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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

100개 중 한 개, 봄날이 간다

by 연우아빠. 2010. 4. 25.
지난 17, 18일 이틀동안 지독한 감기몸살을 앓았다.
뼛마다가 쑤시고 근육이 찢어질 듯 아픈 탓에 거의 24시간 이상
잠만 잤다. 배가 고파서 잠깐 깨서 밥을 먹고는 다시 쓰러질 듯
잠들며 이틀을 꼬박 아팠다.

그 덕인지 월요일 아침에 간신히 회사를 갈 수 있었지만
집중력이 필요한 일을 조금만 하고 나면 눈 앞이 노랗게 보였다.
지난 석달동안 착실하게 잘 다니던 수영장에도 가지 못했고
출판용 원고도 전혀 손을 대지 못한채 일주일을 보냈다.

힘든 일주일을 보낸 지난 토요일 아침
6시에 눈을 떴다. 그리고 기력을 찾으러 산으로 가기로 했다.
가족들은 곤히 자는데 혼자 밥먹고 물을 챙겨
수리산으로 갔다. 좀 전에 일어난 아내가 혼자 간다고 잔소리를 한다.

"그래 그럼 아이들 잃어나면 데리고 와.
난 지금 등산을 하지 않으면 정말 죽을 것 같은 기분이야"

옹달샘에서 물병 두개에 물을 담고 스틱에 의지해 슬슬 산에 올랐다.
감기 몸살의 후유증인지 일주일 내내 뱃속이 별로 편하지 않았는데
등산로 입구 화장실에서 편안한 느낌을 받았다.

이 맘 때 콘크리트 건물 안보다 야외가 훨씬 따뜻하고 생기가 넘친다.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자켓을 벗고 가벼운 차림으로 정자 오거리에 도착했다.
아내에게 문자를 날렸다.

"애들 데리고 올라오고 싶으면 정자에서 만나자.
대신, 김밥 사가지고 와"

아이들 평소 동작을 가늠하며 왼쪽 속달동 쪽으로 내려간다.
몸이 무겁다. 그래도 속달동을 지나 반월저수지 방향으로 계속 내려가다
아이들이 아침을 먹고 있다는 문자를 받았다.

"연우가 왜 가야 하는 지 물어보는데"

"봄의 정기를 쐬러 간다고 해 줘.
연우가 볼 수 있는 아름다운 봄날 100개 중에
또 하나가 지나간다고....

그리고 산벚나무도, 바람꽃도, 진달래도, 목련도
연우를 부르고 있다고 전해주시오"

이어서 온 준기의 문자
"아빠, 계곡에 개구리 알 보러 갈거지?"

가던 길 멈추고 정자를 향해 발길을 돌렸다.
내가 정자에 도착할 때쯤 아이들이 거기 올 수 있을 것 같았다.

추운 봄날 때문에 같이 피지 않던 목련, 개나리, 진달래, 벚꽃, 바람꽃, 양지꽃 모두가
함께 피었다.

거진 두시간 걸었나 보다.
정자 오거리에서 아이들을 만나 계곡으로 내려갔다.
작년에 보았던 도룡뇽 알이랑 개구리 알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여름을 제외하곤 거의 말라 버리는 이 웅덩이에 어떻게 이렇게
많은 물고기가 살 수 있을까 싶을 만큼 민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다.

돌 위에 앉아 김밥으로 점심을 먹고
작년에 MTB에 치여 죽은 뱀이 있던 그 개울로 내려갔다.
이젠 나무 계단을 만들어 놓아 MTB들은 더 이상 이 길로 다니지 못한다.

작은 웅덩이에 개구리 알이 보이지 않는다.
섭섭한 준기는 다시 계곡으로 더 내려가 개구리 알을 찾는다.
깨알 같이 작은 올챙이들이 웅덩이에서 헤엄을 치고 있다.
작년에 분명 지저분했던 개울물이 웬일인지 생각보다 깨끗하다 했더니
이 고립된 개울물에 다슬기가 보인다.

아! 신기하다.
어떻게 다슬기가 죽지 않고 이런 곳에 살아 있을까?
작은 다슬기는 개울물을 더 깨끗하게 만들었다.

어느덧 수리사 계곡 아래까지 내려왔고
방향을 틀어 정자 오른쪽 길을 향해 정자 오거리로 갔다.
반갑잖은 MTB들이 질주해 내려온다.

속도는 권력이다.
MTB를 타고 질주하는 사람들은 그 속도에 편승해 폭군으로 변한다.
사람을 보면 브레이크를 잡고 서야 할텐데 위험한 내리막길에서도 그대로
질주하는 폭군이 된다. 똑깥은 MTB가 언덕을 오를 때는 무척 겸손하다.
끙끙대며 거든 사람보다 속도가 느릴 때, 그들은 더욱 겸손하다.

그들이 등산로를 질주할 때 최소한 사람을 배려하고
한줄로 다니는 센스라도 발휘해 주었으면 한다.
오래 MTB를 탄 연세 지긋하신 아저씨가 MTB를 타느라고 무릎관절이 망가졌다고
한탄하신다. 무리하게 언덕을 오르느라 무릎이 아프다고 하신다.
인생은 늘 그런가 보다.

슬기봉 방향 언덕길에 있는 새로 지은 정자에서
학원 원어민 강사인지 젊은 외국인 남자들이 대낮에 깡소주를 마시고 있다.
불 붙기 쉬운 봄날 산에서 겁도 없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역시 인간은 2~3명 이상 떼로 모이면 교양을 상실하나 보다.

아이들과 함께 3시간 여.
어느덧 다섯시간이 넘게 산길을 걸었다.
기력을 회복할 것 같은 따뜻한 봄날 등산이었다.


목련꽃이던가?


편안한 느낌을 주는 수리산 임도 순환로. 길 옆에 진달래가 줄지어 핀 아름다운 길


언덕에는 초록색 연두색 사이로 분홍색 진달래가 줄지어 있다.


늦게 핀 바람꽃. 소나무 낙엽 사이로 옹기종기 모여 햇볕을 받고 있다


이 꽃 이름이 뭐였더라? 자주색 아름다운 꽃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


그 옆에는 이런 새 순들이 머리를 내밀고


산벚나무인가? 절정을 지나 초록색 이파리가 나무를 덮어가는 중


추운 봄이 한꺼번에 여러 종류의 꽃을 보게 만드는 기대밖 효과도 있네요.


새로 나오는 나무순인가 했더니 사마귀인 듯한 벌레가 위장을 하고 있었네요


그림 엽서 속 풍경 같은 느긋한 산길


샛길로 내려가 보니 여름에 피서하기 좋은 소나무 숲길이 있습니다


속달동 임도 입구로 내려가는 길, 재작년인가 시청에서 심어 놓은 벚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습니다.


이게 양지꽃이었던가? 애기똥풀이었던가? 노란 꽃잎이 올망졸망 언덕을 덮고 있습니다.


늘 올챙이와 개구리가 가득했던 계곡 웅덩이에서 올챙이를 찾고 있는 준기


제법 많은 물고기들이 봄 햇살을 즐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