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살 피해의 현장, 노근리 평화공원(2015. 5. 6.)
■ 무주 양수발전소 홍보관
이번 5박6일간 여행에 마지막 목적지인 노근리 평화공원을 향해 가던 중
10년전에 지나쳤던 무주 양수발전소를 찾게 되었다.
점심시간이었지만 오가는 사람이 별로 없는 곳이라 그런지 들어 올 수 있게 해 주었다.
핵발전소는 인류를 멸종시킬 수 있는 위험한 것임에도 전기가 주는 편리함을 대체할 수단이 별로 없다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불필요한 추가생산과 생존에 그닥 필요하지 않은 불필요한 소비만 아니라면
가정마다 태양열발전, 소형 풍력발전, 소수력 발전 등을 이용해 생산자가 직접 전기를 쓸 수 있는 방법을 채택한다면
그렇게 큰 불편함 없이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냥 지루한 홍보관일수 있었는데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는 공던지기 게임장이 있어서 온가족이 정신없이 공을 던지며 한참을 놀았다.
구수하고 정감있는 표현력을 타고 나신 듯한 홍보관 직원분이
양수발전소의 개념과 역할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해 주셨다.
양수발전소는 물 몇천톤만 있으면 3분 이내에 시간당 30만~60만 킬로와트를 생산할 수 있다고 한다(제대로 적은 것인지...).
표고차가 크고, 물이 새지 않는 바위산에 터널을 뚫어 전기를 생산하는 양수발전소는 국내 대도시 주변에 5개가 있어서
전력 부족이나 대형 화력발전소의 고장에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는 강점이 있다고 설명해 주었다.
산 꼭대기에 있는 저수지까지 올라가보지 못하고 마지막 목표인 노근리 평화공원으로 출발했다.
■ 노근리 평화공원(충북영동)
경부고속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에 노근리 평화공원이 있다.
엄청나게 넓은 평지에 마련해 놓은 공원.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이 별로 없다.
지하 1층부터 시작하는 기념관 내부 전시실
그날의 비극을 설명하는 조형물이 많다.
1950년 그날 지옥 같은 현장에서 천우신조로 살아남은 사람들이 50년이 지나서야 입을 열 수 있었던 어처구니 없는 나라.
피해자를 바보로 만들고 위안을 삼는 이런 상황을 이제 더 이상 만들어서는 안될 것이다.
6.25 사변 때 남쪽으로 피난가던 사람을 미군이 조직적으로 학살한 사건에 대한 당시 상황도.
400여명이 넘게 죽었지만, 영동과 노근리 지역 주민들 중심으로 신원이 확인되었고
다른 지역에서 피난을 내려가던 사람들은 누가 죽었는지 누가 살았는지도 모르는 말도 안되는 비극의 현장.
상처를 제대로 조사하고 치유를 위한 노력을 많이 늦었지만 끊임없이 계속해야 할 것이고, 후세에 전달해야 할 것이다.
노근리의 학살은 AP통신 보도로 처음 세계적인 이슈가 되었다.
국내 몇몇 언론에서 이 문제를 취재 보도하였으나 이슈가 되지 않았다가 1998년 AP통신이 본격적으로 취재를 시작하고
미국에서 학살현장에 있었던 병사들의 증언이 나오면서 국내 언론에서 다시 받아 보도함으로써 전 국민의 관심을 끌었다.
이 사건을 보도한 AP통신 취재팀은 2000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미국이 노근리 학살만행을 주도했음을 보여주는 각종 증거 문서들
이 학살의 책임자 라인에는 워커 사령관, 맥아더 사량관도 있다.
국내 방송사는 뒤늦게 이 사실을 받아 보도했다.
죽미령과 오산전투에서 북한군에게 패퇴한 미군은 대부분 나이어린 병사들이었다고 한다.
10대 후반에서 20초반의 어린 병사들은 실전경험이 없었고, 그들에게 움직이는 모든 한국인은 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침략해오는 적을 피해 남쪽으로 피난 가는 길에 있는 노근리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 철도에는 그 당시 현장이 남아 있다.
피난민들은 이동중인 미군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미군의 인도로 철길 위로 올라갔고
그 피난민을 향해 미군은 폭격을 퍼 부었다.
수백명이 넘는 피난민들은 폭격을 피해 철로 아래 배수로로 숨어 들었다가
남쪽으로 70m 내려간 쌍굴다리 밑으로 대피했다.
그날 학살의 현장에는 여전히 기차가 다니고 있다.
여기가 바로 쌍굴다리
지금도 수없이 많은 총알자국이 다리 전체에 빼곡히 남아 있다.
저 건너 능선에 기관총을 걸어놓고, 미군은 우리 피난민을 상대로 몇일 동안 총질을 해대 간난아기를 포함한 수백명이 죽었다.
미군은 때로 사람들을 치료해 주기도 하고 다시 총질을 하는 이해할 수 없는 짓을 반복했다.
굴 남쪽으로 철로 위로 올라가는 길에 자그마한 위령비가 있다.
그리고 굴다리 벽에는 근대문화유산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있다.
평화공원에는 피난민 행렬을 재현한 조형물을 담은 기념탑이 서 있다.
공원 조형물 가운데 눈길을 끄는 모자상.
총을 맞아 죽은 어머니의 젖을 빨고 있는 간난아기.
전쟁이라는 상황에서 인간이 얼마나 짐승만도 못한 본성을 드러내는지 보여준 학살의 현장
맥아더 같은 인종주의자들이 저지르는 오만은 사람의 목숨을 벌레로 만들고, 그들 자신도 벌레만도 못한 밥버러지로 만들 뿐이다.
부산에서 보았던 임진왜란 유적에서도 영동 노근리에서 본 6.25 학살의 현장에서도
역사의 겉모습은 바뀌어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 세상의 법칙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다시는 이런 억울한 죽음이 나오지 않도록, 사람으로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이 존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그런 세상을 만드는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라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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