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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여행/가족배낭여행(2010년)

(10일째) 프랑크푸르트에서 친구를 만나다

by 연우아빠. 2010. 8. 19.

이번에는 아이들이 정말 타고 싶었던 1등칸 유리문 격리칸.
6좌석에 테이블까지 멋진, 제대로 된 1등칸에 자리를 잡았다.
너무 좋아하는 우리 아이들.

기차가 출발하자 아내는 팔걸이를 모두 올리고 길게 누워본다.
기차 타기 전에 가게에서 푸짐한 점심식사 거리를 샀기에 샐러드부터 후식까지 아주 맛있게 잘 먹었다.
기차는 프랑크푸르트를 지나 남쪽 스위스 바젤까지 가는 노선이었다. 길기도 하여라.

가는 도중에 수없이 많은 풍력발전기를 보았다.
대체 에너지의 강국 독일.
늦게 통일했기에 식민지도 지하자원도 거의 없어 에너지 절약과 대체에너지 개발이 몸에 밴 나라.
모든 것이 부족했기에 엄격한 규칙과 검소한 생활이 몸에 밴 나라.
그 엄격하고 합리적인 규칙이 나처럼 잔머리 굴리기를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너무 좋다.
언제든 예측 가능한 나라. 여기에서는 쓸데없는 에너지를 쓸 일이 없다.

비가 내린 뒤의 하늘은 너무도 푸르렀고 낮은 구름들이 드문드문 떠다니고, 지평선이 보이는 전원 풍경이 마치 고향에 온 것 같다.
친구와 약속한 오후 6시 40분 프랑크푸르트 역에 도착했다.

 

1년만에 만난 친구.
서로 얼싸안고 반가운 인사를 나누었다.
정말 바쁘게 사는 친구가 우리가족을 위해 하루 휴가를 냈다고 한다.

집으로 가는 길은 너무 친숙하다.
프랑크푸르트만 벌써 4번째.
여기 출장와서 한번도 그가 사는 집에 들러본 적이 없는데 이제 처음 가 본다.

친구의 두 딸은 태어났을 때 내가 이름을 골라 주었는데 벌써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지난 20년이 실감나지 않는다.
자기 말로는 독일 중산층보다 조금 못 사는 사람들이 사는 집이 연립형태의 집이라고 하는데
그가 사는 집은 인간답게 사는 독일의 가정집이 어떻게 생겼는지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지하 1층, 지상 2층 그리고 다락층.
소박하고 멋진 내부. 응접실, 주방, 서재, 그리고 작업실과 별이 보이는 다락방.
그리고 무엇보다 부러운 것은 마당.

부인께서 마당 귀퉁이에 상추를 몇 포기 심었는데 독일 땅이 척박해서 그런지 잘 자라지 않는다고 한다.
부인은 무려 13년만에 만났고 두 딸은 태어나서 처음 만났다.

 

요리 솜씨 좋은 부인께서 잔칫상 같은 엄청난 식사를 내 놓아서 몸 둘 바를 모르게 했다.
독일식과 한식을 모두 준비해 주셨는데 현지식에 잘 적응된 아이들과 나는 김치찌개를 먹고 그만 배탈이 나고 말았다.
헐. 죄송스럽게스리...  오랫만에 매운 한국 음식에 위장이 놀란 모양이다.

김나지움에 다니는 두 딸은 운전면허를 따기 위해 교육을 받고 있다고 한다.
독일은 주마다 약간 차이가 있긴 하지만 만 16세만 넘으면 운전면허를 딸 수 있다고 한다.
연우와 준기를 위해 두 딸이 앙증맞은 열쇠인형을 선물했다.
우린 배낭여행 핑계로 아무것도 가져오지 못했는데......
가족들을 위해 휴가를 낸 적이 없는 친구가 우리를 위해 휴가를 냈다고 부인과 두 딸이 한마디씩 거든다.
해가 지지 않으니 밤 같지가 않다.

 

해가 지지 않은 밤늦은 시간, 함께 동네 산책을 나섰다.
독일의 도시는 옛날 마을과 신시가지가 합쳐진 형태가 많다고 한다.
여기는 신도시처럼 새로 만든 곳이 많다고 한다.
중세시대 독일의 가정집 같은 작고 아담한 호텔들이 가끔씩 보인다.
문을 닫기 직전인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한 개씩 사서 먹으면서 기분 좋은 산책을 했다.

다음 일정을 얘기하다
스위스는 내가 여러번 가 봤기 때문에 융프라우 대신 리기, 티틀리스, 필라투스 중에 한 곳을 정해 꽃길 트래킹을 할 예정이라고 했더니
부인께서 아빠가 가 봤다고 애들은 안 데려가면 되냐고 한다.
남들이 스위스 갔다왔다 하면 융프라우 가봤냐고 물어볼텐데 한국사람들이 잘 모르는 곳에 갔다오면 어떡하냐고...
나중에 부부가 같이 여행할 때 그때 못가 본 곳을 가면 된다고 충고를 한다.
“흠, 그렇긴 하네요. 저도 스위스 처음 갔을 때 일행 중에 융프라우 스무번도 넘게 갔다 왔다고 다른데 가자는 사람이 있어서
뮈렌으로 가는 바람에 융프라우를 5년 뒤에 갔었으니...

 

친구에게 물어봤다.
작년까지만해도 “일본인이냐?” 또는 “중국인이냐?”라고 물어보던 사람들이
이번에는 첫마디가 “한국인이냐?”고 물어보던데 왜 그럴까?

이유인즉, 월드컵 때문이란다.
유럽 사람들은 이번 월드컵을 동양의 축구 강국들이 유럽 변방국들을 이기기 시작한 대회라고 평가한다나.
특히 한국이 그리스를 2:0으로 격파하는 모습에서 유럽 국가들이 충격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완벽한 전술과 깔끔한 공처리로 완벽하게 그리스를 제압하는 모습은
그들에게 2002년 거리응원 못지 않은 충격이었다고 한다.

 

2차대전 이후 히틀러 같은 악마적 천재의 출현을 막기 위해 교육에 많은 신경을 쓰는 독일인들은
공개된 자리에서 국기를 흔들거나 국호를 외치는 행위를 침략적 민족주의의 발현으로 보며 아주 금기시 한단다.
2002년 월드컵 때 붉은 악마의 거리응원을 보며 독일 젊은이들이 큰 충격을 받았고,
2006년 독일 월드컵부터 “한국도 멋있게 응원하는데 우리라고 왜 안돼?” 하는 분위기가 확산되며
대형 TV 앞에서 거리응원을 하는 문화가 등장했다고 한다.

지금도 30대 이상 세대는 이런 젊은이들의 행동을 아주 못마땅해 한다고 한다.
심지어 독일 젊은이들의 응원 구호는 우리의 “대~한~민국” 박자와 똑 같은 “도~이~칠란트”이다.
게다가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이 처음으로 유로 2004 우승국인 그리스에게 2:0으로 완승을 거두자
축구를 좋아하는 유럽 내에서 한국의 인지도와 호감도는 크게 올라갔다고 한다.

“음, 외교도 중요하고 산업발전도 중요하지만 축구도 잘 해야겠다.
월드컵 때마다 최소 16강이나 8강 정도는 해줘야 되겠다” 하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밤 12시가 넘었다.
내일 하이델베르크를 거쳐 뮌헨까지 가려면 얼른 자야겠다.
친구 부인은 그 늦은 시간에도 우리 빨래를 돌려서 건조대에 널어 주었다.
아이들 재우고 그동안 밀린 사진을 정리해 솔바람 카페에 올리려고 했는데
인터넷 속도도 우리보다 엄청 느리고 독일어로 된 PC를 가지고 새벽 2시까지 씨름하다 결국 포기하고 잤다.



베를린 중앙역 플랫폼.
수도인데도 통과역이라 구조가 정차하는 역과 다른 일직선 터널형이다.



대충 찍었더니 표정이 정말...
베를린에서 프랑크푸르트 가는 기차안에서 늦은 점심을 해결하느라 난장판이 되었답니다.
소원하던 1등칸 6개 좌석을 독점했죠.
승무원이 우리가 제대로 기차를 탔는지 걱정스러운 모양이다.
목적지를 물어보고는 안심을 했는지 웃으면서 지나간다.


먹었으니 긴 여정에 잠시 눈을 붙여야죠.
하지만 엄마가 자는 모습을 찍겠다고 준기가 아빠의 아이폰을 들고 엄마가 자는 모습을 찍습니다.
게다가 동영상까지...
아내는 아들이 사진을 찍거나 말거나 편안하게 눈을 붙입니다.



평원이 넓어서 독일의 구름은 아주 낮게 떠다니는 듯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