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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

추노 마지막회와 무장저항권

by 연우아빠. 2010. 3. 26.
매주 수, 목 이틀 밤동안 온 가족을 TV앞에 앉게 만들었던
추노(推奴 : 도망노비를 추적함)가 끝났다.

상당부문 사전 제작을 해서 시청자의 눈을 호강시켰줬던
시각적 즐거움도 있었고,
호쾌한 칼싸움 장면은 격투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시원한 눈요기를 제공해 감동을 주기도 했다.
탄탄한 드라마 구성 때문에 눈을 떼지 못하게 하고
오래 기억하도록 만든 드라마이기도 했다.

11살짜리 우리 아들의 소망과 같이
나도 이 드라마가 주인공들이 뜻하는 바를 이루면서
끝나기를 내심 바랬다.

늘 감상적이고 패배로 마무리 된 그런 결말은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다행히 업복은 그동안 봐왔던 드라마와 달리
시원하게 원수들을 사살하며 나름 원하는 바를 이루었다.

역사적으로 백성들이 단 한번도 왕의 목을 잘라보지 못한 나라는
민주주의를 제대로 운영하지 못한다는 전해오는 이바구가 있다.
공교롭게도 동아시아 역사에서 백성이 왕의 목을 잘라본 경험을
가진 나라가 없다.
서유럽 역사에는 왕의 목을 잘라본 경험을 가진 나라가 많다.
이런 경험은 역사의 무의식 속에 그대로 잠재해 있다고 본다.

동학농민전쟁도 왕의 선처를 기다리며 중도에 그쳤고
아웅산 수지 여사를 중심으로 일어났던 버마 민중항쟁도
정권담당자들의 개과천선을 기대하며 도중에 중단했다.
동 서양의 역사적 경험 차이가 이런 문화를 만든 모양이다.

프랑스 혁명 후 프랑스 인권선언에서 '무장저항권'이라는 개념이 나왔다.
인간은 태어날때부터 부당한 차별과 제도적 억압에 저항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으며 합법적인 수단을 동원해도 그 본질적 권리가
회복되지 않을 때 무장을 하고 저항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이게 가능하려면 개개인이 무장을 할 능력이 있어야 하고
그것이 왕의 부당한 권력에 타격을 가할 만큼 힘이 있어야 한다.
이런 사회가 본격적으로 가능해진 것은 총포무기의 발달 때문이다.

동양 사회는 철저하게 왕을 중심으로 한 지배층이 무력을 통제하고
개인의 무장을 범죄시 한 반면
유럽은 자기 돈으로 무장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시민만이
군대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일찌기 로마공화국 시대에 무장한 시민은 국방을 담당했으며
그들은 의무병으로 복무했다.
그러나 로마제국 시대에는 황제가 무장을 제공하고 국방은 직업군인이
담당하게 되었다. 결국 시민의 권력은 현저히 약화되고 황제의 통제를
받는 신민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15~6세기 총포무기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유럽 사회는 스스로 무장할 수 있는 시민의 힘이 강력해졌다.
무장한 시민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공정하고 합리적인 법과 제도가
필요하게 되었다.
불공정하고 불합리한 통제는 언제든 무장한 시민이
방아쇠를 당길 빌미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무장한 시민은 결국 프랑스 대혁명으로 절대왕정을 타도하게 되었고
미국독립전쟁으로 대영제국에게 결정타를 먹였다.
무장한 시민은 결국 절대권력을 허락하지 않았고
주권재민이라는 민주주의 체제를 만들어냈다.

폴투갈에서 들여온 조총 2자루를 복제해
일본은 2~3년 사이에 15만정을 만들었다.
같은 시대 유럽 전체에 있던 총보다 더 많은 숫자다.
임진왜란 발발초기에 조선백성은 피난을 가지도 못하고
도륙당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백성들이 무장을 하지 못한 때문이라고 본다.
영국이 미국독립전쟁 때 미국에게 당한 이유 가운데
경쟁국들이 미국을 지원한 것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미국 시민들이 무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청동기로 무장하고 있던 잉카제국의 황제근위대 5만명은
소총으로 무장하고 있던 스페인 침략자 153명에게 몰살을 당했다.
칼과 활로 무장하는 것과 총포로 무장한 것은 그 무게감이 다르다.

어제 추노 마지막회에서 
시민이 총포로 무장을 하면 어떤 결과가 올 지 잘 보여준 장면이 있었다.

포수였다가 노비로 팔려온 업복은 화승총 4자루를 가지고
자기들을 농락한 양반사회를 향해 총을 쐈다.
만약 조선사회가 임진왜란의 문제를 잘 검토해
일반 백성에게 무장을 허락했더라면
병자호란은 없었을 것이라고 상상해본다.
조선이 청에게 복수하기 위해 10년간 북벌준비를 하기보다
일반백성을 총포로 무장하도록 허용 했더라면
조선은 동아시아 강국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을텐데
하는 개인적인 아쉬움이 있다.

모두가 무장을 하고 있으면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법과 제도를 만들고 운영하려고 할 수 밖에 없다.

총기사고를 걱정하는 사람들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총기사고는 민주주의의 역사적 발전과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일부 일탈행위일 뿐이다.
서양의 역사에서 민주주의를 제도로서 정착시킨 가장 근원적인 조치는
바로 시민의 무장저항권에 있다고 본다.

* 문장이 거칠고 졸렬해 이 글을 읽는 이에게 누가 되지 않았기를 바랍니다.
(사실 찾아오는 사람도 거의 없는 블로그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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