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 부부묘와 단종 왕비 정순왕후릉(사릉) 답사 / 2014.8.23
아들이 작년에 이어 올해도 청심ACG 역사대회 본선에 올랐다는 말을 듣고 중미산 휴양림에 뒤늦게 대기를 걸었다.
작년 대회 때, 아침 일찍 집에서 출발했지만 주말 나들이 인파에 막혀 지각을 했던 일을 반복하지 않으려고
가까운 휴양림 야영장에 대기를 걸었지만, 평소에도 잡기 힘든 곳인데 그냥 지푸라기 잡는 심정이었다.
지리산 휴가를 끝내고 올라오는 길에 예약을 하라는 문자가 날아 왔다.
다행이다. 아침에 더 잘 수 있겠구나.
준기는 중미산 휴양림에서 사릉이 가까우니 토요일에 거기를 가보고 싶다고 한다.
그러지 뭐. 어려울 게 뭐가 있겠어. ^^
연우는 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하고,
처질녀는 일요일에 중요한 시험이 있어서 아내는 동행하지 않기로 했다.
올해는 부자간에 캠핑이 많네.
12시가 넘어서 출발을 했는데 벌초하러 가는 사람들이 많은 지 시간은 평소보다 조금 더 걸렸다.
사릉 근처에 도착해서 유턴을 하려고 보니 광해군 묘 방향으로 안내 표지가 보였다.
"아들, 저기는 안가니?"
"당연히 가보고 싶지요. 하지만 저긴 공개하지 않는 능원이라는데요?"
"그래? 거리가 가까우니 저길 먼저 가보자"
그리하여 찾아 올라간 길은 교행하기 힘든 좁은 길을 지나 공동묘지 입구로 이어졌다.
일단 산길이라 마주오는 차를 만나면 곤란할 듯 하여 좀 넓은 공터에 주차를 하고 걸어서 올라가 보았다.
5백 미터 정도 걸어 올라가니 울타리와 자물쇠가 채워져 있고 이런 안내판이 있다.
나무 사이로 광해군과 왕비인 유씨 묘가 저기 있다고 문화재 표지가 보인다.
카메라를 울타리 틈새로 넣고 두 분의 무덤 사진을 찍었다.
권력 다툼에 나라를 말아먹은 자들이 개혁을 시도했던 왕을 몰아내고 자기들의 반란에 대한 정당성을
명나라에 대한 병적인 충성으로 메우던 시대.
광해군은 좀 더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었어야 했다고 본다.
수구 세력들이 눈을 감고 귀를 막을 찰나의 틈도 주지 말고
김영삼 대통령이 하나회 옷벗기듯이 순식간에 해치워야 했는데
광해군은 그걸 하지 못해 능호도 갖지 못한 채 역사의 패배자로 남게 되었다.
두 분의 편안한 영면을 기원해 본다.
뱃 속에서는 쪼르륵 소리가 났지만
가까운 곳에 있는 사릉을 보고 중미산 막국수 먹으러 가자고 부자간 합의를 보았다.
15살에 왕비가 되었다가 단종과 생이별을 당하고 온갖 모욕과 고생을 하며 82살까지 살았던 단종의 왕비 송씨.
살아서 남편을 다시 만나려고 영월로 유폐당한 단종이 떠난 고개마루에 매일 올랐다는 애절한 사연을 갖고 있는 분이다.
죽은 뒤에도 177년이 지난 숙종 때 가서야 정순왕후라는 묘호를 받고 사릉이라는 능호를 얻게 되었다.
이왕 하는 것, 두 분을 한 곳에 모아 합장릉을 만들어 주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정자각에서 바라본 입구쪽 파노라마
'대당신라국' 부터 시작한 오랜 사대적 비문은 명나라가 망한 뒤에야 '대명조선국'을 벗어 던지고
조선국 정순왕후 사릉이라는 간결한 문체를 만들 수 있었다.
백년이 넘었다는 청실배나무. 떨어진 배에는 벌들이 몰려 들었다.
발 앞을 조심하지 않고 배를 찼다가는 벌의 공격을 받기 쉽다. 조심 조심....
조선왕릉에 대한 이모저모를 알려주는 전시실, 그리고 한켠에는 체험학습실이 있다.
전시실 앞에는 백송나무가 있는데 나무 껍질이 흰색에 가까운 소나무이다.
전시관 구경을 마치고 좀 먼 길을 돌아 중미산막구수 집에 들러 맛있게 먹었다.
한참 키가 크고 있는 준기는 전을 하나 시켜서 먹고 싶다고 한다.
"그 많은 막국수를 먹고서 또?"
"히히"
중미산휴양림에 들어가 사이트를 구축하는 동안 간식으로 먹자고
빈대떡을 하나를 포장해서 휴양림으로 들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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