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7.13(화)
아침에 일어나 보니 널어놓은 옷이 덜 말랐다.
밤새 시원한 에어컨이 돌아갔는데 온도가 낮아 증발이 제대로 되지 않은 모양이다.
호텔 식당은 4~50명이 먹을 수 있는 규모로 뷔페식으로 차려놓은 아침은 만족할만했다.
들어오는 손님마다 자리를 안내해해준다.
음식은 가짓수는 많지 않았지만 소박한 맛이 깔끔하다.
이 식당에도 깨진 사기그릇을 자주 보이는데 모두들 아무렇지 않게 쓴다.
아마도 도자기가 귀했던 시절부터 내려오던 풍습인 모양이다.
아침을 먹고 빨랫줄을 걷었다.
아무래도 룸 서비스 하는 사람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해서 약간 덜 마른 옷은 옷장에 따로 걸었다.
키를 맡기러 프런트에 갔더니 여권을 내주면서 이제 여권은 맡길 필요가 없다고 한다.
여권으로 뭔가 확인할게 있었던 것일까?
오늘 예약해 놓은 바티칸 투어에 늦지 않으려고 떼르미니 역까지 달음박질했다.
평일이라 그런지 안그래도 활기 넘치는 로마는 더 복잡하다.
투어팀은 8시까지 떼르미니 역에 모여야 하는데 5분 늦었다.
다행히 우리보다 늦은 사람이 있어서 아직 기다리는 중.
소매치기 조심하라는 주의사항을 듣고 모두 바티칸 미술관 개장시간에 맞춰 지하철로 이동했다.
출근시간이라 사람도 많다. 로마는 고대 유적 때문에 지하철을 만들 수가 없어서 외곽을 도는 2개 노선이 전부다.
가이드 말로는 요즘 사하라의 열풍이 유럽으로 밀려 올라와 당분간 이상고온이 계속될 거라고 한다.
이번 주 중에 41도까지 올라간다는 예보.
이미 파리에서부터 건조한 공기 때문에 목감기가 걸렸는데 점점 더 악화되고 있어 살짝 걱정이다.
이런 일을 대비해 아스피린을 사 놓으라고 출국전에 아내에게 얘기했었는데 이제와서 보니 어이없게도 감기약이다.
약사가 감기약은 이 정도면 된다고 하더라나. 어이없는 약사.
잔소리였지만 아스피린에 대해 주절주절 늘어놓을 수 밖에 없었다.
아스피린은 서양사람이 말하는 신이 내린 3대 명약 가운데 하나로 버드나무 생약성분을 이용해 만든 약인데
우리나라 인삼처럼 그 효능이 세월이 갈수록 점점 더 많이 발견되고 있고
유럽 날씨에는 우리나라 감기약이 아니라 아스피린이 더 필요하다는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투어 팀은 우리를 빼고는 모두 대학생이거나 젊은 직장인들.
뙤약볕에 기다리는 동안 건너편 올드브리지 젤라또 가게가 지금은 휴가가 아니라
오늘은 문을 열거라는 반가운 말을 가이드가 해 준다.
바티칸 투어는 이번이 두 번째였지만 역시나 훌륭하다.
미술사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가이드님은 십년이 넘는 경력을 갖고 있다는데 설명이 머릿속에 쏙쏙 들어온다.
인증샷 찍을 시간은 충분히 있으니 설명에 충실하게 따라와 달라는 말에 카메라는 배낭에 넣어두고 집중했다.
두 번째 들어서 그런지 바티칸의 전체 구조가 머릿속에 들어오고, 방의 배치가 전체적으로 그려졌다.
개인의 신앙은 존중하지만 종교조직에 대해서는 전혀 공감을 하지 않기 때문에
학교에서 훌륭한 미술작품으로 배운 종교화들이 내게는 그닥 흥미가 없다.
로마에 왔으니 로마숫자 읽는 법을 배워보자며 가이드께서 숫자읽는 법을 가르쳐 준다.
먼저, 로마 숫자는 5, 10, 50, 100, 500, 1,000 같은 중심 단위숫자를 기준으로
왼쪽에 있는 작은 숫자는 중심숫자에서 그만큼 빼야하고
오른쪽 작은 숫자는 그만큼 더해서 읽어야 한단다.
예를들면 먼저 기본 숫자를 알고 있어야 한다.
M = 1,000
D = 500
C = 100
L = 50
X = 10
V = 5
I = 1
우리가 알고 있는 MCM은 엠씨엠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M = 1,000 / C = 100 / M = 1,000 이런 구조인데
제일 앞에 있는 M은 그냥 1,000이고 끝에 있는 M에서 왼쪽에 있는 작은 수 C를 빼줘야 하므로
1,000-100 = 900. 즉, 1900이 된다는 사실.
또 숫자와 문자를 구분하기 위해 숫자 밑에는 언더바(Under_Bar)로 표시를 해 놓는다고 한다.
먼저 피우스 11세 교황이 기증해 시작된 회화실(PINACOTECA)로 들어가 중세부터 시대별로 종교화를 감상했다.
문자를 모르던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던 시절에 사람들에게 종교를 설명하기 위해 만든 수많은 작품들.
황금으로 장식된 수많은 그림을 문자를 모르던 사람들이 봤으면
예수가 사람으로서 사람의 친구로 왔다는 사실은 모른 채 우러러 경배해야할 대상으로 인식했을 것은 뻔한 일.
권력을 가진 주교, 대주교, 교황들은 그것을 악용해 세속적 재산과 권력을 누리며 귀족과 연합해 천년세월이 넘는 기간을 누려왔다.
하긴 카톨릭을 공인해 준 콘스탄티누스 황제도
자기가 권력을 잡는데 기여해 준 카톨릭 세력을 이용해 먹은 대신
예수를 황제의 권력으로 신으로 공인해 줬으니 훌륭한 거래를 한 셈이다.
거래 당사자는 죽을 때까지 결코 예수를 신으로 믿지 않았지만...
회화실을 보고 나니 어느덧 점심시간.
구내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오전에 둘러본 회화실을 하나씩 다시 둘러보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오후에 다시 모인 사람들은 솔방울 정원에서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에 대해 설명을 듣고 그리스 로마 조각실로 자리를 옮겼다.
중학교 때 처음 유럽 미술에 대한 지식을 접했을 때 피에타 같은 종교적 미술작품들이 모두 독창적인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견문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그게 모두 이집트의 신전, 신화, 메소포타미아의 신화, 신전, 미술작품을 모방했거나 모티브를 따온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는 수많은 당대와 후대 작가들이 모방했는데 피에타의 모티브는 이집트의 호루스 신과 어머니 조각상에서 나온 것이다.
이탈리아가 낳은 르네상스 3대 거장 베를리니의 발다퀴노는 오리엔트 문명과 그리스 문명의 자손이며,
수많은 도시의 두오모, 그리고 수많은 도시의 뮌스터 등도 수천년 동안 내려온 문명의 어머니로부터 전래된 것이라는 사실이다.
거장 미켈란젤로가 그리스 조각상 토르소와 라오콘 군상을 보며 더 이상 손댈 것이 없는 완벽한 인체미라고 평가하며
그걸 완벽하게 재현해 내는 것에 일생을 걸었다는 사실도 놀랍긴 마찬가지다.
이런 사실을 알고나니 무조건적 외경심은 사라지고 좀 더 객관적으로 사물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이 문명의 원류인 오리엔트 지역을 여행해보는 것이 꼭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오리엔트 문명은 동쪽으로는 석굴암까지 서쪽으로는 런던까지 전방위적으로 영향을 준 위대한 문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바티칸 투어의 마지막 코스는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
고집과 아집 그리고 집념과 끈기로 똘똘뭉친 인간 미켈란젤로의 역정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보수 비용을 부담할 수 없어 판권을 독점하는 조건으로 NHK에 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만약 일본이 “너희들보다 우리가 이 작품을 더 잘 관리할 수 있으니 이걸 뜯어서 일본에 가서 박물관 하나 만들어 전시해 주마” 라고 했다면
이탈리아나 유럽인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자기들이 약탈한 물건을 본국보다 더 잘 보전할 수 있고 인류공동의 문화유산이니 돌려줄 수 없다고 하는 논리를 그대로 자기자신에게도 적용할 수 있을까?
겨울철 보다 몇배나 많은 사람들이 시스티나 성당 바닥과 의자에 앉아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바라본다.
이것으로 바티칸 박물관 투어는 끝났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에게 시스티나 성당 한 켠에 있는 장소를 설명해 주었다.
콘끌라베 결과를 알려주는 장소. 한국에 돌아와 ‘천사와 악마’를 보며 너무 신기해했던 그 장소.
셀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찾아 온다는 바티칸 박물관을 보기 위해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립니다.
엄청나게 더운 날씨는 사진의 노출을 맞추는데도 애를 먹을 정도..
교황 피우스 11세가 개인 소장물을 기증해 만들기 시작했다는 바티칸 회화실 입구
중세에는 달걀 노른자와 금가루를 이용해 이렇게 도식적인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이걸 접어서 다녔다고 합니다. 종교 전파를 위해 시청각 자재로 사용했답니다.
말이 통하지 않고 글도 모르는 이민족에게 그림이나 영화만큼 공감하기 쉬운 수단이 없죠.
역시 중세의 지극히 도식적인 종교화
이런 그림을 바니스타화라고 한답니다.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서서 라파엘로 같은 화가들이 등장해 중세와 다른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답니다.
라파엘로는 남의 그림을 모방하는데 천재였다고 하는데 "예수의 변모"라는 작품으로 거장으로 인정받았습니다.
다빈치의 고향 이탈리아, 그곳 최대의 미술관에 다빈치의 회화 작품이 없다는게 약점이라고 한답니다.
유일한 다빈치의 회화작품. 성 제롬.
구두수선을 하던 사람이 이 그림의 얼굴부분만 잘라서 사용하다가 미술전문가에게 발견되어 원형전체를
찾아냈다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따라 다닙니다. 이 각도에서 아래에서 위로 쳐다보면 얼굴부분에 정교한 칼자국이
보이는데 복원전문가의 솜씨에 감탄을 하게 됩니다.
참고로 기독교 종교화는 등장인물의 상징이 있는데
1. 긴 머리에 수염이 있는 남자 : 예수
2. 열쇠를 들고 있거나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사람 : 성 베드로. 예수가 그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었다고
하고, 스승과 같은 방법으로 처형당하는 것이 제자로서 온당치 않다고 거꾸로 매달려 죽은 것을 상징합니다.
3. 붉은망토 : 사도 바울(로마 시민권자였기 때문에 붉은 망토를 입고 있었다고 합니다)
4. 빨간모자 도는 사자와 함께 등장하는 사람 : 성 제롬. 사자의 목에 걸린 가시를 빼내줘서 사자를 살려줬기 때문에
사자가 평생 성 제롬을 따라 다니며 지켰다고 합니다.
5. 손바닥과 발등에 못자국이 있는 성자 : 성 프란치스코(아씨씨의 성인)
6. 가죽옷을 입은 사람 : 세례요한
등등입니다.
중세의 종교화를 그리는 방법을 보여주는 전시물
왼쪽 연필 소묘는 탁월한 기술을 가진 스승들이 그린 밑그림이고
오른쪽은 스승이 그린 밑그림에 제자들이 색을 입힌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아는 중세나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들 작품은 이런 식으로 제작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당연히 밑그림의 가치가 훨씬 높다고 합니다.
공방에서 대량생산하는 느낌이 듭니다.
르네상스 시대에 비로소 실제 모델을 두고 그림을 그린 흔적이라고 합니다.
거꾸로 매달려 있을 때 나나타는 신체 변화를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고 사람들의 근육 움직임
같은 것이 실제와 같이 나타납니다.
바로크 시대의 그림을 전시하고 있는 방입니다.
화살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표정은 전혀 고통이 없는 "허무맹랑한" 그림들의 시대라고도 합니다.
유태인의 설화에 나오는 유디트 이야기를 그린 작품입니다.
화가가 여성인데 이름을 메모를 해 놓지 않았네요.
남자화가들은 이 설화를 그릴 때 유디트를 미모의 가녀린 여성으로 묘사한데 반해 이 작품은 강인한 여성상을 표출하고 있습니다.
솔방울 정원이라는 이름은 저 멀리 보이는 솔방울 청동상 때문에 붙었습니다.
정말 강렬하고 뜨거운 햇살이었습니다. 여기서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에 대해 설명을 듣고 그리스-로마 조각실로 들어갑니다.
아폴론이 활을 쏘고 있는 모습을 조각한 것인데 완벽한 인체의 균형미를 자랑합니다.
미켈란젤로가 궁극의 작품으로 경탄했다는 라오콘 군상.
정말 그리스 조각가들의 인체묘사는 더이상 완벽할 수 없는 경지에 올라가 있습니다.
미켈란젤로가 "완벽한 인체"라고 감탄했다는 토르소(몸통)
미켈란젤로는 이 토르소를 최후의 심판에서 예수의 몸통을 그릴때 모델로 삼았다고 합니다.
인체에 대한 묘사는 이미 이 시대에 완성이 되어 버렸다고 할 정도랍니다.
로마 황제의 청동욕조.
그 욕조 바닥에는 이런 대리석 모자이크가 있습니다.
로마시대에 이미 입체감이 완벽한 모자이크라니...게대가 수백년을 밟아서 닳아도 그 모습 그대로 보이도록 대리석을 쐐기모양으로
만들어 정교하게 바닥에 박아넣어서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신의 모습 : 주름이 없고 콧등이 휘지 않은 것은 신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헤라클레스.
인간의 모습 : 주름이 있고, 콧등이 휘었습니다.
사람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그림의 모습과 등장인물의 눈동자가 따라오는 특이한 양탄자.
예수가 무덤에서 부활했다는 모습
지도의 방. 교황의 집무실에서 복도 끝까지 교황의 지배아래 있던 이탈리아 전국의 모습과 주요 섬들의 모습을 지도로 만든 회랑입니다.
그 지도의 방 천정에는 이렇게 빈틈없는 그림들이 가득합니다.
아테네 학당.
[겨울에 본 바티칸 박물관과 성베드로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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