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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여행

제주도 오일장 그리고 아픈 역사

by 연우아빠. 2011. 5. 20.

□ 5월 7일

새벽에 눈을 뜨니 창밖이 여전히 컴컴하다. 역시나 또 비가 온다. 오늘은 민욱아빠를 만나기로 한 날. 감귤박물관을 들러보고 제주시내로 나가려고 했더니 아내가 제주도에 모처럼 왔는데 서귀포휴양림 숲길을 못보고 가면 섭섭하다고 한다. 준기가 선선히 양보를 한다. 강 선생님은 오늘도 비가 와서 귤밭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겠다고 하신다. 날씨가 계속 이러면 한라산 등산은 어려운데..기온도 생각보다 아주 낮다. 

아침을 먹고 서둘러 서귀포 휴양림으로 올라갔다. 2007년 5월에 아름다웠던 그 숲은 그 해 가을에 제주도를 덮친 태풍 나리 때문에 많은 피해를 봤다고 한다. 우리가 봤던 울창한 숲은 한쪽이 휑하게 보일 정도로 망가져 산간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들이 보인다. 천천히 탐방로 데크를 따라 올라갔다. 태풍 피해 말고도 군데군데 나무를 간벌해 쌓아둔 게 보인다. 밀림처럼 울창했던 숲을 기대했는데 4년전에 아름답던 숲은 사라졌다. 제주도에 있는 휴양림 두 곳 중에 여기만 숙박야영을 허락하고 있다. 그나마 제일 위쪽 3야영장에만. 이 날 비가 내리는데도 10여 가족이 캠핑을 하고 있다. 그 가운데는 경기도 번호판도 보인다. 다음에는 꼭 야영을 하러 오리라 다짐했다. 1100 고지를 넘어서는 순간 하늘이 거짓말처럼 말갛다. 뒤를 돌아보니 거긴 비가 오는데 거대한 한라산은 남쪽과 북쪽의 날씨를 전혀 다르게 만들었다. 


서귀포휴양림 산책로. 숲은 사람을 즐겁게 만든다.


4년전을 회상하며 스스로 연출하는 준기


연우가 국립제주박물관을 보자고 했다. 제주도의 독특한 문화형성에 대해 이해하기 쉽게 잘 만들어 놓은 전시공간. 과거 골동품 전시장 같았던 박물관이 이제는 제 역할을 제대로 하는 모습이 좋다. 선사유적 분포도에서 선사시대 인구밀집지역과 현재 인구밀집도가 높은 지역이 거의 일치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물이 부족한 제주도에는 해안을 따라 솟는 용천수 지대에 마을이 자리잡고 있다. 


국립제주박물관


18세기 초, 제주도의 모습을 관리의 입장에서 잘 보여주는 탐라순력도 부분도
주민의 수, 병사의 수 등 자세한 기록이 그림과 함께 남았다.


제주오일장 들머리에 할머니 장터가 있다.
할머니를 파는 게 아니라 할머니들이 파는 장터이다.


활기넘치고 규모도 엄청났던 제주민속오일장


장터에서 먹는 제주도 순대국밥


박물관을 나와 제주 5일장을 보러 가기로 하고, 오늘 만나기로 약속했던 민욱아빠에게 전화를 했더니 오후 1시에 퇴근한다고 한다. 제주 오일장 구경을 간다고 했더니 대파 모종 10뿌리만 사달라고 한다. 2시 넘어서 다랑쉬 오름에서 만나기로 하고 오일장 구경에 나섰다. 제주민속오일장은 2일과 7일에 서는데 제주 서중학교 뒤편에 있다. 재래시장이지만 주차장도 많고 시장에서 좀 떨어진 곳에도 차를 댈 공간이 많은 편이다. 아내가 먼 곳에 대자고 해서 길 옆 공터에 차를 대고 걸어서 장터로 갔다. 엄청나게 밀려드는 차와 교통정리하는 경찰관을 보면서 걸어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장터 제일 앞쪽에는 <할머니 시장>이 있다. 여기 상인은 거의 대부분 할머니들이다. 이 분들 대부분은 4.3항쟁 전후에 태어나 죽을 고생을 하신 연령대이다. 그것 때문일까? 할머니 시장을 만든 것은? 왠지 지역사회의 연대성을 보는 것 같아 흐뭇한 느낌. 재래시장이라고 해서 자그마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장터 안에 들어서자 입이 떡 벌어졌다. 모종, 과일, 해산물, 산나물, 분식집, 제주음식들, 침구류, 새를 파는 시장 등등 없는게 없다는 표현이 딱 맞는 그런 시장이다. 민욱아빠 부탁으로 파 모종 2줄(14개)을 1,000원에 사고 시장 안 식당에서 점심으로 제주순대국밥을 먹었다. 제주 순대는 육지 것보다 돼지피를 많이 쓰기 때문에 퍽퍽한 느낌을 준다. 제주도의 생활에 맞게 만든 순대를 육지 입맛으로 평가할 수는 없는 법. 아이들은 그걸로 부족했는지 땅꼬라는 유명한 분식집에서 떡볶기, 찹쌀도너츠, 꽈배기를 사서 먹었다. 준기는 여중생들을 따라가면 제일 맛있는 분식집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싸고 맛있는 집을 찾을 수 밖에 없는 학생들이니 당연히 적은 돈으로 제일 맛있는 집을 찾을 수 밖에 없다나. 여학생들이랑 같이 장터에 앉아 맛있게 먹으면서 색다른 편안함을 느낀다. 

오후 3시 다랑쉬 오름 탐방안내소에서 민욱이네 가족을 처음 만났다. 혼자 나오실 줄 알았더니 부인과 민욱이도 함께했다. 잊어버릴 것 같아 먼저 파 모종과 집에서 준비해간 민욱이 책 선물을 주었다. 민욱아빠는 블로그 사진에서 본 것보다 더 젊고 목소리도 좋고 신뢰감을 주는 사람이었다. 부인을 어제 <피자굽는돌하르방>에서 뵈었노라고 했더니 제주도가 좁다고 웃었다. 민욱아빠, 민욱이 그리고 우리 가족은 함께 다랑쉬 오름을 올라갔다. 평지에 불쑥 솟은 모습이라 생각보다 가팔랐는데 고무발판을 만들어 놓지 않았다면 오르내리는데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오름 정상에 도착하자 사방에서 안개가 심하게 몰려왔다. 건너편에 있는 아끈 다랑쉬가 안개속에 완전히 숨어 버렸다. 아쉽다. 민욱아빠와 함께 외지인으로서 제주도 말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마침 1단체 1오름 보호운동을 하러 오신 분이 우리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제주제일고등학교 김승태 선생님(국어담당). 제주도 말과 몽골말이 비슷한 것은 두 말이 서로 고려 때 섞여서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말문화권의 남쪽 끝과 북쪽 끝이기 때문에 옛날 말의 원형이 마지막까지 남아 있어서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이라고 하신다. 아, 이건 강 선생님께서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다.


다랑쉬 오름에서(민욱아빠께서 찍어주신 사진)


김승태 선생님 일행에게 기념으로 한 컷 모델이 돼 드리고...


귀여운 민욱이 하고도 한장(일부러 민욱이 초상권을 생각해서 손으로 가린 사진을 올립니다)


다랑쉬 오름 앞에 있는 아끈 다랑쉬

 
오름을 한 바퀴 돌아 내려올 때까지도 짙은 안개는 걷히지 않는다. 다랑쉬 오름에서 북쪽으로 5백미터 쯤 떨어진 곳에 있는 다랑쉬 굴을 찾아갔다. 1997년엔가 발굴을 했다가 시신을 분명한 이유도 없이 화장해 바다에 뿌렸고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는 입을 다물었다고 한다. 오마이뉴스에서 그 전말에 대해 보도한 것이 있었는데. 그제 4.3항쟁 기념관에서 참혹한 다랑쉬굴의 비극을 알게 된 준기는 조금 무서운 모양이다. 차를 세우고 버려진 밭을 가로질러 길이 없는 길을 걸어가 11명이 죽음을 당한 다랑쉬굴 학살현장에 도착했다. 굴은 다시 막혔고 사람들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백비를 쓰러뜨린 사람들이 돌덩어리로 이 굴 입구를 닫아버렸고 길표지도 없는 그런 곳에 버려졌다. 언제 진실이 상식으로 기록될지 알 수 없는 시대가 이어진다. 비슷한 시기에 오스트리아는 좌우 합작으로 4대강국의 신탁통치 5년을 거친 뒤 통일된 영세중립국으로 비극없이 새로운 시대를 만들었는데 우린 왜 바보같이 이념대립으로, 또는 이념대립을 빙자한 권력욕으로 동족간 제노사이드를 저질렀을까? 왜 김익렬 장군 같은 이성적인 사람이 배제된 채 이런 바보짓을 하고 지금도 그걸 덮으려고 애쓰게 된 것일까? 비극의 현장을 둘러싼 꽃들이 너무 아름다운 것이 비현실적이다. 


다랑쉬 굴을 찾아가는 길은 이렇게 아름다웠다.
저 꽃 한송이 한송이가 억울하게 죽은 영혼들을 위로하고 있을까?


무엇이 무서워서, 무엇이 두려워서 40년만에 드러난 다랑쉬 굴의 비극을 바위로 막으려고 했을까?


다랑쉬굴을 떠나서 민욱아빠의 안내로 가시리 마을회관 근처에 있는 가시리식당에서 제주도 고유의 두루치기로 저녁을 함께 했다. 제주도에 들어와 살게 된 지 1년을 갓 넘긴 민욱아빠는 제주도 전래 음식과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사회문제에도 관심이 많다. 우리가 나누고 얘기해야 할 이야기는 너무 많았지만 시간은 그에 비해 너무 부족했다. 연령과 지역을 넘어 친구로, 이웃으로 오래 교류를 하고 싶은 분이다. 준기는 블로그에서 민욱이 성장기를 보며 민욱이를 참 좋아했는데 처음 만나서도 낯설지 않은 모양이다. 민욱아빠 덕분에 이번 여행 도중에 가족사진을 많이 갖게 되었다. 다음을 기약하며 가시리에서 헤어졌다. 


가시리 식당에서 제주도 고유의 두루치기 음식으로 저녁을 함께 했다.
가시리 식당 음식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민욱아빠 블로그에 있으니 이 사진 한장으로 생략


가시리 문화센터 앞에서 마지막으로 기념 촬영(여기까지 민욱아빠께서 주신 사진)


숙소에 돌아왔더니 강 선생님께서 귀한 한라산 꿀을 한 병 주신다. 고마운 마음을 알기에 마냥 거절할 수도 없다. 잠시 차를 내어 강 선생님과 제주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날 강 선생님의 입에서 상상하지 못했던 우리말 발음을 들을 수 있었다. 아래아를 정확하게 구분해 발음하는 강 선생님, (馬)과 말(言)이 발음상 확연히 구분되는 놀라운 경험. 순경음 ㅂ, ㅁ, ㅍ, 그리고 쌍 아래아 까지 정확하게 구분되는 자연스런 발음에 그저 놀랍기만 했다. 그러고 보니 고등학교 때 국어선생님은 왜국과 외국의 발음을 정확히 구분하셨던 기억이 난다. 세종대왕 때 만든 한글 발음은 관념적인 것이 아니고 실재했던 것이다. 육지와 분리된 제주도에는 지금껏 그 원형이 잘 보전된 것 같다. 4.3항쟁 때 일본으로 피난을 간 제주사람들의 집단거주지에는 60여년전 제주도 말이 거의 완벽하게 보전되어 있다고 한다. 한국어의 원형에 대한 학술적인 연구와 정리가 실재 말을 사용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통해 이뤄져야 할 필요가 있는데 이것은 강 선생님 같은 분이 꼭 해야 할 일인 것 같다. 강 선생님이 지금 하고 계신 귤밭이 성공하여 시간적 여유를 속히 찾으실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제주 고유어가 방송가 육지말에 섞여 사라지기 전에 강 선생님이 책으로 정리하실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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