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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여행

천년왕국의 수도 경주여행 (3)

by 연우아빠. 2009. 6. 4.

6월 1일 답사 마지막 날.

포석정>지마왕릉


포석정. 경애왕이 자결을 당한 곳. 놀이터가 아니라 국가적 제사를 지내는 신성한 장소였다는 주장이
요즘 설득력 있게 나오고 있습니다.


포석정 오른쪽으로 좀 더 들어가면 제6대 지마이사금의 왕릉이 있습니다.
경애왕과 같은 박씨인데다 아들을 남기지 못했습니다. 경애왕은 조상의 무덤 가까이에서 죽은 셈입니다.
지마이사금의 부왕은 파사이사금인데 '파사'는 페르시아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두 녀석에게 모두 수영을 가르쳐 놨더니 물놀이 시설에 대한 생각이 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아침 일찍 일어나 부산하게 준비하고 9시 10분쯤 콘도 안에 있는 수영장으로 들어갔다. 평일 40% 할인을 받으니 네 식구가 모두 5만원. 수영을 배웠으니 달리 빌릴 것이 없어 돈이 들 일이 없었다. 월요일 아침이라 그런지 넓은 물놀이 시설 안에는 서너명 밖에 없다. 수영을 할 줄 아니 제 세상 만났다. 안팎으로 돌아 다니며 물 속을 휘젓고 다닌다. 그래도 아직 겁이 남아서 준기는 공기 주입 튜브 미끄럼틀을 타지 못한다. “준기야. 지금 아니면 언제 해 보겠냐? 조금 더 크면 하고 싶어도 나이 제한에 걸려서 저걸 타보지 못한단다.” 그 말에 용기를 냈는지 기어 올라가더니 타고 내려온다. 한번 두 번 세 번 횟수가 늘어날수록 점점 자신을 갖고 탄다. 11시 30분 조금 넘어 수영장을 나와 짐을 꺼냈다. 대릉원 주차장에 차를 대고 주차장 안내 아저씨가 가르쳐준 시골쌈밥집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는 집이라고 한다. 아이들 둘에 어른 둘을 보시더니 3인분이면 충분하겠다며 3인분에 공기밥 하나만 더 가져다 주신다. 음식은 그제 먹은 구로쌈밥집보다 더 맛있다. 다만 된장찌개 맛이 좀 떨어진다는 아내의 평가.

점심을 먹고 나자 연우가 포석정에 가보자고 한다. 어차피 월요일이니 별로 막힐 것 같지 않고 쌈밥집 옆에서 경주 찰보리빵을 한상자 사서 포석정으로 갔다. 찰보리빵은 집집마다 만드는 방식이 다르다. 포석정에는 버스를 타고 단체로 온 사람들이 여러 무리가 있다. 34년전 수학여행 때는 포석정 유적을 사람들이 함부로 밟고 다녔는데 지금은 들어가지 못하게 줄을 쳐 놓았다. 시원한 나무그늘 마다 학생들이 무리지어 인솔자의 설명을 열심히 듣고 있다. 나도 우리 애들에게 설명을 해 줬다.

삼국사기에는 경애왕 본기에서

음력 11월 겨울, 견훤이 경주에 쳐들어 왔는데 冬十一月, 掩入王京.
왕은 비빈과 종친들을 거느리고 포석정으로 가서 잔치를 열었다. 王與妃嬪宗戚, 遊鮑石亭宴娛.

라는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기록이 남아 있다. 많은 학자들이 의문을 품었는데 음력 11월 한 겨울, 물도 어는 야외에서 물에 술잔을 돌리는 놀이터인 포석정에서 잔치를 벌린다는 것도 이상하고, 견훤이 쳐들어 왔는데 비교적 안전한 왕성인 월성을 빠져나와 무방비 상태나 다름없는 포석정으로 갔다는 것도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다. 당시 고려 태조에게 요청해서 고려의 구원군이 내려고고 있었는데 경애왕은 왜 월성 북쪽으로 나아가지 않고 견훤이 들어오는 길인 포석정으로 내려갔을까? 적이 들어오는 길목으로 왕이 놀러 갔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되는 행동이다. 비록 위작일 가능성이 높지만 화랑세기 필사본에는 여기에 포석사(鮑石祠)라는 사당이 있었다고 한다. 왕이 비빈과 종친을 데리고 간 장소. 어쩌면 이런 국난을 막아 달라고 왕실 식구들만 데리고 기원제를 지내러 간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을 하는 사람들도 상당히 있다. 포석정은 신라 역대 임금들과 불상으로 가득한 경주 남산 자락에 있고 그 옆에는 6대 임금인 지마왕릉도 있다. 또 박씨의 시조왕인 박혁거세가 태어난 나정에서 500m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박혁거세가 세운 첫 왕궁인 창림사터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신라의 전통적 제사 의식이자 전몰자를 위해 위령제인 팔관회는 매년 음력 11월에 열렸다. 1998년 지표조사에서는 포석(包石)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돌과 각종 제기가 발견되어 이곳이 국가의 중요한 제사터였음을 추측하게 만들었다. 국가의 중요한 정신적 유물이 집중된 이곳에서 유흥을 즐겼다가 죽었다는 경애왕의 오명은 이제 벗겨줘야 할 것이다.

지마왕릉을 끝으로 3박4일간의 경주 여행은 끝났다. 시오노 나나미가 로마에 40년을 살면서 로마인 이야기 15편을 썼듯이 누군가 경주에서 40년을 살면서 관찰한다면 신라인 이야기 15편 쯤은 나오지 않을까 싶다. 오후 3시 50분. 뜨거운 서라벌을 뒤로 하고 우리는 집으로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