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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여행

제주여행_첫날

by 연우아빠. 2007. 5. 28.

6년만에 다시 비자림을 만나다  2007.5.23~5.26(3박4일)

5월23일, 다시 비자림을 만나다

결혼기념일은 10월인데 회사일로 시간을 내기 어려운 시기라서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로 10주년 여행계획을 확정한 것이 3월초. 아이들 학교에서 5월25일을 재량휴업일이라 23일 하루만 학교를 안가면 5일간 내리 쉴 수 있단다. 항공편 예약을 위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를 뒤지니 벌써 5월 예약이 끝난 상태.... 정말 띠~잉한 순간이었다. 2~3일동안 수시로 들락거리다 취소분이 나온 것이 있길래 잽싸게 예약을 하고 절물과 서귀포 자연휴양림을 예약하고 한숨 돌렸습니다. 유니맘님 여행후기를 프린트해서 밑줄 그어가면서 읽고 느영나영 까페에 가입해서 제주도에 대한 정보를 찬찬히 수집하면서 여행 그림을 그려갔다. 렌트카를 바로 예약하려다 제주지사에 근무하는 직원이 2주 정도 전에 해도 된다고 하는 말에 넋 놓고 있다가 9인승 RV를 예약하지 못하고 소나타를 예약하게 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아이들을 데리고 제주도 여행을 다녀보면 잠자는 곳 못지않게 자동차가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여행할 곳에 스티커를 붙인 제주지도를 챙겨서 아침 8시 30분에 공항으로 떠났다. 준기는 메모지, 연필, 그리고 어린이동물도감을 들고 나선다. 남들이 태워주는 차만 타고 공항을 다닌 탓인가? 가족들을 내려주고 주차장으로 가는데 2~3분쯤 지나 연우맘의 다급한 전화....

“여보, 여기 국내선 청사가 아니야! 아울렛이라는데????”

“오잉!?, 아울렛이라고? 다시 돌아가는 길을 모르는데”

공항을 두 바퀴나 돌았지만 당황한 탓에 가족들이 있는 곳으로 다시 가는 길을 찾지 못하고 초조한 가운데 연우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떤 남자분이 사정을 듣고 자기 차로 국내선 청사까지 태워줬단다. 이런 고마운 일이.... 주차장에 차를 대고 네비게이션을 떼어 비행기에 올랐다. 가족 여행객이 많아서인지 비행기가 뜨자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탄성을 지른다. 준기 역시 2살 때 기억이 없으니 비행기는 처음 타는 기분이다. 이륙 10분 후 갑자기 기체가 요동을 친다. 아이들이 울고불고 준기도 “타이타닉이야, 우린 침몰하는 거야”라며 장난스럽게 말한다. 장난할게 따로 있지....야단을 쳤다. 10여분간 요동치던 비행기는 안정을 찾고 음료수 서비스가 시작됐다. 준기는 비행기가 마냥 신기한 모양이다. 좌석 식탁도 내려보고, 창 밖도 내다보고, 빨대달린 기내 음료수를 맛있게 쪽쪽 빨아 먹는다.

장난감처럼 보이는 자동차, 배, 산을 아래로 내려다보며 바다를 건너 제주공항에 도착했다. 렌터카를 넘겨받고 제주도 여행지를 미리 저장해 놓은 우리 네비게이션으로 바꿔 달았다. 점심은 제주지역본부 직원이 추천해 준 동이트는집(064-758-2309, 추어탕전문집)에 가서 맛있게 먹었다. 기다리는 도중에 우리 말씨를 듣고 주인아주머니가 관심을 보이더니 육지에서 이 집을 일부러 찾아 왔다는 얘기에 아이들 먹으라고 옥돔구이 한 마리를 서비스로 내 주셨다. 점심을 마치고 6백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준기 소원’인 제주도민속자연사박물관을 들렀다. 이번 여행 내내 ‘준기 소원’ 타령과 내 욕심 때문에 일정이 많이 꼬였다. 6년전 제주여행 때 문 닫는 시간에 도착해 보지 못했던 비자림을 제일 먼저 보려고 한 탓에 자연사박물관 이웃한 삼성혈, 관덕정, 목관아지 같은 역사유적을 이번에도 보지 못했다.



제주도민속자연사박물관 입구에 있는 상어 중에 가장 큰 고래상어박제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앞

자연사박물관을 구경한 다음 비자림을 향해 차를 몰았다. 제주도는 화산암으로 만들어진 곳이라 도로의 굴곡이 일정치 않은 것 같다. 차가 상당히 출렁거리는 느낌이 들어 60km 이상 속도를 내는 것이 부담스럽다. 트라제XG를 예약하지 않았다고 준기는 뒤에서 계속 잔소리하고 잠시도 가만히 있질 않고 이리저리 장난을 쳐 차 안을 소란스럽게 만든다. 정신 몹시 산란하다. 결국 사고를 치고 말았다. 더워서 조끼를 차 안에 벗어놓고 문을 잠궈버린 것이다. 순간 아차했지만 이미 늦었다. 조끼주머니에 차 열쇠가 들었는데... 렌터카 회사에 연락하니 일손이 달려 직원을 보낼 수가 없다고 택시기사를 수배해 보내주겠단다. 비용은 15,000원. 다행이다, 그러라고 하고 1시간이 넘어야 도착할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해서 그냥 비자림을 구경하기로 했다. 비자림 입구에 들어서자 6년전 일이 생각났다. 6년전 가족여행 때 아쉽게 발길을 돌렸던 그 비자림. 관림시간이 끝난 뒤에 도착한 탓에 "다음에 와서 보자"라고 돌아섰던 비자림. 다음을 기약했던 어머니는 이 세상에 아니 계시다.

제주도에 가면 제일먼저 가보겠다고 몇 번을 생각하게 했던 수천그루 비자나무 원시림이 6년전 그 모습으로 다가왔다. 가슴을 시원하게 하는 비자나무 향기, 맑은 공기, 서늘하고 상쾌한 기분...준기의 잔소리, 순간적인 짜증 모든 것을 잊게 만들고 사람의 마음을 선하게 만드는 힘을 가진 숲...사진도 찍고, 아빠의 사진기에 부쩍 관심을 기울이는 연우에게 사진기 다루는 법도 가르쳐 주면서 천천히 숲의 정기를 만끽했다. 구경 온 사람은 10여명에 불과해서 더욱 좋았다. 8백살이 넘은 새천년비자나무와 수백년 넘게 살아온 비자나무 숲은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때론 오싹한 한기를 느끼게 만드는 비자나무 숲은 생명의 원천인 듯 온갖 생명체를 품고 있다. 문득 제주지역본부에 와서 근무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매일 비자림을 오가며 비자림속에 파묻히고 싶다. 숲길 산책을 마치고 나오니 때맞춰 택시기사께서 예비열쇠를 가지고 주차장에 도착했다.



8백년이 넘게 제주를 지켜온 새천년비자나무




마치 반지의제왕에 나오는 앤트 같은 비자나무들




비자나무가 만든 숲 터널, 숲이 너무 우거져서 삼각대 없이 사진을 찍기 어렵습니다.



비자나무 숲을 지키는 돌하르방


5시쯤 남원큰엉해안경승지를 향해 출발했다. 바다안개가 살짝 깔린 남원앞바다는 검은 현무암의 힘찬 모습과 곳곳에 철쭉이 화려한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낮인데도 플래시 없이 사진을 찍을 수 없는 숲길이 어우려져 있다. 그 아름다운 곳에 금호리조트가 바다를 가로막고 서 있는데 허가를 내준 사람들이 원망스럽다. 좀 더 산쪽으로 들어가 짓도록 했으면 이 아름다운 절경을 가리는 건축물은 되지 않았을텐데... 그 긴 길을 걸어서 끝까지 가보고 싶지만 배고픔이 1시간 정도만 허락해 준다.




남원큰엉해안경승지 내려가는 길




남원큰엉 바닷가에 아름다운 철쭉



이거이 무슨 꽃이더래요?



한라산에서 내려온 용암이 바닷물을 만나 절벽을 이룬다

땅거미가 깔릴 즈음 이중섭미술관 아래에 있는 죽림횟집(064-733-7688)에 도착해 저녁을 먹었다. 모듬회 중자 하나를 시켰는데 정말 끝없이 나온다. 회를 즐기는 사람에게는 별로겠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저녁으로는 아주 좋다. 결국 다 먹지 못하고 지리탕과 옥돔구이, 꽁치구이를 싸달라고 해서 가지고 나왔다. 81,000원. 서귀포 이미트에 들러 귤, 과일, 쌀(3kg), 양념불고기를 사서 서귀포자연휴양림으로 향했다. 이미 9시가 넘었고 하늘이 잔뜩 흐려서 8시부터 하려고 했던 탐라대학교 서귀포천문과학문화관의 별보기는 내일로 미루기로 했다. 탐라대학교 앞을 지나가면서 준기는 안달복달을 한다. 밤늦은 시간이라 네비게이션에서 최단코스를 선택했더니 사람하나 겨우 지나갈 산길로 안내하는데 불빛하나 없는 캄캄한 길을 지났다. 제주도에서 네비게이션을 이용하시는 분들은 고속이나 추천길을 이용하길 권하고 싶다.

한라산 중턱 해발 7백미터가 넘는 곳에 자리 잡은 서귀포자연휴양림에 도착했다. 녹나무동 201호 고란초 방 열쇠를 받아들고 올라가니 녹나무동 앞에는 주차장이 없고 짐을 내리면 뒤로 내려와야 하는 구조다. 바람이 엄청나게 불고 있고 빗방울도 날려서 집 앞에 차를 대고 짐을 내리고 싶은데 그게 안된다. 바람이 예사롭지 않게 분다. 우산은 금방 뒤집혔다. 어렵게 짐을 들고 방에 들어오니 미리 불을 올려놔서 정말 뜨겁다. 얼른 난방을 끄고 씻고 내일을 위해 잘 준비를 했다. 방하나 거실하나 주방 구조인데 방에는 2인용 침대도 있다. 침대 있는 휴양림은 처음 본다. 내일은 제주도에 50~100mm가 넘는 엄청난 비가 온다는 예보를 보니 일정 수정을 해야겠다. 아래에 있는 동백동에서는 제주도 아이들이 단체로 들어와서 시끌벅적하다. 힘이 넘친다. 아버지 말씀으론 새벽 2시쯤 잠을 깼는데 그때도 여전히 시끌벅적 하더란다. 따뜻하고 아늑하게 아주 잘 잤다.

* 이 글은 다유네(http://www.dayune.com/)에 올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