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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여행

아이들과 함께 오른 방태산 주억봉

by 연우아빠. 2008. 8. 3.

아이들을 데리고 올라간 방태산 주억봉

일정 : 2008.7.31~8.2(2박3일)
동행 : 유진이네 가족

* 그냥 기록차원에서 정리만 해놓고 올리지 않으려고 했는데 유진맘님 한말씀에 마음이 약해져서 걍 올립니다. 
   유진이네 버전도 기대하면서....특히 김유진 표 설악산 등산기^^

★ 정말 어려운 방 잡기

8월달 휴양림 추첨, 예년과 다름없이 모두 물먹고 줄서기와 낚시에 매진하고 있던 중 7월17일 방태산 당첨자 가운데 숙박을 포기한 예약자의 취소분 하나를 운좋게 주웠다. 8월1일 점봉방. 작년에도 여름 방태산에 한번 가보려고 대기를 해서 6개나 1순위를 잡았으나 한달동안 단 한 군데도 취소자가 없었던 터라 용꿈 꾼 기분이었다. 더 이상 취소분이나 대기를 해 봐도 희망이 없을 것 같아 방태산 야영을 주말에 할 계획이었지만 우연히도 유진이네가 예약을 한 곳도 같은 방이고 날짜도 7월31일이라 유진이네 제안으로 방태산에서 최소한 2박3일은 할 수 있는 행운을 잡게 되었다. 회사일정 때문에 틀어질 것을 대비해 아예 2주전에 휴가원을 냈다. 7월25~27일까지 남도 여행을 하고 왔지만 휴양림 정기를 받아 그런지 몸 상태는 아주 좋았다.

 

★ 길에서 시간 다 버린 여정

7월31일 아침, 5시 30분쯤 눈을 떴다. 짐을 챙겨 테트리스 하듯 차곡차곡 차에 집어 넣었다. 잘 챙겨 넣으니 뒷열 의자 높이와 거의 같은 수준으로 짐을 정리할 수 있었다. 나름 흐뭇함. 그러나, 가족들은 세월이 가도 출발시간은 개선될 기미가 안보인다. 이번 주가 최대휴가인파일 것이라 예상하는 방송도 나와 길에서 시간을 다 버릴 것 같아 일찍 출발하자고 입이 닳도록 얘기했지만 굼뱅이 걸음은 하나도 개선되지 않았다. 9시부터 준비를 시작한 것이 11시가 거의 다 돼서야 출발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시골에 남매계 모임에 가신다고 해서 이번에도 함께 하지 못했다. 외곽순환도로에 올라서서 평촌을 지나면서부터 막히기 시작한다. 갑갑하다. 유진이네는 오후 2시쯤 출발한단다. 하남에서 외곽순환도로를 나왔으나 길은 더욱 막힌다. 한강 남쪽을 따라 양수리까지 가서 양근대교 쪽으로 접근하기로 하고 달렸다. 하지만 잠시 잘 나가던 이 길도 88번 도로 입구부터 하염없이 기어간다. 양근대교를 건넌 것이 1시가 훌쩍 넘은 시간. 중간에 강원도자연환경연구공원(033-433-1994)을 찾아 구경하려고 했으나 기약이 없고 간신히 2시가 넘어서야 6번 국도에서 제대로 속도를 낼 수 있었다. 장원막국수(033-435-5855)집에 들러 시원한 막국수를 먹고 유진아빠 생각나서 옥수수동동주 1병을 샀다. 집에서 2년째 잠자고 있는 산삼주 한병도 챙겼는데 이틀동안 이거면 될려나? 하면서 휴양림 가는 길을 재촉했다. 강원도자연환경연구공원은 돌아가는 날 찾아보기로 하고 인제 입구에 있는 강원참숯에 들러 숯 5kg을 사서 휴양림에 도착하니 5시가 넘었다. 200km도 안되는 길을 6시간이나 걸린 것이다. 이틀치 모두 체크인을 하려고 했더니 그렇게는 안된단다. 내일 것을 내일 내려와서 체크인을 따로 하란다. 손님 귀찮게 만들 필요가 없을 듯 한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점봉방에 짐을 내려놓으니 유진이네는 1시간 쯤 있으면 도착한다는 연락이 왔다. 얼른 밥 지을 준비를 해 놓고 준기를 대리고 계곡으로 내려갔다. 얼음처럼 차가운 계곡물에 세수를 하니 비 오듯 흘린 땀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기분이다. 그동안 비가 많이 온 듯 계곡물이 많이 불었다. 물놀이를 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역시나 물이 차갑다. 휴양관 앞에 숯불구이 통이 4개밖에 없는데 벌써 두 가족이 차지하고 있다. 얼른 짐을 갔다 놓고 아이들에게 지키라고 하고 저녁준비를 시작했다.

 

★ 맛있는 저녁, 행복한 이웃

6시 조금 넘어 유진이네가 들어왔다. 유진이는 사촌과 함께 용대휴양림에서 5박6일 수련회에 가서 지환이만 데리고 들어오셨다. 자주 보는데도 여전히 반갑다. 반가운 인사를 하고 씻어 둔 채소를 들고 먼저 자리를 잡으러 내려왔다. 토치로 숯에 불을 붙이는데 장마철에 만든 숯이라 그런지 불꽃과 숯 파편이 사방으로 튄다. 잘못하다간 화상입을 것 같은데 다음에는 숯불구이 통에 토치를 걸고 멀찌감치 피해 있을 수 있도록 고리를 만들어야 겠다. 마나님들이 준비한 음식을 모두 챙겨 내려오고 아이들도 작은 것 하나씩 들고 내려와 모두 자리를 잡았다. 유진이 아빠 주려고 집에서 가져온 산삼주를 꺼냈다. 옥수수동동주는 내일 등산가서 마시자고 한다. 신불산 가신 현지아빠께서 산삼 한뿌리 발견하셨을까 얘기하며 유진이네가 가져온 장어를 구웠다. 양념을 발라 잘 구운 장어를 먹으니 별미다. 아이들은 가시가 있다고 징징거리는데 싫으면 먹지말아라 내가 다 먹을란다 하며 맛있게 쌈 싸먹었다. 밥은 일부러 적게 했는데도 나만 두 그릇 먹고 그냥 남았다. 장어양념구이를 끝내고 목살을 굽는데 옆에 남은 식탁에 한 가족이 내려왔다. 경험이 많지 않으신 듯 불 피우는 게 영 신통치 않다. 유진아빠가 토치를 들고 가서 숯불 붙이는 방법을 알려주시고 직접 붙여 주시고는 꽁치 3마리를 받아왔다. 흐흣 ^^

맛있는 목살에 꽁치구이까지 골고루 맛보면서 산에서 불어오는 계곡 바람에 한기마저 느끼는 시원한 휴가를 맛본다. 숲에서 맛보는 고기에 가장 알맞은 술은 역시나 소주인가 보다. 유진아빠는 산삼주 반쯤 마시고 소주로 바꿨다. 나를 빼고 어른 셋이 산삼주 >소주 >옥수수동동주로 권커니 잣커니 한다. 물컵과 술잔을 같이 쓰다 보니 준기 녀석이 소주가 담긴 컵을 물인 줄 알고 마신 모양이다. 맛이 이상하단다. 아이고 이런....

41번째 휴양림 여행을 하게 되니 사진찍기가 게을러 진 것일까? 이야기하며 먹는데 열중하느라 사진기는 꺼내지도 않았다. 유진아빠 형님이 농사지은 초대형 수박이 나왔다. 45리터 아이스박스에 간신히 들어갈 정도로 큰데다가 맛도 정말 일품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단맛이 골고루 배어 있다. 역시 좋은 이웃 근처에 살아야 이런 행운도 있는 것이다. 시중에서 쉽게 맛볼 수 없는 상등품 수박의 아삭하고 단 맛은 서늘한 계곡바람과 함께 신선이 된 느낌을 준다. 빗방울이 두어방울 떨어지는 것을 핑계로 타프를 치고 유진맘께서 끓여주신 밀차(밀차였나 메밀차였나 뭐였더라? 단기 건망증이 심해지는 40대 중반이라 이젠 메모지를 달고 살아야 할 듯)로 뱃속을 따뜻하게 보하고 나니 한여름 밤의 휴가가 무릉도원 같다. 내일 등산을 위해 11시쯤 자리를 파하고 잠을 청했다.

★ 겨울 같은 주억봉 등산

8월1일 아침, 눈이 저절로 떠졌다. 창문 위로 하늘이 보인다. 아! 어렸을 때 한여름 서늘한 마루에 누워 하늘을 보고 이렇게 편안하게 여름 하늘을 쳐다본 것이 얼마만인가? 지난 주 낙안과 천관산의 느낌과 완전히 다른 서늘함이 온 몸을 편안하게 감싼다. 숲은 온통 짙은 안개에 둘러 싸였다. 유진아빠가 새로 산 캐논 450D를 들고 이단폭포에 가보자고 한다. 카메라 사용법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해 주고 유진아빠는 이단폭포와 주변을 열심히 찍으며 기계적응에 몰입했다.


2일 아침, 비를 맞아 더욱 초록빛 가득한 휴양관 앞 나무들


마당바위에서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는 유진아빠

아침을 먹고 아이들을 데리고 주억봉에 올라가기로 했다. 우리는 빵이랑 물만 가지고 올라갈 생각이었는데 유진이네는 유부초밥 재료를 준비해 와서 초밥을 싸고 컵라면 2개와 보온병에 물을 끓여 넣었다. 거추장스러울 것 같은 짐을 줄이려고 카메라는 50mm 단렌즈로 바꿔 끼웠다. 소매가 긴 등산복과 방풍자켓은 필요 없을 것 같아 뺐다. 우리 차에 모두 타고 등산로 입구까지 올라가는데 야영장은 꽉 찬 상태다. 데크 바로 옆에 차를 대도록 만들어 놓아 조용한 야영은 힘들 것 같은 분위기다. 아침에 유진아빠가 확인해 보니 매일 대기자만 25가족 정도라고 한다. 빠져 나가는 데크는 하루 10개 남짓...작년 맨땅 야영 때문에 불거진 민원 탓인지 휴양림 안내소에서 아주 딱딱하게 운영하나 보다. 어제도 체크인 하는데 그냥 둘러보러 온 사람들도 입장을 시키지 않고 다 되돌려 보내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등산로 입구 주차장에는 차가 10여대 남짓 밖에 없다.


매봉령 올라가는 길

11시 20분 우리는 왼쪽 매봉령(해발 1,249.2m)을 향해 출발했다. 계곡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과 이따금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은 땀으로 젖은 몸을 시원하게 감싼다. “산 위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 그 바람은 좋은 바람 고마운 바람” 노래가 절로 난다. 비가 많이 와서 그런지 등산로 두어 곳은 계곡물이 차지한 도랑이 되었다. 투덜거리고 지치지도 않고 종알대는 아이들을 달래서 완만한 계곡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능선이 보일 때 쯤 드디어 자세를 바꿨다. “자꾸 징징 거리면 여기 버리고 간다” ㅎㅎ. 효과가 좀 있다. 아이스크림 카드는 좀 더 있다가 내 놓아야겠다.

중턱쯤부터 주억봉 근처까지 멧돼지가 그랬는지 산을 온통 밭을 갈아놓은 듯 뒤엎어 놓았다. 산에서 멧돼지를 만날까봐 은근히 걱정이 들었다. 이거 호랑이라도 한 마리 방목해야 하는 것 아닐까 싶을 만큼 맷돼지 흔적이 너무 많았다. 산에서 아주 드물게 사람을 만났다. 이 시기에 여기까지 등산하러 오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인지 우리가 너무 늦게 등산을 나선 것인지. 아무튼 초겨울에 본 방태산과는 너무 다른 밀림 같은 방태산이었다. 처음에 완만하게 시작하는 매봉령 올라가는 길은 중턱쯤부터는 심한 경사길이라 아이들이 점점 짜증을 냈다. 그래도 올라간다. 니들이 결국은 올라갈 것이기 때문에.

오후 2시가 거의 다 돼서 매봉령에 도착했다(출발점에서 3.1km). 바람이 얼마나 심한지 한기를 느꼈다. 유진이네가 가져온 컵라면을 연우랑 준기가 거의 다 냠냠 해 버리고 유진이네가 준비한 작은 돗자리를 펴고 음식을 내 놓았다. 연우에게 냉두드러기 증세가 나타나서 유진이네가 가져온 비옷을 입혔다. 그러고 보니 거의 다 유진이네가 준비해 온 것이로군. 우리는 자두 14알, 빵, 그리고 얼음물. 한여름인데도 매봉령에서 부는 바람은 작년 10월 하순 영하 10도가 넘던 그날 그 바람이랑 별반 차이를 못느낄만큼 차갑다.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하늘을 완전히 가린 구름이 꼭 비가 올 것 같다. 잠시 갈등하다가 유진이네가 비옷 하나를 더 챙겨왔다고 해서 그냥 구룡덕봉으로 가기로 했다. 차 안에 아이들 비옷이 다 있는데 필요없을 것 같아 그냥 두고 온 것이 후회스럽다. 좀 무겁더라도 장거리 산행인만큼 챙겼어야 했는데. 작은 돗자리도 차 안에 그냥 두고 왔으니 앉아서 쉬는 것은 포기. 갑자기 저 너머에서 오토바이 소리가 요란하다.


매봉령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구룡덕봉(해발 1,388.4m)까지 1.5km인데 여기서부터는 완만한 능선길이다. 겨울과 달리 사방 우거진 수풀과 나무에 주변 조망은 겨울처럼 탁 트이진 않았다. 40여분을 걸어가는 동안 오토바이가 남긴 패인 흔적, 멧돼지가 남긴 흔적, 그리고 자동차 길처럼 넓은 임도가 마치 대로를 걷는 것 같다. 우리 어렸을 때는 거랑 근처에 흔하던 잠자리가 여기서는 산 꼭대기에 와글와글 모여 사나보다. 유진아빠는 날아가는 잠자리도 그냥 잡는다. 가히 소림사 무공이라 할 만하다. 잠자리 힘자랑 시키고 날려보내고 하면서 아이들 투덜거림은 많이 줄었다. 매봉령에서 40분 걸려 구룡덕봉에 도착하니 바람이 더욱 심하다. 하늘 가운데 휑하니 붉은 흙이 드러나 황량한 모습으로 구룡덕봉이 우리를 맞아 준다. 자동차 길이 아니라는 등산로 안내지도가 무색하게 자동차가 많이 올라오는 듯 벗겨진 구룡덕봉은 큰 비가 쏟아지면 흙이 아래로 쏟아질 것 같아 산사태가 나기 전에 잡초라도 덮어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 매봉령 방향을 보니 우리가 올라온 길이 산에 생채기를 남긴 것처럼 뚜렷하게 보인다.


구룡덕봉에서 매봉령 방향을 본 모습, 산의 생채기가 뚜렷하다.

잠시 서 있기도 힘들만큼 바람이 사방에서 덤빈다. 인증사진을 찍는 몸이 흔들려 유진이네 가족 찍어준 사진이 제대로 초점이나 맞았는지 모르겠다. 계절이 늦게 가는 때문인지 8월인데도 꽃이 한창이다. 꽃 사진만 본다면 꼭 5월달 같다. 꽃 이름은 대체로 잘 모르므로 패스.


구룡덕봉에서 유진아빠가 찍어준 가족사진, 바람이 장난이 아니었다


구룡덕봉에서 본 주억봉

구룡덕봉을 지나 이제 주억봉 아래 삼거리를 향해 길을 잡는다. 구룡덕봉에서는 그렇게 매서운 바람도 바로 옆 숲길로 들어서자 조용하다. 다만 머리 위에 있는 나무를 휩쓸고 가는 것처럼 바람소리가 요란하다. 늠름한 주목이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꿋꿋하게 서 있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 이라는 주목은 역시 주목받을만 하다. 준기가 미끄러운 길에 두어번 엉덩방아를 찧었다. 당최 끝없이 말을 하느라 앞길을 살피고 가는지 모르겠다. 원성이 하늘을 찌를 듯해서 드디어 아이스크림 카드를 꺼냈다. 6시 전에 내려가면 매점에 가서 아이스크림 사주겠다고 하니 언제 그랬냐 싶게 잘도 간다. 40분쯤 지나 4시가 거의 다 돼서 삼거리에 도착했다. 유진맘님 제안으로 아녀자들은 삼거리에서 휴식을 취하기로 하고 유진아빠와 나만 주억봉(해발 1,443m)으로 갔다. 카메라만 달랑 들고.

 
방태산 제1봉 주억봉 위쪽 꽃밭. 평지에 비해 계절이 2개월 쯤 늦게 가기 때문에 이 때 산 위에는 꽃이 한창입니다.


주억봉 인증샷, 심한 바람에 머리카락이 엉망이라 공개하고 싶지 않은 사진.

10여분 쯤 걸려 주억봉에 도착했다. 거기서 해발 70cm가 더 높은 언덕에 올라 주변 야생화 사진을 찍었다. 바람은 더욱 세차가 몰아치고 검은 구름이 하늘을 뒤 덮을 듯 몰아온다. 평소 벼락맞을 짓을 했는지 되짚어 봐야할 상황 같기도 하고. 사진기를 들고 제대로 사진을 찍을 수 없을 만큼 강한 바람을 맞으며 서로 정상 인증샷을 날리고 삼거리로 내려왔다. 정상에서 마시려고 했던 옥수수 동동주 남은 것은 잊어먹고 올라와 휴양관 냉장고에서 자고 있다. 가족들과 다시 만나 하산길을 재촉한다.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싫어하는 급경사 내리막길. 스틱이 없다면 이런 길을 절대 사절이다. 하산 길에는 언제 바람이 불었냐 싶게 조용하다. 우거진 숲은 가도 가도 끝없이 지루하게 이어진다. 작년에 겪어 본 길인데도 그 지루함이 여전하다. 단풍철에는 그나마 좀 덜했던 것 같다.


주억봉 정상에서 구룡덕봉쪽을 보고 찍은 모습.

"방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오를리 없건만은
연우는 제 아니오르고 뫼만 높다하더라"


주억봉 아래에 핀 나리꽃, 세찬 바람에 흔들려 16장을 연사로 찍어 간신히 촛점이 맞는 사진을 하나 얻었다.

오후 6시, 10.2km를 걷는 방태산 가족등산은 6시간 40분만에 끝났다. 준기와 함께 마당바위에 도착해 미리 도착한 사람들과 함께 탁족을 시작했다. 양말을 벗고 물 속에 발을 담그자 뼈를 파고드는 차가움이 송곳처럼 머리를 찌른다. 발은 금새 빨갛게 변한다. 해발 1천미터가 넘는 산은 역시 여름에도 준비를 단단히 하고 올라야 하겠다. 다행히 멧돼지를 만나진 않았지만 해가 짧은 가을이었다면 위험하겠다.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올라간 길이어서 더 주의해야 했는데 한번 올라가본 길이라고 좀 가볍게 생각했음을 반성했다. 매점에서 약속대로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 하나씩 사 줬다.


힘든 등산을 끝내고 꿀맛같은 계곡 탁족(마당바위에서)


얼음처럼 차가운 물에 발을 식히고



보기만해도 시원한 마당바위 작은 폭포

 


뼈가 시리도록 맑고 차가운 계곡물(마당바위)

 

★ 휴양림관리사무소와 실갱이

휴양관 앞에 도착해 보니 우리가 쳐 놓은 타프가 없다. 사무소에 연락해보니 걷어서 매점 옆에 놔두었다고 한다. 올라갈 때 걷었어야 했는데 시간이 없다고 그냥 올라간 게 불찰이다. 타프를 걷어서 기름이 묻어 있는 석쇠 위에 그냥 올려놓아 고기 기름이 묻어 있다. 유진이네 의자도 그 위에 그냥 올려 놓아 기름 찌꺼기가 묻어있다. 기분 좀 그렇다. 저녁에 두어가족이 나와 고기를 굽고 있는데 휴양관에 앉아 밥을 먹는 우리의 코를 자극한다. 준기가 “우리는 왜 고기 안 먹어?”라고 묻는다.

“어제 먹었잖냐?”
“그건 어제고”
"뭣이라?”
“휴양림에서 고기 안먹는 건 너무해”

갈수록 가관이다. 내일 유진이 누나 오면 저녁 점심 때 고기 먹기로 했지 않냐고 달랬다. 두 가족이 가지고 온 반찬을 내 놓으니 1식 10찬 쯤 된다. 유진맘님 음식 솜씨 정말 훌륭하시고, 어째 거의 얻어먹는 것 같은 분위기다. 유진아빠는 준기맘 음식 맛있다고 칭찬하고, 이거 화기애애한 마실 분위기에 2박 3일은 너무 짧은 듯 한데 일기예보를 보니 내일 150mm가 넘는 비가 올 거라는 기상청 예보에 안주인들의 자세가 약간 후퇴하는 듯. 타프가 있어도 150mm는 어째 좀 그렇다. 유진아빠가 관리사무실에 확인해 보니 매일 대기자가 25가족, 나가는 가족이 10여가족 정도란다. 내일 아침 7시부터 내려와 대기하라고 한다. 외부에서 오는 사람들은 새벽 5시부터 줄을 선다는 얘기를 한다고. 어째 생각대로 될 것 같지 않은 분위기다. 만약 비가 많이 온다면 대기자가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너무 많이 오면 야영하기가 좀 힘들 것 같은 분위기다. 

2일 아침, 역시나 상쾌한 하늘을 보며 눈을 떴다. 비가 온다. 기온도 많이 내려갔다보다. 오늘 설악산 캠프를 마치는 유진이를 데리러 유진네 가족은 새벽에 누룽지 끓인 것 드시고 용대로 출발했다. 아침을 먹고 필요 없는 짐은 차에 넣었다. 유진아빠가 10시가 넘어서 전화를 했다. 생각보다 많이 막혀서 2시간 가까이 걸려 용대에 도착했단다. 점심을 숯불구이 해 먹자고 해서 어제 입었던 옷으로 갈아입고 준기맘이 김치전 준비를 하는 동안 빗속에서 타프를 쳤다. 새벽부터 계속 비가 쏟아지니 휴양관 앞 바비큐 장에는 아무도 없다. 한참을 치고 있는데 어디선가 기분 나쁜 소리가 들린다. 나를 보고 하는 소린가 싶어 뒤를 돌아보니 휴양림 직원 옷을 입은 젊은 친구 서넛이 나를 보고 뭐라고 뭐라고 소리를 지른다. 거리가 멀어서 무슨 소린지 잘은 모르겠지만 타프 치지 말라는 소리 같았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무조건 치지 말란다. 슬몃 오기가 발동한다.

“왜 그러십니까?”
“아, 여기 타프 치면 안돼요”
“왜요?”
“그냥 안됩니다”
“대한민국에 그냥 안되는게 어디있습니까? 안되는 근거나 규정이라도 있습니까?”
“우리 팀장님이 안된다고 합니다. 어제도 타프 친 사람 때문에 우리가 치웠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전데요. 국립휴양림 40번 넘게 다녔지만 타프 안된다는 휴양림은 여기가 처음이네요. 팀장 말이 법은 아닐텐데 일방적으로 안된다는 근거가 뭡니까?”
“근거는 모르겠고요. 팀장님이 안된다고 하니까 우리는 막을 수 밖에 없습니다. 저기 몽골텐트 아래에서 해도 되지 않습니까?”
“팀장님 어디 계시는데요. 제가 직접 물어보죠. 몽골텐트는 돈 내고 빌리는 곳이 아닌 모양이군요. 그런데 지금 몽골텐트에는 사용자가 다 찼네요.”
“마침 여기 올라오신답니다. 오실 때까지 기다리세요”

1분쯤 있다가 깍두기 머리를 한 눈매 더럽다는 인상을 주는 사람이 차를 타고 올라왔다. 팀장인 모양이다 했는데 “보기 싫으니 치면 안됩니다.”라고 뱉듯이 던진다.

나는 성질이 났다.
“치면 안되는 근거가 뭡니까?”
“보기도 싫고,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됩니다” 여전히 퉁명스럽다.
“길 가 계곡에 붙어 있고, 비가 이렇게 오는 날 여기 나와서 숯불구이 하는 사람 보시다 시피 한명도 없고, 몽골텐트는 사람들 다 차 있고, 휴양림에서 타프 치지 말라는 규정도 없고 왜 안된다는 겁니까?”
“휴양림은 원상대로 사용해야 합니다. 훼손하면 안됩니다. 어제도 한 사람이 타프를 쳐 놓고 있어 우리가 걷었습니다.”
“그 사람이 전데요. 어제 밤에 빗방울이 떨어져서 쳤습니다. 오늘은 산에 갔다 오느라 아침에 걷지 못했네요. 타프 치지 못하게 해달라고 민원이라도 들어 왔습니까? 타프 치면 휴양림 원상이 훼손됩니까? 국립자연휴양림 40번 넘게 다녔지만 이런 이야기는 처음 듣네요. 근거규정이라도 있으면 보여 주시죠. ”

민원이 들어온 것은 아닌 모양이다. 하긴 내가 타프쳤던 자리에는 누가 놀다 놔둔 것인지 보기 싫게 비에 젖은 아이들 이동용 풀장세트와 은박지 돗자리가 널부러져 있다. 나를 꼬나보던 팀장이라는 사람은 우리가 점봉방에 머문다는 것을 확인하더니 못을 박는다.

“1시까지 퇴실이죠? 1시까지 타프도 걷으세요. 아니면 우리가 걷겠습니다”
“알겠습니다. 1시에 철수하죠” 

팀장은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는 묵인해 주겠다는 뜻으로 해석했고 직원들 앞에서 팀장 권위를 뭉개지 않겠다는 뜻으로 말은 그렇게 했다. 팀장이라는 사람은 다른 직원들에게 그냥 놔두라고 하고 야영장쪽으로 차를 몰아 올라갔다. 타프를 다시 치면서 쓴 웃음이 났다. 뭐 이렇게 비오는 날 싸울 필요 있나, 그냥 몽골텐트 옆에 비집고 들어가 점심 먹으면 되지. 그러다가 “비오는 날 타프치고 계곡물 보면서 발 담그고 놀다가 늦게 가리라” 다짐했다.

11시가 넘어서 유진네 가족이 돌아왔다. 오늘 야영은 못하니 느즈막히 출발하리라 생각하며 밖에다 점심을 차리고 짐은 차에 모두 넣었다. 1시가 거의 다 됐다. 아래로 내려가 키를 반납하고 점심을 먹기 시작했다. 정작 유진이와 사촌인 진주는 김치전을 너무 먹더니 유진아빠가 준비한 장어양념구이와 돼지고기 숯불구이는 먹는둥 마는둥이다. 하늘은 갤 듯 말 듯 하다가 다시 비를 쏟아 붇는다. 하늘이 갤 듯하면 구라청 원망스럽고 비가 쏟아지면 가기 싫고 뭐 그런 상태로 3시 넘어서까지 고기도 구워먹고 차도 마시고 앉은 채로로 졸기도 했다. 유진아빠와 준기맘은 각자 차에서 낮잠을 자고. 그 사이에도 우리만 보면 휴양림 직원들이 타프 걷으라고 잔소리를 한다. 걍 무시하고 개긴다. 나도 성질 더러운 놈인데 니들 사람 잘못봤다. 쓸데없는 오기가 발동한다. 키를 반납해서 인지 휴양림 안내소에서는 잘 귀가하시라는 안내메시지가 두 번이나 들어왔다. 나참.


유진이와 진주가 온 다음에 점심을 먹고

3시 반이 넘어 유진아빠가 일어나고 비가 거의 그친 가운데 기상청을 타박하며 타프를 걷었다. 작아서 유진이가 입지 못하게 된 옷과 하동에서 가져온 감자, 그리고 남은 수박을 받아 챙기고 아쉬운 작별을 고하고 다음에 또 함께할 기회를 기약했다. 이거 어째 우리는 받기만 하는고? 

돌아오는 길에 들리기로 한 강원도자연환경연구공원은 입구로 들어가는 갈림길에서 6시 가까이 되어 포기하고 홍천을 지나 양평으로 달렸다. 비가 계속 오는데도 들어가는 차와 나가는 차가 끝없이 이어진다. 샛길을 찾아 움직일까 하다가 좀 밀리더라도 팔당댐을 건너는 길을 타기로 하고 그냥 갔다. 쏟아지는 비에 멈춰선 차들이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을 때 쯤 오른쪽으로 팔당댐으로 빠지는 길이 보인다. 쏜살처럼 달려 팔당댐을 건너 외곽순환도로를 타고 오는데 비가 억수같이 쏟아진다. 10시 조금 못 돼 집에 도착했는데 짐도 내리지 못하고 집으로 달려 들어갔다. 유진이네랑 함께 한 방태산 휴양림은 한여름밤의 꿈처럼 짧은 여행이었지만 다음날 상큼하게 갠 날씨만큼 좋은 기억을 아이들에게 남겼으리라 생각한다. 

아우! 더버라. 이 긴 여름의 초입에 다음은 어디가지?

PS) 한라산 윗세오름이 힘들어? 방태산이 힘들어? 하고 물었더니 두녀석이 모두 방태산이 더 힘들었다고 합니다. 아이들 데리고 방태산 올라갔다고 휴양림관리사무소 직원들이 혀를 내 두르더라는 유진아빠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애들은 생생한데 정작 준기맘이 힘들답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