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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군중장 안중근

by 연우아빠. 1998. 10. 26.
역사용어 바로잡기(1) - 의군중장 안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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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다음 넷에 제가 칼럼을 썼던 내용입니다. 
칼럼을 몇 번 쓰다가 힘에 부쳐 중단하고 말았습니다.(편집자 주)


우리는 교과서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많은 용어를 의식, 무의식 속에서 사용합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용어들은 대부분 어떤 평가가치가 숨어있습니다. 
일본인들이 조선왕조를 굳이 "이씨 조선"이라고 부른 것도 다 그들이 노리는 이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대사에도 이런 경향들이 숨어 있습니다. 
특히 최근세사에 가까이 올수록 이런 경향은 더 교묘해지는 경향을 띠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가운데 한가지 "안중근"에 관련된 글입니다.

안중근과 함께 붙어 다니는 용어로 '의사' '저격' '암살'등이 있습니다. 
그럼 안중근의 입을 빌려 그를 어떻게 불러야 하고 기념해야 할지 생각해 봅시다.

1909년 10월 26일 러시아 극동군 관할하에 있던 하얼빈 역에서 안중근은 러시아 외무상과 만나는 이토오 히로부미를 권총으로 사살합니다. 
그리고 '대한국 만세'를 외치며 그가 이토오를 죽인 행위에 대한 성명서를 뿌리고 러시아 헌병에게 사로 잡혔습니다.

러시아는 일본에게 패전한 뒤라 자신이 없었는지 자기 영토내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해 재판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일본에게 안중근을 넘겨 줍니다. 
안중근은 요동반도에 있는 뤼순(여순)에서 일본제국의 재판을 받았습니다. 
여기에서 안중근은 자신이 군인신분임을 밝히고 이토오 사살에 대한 견해를 드러냈습니다.

"우리 대한독립군은 1905년 대황제폐하(고종황제)의 밀지를 받아 침략자 일본제국에 선전포고를 하였다. 
나는 대한독립군 참모중장겸 만주특파 사령관으로서 전쟁도중 적장 이토오 히로부미를 사살했다. 
그러므로 나는 전쟁포로로서 만국공법에 따라 재판을 받아야 하며 일본형법에 따라 일본 법정에서 재판을 받아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이 말은 안중근이 일본 법정에서 한 말 가운데 요점을 정리한 것입니다. 
그는 군인으로서 적장을 사살한 것입니다. 
황제의 밀지를 받아 독립군을 조직 적과 싸웠으며 채가구, 장춘, 하얼빈 등 3곳에서 
우덕순, 조도선 등과 함께 적장을 사살키로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천하여 침략의 원흉을 처단한 것입니다.

우리가 안중근의 사살행위를 암살, 또는 저격으로 표현한다면 안중근의 행위는 후손인 우리 입을 통해 테러범으로 격하됩니다. 
또한 대한독립의 합법적 정당성도 훼손됩니다.

그러므로 마땅히 저격/암살이 아니라 '사살'로 표현하고 가르쳐야 하며 
그래야만 안중근의 독립투쟁과 우리의 주권회복전쟁을 정당화 할 수 있습니다. 
덧붙여 안중근 '의사'라고 하는 용어도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가 여순에서 순국하기 전에 남긴 글에는 '군인본분 위국헌신'이란 것이 있습니다. 
그는 '대한독립군 참모중장겸 만주특파사령관"으로서 적장을 사살한 것이므로 "의사"가 아니라 
당연히 '참모중장' 안중근 또는 적어도 "의병장" 안중근으로 불러야 마땅합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어찌 생각하시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