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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여행

거제도 여행

by 연우아빠. 2015. 5. 15.

거제도 여행(2015. 5. 4)


새벽인가?

검은등뻐꾸기(일명 홀딱벗고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잠을 깨웠다.

참 오랫만에 느끼는 상쾌한 아침

노곤한 길이었지만 숲속의 잠은 달콤했다.


동생이 산책을 나갔다.

가족이 일어나기 전에 거제도에서 가장 멋진 산이라고 하는 노자산을 올라 보기로 했다.


물 한병 넣고, 스틱과 무릎보호대를 챙겼다.



□ 노자산 등산길


요 몇 년 사이에 운동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체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라 천천히 오르기로 맘 먹었다.

숙소 바깥으로 나오니 어제 깜깜한 밤에 올라왔던 자동차 길이 아찔하다.

산 중턱에 있으니 휴양림에 평지가 많을리가 없다.


숙소를 나와 10분쯤 걸었을까?

노자산 정상으로 가는 안내 표지판이 보였다.


그닥 높지는 않지만 처음 가보는 산이니 1시간쯤 생각하고 천천히 오르기로 했다.

자동차를 오래 운전하며 먼 길을 와서 그런 지 생각보다 더 힘들었다.

5분, 10분 걷고 5분씩 쉬기를 반복했다.



저 멀리 능선이 보이니 조금만 더 올라가면 될 듯하다.

그런데 월요일 이른 아침에 누군가 내려온다.

뜻밖에도 동생이었다. 노자산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길이라고 한다.

그냥 내려가도 되는데, 형이 걱정스러웠는지 다시 나를 따라왔다.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동생은 형을 끔찍히도 걱정했다.

누군가 나에게 찝적대면 동생이 먼저 나서서 막기도 하고, 늘 형에 대한 배려가 넘치는 좋은 동생이다.



많은 시간이 걸린 줄 알았는데 고작 35여분만에 정상에 도착했다.


동쪽 방향으로 전망은 산이 많아서 별로였는데

반대쪽으로 돌아 서쪽 바다를 보는 순간 감탄이 터졌다.


율포 바다쪽은 장관이었다.

사진은 실제의 10%도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은 이럴 때 느낀다.




파노라마 사진도 몇장 찍고 동생과 번갈아 인증샷을 찍었지만

그 시간에 그 자리에 올라간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느낌과 감동은 사진으로 다 전달할 수는 없겠다.

어제 내린 폭우 때문에 안개가 걱정스러웠지만 다행히 강한 바람 때문에 연무만 약간 끼었을 뿐 정말 멋진 남해바다였다.



경사가 급해서 내려오는 것은 올라가는 것보다 더 오래 걸린 느낌이었다.


어쨌거나 거제도자연휴양림은 노자산 덕분에 거제도 안에서 가장 멋진 숙소라고 말할 수 있겠다.

3월 하순에 이번 여행계획을 세우면서 숙소를 이곳에 점찍고 있었는데

작은 실수로 4월1일에 예약을 하지 못했다. 


펜션이나 다른 곳을 찾아 봤지만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이라 학동에 있는 한려해상국립공원 야영장 2개 사이트를 예약했었다.

출발하기 사흘전에 어렵게 취소분을 잡아 예약에 성공했는데 그 보람이 있다.

어제 저녁, 휴양림 들어오는 길에 학동야영장을 거쳐 왔는데 폭우가 내린 가운데도 사람들이 꽉 들어차 있었다.

역시나 다른 국립공원 야영장처럼 난민 캠프를 방불케 하는 밀집 구조였는데 거기 예약했었다면 소음 때문에 한숨도 못잘뻔했다.


언제 다시 온다면 이곳에서 묵고 싶다.


□ 해금강 찾아가는 길


아침을 먹고 남해편백휴양림까지 가는 거제도 여행을 시작했다.

차를 몰아 내려오는 길은 아찔한 경사였다. 

눈으로 봤다면 어젯밤에 아래쪽 주차장에 차를 대고 걸어올라왔을 것이다.


학동야영장 삼거리에 도착했는데 거가대교 입구부터 바람의언덕까지 교통상태가 온통 빨간색이었다.

날씨가 좋아지자 사람들이 이리로 밀려 들어온 듯.

어제 부산 날씨가 좋았더라면 우린 꼼짝없이 차 안에 갇혀 있었을 것이다.


7km 밖에 안되는 해금강까지 1시간 반이 넘는 거북이 걸음이었다.

도로는 아예 주차장이었다.



가다가 신선대 관람포인트에 차를 세우고 등나무 벤치에서 잠시 구경을 하며 쉬었다.

이 고생을 하면서 가는데 해금강이 멋지지 않으면 이게 다 김영삼 대통령 책임이라고 씹었다(?).

"우리 동네 해금강도 금강산 못지 않게 좋데이!'라고 현직에 계실 때 한 말이 있으므로.....ㅎㅎ



날씨가 맑고 초록이 우거져서 어디를 봐도 그림엽서에 나오는 멋진 풍경이었다.

엄청나게 밀린 길이었지만 짧은 거리라 그래도 참을만했다.



해금강 입구에 도착했을 때는 늦은 점심시간.

그러나 많은 관광객들이 여전히 식당에 바글바글해서 그냥 우제봉을 다녀오기로 했다.

우제봉 올라가는 길은 우거진 숲 길이라 정말 시원하고 상쾌했다.

이쪽으로 올라오는 사람도 거의 없어서 호젓한 산길을 즐길 수 있어서 좋았다.

우제봉 꼭대기 근처에 전망대 데크가 있었다.

망원경으로 들여다보니 해금강 바위에 아슬아슬하게 자리잡고 낚시를 하고 있는 사람이 선명하게 보였다.


유람선이 징검다리 연휴를 즐기러 나온 수많은 사람들 태우고 섬을 돌고 있다.

우린 눈과 다리로 열심히 관광을 하고 주차장으로 내려와 물회를 시켜 맛있게 먹었다.

식당 종업원도 외국에서 일하러 온 사람이고 여행을 온 몇몇 팀도 외국인 노동자인 듯하다.

세상은 점점 좁아지는 듯.....



□ 고려시대의 흔적, 둔덕기 성을 찾아서


해금강에서 둔덕기 성을 찍으니 거제도 한 가운데를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가야 하는 길이라고 가르쳐준다.

다시 학동야영장을 거쳐 휴양림을 지나 반대쪽으로 건너가는 길.

2시간 가까이 걸려서 온 학동야영장까지 10분도 걸리지 않은 듯, 순식간에 도착했다.

해금강 쪽으로 가는 해안 길은 여전히 주차장이었다.


섬 안쪽으로 들어가자 고즈넉한 시골풍경이 나타났다.

둔덕기 성을 향해 가던 중 청마 유치환 기념관 표지가 보였다.


고등학교 때 배운 <깃발 >이라는 시를 쓴 시인의 집을 생각치 못한 곳에서 만나다니...

이 사람의 형 유치환과 함께 유치진도 친일파 혐의가 있다.





시건방진 짝다리 자세로 어딘가를 보고 있는 시인의 동상과 시를 새긴 비석.



월요일이라 기념관은 문을 닫아서 내부는 볼 수 없었다.



이 시인의 출생지를 두고 거제도냐 통영이냐를 두고 두 지역간에 살짝 다툼도 있다고 한다.

거제에서 태어나 통영에서 학교를 다녔다고.



마을 입구에 서 있는 350년된 팽나무.

거대한 나무의 모습에 그냥 기분이 좋다.


오늘 거제도에서 볼 마지막 유적은 둔덕기 성.

고려시대 무신난 때 폐위된 의종임금이 여기에 유폐되어 있다가 김보당의 난 때 복위를 꿈꾸며 경주로 탈출했었다고.

하지만 김보당의 난은 이의민에게 진압되었고, 이의민은 의종을 곤원사 북쪽에서 등뼈를 부러뜨렸다고 한다.

등뼈가 부러진 의종을 박존위가 담요로 싼 뒤에 가마솥 두개를 준비해 그 속에 왕을 집어넣고 못 속에 던져 죽었다고 한다.


표지판을 따라 둔덕기 성을 찾아 가는데 좁은 산길로 안내도가 이어져 있다.

관광안내소 옆을 지나 계속 찻길을 따라 올라가는데 갈수록 길이 좁아지더니 포장된 넓은 도로가 나타났다.

그리곤 다시 좁은 비포장 임도길...이러기를 반복해 등에 식은 땀이 날 정도로 조마조마하게 올라갔다.

마주치는 차가 없기를 바라며, 강화도 낙조대 올라가는 길 같은 좁은 길이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나타난 주차공간, 차를 세우고 위를 보니 산성 귀퉁이가 조금 보였다.



차를 세우고 100m쯤 이렇게 걸어 올라갔다.



성은 제법 규모가 있었다.

산 봉우리를 둘러싸고 돌을 다져 쌓은 성은 소름이 살짝 돋을 정도로 바람이 차갑게 불었다.

전망은 정말 좋았다. 아무도 찾지 않을 것 같은 이 성 중턱에 어떤 남자분이 앉아서 음악을 듣고 있었다.

이 동네 주민이라면 등산 삼아 설렁설렁 올라올만한 거리였다.



성 안에는 물을 저장해 놓은 웅덩이가 있었다. 웅덩이 옆에는 건물 기초석이 남아 있었다.

안내 표지를 보니 둘레 526m, 가장 높은 곳은 성벽이 4.85m 정도라고 한다.

의종을 모셨던 반씨 후손들이 아직도 이 근처에 살고 있다고 한다.

신라 때 흔적부터 시작해 거제도를 지키는 중요한 군사시설이었던 모양이다.

여기에서 견내량 건너편 통영이 보인다.




둔덕기 성에서 내려온 다음, 준기가 사천에 있는 덕합반점을 꼭 가자고 졸랐다.

9년만에 들른 덕합반점은 예전 그 자리에 있었고, 예전보다는 손님이 많은 듯하다.


이른 저녁을 덕합반점에서 먹고 남해편백휴양림을 향했다.

덕합반점에서 이른 저녁을 먹느라 통영쪽에 있는 한산도해전공원은 포기.

해가 진 다음에야 휴양림에 도착해 텐트를 치고 아이들 간식으로 라면을 끓였다.

오랫만에 나선 길, 야영짐만 챙기고는 가스를 제대로 준비하지 않아 라면을 끓이는데 가스가 애간장을 녹였다.


역시 휴양림에는 조용히 휴식하러 오는 분들이 많아서 그런지

주변 텐트마다 9시 30분을 넘기지 않고 조용히 잠을 청하는 분위기였다.

우리도 10시에 조용히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