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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여행

기억의 재구성, 태백여행

by 연우아빠. 2011. 8. 19.

2011. 8.13(토)

아침을 하려고 쌀을 꺼냈더니 한끼 정도밖에 안된다. 예상보다 너무 적게 가져온 탓도 있고 야영을 하면 평소 먹는 양보다 2~3배를 먹게 되어 그런 듯하다.



태백 지역의 고생대 지층 위에 세운 태백 고생대자연사 박물관


지질시대 전시물





공룡 모형


오늘 역시 준기 계획대로 태백 쪽으로 길을 나섰다. 오늘 휴가를 오기로 한 상린이네는 11시 좀 넘어서 출발한다는 연락이 왔다(상린네는 오후 6시 넘어서 청옥산에 도착했는데 영동고속도로는 무려 100km가 넘는 구간이 막혔다는 이야기를 한다). 오늘치 야영비를 계산하고 다시 태백쪽으로 넘어 갔다. 먼저 구문소 옆에 새로 지은 태백 고생대자연사박물관. 2009년 검봉산 야영 때 여길 들렀었는데 그 때 이 건물은 짓고 있는 중이었다. “여기와서 이 박물관 구경할 수 있을까?”하고 웃었는데 우린 여기 다시 왔다. 스스로 생각해도 참 멀리도 돌아다녔다. 4억5천만년전 고생대 지층인 구문소에 만든 고생대 자연사박물관은 예상보다 잘 만들어 놓았다. 휴가철이라 그런지 사람들도 제법 있다. 한반도와 이 지역을 중심으로 지질시대의 역사에 대해 여러 가지 흥미를 끌만한 것들을 갖추고 있다. 건물 구조와 배색도 차분하고 아름답다. 지질탐사와 지층구조에 대해서 아이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흥밋거리를 중간중간에 잘 배치해 두었다.

지극히 높은 산들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데도 푹 빠진 것 같지 않은 느낌을 주는 태백. 그 가운데 황지연못이 있고 이 연못을 중심으로 태백시가 자리하고 있다. 낙동강 발원지인 이 연못에 8년만에 다시 왔다. 시내 한 가운데 있어서 공원이 된 곳. 사람들 출입이 너무 많아 오염을 걱정한 때문일까? 예전과 달리 연못은 이제 다리위에서 바라볼 수 있을 뿐 징검다리로 내려갈 수 없게 막아 두었다. 그런데 왜 저 연못에 동전을 던지게 만들어 놓았을까? 이런 곳을 볼 때마다 궁금한 것이 연못에 동전을 던지는 풍습은 왜 생겼을까 하는 점이다.


낙동강 발원지 황지연못


예전과 달리 지금은 저 징검다리 위에 들어갈 수 없도록 막아놓았다.


예전에 인증샷을 찍었던 곳에서 8살이나 더 자란 준기 사진을 찍어주고 연못 안쪽에 있는 할매국수집을 찾았다. 모범식당도 아니고 겉보기에 탁월한 뭔가가 있는 집은 아니지만 8년이 지난 오늘도 궁금한 맛있는 국수집이다. 혹시나 싶었는데, 아! 그 집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8년만에 왔는데 그냥 있어서 너무 반갑다고 했더니 주인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너무 좋아 하신다. 올해로 장사를 시작한 지 22년 되었다고 하신다. 8년전보다 가격이 500원~1,500원 정도 올랐다. 여전히 5천원이 안되는 싼값에 어렸을 때 먹었던 건진국수(잔치국수, 냉국수)랑 칼국수를 맛볼 수 있었다. 아이들도 “맛있다!”를 연발하며 한 그릇씩 다 비웠다. 냉국수를 주문하며 사리추가를 미리 해 두었는데 추가 사리를 원래 국수보다 더 많이 주신다. 물론 깨끗이 다 비웠다. 김치 맛도 깔끔하고 멸치국물 맛이랑 깨 맛이 고소한 것이 변함없다. 경기도에서 8년만에 그 맛을 잊지 않고 다시 찾아준 우리가 신기했는지 할아버지는 다시 물어 보신다. 언제 다시 이 집을 찾아 국수를 먹을지 모르겠지만 오래 건강하시고 장사가 잘되기를 빌며 다음 장소로 떠났다.

삼수령은 백두대간 매봉산 줄기에 있는 고개로 여기 떨어지는 비는 한강(서해), 낙동강(남해), 오십천(동해)로 갈라져 흐른다고 한다. 지도에서 여기를 발견한 준기가 꼭 가보고 싶다고 여행지로 넣어 둔 곳이다. 고개에 도착하자 많은 차들이 길가에 보인다. 삼수령에서 매봉산 꼭대기까지 대규모 고랭지 채소밭에서 배추농사를 짓는 농민들이 많다. 여기를 찾은 관광객들 때문에 농사에 적잖이 방해가 되어 시청에서 낮에는 셔틀버스로 왕래를 돕고 6시 이후에만 개인 차량으로 올라갈 수 있게 통제를 한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검룡소에 들렀다가 내려오는 길에 우리차로 올라가 보기로 하고 삼수령만 구경하고 검룡소로 향했다.

남한강의 발원지 가운데 하구에서 가장 먼 곳에 있는 검룡소는 8년전에 4살, 6살 어린 두 녀석을 데리고 오싹한 기운을 느끼며 다녀온 곳이다. 사진은 있지만 기억이 없으므로 다시 가야겠다고 준기가 목록에 넣어둔 곳이다. 입구에 도착하니 예전과 많이 다른 모습. 우선 포장된 주차장이 있다. 차를 대 놓고 시식회 하는 곳에서 맛있어 보이는 김치를 조금 샀다. 예전과 달리 방문객의 서명을 받고 있다. 국립지리원에서 2008년부터 여기를 한강 발원지로 보호하겠다고 구역을 지정하고 화전민들을 내 보냈다고 한다. 높이 4m쯤 돼 보이는 검룡소 입석에 서서 개인적으로 남다른 기억이 있는 준기가 인증샷을 찍었다. 이 입석에는 독특한 흔적이 있다.


남한강의 발원지 검룡소 입구



검룡소 가는 길. 입구에서 1.4km 정도


예전에 비해 좀 왜소해진 듯한 검룡소


검룡소 물은 이렇게 흘러가 513km를 여행해 서해까지 간다



뱀 조심이라 적힌 표지판이 곳곳에 있는데 예전과 달리 참 많은 사람들이 들어온다. 하루 방문객이 천명이 넘는다고 한다. 과연 예전과 달리 배추농사 짓던 밭은 묵은 채 배추꽃이 널찍하게 자리잡고 있다. 하늘을 찌르는 나무는 방아다리 약수터 입구처럼 멋있다. 검룡소보다는 검룡소 드나드는 길이 더 멋진 곳. 10분쯤 걸어서 도착한 그 곳은 예전의 검룡소가 아니었다. 뭔가 차가운 기운이 땅 속에서 솟아오르던 샘이 아니라 나무 테크로 빙 둘러싸서 샘에 접근하지 못하게 가로 막고 있었다. 사람의 접근을 막고자 갇혀버린 샘. 거기에도 경고문을 무시하고 어김없이 사람들이 던져 놓은 동전이 보였다. 차가운 기운이 많이 죽은 듯한 왜소해진 느낌을 주는 샘. 콸콸 쏟아지는 물줄기 역시 가늘어진 느낌이다.

오늘 하루 자기가 봐야 할 곳을 모두 돌아본 것에 만족하는 준기. 내려 오는 도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계속 올라온다. 습기가 많고 따뜻한 볕이 적절하게 있는 양지라서 그런 지 뱀이 길을 가로질러 간다. “뱀이다!” 준기는 신이 났다. 아, 이 순간에 카메라는 왜 배낭 속에 있는 거냐. 아쉽게도 뱀을 찍지 못했다.

다시 입구에 도착해 검룡소 선돌을 보다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매미가 탈피한 껍질과 나방이 붙어 있는 모습. 준기는 입구에서 방문객의 서명을 받는 할아버지께 쫒아가서는 자기가 본 것을 자랑한다.

“할아버지. 저기 ‘검’자하고 ‘의’자에 뭐가 붙어 있는 지 아세요?”
“오호! 너 그걸 발견했니? 대단한 걸!”

사진 속의 기억이 실재 기억으로 재탄생 하는 순간에 준기는 무슨 느낌이 들었을까?

검룡소를 떠너 다시 휴양림으로 돌아가는 길, 삼수령 아래에서 본 매봉산의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다. 아내가 우리도 줄서서 올라가 보자고 해서 얼른 다른 차의 꼬리에 차를 갖다 댔다. 차례차례 출발해 올라가다가 넓은 배추밭 아니 배추 평원을 보게 되었다. 순간 좁은 도로를 보며 후회스러웠다. 이런 길은 걸어서 가야지 차로 가다가 잘못하면 황천가기 딱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수령(해발 935m)에서 매봉산 정상(해발 1,272m)까지 모두 배추평원이었다. 그 사이로 자동차 한 대가 지나가는 좁은 길이 구불구불 이어져있다. 차마고도를 빗댄 배추고도라는 말이 여기를 일컫는 말이란다. 경치는 절경, 등골은 오싹한 그런 곳이다. 거대한 풍력발전기와 저 멀리 남서쪽으로 보이는 오투리조트의 스키장 흔적. 그것은 마치 아름다운 백두대간을 할퀴고 간 흉악한 발톱자국과 같았다. 머지않아 가리왕산 중봉도 저런 운명을 맞이할 것을 생각하니 한편으로 끔찍하고 인간의 욕망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는 생각에 오싹하다.


삼수령 아래에서 바라본 매봉산 풍력발전소


삼수령 표지


아름답지만 아찔한 배추고도를 따라 매봉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


매봉산 남동쪽 방향으로 보이는 태백 오투리조트의 스키 슬로프
아름다운 백두대간을 인간의 탐욕이 할퀸 흔적에 '악!' 소리가 절로 난다.
동계올림픽 한번 치르겠다가 식물 유전자의 보고인 가리왕산 중봉도 저렇게 흉물로 변하겠지.


6시가 넘어서 상린이네가 휴양림에 도착했다는 문자가 왔다. 태백시내에서 쌀을 사서 휴양림으로 돌아오니 언덕 위에서 반갑게 맞아주는 큰형님 부부가 보인다. 휴양림에서 참 오랜만에 뵙는 모습. 두분은 오랜만에 야영이라 와서 보니 텐트의 폴대도 없고 정신이 없단다. 저녁을 해 놓으셔서 같이 둘러 앉아 맛있는 밥을 먹었다. 큰형님과 형수님의 음식솜씨는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한참 맛있게 먹고 있는데 쏟아지는 비. 얼른 우리 데크로 뛰어가서 예비 타프를 가져와 데크를 덮었다. 옹색하지만 사방에 잘 생긴 소나무가 서 있어서 팩이나 폴이 없어도 타프를 칠 수 있는 곳. 우선 비를 막고 제자리를 잡아 다시 저녁과 곡차, 그리고 커피까지 마시면서 즐거운 대화 삼매경에 빠져들었다. 밤 12시가 다 돼서야 잠을 자러 우리 텐트로 내려왔다. 역시나 너무 덥다. 텐트 밖 타프 아래에서 비박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만큼 바깥 바람이 시원하다. 30분쯤 누워 있다가 모기 때문에 텐트 안으로 대피했다. 1시쯤 되자 비가 그쳤다. 아열대성 날씨를 점점 닮아간다.



매봉산 정상 풍력발전소의 모습. 센 바람 때문에 기온이 아주 낮다.


옛날 윈도우 기본 바탕화면 같은 언덕


바람 때문에 담요를 두르고 다니는 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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