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만든 영화 <안시성>

2018.10.09


 

잘 만든 전쟁 영화 <안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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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왜곡, 고증오류 ... 역사를 영화로 만들거나 드라마로 만들면 빠지지 않는 비판이다. 나도 소싯적에는 그랬다. 그래도 비판을 하면서도 가급적 보려고 노력했다. 그래야 다음에 더 멋진 영화나 드라마를 볼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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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는 안시성 전투(645년) 이후 23년 뒤에 망했고, 안시성은 26년 뒤인 671년에 함락됐다. 해서 남아 있는 기록은 적이 남긴 기록이거나 전해들은 이야기를 옮긴 것이거나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나는 기록을 남기지 못하는 것이 진정 역사의 패배자라고 생각한다. 타인의 시각을 빌려와서 자기 역사를 기록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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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는 중국에서 전해오는 이야기를 둘 담고 있는데, 하나는 추모성왕의 활과 화살이 요동성을 지키는 신물이었다는 것과 양만춘이 화살로 이세민을 쏘아 한쪽 눈을 다치게 했다는 전설이다. 하긴 양만춘이라는 이름도 당시 사서에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고 김부식도 삼국사기를 기록하며 이점을 매우 애석하게 생각했다. 구당서 열전에는 이세민이 패배한 뒤 안시성을 떠나면서 비단 백필을 선물로 주었다고 하는데, 누군지 적장의 이름도 모르고 주었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해서, 영화의 설정처럼 고구려 군이 퇴로를 처단하러 나오자 정신없이 도주한 것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요택의 진창길을 지나 임유관까지 가는 길은 이세민의 수명을 무척 단축시킨 고생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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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시성 공방전만 안시성 전투로 생각하지만, 당시 사서의 기록에는 주필산 전투가 안시성 전투의 시작으로 기록되어 있다. 안시성에서 발진한 고구려군이 당군과 주필산에서 싸운 것이 안시성 전투의 시작이다. 주필산 전투 개전은 음력 6월20일, 이로부터 9월18일 당군이 후퇴할 때까지 석달 정도 전투가 있었고 그 가운데 안시성 공방전이 60여일 이상 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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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안시성>은 주필산 전투부터 다뤘는데 이는 제목에 부합되는 장면이다. 안악 3호분 대행렬도의 보무당당한 고구려의 개마부대(갑주를 입힌 말을 탄 창병)를 3차원 공간에 재현한 것은 압권이다. 말과 병사 모두 찰갑옷을 장착해 고증에도 매우 충실한 장면이다. 영화를 보는 사람들에게 고구려 기병의 압도적 돌파력을 보여주는 멋진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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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옥에 티라면 전투가 음력 6월 중순, 한여름이었는데 벌판의 배경이 늦가을이며 당나라 수뇌부의 야외 회의장면에서 입김을 전혀 감추지 못했다. 살아남은 태학생도가 안시성까지 달려가는 사이 계절이 늦가을에서 여름으로 바뀌어 버렸다. 전투를 기록한 사료에는 두 지점까지 거리는 멀어야 40리(16km) 가까우면 8리(3.2km)다. 사전 제작을 하면서 계절을 간과한 것은 안타깝다. 또 태학생도는 차라리 경당생도로 그리는 편이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 태학은 유교경전을 가르치는 귀족 대상 행정관료 양성 대학이고, 경당은 송경습사(경전을 읽고 활쏘기 같은 무예를 가르침)를 하는 고구려에 널리 퍼진 일반 교육기관이다. 그리고 검은 옷을 입은 화랑 비슷한 무사집단인 조의선인(皂衣先人)이 있었다. 고구려는 기마민족이 아니라 농경민족이었다. 해서 말을 타는 무사집단은 어렸을 때부터 다르게 훈련을 받은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특히 파르티안 샷(수렵총 벽화에 나오는 몸을 반대로 돌려 활을 쏘는 기술)을 구사할 수 있는 잘 훈련된 병사들이었다. 유교 경전 읽던 학생들이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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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성무기와 방어무기 모두 지금까지 어떤 한국영화나 드라마에서 볼 수 없었던 장쾌한 장면이었다. 감독의 말처럼 고대 전투의 모든 병장기를 동원했다 할 만큼 압도적인 스케일을 보여줬다. 예전 <불멸의 이순신> 해전 장면에서 맛봤던 것 이상으로 멋진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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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공성무기인 운제를 격파하는 장면을 양만춘의 원맨쇼로 그린 부분은 극의 몰입도를 떨어뜨렸다. 설현의 단기돌파 역시 잘 만든 영화에서 뜬금없는 씬이 되고 말았다. 차라리 남친의 전사에도 불구하고 슬픔을 삭이며 석궁부대를 잘 지휘해 승리한 뒤 무덤에 가서 우는 장면을 만들던지 했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주 이하 기계처럼 팀웍을 딱딱 맞춰 전투하는 고구려 군에게 성주의 명령도 없이 개인적 분노를 풀기 위해 단기필마로 당태종을 향해 질주하는 석궁부대장은 뜬금없지 않은가?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헬름협곡 전투나 펠렌노르 평원 전투를 생각해보면, 이 장면 때문에 안시성 전투는 성주의 군대 장악능력과 전투지휘 능력을 극대화하지 못하고 군령도 제대로 못 세우는 ‘이웃집 아저씨’로 만든 게 몹시 아쉽다. 설현 혼자 띄워주려고 씬을 만들었다면 할 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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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성곽 역시 아쉽다. 특히 감독이 만주에 남아 있는 고구려 산성들을 답사했었다는 인터뷰를 봤는데 좀 의아하다. 중국의 사서들에는 “고구려는 성을 쌓고 방어하는 기술이 탁월하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만큼 성에 의지해 싸우는 기술이 발달되어 있는데, 이번에 나오는 성곽에는 세계유일의 고구려성이 갖춘 특징이 생략됐다. 고구려 성의 특징이자 강점은 치와 옹성이 그것인데 적이 일렬로 서서 돌격해 오지 못하게 돌출된 치성 구조가 있고, 성문을 충차로 격파하지 못하게 옹성으로 성문을 둘러싸고 있으며 옹성 안으로 충차를 끌고 오면 포위가 되어 고슴도치를 만들 수 있는구조물이다. 고구려를 침략했던 적들은 이런 구조 때문에 곤욕을 치렀는데 영화 속에는 허술한 목책 방어장치를 동원해 많이 아쉬웠다. 목책 방어장치는 적의 발석거 공격에 무너진 성벽을 보수하는 장치였다는 기록이 명백한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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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면서 오호!라고 감탄한 장면이 있었는데, 토산이 무너졌을 때 고구려군에 잽싸게 성밖으로 튀어 나가 토산을 점령해 버린 부분이었다. 사서에는 토산이 무너진 이유에 대해서 설명이 없는데, 영화는 “아, 저랬을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토산이 무너졌을 때 당군은 당황했는데 고구려군은 예상하고 있었던 듯 준비하고 있다가 바로 기병을 동원해 토산을 점령하고 참호를 파버렸다. 이는 충분히 영화처럼 고구려의 굴자군이 토산을 무너뜨렸을 개연성이 있다고 본다. 다만, 기둥을 불태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설정하더라도 굳이 사람을 희생시키는 장면을 만든 것은 한국 영화의 구태의연한 모습을 보여준 것 같아 아쉬웠다. 사서의 기록을 보면 토산과 성벽은 매우 가까웠다. 그랬다면 기둥마다 동앗줄을 묶어 말과 소를 이용해 충분히 기둥을 쓰러뜨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비장할 필요가 없는 곳에서 비장한 희생을 설정하는 것은 여전한 과거 파시스트 시대의 국가관이나 희생정신의 잔영인 것 같아 다음 영화에는 이런 부분들이 사라졌으면 한다. 사람 한명 한명이 매우 필요한 고대였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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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시성의 고구려 군은 하루 2~3천명의 적을 살상하며 석달간 버텼고 당군이 60일 동안 쌓은 토성을 점령한 뒤에도 사흘간 적 3만을 살상했다고 한다. 단순 계산으로 석달간 전투에서 무려 20만명 정도를 살상한 것이다. 중국 역사서들의 평가처럼 고구려는 성곽 방어전투에서는 가히 세계 최강이라 할 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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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중국 왕조들이 제압하지 못했던 북방 유목민을 완전히 제압하고 그들에게 천가한(天可汗)의 칭호를 받은 이세민을 상대로, 3만명 정도 밖에 안되는 병력으로 적을 궤멸시킨 안시성 전투는 가히 중국 왕조들과 30년 동안 치른 동아시아 세계대전에서 가장 빛나는 승리일 것이다. 특히 주필산의 엄청난 피해를 목격하고서 치른 전투에서 이긴 것은 자랑할만한 승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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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안시성>은 한국 제작진이 만든 역대 고대 전쟁 영화 가운데 최고라고 꼽아주고 싶다. 영화가 끝난 뒤에 나올 때 어린아이와 청년 세대들이 “재미있다”고 하는 걸 보니 스토리도 재미있었나 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꼭 개선해 달라고 부탁하고 싶은 것은 주인공들도 투구를 쓰라는 것이다. 투구를 쓰지 않은 장수가 장수인가? 배우의 얼굴은 영화가 유명해지면 저절로 널리 알려지는데, 투구를 쓰지 않은 것은 이제 그만 했으면 좋겠다. 장수들이 입은 갑주는 고구려의 갑주가 아니다. 화살도 튕겨 나가고 칼도 잘 들어가지 않는 것이 고구려 찰갑옷인데, 주필산 전투 때 찰갑옷을 입은 고구려군이 왜 갑자기 안시성에선 시대불명한 애매한 갑주를 입고 나오는지 눈에 거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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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본 고대 전투 영화나 드라마 중 국내에서는 가장 잘 만든 것으로 칭찬해 주고 싶다. 환두대도 허리걸이, 궁시 착용법, 말타는 법, 등장무기 등등 장족의 발전을 이룬 영화로 평가해 주고 싶다. 앞으로 더욱 발전을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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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내용 자체는 이미 너무 유명해서 스포일러 아닌가?
“고구려가 이겨!” ㅋㅋ


황제가 성 안에서 들리는 닭과 돼지의 소리를 듣고 세적에게 말했다성을 포위한지 오래되어, 성 안에는 밥짓는 연기가 나날이 줄어들고 있는데, 지금 닭과 돼지 소리가 요란하니, 이는 틀림없이 군사들을 잘 먹인 후에 야습하려는 것이다. 군사를 단속하여 이에 대비하라.” 이날 밤, 우리 군사 수백 명이 성에서 줄을 타고 내려왔다. 황제가 이 말을 듣고 직접 성 밑에 와서 군사를 소집하여 재빨리 공격하였다. 우리 군사 중에 사망자가 수십 명이나 되었고, 나머지는 도주하였다.(사진은 영화 홈페이지)


삼국사기에 나오는 저 기록을 바탕으로 엄태구가 분한 멋진 고구려 돌격대가 등장한다. 

투구를 쓰시라. 투구를....ㅋㅋ


황해도 안악 지방에서 발견한 <안악3호분>의 대행렬도.

고구려 군의 무장과 편재를 알 수 있는 중요한 벽화다.

문관과 함께, 장창수, 도부수, 개마무사, 궁수 등이 잘 묘사되어 있다.


고구려의 요하 방어선 개념도.

안시성은 만리장성 출구인 임유관에서 요택을 지나 요하를 넘으면 당도한다.

중요한 성곽이었기에 고구려는 15만의 대군을 동원해 안시성 앞 주필산에 선제공격을 감행했다.

이 성은 고구려가 망한 668년보다 3년이나 더 당군과 싸우다가 671년에 함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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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5. 8.



2014년 딸아이가 다니던 학교에 온 공문 한장

<동학농민혁명기념문화제> 개최와 <황토현 전국가족역사퀴즈대회> 참가를 안내하는 내용이었다.


그 공문 한장을 계기로 

지난 2014년부터 이 행사에 참석해 왔는데

딸 아이는 고등학교 1, 2학년 때 각각 은상(정읍시장상)과 금상(전라북도 도지사 상)을 받았다.


이제 고3이라 갈 일이 없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는데

고등학교 신입생이 된 아들이 

자기도 꼭 가서 우승을 해 보고 싶단다.


그게 사람 맘대로 되나 싶다.


어쨌든 최선을 다해보자는 생각은 했다.

늘 묵던 내장산 안쪽 한일장에서 숙박을 했다.

여전히 내장산 야영장은 사람들로 북적 거린다.



오전 9시가 되기 전에 일찌감치 행사장에 도착했다.

토요일에도 동학농민혁명 기념제와 관련해서 혁명전적지를 답사하는 행사가 있는데

우리는 2년전에 돌았던 관계로 이번에는 신청하지 않고 근처에 가보고 싶었던 다른 유적을 돌았다.



신청 가족들이 하나 둘씩 전국에서 모여 들었다.



경제가 어렵다더니 올해는 신청자가 많이 줄었다.

105가족 378명이 신청을 했다고 한다.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 시도에서 골고루 참가자들이 왔다.




아들 녀석은 나도 예상하지 못한 선전을 거듭했다.

아버지와 나 그리고 아들은 <백범의 꿈>이란 이름으로 참가해 예선을 통과했다.


본선은 한 문제를 틀리면 바로 탈락하는 넉다운 방식.

하나 하나 탈락 가족이 늘어나고 주최측은 자리를 새로 정리했다.


미신이기도 하겠지만 왠지 자리를 옮기고 싶지 않았다.

작년에도 자리를 옮기고 바로 탈락했다는 기억도 작용을 했고....


마침내 4가족이 남았다.

마지막 문제는 정읍지역 사람들이 많이 익숙한 인물을 묻는 문제였다.


임진왜란 당시 이 지역 선비 두사람이 전주사고의 왕조실록을 안전한 곳으로 옮겨 보관함으로써

전쟁 후 5군데 사고로 복간해서 분산 수장할 수 있었는데 그 두 선비의 이름을 묻는 문제였다.


순간 "헉!" 하는 비명이 목구멍에서 올라왔다.

전주 경기전에 갔을 때 본 기억은 있는데 도무지 사람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아들 녀석이 휘리릭 답을 쓴다.


"너 답을 알어?"

"응!"

"어떻게?"

"응, 초등 6학년 도덕시간에 배웠어?"
"4년전에 배운 것을 기억해?"

"이름이 조금 헷갈리기는 한데 안 고칠 거야. 즉시 떠오른 이름이 답일 가능성이 높아!"

"그래, 여기까지 왔으니 됐다. 하긴 이 답을 알 사람이 이 네가족 중에는 없을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생각하며 답을 들었는데

두 가족은 쓰질 못했고, 다른 한 가족은 쓰긴 했지만 답이 아니었다.

마침내 아들 녀석은 원하던 우승을 차지했다.


대상인 교육부총리 상을 받게 된 것이다.

"이제 이 먼 길을 당분간 안와도 되겠구나?" 라고 말했더니

"엉? 아빠, 2연패도 있는데...." 이런다.


하하하!!!

우리는 부상으로 지역 농산물인 귀리 한포대를 받았다.

아버지는 손자의 우승이 무척 기특한 듯 너무도 좋아하셨다.


우리 가족에게 좋은 여행 추억을 남겨준 정읍의 동학농민혁명긴념제가

내년에 50주년이 된다. 

앞으로 100년 200년 오래 오래 계속 되어 더 많은 사람들이 찾는 행사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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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선거날 갓바위와 경산 구경



지난 주말에 사전투표를 한 처지라 투표일인 4월13일은 경산 나들이나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일기예보는 비바람이 몰아칠 것이라고 한다.




아침에 눈을 뜨니 창 밖이 컴컴하다.

창문을 열었더니 역시나 비가 온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침을 먹고 선본사로 향했다.

선거일이라 그런지 선본사라는 절 이름이 선거본부사무소의 준말처럼 느껴지는 건 사바세계의 생각이겠지?



팔공산 중턱 쯤에 올라오니 아랫동네와 달리 비가 잦아 들었다.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꽃 풍경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차를 잠시 세워 사진을 찍었다.





전국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는 갓바위는 평소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이렇게 비바람 치는 날이 사람이 별로 없겠거니 하고 일부러 올라왔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잘 생긴 일주문을 만났다.



선본사 유리광전

천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선본사는 갓바위 부처님 때문인지

비바람이 치는 날인데도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정상 가까이 올라가자 비바람과 안개가 더 심해졌다.




마침내 그 영험한 갓바위 부처님 앞에 다다랐다.



가만 가만 헤아려 보니 계단이 824개나 된다.

제대로 다 셌는지 모르겠지만 내려갈 때 무릎이 많이 아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들이 비바람을 무릅쓰고 이 높은 곳까지 올라와 절절한 기도를 올리고 있다.

나도 올해 고3인 딸아이가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기를 빌었다.

비바람이 심했지만 우산을 내려 놓고 진심으로 빌고 빌었다.

갓바위 부처님은 한가지 소원은 꼭 들어주신다고 하시니까.....




팔공산에서 다시 내려 오는 길

꼭대기는 많은 비가 오고 있지만 중턱은 신기하게도 비가 그닥 많이 오지 않았다.

온통 하얀 사과꽃과 붉은 복사꽃을 보니 그냥 지나갈 수가 없었다.




산 중턱에 과수원이 마치 꽃밭처럼 화려하다.



경산 시내로 내려와 자인계정숲으로 갔다.

경산 시내 곳곳에 자인계정숲 안내표지가 있어서 궁금했는데 드디어 가본다.




함양 상림공원처럼 옛날부터 사람들이 나무를 심어 가꾸어 놓은 숲이다.

이 숲을 중심으로 야외 공연장 같은 시설물들이 있고 공원 안쪽에는 산책로가 아름답다.



이 지역을 거쳐간 조선시대 고을 수령들을 위한 각종 비석이 서 있다.



그 가운데 벼슬을 하지 않고 이 지역 사람들에게 많은 은덕을 베푼 처사의 공덕을

기리는 비석이 두개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공원 제일 높은 곳에 있는 한장군 묘

경남 마산에 있는 장장군 묘처럼 누구의 묘인지 정확하지는 않다.


전해오기로는 한씨 성을 가진 용사가 자기 누이와 함께 신라 또는 고려시대에 이 지역을 습격한 왜구들을

토벌했다고 한다. 영남대학교에서 이 무덤을 발굴하여 사람의 인골과 유물을 수습해 박물관으로 옮겼다고 한다.

이 지역에서는 지역 수호신처럼 매년 이 무덤에 제사를 지낸다.



경산은 삼국시대 초기 경주에 있던 신라를 압박했던 압독국이 자리잡고 있는 곳이다.

넓은 농경지와 수많은 저수지는 이 지역이 옛날부터 농업을 기반으로 강력한 힘을 가진 지역이었음을 증명한다.

지금은 영남지역의 제조업 중심지역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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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대학교 철학자의 길



대구지역에서 벚꽃이 아름답기로 손꼽는 길이라고 하는 철학자의 길



자원대 연못에서 바라본 법대도서관



자원대 연못 위쪽으로 올라가면 남쪽 방향언덕으로 상수도 관리사무소가 있다.

이 길은 소나무 칩을 깔아 놓아서 편안한 산책을 할 수 있다.




반대 쪽으로 돌아서 게스트하우스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에 벚꽃이 피어 봄이 완연하다.



저 위쪽 길부터



게스트 하우스 까지 내려가는 이 길을 사랑하는 남녀가 뒤돌아보지 않고 끝까지 걸어가면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하는 그렇고 그런 이야기가 전해 온다.


하지만 사랑하는 청춘남녀들이여, 

사랑은 사랑을 지키고자 하는 연인 사이의 이해심과 굳은 마음이 결정하는 것이지

그깟 뒤돌아 보고 보지 않고가 결정하는 건 아니다.





올해는 3~4월에 비가 자주 와서 벚꽃이 벌씨 날리고 있다.



철쭉도 화사한 봄 햇볕을 만끽하고 있다.



영남대학교에는 이맘 때에 겹벚꽂, 왕벚꽃, 복사꽃, 배나무꽃, 개나리, 진달래, 철쪽 등등

아름다운 꽃들이 사방 팔방에서 만발해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아마도 영남대학교가 자연환경은 전국 최고의 대학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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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대학교의 봄



영남대학교 철학자의 길

개나리가 꽃을 피웠다.




일명 영남대학교 민속촌

이곳에는 안동댐, 임하댐, 운문댐 등 경북 지역 댐 건설로 수몰지역에 있던 19세기 사대부 가옥과

서당, 철기시대 유적지 등을 그대로 옮겨온 넓은 곳이 있다.



마을은 사라지고 집만 덩그라니 옮겨 놓아서 아쉽지만 여기저기서 수집해 놓은 건물이 마을처럼 보인다.




자원대 연못에는 조금씩 봄 기운이 솟는다.

연두색 버드나무 잎사귀들이 솜털처럼 나무를 물들이기 시작했다.




100만평 가까운 영남대학교에는 이렇게 멧돼지가 나오기도 한다.

이 곳에서 내가 본 것만 꼽아보면 후투티, 오색 딱다구리, 딱다구리, 청둥오리, 논병아리, 쇠물닭,

고라니, 산토끼, 다람쥐, 청설모 등이 있다.





쇠물닭이 유유히 먹이를 찾아 헤엄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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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도청 신청사 개청식(2016. 3.10)


대구와 경북이 하나이던 시절 도청소재지는 대구였다.

대구광역시와 경북도가 분리된 이후 

경북도청을 대구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는 얘기는 계속되었다.

사실 대구는 경상북도 전체를 놓고 보면 너무 남쪽에 치우쳐 있다.


그 길고 긴 논쟁 끝에

마침내 경상북도청은 오랜 대구시대를 끝내고

경북 안동시로 이전하게 되었고

2016년 2월 이전을 완료했다.


새로운 도청에서 업무를 시작함을

공식적으로 알리는 행사가

2016년 3월 10일에 열리게 되었다.


엄청나게 많은 인파가 오리라 예상은 했지만

VIP까지 참석한다고 해서 아주 일찌감치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우리나라가 일처리 방식 가운데 정말 마음에 드는 하나는

건물만 덩그라니 지어놓고 사람이 살 정주여건을 전혀 갖추지 않은 채

사람이 들어가도록 하는 방식이다.


분양 아파트 입주도 그렇고

세종시 이전 때도 그렇고

역시나 경북도청 신청사 주변도 마찬가지였다.



3월10일은 예상보다 바람도 강했고 기온도 낮아서 싸늘했다.

농협에서 참석자 모두에게 무릎담요 하나씩 담은 종이 가방을 좌석마다 배포해 놓았다.

하지만, 몇 몇 사람들이 남의 자리에 있는 것을 가져가버려서 무릎담요 없이 행사장에서 떨었다.




입장을 하는데 김부겸 전 의원을 우연히 만났다.

4월 13일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 되시라고 인사를 나눴다.

아쉽지만 일부러 인증 샷은 찍지 않았다.




너무 거창하게 지었다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토목은 30~40년 앞을 내다보고 시공을 해야 한다.


지하 주차장 안내 장치가 잘 되어 있어서 빈 주차 공간은 초록 불빛으로 알려 준다.

집무공간은 전부 비슷비슷한 외관을 한 건물로 되어 있어서 어디가 어딘지 구분을 하기 어려워

많이 헤매게 되어 있다. 오래 다니다보면 익숙해 지겠지만 건물을 봐서는 자기 위치 구분이 힘들다.


앞으로 정주여건이 제대로 갖춰지려면 10년 정도는 지나야 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여름이 되면 그늘이 없어서 정말 힘들 것 같다. 


잔디는 보기만 좋을 뿐 사람에게 별 쓸모가 없다고 생각한다.

청사 경내에 3~5그루씩 나무를 점점이 심어 작은 그늘을 많이 확보해야 할 것이다.

지금 상태라면 한 여름에는 그야말로 뜨거운 돌 안에서 근무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새로운 청사에서 고향인 경상북도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한다.

Posted by 연우아빠.

소백산 등산

세상살이 2015.11.11 12:30

소백산 등산(2015.10.31.)


10월 마지막 날, 

주은아빠가 박달재휴양림을 예약해 놓았다고 소집한 번개같은 정기모임.


오후 3시에 입실을 하니 

유진아빠가 가까운 소백산에 올라갔다가 가겠노라고 해서 얼른 따라 붙었다.


대구에서 소백산 천동탐방안내소까지 가는 길이 생각보다는 멀었다.

늦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달려서 간신히 약속시간에 도착했다.


갑자기 떨어진 기온 탓에 주차장 그늘은 생각보다 춥다.

국립공원은 입장료가 폐지되었지만 이 곳은 지자체에서 유원지로 관리를 하는 곳이라 그런지

주차비 3천원, 1인당 입장료 1천원을 받는다.

 


기다리는 동안 주차장을 찍었다.

고도계 상으로는 해발 313m가 찍혔다.



유진아빠는 단양읍내에 들러 점심 때 먹을 김밥과 컵라면을 사왔다.

이번에도 이웃사촌에게 민폐를 끼치는 모드가 된 듯..

기온은 많이 떨어졌으나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사는 처지라 장갑도 제대로 없고...

해발 1,000m 이상의 표고차, 거리로는 7km를 올라가면 되겠다.



다행히 비로봉을 올라가는 길은 바람이 불지 않아서 조금 걸으니 땀이 났다.

계곡길이라 볼만한 것은 별로 없고 등산로는 돌로 바닥을 정비해 놓아서 무릎으로 오는 충격이 상당하다.

내려갈 때 몹시 무릎이 아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가물어서 그런지 단풍은 오그라 든 상태.



능선에 오르자 하늘은 깨끗했다. 바람은 사정없이 우리를 때린다.

바람막이 자켓을 입고 모자를 썼는데 능선 초입에서 비로봉까지 600m를 걷는 동안 손가락이 금방 얼어버릴 것 같다.



소백산 최고봉인 비로봉 정상(1,439m). 이 산 꼭대기가 충북 단양과 경북 영주를 가르는 모양이다.

북쪽에는 충청북도가 세운 비로봉 표지석이 자그만하게 자리잡고 있고, 남쪽으로 10m쯤 떨어진 곳에 경북 영주에서 세운

큰 표지석이 자리를 잡고 있다. 


우린 충북 단양에서 올라갔으니 충북 표지석을 찍고 바람이 너무 센 탓에 남쪽 사면인 경북 영주 표지석 아래로 내려가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김밥과 컵라면으로 요기를 했다.


충북 청주에서 단체로 온 고등학생들이 대비를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이 추운 곳에 올라왔다.

인정 많은 유진아빠는 과자를 학생들에게 나눠 주었다.



동서 방향으로 자리잡은 소백산은 능선길에 오르면 항상 바람이 강하게 분다.

그러고보니 소백산 자락에서 10여년을 살았지만 소백산 정상에 올라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능선 길을 따라 죽 걸어보고 싶었으나, 강한 바람 때문에 걷기가 힘들다.

손가락과 코 끝이 너무나 시렸다. 동상 걸릴 것 같다.



능선 길을 충분히 걸어보지 못한 채 아쉬움을 한 가득 담고 단양 쪽으로 내려왔다.

이렇게 소백산 비로봉을 올라와 본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Posted by 연우아빠.

알려줘야지, 우린 계속 싸우고 있다고!


영화 <암살> / 2015.07.22 개봉



이런 영화를 기다렸다.

항일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보고 나면

대개 개운한 느낌보다 답답증만 커져서

보기가 싫었다.


하지만, 영화 <암살>은 지금까지 봤던

영화들과 차원을 달리하는 카타르시스를 주었다.


시원시원하고

섬세하면서도 선이 굵은 액션

그리고 복선을 촘촘히 깔아 놓은 이야기 전개는

관객입장에서 아주 시원하고 상쾌한 영화였다.


매국 친일파의 다양한 망언과

항일투사들의 처절한 투쟁에서

에피소드를 빌려와서 독특한 이야기를 들려 주는 영화였다.


왕년이 어쩌구 하는 쓰레기들을 한방에 날려버리고

불가능한 일을 한다며 달콤한 언사를 뇌까리는 자들에게

주인공 안옥윤은 시원하게 일갈한다.


"알려줘야지, 우린 계속 싸우고 있다고!"


<일제시대>가 아니라 <항일전쟁기>라는 사실을

깨우쳐준 대사였다.


<국제시장>의 애국 코스프레를 단 1초만에 디스해 준

일제침략자들의 오후 6시 <일장기 하강식> 장면.


의열단과 항일애국단 활동을 "테러"라고 뇌까리는 자들에게

민간인과 침략자들을 명백하게 구별하는 김원봉의 시원한 명령.


매국행위를 미화하고, 개발독재시대의 군상들의 교언영색들이

사실은 일제제국주의의 찌꺼기를 안고 사는 것임을

영화 <암살>은 알려준다.


영화 속에서라도 <권선징악>을 만끽하고 싶다.

그리고, 거기에 힘을 받아 현실로 만들고 싶다.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일생을 보낸

백범 김구, 약산 김원봉, 1,000 대 1의 남자 김상옥 열사, 

남자현 여사, 김노숙 여사, 백명주 여사 .....


그리고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이역만리 타국 땅에서 

조국의 광복을 위해 스러져간 수 많은 애국 선열들이 

목숨바쳐 되찾은 나라를 세계에서 가장 멋진 나라로 만들고 싶다.


항일투사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속사포, 안옥윤, 황덕삼 항일투사 3명이 작전 결행을 하며 찍은 기념사진 - 쇼박스 페이스북에서 캡처



영화 포스터 / 쇼박스 홈페이지 캡처

Posted by 연우아빠.

제7회 황토현역사퀴즈대회 참가(2015. 5.10.)


작년에 딸아이 학교 소개로 참가하게 된 역사퀴즈대회에서 동상을 받았었는데

이번에도 장거리 여행의 피로가 걱정되었지만 아름다운 내장산과 정읍 구경을 덤으로 삼아

역사퀴즈대회에 참가하기로 했다.


작년에는 내장산국립공원 야영장에서 비를 맞으며 야영을 했었는데

올해는 장거리 여행에 대한 부담 때문에 내장산 한일장에서 묵기로 했다.


작년 행사장에서 가까운 곳이라 숙소를 한달전에 정했는데

이번에는 행사장이 정읍 시내에서 좀 떨어진 <동학농민혁명기념관>이었다.


시골스러운 숙소 내부는 어렸을 때 여행숙소를 떠올렸고

내장산의 맛있는 공기와 친절하고 맛있는 아침을 먹을 수 있어 참 편안했다.


아침 일찍 여관을 나와 행사장으로 달렸다.



간신히 등록시작 시간인 09:30에 주차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대규모 행사를 알리는 에드벌룬이 하늘에 두둥실 떠 있다.


48년째 매년 열고 있는 동학농민혁명 기념제는 동학농민혁명군이 처음 승리한 황토현에서 열렸다.

여기는 혁명전적지 답사 마지막 기점인 동학농민혁명기념관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행사 가운데 하나로 7년전부터 온가족이 참여하는 역사페스티벌이 열린다.



넓디 넓은 행사장 주변에는 다양한 음식과 지역문화행사를 소개하는 몽골텐트가 마을을 이루었다.



발포매트를 들고 행사장에 가서 등록을 한 뒤 뙤약볕이 아닐까 걱정했던 것과 달리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놓았다.

그늘 아래에 행사에 참가한 가족 수백명이 자리를 잡았다.

작년에는 세월호 참사 때문에 행사를 7월에 개최해 캐나다에서 온 교포가족도 있었고

경북지역을 제외한 전국 시도에서 많은 가족들이 참석했었는데

올해는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 모든 시도에서 사람들이 참가했다고 한다.



예선전 20문제를 풀어 12개 이상 맞힌 팀이 본선에 올라간 다음

본선에서는 한문제를 틀리면 바로 탈락하는 녹다운 방식.

KBS의 도전골든벨 방식으로 진행하는 퀴즈대회다.



작년에 예선에서 18개를 맞췄는데 올해는 20개를 모두 맞혀서 기분좋게 출발했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고려시대 문제에서 막혀 25문제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결과는 금상으로 전라북도도지사 상을 수상하는 것이었고, 이 지역의 맛있는 장류 세트를 부상으로 받았다.

거기에 검은쌀 1포대를 경품추첨으로 받아 기분도 좋았다.



대상을 받지 못해 아쉬웠던 듯, 준기가 내년에도 참가하자고 하지만

연우가 고3이 되는 해라, 준기랑 나만 참가할 수 있을 듯하다.


왼쪽은 올해 받은 금상, 오른쪽은 작년에 받은 은상.

지역의 역사를 문화제로 만들고, 지역의 자연유산을 맛볼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축제를 구성한 정읍지역 사람들이 훌륭하다.


이 문화제가 계속 발전하기를 기원한다.

Posted by 연우아빠.


이미지 : 시사IN 표지사진


잊지 않겠습니다.

모든 사실이 밝혀지는 그날까지...


영문도 모르고 희생당한 모든 분들께

그 분들의 유가족에게 조의를 표하며

위로를 보냅니다.


2014. 4.16 그날 세월호.....

Posted by 연우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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