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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여행

지리산 5박6일(4) - 하동

by 연우아빠. 2014. 8. 26.

지리산 5박6일(4)-하동 쌍계사와 최참판댁 / 8월12일



어찌하다 보니 남쪽 끝자락인 지리산 휴양림에 벌써 6번째 오게 되었다.


오늘은 아들의 생일.

의도하지 않았지만, 최근 한달 사이에 계속해서 소고기를 집중적으로 먹게 되는 일이 벌어졌다.

어제 사온 소고기로 아침부터 미역국을 끓이고 또 소고기 구이를 먹게 되었다.


그 동안 다섯번이나 지리산을 다녀 갔지만

하동 최참판 댁은 가보지 못해서 이번에는 거길 가보기로 했다.



성삼재 휴게소 아래, 시암재 휴게소에 차를 대고 호떡을 사서 간식으로 먹으며 태풍이 지나가서 맑은 지리산을 감상한다.


하동 쌍계사 입구의 십리 벚꽃길을 달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생일을 맞아 특별한 음식을 먹어 보겠다는 아들의 요청으로 점심을 하동특산 은어를 먹기로 했다.

은어회는 계절적으로 위험하고 또 민물고기 기생충이 걱정이 되어서 은어 튀김으로 타협을 보았다.


은어는 민물고기 치고는 제법 큰 편이었다.

억센 가시를 씹는 것이 싫어서 민물고기를 즐기지 않는데 은어는 살을 발라 먹을 수 있어서 괜찮았다.

아내는 밑반찬이 정말 맛있다며 남은 반찬을 모두 싸가지고 와서 이틀 동안 잘 먹었다. ^^


은어를 먹고 천천히 쌍계사로 올라갔다.


비오는 날에 봤던 쌍계사보다 맑은 날의 쌍계사는 운치가 덜 했다



진감국사대공탑비.

우리나라 최초의 조기 해외 유학생인 최치원. 조기 유학생 가운데 성공한 드문 케이스다.

그가 직접 썼다는 이 진감국사 대공탑비를 보니 당나라에 대한 사대문구가 앞머리에 상투적으로 달려있다.


우연일까? 필연일까?

진감국사의 속성은 최씨로 최치원과 같은 6두품 출신이다.

천년 넘게 역사를 이어온 이 비석은 깨지고 금이가고 총탄에 맞아 세월의 흔적을 보여준다.

깨진 틈으로 습기가 들어가 겨울에 얼면 풍화작용이 더 심해질 듯.

보호하기 위해서 테두리를 모두 금속으로 처리했다.

모조품을 여기 남기고 박물관으로 옮기는게 옳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금속 테두리 역시 여름에 돌과 다른 팽창계수 때문에 또 다른 손상을 주지 않을까 싶다.



비석을 받치고 있는 거북이는 백회 부분에 구멍이 있다. 원래 저 자리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대입수능 백일기도.

이 넘의 나라가 모두 대학입시에 이렇게 목을 메달고 있으니 갑갑할 노릇이다.



고려 때 만든 것으로 보이는 마애석불. 할아버지 세대 때 흔히 볼 수 있었던 이 지역 사람의 얼굴을 닮았다.



진감국사 대공탑비는 왜 이렇게 대웅전과 삐딱한 방향으로 자리를 잡았을까?

왜 출입로 가운데가 아니라 한쪽으로 치우쳐 있을까?



쌍계사 9층 석탑


몇 년 전, 비오는 날 보았던 쌍계사만큼 멋지지는 않았다는 게 아내와 나의 생각.

언젠가 십리벚꽃 길에 벚꽃이 활짝 피었을 때 와 볼 수 있으면 참 좋겠다.




지리산을 등지고 지리산휴양림과 완전히 반대쪽에 있었던 까닭에 한번도 보지 못했던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인 하동 최참판댁을 찾았다.



어찌된 셈인지 명작 소설은 나와 인연이 닿지 않아서 였을까?

그 유명한 토지는 읽어본 적도 없고 드라마를 몇번이나 했지만 한번도 본 적이 없다.


고교 동창들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이 드라마에 출연한 적은 있다.

언덕을 올라가면서 본 악양 들판은 풍요로웠고 전망 또한 평화롭고 아늑했다.




세트장인지 원래 사람이 살던 집이 있었는 지 모르겠으나 고래등 같은 기와집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수수도 보이고



예쁜 돌길도 있다.


수십년만에 보는 듯한 박은 둥글둥글한 모습이 귀엽다.



전망이 탁 트인 언덕에 자리잡고 있어 파노라마를 남발하게 된다.


최참판 댁을 돌아보고 나서 휴양림을 돌아가는 길을 네비게이션으로 검색하니 왔던 길을 되짚어 갈 것을 권유한다.

하지만, 천은사 입구의 산적들 보기도 싫고 지리산을 자동차로 나마 한바퀴 돌아보고 싶었다.

아내의 지청구를 귓등으로 들으며 산청으로 해서 지리산을 한바퀴 돌았다.

온 길로 되돌아 가는 것보다 15km 정도 더 길었으나 가보지 않은 길이 궁금했다.

소득은 별로 없고, 별다른 감흥이 없어서 아쉬웠다.



그저께 의령, 산청 드나들며 계속 지나다녔던 남사 예담촌에 차를 잠시 대고 골목길을 어슬렁 거려 보았다.

그러다가 발견한 조선 개국공신 경무공 이제의 집.

옛날 집들이 있는 골목치고는 담이 너무 높아서 편안한 느낌은 약하다.



진주 시내에 있는 생협에 들러 음식재료들을 좀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도중에 먹을 거리가 많은데 아내는 또 복숭아랑 포도를 과수원에서 산다.

건강에 좋지 않은 먹을거리라는 이유로 아들은 생일케이크를 하지 않겠다고 하여 처음으로 케이크 없는 생일을 보냈다.


숙소의 발코니에 야전침대 두 개를 펴 놓고 누워서 하늘을 바라 보았다.

공기가 상쾌하여 겨울 침낭을 놓고 거기에서 자 보기로 했다.


아내가 누워 보더니 너무 좋다고 자기도 야전침대에서 자겠다고 한다.

하지만 저녁을 먹고 나서 여기에 누워 본 아들이 자기도 자겠다고 나섰다.


두 사람은 결국 가위바위보로 잘 사람을 결정하기로 했는데, 아들녀석이 이기고 말았다.

아들 녀석이 누워서 "아빠, 달이 머리 위에 떠 있어!"하고 한다.


지구와 달 사이가 가까운 세칭 슈퍼문 기간이라 동쪽으로 시선을 두고 누운 아들의 야전침대에서 보니

보름이 막 지난 둥근 달이 더욱 아름답게 빛이 났다.


아들에겐 좋은 추억거리가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