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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여행

서남해안 여행(3) - 강진

by 연우아빠. 2011. 3. 14.

□ 강진 여행(2.28)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젖히니 여전히 비가 내립니다. 어제는 안개가 심해서 몰랐는데 창문을 열고 보니 저 멀리 강진만이 보입니다. 아침을 먹고 길을 나서려는데 연우가 가기 싫다고 하네요. 혼자 빈 방에 남아서 뭘 하겠냐고 했더니 친구랑 문자를 주고 받으며 노닥거릴 생각인가 봅니다. 자꾸 징징거리니까 아내는 연우를 숙소에 놔두고 가자고 합니다. 하지만 혼자 남겨놨다가 뭔 일이 생길지 알고...연우를 달래서 데리고 길을 나섰습니다. 

까르페 디엠(Carpe Diem)!
돌아가서 후회하지 말고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해 즐겨라. 이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단다. 딸아! 

오늘은 백련사, 김영랑 시인의 생가, 그리고 마량항을 돌아 고금도를 가 볼 생각으로 길을 나섰습니다. 비가 많이 오는데다 월요일이라 그런지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텅빈 백련사 주차장을 지나 절 앞까지 올라갔는데도 사람이 보이질 않습니다. 절 주변은 사람이 공들여 다듬은 흔적이 역력합니다. 절 앞에는 수백년이 넘는 고목은 잎을 다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은 모습이었지만 무성한 가지들이 기품 있는 자세를 보여줍니다. 절 마당에 있던 커다란 개 한 마리가 우릴 보더니 다가와서 탐색을 하더니 그냥 사라집니다. 


백련사 앞마당. 앙상한 가지만 남았으나 기품이 있는 나무 한그루



아직 봄은 오지 않았으나 동백나무 숲에는 빨간 동백꽃이 피었습니다.


고려의 명문장 최자가 처음 썼다는 비문은 사라지고 지금은 조선 숙종 때 다시 쓴 비문이라고 합니다.
붉은 거북은 고려 때 것이라는 안내문이 있는데 신라 때 만든 것보다는 표정이 아주 착하게 생겼습니다.


백련사는 작은 절인데 축대 위에 자리를 잡고 있어서 높아 보입니다.


이 길이 다산초당 가는 길인가 했더니 아니더군요.
주차창으로 내려가는 길이었습니다. 동백나무 숲이 정말 멋집니다.


백련사에는 우리나라 전통 다도를 확립한 초의선사가 머물렀던 곳이기도 합니다. 고려 때 문명을 날렸던 최자가 글을 쓴 비석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후대에 만든 비신이 있고, 비신을 받치는 거북모습의 받침돌이 남아 있습니다. 붉은 색을 띤 거북은 사나운 모습이 아니라서 친근한 느낌입니다. 이 절은 유명한 것은 정약용과 혜장선사의 교유 때문이기도 하지요. 백련사와 다산초당 사이를 오가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을 겁니다. 이 절은 고려말 왜구들에 의해 폐사가 될 지경이었지만 효령대군의 도움을 받아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합니다. 절은 작지만 밖에서 보면 위엄이 있습니다. 혜장선사와 다산이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나눴던 동백나무 숲길을 따라가봤습니다. 비오는 날 우산을 쓰고 산길을 휘적휘적 걷는 것도 좋네요. 아무도 없으니 정말 몸과 마음이 맑아지는 것 같습니다. 


다산초당 가는 길입니다.
여기는 우리나라 토종차를 재배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다산초당 가는 중간쯤에 정자가 하나 있는데 비가 오고 안개가 심한 날씨라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맑은 날 올라가면 경치가 좋을 듯합니다.


비가 오는 산길을 걸어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더군요.
이맘 때에도 이정도 초록색이면 여름에는 하늘이 보이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다산 초당 근처에 다다르자 이런 대나무 길이 나옵니다.


2년만에 다시 찾은 다산초당, 아니 다산와당은 여전히 그대로입니다.
사람 한명도 없는 그야말로 적막강산이었습니다.


안경을 쓴 다산의 초상


아무도 없는 다산초당 툇마루에 잠시 걸터앉아 비 내리는 숲을 바라봅니다. 오랜 유배생활에 고적한 곳에서 혼자 머물면 어떤 일을 할까요? 다산은 길고 긴 유배생활동안 500권이 넘는 여유당 전서를 만들었죠. 그가 관직생활을 계속했다면 아마 이런 방대한 저서를 남기기는 힘들었을 겁니다. 당사자의 길고 힘든 유배생활이 우리 문화를 풍성하게 만든 역설이 되는 건가요? 다산초당을 나서 다시 백련사로 돌아갔습니다. 이제는 시대를 훌쩍 뛰어넘어 현대문학의 거장 김영랑 시인을 만나러 시내로 갑니다.


내 마음 고요히 고흔 봄길 우에 /김영랑

돌담에 소색이는 햇발가치
풀아래 우슴짓는 샘물가치
내 마음 고요히 고흔 봄길우에
오날하로 하날을 우러르고십다

새악시 볼에 떠오는 붓그럼가치
시의 가슴을 살프시 젓는 물결가치
보드레한 에메랄드 얄게 흐르는
실비단 하날을 바라보고십다.

중학교 교과서에서 처음 배운 영랑 김윤식 시인의 시를 바위에 새겨 놓았습니다. 다시 봐도 정말 아름다운 우리말입니다. 잔인하고 처절한 시대에 저렇게 아름다운 시를 남겼다는 것이 신기할 지경입니다. 영랑의 생가는 생각보다 아주 넓었습니다. 일본에 유학을 간 것으로 보면 영랑의 부모님은 아주 부자였던 모양입니다. 생가와 주변을 돌아보면서 좋은 환경에서 자라도록 사람을 배려하는 것이 참 중요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영랑생가 뒤에 있는 금서당 자리에 올라가보니 강진만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우중충한 날씨에도 이정도인데 5~6월에는 얼마나 아름다울까 상상만해도 멋있습니다. 


김영랑 시인의 생가로 올라가는 길.
돌담에 반짝이는 햇발같이 라는 싯구가 생각납니다.


초가집이지만 굉장히 큰 규모였습니다.
일본에 유학까지 보낼 정도면 아주 부자였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고양이 한마리가 입구에 이렇게 쪼그리고 앉아 있어서 찍었는데 이녀석이 계속 저희들을 졸졸 따라다녔습니다.


시골 초가집치고는 정말 크다는 느낌이 들었던 영랑의 생가. 안채.


김영랑 시인의 대표적인 작품들을 바위에 새겨 놓았습니다.


교도소(?) 같은 중고교 시절은 "찬란한 슬픔의 봄" 같았지요.


오매 단풍들것네...남도 사투리의 정감이 묻어있습니다.


마당에는 오랜 세월을 말해주는 거목과 고목이 있었습니다.


집 뒤에는 이런 언덕이 있고


언덕위에는 이런 아름다운 건물이 있습니다. 금서당 옛터라고 합니다.



마당에는 김영랑 시인의 시가 있고요.



멀리 강진만이 보입니다.


영랑의 생가를 나와 다산이 강진에 와서 처음 머물렀다는 사의재를 찾아 나섰습니다. 생각보다는 좀 떨어져 있는 곳이라 많이 걸었습니다. 그래도 가는 곳곳에 영랑의 시가 널려 있어서 걸을만한 거리였습니다. 사의재에서 일하던 주모는 처음 귀양을 와서 실의에 빠져 있는 다산에게 공밥 먹지말고 제자라도 가르치라고 했다고 합니다. 참 훌륭한 주모입니다. 높은 벼슬을 한 서울 선비에게 놀고먹지 말라고 한마디 했으니 말입니다. 


다산이 처음 유배생활을 했던 사의재입니다.
여기 주모께서 다산에게 놀고 먹지 말고 제자들을 키우라고 한마디 하셨답니다.


사의재에서 영랑생가로 돌아오는 길에 동판을 만났습니다. 강진 군청 앞에 있는 동판은 5.18항쟁을 기념하는 기록물이었습니다. 내용을 읽으니 가슴이 저려옵니다. 정권 욕심에 동족을 학살한 버러지만도 못한 반란군들은 평생 호의호식하며 위세를 부리고, 거기에 대항해 싸운 시민군들은 사랑도, 명예도, 그 흔한 이름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졌으니 말입니다. 


잊을 수 없는 항쟁의 기록. 5.18 민중항쟁.
잊을수도 잊어서도 안되는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도 이런 기념물은 꼭 있어야겠죠.
강진군청 앞에 있는 기념동판입니다.


오늘도 계속 비바람이 심해 돌아다니는 것은 힘들 것 같습니다. 몇 번이나 강진에 왔지만 마량항에는 한번도 가보지 못했기 때문에 마량항에 가서 점심을 먹기로 했습니다. 궂은 날씨 탓인지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마량항은 안개가 자욱해 바다가 제대로 보이지 않습니다. 회를 시켜 푸짐하게 먹고 어디를 갈까 열심히 지도를 봤습니다. 시계가 별로 좋지 않기 때문에 고금도는 포기하고 준기가 하멜기념관에 가보자고 합니다. 하멜이 일본으로 탈출하기 전에 강진 병영성에서 머물렀다고 합니다. 


마량항에서 넙치(광어)회를 먹었습니다.
아주 맛있었습니다. '시가'라고 써 놔서 긴장했더니 4만원이랍니다.


강진 마량항. 저 멀리 보이는 것은 고금도 들어가는 다리입니다.
고금도는 이순신장군이 명량해전을 맞이하기 직전 군영을 설치했던 섬입니다.


다시 군청 근처로 들어와 병영성을 찾아 갔습니다. 지금 복원작업 중이라고 합니다. 하멜은 마지막으로 여기 머물면서 노역을 하다가 일본으로 탈출해 네덜란드로 돌아갔습니다. 하멜의 고향인 네덜란드 호르큼 시와 강진군이 자매결연을 하여 여기에 하멜 기념관을 세웠습니다. 작은 기념관안에는 하멜에 대한 기록과 네덜란드의 기념품들이 가득합니다. 별반 기대하지 않았는데 역시나 알차게 잘 만들어 놓은 기념관이었습니다. 


하멜기념관


하멜은 여기에서 지내다가 일본으로 탈출했습니다.
하멜의 고향인 호르쿰 시와 강진군이 함께 만든 기념관입니다.


네덜란드의 특산품 델프트 도자기


네덜란드 전통 나무신. 신어봤는데 의외로 가볍고 편했습니다.


강진은 황금한우라는 브랜드를 키우는 모양입니다. 한우고기를 취급하는 곳이 한군데 몰려 있습니다. 여기에서 아내는 겁도 없이 꽃등심 700g을 샀습니다. 휴양림에 들어가 구워먹자고 합니다. 강진 시장에 들러 채소를 사고 나니 날도 춥고 비바람도 많이 불고 어둑어둑하여 저녁 분위기가 남니다. 궂은 날씨에 돌아다녀서 그런지 배는 금방 고프네요. 정말 맛있는 고기였습니다.


황금한우 판매 단지에는 폐 농기계를 이용해 만든 정크아트 작품을 설치해 놓았습니다.


강진 5일장은 이렇게 상설시장이 되었습니다.


시장품질 관리에 상당히 노력하는 것 같은 인상을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