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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여행/가족배낭여행(2010년)

가족과 함께 하는 유럽여행(출발전)

by 연우아빠. 2010. 7. 29.

가족과 함께 하는 유럽 배낭여행(2010.6.26~2010.7.16)


□ 여행 준비(2008.1~2010.6.25)

제네바 호수 주변의 포도밭


2007.12월 회사에서 보내 준 3주간 유럽연수에서 영감을 얻어 조만간 가족들과 함께 유럽을 여행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먼저 가족들에게 3년 안에 가족 유럽여행을 추진한다고 알리고 나서, 예금을 차곡차곡 쌓았다. 

여행정보를 수집하고, 아이들에게 가고 싶은 곳을 찾아보라고 시켰다.

 그 이유와 내가 낼 수 있는 휴가일자를 고려해 도시를 연결하는 루트를 짰다. 

아이들에게 도서관에 가서 여행하고 싶은 곳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쌓도록 했다. 

어려운 책도 보고 쉬운 만화책도 보면서 아이들은 제법 많은 것을 머릿속에 담았다.


사실 한국에서 직장인이 그것도 아이들 학교를 포함해 3주간을 비우고 유럽여행을 간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절감했다. 

그것도 패키지 여행이 아닌 자유여행은 정말 어렵다는 것을 느꼈다. 

2010년은 근속 20년이 넘는 해여서 특별휴가가 5일이 주어지기 때문에 

그날까지 포함해 3주간 휴가를 낼 수는 있었지만

팀장이 자리를 3주간 비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늦게 결혼한 죄. 

직급이 낮았더라면 조금 더 쉽지 않았을까? 

더구나 지난해 말에 같이 일했던 부서의 실장께서 2010년에는 3주간 연차휴가를 쓸 수 있게 배려해 주겠다고 약속을 하셨지만

연말 인사이동으로 다른 부서로 가게 되었고 설상가상으로 나는 정부 기관(중소기업 호민관실)으로 파견을 가게 되었다.


파견을 나간 곳의 일은 20여년간 해 왔던 일과 전혀 다른 업무였고, 

기업을 경영하시던 이민화 호민관께서 그 조직의 수장이셔서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가치관이 너무 달라서 나에게는 거의 ‘문명충돌’ 같은 나날이었다. 

중간에 끼인 파견자들은 너나없이 심각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1월4일 연간 업무계획을 보고하는 자리에서 개인의 발전계획도 함께 제출해야 한다는 요구에 마땅히 낼 것이 없었다. 

재차 독촉을 받고서 할 수없이 ‘가족유럽여행’ 계획을 제출했고, 

그 분께서 의외로 칭찬하시며 적극 추진하도록 격려를 해 주셨다. 

일정을 고민하다 임기가 끝날 무렵에 하는 것이 조직에 제일 피해를 적게 주겠다 싶어 

6월26일~7.16일로 기간을 잡고 항공권 물색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루프트한자에서 거의 직항로와 다름없는 소요시간을 스케줄로 잡고 있는 항공편을 발견하고 떨리는 심정으로 2월18일 예약을 했다.

일체의 변경을 허락하지 않는 조건이었고 4인가족 432만원이었다. 


그 후에도 매달 업무진척 보고 때마다 진행사항을 점검하신 그 분 덕분에 이제 완전히 기정사실이 되 버렸다.

하지만, 가족을 데리고 유럽을 배낭여행 하기 위한 숙소를 찾는데 예상보다 너무 힘이 들었다. 

독일, 스위스는 유스호스텔이 워낙 잘 되어 있어서 문제가 없었지만 파리가 문제였다. 

결국 시간만 끌다 한달을 허비한 끝에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유로스테이션에 다니시는 박인영씨의 도움을 얻어 파리, 뮌헨, 로마의 숙소를 해결했다. 

모든 준비가 끝난 뒤, 본사에도 알려 휴가결재를 받았다. 

아이들 학교를 찾아 선생님께 설명을 하고 양해를 구했다. 

하지만 회사일에 밀려 정작 떠나기 전 2~3달은 전혀 들여다 보지 못한 채 

아이폰에 필요한 지도정보, 철도예약정보, 숙소정보 등을 담는 것이 전부였는데 

아날로그 방식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것이 결국 고생을 크게 한 원인이 되어 버렸다.

지내놓고 보니 독일에서는 공식 유스호스텔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지 못한 점이 몹시 아쉽다. 

브레멘만 공식유스호스텔이었는데 아이들이 호텔보다 더 좋게 평가한 멋진 호스텔이었는데..



출발 두어달 전에 아이슬란드 화산활동으로 유럽 항공편이 잇달아 취소되는 통에 변경불가 항공권을 산 터라 간이 콩알만해졌다. 

거의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남의나라 화산활동까지 걱정해야 하니 참 묘한 기분이 들었다. 

뒤늦게 발급받은 아내 여권에 영문 성명 표기가 항공권과 달라 이것을 변경하느라 애를 좀 먹었다.

다행히 루프트한자에서 한국의 특수성을 이해해 줘서 다행히 고칠 수 있었다. 

하지만 영문자 3글자 고치는 비용이 무려 100유로.



떠나기 전 주말에 짐을 한번 챙겨보고 유진네에서 빌린 55리터 배낭 2개로 약간 부족한 것을 느꼈다.

짐을 최소한으로 하려고 입고 버릴 옷과 양말, 내의도 별도로 챙겼다. 

그러나, 독일에 사는 친구가 여름에도 밤에는 가디건이 필수라고 알려주었는데 여기에 대비하려니 결국 핸드캐리어 하나를 추가하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상고온을 만나 불필요한 짐 하나를 더 끌고 다니는 고생을 했다. 

나도 간간히 현지 날씨를 챙겼지만 이번 이상 고온은 예상치 못했다. 

빨리 마르고 부피도 작고 가벼운 내의를 장만하기 위해 등산용품 전문매장에 가서 기능성 속옷을 몇 개 샀다.


환율표를 계속 들여다 보고 있었는데 3월 달에 1,404원까지 내려갔던 유로화가 천안함 사건 이후 1,520원 대로 올라가 거의 내려오지 않았다. 

결국 우수고객 혜택을 받아 1,470원에 유로화를 환전했다. 

파운드화는 지점에 100파운드 밖에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당황했다. 

고민하다 이틀에 걸쳐 200파운드를 환전하고 스위스 프랑은 환전하지 않기로 했다. 

스위스 사람들은 유로화를 받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수요일날 다시 한번 더 짐을 정리하면서 짐을 줄여보려 했지만 50리터 배낭 두 개로는 조금 부족했다. 

핸드캐리어냐 작은 배낭이냐 고민하다 유진네에서 빌린 배낭이 크기 축소가 가능한 것이라 핸드캐리어로 선택했다. 

일주일 전부터 배가 아프다고 하는 연우 때문에 걱정이 돼서 막판에 결국 큰 병원에 보냈다. 

장염으로 진단이 나왔는데 사실은 나도 일주일 전부터 비슷한 증세로 계속 아팠다. 

미련하게 버티다 금요일 아침에 연우가 받아 온 장염 약을 한 봉지 먹었는데 상태가 좋아진 것을 느꼈다. 

아내에게 전화해서 연우가 지은 약을 이틀치 더 받아두도록 했다. 

아스피린을 사놓으라고 아내에게 부탁했는데 약사가 주는 일반 감기약을 받아왔다는 것을 알고 기분이 몹시 좋지 않았다. 

뭔지 모르겠지만 느낌상 꼭 필요해서 아스피린을 사려고 했는데 이런 일을....

금요일 밤 나머지 짐을 모두 싸고 가뿐하게 출발준비를 마쳤다. 

아이들에게 시차적응 요령을 가르쳐 주며 흥분을 가라앉히고 일찍 자도록 했다. 

시험을 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과 오래 준비한 여행을 마침내 떠난다는 생각에 아이들은 약간 들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