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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여행/러시아(2015년)

바이칼에 가다(3/8)

by 연우아빠. 2015. 9. 15.

광복 70년 한겨레 바이칼 평화 대장정(3/8)

(제5회 민족의 시원 바이칼을 향한 평화대장정)

 

(3) 2015.08.19.(수) : 블라디보스톡~예까페리노스(26개 역)

 

너무 깊이 잠들었다. 신기하다. 기차 안에서 자는 것이 이렇게 편하다니.

BK투어 관계자들이 아날로그 여행이라고 하는 말이 공감이 되었다.

시속 50km라는 속도는 시속 300km의 KTX에 익숙한 나에게 여행이자 관광의 느낌이었다.

 

내가 구상하고 코스와 기간을 정하고 숙소를 예약하고 볼 거리를 확인하고 사전에 공부하여 출발하는 것이 여행이라면

이번에는 아무런 준비없이 짐만 챙겨서 몸을 맡기는 관광형 여정이었다.

 

우리 시간으로 아침 6시, 달네르 역을 통과할 즈음에 잠이 깼다.

"달리는 기차 안에서 뭘 하겠어, 그냥 더 자야겠다"라고 생각하다가

아침에 사람들이 화장실에 몰릴 것을 생각하곤 일어나서 화장실에 다녀왔다.

 

2층 침대에서 한결이는 안전 바에 다리를 걸친 채 깊이 잠들었다.

흠! 떨어지지 않고 잘 자는구나. 잘 적응하고 있어서 다행이다 생각하며 이불을 덮어 주었다.

 

어젯밤에 널어 놓은 양말과 옷가지 가운데 속건성 내의는 거의 다 말랐지만

두꺼운 등산용 양말은 마를 생각이 없는 것 같다.

 

한정된 물을 보급 받아 다니는 기차인지라 씻을 물이 적으니 고양이 세수만 할 수 있었다.

화장실은 객차 1량당 앞 뒤로 2개 밖에 없었다.

우리가 탄 객차는 각 호실 마다 4인실 침대칸이고 모두 10칸으로 구성되어 있어 40명이 있는 셈이다.

양치질과 화장실 가는 시간이 겹치지 않게 알아서 잘 조절을 해야 했다.

 

내가 생각했던 시베리아횡단철도(TSR)의 차장 일은 많이 힘들어 보였다.

우선 변기청소를 포함한 화장실 청소, 객실과 복도에 깔려 있는 카펫정리와 청소,

하루 3번씩 각 객실칸마다 쓰레기 분리 수거, 열차내 매점 물건 판매,

1시간에 한번 꼴로 정차하는 역에 내려서 수거한 쓰레기 내려 놓기, 근무복장 검사, 신호깃발 검사 등을 받는다.

밤에는 승객들이 술을 많이 마시지 못하게 순찰을 돌고 말썽을 부리는 사람은 경찰에 신고해

다음 역에서 경찰에게 인수인계하는 일도 한다.

그리고 꼬박 하루를 근무한 뒤 다른 사람과 교대하고 사복으로 갈아입은 다음

기차 안에 있는 차장 전용실에서 휴식을 취한다.

 

이런 형태로 모스크바까지 7박8일간 간다고 하니 보통 고된 일이 아니다.

그러니 짜증도 나고 말 안듣는 승객을 만나면 힘들어 질게 뻔하다.

당연히 친절하고는 거리가 멀 수 밖에 없겠다.

 

우리가 자는 동안에 우수리스크, 루쉬노 등 11개 정차역을 통과했다.

일어나서 처음 정차한 역은 비킨(БИКИН). 불과 2분간 짧은 정차라 승객이 내릴 수는 없었다.

 

현지 시각으로 08:30분, 미리 열차안 레스토랑에 주문해 놓은 단체 아침식사 도시락이 배달되어 왔다.

열차 안에 레스토랑은 단 1개만 있는데 조리사가 한명 뿐이라서 우리 일행 73명이 먹을 도시락을 해 대는데 힘이 드나 보다.

아침 식사는 1인당 2개씩 한세트가 한번에 배달되어야 하나 30분 이상 간격을 두고 배달이 되는 바람에

기다렸다가 같이 먹을 수가 없었다. 

이런 줄 알았으면 블라디보스톡 슈퍼마켓에서 간식거리를 많이 사 둘 걸...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러시아 음식은 향신료나 MSG를 거의 느끼지 못하겠다.

달고 맵고 짠 자극적인 맛이 전혀 없어서 어떤 음식을 먹어도 뱃속이 편안했다.

 

예정보다 25분 정도 늦게 11시가 거의 다 되어서 비야젬스카야(ВЯЗЄМСКИЙ)에 도착했다.

예정 정차시간은 15분이었으나 연착된 시간을 벌충하기 위해 10분만 정차한다고 한다.

처음 선 역이라 우리는 거의 모두 기차에서 내렸다.

 

슬리퍼에 반바지, 세수도 제대로 하지 못한 얼굴이었으나

모두들 그러하니 별 신경이 쓰이진 않았다.

공기는 정말 상쾌했다.

 

조그마한 시골 역.

파스텔 톤의 산뜻한 역사는 1959년~1960년 사이에 건축한 건물인 듯 기둥 양쪽에 숫자 표시가 있다.

역 한 가운데는 역 이름의 유래가 된 듯한 비야젬스카야의 금색 흉상이 서 있다.

 

준기는 이번 여행을 올 때부터 벼르고 있던 현지인과 흥정을 위해 먹을 것을 팔러 나온 러시아 소년과 대화를 시도했다.

먼저 러시아어로 인사를 한 뒤, 두 녀석은 약간 긴장한 듯한 웃음을 서로 건네고는 옥수수를 놓고 대화를 시작했다.

옥수수 가격을 물으며 러시아 단어, 영어 그리고 바디랭귀지를 섞어 흥정을 시작했다.

 

옆에서 소년의 여동생인 듯한 작은 여자아이 둘이 재미있다는 듯 깔깔 웃는다.

우리 일행 중에 어른 몇 분이 거든다.

러시아어로 숫자를 세는게 익숙치 않으니 메모지를 주어 숫자를 써서 가격을 확인하고,

준기가 지갑을 먼저 꺼내자 다른 분이 “지갑은 흥정이 끝난 뒤에 나중에 꺼내야 한다”고 지혜를 일러 주시는 분도 계셨다.

준기는 우리 방에 있는 4사람 분으로 1개에 50루블씩 4개를 샀다.

 

소년 옆에는 어른 한 사람이 먹을 것을 들고 나와서 팔고 있었다.

붉은 연어알과 말린 연어 그리고 삶은 감자 같은 것들이었는데 연어는 어른 팔뚝보다 굵었다.

그리고 할머니 한 분이 체리주스인 듯한 PET병 2개를 들고 나와서 팔고 있었다.

평일 아침이라 그런 것인지 우리 기차가 연착을 해서 그런 것인지 음식을 팔러나온 사람은 이 세 사람 밖에 없었다.

 

 

차에 올라와 준기가 산 옥수수 맛을 보았다.

색깔은 아주 샛노랗고 물기가 많았으며 부드러운 단맛이었다.

인공 감미료 맛이 아니라 편안한(?) 느낌을 주는 달콤함.

옥수수를 먹으며 준기가 하는 이야기를 들으니 11살 때 했던 유럽여행 때는 엄마 아빠 중심이었는데

이제는 완전히 자기만의 여행을 생각하며 행동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기차는 다시 북쪽으로 2시간 정도 떨어진 하바롭스크 역을 향해 달렸다.

하바롭스크 시내가 가까워지자 붉은 지붕을 가진 아름다운 주택들이 보였다.

하바롭스크 시내가 서유럽과 차이가 있다면 아파트가 많다는 것.

예정보다 10분 늦게 하바롭스크 역에 도착했다.

1시간 정차하는 곳이지만 45분간 정차한다고 차장이 알려준다.

 

제법 큰 도시라는 것은 역사 크기에서도 짐작할 수 있겠다.

기념 사진을 몇 장 찍고 역 구내를 어슬렁 거리며 한가한 여행자의 여유로움을 즐긴다.

차장과 친해진 사람들은 차장과 기념사진도 찍었다.

좁은 기차 여행이라 답답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의외로 시간이 잘 간다.

 

준기와 한결이는 기차 안에서 잘도 논다.

2층 침대에 매달려 팔운동도 하고 깜깜한 방을 만들어 어둠 속에서 놀기도 하고.

오렌지도 먹고 땅콩도 먹고 차장 밖도 내다보고 아침 식사 때 들어 있었던 차이(茶)와 커피를 마시기도 한다.

 

에너지 대국이라서 그런 것인지 추운 나라라서 그런 것인지 뜨거운 물은 공짜이나 차가운 물은 돈을 내고 사야 한다.

기차 안에 있는 사모바르는 약 75~80도 정도 온수가 늘 준비되어 있어서 차를 마시기에 딱 좋다.

아침에 받은 티백 차는 500cc 물병에 우려 냈는데도 상당히 진하다.

차를 마시며 복도에서 창 밖을 보는 것도 괜찮았다.

하바롭스크는 대도시라 그런지 노점 음식을 팔러 오는 사람이 없어서

EBS <세계테마기행>에서 봤던 그런 작은 난전을 기대하고 왔는데 조금 실망이다.

김 선생님은 아이들 먹으라고 아이스크림을 난전에서 사 왔다. 

 

북쪽으로 달려온 기차는 여기서부터 서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흑룡강(아무르)을 건넌다.

하바롭스크에서 중국 국경까지 거리는 25km에 불과하다.

 

이 도시는 러시아 탐험가 예로페이 하바로프(Yerofey Khabarov)가 1649년에 이곳에 도착하였으며

그의 이름을 따서 1858년 도시를 처음 설치했다.

 

여기 아무르 강을 중심으로 대조영이 세운 발해를 괴롭히던 흑수 말갈이 있었다.

고구려는 여기까지 세력을 떨치다가 돌궐, 토욕혼, 티벳 등 여러 민족처럼 당나라에 멸망당했다.

고구려가 망한 뒤 고구려 땅에 있던 유민들과 고구려에 복속되어 있던 거란, 여진 등이 차례로

고구려를 대신해 이 땅을 차지했다.

 

926년 발해가 거란에게 멸망당하면서 이 곳은 우리 역사의 무대에서 완전히 멀어지고 말았다.

그 흑룡강을 이제 기차를 건너니 감회가 새롭다.

러시아가 카자흐 기병을 시켜 천년동안 여기까지 동진해 오는 동안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강물이 거무튀튀한 것이 정말 흑룡이 구비쳐 움직이는 것 같다.

끝없는 평지가 이어지다가 아무르 강 철교를 건너자 비로소 산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진한 강물, 넓은 범람원과 습지, 하얀 자작나무와 활엽수 군락, 끝없이 넓은 평원,

사람이 만든 것이라곤 우리가 타고 있는 기차와 철도, 그리고 전봇대와 가는 전깃줄 말고는 보이지 않았다.

하바롭스크를 떠난 기차는 6시간 동안 5개 역을 거쳐 오블루치예 역에 도착했다.

이 역부터 27개 구간을 지나 치타역까지 우리나라와 표준시각이 똑 같다.

 

아쉽게도 오블루치예 역은 우리가 탄 열차와 화물열차 사이에 좁은 플랫폼에 갇힌 상태로 내려서

바깥을 볼 수가 없었다.

TSR은 화물 수송 역할이 매우 큰데 내가 본 것 가운데 가장 긴 화물열차는 화차 82개를 단 것이었다.

우리 일행 중에는 120량을 단 화물열차를 보신 분도 있다.

헤아리다가 질려서 포기할 정도로 화물열차는 길었다.

 

오블루치예 역을 출발한 우리 조는 오늘 저녁겸 강연이 있는 식당 칸으로 갔다.

저녁은 고기와 으깬감자, 오이와 토마토, 그리고 스프를 먹는 것이었다.

식사 후 두 번째 인문학 강의 시간으로 ‘바이칼과 한민족-신화시대부터 통일 한반도까지’라는 주제로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의 강연을 들었다.

 

하루종일 같은 기차 안에서 지내다보니 사람 사이에 친밀도는 점차 높아졌다.

식사 시간이 지나면 보드카와 맥주를 들고 마실을 나가고,

차와 과자, 컵라면 등 여러가지 간식거리를 들고 이 방 저 방 할 것없이 서로 초대하고 방문을 환영받으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엘라 차장은 우리 승객들이 너무 협조적이라 매우 고마워했다.

역시 이런 인문학 여행을 찾아 온 사람들이라 그런지 다들 예의도 발랐고, 말씀도 매우 재미있게 잘 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젊은 친구들은 식당 칸에서 따로 모이기도 하고 다른 객차로 탐험(?)을 떠나기도 했다.

우리 옆방에 있던 대학생 자매는 잼보리 행사로 이 열차를 탄 헝가리 젊은이들과 친해져서 서로 오가며 이야기를 나눈다.

 

준기를 보더니 헝가리를 아느냐고 물어보길래, 부다페스트를 안다고 했더니 신기해 하더란다.

자기 나라를 동방의 먼 곳에 있는 어린 친구가 안다고 하니 기쁜 모양이더라나.

 

우리가 탄 기차 말고는 불빛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차창 밖으로 별 하나가 보이는데 고도가 매우 낮게 보인다.

9시가 넘어서 우리 일행 가운데 젊은 친구들이 20대 이하를 모두 식당칸에 불러 모아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준기와 한결이도 형이랑 누나들을 따라 식당칸으로 갔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보다 조금 더 신경을 써서 고양이 세수와 이를 닦고 잠을 청했다.

시속 50~60km로 달리는 TSR은 잠을 청하는데 정말 좋은 장소인 것 같다.

 

* TSR을 탄다고 생각했을 때 위도가 높은 지역이라 서늘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아침 저녁만 조금 그럴 뿐

   낮에는 매우 더워서 차장이 수시로 에어컨을 틀어 주었다.

* 러시아는 선불제로 전기를 이용한다고 한다.

   먼저 사용할 만큼 돈을 지불하고 전력을 사서 사용하는 방식인데 전기가 떨어지면 다시 돈을 주고 전력을 산다고 한다.

   TSR 열차 한 량에는 콘센트가 도합 4군데 있었는데 충전을 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우리 기준으로 보면 별로 하지 않는데...)

   차장은 수시로 전력이 부족하다고 충전을 통제했다.

* 화장실에서 세수를 할 때 수도꼭지 아래쪽에 손을 대고 위로 밀어올리면 밀어 올리고 있는 동안만 물이 나오는 구조로 되어 있다.

   매우 비 위생적인 구조인데 왜 이렇게 만들어 놓았는지 모르겠다.

   손이 더러워져서 씻을때도 그렇고 이를 닦기 위해 컵에 물을 받으면 손을 타고 물이 내려가서 위생상에도 좋지 않아 보인다.

 

 

비야젬스키역. 이 도시의 이름은 가운데 금색 흉상 인물의 이름에서 따왔다.

 

비야젬스키 역에 먹을 것을 팔러 나온 사람이 셋 있었다.

그 가운데 연어알과 훈제 연어를 팔러 나온 사람.

훈제 연어는 너무 커서 기차 안에서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정도.

술 안주로 한다고 해도 3박 4일 동안 다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연어는 컸다.

(사진 - 한겨레통일문화재단)

 

 

비야젬스키역에서 아들은 찐 옥수수를 팔러 나온 러시아 소년에게서 옥수수 4개를 200루블(약 3,600원)을 주고 샀다.

혹시 아니? 저 친구가 나중에 커서 러시아 대통령이 될지 ^^

 

 

하바롭스크역 도착하기 직전 아파트와 똑같은 지붕 색깔을 가진 집들이 줄지어 서 있다.

 

 

 

이젠 아들의 얼굴을 가려줘야 하는 시기가 되었다.

하바롭스크역 구내, 저 뒤에 보이는 독수리 상은 하바롭스크역 개통 기념탑이라고 한다.

 

 

TSR은 주로 화물을 수송하는 역할을 맡는다. 궤도도 우리나라와 달리 폭이 넓은 광궤철도이다.

우리가 탄 객차는 28량을 달고 있다.

 

시가지에서 역으로 들어오는 방향에서 본 하바롭스크 역사. 보크잘(ВОКЗАЛ)이라고 키릴문자가 보인다.

(사진 - 한겨레통일문화재단)

 

 

하바롭스크 역에서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다.

(사진 - 한겨레통일문화재단)

 

 

하바롭스크에 처음 도착한 러시아 사람인 탐험가 예로페이 하바로프(Yerofey Khabarov) 동상. 역사 바깥 쪽에 있다.

그는 1649년 이 곳에 도착했고, 그의 이름을 따서 1858년 하바롭스크 시가 탄생했다.

(사진 - 한겨레통일문화재단)

 

 

우리가 탄 객실은 2층 4인용 쿠페형이다.

준기와 한결이가 기차안에서 노는 방법을 개발해 양팔로 오래 버티기 놀이를 하고 있다.

 

 

하바롭스크를 떠난 기차는 북서쪽으로 방향을 돌려 오블루치예를 향해 달렸다.

 

 

차장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이런 숲이 계속 이어진다.

하바롭스크에서 오블루치예 구간은 그나마 산을 볼 수 있는 구간이다.

 

 

 

오블루치예 역에 다다를 때가 되었다. 해가 많이 기울었다.

 

 

기차 식당칸에 저녁을 먹으러 왔다. 먼저 샐러드와 국이 나오고

 

으깬 감자와 소고기, 렌즈콩과 오이, 토마토가 나왔다.

TSR에서 파는 음식은 냉동음식이라고 하는 얘기를 들었는데 의외였다.

식당 칸으로 들어갈 때 입구에 있는 조리실에서 뜨거운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시골 집들은 대개 이렇게 초라한 모습

 

그래도 지붕에는 접시형 수신기가 달려 있다.

70년대 우리나라 시골집 같은 허름한 외관.

 

우리 일행 가운데 부모를 따라 오거나 혼자서 온 젊은 이들이 저녁 강의 후에 식당칸에 모여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준기와 현결이도 형과 누나에게 초대를 받아 어울렸다.(사진 - 한겨레통일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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