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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여행

영남 알프스에 빠지다 (1)

by 연우아빠. 2008. 10. 6.

영남 알프스에 빠지다

신불산, 운문산자연휴양림, 밀양, 경주 여행 / 2008.10.3~10.5(2박3일)


2008.10.3 신불산자연휴양림

장모님 칠순 때 가족과 함께 할만한 게 없고 해서 경치 좋은 영남알프스를 찾아 나섰습니다.


운문산휴양림에 숙소를 잡고 7월달에 못 올라가 본 간월재를 가보려고 신불산 상단휴양림으로 갔습니다.
4시 넘어 올라간 간월재는 억새가 넘어가는 해를 받아 환상적인 모습을 보여 줍니다.
간월재에서 올려다 보면 왼쪽에 간월산이 보입니다. 연우가 저기 올라가보고 싶어했는데....


사진 찍을 때 마다 맘에 드는 사진이 없는 준기맘의 심각 모드. 바람에 일렁이는 억새


시간도 늦어 밤길에 숙소를 찾아갈 걱정이 되어 간월산 전망대까지만 올라가 봅니다.


전망대에서 간월산을 배경으로 한 컷


간월재에는 차를 가지고 올라온 사람도 바글바글했습니다. 지금은 많이 내려간 상태
왼쪽이 언양으로 내려가는 길입니다. 경사가 엄청 급하고 구불부불하더라구요. 내려다 보니 어지럼증이...


햇볕에 반짝이는 억새를 찍어 본다고 했는데 내공이 딸려서....


황금빛으로 일렁이는 간월산의 억새밭


신불산 상단휴양림으로 내려가는 하산길에서...해를 정면으로 받은 것 같습니다. 기본기의 한계를 느끼며...


신불산 임도에 핀 구절초


영남 알프스에 빠지다

운문산자연휴양림, 밀양, 경주 여행

2008.10.3~10.5(2박3일)

장모님 칠순을 앞두고 해외여행 말고는 별 뾰족한 선물이 없어서 고민하던 차에 혼자 여행 가실리 만무하다고 하여 운문산자연휴양림을 예약해서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아내는 “장모님 핑계대고 자기 좋아하는 것 한다”고 핀잔을 주었지만 딱히 대안도 없음시롱...너거 신랑은 슈퍼맨이 아니여! 하필 9월1일에 전체 조회가 있어서 아내에게 예약을 대신 부탁해 놓았지만 역시나 예상대로 접속도 못했다는 문자가 날아왔다. 10시가 다 돼서 들어가보니 예상대로 운문산 숲속의 집과 연립동은 대기까지 완료된 상태. 장모님 모시고 야영할 수도 없어서 휴양관 비자나무방을 예약했다. 주은아빠가 신불산을 예약했다고 하여 잘하면 간월재에서 만날 수도 있겠다 생각하며 아이들 가정학습 신청서를 내고 기다렸다.

국감 날짜가 당초 계획보다 10여일 빨라진 관계로 예상보다 일찍 준비에 들어가게 되어 9월 하순부터 본격적인 야근이 시작됐다. 매일 밤 12시에 집에 들어가니 아이들과 아내 얼굴 보기도 힘들고 준비는 하나도 하지 못한 채 10월3~5일 사이에 모두 출근해야 한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본선도 해 보기 전에 예선전에서 다 쓰러지자는 소리도 아니고...장모님 칠순여행 간다는 얘기를 하고 10월2일 반차를 냈지만 오후에도 출발한다는 보장이 없었다. 결국 급피치를 올린 우리 보스 덕분에 오후 5시에 준비한 자료를 모두 올려 보내고 10분만에 상황해제. 3일부터 5일까지는 이사님만 나오고 쟁점사항이 없는 부서는 월요일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전달말씀. 오후 2시부터 반차를 시작하지만 5시 45분이 돼서야 회사를 나섰다. 아내에게 짐을 차에 실어 놓으라고 하고 집에 도착해보니 아버지는 아침에 자형 댁으로 가셨다. 대충 눈에 보이는 짐을 차에 싣고, 준기의 지적으로 미리 태극기도 달아놓고 연휴 전날 막히는 길이 아니기를 간절히 빌며 8시쯤 처가를 향해 날아갔다. 차는 많았지만 다행히 제 속도를 꾸준히 낼 수 있어서 1시간 30분쯤 지났을 때 치악휴게소 근처를 지났다. 성영아빠의 전화. 숲여사 회원가입원칙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곳을 지나기 때문인지 들렸다 안들렸다 한다. 성영아빠는 우리가 통과하는 곳을 정확하게 알고 있어서 놀랬다. 역시 무공이 높은 분은 다르다. 일단 내일 운문산휴양림에서 만나 저녁을 하기로 약속했다. 2시간 반만에 처가에 도착했다. 가면서 생각하니 숯도 가져오지 않았고 은주아빠께 산 접이식 의자도 현관에 두고 왔다. 11시쯤 잠을 청했다.

3일 아침 숲여사의 운영에 대한 글을 하나 올리고, 엔진오일이 조금 새는 것을 확인하러 큰처남이 하는 정비공장에 가서 손을 봤지만 당장은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상황. 엔진오일을 갈고 근처남이 가르쳐 준 황고집전통숯가마(054-635-6554)에 들러 5천원짜리 숯을 한 봉지를 샀다(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숯이 좋았다). 10시 반쯤 신불산을 향해서 출발했다. 오늘은 이동하는 거리 때문에 다른 일정을 잡을 수가 없어서 지난 7월에 가보지 못한 간월재를 올라가려고 했다. 12시쯤 경산근처에서 성영아빠가 전화를 했다. 늦게 일어나서 가족들과 함께 영남 알프스 쪽으로 등산을 갈 계획이라며 필요한 물품을 얘기하라고 한다. 곧이어 유진아빠도 내가 올려놓은 글을 봤다며 전화를 했다. 주은아빠가 열심히 하는데 이런저런 말을 하는 것이 불필요한 오해를 살 것 같아서 다들 조심스럽다. 하지만 깊은 인연이 있는 사람들인만큼 주중에 만나서 이야기를 하기로 하고 전화를 마쳤다. 신불산 근처에 점심 먹을 만한 곳을 본 기억이 없어서 일단 경산에 들러 작년에 먹었던 유명한 국밥집을 찾아 나섰다. 네비에 담아 놓고도 못 찾다가 성영아빠에게 도움을 청하고 나서야 가려고 했던 음식점이 바로 근처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 점심 먹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지체했다. 2시가 넘어서 출발하려고 네비를 찍었더니 국도가 고속도로보다 20km 이상 짧고 직선인데 아내는 돌아가는 고속도로로 가자고 우긴다. 길에 관한한 마누라 의견을 따랐다가 좋은 결과를 얻은 적이 없어서 그냥 내 고집대로 가려다 장모님께 티격태격하는 모습 보여 드리기 싫어서 고속도로를 갔는데, 아뿔사, 성영아빠 조언대로 경산 IC로 올라가 1번 고속도로를 타야 하는데 수성IC로 들어가 55번 민자고속도로를 타게 되었다. 7월달에도 이 길로 왔다가 값만 비싸고 24번 국도에 공사중인 곳이 많아 고생했는데....결국 시간도 단축 못하고 돈은 돈대로 들고 그나마 다행인 것은 구절양장 69번 지방도로를 넘지 않고 산을 관통하는 새 터널을 이용해 좀 수월하게 석남사로 해서 되짚어 신불산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는 점. 하지만 산에는 내려오는 차와 주차해 놓은 차, 그리고 등산객으로 무질서하다. 급경사 길에서 차량 교행이 불가능하게 차를 주차해 놓은 몰염치한 사람들, 그리고 교행이 가능한 지점에서 기다리지 않고 밀고 내려오는 무개념 운전자들 때문에 머리에서 쥐가 난다. 천신만고 끝에 상단 휴양림에 도착해 입장료 5,600원을 내고 휴양관 앞에 차를 댔다. 여기에서 아내가 또 한번 불을 지른다. 장모님 핑계대고 와서 저 혼자 좋자고 산에 올라간다고.

아니 한달 전부터 간월재 올라간다고 얘기했고 2박3일 여행 중에 어차피 이동시간이 길어 오늘은 다른 일정을 잡을 수도 없으니 장모님께는 죄송하지만 2시간 30분만 신불산휴양림에서 산책을 하고 계시라고 한 건데 왜 여기 와서 또 지청구를 하냐고 언성을 높였다. 결국 해가 얼마 남지 않은 촉박한 시간에 심리적으로 쫒겨 준기만 데리고 간월재로 출발했다. 그저께 현지아빠께 휴양림에서 올라가는 길이 임도처럼 널찍한 길이라는 정보를 들었기에 처음 올라가는 길이지만 준기를 데려갔다. 준기도 엄마와 아빠가 언쟁을 하는 것을 보고 사태파악을 했는지 군말없이 조용히 따라 나섰다. 조금 올라가니 산 건너편에 간월재로 올라가는 차들이 바글바글하다. 차를 가져가면 장모님을 모시고 갈 수도 있겠지만 굳이 걸어 올라간 이유는 그 좁은 길에 교행도 어려워 오도가도 못하게 되기도 싫고 산길을 차타고 올라가는 사람들 보기도 싫고 호젓한 산길을 유유히 올라가며 간월재와 간월산 구경을 하는 맛을 보기 위해서였다. 마음 밑바닥에는 오래전에 성영아빠께서 배냇골이 망가져가는 모습을 그린 후기가 더 큰 역할을 했다. 준기가 가끔 힘들다고 칭얼거렸지만 등산용 스틱을 잡고 기차놀이를 하며 천천히 올라갔다. 길은 아주 쉬운 길이어서 랜턴만 있다면 야간 등산도 문제없을 것 같다. 건너편에 바글바글한 차들을 보니 걸어올라가길 잘해다는 생각이 든다. 이 길로 사람들이 가끔씩 내려온다. 해도 기울어서 더위도 없고 늦게 도착한 것이 오히려 다행이다. 오늘 같은 갈등을 어떻게 조절하느냐 하는 문제가 가족이 함께 전국 국립휴양림 36개를 다 도는데 관건이겠다 싶다. 장모님께는 죄송스럽지만 다시 이 먼 길을 내려 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해가 갈수록 사회가 사람들을 못살게 조여온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 문사철을 갖추지 못한 서양식 경영자의 자질이 미덕으로 칭송받으며 한국사회를 황폐하게 만들어 가고 그것이 결국 소득수준이 높아지는데 반비례해 구성원의 만족도 더 낮아지는 게 아닌가 싶다. 휴양림 차단기 앞에 누군가 텐트를 쳐 놓고 캐노피 안에서 고스톱을 치고 있다. 아줌마들은 음식 만드느라 바쁘고 남자들은 고스톱이라니... 이 높은 산에 왜 올라왔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때 연우에게 문자메시지가 왔다. 우리 뒤에 금방 따라오고 있으니 물을 다 마시지 말라고. 이 아줌마가 물병도 들지 않고 애를 데리고 따라 올라오고 있나보다. 잠시 후 간월재에서 아내와 연우를 만났다. 장모님은 먼 길을 달려온 피로 때문에 차 안에서 주무신다고 한다. 억새밭이 저녁햇살을 받아 황금빛이 난다. 간월재를 배경으로 아이들 사진을 찍었다. 여름휴가를 다녀간 현지아빠님 후기에서 표현한 것처럼 눈으로 보는 경치는 사진이 주는 감동과는 차원이 다르다. 성영아빠님이 왜 영남알프스에 그렇게 자주 왔었는지 조금은 공감할 것 같다. 내가 만약 이 근처에 살았다면 매주 여기를 드나들었을 것 같다. 사진을 찍고 있을 때 성영아빠님 전화가 왔다. 이 무렵에 가장 좋은 시간대에 올라간 것이라고 한다. 인공적인 울타리와 소나무 조림을 하지 않았을 때 사람 키보다 큰 억새가 석양에 물들었을 때 바람 따라 일렁이는 모습은 간월재 억새의 백미라고 했다. 그 표현처럼 감동적인 눈물이 절로 솟을 것 같은 아름다운 광경이다. 저녁 때 만날 시간을 맞추고 통화를 끝냈다. 등산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 연우가 간월산을 올라가잔다. 자연이 빚어낸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던 것일까? 정상이 빤히 보였지만 갔다오면 해가 질 것 같아 아쉬움을 달래며 전망대까지만 올라갔다. 현지아빠님이 봤을 풍경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었다. 언양 시가지 쪽은 시야가 깨끗하지 못하다. 아마 11월초 보름쯤 이 시간에 올라온다면 사람의 발을 잡을 것 같다.

5시반쯤 하산을 시작했다. 성영아빠님과 통화하며 저녁에 숯불구이 할 고기를 부탁했다. 언양 지역 한우와 관련한 정보를 사전에 파악하지 못하고 온데다가 아내는 고기를 빼 먹고 왔는지라 미안함을 무릅쓰고 부탁을 드릴 수 밖에 없었다. 전국적인(?) 네트웍을 가진 동호회의 위력을 실감하며^^;; 신불산 상단휴양림에서 운문산휴양림까지는 겨우 18km 남짓. 하지만 험한 산길을 올라가는 길이라 50분 가까이 걸렸다. 간신히 7시를 넘겨 휴양림에 도착했다. 성영이네는 우리보다 좀 일찍 도착했다.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짐을 내린 다음 저녁준비를 시작했다. 성영이네가 오지 않았다면 우린 저녁에 손가락만 빨고 있을 뻔했다. 등나무 탁자에 자리를 펴고 불을 붙이고 두툼한 목살과 유명한 언양 소고기를 구워 아내가 가져간 포도주 한병을 반주삼아 화기애애한 저녁을 했다. 두 가족 모두 여행에 쏟아 부은 돈과 시간이 엄청난 것을 확인하고 웃었다. 아이들에게 재산을 남겨주는 것 보다 가족여행을 통해 남들이 가져갈 수 없는 많은 자양분을 쌓아주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에 가족여행을 해 온 것에서 다시 한번 동질감을 느끼며 아름다운 인연이 오래 이어지길 기대해본다. 우리가 여행에 쏟아 부은 돈을 모두 저축했다면 상당한 돈이 되었을 것이라는 이야기에 서로 크게 웃으며 공감을 했다. 온갖 태클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내려왔는데 성영이네 학교는 10월4일에 가을 운동회를 하고, 성영이가 반 대표로 달리기를 해야 하는 관계로 11시 40분쯤 아쉬운 작별을 했다. 성영이네가 돌아간 뒤 장모님은 사위가 알고 지내는 사람들의 훌륭함에 후한 점수를 주시는 것 같다.

 

10월 4일. 휴양림을 산책하고 나서 성영아빠님이 추천해 준 배냇골을 넘고 밀양댐을 거쳐 표충사와 영남루로 가는 길을 나섰다. 석남사 가는 길에는 많은 차와 사람이 길을 막고 있다. 다행히 69번 지방도로를 통해 신불산 하단휴양림으로 내려가는 길에는 사람이 별로 없어 절경을 유유히 감상하며 내려갈 수 있었다. 밀양댐으로 가는 길은 도끼로 쪼개 놓은 나무 마냥 아찔한 계곡을 타고 하늘 길을 달려가는 듯 하다. 밀양강을 막아 놓은 저수지 속에는 수몰된 마을이 들어 있다. 잠시 차를 세우고 용암정에 올라 댐이 만들어 놓은 경치를 구경했다. 미리벌이라는 옛 지명에 걸맞게 오늘 기온이 상당히 높다. 밀양댐을 지나 황금물결이 빛나는 들판을 가로질러 표충사에 도착했다. 국립공원 입장료 제도를 폐지한 다음부터 예전에는 주차장에서 매표소까지 상당히 먼 거리였는데 턱 밑까지 차를 끌고 올라가는 곳이 많아졌다. 편하긴 한데 아름다운 숲길을 걸어보지 못하는 점이 좀 아쉽다. 이번여행에서 표충사, 운문사 같은 절이 그런 경우였다.

표충사 매표소에서 돈을 받지 않는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에 표충사에서 530회 사명대사 가을향사를 거행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안내 팜플렛만 나눠주고 무료입장을 시켜준다. 사명대사님 덕분에 재약산 자락에 자리 잡은 좋은 절을 그냥 구경할 수 있으니 감사할 일이다. 표충사 주차장은 전국에서 제일 좋은 환경이 아닐까 싶다. 아름드리 울창한 숲속에 차를 주차시키면서 자연환경이 인간에게 베푸는 은혜에 감사하는 맘이 든다. 이 지역 절은 입구에 범종각이 있는 게 특이하다. 절 왼쪽에 사명대사를 기리는 표충사(表忠祠) 앞에서 은은한 찬불가 합창과 함께 한참 행사가 진행중이다. 유물관에는 사명대사와 관련한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표충사는 서기 654년 원효대사가 수도를 하기 위해 자리잡은 것을 시점으로 한다. 밀양에서 태어난 사명대사는 임진왜란 때 서산대사, 영규대사와 함께 중생들을 전쟁의 참화에서 구하는데 전력을 다했고, 왜란이 끝난 뒤 일본으로 건너가 조선포로 3,500여명을 돌려받는 공을 세워 임금에게 당상관에 영의정까지 받은 인물이다. 그와 관련된 설화는 워낙 유명해 옛날 이야기에도 자주 등장한다. 사명대사에 얽힌 옛날 이야기를 해 주면서 절 안쪽 마당으로 올라갔다. 감은사지 3층석탑을 꼭 빼 닮은 것 같은 신라 통일기의 석탑이 마당에 서 있다. 뾰족한 철심을 탑 한가운데 세운 것으로 봐서 감은사탑과 같은 풍수 비보형 탑인 것 같다. 백제사람 아사달이 만든 석가탑은 부여 정림사지 탑과 같은 몸매를 갖고 있는데 이 석가탑이 훗날 신라 통일기의 대표적인 탑형식에 영향을 준 모양이다. 운문사에도 이와 흡사한 탑이 두 개나 서 있다. 대광전, 팔상전, 3층 석탑은 표충사를 감싸고 있는 재약산 능선과 조화를 이루고 있어 사진 연습하기에 아주 좋은 곳이다. 대광전 용마루 한 가운데에 특이한 장식이 있는데 무슨 용도인지 잘 모르겠다. 주차장으로 나오는 길에 등산안내도가 붙어 있는데 재약산 사자평 억새밭을 구경하고 싶은 생각이 올라온다. 참자. 행사가 끝난 뒤라서 그런지 지금 들어오는 사람들에게는 입장료를 다시 받는다.

밀양강변에 서 있는 영남루는 멀리서 웅장하고 날렵한 모습이 뚜렷하다. 강 건너편에 주차장이 있는 것이 좀 불편하긴 하다. 영남루를 중심으로 아랑각, 시립박물관, 밀성대군 기념물, 단군과 삼국 시조왕, 발해 태조, 고려 태조 등의 역대 왕 위패를 봉안해 놓은 천진궁과 정문인 만덕문, 친일행적이 드러나 문제가 된 박시춘의 유적, 사명대사의 동상, 독립투사를 기리는 숭모비가 이웃해 있다. 천진궁은 지금 수리 중인데 단군왕검의 초상은 현재 영남루 왼쪽 건물에 봉안해 놓았다. 정리정돈이 제대로 안 된 우리 역사를 보는 듯하다. 영남루에 오르니 밀양강과 시가지가 펼쳐져 있고 시원한 바람이 땀을 씻어 준다. 가히 영남제일루라 부를만하다. 한동안 시원한 바람에 몸을 맡겼다가 표충비를 찾아 길을 나섰다. 표충비는 밀양 서쪽에 있다. 표충비각에는 임진왜란 때 왜적을 물리치는데 노력한 서산대사, 사명대사, 기허대사를 모신 사당이 있고 사명대사의 행적을 기록한 유명한 표충비가 있다. 표충비는 전각의 댓살 안에 갇혀 있는 형국이다. 표충비는 국가의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땀’을 흘리는 비석으로 유명하다. 표충비 앞에 있는 향나무는 예천의 석송령처럼 받침대를 끼고 살고 있다. 변하는 것이 많은 세상에 평생을 초지일관한 사명대사의 행적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의지하고 위안을 삼는 것이리라.

표충비각을 나와 얼음골을 향했다. 가는 도중 영화 ‘밀양’ 촬영장소로 유명한 다래현 손짜장(055-354-6636)에 들렀다. 삼선 간짜장과 탕수육을 시켜 먹었는데 맛도 깔끔하고 수타면이라 그런지 씹는 맛도 좋다. 영화의 후광이 아닌 맛과 친절함 때문에 오래 장수했으면 싶은 식당이었다. 네비게이션으로 얼음골 매표소를 찍고 갔는데 이상한 좁은 산길로 안내한다. 이상하다 싶어서 길을 물어보니 자기도 이 고장 사람이 아니라서 모르겠는데 얼음골로 가는 길이 있기는 있다고 한다. 밭두렁 같은 길을 한참 올라가니 매표소가 나오긴 나오는데 차가 올라오지 못하는 길이었다. 주차장은 7백미터쯤 가야 있는데 이 동네 사람들만 다니는 길인 모양이다. 5월달 함허동천 갈 때와 같은 안내였다. 가족들을 내려놓고 주차장으로 내려가 차를 대는데 가지산 봉우리에 둥근 저녁 해가 걸렸다. 얼른 카메라를 꺼내 내렸는데 불과 30여초 사이에 동그란 해가 절반정도 더 내려갔다. 노출을 맞춰볼 시간도 없이 셔터를 눌러 해가 지는 모습을 찍었다. 주차장에서 매표소까지 사람이 걸어가는 길은 불과 200m정도였다. 해가 산 속으로 넘어간 뒤라 얼음골에는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500m만 올라가면 되는 길이라 입장료를 내고 길을 재촉하는데 퐁퐁 솟는 샘물이 두군데 있고, 천황사에는 보기 드물게 돌로 만든 불상을 봉안해 놓았다. 보물 1213호로 신라 통일기인 8세기 말에 조성한 것으로 아름다운 얼굴이다. 얼음골에 도착했는데 차가운 기운이 확 내려 온다. 아쉽게도 8월 초부터 얼음이 없어지는 곳이라 얼음을 볼 수는 없었다. 이 일대는 너덜지대라서 바위 속 깊은 곳에 스며든 물이 많은 모양이다. 물 흐르는 소리는 나는데 물은 보이지 않는 곳이 많다. 깊이 스며든 물이 겨울에 얼어 기화열 때문에 오래 녹지 않고 여름에도 남아 있는 모양이다. 자연이 만든 석빙고라고 봐야 할 듯. 준기는 곳곳에 있는 쓰레기 관련 표어가 재미있는 모양이다. 사진으로 다 찍어 달라고 한다. 어두운 산을 내려와 숙소로 돌아왔다. 다래현 손짜장 집에서 너무 잘 먹어서 그런지 저녁생각이 없어 과일을 먹고 일찍 잠을 청했다. 깊은 산길을 많이 다녀서 그런지 다들 잠에 일찍 빠졌다.

5일 새벽, 쌀을 씻어놓고 휴양림 산책에 나섰다. 비가 올 것 같은 날씨다. 휴양림 여기저기를 산책하려고 나섰다가 용미폭포 표시를 보고 올라갔다. 500m쯤 된다고 하는데 가는 길이 온통 너덜지대다. 등산화를 신고 있어도 발목을 삐기 쉬운 곳이다. 지난 여름에 폭우피해가 있었는지 비선폭포 가는 길은 폐쇄됐다는 안내판이 있다. 삐죽삐죽한 돌맹이가 산사태 난 것처럼 쏟아진 곳이 많다. 용미폭포 앞도 폐쇄 안내문이 붙어 있는데 주변에 폭우에 휩쓸려 내려온 나무등걸과 바위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고 갈수기라 그런지 폭포에는 물이 보이지 않는다. 폭포에서 내려와 숙소가 줄지어 있는 계곡 반대편으로 건너가 산책로를 따라 내려왔다. 산책로라고 하기에는 상당히 가파른 길이다. 숲속 수련장으로 가는 길은 임도처럼 폭도 넓고 평탄하게 다듬어 놓았다. 아내에게 잔소리 안 들으려고 방으로 들어가 아침을 함께 먹고 짐을 쌌다. 연우가 불국사에 가자고 한다. 오늘 여정도 만만치 않을 듯.

10시에 휴양림을 나와 운문사로 향했다. 운문사는 화랑에게 세속 5계를 주었던 원광대사가 중창한 절이며, 일연스님이 삼국유사를 집필한 곳으로 알려졌다. 고려 무신정권기에는 운문산과 운문사를 중심으로 김사미와 초전의 난이 일어난 곳이다. 절 바로 앞까지 차를 가지고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있는데 우람한 소나무 숲을 차를 타고 지나가는 것이 개인적으로 아쉽다. 걸어서 들어가야 하는데....성영아빠 조언처럼 이른 시간인데도 사람들이 많다. 경주에서 가까운 지역에 있었던 때문인지 신라시대를 대표하는 삼층석탑과 임금이 관련된 절에만 있는 거대한 치미로 대웅전 용마루를 장식했다. 수많은 스님들이 거처했던 절답게 강의장인 만세루 규모는 전성기의 위용을 보여준다. 전체적인 가람의 배치는 왕궁을 방불케 한다. 하지만 일반인이 볼 수 있는 부분은 절의 1/3에도 미치지 못한다. 석가탑을 빼 닮은 3층석탑 두 개가 비로전 앞에 서 있는데 기단부분의 돋을새김만 다를 뿐 쌍둥이처럼 닮았다. 만세전 옆에 자리잡은 수백살 된 처진 소나무는 예천 석송령처럼 봄에 막걸리를 얻어 마시나 보다. 대웅전 앞에 자리 잡은 돌사자는 수백년 넘은 듯 쇠처럼 갈색이 난다. 절에서 나와 언양을 통해 경주로 달렸다. 가는 도중 봉계한우단지가 보여서 점심을 먹으로 들어갔다. 그 가운데 모범식당 한 곳에 들렀다. 과연 가격이 만만치 않다. 생구이 2인분과 양념구이 2인분을 시켰는데 맛도 좋고 가격도 엄청나다. 휴양림 하루치 숙박비가 점심값이다.

경주 남쪽외곽으로 해서 불국사에 도착했다. 초등학교 수학여행 이후 33년만이다. 불국사를 세운 김대성, 청운교, 백운교, 자하문에 대해 설명해주고 신라시대에 연못이 있었던 이야기와 아치형 건축기술에 대해 설명을 해 주는데 아이를 데리고 온 아주머니 한 분이 슬그머니 옆에 붙어서 설명을 들으라고 자기 아이들에게 주의를 준다. 오른쪽으로 돌아 절 안으로 들어가니 마침 다보탑이 수리중이다. 예전에 다보탑 가운데에 사방을 지키는 사자상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한마리 밖에 보이지 않는다. 석가탑에 얽힌 아사달과 아사녀 그리고 무영지 전설을 이야기 해 주고, 관광객들이 잘 가지 않는 대웅전 뒤로 올라갔다. 대웅전의 단청이 많이 바랬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이 되어서 예전처럼 맘대로 단청보수작업을 하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장모님을 처가에 모셔다 드리고 저녁을 먹고 7시에 집으로 오는 길에 올랐다. 지리적으로 먼 거리지만 영남알프스는 기회가 된다면 꼭 일주를 한번 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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