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 6일
눈을 뜨니 좀 컴컴한 느낌. 커튼을 열자 비가 오는게 보인다. 나무가 심하게 흔들리고 안개가 심하다. 오늘 날이 괜찮을 것 같아 한라산을 오를까 했는데 강 선생님께서 말리신다. 8일날로 미뤄야겠다. 아침을 먹고 강 선생님을 따라 귤밭으로 구경을 나갔다. 오늘은 비가 와서 밭일을 할 수가 없으시단다. 이따가 고사리나 따러 가야겠다고 하시면서 귤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 주셨다. 귤은 탱자나무에 접을 붙여서 개량해 왔다는 것과 돌연변이 종 가운데 당도가 높은 것을 골라 계속 접붙이기를 해서 당도를 강화해왔다고 한다. 돌연변이 특성이 30% 이상 그대로 발현하면 새로운 종으로 정착이 된다고 한다. 귤은 먼저 신맛이 올라오고 좀 지난 뒤에 단맛이 나기 시작하며 신맛이 먼저 사라지고 단맛이 마지막에 사라진다고 한다. 그래서 노지 재배귤은 12월 하순부터 가장 맛이 좋고 품종별로 4월까지 계속 생산한다고 한다. 현재 시중에 판매하는 귤은 12~13브릭스 정도 당도를 유지하는데 작년에 15브릭스 당도를 나타낸 돌연변이 종을 발견해 접붙이기를 했다고 하신다. 1년이 지나면 20~30cm정도 자란다고 하고 4년 정도 지나면 열매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같은 15브릭스 당도를 가져도 식감에 따라 단맛을 느끼는 정도에 차이가 있다고 한다. 시중에서 사먹던 귤에 비해 너무 맛있었던 이 집 귤을 더 좋은 맛으로 개량한다니 앞으로 더 기대된다.
제주도 귤 접붙인 모습. 귤나무는 생각보다 키가 무척 작았다.
강 선생님은 일을 하러 가시고 우린 먼저 저지오름 근처에 있는 제주옹기박물관을 찾았다. 민욱아빠 블로그에서 알게되어 찾아간 곳인데 안내하시는 젊은 여성분이 제주도 토박이인 모양이다. 말은 절반도 못알아 들었는데 신기하게도 그 뜻은 거의 짐작할 수 있었다. 언어와 문화는 중심에서 주변으로 파문처럼 퍼져나가지만 원형을 마지막까지 보전하는 곳은 주변부라는 사실이 새삼 실감이 났다. 이 박물관은 폐교가 된 분교를 사들여 만든 곳으로 학교였을 때도 작고 아담했겠지만 박물관으로 바뀐 지금도 무척 정감이 가고 아담하다. 자금이 부족해 자재도 비싼 것을 쓰지 못했다고 하시는데 만든 사람의 정성이 느껴지는 아기자기한 편안함이 가득하다.
대정 저지오름 근처에 있는 제주옹기박물관. 폐교가 된 분교를 꾸민 곳이라고 한다.
옹기 흙으로 대정지역 어린이들이 한땀한땀 만든 대정읍성
제주는 옹기용 흙을 구할 수 있는 곳이 제한적이라고 한다. 화산암과 현무암이 대부분인 제주도는 토기나 옹기를 만들 흙을 구하기 위해서는 흙이 나는 밭을 사서 층층이 파내려 가야 한다고. 또 나무가 귀한 곳이라 토기 제작에 필요한 온도를 맞추는게 힘들어 토기나 옹기 색깔에 차이가 난다고 한다. 1,200도 이상의 열기를 공급한 경우에는 붉은 토기를 만들 수 있지만 900도 정도 밖에 온도를 맞추지 못하면 연기에 그을린 듯한 색이 난다고 한다. 화산토가 많이 섞여 있어서 무게가 육지의 토기보다는 가벼운 편이다.
물항아리를 대배기라고 하는데 어린이용으로 만든 작은 허벅도 있다. 어린아이도 작은 허벅에 물을 지고 날라야했던 시절의 이야기. 옹기 제작 때 마지막 마무리 작업을 할 때 보로롱 소리가 난다는 설명을 듣고는 준기가 이날 하루종일 보로롱을 입에 달고 다녔다. 뽀롱뽀롱 뽀로로와 함께. 미리 연락을 하면 옹기 만드는 체험도 할 수 있다는데 그 생각을 왜 미리 못했을까? 설명해주시던 분께서 제주 옹기로 만든 정겨운 찻잔에 내 주시는 커피를 감사히 마시고 박물관을 나왔다. 만약 기회가 된다면 이 정도 크기의 시골 폐교를 구입해서 주변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노후에 소일거리가 될만한 일을 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제주도를 찾는 사람들이 이 박물관에 많이 찾아와 제주도의 속 모습을 많이 봤으면 하는 바램이 든다.
“제주도에 9만명이 넘게 관광객이 들어왔다는데 다들 어디 갔을까?” 너무 호젓한 중산간 길을 달리면서 아내가 한마디 하는데 용머리 해안에 있는 하멜 기념관을 찾아가는 길에 관광버스와 사람이 가득 서 있는 곳이 보인다. 관광지로 유명한 오설록. 차를 파는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곳이다. 전망대에 올라가보니 사방이 모두 초록색 차밭이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이라 여기서 맛뵈기로 주는 차 한잔은 무척 따뜻하다. 차 한잔을 얻어 마시고 다시 하멜기념관을 향해 길을 떠났다.
안개에 묻힌 산방굴사와 산방산
용머리 해안에서 본 마라도 할망당
용머리 해안과 하멜기념관
저 배 안에 하멜과 네덜란드에 관한 전시물이 층층이 빼곡하다.
첫날부터 핸들을 꺾을 때마다 앞바퀴 축에서 “뚜뚝 뚝!”하는 소리가 몹시 귀에 거슬리고 안전상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 렌트카 회사에 전화를 했더니 교체해 주겠다고 한다. 용머리 해안에 도착해 관람표를 끊었다. 용머리해안, 산방굴사, 하멜기념관을 함께 관람하는 통합 관람표였지만 이날 비바람이 몹시 거세서 해안에는 접근금지령이 내렸다. 지난 2월에 전라병영성에서 하멜이 조선을 탈출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머물던 곳에 갔었는데 하멜이 조선에 처음 도착한 땅을 밟아본다. 이런 배로 17세기에 네덜란드에서 포클랜드를 거쳐 인도네시아와 일본까지 왔다는 게 정말 대단하다. 하멜기념비를 보고 더 올라가서 산방연대(봉수대 역할을 하던 조선시대 건축물)에 도착했다. 산방연대에서 보니 바다가 정말 뒤집어지는 듯 바람이 거세다. 하멜은 바로 이런 날 제주도에 표류해 온 것일까?
렌트카를 교환하고 나서 점심을 먹을 곳을 찾았다. 민욱아빠 블로그에서 봤던 <피자굽는돌하르방>을 찾아가서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하필 위치가 아까 출발했던 옹기박물관 근처라 길에 시간을 상당히 낭비한 셈이 되었다. 우리가 가는 돌하르방은 냉동피자나 공장피자가 아니라 직접 이집 화덕에서 구워서 파는 것이다. 아쉽게도 옛날 화덕이 아닌 가스를 사용하는 요즘 화덕이란다. 여러 가지 피자 가운데 불고기와 고구마맛 2가지를 선택해 50cm짜리 피자를 주문했다. 기다리는 동안 내 준 밀차는 몸을 따뜻하게 해 준다. 도시에서 보는 피자집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 사실 우리 가족은 피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먹으면 속이 더부룩해서...그런데 스위스와 이탈리아에서 먹은 피자는 참 좋았다. 이 집은 어떨까? 30분 정도 기다린 뒤에 나온 피자는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맛있었다. 브랜드 피자와 다른 깔끔한 맛. 민욱아빠의 칭찬 이상으로 우리에겐 맛있는 피자였다. 젊은 주인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민욱아빠 블로그 보고 왔다고 했더니 우리 건너편 자리에서 1m짜리 네가지 맛 피자를 먹고 있는 분들 가운데 민욱이 엄마가 있다고 가르쳐준다. 그러고 보니 블로그 사진 속에서 뵌 얼굴이 낯이 익다. 인사를 할까 하다가 낯선 사람이 불쑥 끼어드는 것이 결례일 것 같아 내일 정식으로 만날 때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피자굽는돌하르방> 벽화가 재미있다
도시에서 맛보는 브랜드 피자와 다른 맛있는 피자를 먹을 수 있는 집
앞접시도 정겹게 생겼다
식탁은 옛날 문창살 위에 유리를 얹은 것
50cm짜리 2가지 맛 피자(우리가 선택한 고구마와 불고기 피자)
다음에 제주도 오면 이곳에 꼭 와야 한다고 준기가 채근한다. 그래 아빠도 다시 오고 싶구나. 그 사이에 비가 좀 잦아들었다. 4년 전에 근처에 갔다가 문 닫는 시간이 돼서 들러보지 못했던 이중섭 미술관으로 향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너무나 유명한 서양화가. 6.25때 피난 와서 여기 서귀포에서 살다가 돌아가셔서 이곳에 미술관이 생겼다. 가난과 전쟁 때문에 그 분의 작품은 제대로 정리가 안됐고 이 미술관에도 당사자의 작품은 13점 밖에 없다고 한다. 불행한 거장을 위해 이만한 예술기념관을 둘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문외한이지만 그의 그림에 가식이 없다는 것은 느끼겠다. 이곳은 올레길 가운데 하나라서 많은 사람들이 걸어서 순례를 하고 있다.
이중섭 미술관
순박하지만 강렬한 힘을 느낄 수 있는 소
이중섭 공원의 정감어린 돌담길
이중섭이 마지막에 살았던 초가집
남은 시간과 오늘 가야할 곳을 가늠해보니 아무래도 한 곳은 건너뛰어야 할 것 같다. 준기의 양보를 얻어 감귤박물관은 다음을 기약하기로 하고 몇 번이나 별렀던 김영갑 갤러리를 찾았다. 삼달초등학교 폐교 터를 사들여 제주도의 속살을 오래도록 많은 이들에게 보여주려고 했던 김영갑 선생. 제주도에 정착한 뒤 얼마되지 않아 루게릭 병 판정을 받고 죽는 순간까지 아름다운 제주도의 풍경을 사진에 담으려고 했던 예술가. 그가 남긴 사진에는 사각 프레임을 터질 듯이 채운 제주도의 풍경이 담겨있다. 저런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이라면 사진작가로서 뼈를 묻어도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진과 그림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들. 마치 내가 한라산에, 오름에, 태풍 앞에 서 있는 듯한 작품들.
제주도를 사랑했던 김영갑 선생의 사진 갤러리
삼달리 초등학교 였던 이 터에 아이처럼 귀여운 토기 인형이 올망졸망하다
다음으로 찾은 곳은 가시리 자연사랑갤러리. 이곳 역시 폐교가 된 가시 초등학교를 사진작품으로 채운 곳이다. 최근 중산간 지역문화의 복원과 제주지역의 독특한 문화보전을 위한 지역 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가시리 일대는 보고, 듣고, 제주도의 독특한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제주도다운 곳으로 추천할 수 있는 곳이다. 비록 김영갑 선생의 풍경 사진만한 영감을 주는 곳은 아니지만 지금은 먼 옛날의 전설처럼 돼버린 흑백 사진 속에서 내 어린 시절의 모습과 친구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가시 초등학교 분교의 건학부터 폐교때까지 변천사를 흑백사진에서 읽을 수 있는 곳. 짧은 시간 속에 우리는 변해도 너무많이 변했다.
최근 제주도 중산간 지역 문화운동의 중심에는 가시리가 있다.
가시 분교를 재활용해 만든 자연사랑갤러리
가시리는 대도시가 아니라서 찾아오는 사람도 그다지 많지 않은 중산간 지역인데, 여기에서 지역특성을 살리는 문화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것은 수도권 중심으로 동맥경화현상을 보이는 우리나라 문화활동의 건강성을 되찾는 면에서도 아주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서귀포 쪽에서 이 방향으로 온다면 우리가 온 순서와 달리 자연사랑갤러리를 먼저 들리고 나서 김영갑 갤러리를 들리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나서 점심이나 저녁은 가시리 네거리에 있는 식당가에서 제주의 전통음식을 맛보는 것이 독특한 경험이 되리라 생각한다. 물론 지역경제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저녁 8시면 가게들이 모두 문을 닫는 이곳에서 서유럽 사람들이 갖고 있는 삶의 여유를 느꼈다.
오늘의 마지막 방문지는 삼성혈 들렀을 때부터 준기가 가야한다고 노래 부르던 혼인지. 삼성혈에서 태어난 세 성인이 벽랑국에서 배를 타고 온 공주를 맞아 혼인을 하고 신방을 꾸민 곳이라는 전설이 남아 있다. 이곳은 지금도 전통혼례를 올리는 장소로 이용하고 있으며, 우리가 찾아간 날에도 결혼식이 있었다. 넓디 넓은 정원과 아름다운 연못, 그리고 팔작지붕 기와건물이 몇 동이 있다. 이제 해가 저물어 저녁을 먹어야 할 시간이다. 저녁을 먹으려면 가까운 가시리삼거리를 찾았어야 했는데 미처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옛날에 들렀던 서귀포 근처 가든쉬는팡을 찾아 열심히 달려 7시 반에 도착을 했건만 더 이상 주문을 받을 수 없단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엄청나게 밀려오는 손님들. 할 수 없이 숙소로 돌아오다가 큰 길에서 모범음식점을 발견하고 거기에서 돼지고기를 구워먹는 것으로 저녁을 마쳤다. 8시가 되면 서귀포 쪽 음식점들은 모두 문을 닫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아까 가시리에서 먹고 왔어야 했는데...
삼성혈에서 태어난 세 성인은 이 곳 혼인지에 벽랑국에서 온 세 공주를 만나 혼례를 올렸다고 한다.
혼인지는 생각보다 아주 넓은 공원 같다
신방굴 안에는 방 3칸이 있다. 여기에서 세 성인은 첫날밤을 보냈다고 한다.
지금도 혼인지는 혼례식장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저녁 늦게 숙소에 돌아오니 강 선생님께서 맏아들을 데리고 오셔서 한라봉 한 상자와 한라산에서 직접 따오신 두릅을 한 접시 주신다. 이런 융숭한 대접을 받을만한 사람이 아닌데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짧은 시간동안 너무 급하게 구경하러 다니느라 강 선생님과 이야기도 제대로 나누지 못해 몹시 죄송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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