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돌아보기

3월 24일 아들이 가고 싶어하는 창덕궁은 날씨가 좋지 않아 국립중앙박물관을 돌아 보았다.

유럽 여행 때 여러종류의 박물관을 봐서 그런지 아들 눈에 국립중앙박물관이 새로워보였나보다.

카메라를 가지고 가지 않아서 찍은 사진은 없지만 구석기시대 부터 삼국시대까지 3시간 정도 돌아 보았다.

피곤한데도 더 못보는 것을 아쉬워 하는 아들에게 다음에 또 오면 되지않겠니 하고 달래서 돌아왔는데

 

4월 7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박물관 가자고 한다.

오랫만에 우리 가족 모두 국립중앙박물관으로 나들이를 갔다.

 

길이 많이 막혀서 도착했을 때는 점심시간이었다.

어린이 박물관 옆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 동안, 연우와 준기가 유럽여행 때 브리티시와 오르세에서 먹은 것과 비교하며 재잘거린다.

박물관 입구 천장을 가득 메운 구조물이 마치 우주선 같다.

유럽의 박물관을 돌아보고 나서 그런지 우리 박물관은 거대하긴 한데 뭔가 살짝 부족한 느낌이 든다.

우리 궁궐들이 일본의 침략을 겪지 않고 온전히 남아 있었다면 루브르 못지 않은 꽉찬 느낌을 주는 박물관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지나간 역사를 바꿀 수는 없으니, 우리가 이 공간을 조금 더 채울 무엇인가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오늘은 남북국시대부터 볼 차례.

남북국 시대 전시관으로 가는 도중 조선시대 전시관 앞에 있는 청계천에 설치했던 수표 복제품과 설명문을 잠시 구경한다.

 

"어, 준기 키가 7척이 넘는다는데 왜 1.5m 정도 밖에 안되는 거야?"

"그건, 주나라, 수나라, 당나라...등등 여러 나라의 자가 크기가 다르기 때문이야.

중국에서 여러가지 자들 들여와 사용했기 때문에 조선시대의 자들도 용도에 따라 길이가 좀 다르지.

이건 물의 깊이나 성벽의 높이를 잴 때 사용하던 주척이나 당척이기 때문일거야"

"아하! 요즘처럼 자가 모두 똑 같은 게 아닌 거로구나."

"그래, 준기의 준(準)자는 바로 임금님이 관리에게 하사했던 임금님이 표준으로 삼으라는 그 자를 뜻하는 글자기도 하지.

옛날에는 자가 통일되지 않아서 국가를 통일한 왕조들은 표준 도량형을 만들기 위해 노력을 했지. 도량형 통일은 국가경영에 아주 중요한 일이었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이 탑은 뭘까?

9세기 월광사의 원랑선사탑비.

미천골에서 본 선림원지의 홍각선사 탑도 거북이 이렇게 생겼고, 경주에서 본 비석 가운데도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 것들이 있지.

여의주를 물고 있는 교룡은 당당하고 힘이 넘치는 모습이야.

 

 

신라인들은 인형만들기도 잘 했는 모양이야.

흙으로 만든 인형(토용)도 있는데 이건 곱돌이라는 옥으로 만든 인형이지.

12지신상을 커다란 돌로 만들어 세우기도 하고, 김유신 묘처럼 판석에 세우기도 하고, 이것처럼 작은 곱돌로 만들어 무덤속에 넣기도 했지.

소와 뱀의 모습인데 어쩌면 소띠 남편과 뱀띠 아내를 상징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7세기 후반, 경주 사천왕사에 있었던 사천왕상 가운데 하나.

전돌로 만든 거라고 하는구나.

전돌은 진흙을 1,200도가 넘는 가마에 구워 돌처럼 단단하게 만든 벽돌인데

마치 대리석이나 사암에 새긴 것처럼 정교하고 세밀한 조각이 아름답지.

이것은 유약을 발라 구웠던 모양이야.

 

유약을 발라 구우면 1,200도가 넘는 경우 도자기가 될 수 있는 온도인데

도자기를 만들 수 있는 흙이 아니면 유약이 녹아서 흘러내리고 말아.

이런 형태의 작품을 녹유도기라고 하는데 녹색을 띠면서 방수가 완벽하게 되진 않지.

이 당시에도 아직 우리나라는 도자기를 만드는 기술을 알아내지 못했지.

유럽사람들은 17세기가 되어서야 도자기 만드는 기술을 알아냈다고 해.

 

 

남북국시대 대동강 북쪽에는 거대한 영토를 가진 대진국(중국명 발해)이 있었지.

그들은 고구려의 문명을 이어 받았어.

 

일본 학자들은 대진국의 지배층은 고구려, 백성은 말갈족이라고 하는데

고구려 광개토태왕 비문에 말갈의 조상은 이미 고구려 백성이었어. 수백년간 섞여 살았는데 여전히 구분되어 있었을까?

붉은 토기는 고구려의 특징이지. 오른쪽에 살짝 보이는 것은 검은 토기인데 역시 유약이 흘러내린 녹유형태를 벗어나지 못했어.

 

 

대진국의 유적과 유물은 대부분 우리 손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있어.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발굴하기 시작했고, 그 영토 대부분이 지금은 중국과 러시아의 영토가 되었지.

이 사진 제일 앞 한 가운데 있는 작은 부처님 상은 흙을 구워 만든 것인데 "발해의 미소"라는 이름을 붙인 아름다운 작품이야.

대진 사람들은 불교에 굉장히 심취했었나봐.

몸에 지니고 다닐 수 있는 작은 불상이 참 많아.

 

그리고, 대진에는 로마에서 쫒겨난 네스토리우스교(경교, 아리우스파 카톨릭) 사원도 있었어.

물론 경주에도 있었지. 아마 당나라에서 성행했기 때문에 그 영향이 우리나라 땅에도 미쳤겠지?

 

 

이건, 치미(雉尾)라고 하는 거야. 한자로는 꿩 꼬리 라는 뜻이지.

왕이나 황제가 사는 궁궐이나 전각, 또는 왕실과 직접 관련이 있는 절에만 사용할 수 있는 지붕 장식용 기와야.

제일 큰 것은 180cm나 된다고 해.

대진국이 남긴 이 거대한 치미에도 녹유의 흔적이 아주 역력하지?

아마, 기와도 녹유로 만든 기와가 아니었을까 짐작을 할 수 있다고 봐.

저런 거대한 기와를 사용하려면 건축물도 아주 튼튼하고 웅장했을 거야.

탁월한 건축기술도 가지고 있었겠지?

 

 

 

 

이건 후백제의 견훤왕이 세운 전주성에서 나온 기와야.

전주성(全州城)이라는 글자가 선명하지?

 

 

고려 인종임금 릉에서 나온 은수저 한벌.

숟가락 모양이 엄마 말처럼 아주 예술적으로 우아한 곡선이지?

우리 조상들은 숟가락을 꽃받침으로 생각했다고 하더구나. 그 위에 얹은 밥은 꽃봉오리로 본 것이지.

생각이 참 아름답고 싯적이기도 하지?

 

인종임금은 고려가 문화적으로 가장 전성기를 누릴 때 임금이기도 했지만,

이자겸의 난을 비롯한 권력층의 내분이 시작되어 고려가 무너지기 시작한 시대의 임금이기도 해.

 

 

오호! 이 분의 초상이 남아 있다니 신기한 걸?

이 분은 너무나 유명한 강감찬 장군에 가려서 유명세가 조금 떨어지는 분이지.

바로 강감찬의 부원수 강민첨이라는 분으로 거란의 침략을 격퇴하는데 큰 공을 세운 분이지.

그러고 보니 진주강씨들은 유명한 장수를 많이 배출했구나.

시조인 고구려 장군 강이식, 그리고 고려의 영웅 강감찬, 강민첨.

그런데 강감찬과 강민첨 두 분은 장군이 아니란다.

고려는 과거시험이 문과 밖에 없어서 두 분은 모두 문과에 급제해 문신으로 이름을 떨친 분이야.

늙그막에 상원수와 부원수로 거란의 침략을 격퇴한 것이 너무 유명해서 다들 "장군"이라고 부르게 되었지.

 

 

삼국시대 초기 건국자들의 역사를 아름다운 문장으로 써 내려간 <동국이상국집>이라는 문집이 있단다.

고려 때 이규보라는 학자가 쓴 책이지.

그 분은 최씨 무신정권에 문신으로 봉직을 했지만 세상 돌아가는 모습이 그닥 탐탁치 않았나봐.

그래서 이상적인 나라를 상상했을까? 무지개와 오색구름에 둘러싸여 고구려의 왕성이 완성되는 장면을 묘사한 책들을 쓴 것을 보면...

이규보는 바둑을 정말 좋아했다고 해.

바둑에 대한 시도 남겼지.

 

이건 바로 고려사람들이 사용하던 바둑돌이야. 그런데 색깔이 저렇게 되어 있으면 내 돌과 상대방의 돌을 어떻게 구분했을까?

그러고 보니 왼쪽에는 주사위도 있네?

세상이 엉망이 되어서 사람들이 놀이에 탐닉한 것일까?

 

 

 

이건 서해안 태안반도 근처에 침몰한 배에서 발굴한 청자 대접이야.

목간에 최대랑 택상이라는 글자가 있지?

바로 최씨 무신정권의 우두머리 집안에 납품하던 청자였어.

지금의 전라도 땅 강진에서 출발한 배는 개경을 향해 가다가 서해안에서 가장 물살이 거센 태안반도 앞에서 침몰한 거야.

지금은 귀한 대접을 받는 청자가 저 시대에는 그냥 저런 묶음으로 묶여 다니는 그릇이었나봐.

 

 

이건, 청자기와야.

고려 때는 청자기와로 대궐 전각의 지붕을 덮었다고 해.

녹유 밖에 만들지 못하던 우리 조상들이 마침내 유약과 흙 그리고 불의 비밀을 모두 알아내서 세계에서 두번째로 첨단 제조기술을 터득한거야.

당대 최고의 도자기 제작기술을 가졌던 송나라 사람들도 칭찬해 마지 않았던 아름다운 비취색 청자.

저런 기와로 덮은 전각은 정말 하늘을 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을 것 같아.

 

 

청백자 도자기. 베게라고 하는데 조각 기법이 정말 세밀하지.

어떻게 저렇게 세밀한 모습을 만들수 있었을까?

생각할수록 정말 신기해.

 

 

이건 거란문자를 새겨 놓은 구리거울이야. 그 가운데 거란 소문자라고 해.

거란은 대문자와 소문자를 모두 갖고 있었는데 소문자는 유물이 남은게 거의 없어서 아직 다 해독을 하지 못하는 문자라고 해.

중국이 오랑캐라고 멸시하던 이민족들은 중국 본토를 점령한 다음에는 모두 자기 고유 문자를 만들어.

거란족은 요나라를 세운 뒤에, 여진족은 금나라를 세운 뒤에. 몽골은 원나라를 세운 뒤에, 탕쿠트 족은 서하를 세운 뒤에.

그 외에도 일본, 베트남 등도 자기의 문자를 가지고 있었어.

오직 우리만이 고유문자 없이 한자를 사용했어.

물론 신라는 설총이 이두를 만들었고, 대진은 발해문자를, 고려는 각필을 만들어 사용했지만 모두 한문을 읽기 위한 보조수단이었을 뿐이지.

그래서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창제했을 때 사대부들이 모두 훈민정음을 강력히 비난했지. 오랑캐가 하던 짓이라고...

하지만 자기 문자를 가진다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지.

 

 

이건 대접인데 백자의 조상일지도 모르겠어.

문양이 정말 아름답지?

 

 

이건 고려의 윤관장군이 별무반을 이끌고 여진땅을 정복한 다음

두만강 북쪽 700리 지점에 고려지경(高麗之境)이라는 비석을 세우는 장면이야.

소나무 아래 흰 장막 안에 앉아 있는 분이 윤관장군이지.

세종 대왕은 명나라가 "조선의 영토가 어디까지냐?"고 따질 때 두만강 북쪽 선춘령까지가 우리 영토라고 대답하셨던 모양이야.

세종실록지리지에 두만강 북쪽 700리 지점 선춘령에 고려지경이라는 비석을 세웠다고 기록을 해 두었지.

 

 

제국주의 시대 때 일본학자들은 윤관이 정벌한 곳이 함흥평야 일대라고 주장했지.

파랗게 표시한 부분은 세종실록지리지 기록을 근거로 한 것이고.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고려가 17만이나 되는 대군을 이끌고 정벌한 곳은 세종실록이 맞다고 생각해.

 

 

이건 훗날 금나라를 세운 뒤, 금나라 사람들이 지금의 함경북도 경원군에 세워 놓은 비석이야.

윤관이 정복한 땅은 훗날 대신들의 집요한 간섭과 여진족들의 애걸을 핑계로 공험진 성을 여진에게 돌려 주었다고 기록되어 있지.

여진인들은 아마도 고려국왕의 칙서를 확인해 두려고 저 비석을 세운 것이 아니었을까?

저 비석은 지도에 두만강 하류쪽에 열십자로 보이는 지역 근처에서 발견한 것이야.

 

 

이건 금나라에서 만든 도자기야.

고려인의 무덤에서 발굴된 것이라고 해.

금나라는 고구려의 한 부분이었던 말갈의 후손이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영토를 돌려준 고려에 감사해서 그랬는지

북송을 멸망시킨 다음에도 고려를 한번도 침략하지 않았어.

물론 고려와 남송을 동시에 상대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바람직한 선택이 아니어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그들이 남긴 금사 태조본기에 자기 조상이 김함보라고 고려(또는 신라)사람이라고 기록해 놓은 것을 보면

정말 고려에 대한 남다른 뭔가가 있었던 것 같아.

 

 

이건, 최씨 무신 정권을 세워 60년 동안 고려를 지배한 최충헌, 최우, 최항 3대를 위해 만든 호신용 불경이야.

위에 있는 금합에 넣어서 다녔다고 해.

 

 

고려 사람들 무덤에서 가끔 고구려 무덤처럼 사신도가 그려진 무덤이 있어.

이건 뼈를 담던 유골함인데 여기에도 사신도가 그려져 있어.

고려는 불교국가였기 때문에 죽으면 화장하는 풍습을 가졌다고 해.

화장한 유골은 이런 함에 담아 땅에 묻어서 고려의 무덤은 비교적 규모가 작았다고 해.

 

 

공민왕은 원나라가 약해진 틈을 타 고려의 자주권 회복을 달성했지.

거기에 분개한 원나라가 자주 고려를 공격했고, 홍건적이 10만이 넘는 대군으로 고려를 공격하기도 했지.

홍건적이 고려를 침략했을 때 왕과 왕비는 안동으로 피난을 했지.

안동에는 놋다리밟기라는 풍습이 남아 있는데 노국대장공주가 강을 건널 수 있게 사람들이 나와서 다리가 되어 준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라고 해.

이 글씨는 공민왕이 안동으로 피난을 왔을 때 남긴 글씨가 아닌가 싶은데

아빠도 고등학교 다닐 때 저 누각에 몇번 갔었는데 그 글씨를 공민왕이 썼을 것이라고는 생각을 못했네.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의 슬픈 사랑이야기는 유명하지.

위대한 왕이 왕비가 죽자 그만 상심에 빠져 나라를 돌보지 않고 몸을 망치고 결국 비참하게 살해 당했지.

공민왕이 심성이 너무 고와서 그랬을까?

아니면 노국대장공주가 원나라 왕실 사람인데도 공민왕을 지지했기에 동지로 의지했었는데 아기를 낳다가 왕비가 죽자 충격을 받은 것이었을까?

저 아름다운 청자 대접에는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의 이름이 새겨져있데.

 

 

이렇게 보는 사이에 벌써 세시간이 넘었네.

다리가 몹시 아프구나.

조선시대와 2층, 3층은 다음에 와서 다시 보자꾸나.

하긴 국립중앙박물관은 유물을 주기적으로 교체 전시하니까 언제와도 새로운 것을 계속 볼 수 있어.

 

그냥 가면 좀 아쉬우니까

조선왕조 입구만 보고 갈까?

 

조선 임금들 가운데 어진이 완벽하게 남아있는 것은 이 분을 그린 것이 유일하지.

바로 조선 태조 이성계.

한 나라를 세울만한 형형한 눈빛을 갖고 있구나.

명나라에 사대하는 나라여서 그랬을까?

붉은 옷을 입지 않고 동쪽을 상징하는 푸른 곤룡포를 입고 있구나.

 

 

이건, 경복궁 근정전에 있는 닫집이지.

건물안에 만든 닫집은 임금님처럼 귀한 분이 비바람을 맞지 않게 하기 위해 만든다고 해.

어좌와 함께 일월오봉도가 참 멋지구나.

 

다음에 다시 와서 보자.

유물을 보느라 계속 걸었더니 다리가 몹시 아프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