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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여행/가족배낭여행(2010년)

(10일째) 베를린, 너무나 부러운 통일의 현장

by 연우아빠. 2010. 8. 18.

□ 2010.7.5(월)

 

새벽에 심한 비가 내리고 천둥벼락이 요란했다. 
같은 숙소에 머무르는 젊은 친구들은 그때만 잠시 조용할 뿐 날이 새도록 숙소 입구에 둘러앉아 술마시며 떠든다.
그 탓에 비몽사몽으로 잠을 설쳤다가 아침이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8시에 일어나 샤워를 하고 나서 우리 방 바로 옆에 빈방을 보고서야
전용 화장실이 방마다 바로 옆에 별도 문으로 구분되어 붙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런!

 

9시가 넘어서 식당으로 내려갔더니 아침은 돈을 내고 사먹어야 한단다.
어른 5유로, 어린이 3유로.
아내가 말하길 식재료가 형편없는 싸구려라고 한다.
하루만 묵어서 다행이다.
오후에 프랑크푸르트에 가서 친구에게 들었다.
포츠담 같은 근교 도시에서 숙박을 하고 베를린을 보는 게 좋다는 것을.
암튼 씩씩하게 식사를 마치고 체크아웃을 한 뒤 짐을 맡겼다. 무료.

 

S-bahn을 타니 2정거장 만에 브란덴부르크문에 도착했다.
가까워서 아주 좋아. 동서독 분단의 상징이었고 이제는 통일의 상징이 된 문.
부럽다.

분단 비용이 통일 비용보다 훨씬 크건만 제국주의자들이 그어놓은 경계선을 뭐가 좋다고 우리는 60년이 넘도록 지키고 있을까?
옛 경계석 사이를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오간다.
제국의회 건물(지금은 국회의사당)이 보여서 숲길을 지나 그쪽으로 갔다.
많은 사람들이 유리돔으로 올라가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광장에서는 공연을 하는 사람들이 줄 서 있던 관광객 한사람을 불러내 재미있는 놀이를 보여준다.
마리오네트 인형을 조종해 사람 머리 위로 걸어 올라가는 모습을 보며 다들 박수를 보냈다.
사실 베를린은 독일에서 중요한 도시였던 시간이 그닥 길지 않다.
역사적 유물도 그리 많지 않고 분단의 상징이었기 때문에 유명해 진 곳이다.

비스마르크가 독일을 통일한 뒤 수도로 삼았으니 그저 140여년 남짓.
그것도 50년 가까이 분단된 채 있었던 땅이다.
그 덕에 오히려 현대사에서 유명한 일이 많았다.
근교에 있는 포츠담 역시 우리의 광복과 분단에서 중요한 곳이고.

준기가 우리도 통일이 되어서 아니 남북왕래라도 자유롭게 되어서 금강산과 백두산에서 야영을 해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이야기를 하며 그런 날이 꿈속의 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래본다.

 

브란덴부르크 문을 떠나서 박물관 섬으로 갔다.
운하박물관과 유명한 페르가몬 박물관이 있는 곳.
비스마르크가 근대 독일을 통일한 뒤 뒤늦게 제국주의 식민지 침략에 뛰어든 독일은 터키 페르가몬에서 신전을 통째로 뜯어와 박물관을 만들었다.
자기들 것은 없고 남의 것을 훔쳐와 박물관을 만들어야 할 만큼 유럽은 로마를 빼면 이야기 할 것이 없다.
그만큼 척박하고 살기 어려운 곳이었다는 얘기일까?
하긴, 바투와 훌라구가 유럽을 침략했을 때 양을 치기도 어려운 땅이라는 말을 듣고 되돌아갔다고 할 정도니까.

 

페르가몬 박물관은 고대도시 페르가몬과 앗시리아의 수도 일부를 그대로 뜯어와 재조립 해 놓은 곳이었다.
대영 박물관, 루브르 박물관, 그리고 페르가몬 박물관 이 세 곳에 박물관을 세울만큼 엄청나게 많은 유물을 훔쳐왔는데도
터키와 중동, 이집트에는 아직도 유물이 넘쳐난다니...
옛 유럽인들이 “빛은 동방에서”라는 말을 쓰고 동방에 대한 이상향적인 전설을 만들어 낸 것이 우연은 아닌가 보다.

훔쳐온 기술에 감탄하고 앗시리아 제국의 찬란한 유물에 감탄하며 페르가몬 박물관 관람을 마쳤다.
옛날 오리엔트 군주들은 자기의 힘을 과시하려고 만든 저 유물들이 지금 이렇게 각국에 갈라져서 전시되고 있는 것을 알면 어떤 생각이 들까?
그들이 권력을 백성들의 행복을 위해 썼더라면 오늘날 이렇게 남 좋은 일 시키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잔인한 통치로 불과 30여년만에 망해버린 앗시리아 제국과 고대 오리엔트 제국의 군주들을 현대의 정치인들이 닮지 않기를 바란다.

 

겨우 반나절만으로 이 도시를 본다는 것은 예의가 아니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이것으로 만족해야 할 일.
다음에 다시 이 도시에 오리라 다짐하며 프랑크푸르트 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제2외국어로 독일어를 배웠다.
그때, 교과서 표지를 장식했던 이 브란덴부르크문.
이런 모습이었기에 서 베를린 쪽에서 찍었으리라 생각했는데
현장에 와 보니 여긴 동베를린이었다.
통일을 하기 전에 벌써 자유롭게 왕래를 했던 그들이 부럽다.



동서 베를린의 경계 표시를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아줌마.
판문점을 이렇게 통과할 수 있는 날이 우리에게 아니 내가 살아 있을 때 올까?
준기는 통일이 될 수 있을까요? 라고 물어본다.
글쎄? 우리가 모두 통일을 해야 한다라고 생각하면 그런 날이 올 수 있지 않을까?
"아빠 소원이라면 내가 야영을 할 수 있는 힘이 남아 있을 때 남북왕래만이라도 자유롭게 되서
너랑 같이 개마고원이나 묘향산에 야영을 가 보고 싶구나."

통일이 빨리 되었으면 좋겠어요.
아니다. 통일은 한 세대는 더 지나서 자연스럽게 되야한다.
지금 당장 통일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지만, 남북한 모두의 행복을 위해 남북왕래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그런 상태로 한세대를 지나 모두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때 그때 통일이 되야 한단다.
콜 총리의 용단으로 통일을 이뤘지만 오래 준비했던 독일 조차도 서로 오씨와 베씨라며 미워하는 시간을 보냈었단다.

바보 같은 우리민족!
남들이 그어놓은 분단선을 왜 이렇게 바보같이 오랫동안 지키고 있단 말인가.



브란덴부르크 문 건너편 서독지역에 독일제국의회 건물이자 지금은 통일 독일의 국회의사당 건물이 보였다.



무단횡단이 자연스러운 거리를 가로질러 작은 공원을 만났다.
숲을 만나자 힘이 저절로 솟고 웃음이 얼굴에 넘친다.



비스마르크가 독일 제2제국의 통일을 이뤄내고 제국의회를 만들었던 곳.
통일 후 독일정부는 동독지역의 재건을 위해 본을 떠나 여기로 국회를 옮겼다.
히틀러가 방화조작사건을 통해 권력을 잡은 곳이기도 해서 주변국들에게 나찌독일처럼 강한 독일이 등장할까 우려도 자아냈다지만
독일국민들은 그런 바보들이 아니다.
역사는 기록된 것만이 아니라 기록되지 않는 곳에서도 많은 진실을 감추고 있기에....



국회의사당 가는 길에 베를린 장벽을 뜯어내 돌 모형을 한 청동판에 여러가지 글귀를 새겨 놓았다.
독일어를 모르니 까막눈이 따로 없다.



의사당 앞에는 유리돔으로 올라가 베를린 시내를 보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기다리는 사람들이 심심해 할까봐 그런 것일까?
마리오네트 공연을 하는 사람들이 기다리던 관람객 한 분을 불러내 재미있는 놀이를 시작한다.



능숙한 동작으로 사람의 등을 척척 밟고 올라가 머리까지 올라가는 마리오네트.
우린 페르가몬 박물관을 보는데 중점을 두고 갔기에 다시 브란덴부르크 문으로 돌아나와 지하철을 탔다.



베를린의 지하철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소박하고
독일의 어떤 도시보다도 소박하다.


지하철 역에서 내려 페르가몬 박물관이 있는 박물관 섬으로 갔다.
여기만 특별히 차도로 내려가지 못하게 가이드 바를 설치해 놓았다.


깨끗하지 못한 강물.
그래도 유람선도 다니고, 대도시 답지 않게 하늘도 깨끗한 편.



운하 역사박물관을 지나 페르가몬 박물관으로....
어른 8유로. 어린이는 무료.



지금의 터키, 페르가몬 지역의 도시 일부를 통째로 뜯어온 독일제국의 놀라운 수집욕에 혀를 내두른다.
석상, 기둥, 동상, 그림... 뭐 이런 것을 뜯어오는 것은 자주 봤지만
여긴 신전의 앞부분을 통째로 뜯어왔다.
그들의 약탈 기술에 혀를 내둘렀다.


양탄자의 모형이 됐을법한 대리석 모자이크.
쐐기처럼 길쭉하게 만들어 못을 박듯이 촘촘히 박아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수백년 동안 사람들이 밟고 다녀도 여전히 그 모습과 그 문양을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든 고대 터키 문명의 지혜.



건물의 일부를 통째로 뜯어다 놓으니 이건 골동품이 돼버렸다.
현장의 느낌은 어떨까?
언젠가 터키를 간다면 페르가몬에 가보고 싶다.
남아 있는 페르가몬은 어떤 모습일까?



벽의 일부도 잘라오고 두상의 일부도...
물건 전시하듯 전시한 유물에서 고대 페르가몬을 지배하며 이런 조각품을 만든 지배자들의 기분이 궁금해진다.
당신들이 백성들에게 쥐어짜서 만든 미술품이 이렇게 남의 땅에서 골동품으로 굴런 다닌다는 것이 씁쓸하기도 하고..



실제 페르가몬에서 이 계단을 오르내리면 어떤 풍경을 볼 수 있을까?
박제된 생물처럼 생기를 잃은 듯한 페르가몬 신전계단.



이 찬란한 고대 문명을 만들기 위해 인류는 얼마나 많은 땀과 재물을 쏟아 부었을까?
르네상스는 그리스 문명에 대한 존경심을 품도록 한 것일까? 수집욕만 부추긴 것일까?



고대 바빌로니아의 신전 이시타 게이트를 통째로 뜯어와 전시하고 있는 놀라운 곳
전체 모양을 설명하는 모형이 가운데에 있습니다.



이시타 게이트도 통째로 뜯어왔습니다.
입이 딱 벌어지는 유물입니다.
그리고 이런 아름다운 신전을 세운 바빌로니아의 국력이 엄청남을 느낍니다.



국왕의 위엄을 상징하는 이런 유적이 제국주의의 전리품으로 남의 나라의 소유가 된 것을 알면
이 유적을 세운 바빌로니아 왕은 어떤 느낌일까요?
건축물에 재물과 시간을 투자해 왕의 위엄을 세우기 보다 백성들에게 뭔가 해주려고 왕의 권력을 함부로 휘두르지 못한
우리네 조상들이 조금 더 훌륭한 일을 한 것 같습니다.
2,500년전 작품이라고 믿기 어려운 훌륭한 채색에 감탄을 하면서 터키나 중동지방을 여행해 보고 싶은 생각이 부쩍들게 만듭니다.



순박하고 귀엽게 생긴 석상들.
사자가 웃고 있으니 귀엽네요.



점토 벽돌을 모자이크 짜 맞추듯이 벽을 쌓아 올렸습니다.
우리나라 국화무늬 벽돌이나 연꽃무늬 벽돌과 비슷하게 생긴 문양이 반갑습니다.



마치 동 아시아의 12지신상 같은 모습을 한 전토판에서 문명의 동질성을 느낍니다.


쌍둥이를 좋아한 문명이었을까요?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가 있었다면 더 많은 것을 기억할 수 있었을텐데.



브리티시 뮤지움에서도, 루브르 박물관에서도, 그리고 또 페르가몬 박물관에서도 같은 신상을 만났다.
왕궁을 지켜야할 석상이 이렇게 뿔뿔이 유럽 각국에 흩어져있고 또 멀리 미국까지 가 있다니
명작의 운명은 그다지 좋은 편이 못되나 보다.



창병들의 행진




우리나라에서 보기 어려운 이슬람 문명전.
걸게 그림을 보고 2층으로 올라갔다.



사람이 만든 형상인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는 알라의 가르침을 철저하게 지킨 이슬람세계는 이렇게 기하학적인 무늬를 만들어
치밀한 신의 세계를 표현하고 싶었을까?




타지마할에서 본 이슬람의 완벽한 대칭의 세계 못지 않은 세계를 여기에서 또 만났다.
수학이 이렇게 아름다운 미술작품이 될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 경의를 표한다.



완벽한 대칭의 세계, 그리고 수학에 밝았던 무슬림 세계 사람들.
수학에 밝으니 찬란한 사라센 문명을 만들수 있었던 모양이다.




도무지 사람의 솜씨로는 믿기 어려운 이런 치밀한 작품들을 보면
인간의 손끝으로 어떤 것을 더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싶다.
언젠가 무슬림의 세계를 돌아볼 수 있는 날도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