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2.31~2011. 1. 2
칠보산 자연휴양림에서


두달동안 우여곡절 끝에 다시 예약한 칠보산자연휴양림 참나리방
3년 반만에 다시 찾은 이 방은 리모델링을 해서 이렇게 산뜻한 모습이긴 했는데 단열시공에 문제가 있었는지 우풍이 너무 심한 단점이 있었다.



1월1일 아침.
갑자기 몰아치는 눈보라에 경사지에 세워놓은 차를 모두 평지로 옮기라는 긴급한 방송.
칠보산휴양림사무소에서 준비한 새해일출 등산을 비롯한 여러가지 프로그램은 모두 취소됐고
기온도 심하게 떨어져 숙소 밖으로 나가기 싫은 상황이 됐다.


제1휴양관. 미친듯이 쏟아지는 눈보라에 마치 북극에 서 있는 것 같은 날씨였다.



사진으로는 평화롭게 나왔지만 눈보라는 쉽게 그치지 않았다.


목교 위에도 눈보라가 몰아치고 나들이를 포기했다.
수련관 식당에서 휴양림관리사무소에서 주는 아침 떡국을 먹으러 나간게 한 일의 전부.



다행히 점심 때 눈은 그쳤다.
후포항에 가서 점심으로 대게를 먹고 그냥 숙소에만 머무는 것은 너무 아쉬운 일이라 준기가 가고 싶다는 신돌석 장군 생가를 찾았다.
을미의병 봉기 때 경북 동해안과 영양 일대에서 용맹을 떨친 평민 의병장 신돌석.
힘이 너무 세서 한주먹에 일본군들을 몰아낼 것 같아 희망을 주었던 사람.
암울한 시대에 희망의 지푸라기를 잡고 싶었던 민중들의 희망이었고 그래서 신화의 주인공이 되었던 의병장.



볼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평범한 초가였지만 이번 여행에서 그나마 갈 수 있었던 유일한 유적이었다.
안동에서 시작됐다는 구제역 때문에 가는 곳마다 마을출입을 막는 안내문이 붙어 있고, 방역 분무기가 차를 뒤 덮었다.
여행을 하는 것 자체가 미안한 일이었다.


새해 여행

대구에 혼자 내려와서 처음 맞는 연말연시.

이왕 대구에서 근무하게 되었으니 대구를 거점으로 가까운 휴양림을 다니겠다는 계획은 운전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한 아내에겐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연말 인사발령이 난 뒤 본사에서 정례 교육을 받으러 올라간 김에 수요일 밤 가족들을 데리고 대구로 내려왔다.


가족들에겐 재미없었을 2박 3일. 나는 회사로 가고 가족들은 낯선 도시에서 추위가 함께하니 마땅히 갈 곳이 없었던 것. 대구박물관과 신천 떡볶이 집에 가보려고 했지만 내가 머무르는 숙소를 청소하느라 그냥 숙소 주변만 좀 돌아녔을 뿐. 


언제부턴가 오후 4시로 늦춰진 종무식. 이렇게 해서 얼마나 생산성이 올라갔을지 의문이다. 우리가 꿈꿨던 사회는 풍요롭고 여유 있는 사회가 아니었던가?

사무실을 나와 급한 마음으로 길을 나섰지만 서두르다가 그만 가까운 U턴 길을 놓치고 200m도 안되는 길을 무려 4km나 돌아 복현 오거리를 지났다. 포항 가는 고속도로에 올랐을 때는 이미 해가 지고 부산에서 출발하는 동생에게 연락했더니 벌써 휴양림에 도착했단다. 저녁 먹으러 나간다는 얘기를 하고 우리도 가는 길에 저녁을 먹고 들어가기로 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나뭇가지는 바람이 많이 부는 듯 요동을 친다. 삼사 해상공원을 지나서 길가에 보이는 짜장면 집에 들어갔다. 짜장면과 탕수육을 시켰는데 뜻하지 않게 보기드문 수타면에 탕수육도 푸짐하게 준다. 유명한 맛집도 모범음식점도 아니었지만 상당히 맛있게 잘 먹었다. 주변을 가르는 바람은 수은주보다 더 차갑게 다가온다.

 

눈이 오고 한파주의보를 발령한다는 예보가 있어 지난 주 크리스마스 때 청태산 여행처럼 휴양림을 간다는 것 외엔 별다른 의미를 찾기 어려울 듯하다. 곳곳에 있는 구제역 방역시설들. 대구 내려올 때 고장났던 와이퍼를 깜빡잊고 고치지 않아 방역시설들을 통과할 때마다 차를 세워놓고 수동으로 창을 닦을 수 밖에 없다.

 

네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대로 갔다가 예전에는 통제하던 산길로 안내를 해 줘서 결국 비포장 산길을 지나 뒷문으로 휴양림에 도착. 비행기 소리 못지않은 칼바람 소리

 

몇 년전과 달리 리모델링을 한 참나리 방. 그러나 우풍이 너무 심한 방. 단열처리에 뭔가 문제가 있는 듯.

 

1월1일 아침은 해돋이는커녕 칼바람과 함께 심한 눈보라

휴양림 사무소에 주는 떡국을 먹고 나니 눈보라 때문에 아무데도 갈 수 없는 상황.

와이퍼가 고장난 차로 길을 나서는 것은 위험 천만

 

영주 사는 막내가 출발한다는 연락.

기온은 어제보다 더 낮고 거의 북극 한 가운데서 맞는 것 같은 눈보라

 

다행히 점심 때 쯤 눈이 멎고 하늘이 보이기 시작

심한 눈보라에 다들 놀랐는지 오늘 묵을 방이 벌써 청소가 끝났다고 해서 1시에 짐을 휴양관으로 옮겨놓고 지혜맘께서 알려주신 후포항으로 점심 먹으로 나섬

 

휴양림으로 들어오는 7번 도로를 자동차 전용도로로 만든 탓에 예전과 다른 출입로

후포 가는 길 곳곳에 구제역을 막기 위한 방역시설들

방역시설을 통과할 때마다 와이퍼가 작동 안되는 내 차는 앞이 보이지 않아 위험한 상황

 

바다는 마치 성난 용처럼 육지를 향해 달려든다

바위에 부딪쳐 하늘을 향해 부서지며 울부짖는 파도들

후포항 근처에는 방파제를 넘어 바닷물이 도로 위까지 올라온다

 

지혜맘이 알려주신 후포항 25번횟집

손님이 제일 많다.

대게가 제일 맛있는 때는 2월 하순 정도라고 하는데

12마리를 사서 그 자리에서 쪄서 세가족이 먹었다.

맛있는 대게는 먹는데 너무 힘이 들 정도로 먹고 나면 배고프다.

 

여기서 그냥 가면 너무 아쉽다는 여행 전문가 같은 말을 하는 준기

제일 가까운 신돌석 장군 생가와 유적지를 가 보기로 하고 아이들만 태우고 먼저 출발

 

그러나 구제역 때문에 곳곳에 출입통제

게다가 여전한 칼바람과 추위

아쉬움을 뒤로 하고 휴양림으로 직행

이미 해가 넘어갔다

 

삼형제 가족이 오랜만에 맞이한 저녁

맛있게 저녁을 먹고 오랜만에 만난 사촌 남매들이 벽장에서 숨바꼭질을 하고

 

2일 아침

다행히 하늘이 파랗다

창밖으로 보이는 동해바다는 하늘과 땅이 모두 파랗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은 마치 봄처럼 따뜻하다.

 

아침을 먹고 휴양림 산책로를 따라 산을 한바퀴 돌고

아쉬움만 잔뜩 남겨 놓고 처가로 향했다.

 

어제 들어오는 길에 봉화, 영양 쪽은 눈이 많이 쌓여 위험하더라는 막내 이야기를 듣고

울진으로 올라가 불영계곡을 통과하기로 결정

곳곳에 구제역 방역 장치들

약을 뒤집어 쓰고 나면 앞이 안보여서 잠시 정차하고 수동 와이퍼 질을 하고 다시 출발하기를 예닐곱번 하고 나서 처가에 도착

 

아내와 아이들에게 작별을 하고 대구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만사가 꼬인 듯 순간순간마다 괴로움이 끼어드는 여행이었지만

그래도 인생은 즐겁게 마음먹는 순간 천국이라는 것을 안다.

Posted by 연우아빠.

구름 속 일월산, 비 맞은 칠보산  

2007.10.13~14(1박2일)

작년 이맘 때 가족여행으로 칠보산 휴양림을 다녀오신 다음날, 갑작스럽게 쓰러진 어머니는 그길로 돌아오지 못할 영면에 드셨다. 아버지께서 칠보산에 가보고 싶다고 하셔서 어머니의 흔적을 찾아 가을여행을 떠났습니다. 칠보산을 가는 길에 지난 7월 검마산 야영모임 때 함께하지 못했던 일월산을 먼저 올라가 보기로 하고 길을 떠났습니다. 갓 돌을 넘긴 아기도 있어서 자동차로 KBS 중계소까지 올라가기로 했는데 네비게이션 안내가 일월재 앞에서 멈춰버립니다.



일월산 정상으로 가는 길
 


난감한 상황에서 생각난 사람이 바로 살아있는 전설 라파엘 아빠님. ^^
토요일이지만 염체불구하고 휴대전화를 걸었는데 역시나 산길 안내가 술술 나오십니다. 덕분에 헤매지 않고 KBS 중계소 앞에 무사히 도착해 정상을 향해 걸어갈 수 있었습니다.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정상근처에는 안개도 심하고 구름이 낮게 깔려 스산한 날씨였습니다.



 
정상으로 가는 길에 단풍이 조금 보입니다.


 
멀리 보이는 능선들을 찍어 보았습니다. 안개가 심해서 달리 찍을 만한 것도 없고...



할아버지와 손자가 나란히 걸어갑니다. 할아버지 손을 잡고 가는 녀석이 기특하네요.



이게 뭔 꽃이더라? 하면서 여러군데서 찍었는데 투구꽃이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생긴게 그리스 투구처럼 생겼습니다.



휴양림 갈 때마다 챙겨가는 돋보기로 뭘 들여다 보는데 뭔지는 저도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정상에 도착해 단체사진을 찍어 보려고 했더니 정리가 안됩니다.
그냥 스냅사진 찍듯이 연달아 찍어서 그중 한 장을 뽑았습니다.
사방이 완전히 구름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추위를 무릅쓰고 20분쯤 기다리다 비구름이 몰려오는 것을 보고 포기하고 내려왔습니다.


일월산을 내려와 휴양림으로 가는 길을 잡아 떠났는데 중간에 본신리 금강소나무생태경영원을 만났습니다. 야영장도 조성해 놓았는데 데크는 10개, 선착순 무료랍니다. 마침 수종개량사업을 하면서 금강송 묘목을 옮겨 심는 작업을 하다 남은 묘목을 모아 놓고 있길래 찍었습니다. 씨앗에서 2년 정도 키운 상태라고 합니다.


 
본신리 금강송생태경영원의 맑은 물 




1년된 금강송 묘목. 한그루 얻어 와서 집에서 키우고 있습니다.


칠보산 휴양림에 도착해 짐을 풀고 휴양관 언덕에서 바다풍경을 한번 찍어 보았습니다. 슬슬 게을러지기 시작해 삼각대 들고 밤바다 찍는 것이 귀찮아서 눈으로 구경만 했습니다. 비가 와서 산책도 휴양관 주변만 잠깐했고 연우랑 배드민턴만 열심히 쳤습니다.




일요일 아침, 카메라를 들고 산책을 나섰는데 임도 중간쯤에서 비가 쏟아져 사진 조금 찍고
들어왔습니다. 대식구가 모이니 식사시간도 길고 11시쯤 되서야 아침식사를 마치고 출발 준비가
끝났습니다.

 


칠보산휴양림 휴양관, 2층방에서는 방안에서 동해 일출을 볼 수 있습니다.
풍력발전소를 거쳐 강구항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작년과 똑같은 길을 갑니다.







풍력발전소에 도착해 보니 정상에 공원을 하나 새로 조성해 놓았고, 작년에 많았던 코스모스는
거의 다 사라지고 없네요. 어머니께서 사진을 찍었던 곳에서 한 장 찍었습니다.



 
새로 조성해 놓은 공원을 구경하고 내려오다가 억새를 한번 찍었습니다.
날씨가 흐리고 비가 오락가락, 찍사도 별로여서 생각처럼 잘 나오진 않네요.

 


강구항을 향해 가는 7번 국도에서 구름 속에서 부서지는 햇빛과 반짝이는 파도
그리고 해안에서 부서지는 파도의 포말이 참 아름다웠습니다만 운전 중이라 눈으로만
감상하면서 가다가 어렸을 때 바닷가에서 오징어 말리던 어머니 생각이 나서 한 장 찍었습니다.



강구항은 여전히 아름답습니다. 멀리 풍력발전소도 보입니다.




어촌 박물관 안에는 옛날 배 모형을 조립해 볼 수 있게 해 놓은 곳이 있습니다.


어촌민속박물관에서 물고기 사냥에 몰두하고 있던 갈매기 한마리를 찍었습니다.
멋지게 바다로 다이빙을 하는데 그 장면은 능력부족으로 찍지 못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34번 국도를 이용해 안동으로 해서 왔는데 집까지 5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강원도 갔다 오는 길보다 물리적인 거리는 훨씬 먼데도 시간은 덜 걸리네요.

우리와 함께 했던 오락가락 하던 비는 함께 하지 못한 어머니가 하늘나라에서 흘린 눈물이셨을까요?
하늘나라에서 행복하게 지내시길 빌어봅니다.


* 이 글은 다유네(
http://www.dayune.com/)에 올렸던 글입니다.

Posted by 연우아빠.

하늘나라로 가신 어머니와 마지막 여행(칠보산자연휴양림)

2006.10.3~5(2박3일)

징검다리 휴가를 낼 수 있다면 한가위 연휴가 길어질 수도 있어 부산에 사는 동생에게 10월 4일 휴가가 가능한지 물어보았다.
동생은 휴가를 낼 수 있다고 한다.

2년전 통고산 자연휴양림에 온 가족이 함께 갔던 여행에 대해 모두들 반응이 좋아서
작년 여름에는 덕유산 자연휴양림에서 가족이 모였었다.

바다와 산을 함께 볼 수 있는 칠보산 휴양림을 가족여행지로 정하고 뒤늦게 예약사이트를 들락거리다
장미방과 참나리집 취소분을 잡고 부모님께도 연락을 드렸다.
3일부터 2박3일간 휴양림을 중심으로 영덕여행을 하기로 했다.




경북 영덕 칠보산 자연휴양림에서 본 동해바다

칠보산은 예전에도 몇 번 가보려다 사정이 있어 예약취소를 자주 한 곳이라 이번에는 꼭 가 봐야겠다는 생각도 컸다.
재작년 한가위 때 긴 연휴을 이용해 통고산 일대와 7번 국도를 따라 울진에서 평해까지 여행을 하며 아름다운 바닷가의 가을을 맛보았던 터라
가족들 모두 즐거운 기대를 하고 있었다.

마침 사무실에서는 둘로 조를 나누어 2일과 4일에 연차휴가를 쓰기로 했는데,
먼 곳에 부모님이 계시는 맏아들의 처지를 배려해 준 덕분에 4일날 휴가를 낼 수 있었다.
2일날 근무를 마치고 저녁 8시에 집을 나서 부모님이 계시는 영주로 갔다.
11시 도착. 부모님은 주무시지 않고 반겨주신다.



상당히 가파른 구간이 있었던 칠보산 자연휴양림 산책길.


10월 3일

숯불 바베큐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칠보산쪽 정보를 들었기에 바비큐 대신 전기그릴을 가지고 갔다.
고기 좋기로 정평이 있는 시골 동네 정육점에서 목살을 사고 마당 텃밭에 가꾸는 채소를 적당히 솎아서 출발했다.

어머니께서 소일거리로 가꾸고 있는 텃밭은 농약을 치지 않아 채소의 뒷맛이 고소하다.
재작년 여행길에서 어머니는 멀미가 심해서 여행 중간에 막내동생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셔서 바람에 마지막날은 아버지만 함께 하셨다.
금년에는 멀미가 심한 어머니를 위해 차를 트라제XG로 바꾸었고 앞좌석을 뒤로 약간 뉘어서 편한 자세로 가실 수 있게 해 드렸다.

봉화 현동으로 가는 36번 국도를 타다가 영양 수비로 가는 31번 도로를 타고 다시 백암온천으로 가는 88번 도로를 탔다.
재작년에 어머니께서 보지 못한 백암온천에서 평해로 가는 길에 핀 배롱나무 가로수의 장관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일교차가 심한 오지라서 그런지 단풍은 제법 곱게 물들었고
오가는 자동차도 거의 없어 탁트인 가을하늘과 함께 맑고 신선한 풍경을 천천히 감상하며 갈 수 있었다.
백암온천부터 평해까지 가는 길은 동해바다가 보이는 장관이었지만 아쉽게도 배롱나무는 아직 꽃봉오리가 그다지 많이 피지는 않았다.
그래도 어머니께서 참 곱다라고 하시며 연달아 감탄하셨다.

구주령 정상부터 보이기 시작하는 동해바다는 평해를 지나면서 우리 왼쪽에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후포의 큰 마트에 들러 맛있는 사과 1상자와 포도 3상자를 사고 간식거리와 찬거리를 만들 재료를 샀다.




산책길에 핀 구절초



7번 도로에서 휴양림으로 진입하는 입구는 자동차 1대가 겨우 들어갈 정도로 좁았지만
표지판이 잘 되어 있어서 별 탈없이 쉽게 찾아 들어갈 수 있었다.

휴양림까지 8km를 가면서 산과 바다와 하늘이 짙푸른 색과 고운 단풍으로 사람의 눈과 마음을 시원하게 만들어 준다.
점심도 먹고 천천히 온 까닭에 집에서 4시간 이상이나 걸려 휴양림에 도착했다.
열쇠를 받아 짐을 내려놓고 부산에서 오는 동생네가 도착할 때까지 휴양림 산책길 돌아보려고 나섰다.

어머니는 퇴행성 관절염을 앓아서 고생하셨는데 4년전 상태가 좋지 않은 오른쪽을 인공관절로 수술을 하셨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기분이 좋으셨는지 손자 손녀들 손을 잡고 따라 나섰다.
올라가는 길과 내려오는 길이 경사가 있어서 좀 힘들었을텐데도 기분이 아주 좋아 보이셨다.


어머니께서 힘들어 하실 것 같아 절반쯤 돌고 휴양관 가운뎃길로 내려오는 산책로를 따라 내려왔다.
제1휴양관 앞 망원경으로 동해바다를 보고 있노라니 부산에 사는 동생이 도착했다.
짐을 내리고 모처럼 만난 사촌아이들끼리 배드민턴도 치고 “꼬마야 꼬마야” 줄넘기도 하면서 잘들 논다.

특히 연우는 저와 동갑인 사촌 희원이와 붙어서 떨어질 줄 모른다.
야외 숯불바베큐 대신 미리 준비해간 전기그릴로 고기를 구워 모두들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창밖으로 내려다 보이는 7번 국도의 가로등 물결과 바다를 둘러싼 오징어잡이 배의 집어등 불빛,
그리고 하늘에는 거의 보름달이 다 된 달이 환하게 웃고 있다. 세상에 이보다 더 완벽한 날이 있을까 싶다.



10월 4일

새벽 5시 아버지께서 나를 깨웠다.
아버지는 등산을 좋아 하시고, 연세가 드셨음에도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것을 너무 좋아 하신다.
피곤해 하는 동생을 남겨두고 아버지와 함께 오랜만에 산행에 나섰다.
아버지와 어머니와 68살 동갑이신데 어머니와 달리 등산을 하시는데 전혀 무리가 없다.

등산용 지팡이를 드렸더니 힘이 더욱 나신단다.
810m 정도인 칠보산을 올랐는데 드문드문 탁 트인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이 많아 산과 바다를 동시에 맛볼 수 있는 좋은 길이었다.
등산 2시간 15분, 하산 40분 정도 걸렸는데 아버지와 오랜만에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대처로 자식을 내 보내놓고 얼마나 심심하셨을까 생각하니 아버지와 더 오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참나리 집에 짐을 옮겨 놓고 영덕 쪽으로 내려갔다.

7번 도로는 마치 고속도로처럼 잘 정비되어 있었다.
가는 도중에 해맞이공원과 풍력발전소를 찾았다.
풍력발전소 앞에 올라가니 바람을 맞아 물결치는 억새와 코스모스가 바다와 어울려 한폭의 그림을 만들어 낸다.


 
풍력발전소에서 내려다 본 초가을 풍경. 저 앞쪽 쪽빛은 하늘이 아니고 바다다

자식들 걱정에 좋아하는 여행도 아끼고 아끼시는 우리 어머니는 웬일인지 “얘들아. 여기 참 좋구나, 경치가 너무 예쁘다” 하신다.
주름이 많은 노인들 사진 자꾸 찍으면 뭐하겠냐고 사진을 잘 찍지 않으시던 분이 동생과 제수씨에게 사진도 찍어 달라고 하시고
아버지와 두 분이 사진도 찍었다.



 
영덕 해맞이공원 풍력발전소



단체사진도 한번 찍고

아름다운 공원과 발전소를 뒤로하고 강구항에 도착했다.
시장이 복잡하고 차도 많아서 한바퀴 돌아 다시 들어갔다.
동광어시장에 들어가 가족들이 먹을 모듬회를 주문하고 마침 어머니 고향분이 운영하는 가게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어머니는 게가 드시고 싶다고 하셨다.
어머니는 영덕대게를 참 좋아 하신다.
옛날 강원도 바닷가에 사실 때에는 자주 드셨지만 내륙으로 이사 들어 온 뒤로는 별로 접할 기회가 없었다.

대게 철이 아니어서 영덕대게는 없었지만 제일 비슷한 북한산 게가 있어서 6마리를 사서 쪘다.
모두들 맛있게 먹고 나니 어머니는 조카가 아파서 같이 나서지 못한 막내네 가족이 생각나셨나보다.
막내 주겠다고 게를 다섯 마리사서 얼음 포장을 했다.

다시 길을 나서 삼사해상공원에 도착했다.
어촌민속전시관은 요모조모 잘 만들어 놓았다.
아이들에게도 재미있는 곳이고 바다가 넓게 보여 전망도 참 좋다.
주변에 새로 공사를 하는지 조금 정리가 덜 된 곳이 있었지만 잘 만들어 놓은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참나리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땅거미가 내린 휴양림을 온가족이 천천히 산책했다.



 
똘망 똘망한 눈으로 시뮬레이션을 쳐다보고 있는 아이들


 
맛있는 대게는 이런 것이랍니다.(어촌민속전시관 대게박물관)



 
어촌민속전시관 전망대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강구항




어촌민속전시관 뒷마당


10월 5일

아버지께서 등운산도 올라가지고 하셔서 다시 새벽길을 나섰다.
등운산은 칠보산보다 조금 낮은  767m 였다.
솔숲이 아주 좋아 상쾌한 느낌을 준다. 바람도 시원하게 불어 아주 그만이었다.
다만 내려오는 길이 숲속의 집 근처에 와서는 아주 가팔라서 가족들을 데리고 가기에는 좀 무리일 것 같다.

아버지는 그래도 전혀 힘들지 않으신가 보다.
어머니께서는 떡방앗간을 하는 외사촌 형의 추석대목 일을 도와야 한다고 빨리 가자고 재촉하신다.
막내에게 게를 가져가 빨리 쪄주고 싶으신 모양이다.

9시 30분쯤 체크아웃을 하고 출발했다. 동생은 백암온천 길로 들어섰다.
나는 어머니께서 멀미를 덜 하시도록 울진 쪽으로 가는 길을 잡았다.
재작년에 못보신 월송정도 마음이 급하신지 그냥 지나가면서 보는 것으로 때우신다.
막내집에 도착해서 게를 찌고 막내 손자와 손녀를 안아 보시고 흐뭇해 하신다.




경북 울진 민물고기연구소 전시관



민물고기연구소 양여장



10월 6일, 가장 긴 한가위의 시작


아침에 늦잠을 잤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보이지 않는다.
둘째네 차를 타고 아침에 본가에 가셨다고 한다.
10시쯤 둘째가 전화를 했다. 어머니께서 머리가 아프다고 하신단다.
가족들 챙겨서 올라 가려고 했더니 10분쯤 지나 동생이 다시 전화를 했다. 빨리 올라오라고...


느낌이 이상해서 혼자 차를 끌고 본가에 갔더니 어머니께서 백짓장 같은 얼굴로 누워계셨다.
머리가 아프시고 자꾸 토한다고 하는데 먹은 것을 토하는 것이 아니라 신물만 토한다고 한다.
손과 발을 만져보니 아주 차다.
자주 체하시는 분이라 일단 손발을 주무르고 등뼈를 짚어보니 중간 쯤에 아프다고 하셔서 체한 것으로 생각했다.
머리를 맛사지하고 손발을 주무르니 손발이 좀 따뜻해 졌다.
체했을 때 쓰는 비방대로 제수씨가 손을 땃다.
병원에 가자고 했더니 어머니가 완강하게 버티신다.
좀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송탄에 사는 누나와 자형이 내려오고 있다고 전화가 왔길래 어머니께서 누나를 보시게 하려고 조금 기다리기로 했다.


제수씨가 죽을 끓여 들였더니 앉아서 잡수시고 다시 누우셨다.
얼굴빛이 조금 나아졌길래 안심을 하고 누나가 오기를 기다렸다.
저녁에 나와 둘째는 처가로 갔는데 밤 10시 조금 너머 깊은 잠에 드는 찰라에 전화가 왔다.

순간 아주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어머니께서 다시 토하신다는 것이다. 자형이 병원으로 모시고 갔다고 한다.
나는 총알처럼 튀어나가 차를 끌고 병원으로 갔다.
출발한지 1분도 안돼 다시 전화가 왔다. 안동으로 간다고....

나는 안동병원으로 모시고 가라고 자형에게 말하고 급하게 차를 안동병원으로 몰았다.
도착하니 의사가 CT를 보여주며 아주 급박한 상황이라고 경북대학교 병원으로 옮기라고 한다.
서울로 모시고 가겠다고 했더니 의사선생님이 아주 단호하다.
어머니께서 지주막하출혈이라 대구까지 무사히 갈 수 있는 확률은 30%도 되지 못하고 서울로 가신다면 도중에 돌아가신다고 한다.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 길로 대구로 달려갔다.
새벽 2시15분 경북대병원에 도착해 CT를 찍고 혈관조영촬영을 하고 의사는 수술직전에 나를 불렀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실 경우의 수를 모두 설명받았지만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응급조치 탓인지 어머니의 손발은 따뜻했기에.... 아버지가 도착했다.

어머니 상태를 보시더니 눈물을 흘리신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30년전 본 바로 그 눈물이다.
수술 동의서에 서명을 하고 아버지께 상황을 설명하러 가는 순간
나는 알 수 없고 주체할 수 없는 울음이 가슴 깊숙한 곳에서 쏟아져 나오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 사이에 아버지는 의외로 담담하셨다.
이상하게 어머니께서 돌아가신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수술실로 들어가시면서 어머니는 아무런 말씀이 없었다.
나는 살아서 병원을 나설 수 있다고 믿고 싶었다.
그래서 어머니께서 아무 말씀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7일 오전 10시 조금 지나 시작한 수술은 5시간 동안 계속됐다.
중환자실로 옮겨진 어머니는 집도의께서 아주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하셨다.
죽음의 문턱을 넘는 것으로 여겼던 나는 우리를 알아보고 말씀까지 하는 어머니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참으로 다행이다.
아버지는 침착하라고 하시면서 어머니께서 오래 병원에 계셔야 할 것 같으니
남매들이 순서를 정해 어머니 병상을 지키라고 하신다.


서울대 의대 교수로 있는 신 교수님께 어머니 상황을 설명하고 어떻겠냐고 전화로 물었더니 병원의 조치와 판단은 적절했다고 한다.
그런데 아무런 외부 충격 없이 지주막하출혈이 생겼다는 것이 의외라고 한다.
대뇌 한 가운데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혈관이라 강한 외부 충격 없이는 터지는 곳이 아니라고 한다.
어머니는 평소에도 조금만 부딪치면 멍이 잘 드신 분이라 혈관이 약한 것이 아니었나 짐작만 할 뿐이다.


일단 어머니께서 안정된 상태라 하여 부산에 사는 둘째는 아이들을 부산에 데려다 놓고 바로 대구로 와서 병상을 지켰다.
그 사이에 누나와 나는 각각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8일 오후 6시 둘째에게서 다급한 전화가 왔다.

어머니께서 경련을 일으키며 의식을 잃어 두 번째 수술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KTX를 타고 바로 대구로 내려갔다.
내려가면서 이상하게 계속 어머니께서 돌아가시는 생각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안된다” 도리질을 하며 대구에 도착했더니 수술을 마치고 나온 어머니는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셨다.
어머니를 보니 다시 가슴 깊숙한 곳에서 울음이 터져나왔다.
아아! 이게 천륜이라는 거로구나.
냉철하기 이를데없는 나도 결국 어머니 아들이었구나.
나는 어머니 손을 놓고 밖으로 나와 펑펑 울었다.
아버지는 내 어깨를 감싸며 위로하셨다.


“슬퍼하지 마라.
누구나 한번은 겪고 누구나 한번은 가야하는 길이다.
네 어머니는 아쉬운 나이이기는 하지만 아들 딸이 모두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것을 보았고,
마지막에 좋은 곳에 여행도 함께 다녀왔고
자식들이 이렇게 모두 모여 있는 가운데 삶을 마감할 수 있으니 한편으로는 행복할 것이다.
너무 슬퍼해 몸을 상하는 것을 원하지 않을게다”


그러나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9일 아침에도 어머니의 의식은 회복되지 않았다.
의사는 다시 수술을 할 수 밖에 없다고 설명을 한다.
하지만 이제는 수술이 성공해 깨어나더라도 평생 혼자 움직이지는 못할 것이며 사람들을 알아보지 못한다고 하신다.
억장이 무너지고 울음이 터져나왔다.
아아! 하늘은 왜 내게 이런 아픔을 주시는가.

아버지께서 어머니께 더 이상의 고통만 주는 수술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하고 의사에게 말했다.
잠시후 수술을 지휘한 의사 선생님이 내려와 그래도 30% 정도의 희망은 있으니
의사로서 최선을 다할 수 밖에 없다고 하신다.
마지막 유한을 남기지 않기 위해 3차 수술 동의서에 서명을 하며 한없이 울었다.


3시간 걸린 수술이 끝나고 환자가족을 대기실에서 20분 정도 기다려달라고 하더니
2시간이 지나도록 연락이 없다. 갑갑해서 죽을 지경이다.
30분이 더 지나서야 의사가 중환자실로 불렀지만 어머니는 백짓장 같은 얼굴에 손발이 차가웠다.
1차 수술이 끝났을 때 모습과는 너무나 느낌이 달랐다.
의사 선생님은 이제 기다려 보는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신다.
절망감에 다시 터지는 오열을 참을 수가 없었다.
저녁 면회에서 어머니는 동공에 반응이 없었다.
산소 호흡기 없이 독자적으로 숨을 쉬지 못한다고 한다.
아아! 어머니는 마침내 뇌사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하늘과 땅이 동시에 무너져 내린다.


저녁 면회가 끝나고 의사가 불렀다. 가족들 모두 불러 모으라고..

어머니께 닥친 사실을 가족들에게 솔직하게 알릴 수가 없었다.
병원 오는 길에 사고라도 날 것 같은 불안감에 울음을 참고 최대한 마음을 진정시키고
가족들에게 차례로 전화를 해서 병원으로 오라고 했다.
10일 새벽 2시 25분 아버지와 나, 둘째동생 부부가 지켜보는 가운데
어머니는 한마디 말씀도 남기시지 못하고 영원히 눈을 감으셨다.
나는 뱃속 깊숙이서 올라오는 울음과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그건 인력으로도 이성으로도 어쩌지 못하는 울음이었다.


사흘간의 장례를 치르고 어머니의 유골을 등에 업고 어머니 유언대로 경치 좋은 곳에 뿌려드리려고 산을 올랐다.
생각해보니 평생 단 한번도 어머니를 업어 드린 적이 없다.
마음속으로 눈물을 곱씹으며 산길을 올라 부산 내려가는 둘째네와 고향 근처에 사는 막내의 집도 잘 보이고
서울 올라가는 우리들도 잘 보이는 경치 좋은 곳에 어머니를 뿌려드렸다.


4남매 애써 키우시고 오늘날까지 노심초사 하시며 호강을 제대로 누려보지 못한 어머니.
그 어머니는 우리의 애통한 울음을 남겨 놓고 가을바람을 타고 바다보다 푸른 가을 하늘을 날아 하늘로 가셨다.

앞으로 매년 한가위 때는 칠보산휴양림을 잊지 못할 것이다.
어머니께서 아름답다고 하신 그 풍경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아직도 황망 중에 당한 일이라 어머니가 떠나셨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는다.
아마 살아가면서 어머니 생각은 지금보다 더 실감나게 많이 날 것 같다.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어머니께서 너무나 깔끔하게 뒷정리를 해 놓은 것을 확인하고 더 죄송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어머니! 하늘나라에서 부디 행복하세요.

* 이 글은 다유네(
http://www.dayune.com/)에 올렸던 글입니다.


 돌아오는 길, 검마산자연휴양림 근처에서 잠시 쉬는 아이들

Posted by 연우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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