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답사여행

영월, 단종 유적 답사

by 연우아빠. 2011. 8. 17.

2011.8.11(목)

침낭을 덮지 않아야 상쾌한 밤. 구름이 많이 낀 날씨라서 더욱 그런 듯하다.

여행은 준비한 자가 준비한 만큼 누리는 것.
준기는 지난 2주일간 나름 철저한 여행준비를 했다. 종이를 펴더니 오늘 갈 곳을 읊는다. 청령포-관풍헌-장릉 순서다. 유배와서 잠시 머물다 묻힌 곳을 순서대로 만들어 놓았다. 뙤약볕이 내리 쬐는데 여름 햇살이 따갑다. 이미 너희들이 다 본 곳이라고 했더니 사진만 있을 뿐 너무 어렸을 때라서 기억이 없다고 가야 한단다. 요즘 박시백이 그린 <만화로 보는 조선왕조실록>에 푹 빠져있는 연우와 준기.

연우가 “왜 항상 준기가 가는 곳만 가냐고?!”라며 볼멘소리를 하자
"그럼 누나가 가고 싶은 곳을 말해봐. 없으면 그냥 의견을 낸 사람을 따라가는 게 맞잖아.”라고 자기 주장을 편다.
웃을 수 밖에 없는 아내와 나.

준기 의견을 깊게 생각하지 않고 미탄 사거리에서 제일 가까운 곳부터 장릉-청령포-관풍헌 순서로 돌았는데 이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15일날이 돼서야 확실히 알았다. 박시백 책을 보고 가서 그런지 하나하나 설명 듣는 것도 그렇고 안내문도 제법 진지하게 들여다 본다. 습관적으로 실없는 질문도 계속 반복하고... 초등 5학년 무렵에 부모의 이상에 제일 근접한 행동을 한다는 심리상태처럼 준기의 요즘 행동은 매우 모범이다. ‘저 녀석도 14살이 지나면 자아구축 단계에서 다른 모습을 보여 주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박시백의 실록을 읽은 뒤에는 동구릉에 가자고 계속 조르는데 일정을 맞추지를 못한다. 책에서 봤던 것을 직접 확인하는 즐거움에 신난 준기.

너무 일찍 많은 여행을 해서 겨우 초등 5학년이 “추억여행”을 하는 상황이 난감하긴 하다. 너무 뜨거운 날씨라 휴양림으로 돌아가고 싶다. 일단 꼭 가보고 싶은 곳을 돌았으니 숙박비에서 굳은 돈을 이용해 영월 다하누 촌에 들러 소고기를 사기로 했다. 너무 오랜만에 먼길을 나서서 그랬을까? 다하누 촌으로 가면서 아차 싶었다. 강원도의 시, 군은 면적이 엄청 넓어서 같은 영월이라고 다 같은 영월이 아니라는 것을 깜빡했다. 한참을 달려 다하누 촌에 도착했다. 아내는 소고기 등심 600g을 사고, 근처 수퍼에서 두어가지 물건을 더 사서 휴양림으로 돌아왔다. 제법 먼길이다.

현지아빠께 물려받은 바베피아로 고기를 구워 저녁을 먹었다. 잘 익은 고기는 손으로 찢어도 될만큼 부드럽다. 저녁 한끼의 별식은 콘도 숙박비의 딱 절반이었다. 먹으면서 너무 맛있다는 준기의 너스레. 자고 나면 봉화 청옥산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밤에 비가 온다.

가리왕산 휴양림은 가장 효율적으로 야영장을 운영한다. 음식물 쓰레기에 대한 철저한 분리수거, 쓰레기 봉투 낭비 없는 집합처리 방식. 적정 냉온수 샤워 장치로 여자들도 괜찮은 점수를 주는 곳이다. 올해는 데크 마다 식탁에 파라솔도 설치해 놓았다.



영월에 유배 당한 단종이 처음 머물렀던 청령포.
어린 폐왕은 물이 넘치는 위험이 도사리는 작은 섬에서 갇혀 살아야 했다.



단종이 머물렀던 집.
서양 인형을 닮은 마네킹은 차라리 치우는게 나을 듯하다.


왕비와 헤어져 혼자 유배당한 어린 왕이 밤새 울었지만 그 울음을 들어 주는 이는 이 소나무 밖에 없었다는 이야기


한양에 두고 온 왕비를 생각하며 단종이 직접 쌓았다는 돌탑



단종이 한양 쪽을 바라보며 보았을 강물은 여전히 청령포를 휘감아 흐른다.


청령포 안에 있는 금표비
영조 때 세운 것으로 일반백성의 출입제한을 알리는 비석



영월 관아 객사였던 관풍헌
단종은 청령포에 유배되어 있다가 홍수로 이곳으로 건너와 머물렀으나 여기에서 17살 어린 나이에 죽음을 맞이했다.




정자각에서 장릉을 올려다 본 모습
충분한 묘터를 확보하지 못한 곳이라 그런지 정자각이 왕릉과 수직으로 만난다



영월 장릉(조선 6대 임금 단종의 능)


장릉. 단종이 죽은 뒤 버려진 시신을 이 고을 호장이었던 엄흥도가 아들과 함께 몰래 거두어 묻었다고 한다.
삼족을 멸할 중죄인 까닭에 오랫동안 비밀에 붙여졌다가 숙종 때 노산군에서 단종으로 복권되어 왕릉으로 단장하면서 알려졌다고 한다. 예전과 달리 이제는 능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울타리를 둘러 놓았다.


폐위된 왕을 지켰던 268명의 충신과 환관, 궁녀, 노비 등의 신위를 이렇게 모셨다.



268명의 신위를 함께 모신 장판옥.


멸문의 위험을 무릅쓰고 단종의 시신을 모신 이곳 호장 엄흥도를 행동을 기리는 정려각



숙종 임금 때 복권된 단종릉을 표시하는 비각
명나라가 망한 지 오래되어 조선 특유의 유명조선국에서 '유명'은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