조용하다. 우거진 숲은 가도 가도 끝없이 지루하게 이어진다. 작년에 겪어 본 길인데도 그 지루함이 여전하다. 단풍철에는 그나마 좀 덜했던 것 같다.


주억봉 정상에서 구룡덕봉쪽을 보고 찍은 모습.

"방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오를리 없건만은
연우는 제 아니오르고 뫼만 높다하더라"


주억봉 아래에 핀 나리꽃, 세찬 바람에 흔들려 16장을 연사로 찍어 간신히 촛점이 맞는 사진을 하나 얻었다.

오후 6시, 10.2km를 걷는 방태산 가족등산은 6시간 40분만에 끝났다. 준기와 함께 마당바위에 도착해 미리 도착한 사람들과 함께 탁족을 시작했다. 양말을 벗고 물 속에 발을 담그자 뼈를 파고드는 차가움이 송곳처럼 머리를 찌른다. 발은 금새 빨갛게 변한다. 해발 1천미터가 넘는 산은 역시 여름에도 준비를 단단히 하고 올라야 하겠다. 다행히 멧돼지를 만나진 않았지만 해가 짧은 가을이었다면 위험하겠다.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올라간 길이어서 더 주의해야 했는데 한번 올라가본 길이라고 좀 가볍게 생각했음을 반성했다. 매점에서 약속대로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 하나씩 사 줬다.


힘든 등산을 끝내고 꿀맛같은 계곡 탁족(마당바위에서)


얼음처럼 차가운 물에 발을 식히고



보기만해도 시원한 마당바위 작은 폭포

 


뼈가 시리도록 맑고 차가운 계곡물(마당바위)

 

★ 휴양림관리사무소와 실갱이

휴양관 앞에 도착해 보니 우리가 쳐 놓은 타프가 없다. 사무소에 연락해보니 걷어서 매점 옆에 놔두었다고 한다. 올라갈 때 걷었어야 했는데 시간이 없다고 그냥 올라간 게 불찰이다. 타프를 걷어서 기름이 묻어 있는 석쇠 위에 그냥 올려놓아 고기 기름이 묻어 있다. 유진이네 의자도 그 위에 그냥 올려 놓아 기름 찌꺼기가 묻어있다. 기분 좀 그렇다. 저녁에 두어가족이 나와 고기를 굽고 있는데 휴양관에 앉아 밥을 먹는 우리의 코를 자극한다. 준기가 “우리는 왜 고기 안 먹어?”라고 묻는다.

“어제 먹었잖냐?”
“그건 어제고”
"뭣이라?”
“휴양림에서 고기 안먹는 건 너무해”

갈수록 가관이다. 내일 유진이 누나 오면 저녁 점심 때 고기 먹기로 했지 않냐고 달랬다. 두 가족이 가지고 온 반찬을 내 놓으니 1식 10찬 쯤 된다. 유진맘님 음식 솜씨 정말 훌륭하시고, 어째 거의 얻어먹는 것 같은 분위기다. 유진아빠는 준기맘 음식 맛있다고 칭찬하고, 이거 화기애애한 마실 분위기에 2박 3일은 너무 짧은 듯 한데 일기예보를 보니 내일 150mm가 넘는 비가 올 거라는 기상청 예보에 안주인들의 자세가 약간 후퇴하는 듯. 타프가 있어도 150mm는 어째 좀 그렇다. 유진아빠가 관리사무실에 확인해 보니 매일 대기자가 25가족, 나가는 가족이 10여가족 정도란다. 내일 아침 7시부터 내려와 대기하라고 한다. 외부에서 오는 사람들은 새벽 5시부터 줄을 선다는 얘기를 한다고. 어째 생각대로 될 것 같지 않은 분위기다. 만약 비가 많이 온다면 대기자가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너무 많이 오면 야영하기가 좀 힘들 것 같은 분위기다. 

2일 아침, 역시나 상쾌한 하늘을 보며 눈을 떴다. 비가 온다. 기온도 많이 내려갔다보다. 오늘 설악산 캠프를 마치는 유진이를 데리러 유진네 가족은 새벽에 누룽지 끓인 것 드시고 용대로 출발했다. 아침을 먹고 필요 없는 짐은 차에 넣었다. 유진아빠가 10시가 넘어서 전화를 했다. 생각보다 많이 막혀서 2시간 가까이 걸려 용대에 도착했단다. 점심을 숯불구이 해 먹자고 해서 어제 입었던 옷으로 갈아입고 준기맘이 김치전 준비를 하는 동안 빗속에서 타프를 쳤다. 새벽부터 계속 비가 쏟아지니 휴양관 앞 바비큐 장에는 아무도 없다. 한참을 치고 있는데 어디선가 기분 나쁜 소리가 들린다. 나를 보고 하는 소린가 싶어 뒤를 돌아보니 휴양림 직원 옷을 입은 젊은 친구 서넛이 나를 보고 뭐라고 뭐라고 소리를 지른다. 거리가 멀어서 무슨 소린지 잘은 모르겠지만 타프 치지 말라는 소리 같았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무조건 치지 말란다. 슬몃 오기가 발동한다.

“왜 그러십니까?”
“아, 여기 타프 치면 안돼요”
“왜요?”
“그냥 안됩니다”
“대한민국에 그냥 안되는게 어디있습니까? 안되는 근거나 규정이라도 있습니까?”
“우리 팀장님이 안된다고 합니다. 어제도 타프 친 사람 때문에 우리가 치웠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전데요. 국립휴양림 40번 넘게 다녔지만 타프 안된다는 휴양림은 여기가 처음이네요. 팀장 말이 법은 아닐텐데 일방적으로 안된다는 근거가 뭡니까?”
“근거는 모르겠고요. 팀장님이 안된다고 하니까 우리는 막을 수 밖에 없습니다. 저기 몽골텐트 아래에서 해도 되지 않습니까?”
“팀장님 어디 계시는데요. 제가 직접 물어보죠. 몽골텐트는 돈 내고 빌리는 곳이 아닌 모양이군요. 그런데 지금 몽골텐트에는 사용자가 다 찼네요.”
“마침 여기 올라오신답니다. 오실 때까지 기다리세요”

1분쯤 있다가 깍두기 머리를 한 눈매 더럽다는 인상을 주는 사람이 차를 타고 올라왔다. 팀장인 모양이다 했는데 “보기 싫으니 치면 안됩니다.”라고 뱉듯이 던진다.

나는 성질이 났다.
“치면 안되는 근거가 뭡니까?”
“보기도 싫고,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됩니다” 여전히 퉁명스럽다.
“길 가 계곡에 붙어 있고, 비가 이렇게 오는 날 여기 나와서 숯불구이 하는 사람 보시다 시피 한명도 없고, 몽골텐트는 사람들 다 차 있고, 휴양림에서 타프 치지 말라는 규정도 없고 왜 안된다는 겁니까?”
“휴양림은 원상대로 사용해야 합니다. 훼손하면 안됩니다. 어제도 한 사람이 타프를 쳐 놓고 있어 우리가 걷었습니다.”
“그 사람이 전데요. 어제 밤에 빗방울이 떨어져서 쳤습니다. 오늘은 산에 갔다 오느라 아침에 걷지 못했네요. 타프 치지 못하게 해달라고 민원이라도 들어 왔습니까? 타프 치면 휴양림 원상이 훼손됩니까? 국립자연휴양림 40번 넘게 다녔지만 이런 이야기는 처음 듣네요. 근거규정이라도 있으면 보여 주시죠. ”

민원이 들어온 것은 아닌 모양이다. 하긴 내가 타프쳤던 자리에는 누가 놀다 놔둔 것인지 보기 싫게 비에 젖은 아이들 이동용 풀장세트와 은박지 돗자리가 널부러져 있다. 나를 꼬나보던 팀장이라는 사람은 우리가 점봉방에 머문다는 것을 확인하더니 못을 박는다.

“1시까지 퇴실이죠? 1시까지 타프도 걷으세요. 아니면 우리가 걷겠습니다”
“알겠습니다. 1시에 철수하죠” 

팀장은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는 묵인해 주겠다는 뜻으로 해석했고 직원들 앞에서 팀장 권위를 뭉개지 않겠다는 뜻으로 말은 그렇게 했다. 팀장이라는 사람은 다른 직원들에게 그냥 놔두라고 하고 야영장쪽으로 차를 몰아 올라갔다. 타프를 다시 치면서 쓴 웃음이 났다. 뭐 이렇게 비오는 날 싸울 필요 있나, 그냥 몽골텐트 옆에 비집고 들어가 점심 먹으면 되지. 그러다가 “비오는 날 타프치고 계곡물 보면서 발 담그고 놀다가 늦게 가리라” 다짐했다.

11시가 넘어서 유진네 가족이 돌아왔다. 오늘 야영은 못하니 느즈막히 출발하리라 생각하며 밖에다 점심을 차리고 짐은 차에 모두 넣었다. 1시가 거의 다 됐다. 아래로 내려가 키를 반납하고 점심을 먹기 시작했다. 정작 유진이와 사촌인 진주는 김치전을 너무 먹더니 유진아빠가 준비한 장어양념구이와 돼지고기 숯불구이는 먹는둥 마는둥이다. 하늘은 갤 듯 말 듯 하다가 다시 비를 쏟아 붇는다. 하늘이 갤 듯하면 구라청 원망스럽고 비가 쏟아지면 가기 싫고 뭐 그런 상태로 3시 넘어서까지 고기도 구워먹고 차도 마시고 앉은 채로로 졸기도 했다. 유진아빠와 준기맘은 각자 차에서 낮잠을 자고. 그 사이에도 우리만 보면 휴양림 직원들이 타프 걷으라고 잔소리를 한다. 걍 무시하고 개긴다. 나도 성질 더러운 놈인데 니들 사람 잘못봤다. 쓸데없는 오기가 발동한다. 키를 반납해서 인지 휴양림 안내소에서는 잘 귀가하시라는 안내메시지가 두 번이나 들어왔다. 나참.


유진이와 진주가 온 다음에 점심을 먹고

3시 반이 넘어 유진아빠가 일어나고 비가 거의 그친 가운데 기상청을 타박하며 타프를 걷었다. 작아서 유진이가 입지 못하게 된 옷과 하동에서 가져온 감자, 그리고 남은 수박을 받아 챙기고 아쉬운 작별을 고하고 다음에 또 함께할 기회를 기약했다. 이거 어째 우리는 받기만 하는고? 

돌아오는 길에 들리기로 한 강원도자연환경연구공원은 입구로 들어가는 갈림길에서 6시 가까이 되어 포기하고 홍천을 지나 양평으로 달렸다. 비가 계속 오는데도 들어가는 차와 나가는 차가 끝없이 이어진다. 샛길을 찾아 움직일까 하다가 좀 밀리더라도 팔당댐을 건너는 길을 타기로 하고 그냥 갔다. 쏟아지는 비에 멈춰선 차들이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을 때 쯤 오른쪽으로 팔당댐으로 빠지는 길이 보인다. 쏜살처럼 달려 팔당댐을 건너 외곽순환도로를 타고 오는데 비가 억수같이 쏟아진다. 10시 조금 못 돼 집에 도착했는데 짐도 내리지 못하고 집으로 달려 들어갔다. 유진이네랑 함께 한 방태산 휴양림은 한여름밤의 꿈처럼 짧은 여행이었지만 다음날 상큼하게 갠 날씨만큼 좋은 기억을 아이들에게 남겼으리라 생각한다. 

아우! 더버라. 이 긴 여름의 초입에 다음은 어디가지?

PS) 한라산 윗세오름이 힘들어? 방태산이 힘들어? 하고 물었더니 두녀석이 모두 방태산이 더 힘들었다고 합니다. 아이들 데리고 방태산 올라갔다고 휴양림관리사무소 직원들이 혀를 내 두르더라는 유진아빠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애들은 생생한데 정작 준기맘이 힘들답니다. ㅋㅋ

Posted by 연우아빠.

방태산 제일봉(주억봉)에 오르다

여행컨셉 : 결혼10주년(10.19), 장모님 생신(음력 9.11) 기념을 빙자한 방태산 등산
일정 : 2007.10.20~10.21
동참인물 : 장모님, 우리부부, 연우, 준기


출발시간 한번 당겨보고 싶다

2005년 판, 유니맘님의 방태산 후기에 필이 꽂힌 지 어언 2년, 그 사진의 단풍 빛깔은 꼭 가봐야 할 의무감 같은 아름다움이 있었다. 방태산 매니아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는 이번 여름에 직접 겪어봤는데 여름 휴가기간 추첨이 끝나고 대기 1순위로 걸어 놓았던 방이 3개나 있었건만 단 하나도 취소하는 사람이 없었고 데크가 아닌 맨땅에도 텐트를 치는 사람들 때문에 넘쳐난 민원으로 몸살을 앓았던 휴양림이다. 학교가 쉬지 않는 1, 3주차 토요일, 선호도가 낮은 1층을 공략하기로 정하고 예약일을 기다리다 9월3일, 준기맘의 ID로 1층 산철쭉 방이나마 낚는데 성공하니 지난 두 달여가 즐겁기만 했다.


방태산의 단풍. 가물어서 단풍이 별로 좋지 않았다는 평가


체력이 약한 준기맘은 힘들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데 때맞춰 준기맘이 하고 있는 ‘동화읽는어른모임’에서 가을 행사 준비로 금요일 저녁 퇴근을 해 보니 여행준비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단다. 게다가 적어도 목요일에는 올라오시라고 장모님께 그렇게 부탁을 드렸건만 바깥사돈 혼자 냅두고 사위랑 단풍구경 가시는 게 영 맘에 걸렸는지 금요일 밤늦게 시골에서 올라오셨다. 설상가상으로 목요일~금요일 사이에 온 비는 전형적인 한랭전선을 동반한 차갑고 짧은 강우시간을 보이며 기온을 한겨울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떨어뜨렸다.

퇴근 때 사온 결혼기념케익은 냉장고에 모셔두고 연우, 준기는 숙제에 몰두하고 행사 준비로 지친 아내와 함께 겨우겨우 짐을 쌌다. 속으로는 “이렇게 팀웍이 안 맞아서야 뭔 여행을 즐긴단 말인가?” 하는 불만과 매번 늦게 출발해 차안에서 시간을 허비하는 그런 여행이 반복되는 것을 예상하며 짜증이 밀려 왔지만 참을 忍자를 새기며 밤 12시까지 짐을 챙겼다.


누가 나에게 결혼이 무엇이냐고 묻거든 그건 참을 忍자를 새기며 체력과 인내심을 연마하는 과정이라고 말하리라 - 남편 버전

토요일 아침, 어제 늦게 잠든 아이들은 8시가 넘어도 일어날 줄 모르고 여행 출발을 최우선으로 하는 나와는 달리 준기맘은 청소하고 빨래하고 있다. 그 사이에 설겆이를 하면서 짜증이 밀려온다. 8시전 출발 → 10시 도착 →  방태산 등산 → 정상에서 점심 → 석양을 받으며 하산 → 휴양관앞 숯불구이와 저녁식사.... 대충 이런 구도인데 현실은 완전히 딴판으로 10시30분이 넘어서야 간신히 출발했다. 오늘 일정은 포기할 수 밖에 없겠다. 에궁 내 팔자야...... 


방태산 휴양림의 산책길



방태산 2단폭포의 하단부분, 이 날 가을을 주제로 몰려든 전문 사진가들 때문에 저 폭포에 다가가는 것이 몹시 힘들었음


밀리고 밀리는 길을 따라 엉금엉금 가다 오후 1시가 넘어서 겨우 양지말화로구이집에 도착해 점심을 먹었다. 철정삼거리를 우회전하여 아무도 없는 호젓한 지방도로를 단풍구경하며 올라가니 계곡에 흐르는 물이 너무도 맑다. ......여름에 야영하기 좋겠다..... 휴양림에 도착하니 오후 3시가 넘었다. 역시 도시보다는 훨씬 차가운 기온이다. 추위에 약한 준기맘은 방에 들어가자 마자 난방을 최대로 올려 놓고 이불부터 깔고 “애구 애구” 하면서 드러눕는다. 지난주 일월산 올라갔을 때 찬바람 맞고 냉두드러기 현상을 보였던 연우도 갑자기 차가워진 날씨에 조금 걱정스럽다.


호젓한 방태산 산책

등산은 내일 아침 혼자 하기로 하고 등산로 정찰겸 산책을 나섰다. 장모님은 힘들어서 이불깔고 누우셨고, 준기맘과 준기만 데리고 길을 나섰다. 박리현상을 보이는 단단한 바위들이 만들어 놓은 계곡 모습은 금강산 상팔담 올라가는 계곡모습에 뒤지지 않는다. 특히 2단폭포는 생각보다 아름답다. 2단폭포에는 사진작가들이 중무장 장비를 널어놓고 2단폭포를 찍고 있었다. 덕분에 우리 같은 구경꾼은 폭포근처에 가보는 것이 왠지 머쓱한 그런 분위기다. 우리 같은 사람에게도 폭포 관람의 기회를 달라고요.....




야영장 아래쪽 계곡


청소년 야영장에는 캠사와 오캠 동호회에서 눈으로만 봐 왔던 리빙쉘을 갖춘 야영객들이 여럿 진을 치고 있었다. 오리털 파카로 중무장한 아이들이 많다. 10.5km 서클형 등산로 입구를 지나 내일 아침에 올라가리라 계획하고 있는 왼쪽 길로 5백미터 쯤 들어갔다가 내려왔다. 준기맘과 준기는 마당바위 위에서 놀다가 함께 내려왔다. 오랫만에 아빠엄마를 독점한 준기는 신이 났다. 준기맘이 협조 해 주지 않으면 준기 데리고 나 혼자 등산갔다 오겠노라고 했었는데 아무래도 기온이 너무 낮고 내일 아침에도 몹시 추울 거라는 예보를 보니 이번에는 정찰 겸해서 혼자 갔다 와야겠다. 내려오면서 준기 사진을 좀 찍으려고 했더니 이젠 영 협조가 안된다. 해가 넘어가기 시작하면서 등산객들이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내려온다.



숲해설을 하는 탐방로 구간

휴양관 앞에서 벌써 한 가족이 숯불구이를 시작했다. 우리는 밖에서 내가 고기를 굽고, 집 안에서 밥을 먹는 것으로 결정했다. 기온이 너무 찬데다가 쇠로 만든 바베큐 통이 차가워서 그런지 숯불이 별로 힘을 쓰지 못하고 곧 비실거린다. 겨울에는 잔나무 가지가 있으면 먼저 바베큐 통을 좀 데운 다음에 숯을 피워야 할 것 같다. 대충 고기를 구워 안에 가지고 들어와 저녁을 먹고 잔불에 감자를 넣어 두었다. “내일 등산식량으로 써야지”



야영장을 지나서...옆에 보이는 분들은 영하 10도의 추위에 동계 야영을 하는 가족들




야영장 앞 마당바위



완연한 가을색으로 물든 방태산 계곡


2단폭포 위쪽 야영장 가는 길 왼쪽에 있는 목교

* 이 글은 다유네(
http://www.dayune.com/에 올렸던 글입니다.

Posted by 연우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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