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2일(토) 맑음
오늘은 귀국 비행기를 타는 날, 어제와 완벽하게 똑 같은 아침을 먹고 체크아웃을 했다. 숙소에서 중앙역으로 가는 길은 걸어서 18분 버스타면 13분으로 나온다. 약 1.4km. 숙소에서 정류장까지 걸어가는 시간을 고려하면 비슷하게 나올 것 같다. 비행기 시간도 많이 남았으므로 걸어가기로 했다. 토요일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시내는 조용했다. Wilhelminabrug 다리를 건너다가 멋진 배경을 보고 사진을 찍었다. 지나가던 아주머니께서 사진 찍어 주시겠다고 하시며 부녀의 사진을 찍어 주었다. 서양 사람들은 배경을 넣지 않고 사람의 전신을 찍는다.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마스트리히트 역에서 스키폴 공항까지 가는 표를 끊었다. 위트레흐트에서 환승하는 것인데, 혹시나 싶어서 물어 봤더니 이 표를 가지고 위트레흐트에서 내려 몇시간 머물다가 가더라도 아무 문제없다는 설명. 기계에 찍고 기차를 타고 찍고 내려서 기차역 게이트에도 찍고 드나들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한다. 괜찮은 시스템이다. 지정된 열차가 아니라 표만 가지고 있으면 동급의 기차를 아무거나 타도된다는 점은.
청명한 하늘에 지평선 위로 하얀 뭉게구름이 높이높이 올라 온다. 아주 높은 하늘에 새털구름, 중간 쯤에 수평형 구름, 그리고 지표에서 중간 쯤까지 올라가는 수직형 뭉게구름, 평화롭고 조용한 풍경이다.
마스트리히트 출발하기 전에 페이스북 포스팅을 했더니, 위트레흐트에서 유학중인 페친 정재웅 박사에게 연락이 왔다. 사실 위트레흐트에 가게 되면 정 박사님께 점심 한 번 대접하고 싶었는데 정 박사는 점심은 사양했다. 대신 박물관 관람이 끝나고 차나 한잔 하기로 했다.
기차역에 내려 코인라커를 찾았는데 넓고 넓은 현대적 역사에는 코인라커가 보이지 않았다. 인포메이션에 가서 물었더니 2층으로 올라가란다. 비행기 시간 맞추기 위해 시간을 절약하려는 생각이 앞서 서둘다 보니 엘리베이터가 있는 것도 찾지 못하고 캐리어를 끌고 걸어서 올라갔다. 기차표를 태그 하니 출입문이 열렸다.
코인라커 사용법을 몰라 한국 블로그를 검색했는데 역시나 여긴 한국인이 거의 오지 않는 곳 같다. 나오는 것이 없다. 한참을 궁리하다가 방법을 연우가 깨달았다. 먼저 짐을 넣고 코인라커를 밀어서 도어락이 잠기는 소리가 난 다음 카드를 꽂아 결제를 한다. 이곳 역시 핀 번호는 6자리. 네덜란드에서 쓰지 않았던 카드를 꺼내 비밀번호 네자리와 00을 입력하니 작동이 된다. 그리고 바코드가 찍힌 종이가 나왔다. 나중에 이 종이에 인쇄된 바코드를 출력 구멍에 갔다 대면 빨간 불빛이 나와 인식을 하고 코인라커 문이 열리는 구조. 24인치 캐리어 하나에 6유로. 꽤 비싸다.
무거운 캐리어를 넣고 나니 날아갈 듯 가볍다. 운하를 따라 미피 박물관으로 걸어갔다. 걸어가는 시간이나 버스를 타고 가는 시간이 비슷한데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는 거리가 600m 뜸 되어서 풍경 구경하면서 걸어가는 게 낫겠다 싶었다.
상쾌한 공기와 멋진 하늘, 그리고 운하. 이국적인 풍경이 걷기에 정말 좋은 조건이었다. 운하 근처 식당은 아무 곳이나 다 괜찮다는 정 박사님의 조언이 있어서 박물관 근처에서 본 파스타 집에 들어갔다. 우연히 들어간 집이었지만 꽤 마음에 드는 음식점이었다. 홍합, 맛, 바지락이 들어간 파스타와 샐러드에 가성비도 매우 좋은 음식이었다.
미피 박물관 맞은 편 위트레흐트 센트럴 박물관에서 표를 판다. 1인당 4유로. 온 세상 어린이들이 좋아한다는 미피 박물관에는 네덜란드 사람을 비롯해 특히 일본에서 많은 사람들이 온다고 한다. 동양인 대부분은 일본인 같다. 거대한 미피 조형물이 박물관 앞에 서 있어서 길을 잃을 염려는 전혀 없다. 아이들이 달려와서 미피 조형물에 매달려 사진을 찍는다. 미피 박물관 안에는 미피를 창조한 딕 브루너의 아동용 책도 전시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우리 애들이 보고 자란 한글판도 있었다. “네덜란드 아이들은 좋겠다. 딕 브루너가 있어서”
박물관을 보고 나오는데 항공사에서 문자가 왔다. 출발시각이 1시간 연기됐다는 통지였다. 갑자기 여유가 더 생겼다. 정 박사님께 연락을 하고 중앙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느긋하게 운하길을 따라 수 백년은 된 듯한 가로수를 감상하며 중앙역으로 돌아 왔다.
정 박사님은 미피 신호등과 미피 기념동상이 있는 곳을 알려 주었다. 내심 그걸 못 보고 갈까 걱정했던 연우가 너무 좋아 한다. 정 박사님이 딕 브루너가 올해 2월에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그를 추모하는 사람들이 시내에 있는 미피 동상에 꽃을 가져다 놓기도 한다고.
주말이라 역 광장에는 장이 섰다. 붉은 신호만 찍고 동상으로 가려고 했더니 정 박사님은 초록 신호등도 찍으라고 한다. 일본 사람들이 정말 많이 찾아온다고. 신호등에서 얼마 걷지 않은 곳에 미피 석상이 서 있었다. 사람들이 꾸며 놓은 듯 안경을 쓴 아저씨. 그리고 뒷면은 여자 미피로 만들어 놓았다.
마스트리히트 유스호스텔을 나와 시내버스 타러 가는 길
공원 남쪽 끝에 있는 피에르 켐프 석상.
이 곳 출신으로 "네덜란드의 세익스피어"라는 칭송을 듣는 작가라고 한다.
구글맵핑으로 확인해 보니 중앙역 가는 시내버스를 타고 가는 시간과 걸어가는 시간을 비교해 보니
걸어가는 시간이 1~2분 짧게 나온다. 어차피 오늘 시간도 많은데 그냥 걸어가자고 최단 코스를 선택해 걷는다.
주말 아침이라 그런지 더욱 조용한 마스트리히트.
중앙역은 큰 공사를 하고 있는 중
마스트리히트에서 스키폴 공항을 가는 기차표를 끊었다.
이번에는 학생 할인이 된다.
기차를 타고 가면서 보는 풍경은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고 아름답다.
유럽 여행에서 기차 여행은 언제나 가장 멋진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위트레흐트 중앙역에 도착했다. 무거운 캐리어를 맡기려고 코인라커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는다.
개찰구 앞 인포메이션에 물어 보니 저 오른쪽 2층으로 올라가면 끝에 있다고 한다.
캐리어와 배낭을 몽땅 코인라커에 넣고 나니 세상에 이렇게 편할수가...
중앙역을 나와 구글신이 알려주는대로 미피박물관을 찾아 운하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갔다.
위트레흐트는 지도를 보면 네덜란드 국토의 가운데 쯤에 있어서 교통의 요지이다.
남쪽으로 내려가는 국제열차는 위트레흐트를 지나간다고 한다.
이곳에 유명한 위트레흐트 대학이 있고, 페친 정재웅 박사가 유학 중이다.
그제 비가 온 뒤로는 세상에 다시 없는 멋진 날씨가 계속 이어진다.
높은 건물도 없고, 아기자기한 색감과 모양을 한 골목길이 마음을 편하게 만든다.
이렇게 사는 게 멋진 인생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드는 풍경이다.
이 곳 사람들이 자전거 타는 태도는 마스트리히트처럼 온화하기 그지 없다.
대체로 암스테르담을 제외한 도시들은 다 여유로운 듯하다.
물론 암스테르담은 서울이나 우리나라 도시에 비하면 천국이고...
목적지를 400m 정도 남겨 놓고 음식점을 찾아 점심을 먹었다.
정 박사님이 운하 주변 식당은 다 괜찮은 편이라고 알려줘서 운하 주변을 찾았다.
연우가 좋아하는 파스타...12유로.
홍합을 비롯한 여러가지 조개류를 넣어 만든 파스타는 맛도 좋았다.
다만 이 나라 사람들은 해감을 우리보다 조금 덜 하는 듯, 가끔씩 모래가 덜 빠진 조개가 있다.
점심을 마치고 연우가 좋아라 하는 미피박물관으로 "가자!"
미피박물관 골목길
왼쪽에 미피박물관이 있고 오른쪽이 위트레흐트 중앙박물관이다.
골목 끝에서도 보이는 미피 인형
여길 찾는 아이들이 멀리서 쏜살같이 달려와 미피 조형물에 매달린다.
한참을 기다려 아무도 없는 조형물 사진을 찍었다.
미피상 옆에 자그마한 박물관 입구가 있다.
표는 어디에서???
골목길 건너 편에 위트레흐트 중앙박물관에서 표를 사야한다.
중앙박물관 기념품 가게는 미피 캐릭터 제품이 한가득이다.
표를 사서 다시 입장
난 미피가 아니라고. 난 네엔제(Nijntje)라고...
미피 박물관에는 어린 아이를 데리고 온 사람들이 많았다.
일본 사람들도 굉장히 많이 오는 지 일본어 안내문도 붙어 있다.
박물관 안에는 세계 여러 나라 말로 번역된 네엔제의 창조자 딕 브루너의 동화책이 있다.
딕 브루너가 누군가 했더니 이 책을 만든 사람이었군.
우리 아이들 어렸을 때 많이 읽었던 바로 그 책.
우리도 아이들 어렸을 때 이렇게 체험학습을 하며 엄청 많은 곳을 다녔었지...하는 생각이 난다.
아이들 정면을 안찍으려고 타이밍에 신경을 썼는데, 한 분이 하필 이쪽을 보고 계시네.
천정에 매달린 브루너의 작품들
아이들 키울 때 추억을 새록새록 떠오르게 하는 캐릭터들
아프거나 귀찮으면 누워서 따뜻하게 있는게 최고야.
유럽인들에게 감탄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아름다운 색감, 그리고 정교한 마무리 처리다.
아이들 사물함이 너무 깜찍하다.
역시 한명 한명 소중한 아이들은 제대로 된 대접을 받으며 커야 한다.
사랑을 받은 아이들은 남을 사랑할 줄 아니까.
네덜란드어와 영어로 된 안내문. 어렸을 때 데리고 왔으면 더 좋았겠지?
어른이 와서 봐도 좋구나.
마스트리히트에서는 파란색이었던 시내버스. 여기는 노란색이다.
모든 시내버스가 저상버스라서 몸이 불편한 사람도 편하게 탈 수 있다.
일부러라도 한 번 타보고 싶구나.
정 박사님 만날 겸 다시 중앙역으로 돌아 오는 길
백년은 넘은 듯한 나무. 마치 해리포터 영화에 나왔던 그 나무인 듯.
론과 함께 하늘을 나는 차를 타고 호그와트에 도착한 해리 일행이 불시착한 고목처럼 생겼다.
자전거와 사람만 다니는 길에 미세먼지 하나 없는 파란 하늘은 그야말로 풍경화
작은 유람선이 운하를 천천히 미끄러져 간다.
도시의 건물 높이, 배치, 색깔, 조경 모두 조화롭다.
편안하고 깔끔한 도시를 만들면 사는 사람들의 정서에도 좋지 않을까?
바닥에 글씨가 새겨진 보도블록
방향 표시인 듯
자전거 우선인 네덜란드의 자전거 신호등
나무 보다 높은 키를 가진 건물이 거의 없다.
거대한 나무는 도시의 안정적 성장을 상징하는 지표가 아닐까?
문득 3~4년전 우리 동네에서 인도를 넓힌다고 20년이 넘게 자란 나무들을 몽땅 없애버린 일이 생각났다.
한국에서도 만나지 못했던 정 박사를 위트레흐트에서 만났다.
정 박사는 우리를 위해 네엔제 신호등이 있는 곳으로 데려갔다.
초록신호등도 찍으셔야죠. ^^
어린이들에게 많은 선물을 한 딕 브루너는 2017년 2월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때 수많은 팬들이 몰려와 여기에 꽃을 놓고 갔다고...
네엔제 뒷편에는 야누스 상처럼 이렇게 여성형이 있다.
재미있는 사람들이다.
정 박사님과 헤어져 다시 위트레흐트 역으로 돌아왔다.
라커에서 캐리어를 찾고 내려가려다 네덜란드의 상징 나막신 조형물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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