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남한산성 답사 가자!

2011.11.20(일)

아빠와 역사유적 답사 나들이에 재미를 붙인 아들.
효창원과 서대문 독립공원을 다녀오자마자 다음 계획을 줄줄이 읊어댔다.
응, 남한산성, 그리고 다음에는 강화도 ....

일요일 아침, 금요일부터 오락가락 하던 비가 그쳤다.
가을 비 한번에 내의 한겹이라고 했던가?
비가 그치고 기온이 엄청 내려갔다.
답사에 나서기 전, 방안에서는 별 실감을 못했지만...

아들과 아빠는 둘이서만 남한산성과 삼전도비를 보러 길을 나섰다.
대중교통으로도 접근은 가능했지만 승용차로 가는 것보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아내의 충고를 받아들여 차를 가지고 나섰다.

"응? 이거 상당히 추운데..."
아파트 주차장에서 느낀 바람은 한겨울 같았다.

[남한산성 비석들]
18세기~20세기 사이에 이 곳을 거쳐간 벼슬아치들을 기념하는 비석을 한 곳에 모아 두었다(남문 근처)
역대 광주유수, 수어사, 부윤, 군수 등의 선정을 기리는 송덕비.
여기에는 헌종 때 영의정을 지낸 심상규도 있고, 흥선대원군의 비석도 남아 있다.
조선 초기 선정을 베푼 목민관들을 위해 한 둘 세웠던 송덕비는 조선 후기로 갈수록 뻔뻔한 관료들이 백성들을 쥐어짜 스스로
세운 경우도 많았다. 인사고과를 잘 받아 출세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공자는 입신양명하는 것이 효의 마지막이라 가르쳤는데
조선의 사대부들은 그걸 높은 벼슬을 하는 거로 결론 지었던 모양이다.
제도는 운영하는 인간들에 따라 여러가지 모습을 보인다.


차가운 북쪽 공기가 온 몸을 오그라들게 만들었다.
준기는 병자호란의 치욕을 그린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을 보고 난 뒤라
"이렇게 추운 날씨라 병자호란 때 처럼 실감이 나요"라고 한다.
기온은 영하 0도 정도였지만 어제보다 10도 정도 떨어진데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 체감온도가 매우 낮았다.

남한산성은 지금의 서울을 한산이라 불렀을 때 한산 남쪽에 있는 성이라고 하여 남 한산성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북 한산성은 한산 북쪽을 방어하기 위한 산성이다. 또는 한수 이남에 있는 산성이라 그리 불렀다고 한다.
1980년대만 해도 이 성은 백제가 처음 쌓은 이성산성이 모태가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발굴결과 백제 유적보다 신라의 흔적이 더 아래 지층에서 발견되어 신라가 한강쪽으로 세력을 확장하며 교두보로 쌓은 것이라는
설이 우세하다. 그러나 세간에는 병자호란으로 잘 알려졌다.


병자호란은 1636년 12월~1637년 1월 사이의 일이다.
양력으로 환산해보면 인조임금이 이 성으로 피신한 것은 1637년 1월9일이며,
서문을 나와 삼전도에서 삼배구고두를 행한 것은 1637년 2월24일이다.
농성하던 45일간은 추위와 굶주림, 그리고 죽음의 공포에 시달린 기간이다.

남문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내리는 순간,
겨울 복장을 제대로 갖추고 올 걸, 하는 후회를 했다.
출발할 때 느꼈던 것 보다 훨씬 추워서 내복 생각이 간절했다.

남문 주차장에서 가까운 남문으로 갔다.
성을 돌아보는 추천 코스는 5개, 준기는 인조가 항복하러 나간 서문까지는 가야한다고 한다.
한바퀴 도는데는 200분이 걸리는 것으로 안내해 놓았다.
우리는 남문-서문-북문을 돌고 성 가운데로 내려오기로 하고 출발했다.

[남한산성의 남문 지화문(至和門)]
이 문은 정조3년(1779년)에 남한산성을 보수하면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현재 남아 있는 문 가운데 유일하게 현판이 있다.
남한산성에는 중심문인 지화문(남문) 외에도 좌익문(동문), 우익문(서문), 전승문(북문)과 같은 대문이 있고 적군 몰래 드나들 수
있는 작은 암문들이 10개가 있다.

집권세력인 서인 사대부들은 광해군을 권좌에서 끌어내린 뒤,
청나라에 대해 끊임없이 도발을 했으며 정묘호란의 화를 당했음에도 전쟁에 대한 대비를 소홀히 했다.
그들은 입과 글로는 백성을 위한다고 뇌까렸지만 기실 그들의 이익 외에는 아무 관심도 없었고
국가의 운명을 가를 중차대한 일을 처리함에도 치밀함이나 고뇌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9년전에 겪은 정묘호란의 교훈을 되새겼다면 이 성에 전투준비를 해 두는게 정상이었겠지만,
성곽만 수리했을 뿐 양식이나 무기를 비축하는 준비는 하지 않았다. 도대체 뭘 믿고 이랬을까?
하긴 IMF 구제금융을 받았던 우리도 불과 10여년도 되지 않아 까맣게 있고 있었는데 옛날이라고 별달랐을까? 

천혜의 요새, 남한산성. 남문에서 서문으로 가는 도중 성벽 위에서 보이는 서울 풍경

서북쪽에 한강이 보이고 정면에 탄천이 보인다.
저 멀리 오른쪽으로 보이는 롯데백화점 근처는 당시 삼전도라 부르던 한강 안에 모래섬이었다.
가장 높은 곳이 606m로 그다지 높은 산은 아니지만, 사방이 평지인 곳에 우뚝 솟은 가파른 산으로,
산성 안과 주변에 많은 샘이 있어 농성하기에는 다시 없이 좋은 조건을 갖추었다.
한강으로 진출하려던 신라는 기가 막힌 자리를 군사기지로 확보했던 셈이다.

서문으로 가는 도중에 찍은 성의 모습

성은 고구려 시대 이후 우리 산성의 모범인 들여쌓기와 그랭이 공법을 적용했다.
열국시대, 한반도와 만주에 구축한 산성들은 가장 적은 공력으로 자연 지형을 최대한 활용해 석성을 쌓았는데
남한산성 역시 이런 전형적인 모습을 따랐다.

가파른 지형을 따라 쌓았기 때문에 화포무기가 등장한 이후에도 쓸모있는 거점의 역할을 할 수 있었다.
병자호란 때에도 청군은 농성 말미에 가서야 사정거리가 긴 홍이포를 가져와 성 안쪽에 몇차례 포격을 할 수 있었다.

아랫부분은 돌로 쌓은 성이었으나, 총포 무기가 등장한 이후에는 변화가 있었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도 삼수병(사수, 살수, 포수) 제도를 도입하였는데, 이런 시대적 변화는 성의 외형에도 반영되었다.
석축 위에 구운벽돌(모전)으로 삼수병이 효율적으로 성을 방어할 수 있는 벽을 쌓은 것이다.

외형은 완벽에 가까웠으나 식량과 무기에 대한 대비가 전혀 없었던 관계로
성을 포위한 채 기다리는 적에게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다.

제6남문(서암문). 남문과 서문 사이에 있는 비밀 출입구

성이 포위되었더라도 적의 관측을 피해 외부와 연락을 하거나 특수부대를 편성해 적을 습격하는 용도로 사용하였다.
이런 암문은 12군데 정도 있었는데, 음력 1월23일 청군이 한밤중에 이곳을 습격하였으나 물리쳤다고 한다.
어른 한 사람이 서서 지나가기에도 작은 문이다.
설령 적이 이곳을 발견한다 해도 병사 한명이 창으로 능히 침입을 방어할 수 있다.
옛날에는 여기에도 나무로 문을 달아 놓았다고 한다.
 

남한산성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은 수어장대. 원래 단층 건물이었으나 영조 때 2층으로 증축하였다.

이 성에는 모두 5군데에 장대가 있었으나 지금은 이 곳만 남았다. 서쪽 장대라 하여 원래 서장대라고 불렀다.
영조 27년(1751년)에 왕명으로 증축하고 수어장대라는 편액을 달았다고 한다.
2층에는 무망루라는 편액이 달려 있는데 영조 임금이 북벌을 이루지 못하고 죽은 효종의 원한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붙였다고 한다.
성의 방어를 지휘하던 사령관이 머무는 곳

무망루 편액은 지금은 이 전각 안에 따로 보관하고 있다.
무망루 전각 오른쪽에 있는 것은 독재자 이승만이 여기에 <행차>하여 기념식수를 했다는 비석을 세워 놓았다.
그 옆에는 이승만이 심어 놓은 나무 

매바위. 수어장대가 있는 마당 한 귀퉁이에 있다.

병자호란 이전인 1624년 성의 동남쪽 축조 담당이었던 이회는 완벽한 공사를 위해 철저하게 점검하다 기일내에 완공하지 못했고
공사비용도 모자라게 되었는데 그가 주색잡기를 하며 돈을 빼돌렸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이회는 참수형에 처해졌고 죽음에 임박해 "내가 죽은 뒤에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죄가 있는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그가 죽는 순간 매 한마리가 하늘에서 내려와 이 바위에 앉아 슬피 울다가 사라져버렸다고 한다.
사람들은 억울한 이회의 원혼이 매가 되었다고 말했다.

우익문(서문). 서문이지만 실제로는 성의 북쪽에 있다.

남한산성의 4대문은 남쪽에 2개(남문, 동문), 북쪽에 2개(서문, 북문)이 있다.
인조는 이 문으로 나와 삼전도에 가서 홍타이지에게 항복을 했는데 송파나루로 나가는 가장 가까운 문이다.
성문에 편액은 없다.
 

북문(戰勝門)

병자호란 중에 영의정 김류의 주장으로 300명의 결사대를 조직해 이 문으로 나가 청군을 공격하였으나 전멸하고 말았다고 한다.
이 전투를 법화골전투라 하는데 남한산성 농성중 최대 격전이라고 한다. 1779년(정조3년) 성을 개축할 때 이 북문의 이름을
전승문이라 하였는데 당시의 패전을 잊지 말자는 뜻이었을 것이라 안내문에는 쓰여있다. 선조임금 때 기록에는 이 성에는
동문, 남문, 수구문 이렇게 문 3개가 있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이 문은 인조 2년(1624년)에 성을 수축하면서 새로 만든 문으로
짐작하고 있다.

인조실록에는 1637년 1월24일에 군사 4백명이 성밖으로 나가 적과 싸우게 되었는데 임금이 직접 이들을 위무하러 나갔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한 병사가 대열에서 나와 임금에게 직접 고하기를 "비단옷을 입은 자를 장수로 정하면 자기는 성 밑에서 앉아 있으면서
병사들만 나가 싸우게 하니 지금 이 병사들 가운데 장수를 정하여 출전하게 해 주십시요"라고 간청했다고 한다.

임금은 "너희 대장에게 직접 말하라"고 하였는데 이날 싸움에 나간 병사는 상당한 전과를 거두고 돌아왔다고 한다.
장수들도 무능하여 병사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상태였던 모양이다.

농성 45일 동안 이 험준한 곳에 적이 홍이포를 끌고 올라와 포격을 가하는데도 두려워 나가 싸우지도 못하고
어디에서 어떻게 싸워야 할 지도 정하지 못하자 임금이 "이토록 지구전을 벌이다가 장차 어찌할 것인가? 형세가 유리한 쪽을 택하여
한번 싸우도록 하라"고 말하기 까지 한다.

일찌기 광해군이 벼슬아치들의 이런 한심한 작태를 목도하고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적의 형세는 날로 치열해지고 있는데, 우리 나라의 병력과 인심은 하나도 믿을 만한 것이 없다.
고상한 말과 큰 소리만으로 하늘을 덮을 듯한 흉악한 적의 칼날을 막아낼 수 있겠는가.
적들이 말을 타고 들어와 마구 짓밟는 날에 이들을 입으로 막아낼 수 있겠는가. 붓으로 무찌를 수 있겠는가?"
(광해군 13년 1621년 6월1일)

조선은 사대부의 나라였다.
그 사대부들이 서인 노론의 1당지배체제를 확립한 후기에는 권리는 무한대였지만 책임은 지지 않았다.
경쟁자가 없었기에 그들은 행동은 하지 않고 입으로 모든 문제를 떠들기만 할 뿐이었다.
인조 임금은 이런 사대부들을 믿고 어이없는 적을 만들고 불러들였다.
이런 작태는 21세기인 지금도 변함없다.

북문 밖.

견고한 성곽과 험준한 지형은 천혜의 잇점을 갖고 있었지만 운용하는 조선의 사대부와 왕에게 이런 지리적 잇점은 오히려 자신들을
목죄는 고립된 감옥이 되고 말았다. 임진왜란과 정묘호란의 교훈을 잊어버린 사대부들은 청나라에게 털리는 순간에도
자폭과 할복의 쇼를 벌였지만 그것은 임금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철면피들의 헛짓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단, 한명도 몸으로 힘으로 "오랑캐"에게 저항하지도 않았고 오직 임금만 방패막이로 내 몰았을 뿐이었다.
그 사이에서 백성들은 광해군이 탄식한 대로 어육이 될 뿐이었다.
전쟁은 병역의무도 없는 자들이 불러들였으면서 죽는 것은 백성들의 몫이었다.

숭렬전

이 산성에 갇힌 인조와 대신들이 한 일 가운데 하나가 백제의 시조 온조왕에게 제사를 지내는 일이었다.
괴력난신(怪力亂神)을 사갈시 한다는 성리학자들 그것도 예조에서 온조왕의 신력을 기대하여 제사 지낼 것을 인조에게 청하여
임금은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제사를 지냈다. 
전쟁이 끝난 1년 뒤 1638년에 전각을 지었고, 1795년 정조임금이 숭렬전이라는 이름을 내렸다.
여기에는 산성 보수 공사의 책임자였던 이서장군을 같이 배향했는데 인조반정의 핵심인사였던 이서는 병자호란 농성 중에 성 안에서 병사했다.


성을 오르내리며 아들에게 성의 지세를 생각해보고, 어떤 준비를 해야되는지 등을 생각해보게 하고 의견을 들었다.
축성위치와 기술은 탁월했으나 준비를 소홀히 하고 입만 가지고 만사를 해결하려 하면 어떤 결과를 빚는지 현장에서 느껴보게 했다.
천혜의 입지를 가졌어도 사람이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 사람이 중요한 것을 느낀 답사였기를 바란다.

너무 춥고 점심시간이 되어 배도 고팠다. 이럭저럭 성을 반바퀴 돌았으니 점심을 먹고 성 안쪽을 본 뒤에 삼전도로 가보기로 했다.
인조임금이 머물렀던 행궁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나니 추위가 조금 덜했다.
 

공립학교의 대안사례로 EBS에서 보도했던 남한산초등학교 교정

이 학교 정문은 남한산성 행궁이 방치되어 있을 때 한남루에 사용하였던 정초석으로 만든 것이었는데
2010년 행궁 중건 사업을 할 때 정초석을 원래 자리에 반납하였다고 한다.

수백년 묵은 아름드리 나무가 길게 그림자를 드리웠다. 짧은 겨울해가 기울고 있다.

남한산 초등학교 근처에서 발견한 천주교 순교자 현양비
신유박해(1명), 기해박해(2명), 병인박해(19명) 등을 비롯해 300여명이나 되는 천주교인들이 이곳에서 죽음을 맞았다고 한다.
극단으로 흐른 성리학의 조선은 다른 종교를 수용하면서도 역시 극단성을 보였다.

남한산성 천주교 순교자들을 기념하는 성지

이승만 독재정권에 맞섰던 해공 신익희 석상
기단석에는 "민주주의의 길은 함께 즐거운 영역에 도달하는 것이다"라는 글을 새겨 놓았다.

남한산성 역사관
이곳은 남한산성을 설명하는 박물관과 같은 곳. 

역사관 안에 전시해 놓은 남한산성 모형

이 근처는 원래 남한산성에 주둔하던 병사들이 무예를 닦던 곳이다.
길 건너편에 연무관 건물이 보인다.
다음에 다시 와서 성 전체를 한바퀴 돌아보기로 하고 삼전도를 찾아 가기로 했다. 

롯데월드 너구리당! 준기가 신이났다.

375년전 여기는 한강 안에 있는 섬이었다.
인조는 생명을 보장받은 뒤에야 이 자리로 내려와 청태종 홍타시를 만났다.
홍타시는 항복한 적에게 상당한 아량을 베풀었는데 모욕행위도 없었고 다만, 인조는 삼배구고두를 행하였다.

원래 자리에서 이리저리 돌아 다니다 지금 석촌호수 롯데월드 옆에 자리 잡은 삼전도 비.
유리 지붕을 씌워 놓았지만 쉽게 눈이 띠는 자리는 아닌 듯

조그만한 방향표지가 있다.

처음에는 이런 귀엽고 아담한 모습으로 귀부를 만들었다가 청태종에게 혼이 났다고 한다.
황제의 위엄이 보이지 않는다고 다시 만들라고 했단다.

그래서 지금 모습으로 그 옆에 더 크게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비문은 만주어와 몽골어, 한문으로 씌여있다. 그 덕에 17세기 만주어, 몽골어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대접받는다.
한 때는 욕된 역사적 유물이라고 한강 모래에 파 묻기도 하고, 파괴해 버리려고 했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모래에 파묻혀 있다가 홍수 때 밖으로 드러나서 지금 자리에 서 있게 되었다.


조선의 사대부들 가운데 누구도 이 비문을 쓰지 않겠다고 버텼다.
입으로 병화를 불러와 백성들을 죽음보다 더한 고통으로 몰아넣었던 자들이
고작 자신들의 명예와 자존심 때문에 다시한번 비겁한 짓을 했다.
가문의 명예를 위해 백성을 죽음으로 몰아 넣었던 그들은 가문의 수치로 남을 비문짓기를 거부한 것이다.
인조는 장유, 이경전, 조희일, 이경석에게 비문 초안을 잡도록 명을 내렸고
그들은 비문이 채택되지 않게 하려고 요리조리 핑계를 댄다.

이경전은 병을 핑계로, 조희일을 비롯한 셋은 글을 비루하게 지어 바쳤다.
인조는 장유와 이경석의 글로 글을 지어 청나라에 보냈으나 문장이 졸렬하고 사실관계가 다르다는 질책을 받아 다시 짓게 되었다.
결국 이경석이 이 비문을 마지막으로 정리했다.

이 호란이 트라우마가 되어 인조는 아들인 소현세자와 며느리인 강빈을 죽음으로 몰아 넣었고
사대부들은 평민들과 여자들을 지독한 교조주의적 성리학으로 옭아매 자신들에게 향할 비난을 차단했다.
교과서에 배우는 그들의 행적은 기실 지금까지 권력을 놓치지 않은 조선 후기의 1%들과
그 후손들이 지금도 그들의 죄악을 감추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사익을 위해 영공방위를 위해 긴급발진하는 공군기의 직진이륙을 막는 고층 건물을 버젓이 짓고 있는 현장이
바로 삼전도 비 옆에 있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1%의 오판과 오만으로 99%가 어육이 되는 일이 다시는 없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