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5. 5(토)
"나에게는 생애 마지막 어린이 날이라구요!"
티격태격 하긴 하지만 누나와 함께 간다는 조건이면 양보를 잘 하던 13살 준기는
이 날만은 누나와 타협을 거부했다.
파리에 여행가는 사람들 대부분은 에펠탑을 꼭 올라가보지만
파리에 사는 사람들은 에펠탑에 올라가는 것에 대해 그냥 저냥이듯
서울 사람들은 남산타워 올라가보는 것에 대해 별 관심이 없고
시골 사람들은 남산타워에 올라가 본다.
이날 아침, 맨날 박물관만 간다고 타박을 하는 누나의 볼멘소리에
엄마아빠가 나서서 준기에게 오늘은 남산타워를 가고 다음에 선사박물관 가는게 어떻겠냐고 타협안을 제시했지만
준기는 안되겠단다. 마지막 어린이 날이랜다. 어흑!
결국 연우는 집에 있기로 하고
준기만 데리고 아내와 길을 나섰다.
"전곡리 선사박물관에서 어린이날 구석기체험행사를 한다고 상당히 홍보를 많이 하던데 오늘 괜찮을까?"
아내의 걱정스러운 얘기가 있었지만,
'설마, 오늘 같은 날 놀이동산 말고 휴전선 바로 턱밑에 있는 거기까지 사람들이 몰려 오겠냐?'하는
생각으로 연천을 향했다.
가는 길에 먼저 경순왕릉을 가보자고 한다.
마의태자 아버지, 경순왕 김부.
견훤왕에게 험한 꼴을 당한 경애왕의 뒤를 이어 신라 56대 마지막 왕으로 왕위에 올라 평생 맘졸이며 살았을 경순왕.
그 경순왕이 민통선 안에 있는 고랑포에 묻혀 있단다.
자유로를 타고 한강변을 한참 달려가 임진강변에 있는 경순왕릉에 도착했다.
햇살이 너무 따가워 눈을 잘 뜰 수가 없다.
인증샷을 찍는 준기의 표정이 너무 굳어 있다.
경순왕릉 주변은 여기가 한반도 분단 현장이라는 것을 실감케 한다.
진입로에 있는 지뢰 경고 표지판
진입로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연두색 나무그늘이 시원한 바람을 넣어 준다.
엄마! 뭘 봐?
나른할 정도로 뜨겁고 조용한 왕릉 입구에 앞에는 나무 그늘에 앉아 책읽으면 딱 좋을 벤치가 있다.
옆에는 경순왕릉에 대한 해설을 해주시는 문화해설사께서 머무는 건물
조선시대 왕릉과 비슷한 구조를 갖고 있는 경순왕릉
개성을 떠난 경순왕의 시신은 왕성에서 백리 밖으로는 나갈수 없다는 고려왕실의 결정에 따라
임진강 북쪽인 이곳 고랑포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고 한다.
왕릉은 중간에 잃어버렸다가 조선 후기에 다시 찾게 되어 새 단장을 했다고 한다.
당겨서 찍은 왕릉왕 비석에는 총탄 자욱이 여럿 있는 것으로 보아 6.25사변 때 흔적인 모양이다.
경순왕릉 오른쪽 아랫쪽에 있는 비각에 들어 있는 비석
표면에 글씨는 다 마멸된 것인지 글씨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왕릉을 나와 전곡리 선사박물관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국수집이 보여서 먹으러 들어갔다가
너무 정신이 없어서 걍 나와버렸다.
1시 쯤에 한탄강 유원지에 도착했다.
이 뙤약볕에 캠핑장에는 텐트가 꽉 찼다.
구석기 축제 행사장 근처인지 경찰관들이 나와 교통정리를 하고 있는데 사방에 보이는 주차장에 차들이 빽빽하게 들어찼다.
일단 축제장을 가로질러 빠져나온 다음 박물관 입구 쪽으로 내래왔다.
박물관 입구에도 차가 들어갈 공간이 없을만큼 주차장 아닌 곳에도 주차차량이 빽빽하다.
일단 밥이나 먹고 생각해 보자고 박물관을 지나나와서 차를 빈 공간에 대 놓고 보니 모범음식점 팻말이 붙은 식당이 바로 앞에 있다.
아름드리 통나무 집인데 상량문에 1996년이라고 쓰여있다.
친절한 여 사장님께서 박물관 오셨냐고 물어본다.
사람이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고 했더니 행사 할 때마다 사람들이 많이 온다고 한다.
삽겹살 2인분과 잔치국수 1인분을 시켜 점심을 먹었다.
삼겹살도 두툼하고 양이 많아서 국수를 먹기 힘들 정도였는데 잔치국수도 셋이서 나눠 먹을 정도로 양이 많았다.
사장님께서 박물관 주차장은 빈 공간이 없을테니 식당 주차장에 세워놓고 갔다오라고 하신다.
덕분에 주차 걱정 해결하고 설렁설렁 걸어서 올라갔다.
"거봐, 내가 애벌레 기어가는 것처럼 생겼다고 했지?" 준기가 밝게 웃는다.
어떻게 알았지? 라고 물었더니, 몇일 전부터 인터넷에서 샅샅이 찾아 보았단다. ^^
생김새가 특이해 뭔가 색다른 것을 보여줄 것 같은 선사박물관은
경기도민은 반값이랜다. 물론 어린이 날이니 어린이는 무료.
경기도민 할인은 경기도민이 된 이래 처음 받아보는 서비스. ^^
1만년전 멸종된 매머드의 실제 상아.
2m가 넘는 거대한 크기. 준기와 크기를 재보기 위해 세워놓고 인증샷을 찍었다.
이 전시실에 있는 매머드 뼈는 만져도 된다는 안내문이 많이 붙어 있는데, 그만큼 매머드 화석이 흔하다는 뜻일까?
전시공간은 어린이나 아이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접근성이 맘에 들었다.
다양한 매머드의 상아와 뼈.
직접 만져볼 수 있게 해 두었으므로 매머드의 촉감을 느낄 수 있었다.
1977년 시베리아의 금광에서 발견한 아기 매머드 화석.
4만년 전, 생후 6개월된 아기 매머드 디마가 얼음구덩이에 빠져 죽었는데 그 사체가 차가운 얼음층 때문에 온전하게 보전되어 발견된 것.
엄마를 따라가다 빠져 죽었을 아기 매머드가 가엾다.
신생대 인류의 진화과정을 보여주는 고인류 복원전시물
고 인류는 사냥으로 저 거대한 매머드를 멸종시켰다는 학설도 있다.
인류의 진화와 당시 자연풍경을 재현해 놓은 전시실
죽은 사자를 박제해 놓은 것이었지만 사자를 가까이에서 보니 소름이 쫙 돋았다.
매머드 뼈로 지은 선사시대 인류의 주거지 내부
선사시대 인류가 사용했던 팔주령
신을 부르는 제사에서 제사장(샤먼, 무당)이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하는 저 방울에는 아주 섬세한 무늬가 새겨져 있다.
박물관을 나와서 언덕 위에 있는 선사시대행사장을 찾아가던 길에
박물관 지붕에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가 봤다.
박물관이 언덕 위쪽에 있어서 전망이 꽤 좋은 편.
우연히 길을 잘못잡아 간 길 끝에 2000년~2001년 사이에 발굴했다가 보전하고 있는 발굴피트에 도착했다.
50만년~13만년 전 지층에서 선사박물관의 모티브가 된 전곡리 선사유적을 발굴했다고 한다.
행사장에는 일본, 몽골, 미국, 오스트리아, 스페인, 동남아 등 다양한 국가의 선사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몽골텐트가 설치되어 있었다.
조개장식품, 청동기 제작시연, 토기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 코스는 아이들에게 또 다른 재미를 주고 있었고
텐트 너머에는 돼지고기를 사서 선사시대인들 방식으로 고기를 구워먹는 체험 코스도 있었다.
미국텐트에서 체험하는 조개장식품 만들기
그리고 나서 스페인 텐트에서 청동주물 재료를 녹이기 위해 석탄 덩어리에 가죽으로 만든 주머니로 풀무질도 해보고...
한국 텐트에서 하는 곡옥만들기
활석을 갈아서 곡옥을 만드는 체험은 시간이 너무 짧아서 입맛만 다시고 말아야 하는게 조금 아쉬움.
날도 덥고, 후덥지근한 바람에 날리는 잔디와 모래, 따가운 햇살 때문에 고생은 좀 했지만 마지막 어린이 날 나들이에 대해 준기는 매우 만족해 했다.
"그만하면 충분해!"
아들아, 나중에 결혼해서 네가 낳은 아들 딸을 데리고 어린이 날을 계속할 수 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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