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캠핑, 긴 후기(2편) : 중미산 자연휴양림 야영장
2012.7.28~29
금요일 저녁, 아내가 중미산 캠핑을 별로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토요일 새벽에 일어나 연우를 데려다 주고 나면 너무 피곤할 것 같다고 하고,
내가 대구에 내려간지 2년이나 되었고 올해엔 가족들이 잇달아 병원 신세를 지는 일이 생기니 정신적인 피곤함이 큰 듯하다.
하지만, 지친 심신을 숲에서 오랜만에 재충전 해 올 필요가 있을 것 같아 최대한 가벼운 장비로 다녀오기로 하고 나선 길.
아침도 충분히 먹지 못했고, 수목원에서 점심도 빈약하게 때웠는데 길에는 휴가를 떠나는 차로 사방이 꽉 막혔다.
47번 국도를 내려오다가 장현 사거리에서 진건 방향 86번 지방도로로 빠져서 46번 국도와 합류해야 하는데
잠깐 방심한 사이 좌회전을 못하고 47번 국도를 따라 진관교차로까지 내려와서 46번 도로에 합류하는 상황이 되 버린 것.
게다가 마석 IC에서 내려 화도 IC에서 춘천 고속도로를 타고 가야 했는데 막히는 길을 따라 춘천 쪽으로 밀려 올라 간 것.
그 탓에 무려 3시간이 넘어서야 청평에서 갈라져 나와 휴양림으로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어쩔수 없이 길에서 달걀 6개를 사서 나눠 먹으며 허기를 달래고...오늘 새벽에 잠깐 꾼 불길한 꿈은 이것이었나 보다.
숲에서 읽는 글은 머리속에 더 잘 들어옵니다.
준기는 요즘 한겨레신문에 김태권님이 연재중인 <히틀러의 성공시대>에 너무 관심이 많아요.
엄마와 함께 신문을 보고...
중미산 300번대 데크는 서쪽에 그늘이 많아 낮에도 상당히 시원하고 바람도 잘 통합니다.
해가 지면 이슬이 무척 많이 내립니다.
휴양림에 도착해 창문을 내리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상쾌한 바람이 몸과 마음을 씻어준다.
데크에 도착해 보니 6개 가운데 3개만 들어와 있었다.
2006년에 우리가 묵었던 우풍 심하던 숲속의 집들을 철거하고 거기에 만든 야영장.
아쉽게도 샤워장이 없어서 땀을 씻을 곳이 마땅치 않다.
305번, 306번 데크 뒤에 수심이 60cm 정도 되는 작은 사방댐에 물이 풍부해
남자들은 등목이라도 시원하게 할 수 있는데 여자들은 여름 캠핑을 하기에 대략 난감한 구조.
아내와 텐트를 치고, 준기는 13살이 되었으니 이것저것 해야 한다고 반 강제로 시켜서 금방 텐트를 쳤다.
아내와 아들이 동시에 움직이니 빛과 같은 속도로 텐트를 친 느낌이 든다.
타프를 치기에는 데크 뒤에 공간이 너무 없었고,
아내가 내일 일찍 나갈 거니까 타프 치지 말자고 해서 생략.
쌀을 꺼내던 아내가 한숨을 쉰다.
쌀을 너무 적게 가져왔다고.
오늘 저녁은 괜찮은데 내일 아침은 많이 부족할 듯하다고 하니
여행도 계속 다녀야 지, 올해처럼 안 움직이면 금방 감각이 무디어 지는가 보다.
취사장 바로 옆에 있는 302번 데크
동생이 만들어 준 LED 등을 켜 놓았더니 일기를 쓰는데 문제가 없군요.
텐트를 치고 잠시 누웠다가 저녁을 지었다.
육고기를 굽지 않고, 준기 먹으라고 가져온 소시지를 후라이팬에 넣고 삶았다.
그리고 상추, 깻잎, 고추 등 쌈채소만 두어개 준비해 먹는 저녁은 간단하고 맛 있었다.
고기를 굽지 않으니 설거지 할 것도 거의 없었다.
준기에게 설거지를 시켰다.
이제 열세살이므로 어린애 짓은 그만하고 역할을 키워야 하지 않겠냐고 하면서....
오늘의 목적은 오로지 휴식이었으므로
준기를 데리고 계곡 사방 댐에 가서 등목을 했다.
하루종일 더위에 지친 심신이 하늘을 오를 듯 상쾌하다.
준기는 계곡에서 등목을 하는 건 자연을 훼손하는 게 아니냐고 계속 쫑알거린다.
“아들아! 계곡의 자정능력 이상으로 오염을 시키지 않으면 된다.
우리 둘이서 머리만 비누로 감고 등목 하는 건 계곡에서 물놀이 하는 정도 밖에 안된다.” 라고 말하고는
속으로는 “샤워장이라도 만들어 놓지...이게 뭐야!” 하는 심정이었다.
방태산처럼 계곡물을 올려다가 여름에 샤워만 할 수 있게 해 놓아도 충분할텐데...쩝.
그나마 다행인 것은 300번대 야영장에 만들어 놓은 화장실은 나무 냄새가 나는 깔끔한 화장실이라는 사실.
준기가 화장실은 쓸만하다고 한다.
계곡 위쪽으로 바라 본 모습
제일 오른쪽에 보이는 데크는 303번 데크, 저 멀리 자동차가 보이고, 그 뒤가 305번, 306번 데크가 있다.
305, 306 데크 뒷편에 작은 사방댐이 있는데 50~60cm 정도 깊이를 유지하고 있다.
해가 지자 달이 환하게 얼굴을 내 민다.
데크에 이슬이 많이 내렸다.
타프를 치지 않아 텐트 밖에 놔둔 물건들이 흠뻑 젖을 것 같다.
큰 비닐을 꺼내 데크에 올려 놓은 물건들을 모두 덮고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해가 넘어가고 나니 휴양림은 시원한 공기로 가득 찼다.
텐트에 누워 있으니 배터리가 충전되듯 온몸에 힘이 들어오는 것 같다.
일찍 자려고 했는데 301번 데크에 온 나이드신 부부 두쌍이 밤새 화투를 치느라 시끄럽다.
밤에 사람의 말 소리가 이렇게 크게 울리다니...
10시쯤 돼서 잠이 들락말락 하는데 뒤늦게 도착한 사람들이 끌고온 차 소리와 텐트치는 소리가 잠을 방해한다.
2007년 처음 야영을 시작하던 때에 비해 요즘은 확실히 여름이 더워진 것 같다.
산 속에서 겨울용 침낭에서 지냈던 예전과 달리 여름 침낭도 덥다.
메쉬 창을 모두 활짝 열어 놓고 잠을 자도 추운 느낌이 전혀 없다.
옆 데크의 시끄러운 소리에도 불구하고 정말 오랜만에 밤새 한번도 깨지 않고 푹 잤다.
점심 때까지 머물고 싶었지만, 준기가 몽양 여운형 선생 생가를 가보자고 해서 10시에 철수를 했다.
고기를 굽지 않으니 설거지며, 짐 싸는 것이며, 텐트 걷는 것이 너무 간편하다.
철수 준비에 30분 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다.
다음부터는 새우나 조개 구이 같은 것 말고 육고기 숯불구이는 가급적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 부족한 아침을 먹고 양평 신원역 뒤에 있는 몽양 선생 생가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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