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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여행/가족배낭여행(2010년)

(1일째) 집에서 런던까지

by 연우아빠. 2010. 7. 30.

□ 2010.6.26(토)


아침 6시에 눈을 떠 뒷정리를 마치고 아이들을 깨웠다. 
아침을 먹고 상쾌한 기분으로 공항리무진을 타러 출발했다.
연우는 장염약을 계속 먹어야 하는 상태라 좀 걱정스러웠다.
어쨌거나 안 갈수도 없고 여행을 무사히 잘 할 수 있기를 빌며 리무진에 올랐다.

 

친절한 데스크의 안내로 짐은 런던까지 바로 보내고 우리는 뮌헨을 경유해 런던을 가는 루프트한자에 몸을 실었다.
10시간 넘게 날아가는 동안 아이들은 멀미도 하지 않고 맛있는 기내식에 가끔씩 주는 간식을 먹으며 여행의 기쁨을 잘 누리고 있었다.
루프트한자는 아이들에게 작은 선물을 하나씩 줘서 애들에게 좋은 점수를 받았다.
준기는 “다른 나라 여행 간다니까 너무 설레요”하며 흥분했다.
루프트한자 기내식이 나쁘다는 얘기가 있어서 은근 걱정했는데 다행히 비빔밥이 훌륭했고 아이들도 맛있다고 했다.
기내식에 따라 나온 일회용 대나무 젓가락이 아주 맘에 들어 나중에 쓸모 있겠다 싶어 모두 챙겼다.


내 자리에 오디오와 부분조명 기기가 고장이 나서 승무원이 몇 번을 고쳐보려고 하다 결국 실패.
고객에게 불편을 끼쳤다고 25유로짜리 루프트한자 구매 쿠폰을 만들어 준다.
무뚝뚝한 이미지답지 않게 세심한 배려에서 독일에 대한 호감이 더 커진다.
어쩌면 몇 번씩 갔던 독일에 대한 이미지가 너무 좋았기 때문에 이런 것조차 좋게 생각하는 편견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이 쿠폰 결국 그냥 한국으로 가져오고 말았다. 깜박하는 바람에...)


뮌헨공항.
런던행 환승을 위해 45분간 머문 곳.
예상했던 것과 달리 프랑크푸르트 공항보다 작았고 마치 시골에 온 것 같은 조용한 곳이었다.
아이폰을 켰는데 업데이트를 하라는 메시지가 떠서 업데이트를 했더니 아이콘 배열이랑 모든게 싹 바뀌었다.
게다가 3G나 WiFi가 되질 않는다.
'이런, 앞으로 여기 담아온 정보를 제대로 못쓰면 곤란한데'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일이 바빠서 숙소 약도 같은 것을 제대로 쳥겨오지 않았는데 걱정이다.
아이폰에 담아온 정보들을 제대로 활용할 수 없는 상황이라 그랬는지 이번 여행 내내 우왕좌왕하는 빌미가 되었다.
게다가 아내의 걱정섞인 잔소리 때문에 더욱더 페이스를 잃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


예상보다 상당히 더운 남부 독일의 여름 날씨. 봄 옷을 입었는데 땀이 많이 났다.
런던행 탑승구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TV 축구중계를 보고 있었다.
우리 가족을 보더니 나란히 앉을 수 있게 자리를 비켜 주었다. 
그러더니 “한국의 승리를 기원한다”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든다.
으잉? 그들은 우리가 어떻게 한국사람인 것을 알았을까?


1:0으로 지고 있어서 역시 어렵구나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동점골이 터졌다.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두 팔을 들었다.
사람들이 모두 박수를 쳐 주고 엄지 손가락을 치켜 든다.
그러나 이동국의 슛이 골키퍼 다리 사이로 빠지다 말더니 결국 결승골을 내주고 8강 진출 실패.
앞에 앉아서 보던 한 가족이 만세를 부른다. 우루과이 사람이었던 듯.
아쉬움을 뒤로 하고 런던행 루프트한자에 올랐다.



히드로 공항에서 피카딜리서커스로 가는 튜브 안에서(아이폰으로 촬영. 에궁! 흔들렸다. 흑!)
튜브는 작고 좁았지만 사람을 배려하는 매너 만큼은 차고 넘쳤다.



승객 가운데 동양인은 우리 뿐.
모두 은퇴한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앉아 있다.
우리 옆자리에는 중동계로 보이는 한 가족이 타고 있었다.
그 가족도 우리 또래 아이를 가진 1남1녀 가족.


내릴 무렵 “런던에 사느냐”고 물어봤다.
“그렇다. 런던에 처음인가?”
“처음이다”
“멋진 도시에 오는 것을 환영한다. 런던 정말 좋은 곳이다. 그런데 지금 예전과 달리 상당히 덥다.”
“아, 어쩐지 꽤 덥다”

2시간 쯤 날아서 바다를 넘어 런던 히드로 공항에 착륙했다.
그들과 작별하고 악명 높은 히드로 공항의 입국심사를 걱정하며 입국심사대로 향했다.
공항이 한가했다. 우리 차례가 되자 아내와 나는 각자 아이들 한명씩 데리고 심사를 받을 생각이었는데
세관원이 한가족 아니냐며 모두 같이 오란다.
입국 신고서를 보더니 휴가 왔냐고 한마디만 묻더니 입국 도장을 찍어준다.
즐거운 휴가 보내라는 말과 함께.

헐, 이렇게 간단할 수가.


내부는 불만이었지만 위치 하나만은 론리플래닛 평가대로 최고였던 백팩커스유스호스텔.
광량이 모자라 더 칙칙하게 나왔지만 나름 예쁘게 만드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였던 숙소.
첫번째 숙소가 군대 내무반만큼이나 허름했던 탓에 이후 숙소들은 이것보다는 낫다는 위안을 받으며 여행할 수 있었다.



짐을 찾아 언더그라운드라고도 하고 튜브라고도 하는 지하철을 타러 갔다.
숙소까지는 피카딜리 라인이 바로 연결된 곳.
어렵게 입구를 찾아 지하철 발권기에서 표를 끊으려고 하는데 검은 피부를 한 안내원이 와서 친절하게 도와준다.
어른은 4.3파운드. 1~2존 하루종일이용권은 5.4유로. 10세 미만 어린이는 무료.
어른 것을 끊은 다음 그 안내원을 찾아 다시 물어봤다.
10세 이상 어린이 표는 어떻게 끊는지.



우리가 묵은 327호실 내부 개인사물함. 마치 인상파 화가가 내부를 만든 듯 색깔이 튄다 튀어.


그 역무원은 웃으면서 얘기했다.
당신들 순진한거냐 바보냐. 이 아이들과 영국 아이들을 비교해 봐라. 어디 10살 이상으로 보이냐.
실제로 10살이 넘더라도 아무도 얘들을 10살 이상으로 보지 않을 거다. 그냥 어른 것만 끊어서 타라.
오늘은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는 웃으며 그에게 감사를 했다. 영국도 역시 사람이 사는 나라구나.



원래 세면장 문이 있었던 듯한 곳에 이런 아프리카스러운 그림도 있고


피카딜리까지는 20분쯤 걸렸다. 
헤그리드가 아니라도 웬만한 어른이 보기에 장난감처럼 보이는 튜브는 아이들에게 신기한 모습.
크기는 경전철보다 작았고 늦은 시간이라 사람도 별로 없었다.
가는 동안 밖에 보이는 풍경은 우리 시골길과 너무 비슷했다.

피카딜리 서커스 역에 내려 예약확인증에 있는 안내대로 길을 올라갔지만 숙소를 찾지 못했다.
이 사람 저 사람 잡고 물어봤는데 온몸에 문신을 한 사람들도 왜 그리 친절한지.
자기 아이폰으로 찾아서는 열심히 가르쳐 준다.
하지만 눈에 띄지 않는 숙소는 여행자의 신경을 날카롭게 만든다. 


지척에 있는게 분명한데 찾질 못하니 미치겠다. 
아내의 지친 잔소리가 신경을 더욱 거스른다.
다시 역으로 돌아와 찬찬히 길을 올라가다 역 바로 앞 극장 옆에 작은 문을 발견했다.
그리고 유리문에 쓰여 있는 Piccadilly Backpackers 라는 글자가 그제서야 보였다.
아까는 왜 이 숙소 이름이 보이지 않았을까?
역에서 불과 100m도 되지 않는 곳에 있었다. 허탈과 반가움.



런던에 가기전에 읽었던 책 "바꾸지 않아도 행복한 나라 영국"이 딱 들어맞는 런던의 가장 중심부
피카딜리 서커스 지역은 이런 모습이었다.
저 중장비는 정확하게 월요일 아침 09:30 작업을 시작했고 토요일, 일요일은 사람이 얼씬도
하지 않았다. 서두르면 일찍 죽는게 사람 사는 이치일까? ^^


키를 받아 방으로 갔는데 문이 열리지 않는다.
한참 씨름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학생인 듯한 외국여자분이 도와주었지만 여전히 열리지 않는 문.
첫날부터 당황해하고 있는 차에 프런트에서 써 준 카드를 보더니 327호란다.
엥? 분명 324라고 쓴 것 같은데, 

얘네들 아라비아 숫자 쓰는게 워낙 독특해 324호라고 쓴 것 같았던 글씨가 실은 327호였다는 것.
허탈한 헛웃음이 나온다. 서두르니 별게 다 헷갈리는군.
327호는 우리로 치면 4층, 유럽에서는 우리의 1층이 0층.
방을 열고 들어가니 2층 침대 2개만 덩그라니 있는 군용막사 같은 숙소.
샤워실과 화장실은 공용. 최악이다. 이 방이 하루 18만원이라니...영국 물가를 실감하는 순간이다.


창 밖을 내다보니 ‘고치지 않아도 행복한 나라’라는 말이 실감났지만 런던의 한 가운데라는 이곳 주변은 그야말로 슬럼가 같다.
밖에는 건물을 새로 짓는 듯 중장비가 보인다. “엄청 시끄럽겠군”
아내도 실망이 컸던 듯. 하루에 100파운드나 되는 숙소가 이렇게 허접할 수가. 차라리 하우스호텔을 예약할 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밀려왔지만
지난 5년간 전국을 여행하며 온갖 숙소형태를 다 겪어 봤는데 뭐 어떠랴 위로하며 짐을 풀었다.
매트는 정말 푹신해 허리가 쑥 들어간다. 좋지 않군.
아침은 사먹어야 하는 구조. 한끼에 3파운드.
긴 여행에 지친 우리는 헤매던 중에 발견한 가게에 가서 먹을 것과 물을 사서 요기를 하고 샤워를 했다.
샤워를 하고 나니 조금은 살만하다. 생각보다 덥고 건조했다.


이 여행을 위해 도상연습을 많이 했고,
지난 3년간 구글어스와 지도를 열심히 들여다보고 아이들 체력훈련과 야영까지 열심히 준비했지만
역시 현지에 와서 부딪치는 것은 연습과는 다르다. 

나와 연우의 장염, 아내의 체력이 심히 걱정스러웠다.
예상과 동떨어진 숙소 때문에 아내는 힘들어 했다.
10시가 넘어서야 해가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