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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여행

덕유산 향적봉에서 하늘이 열리다

by 연우아빠. 2015. 5. 31.

덕유산 향적봉에 오르다(2015.5.30)



오랜만에 솔바람 가족(cafe.daum.net/foresttour)에게 덕유산에 가자는 제안을 받았다.

전후좌우 가릴 것 없이 무조건 OK


다들 미리 계획을 짜 놓고 함께 동참할 수 있는 지 물어본 것.

무릎 수술한 지 3년이 되었지만, 남한 제 4봉인 덕유산 향적봉 등산이 가능할 지 걱정스러웠다고 한다.

그래서 "널 위해 준비했어! 하산은 곤돌라를 타고 내려오는 것으로..." 


금요일 저녁, 1년에 두어번 있을까 말까한 저녁 약속이 생겼다.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나서 저녁을 먹기로 한 날이 하필 등산 하루 전날.


밤 11시에 집에 들어가 씻고 11:30분쯤 잠을 자기 시작했지만 토요일 05:00에 일어나야 해서 잠은 고작 5시간 반 정도 잔 셈.

잠을 못자면 등산하는데 발이 무거워져서 걱정스러웠지만, 하산 부담이 없으니 그래도 기분 좋게 집을 나섰다.


비가 오더라도 1mm 내외일거라는 예보와 달리 우산을 쓰지 않고는 약속장소에 갈 수 없었다.

인덕원 역에서 06:20에 4사람이 모여 출발.


비가 살짝 오는 관계로 나들이에 나선 사람이 줄었는지 덕유산까지 2시간 남짓 밖에 걸리지 않았다.

근처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비가 오락가락 하는 길을 나섰다.

 


무주 구천동 33경을 하나씩 찍으며 올라가는데

비가 오락가락 굵어졌다 가늘어졌다 하면서 그치질 않는다.

백련사를 향해 가는 길에 이른 점심 삼아 송어회를 먹는데 비가 더욱 굵어졌다.

비가 그친다는 예보 때문에 비옷을 가져오지 않았는데 난감하다.


1시간쯤 머무르며 파전과 송어회를 먹고 있는데

주인 할머니께서 "이제 비는 다 왔어. 더 안 올거야!"라고 하셨다.







덕유산 백련사 일주문

비가 계속 오락가락하니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간간히 올라오는 사람들도 백련사에서 모두 되돌아 가는 분위기.

식당 할머니 말씀처럼 비가 조금씩 잦아 들어서 다행이었다.




원래 11시에 출발해 상대적으로 더 완만한 백련사 > 오수자굴 > 중봉 > 향적봉 > 설천봉 > 곤돌라 하산을 할 계획이었으나

일행 중 한명과 길이 어긋났는데 뒤늦게 전화로 백련사에서 향적봉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코스를 선택해서 가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오수자굴 방향으로 500m 쯤 올라갔다가 백련사 쪽으로 다시 내려와 올라가기 시작했다.



웅장한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한동안 날씨가 더웠다가 비가 와서 그런지 산은 온통 안개에 둘러싸였다.

백련사부터 정상까지는 2.5km, 우리는 체력 안배를 위해 가파르고 단이 좁은 계단을 5백미터씩 쉬면서 올라가기로 했다.




5백미터씩 쉴 때마다 고도를 확인해보니 거의 1백미터씩 올라간다.

비 때문에 생긴 안개로 경치는 볼 것도 없고 계속 오르기만 하니 힘이들고 재미가 없었다.

능선을 타지 못한 것을 투덜거리며 올라가다가 우리는 짧은 경로로 올라가니 마지막 곤돌라 운행시간까지 여유가 좀 생겼다고 위로했다.


마침내 마지막 이정표가 나왔다.

이제 2백미터만 더 올라가면 정상이다.

3시가 넘어가니 배가 고파서 올라가기 더 힘들었다.


입구에서 산 김밥을 나눠 먹으며 한참을 쉬다가 다시 길을 올라갔다.

비가 오는 날씨 때문에 땀은 생각보다 적게 나서 1리터씩 준비한 물은 절반 밖에 쓰지 않았다.

인생사 모두 일장일단이 공존하는구나. 생각하며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마침내 해발 1,614m 덕유산 향적봉에 도착했다.

표지석을 보다 더 높은 저 바위 위에 올라가 사방을 둘러 보았다.



사방은 오리무중이었다.

그저 안개와 바람 그리고 입김이 나올 정도로 기온도 낮았다.

한반도 남쪽에서 4번째로 높은 봉우리에 무사히 올라왔다는 안도감에 서로를 격려하며 간식을 꺼내 한 잔씩 했다.



간식으로 가져온 과자 봉투가 낮은 기압 때문에 부풀어 올랐다.

고도가 높아서 이런 현상도 생기는구나.



마침 남녀 한쌍이 안개를 뚫고 올라오기에 서로 정상 인증샷 단체 사진을 찍어주었다.

4시간 동안 걸어올라와서 이런 풍경을 사진으로만 봐야 하다니...




설천봉 곤돌라 타는 곳까지 6백미터 남았다.

마지막 곤돌라 하강 시간은 오후 5시 30분.

1시간 밖에 남지 않았는데 사방은 여전히 안개 뿐이다.

 



갑자기 하늘이 밝아지더니 안개가 거짓말처럼 흩어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모두 카메라를 들고 사방으로 뛰었다. 이 멋진 장면을 놓치지 않으리라.



비행기 위에서 내다 보는 듯한 구름 바다가 밝은 해와 함께 신비한 풍경을 보여 주었다.



그러다 순식간에 또 안개가 주변을 덮었다.

그러고 보니 목책 바깥 쪽에는 이렇게 예쁜 꽃들이 지천으로 자라고 있다.



다시 하늘이 눈부시게 파란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는 곤돌라 시간에 맞추기 위해 설천봉 쪽으로 이동하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우리가 아무리 성능 좋은 카메라를 가졌어도 현장의 신비한 풍경을 절대 전달할 수 없을 것이라 이야기 하며 정신없이 셔터를 눌러댔다.



뒤돌아 보니 향적봉 쪽 하늘은 그야말로 티 하나 없이 맑은 하늘

정말 20분 전에 그 안개는 다 어디로 갔을까?

기가 막히게도 이 순간에 향적봉을 향해 여러 방향에서 전문 사진가들인 듯한 분들이 몰려 올라왔다.




저 멀리 섬처럼 보이는 저 봉우리는 지리산 천왕봉인가?

구름바다 속에 떠 있는 섬은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했다.

사진 찍으랴 눈에 담으랴 정신이 없다.


에이! 그냥 이 멋진 풍경을 한 없이 보다가 곤돌라를 보내 버리고 그냥 걸어서 하산할까? 하는 무모한 감상까지 떠올랐다.



설천봉 근처에 주목이 죽은 채 천년을 버티고 있다.

스키 슬로프가 시작되는 곳으로, 아마도 이 슬로프를 개발할 때 죽은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을 간다는 주목.

살아 있는 주목과 죽은 주목이 함께 서 있는 모습을 보며 인간의 욕심을 되돌아 본다.

그리고 평창에서 하룻밤 꿈 같은 동계 올림픽 때문에 죽어간 수만 그루의 나무들을 생각했다.

올림픽 보다 스키 슬로프보다 저 아름다운 주목이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에

주목에게 너무나 미안하다.



그리고 곤돌라를 타고 쉽게 오르내리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밟혀 사막처럼 변해가는 설천봉을 밟으며 곤돌라를 타러 갔다.

곤돌라가 없다면 걸어 내려갔겠지만 일몰과 무릎을 핑계로 편리함을 택하고 말았다.

생물종 보호와 산림 복원을 위해 설천봉에서 향적봉 방향으로 통제한다는 경고문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향적봉까지 가는 길에 우거진 초목과, 몽골 사막 같은 황량한 설천봉의 모습이 너무나 대조적이다.


오늘 힘들게 올라간 향적봉에서 본, 내 인생 최고의 명장면을 결코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삶과 죽음이 한 공간에 공존하는 설천봉의 주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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