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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여행/가족배낭여행(2010년)

(16일째) 베른의 분수 순례

by 연우아빠. 2010. 8. 29.

몽트뢰에서 로잔으로 오는 동안 비탈을 깎아 포도밭을 일군 풍경이 계속 이어졌다.
척박한 빙하지대에서 살기 위해 스위스 사람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힘들여 일했을까?
그들은 혜택받은 땅을 얻은 것이 아니라 죽을힘을 다해 혜택 받은 땅으로 만든 것이었다.

오후 4시가 훨씬 넘은 시간, 우리는 베른으로 출발했다.
베른 중앙역에 내려 지도를 들고 도시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중앙대로를 따라 준기는 분수순례를 시작했다.
어디서 이런 이야기를 읽은 것일까? 분수를 보더니 이름을 외치며 차례대로 길 끝까지 걸어갔다.
오늘 월드컵 결승전이 있나? 오렌지 군단의 옷을 입은 사람들 한 무리가 퍼레이드를 한다.

 

베른 중앙역을 나와서 준기를 따라 분수순례를 시작했다.
백파이프 분수부터 시작해 정의의 신 분수까지 30분이 넘게 걸어가며 분수마다 갖고 있는 독특하고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을 감상했다.
마크트(Markt) 거리를 따라 니덱 다리에 도착해서 분수 순례는 끝났다.

다리를 건너자 곰 공원이 있었다.
더운 날씨에 곰들이 그늘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한 두 마리 어슬렁거리는 것을 보더니 준기가 “곰이 있어!”하며 너무 좋아한다.

계단에 앉아 탁족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우리도 저기 가서 탁족이나 하자” 곰 공원 옆으로 난 긴 계단을 내려가 시퍼런 물살이 넘실거리는 강에 다다랐다.

청년 둘이 수영복만 입은 채 웃으면서 손을 흔들고 지나간다.
나도 미소를 보내고..양말을 벗고 아래강(Aare)에 발을 담궜다.
으아! 정말 시원하다.

강물 속에 사람 머리 둘이 둥둥 떠내려 온다.
깜짝 놀라 쳐다보니 아까 그 젊은 친구들이다.
우리를 보더니 손을 흔들며 웃는다. 우리도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빠른 물살에 헤엄은 치지 못하고 물결을 타고 떠내려가는데 재미있을 것 같다.
용기가 좀 필요하긴 하겠지만. 동양인은 우리 밖에 보이지 않는다.
물살을 보고 있자니 사람이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어서 섬뜩했다.
그 청년들 뒤에 레프팅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물살이 거세 제대로 조정이 되지 않자 강변으로 배를 대고 만다.
아까 그 젊은 친구들은 다시 걸어 올라와 물살을 타고 내려간다.

 

이제 집에 가야할 것 같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데 연우가 양말을 놓쳐 강물에 빠졌다.
쏜살같이 흘러내려가는 연우 양말을 아래쪽에서 탁족하던 여자 분이 주워서 준다.
감사의 인사와 웃음.

차 시간에 늦지 않으려 궤도 버스를 탔다.
기계 앞에서 망설이는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보더니 너도나도 나서서 표 끊은 법을 가르쳐 주는 동네 주민들.
도착 예정시간을 알리는 정거장 표지와 다음역 도착 시간을 알려주는 버스내 전광판.
정말 정확하다.

30분 걸려 걸어온 길을 6분만에 되돌아와 5분 뒤에 떠나는 기차를 타고 루체른으로 출발했다.
오늘이 스위스 여행 중에 가장 알찬 여행을 한 느낌이 들었다.
"베른을 못 봤으면 정말 아쉬웠을 거야!" 준기가 으쓱한다.



아담한 스위스의 아담한 수도 베른.
베른 시내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석조 아케이드. 바로 슈피탈 거리입니다.
이 석조 아케이드는 16세기에 만들었다고 합니다. 상인의 나라 답습니다.
이 거리를 따라 곰 공원까지 가는 길에 각종 분수가 일렬로 서 있지요.
그리고, 이 건물 어딘가에 아인슈타인이 젊었을 때 살았던 집이 있다.

자! 이제 가 볼까요?




첫번째 분수. 백파이프 부는 분수입니다.
스코틀랜드의 명물이 왜 베른에 있는 것일까요?
새것처럼 생겼지만 1545년에 만든 거랍니다. 이순신 장군이 탄생할 무렵이었군요.



분수 거리를 보기 위해 꼭 베른을 봐야 한다고 고집부리던 준기는 정말 신이 났답니다.
백파이프 분수를 배경으로 백파이프 부는 흉내를 내봅니다.



멋진 시계탑이지만 옛날에는 감옥이었다는군요.
거꾸로 매달려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는 군인들처럼 감옥의 죄수들도 시계 소리를 들으며 풀려날 날을 기다렸을까요?
12세기에는 여기가 베른의 서쪽 끝이었다고 합니다.



체링거 분수. 베르히톨트 폰 체링거 공작의 모습이라고 합니다.
그가 베른을 건설했다고 하는데 사냥꾼들에게 처음 잡는 동물의 이름으로 도시
이름을 정하겠다고 했는데 곰을 잡게되어 도시 이름을 베른으로 했다는군요.

고려 태조 왕건의 아버지 왕륭이 나중의 고려의 정궁이 된 만월대(금돼지터)에
집을 짓게 된 사연과 비슷하네요.



시계탑 앞에 있는 안나 자일러 분수.
안나 자일러는 베른에 처음으로 병원을 세운 사람이라고 합니다.
당연히 기념해야 할 훌륭한 분이네요.



길은 여전히 아케이드 건물로 빽빽하게 이어져 있습니다.
이 길로 버스와 트램이 다니고 사람들도 그 길로 유유히 다닙니다.
교통사고가 나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워낙 천천히 달리니 그럴일은 없을 것 같네요.



사수의 분수. 사냥꾼의 분수라고도 하지요.
곰도 쪼그려쏴 자세를 하고 있네요.



물이 나오는 분수 역시 총처럼 생겼습니다. 중세시대에는 공공우물이었지요.
분수마다 꽃이 이렇게 화사하게 피어서 정말 예쁩니다.



오늘밤 월드컵 결승전 네덜란드 대 에스빠냐의 경기가 있습니다.
저 멀리 네덜란드의 오렌지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행진해 오고 있습니다.
베른의 거리는 너무 깨끗하고 아담합니다.



무시무시한 식인귀의 분수.



도시 한복판에 왜 이렇게 끔찍한 분수를 만들었을까요?
 


시계탑을 통과해서 뒤돌아 보니 이런 모습이네요.
시계 소리도 참 아름답고 독특했습니다.


곰들이 빙글빙글 돌아가고 원숭이가 종을 칩니다.



팔레스타인의 전설에 나오는 힘센 삼손
사자를 한 손으로 죽였다고 하지요.


병사의 분수.
중세의 병사들이 쓰던 투구를 가지고 만들었네요.


물이 얼마나 깨끗하고 시원한지 지금도 마시는 물 같았습니다.
준기가 한번 손으로 만져 봅니다.


정의의 분수. 눈을 가린 정의의 여신이 공평한 심판을 하겠지요.



자, 이렇게 분수 순례가 끝나고 나니 니덱 다리가 나옵니다.
니덱 다리 위에서 보면 이런 아름다운 마을이 있지요.


아레(Aare)강입니다. 물이 시퍼런 것이 물살도 빠르고 섬찟합니다.
사람들이 계단에 앉아 탁족을 하고 있습니다.



니덱 다리를 건너자 곰공원을 상징하는 곰 한마리.



그리고 안내표지판



아레강 사이에 곰이 사는 우리가 있습니다.
원래 체링거 공작이 건설한 성벽 밖에 해자가 있었는데 그 해자에 이렇게 곰을 키우고 있습니다.



아레 강으로 가는 길에는 이렇게 돈을 기증한 사람들 이름을 새겨놓은 박석이 있습니다.


이 계단을 내려가면 아레강에서 탁족을 할 수 있고요.
오른쪽은 곰이 사는 공원입니다. 무척 비탈진 곳에 곰이 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니 정말 시퍼런 것이 빨려 들어갈 것 같습니다.


유럽 한복판에서 이렇게 탁족을 즐길줄 어찌 알았겠습니까?
정말 최고의 피서지요.



이 청년 둘은 저 시퍼런 강물이 무섭지 않나 봅니다.
물살이 빨라서 헤엄치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냥 물살에 몸을 맡긴채 둥둥 떠내려 가며 우리에게 손을 흔들었습니다.
"You are very brave!!"
"Thank you! Ha Ha Ha!"



대단한 청년들입니다.



그 뒤에 관광객들인 듯.
보트로 저어 내려오다 물살이 너무 거세서 건너편 연안으로 올라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