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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여행/유럽연수(2007년)

폼페이 (1)

by 연우아빠. 2008. 2. 26.

2007.12.27

로마에서 맞은 크리스마스.
사방은 조용하고 다니는 사람은 오직 관광객 뿐.
이제 귀국해야 할 날이 곧 다가온다.

먼길 힘들게 왔으니 한군데 오래 머무는 것보다 조금이라도 더 돌아다니고 싶은 여행자의 심리
오늘은 남쪽 폼페이를 가 보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우리나라 겨울과는 확연히 다른 따뜻한 날씨.
나폴리를 향해 로마를 출발했다. 지중해 해안을 따라 기차는 남쪽으로 내려가고
나폴리에 다가갈수록 이런 황량한 산들이 보인다.



세계 3대 미항이라고 부르는 나폴리.
하지만 나폴리는 쓰레기와 지저분한 모습만 보인다.
나폴리가 쓰레기 천국이 된 이유는 청소용역을 시에서 직접 하다가 마피아 조직이 세운 업체에 위탁을 하기 때문이란다.
마피아는 툭하면 청소요금을 올려달라고 요구하고 시에서 거부하면 거리에 쓰레기를 그대로 방치한다고 한다.
우리가 갔던 때도 마피아가 파업을 하여 나폴리 시는 한달 가까이 길거리에 쓰레기가 쌓여 있었다.



나폴리 중앙역에 내려 지역기차로 갈아타고 폼페이로 가야한다.
국영철도는 없고 민영철도만 다닌다고.



나폴리 역 앞에 있는 허름한 아파트.
이런 아파트는 백년 이상 된 경우가 많다고..


기차 시간이 좀 남아서 나폴리 시내를 둘러 보는데 북부 이탈리아 지방과 다르게 많이 낡고 더럽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누가 이 곳을 세계 3대 미항이라고 불렀냐?" 하는 비웃음(?)이 생기는 건 잠깐 보고 지나가는 나그네의 인상이겠지?



이탈리아 지방 철도는 G7국가의 모습이 이런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만큼 더럽기 이루말 할 수가 없었다.



나폴리 중앙역 여행안내소에서 폼페이로 가는 사철(私鐵)을 갈아타는 방법을 물어 보았다.
철도가 사영이라는 건 신기한 경험이었다. 표를 사는 것은 인포메이션 옆에 마트에서 팔고 있었다.



말끔하게 차려 입은 신사에게 폼페이 가는 방법을 물어봤을 때, 마치 브로커 같은 답변을 유창하게 해 주었다.
사철 타고 가지말고 자기가 알고 있는 차를 이용해 가면 1인당 300유로에 소렌토 만 투어와 함께 좋은 관광을 할 수 있도록
해 주겠다는 제안이었다. 워낙 이런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던 터라 패스.



사철 티켓을 사서 이 표지를 따라 내려가니 우중충한 역사가 나왔다.

안내 표지도 부실하고 확신이 서지 않아서, 역 안에 있던 이탈리아 여성분에게 길을 물어보았다.

폼페이로 가면 현대 도시를 말하는 것이고 폼페이 스카비 역에 내리라고 한다.

동양 남자 4명이 우왕좌왕 하는 것이 안됐는지 타는 기차를 콕 찍어서 알려주고 스카베 역에 내리라고 다시 일러 준다.

그 여자분은 고등학교 선생님이었다.


기차를 타고 우리가 내릴 역을 다시 확인했다.


폼페이 스카비(폼페이 폐허, 또는 유적) 역 표지를 보고 내렸다.

역 앞 노점에서 오렌지가 싸길래 한 봉지를 사서 나눠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티켓을 끊어 폼페이 유적 입구로 들어갔다.


저 멀리 보이는 산은 서기 79년, 이 도시를 삼킨 화산 폭발이 일어났던 베수비오 화산이다.

이렇게 가까이서 폭발한 화산을 본 당시 사람들 심정이 어땠을까?

하늘에서 화산탄이 쏟아지고 불덩어리들이 굴러다니고 끓는 용암이 도시로 밀려 내려왔을 때 그들은 얼마나 무서웠을까?


정교하게 다듬어 평평하게 포장한 2천년전 시내 도로 포장.

기술 수준이 그저 놀랍다.


신전의 폐허에서 신전 기둥의 구조를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신전을 지탱하는 기둥을 이렇게 주춧돌을 깎아내 끼워서 기둥을 세웠다.


높은 기둥을 만들 거대한 돌은 어떻게 마련했을까 궁금했는데,

가마에서 구운 전돌을 시멘트를 이용해 레고블럭 쌓듯이 둥글게 쌓아 올렸다.



각 기둥은 일정한 길이로 만든 다음 대리석으로 기둥의 외벽을 붙이고, 다시 수직으로 결합해 긴 기둥을 만들었다.

자세히 보면 기둥이 일정 간격으로 끊어져 있는 것을 알 수 있고, 기둥을 레고 블럭처럼 차곡차곡 쌓은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행태로 오랜 시간 지진에도 견뎌왔던 것이다.


미국에서 온 아이들은 저 기둥 위에 아무렇지도 않게 올라가서 사진을 찍었다.

별로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지만, 이탈리아는 이런 유적이 너무도 흔해서 별로 통제를 하지 않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용암에 덮였던 바닥은 발굴작업을 통해 식은 마그마를 걷어내서 2천년전 모습이 드러났다.


화산탄과 화산재의 습격에 파묻혀 있던 신전들은 기둥만 남은 폐허가 되었다.


2천년 전에 이렇게 잘 정비된 도시를 가지고 있었다는게 놀랍기만 하다.


저 멀리 베수비오 화산이 병풍처럼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고,

폐허에는 따뜻한 겨울 햇빛을 즐기는 개 2마리가 잔디밭에 배를 깔고 있었다.


남아 있는 기둥과 주춧돌만으로도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는 문명의 흔적이 싸늘한 겨울 공기와 어울려 애잔한 서글픔을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