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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여행

방장산자연휴양림

by 연우아빠. 2008. 8. 11.

방장산 자연휴양림 여행

2008.8.8~8.10(2박3일)

★ 예기치 않은 방장산 빈방

이제 남은 국립자연휴양림 여섯군데를 금년 안에 다 돌아보기 위해 일정을 잡고 있었는데 목요일 아침 출근길에 방장산에서 베짱이 방 2박3일 예약가능하다는 문자 문자메시지. 9월에 방장산 예약한 것을 취소하고 가 보기로 하였다. 시아버지 모시면서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준기 맘이 시아버지를 모시고 가야 하지 않겠냐고 하는데 아버지는 피곤한데 뭘 또 먼 곳에 가냐고 안가겠다는 반응을 보인다. 아버지 모시고 가려고 일부러 야영이 아닌 방을 잡은 것인데 무조건 가야 한다고 우겨서 약속을 받았으나 연달아 주말에 휴가내기가 눈치 보여서 전전긍긍했다. 금요일 숙박을 취소하려는데 아내가 그냥 가잔다. 토요일 아침에 출발해 봤자 우리 식구 늦을 것은 뻔하니 밤이라도 그냥 가는 게 낫지 않겠냐는 의견. 금요일 퇴근 무렵 치과에 들렀다 간다고 실장님께 양해를 구하고 집으로 가면서 문자메시지로 준비할 것 체크했다. 준기맘도 시아버지께서 막내 집에 가서 일주일 정도 계시다 와서 그런지 기분이 상당히 좋아진 듯 준비상태가 아주 좋다. 저녁은 차안에서 김밥으로 해결하기로 하고 6시 30분 집에서 출발. 경부선 쪽은 천안-논산 고속도로로 가면 거리는 가깝지만 많이 막힐 것이고 서해안 쪽은 막히는 구간이 있더라도 110km/h 제한속도이니 평균속도는 서해안 쪽이 유리할 것 같아 39번 국도를 타고 한참 내려가다 발안에서 서해안 고속도로로 들어갔다. 무척 덥더니 군산을 지나자 소나기가 한참 쏟아졌다. 예상과 달리 길이 거의 막히지 않아 중간에 한번 쉬었음에도 9시 조금 넘어 휴양림에 도착했다. 서해안 고속도로와 호남고속도로의 가운데에 있어 접근성은 아주 좋은 휴양림이다.

★ 방장산 물놀이장과 억새봉 등산

베짱이 방은 안내사무소 오른쪽에 있고 개미방(직원 숙소)과 붙어 있는 연립동이다. 바로 앞에 텔레토비 동산 같은 체험학습장 4동이 예쁘게 붙어 있는데 독립성이 좋아서 호젓한 것이 좋았다. 여름이라 보일러를 틀지 않으니 보일러 소음도 없고. 직원들은 개미처럼 열심히 일하라고 개미방이고 손님은 베짱이처럼 재미있게 놀라고 베짱이 방인가? ^^ 아이들 간식 먹고 일기 쓰고 내일을 위해 샤워하고 일찍 자기로 했다.


꼬꼬마 텔레토비가 나올 것 같은 체험학습장

9일 아침 6시에 일어났다. 바깥에는 나방들이 꽤 많이 붙어 있다가 사람이 나오니까 날아간다. 처마 바닥에 풍뎅이가 죽은 듯 앉아 있다. 준기에게 보여 주었더니 장수풍뎅이 암컷이란다. 문 앞에는 어린 장수풍뎅이도 있다. 오늘은 오전에 휴양림 물놀이장에서 놀고 그동안 나는 방장산 등산을 다녀오고 점심 후에 휴양림 밖에 나가든지 체험학습장에서 놀기로 했다. 10시가 되지 않았는데도 사람들이 물놀이장으로 많이 올라간다. 입장료만 내면 되니까 이웃에서 많은 사람들이 오는 모양이다. 물놀이 도구를 챙겨 가보니 통행에 방해되지 않도록 주차정리를 해 주시는 직원도 있고, 물놀이장에는 안전관리를 해 주는 직원도 있다.  

 
냉두드러기 때문에 이런 자세로 떠 다니는 연우

아이들에게 튜브 바람 넣어주고 혼자서 등산길에 나섰다. 10시 10분. 임도 입구에 도착하니 안내지도에는 방장산 정상까지 8km라고 써놓았다. 예상보다 너무 먼 거리라서 조금 망설였다가 가는 데까지 가보자고 올라갔다. 순환임도가 아스팔트로 포장한 길이라 그 길을 피해 가운데 숲속 길로 올라갔다. 사람들이 별로 안다니는 길인 듯, 길은 흔적만 조금 보인다. 조금 올라가니 다듬어 놓은 계단식 길도 있고 등산로 같다. 엄청나게 덤벼드는 날벌레와 씨름하며 20분쯤 올라가니 임도가 나온다. 거기에 있는 길 표지에는 왼쪽으로 패러글라이딩 장(억새봉)까지 1.7km, 오른쪽으로 방장산 정상까지 1.7km라고 써놓았다. 무척 헷갈린다. 그렇다면 일단 억새봉을 가보기로 했다. 뙤약볕이다. 아스팔트와 자갈길에서 나오는 열기에 피부가 화끈거린다. 물에 적신 손수건을 머리에 쓰니 조금 낫다. 10분쯤 걸어서 억새봉에 도착하니 200도가 넘는 시야가 탁 트였다. 기온이 높아 시계는 조금 흐릿했지만 패러글라이더를 타고 하늘에 몸을 맡기고 싶은 느낌이 든다. 파노라마 사진처럼 여러조각으로 잘라 사진을 찍고 내려오려다 안내도가 있어서 살펴보니 임도 갈림길 가는데 3백미터 밖에 안되는 샛길이 있다. 조금 허탈함. 그 길에서 방장산 정상까지 1.7km라고 표시해 놓았다. 샛길로 내려가니 숲이 해를 가려 시원하다. 아마 임도는 패러글라이딩 장비를 싣고 올라오는 사람들을 위한 길인가 보다. 금방 임도 갈림길에 도착했는데 정상으로 가는 길이 안보인다. 임도를 따라 내려와보니 휴양림 물놀이장에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바로 아래처럼 들린다. 길을 잘못 찾았다는 생각에 되돌아 올라가려는데 준기맘에게 문자가 왔다. 애들이 추워한다고 얼른 점심 먹고 밖에 나가보자고 한다. 할 수 없이 등산은 내일로 미루고 물놀이장으로 내려왔다.

 
아이들 놀기에 딱 좋은 방장산자연휴양림 물놀이장

풀장 주변에는 돗자리에 텐트를 친 사람들이 삼겹살 구워놓고 대낮부터 술판이다. 어른들의 놀이문화가 좀 그렇다. 탈의실에 가서 바지만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상의는 등산복 그대로 입고 풀로 들어갔다. 물이 미지근해서 아이들 놀기에 딱 좋은 듯 한데 연우는 냉두드러기가 났다. 준기도 춥다고 하고.. 그래도 30분쯤 물에서 더 놀았다. 나가기가 싫다. 숙소로 내려오는 길에 안내소에 가서 체험학습장 이용에 대해 물어 보았더니 오늘부터 장성 축령산에서 ‘O2장성축령골’ 산소축제를 연다고 한다. 그 행사에 체험학습장 선생님들이 참여하기 때문에 이번주는 체험학습을 하지 못한다고 한다. 연우는 거기가면 누름꽃 체험학습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지 가자고 조른다. 일단 축령산으로 가보기로 했다.

★ ‘나무 심는 사람’의 기적, 장성 축령산과 고창 여행

점심으로 비빔국수를 해 먹고 나서 방 구석에서 뒤집어져서 꼼짝도 안하는 커다란 지네(7~8cm쯤)를 발견했다. 나뭇가지로 건드리니 움직이긴 하는데 살 것 같지가 않다. 처마에 내 놓았더니 개미들이 대거 몰려와 옮겨가버렸다. 타프 폴과 팩을 꺼내 빨랫줄을 하나 매어 젖은 옷과 수건을 널어 놓고 축령산으로 나섰다. 네비게이션을 따라 축령산 입구에 도착하니 이번 행사 때문에 차량은 출입불가라는 안내문이 임도 한가운데에 붙어 있다.  

 
임종국 선생님이 30여년을 가꾼 장성 축령산 편백나무 숲

차를 세워놓고 길을 올라갔다. 광복 이후 친일파 청산문제를 책을 통해 체계적으로 처음 거론한 춘원 임종국 선생(1929~1989). 경남 창녕사람인 임종국 선생은 자기 아버지와 은사의 친일행위에 대해 통렬한 반성으로 시작해 친일문학론을 통해 붓으로 친일한 사람들에 대해 체계적으로 비판적 정리를 시작한 분이다. 게다가 1956년부터 이 축령산에서 편백나무를 심기 시작해 30년동안 가꾸어 21세기에도 보전해야 할 아름다운 숲으로 만들어 놓은 분이다. 편백나무 숲길을 오르면서 ‘나무를 심는 사람’이라는 글이 생각났다. 말과 행동으로 실천하고 지행합일을 이룬 위대한 선각자가 만들어 놓은 아름답고 장엄한 편백나무 숲과 선각자의 행동에 경의를 표한다.

 
오동나무 잎은 이렇게 큰 줄 몰랐습니다. 할아버지가 만들어 준 오동나무 잎 가면

가도 가도 사람이 보이지 않고 행사장 같은 분위기도 나지 않아 이상해 하던 중 고개 넘어에서  MTB를 타고 내려오는 사람을 만나 길을 물었더니 행사장소가 여기가 아니란다. 올라온 길은 입구 반대쪽이라고 한다. 찻길로 더 내려가야 행사장이라고 하는데 네비게이션을 검색해도 찾을 수가 없다. 내일 다시 찾아보기로 하고 고창 선운사로 갔다.

선운사 주차장에 내리니 푹푹 찐다. 천년 세월을 지켜온 많은 거목이 개울을 따라 어두운 숲길을 만들었다. 차가운 개울물과 뜨거운 공기가 만나 대낮인데도 물안개가 자욱하다. 길 가에서 파는 복분자 주스를 2잔(1잔 3천원, 2잔 5천원) 사서 조금씩 마시면서 선운사로 올라갔다. 아이스크림 먹는 것보다는 훨씬 좋다. 저 복분자를 이용해 세계적인 지역특산품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복분자 술 말고 다양한 연령층이 즐길 수 있는 기념할 만한 이탈리아 젤라또 같은 명품을.

 
선운사 올라가는 길, 물안개가 피었습니다

선운사 개울물이 아주 더러워보였는데 안내판을 보니 물이 오염된 것이 아니라 숲에 참나무 종류가 많아서 참나무에서 나오는 탄닌 성분 때문에 물이 짙은 색을 띤 것이라고 한다. 선운사 사천왕문을 지나 절에 들어서니 다른 절과 달리 한 가운데 최근에 조성한 듯한 커다란 석등과 함께 스님들 강의장으로 쓰는 만세루가 있다. 절과 전혀 어울리지 않게 일본식 제조법을 따른 석등을 보자 영 아니다. 백제 위덕왕 때(서기 577년)에 만들었다는 천오백년 고찰에 어울리는 성의가 보이질 않는다. 차라리 없는 게 낫겠다 싶다. 게다가 대웅보전과 영산전(靈山殿) 앞에도 그와 비슷한 석등이 있어서 더욱 마뜩치 않다.

 
선운사 샘물

우물 앞에서 영산전과 만세루 앞에 있는 석등에 대해 아이들에게 설명하는 내 말을 들었는지 구경 오신 연세 지긋하신 분이 한마디 거드신다. 그 분도 그게 아주 불만스러워 보이셨던 모양이다. 그 분 말씀이 요즘은 불상을 만드는 장인들이 태국에 가서 공부를 많이 하는데 그 사람들이 태국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최근에 조성하는 불상에서 우리 전래의 모습이 사라지고 태국불상 같은 모습이 많이 보여 아주 좋지 않다고 하신다. 그라인더로 갈아 만든 석등에서 옛스런 맛은 없다. 저렇게 천년을 지나도 예술적인 가치는 없을 듯하다. 선운사 경내에 탐스럽고 배롱나무는 아름다운 꽃을 피웠다. 경내에 배치해 놓은 안내판은 예전에 보았던 어렵고 낮선 용어가 아니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글로 설명을 해 놓았다. 우리나라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문득 서유럽의 성당이 생각이 나서 대웅보전 공포 쪽을 올려다보니 공포와 처마 사이에 인물상이 줄을 지어 들어 있다. 문화는 이렇게 공통적인 생각을 갖는 보편성이 있다. 선운사 입구로 내려왔을 때 소나기가 쏟아졌다. 선운사 입구에 있는 특산물 판매장에서 풍천장어 3마리(34,000원)를 샀는데 양념장도 같이 준다. 작년 유니맘님이 샀다는 가격보다 4천원 비싸다. 오늘 저녁에 숯불에 구울 생각인데 아이들 반응은 별로다.

 
선운사에서 제일 아름답다고 생각한 풍경(가운데 건물은 영산전).
광각렌즈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굴뚝같았습니다.

 
선운사 사천왕문 앞 극락교. 단풍이 들면 더 아름답겠지요? 이렇게 찍어 놓고 보니 로마에서 본
테베레강의 산탄젤로 다리가 생각납니다.

5시가 넘은 시각이라 그만 휴양림으로 들어갈까 했는데 준기맘이 고창 고인돌 공원에 구경가잔다. 지구상에 남아 있는 고인돌은 모두 8만여기 정도 되고 그 가운데 절반은 한반도에 있으며 한반도 고인돌의 절반은 고창 근처에 있다. 그래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세계적인 명소가 되었다. 고인돌은 아시아 지역에는 한반도와 인접한 만주일대에 집중되어 있다. 가끔 산동성에서 몇 기씩 발견하는데 고조선 영역이라는 증거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제법 있다. 가장 발달한 선진적인 형태는 요하에서 대동강 사이에 집중되어 있고 요서와 대동강 남쪽에는 제조기법이 좀 떨어지는 형태이다. 어쨌거나 우리 민족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유적이다. 우리 고인돌과 거의 비슷한 형태의 고인돌은 영국과 에이레 지역에 있어서 문화적 보편성에 대해 색다른 느낌을 준다.

 

 


고창 고인돌공원(고인돌 축제 행사장 터에서 본 공원 모습)

 

 
고인돌 행사장, 고인돌 끌기 체험장

 

 


고인돌 축제 행사장 터, 오래된 줄이니 매달리지 말라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연우준기 남매는 기어코 매달려 봅니다.

고창 고인돌 공원 일대에는 수천기가 모여 있다. 3~4천년 전에도 이 지역은 사람이 살기에 아주 좋은 지역이었다는 증거라고 할 수도 있겠다. 넓은 평야, 비옥한 토질, 바다와 강과 육지가 모여있는 곳. 조선시대에도 이 지역은 풍수적으로 아주 좋아 보였나 보다. 최근까지도 이 근처에 묘를 쓴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드넓은 공원은 한두시간에 도저히 돌아볼 수 없을만큼 넓다. 아이들은 잔디밭이 좋은 체험장에서 줄에 매달려 놀고 고인돌 끌기도 해 본다. 소나기가 온 다음에 비스듬히 넘어가는 해를 받아 빛나는 초록색 공원은 세상이 참 아름답다는 것을 다시 느끼게 한다. 휴양림으로 돌아와 숯을 피우는 동안 숙소 앞에 커다란 거미 두 마리가 집을 짓기 시작하는 것을 발견했다. 준기를 불러 같이 봤는데 집을 짓는 모습이 정말 예술이다. 습기를 먹어 불꽃이 튀는 숯을 이번에 새로 만든 숯망 속에 넣어 놓고 멀찍이 떨어져 보고 있으니 훨씬 안전하다. 불을 피워 장어도 굽고 돼지목살도 구웠다. 아이들은 장어양념이 영 맛이 없어서 그런지 돼지고기만 찾는다.

★ 아내와 함께 오른 방장산, 내소사 여행

10일, 더워서 눈을 뜨니 5시가 조금 넘었다. 다시 눈을 붙이려고 하다가 방장산 등산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일어나 세수를 했다. 쌀을 씻어놓고 막 출발하려는데 아내가 같이 가자고 일어난다.  6시 반쯤 출발. 임도 입구까지 차를 타고 가자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방해된다고 걸어가자고 했다. 물놀이장에는 물을 깨끗이 비워놓았다. 날벌레가 많은 숲길을 피해 임도를 따라 올라갔다. 임도와 만나는 갈림길 표지 앞에서 어제 발견하지 못한 길이 방장산 가는 길이 패러글라이딩 장에서 내려오는 길과 바로 이어져 있는 것을 확인하고 좀 허탈했다. 왼쪽으로 가면 패러글라이딩 장, 오른쪽으로 가면 방장산. 먼저 오른쪽 방장산 정상으로 갔다. 임도 입구에서는 방장산 정상까지 1.7km라고 표시되어 있어서 가볍게 생각했는데 1.7km지점에는 철탑만 서 있다. 방장산 정상은 한참을 더 가야 하는데 500ml 얼음물병 하나만으로는 벌써 더운 기운이 나는 산길을 걷는 게 좀 걱정스럽다. 아내가 그냥 가 보잔다. 지난번 방태산 올라갈 때 다리가 후달려서 힘들었는데 그 덕분인지 어제 축령산 올라가는 길은 아주 가벼웠단다. 몸이 좋아지는 느낌이 있어서 그런가 일단 뙤약볕을 가려주는 숲길로 계속 이어진 것 같아 가보기로 했다. 역시나 남쪽이라 그런지 거미가 수도 없이 줄을 쳐 놓았다. 발길 닿는 곳 마다 수많은 날벌레가 사방으로 날아간다.

 
방장산 정상(해발 742.8m)에서 건너다 본 장성 갈재방향 능선

가을 하늘처럼 파란 하늘, 하얀 구름, 발 아래 가득한 구름바다. 아이들 떼놓고 둘이서만 해 보는 두 번째 등산. 오래 걸은 것 같은데 임도 갈림길에서 30분만에 방장산 정상(해발 742.8m)에 도착했다. 아내가 슬슬 배가 고프다고 한다. 먹을 것을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았으니, 물은 입안만 축일만큼만 입에 담고 아내 마시라고 물병을 주었다. 발아래 보이는 하얀 구름바다는 아내 말처럼 등산에 중독될만큼 아름답다. 이 넓은 산에 우리 단 둘이서만 이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다. 기념사진을 찍고 10여분 정도 머물다가 내려왔다.

 
방장산 정상에서 본 풍경

 

 
방장산 정상의 구름바다

아내는 힘들어하면서도 패러글라이딩 장을 보고 가자고 한다. 갈림길에서 5분도 걸리지 않아 억새봉에 도착했다. 방장산 정상에서 1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짧은 거리인데도 배고프다고 생각하면서 걸어서 그런지 무척 오래 걸은 느낌이다. 아내는 패러글라이딩 장 발 아래 펼쳐진 구름바다의 장관을 보며 그냥 뛰어 내리면 구름이 받아 줄 것 같다고 한다. 아마도 수많은 패러글라이더들이 다가올 가을에 하늘에 몸을 맡기겠지. 아이들 걱정에 얼른 길을 재촉해 내려왔다. 임도나 가운데 등산로나 별반 시간 차이가 나지 않는 것 같다. 아버지에게 전화해 솥을 올려달라 부탁하고 밥이 끓을 무렵 숙소에 도착했다.

 
방장산 억새봉 패러글라이딩장, "뛰어 내리면 구름이 안아줄 것 같다"는 아내의 말처럼
솜사탕 같은 구름이 산 주변을 온통 감싸고 있었습니다.

밥을 먹고 나서 아내가 노곤하다고 해서 그냥 자라고 하고 출발 준비를 했다. 1시간 정도 자고 나서 일어난 아내와 함께 모두 즐거운 방장산 휴양림과 작별했다. 오늘은 어제보다 더 더울 거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햇살도 따갑다. 그러나 산에서 부는 산들바람에서 가을이 묻어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부안에 있는 변산반도 국립공원을 들러 20여년 전에 아내가 와 봤다는 내소사를 들러 보기로 했다. 변산반도 국립공원은 전체를 다 돌아보고 싶지만 어찌 그게 반나절만에 가능하겠는가? 젓갈로 유명한 곰소를 패스하고 내소사 입구 주차장에 도착했다. 주차비 엄청 비싼게 아닌가 걱정했는데 시간당 부과하는 주차비는 생각보다 아주 저렴했다. 국립이라서 그런가?

내소사는 백제 30대 무왕 때인 서기 633년에 지은 것으로 원래 이름은 소래사(蘇來寺)였다고 한다. 어떤 이유였는지 모르지만 임진왜란 이후에 내소사(來蘇寺)로 바뀌었다고 한다. 문득 무왕 때 절은 지은 혜구두타 스님이 소정방이 올 절이란 뜻으로 예언처럼 이름은 지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소사 들어 가는 길, 몇백년 된 것 같은 아름드리 나무가 장관입니다.

입구에서 아스팔트와 자갈이 내뿜는 뜨거운 열기는 숨을 턱턱막히게 한다. 그런데 입장료를 내고 문을 들어서는 순간, 아! 하는 감탄사와 함께 믿을 수 없는 풍경이 펼쳐진다. 하늘을 찌를 듯 솟은 우람한 나무와 평탄한 흙길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재작년 김천 직지사에 들어섰을 때 느꼈던 그 시원함이 기억났다. 산 꼭대기는 태고적 화산폭발 때 용암이 치고 올라간 것 같은 바위 덩어리가 장식하고 있다. 아름다운 길에 감탄하며 도착한 내소사는 사천왕문을 들어서는 순간 한국 건축의 아름다움에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한다. 산 능선과 한 몸처럼 멋드러진 건물 지붕의 날렵한 곡선과 적절한 가람배치, 안정적인 건물 자리와 맛배지붕의 간결함이 어제 선운사에 느꼈던 실망감을 완전히 날려버린다.

 

 
지붕 곡선이 산 능선과 조화를 이룬 날렵한 범종각

천년동안 절 마당을 지키고 선 느티나무의 웅장함. 오랜세월 날아가 버린 단청색에 옷을 벗고 서 있는 듯한 모습이지만 위엄과 아름다움을 조금도 잃지 않은 대웅전 모습. 그리고 오랜 세월 퇴색한 단청 흔적만 남았지만 문살 하나하나를 아름답게 장식한 연꽃과 각종 문양은 천년 세월을 뛰어넘는 아름답고 장엄한 건축미를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전하며 여행자에게 감동을 준다.

 
단청은 벗겨졌지만 천년 고찰의 담백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내소사 대웅보전

절을 휘감는 불경소리, 테이프나 CD에서 흘러나오는 독경소리 하나 없는 조용한 내소사였지만 자연의 소리와 어우러진 불교건축의 감동을 온 몸으로 느끼게 해 준다. 숨막힐 듯 담백한 풍경은 광각렌즈의 압박감을 심하게 느끼게 만들었다. 오랫동안 이 절이 준 감동을 기억할 것 같다. 이 절 근처에 있는 국립공원 야영장에 봄 가을에 꼭 찾아와서 이 절을 다시 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국립자연휴양림 순례가 끝나면 다음에 해 보고 싶은 것은 국립공원 야영장을 순례해 보고 싶다.


천년동안 내소사를 지키고 있는 느티나무(왼쪽)와 범종각(오른쪽)

절 입구에 있는 식당들은 호객행위를 하느라 경쟁이다. 부안군에서 이 아름다운 자산을 너무 안이하게 관리하는 것은 아닌지. 최고의 명소에 어울리는 좋은 방안을 찾아 이 지역 특산물을 맛볼 수 있는 대중적이고 운치 있는 그런 상가를 조성하는 것이 어떨는지. 서유럽의 고색창연한 성당에 비해 결코 떨어지지 않은 아름다운 자산을 너무 방치하는 것 같아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친절한 전라도 인심과 절제된 서비스로 조화를 이룬다면 세계적인 명소로 결코 손색이 없는 이곳을 이렇게 놔두는 것은 개인적으로 너무 아깝다. 입구 식당에서 산채비빔밥을 먹고 아쉬운 발걸음을 뗐다.

3시 반쯤 귀가 길에 올랐다. 귀가 길은 예상보다 엄청 빠른 속도로 서산근처까지 왔다. 서산-당진 구간은 많이 막혔으나 서해대교 넘어서면 39번 도로를 타기로 하고 그냥 진행했는데 청북IC 쪽으로 빠져서 39번 타고 집에 오니 6시 반쯤 되었다. 막히지 않으니 체력소모도 훨씬 덜하다. 집에 도착했더니 준기가 키우던 호랑나비 애벌레(나순이, 나돌이)가 산초나무 잎을 타고 탈출을 했다. 나순이는 책장 밑에서 찾았는데 나돌이는 행방불명. 나돌이가 살아 있으면 산초나무를 먹으러 나타날 거라는 생각에 아내는 방 곳곳에 산초나무를 깔아 놓았다. 똑같이 생긴 애벌레 같은데 준기는 나순이와 나돌이를 어떻게 구별하는지? 크기로 알아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