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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

천안 나들이

by 연우아빠. 2010. 1. 10.
2010.1.10

토요일, 10:40부터 아파트에 쌓인 눈을 치우러 나갔다.
금요일에 동네 주민들이 한번 치웠다는데 월요일에 내린 눈이 너무 단단하게 굳은 곳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경비 아저씨께 삽을 빌려 3시간 정도 치웠는데 집에 들어왔더니 너무 노곤하다.

아이들을 데리고 수영장에 갔다 왔더니 잠이 저절로 쏟아진다.
침낭 속에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다가 살짝 잠이 들었는데 문자 왔다는 소리가 나를 깨운다.
뭐냐? 또 휴일을 도둑질 하는 시간 도둑의 업무 지시 문자인가?

살짝 짜증을 내면서 문자를 열어보니,
오! 너무나 반가운 유진아빠의 문자.
내일 전철타고 버스타고 병천순대 먹으로 가자는 제안.

2년전 유진이네 가족이 전철을 타고 병천 갔었다는 글을 동호회에서 봤을 때
"오! 멋진 생각이다"라고 했었는데
얼른 간다는 회신을 보내고 시체놀이에서 급선회.

일요일 아침 10시에 금정역에서 만나기로 하고
굼벵이 가족들을 준비해 금정역으로 달려갔다.

10시 11분 금정에서 천안 가는 전철을 타고 천안에 도착했다.
천안역을 나가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400번 버스를 타고 아우내(병천) 시장으로 갔다.
신기한 것은 교통카드를 사용할 수 있었다는 것.

천안역에서 새하얀 눈에 뒤덮힌 길을 달려 독립기념관을 지나 아우내 시장에 도착했다.
유관순 열사가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그 역사적인 시장입니다.

시장에 도착해 유진네 가족이 알고 있는 맛있는 집 세집 가운데 제일 시설이 깨끗한 청화집에 들어갔다.


양이 많다며 주인은 순대 1인분을 둘로 나누어 먹으라고 하고 먼저 순대 1인분을 두 집으로 나누어 주었다.
청화집(충남 천안시 병천면 병천리 4구 167-8, 041-564-1558)에서 맛보는 병천순대. 아이들도 무척 좋아했고, 김치도 아주 맛있었다.


이어서 나온 순대국밥(5,000원) 양념을 하지 않은 채 내 놓아 각자 입맛에 맞춰 다진 양념이나 간을 맞춰 먹는다.
무척 맛있고, 밥도 맛있다. 막걸리 1병 시켜서 나눠먹고..같이 못 온 지환이에게 줄 1인분을 싸서 집으로 돌아온다.

 
천안역으로 돌아오는 400번 버스안.  유진맘님 뒷모습이 찍혔네요. 그 앞자리에 앉은 연우랑 준기는 보이지 않네요.
시골 버스 좌석에는 낙서를....


준기가 보고 싶다고 졸라서 그닥 가고 싶지 않았던 독립기념관을 들렀습니다.
천안에서 아우내 장터 사이를 오가는 400번 시내버스 중간지점 쯤입니다.
왜 가고 싶지 않았냐 하면 군사반란 수괴 전두환이 세운 독재자의 상징이라는 이미지가 너무 강하게 남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변 자연경관에 어울리지 않는 조형물과 비리로 얼룩진 정면건물. 전통 양식과 전혀 관계없는 구리기와 건물.
게다가 광복기념관이 아닌 독립기념관이라는 이름. 우리가 아프리카 신생독립국도 아니고 잠시 일본 제국주의 침략자들에게 땅을 빼았겼다가
되찾은 것인데 무슨 독립기념관이란 말인가?

이제는 아이들이 이 건물의 잘못된 점도 설명해 주고 광복전쟁에서 희생당한 선열들의 노력을 제대로 알려주기 위해서도
건물을 그대로 받아 들이고 후세 사람들이 제대로 고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들어가서 보여 주기로 했습니다.


새하얀 눈이 덮힌 너른 터가 아이들에겐 마냥 즐겁지요.
누나에게 눈뭉치를 던져 도발을 했던 준기는 누나가 엄청나게 큰 눈뭉치를 들고 반격을 해 오자 저 만치 달아나 못본척 시치미를 떼고 있습니다.
 

완공하기 전에 불탔던 건물.
나찌 시대 국가사회주의자들 같은 거대건축물 집착관념을 투영해 놓은 국적불명의 건물 독립기념관 건물.
실제 전시관은 저 뒷쪽에 아담한 모습으로 능선과 조화롭게 자리잡고 있지만 이 건물과 정면 탑은 건축의 기본이 안된 모습입니다.
볼 때마다 화가 납니다. 게다가 저 푸른 지붕은 기와가 아니라 구리입니다. 비리로 얼룩진 구리기와.
고치려면 엄청난 돈이 들겠지요. 저 건물은 지금이라도 철거하는게 맞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전시실 실내는 공기가 좋지 않았지만 볼 만한 전시물이 많았습니다.
1905년 국권을 침략자들에게 넘겨준 조약 원문(전문). 고종황제의 재가도 받지 않은 불법 조약이라고 이태진 교수님이 지적을 했지요.


성노예 피해자(Sexual Slavery)와 위안부(Comfort Women)이라는 두 가지 표현. 서양 사람들은 성노예 피해자라고 쓰고 범죄자인 일본인들은
위안부라고 표시합니다. 그런데 왜 대한민국 정부에서 세운 이 기념물에 위안부라는 표현을 내세웠을까요? 전범의 죄를 왜 피해자들이 저렇게
정신줄 놓고 사는 사람들처럼 써 놓았을까요?  명백한 잘못입니다. 하나로 통일하는게 맞고, 그것은 전쟁범죄를 명백히 드러내는 성노예 피해자(Sexual Slavery)라는 표현을 사용해야 이 건물을 세운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한국 의군중장겸 만주특파사령관 안중근 장군은 항일전쟁 도중 하얼빈에서 적괴 이토오를 사살하는 쾌거를 올렸습니다.
그 분이 쾌거를 이루고 순국한 지 100년째인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교과서에는 안중근 "의사"입니다.
용어는 사건을 명확히 규정하는 기본입니다. 안중근 장군은 적장 이토오를 사살한 것입니다.
광복전쟁은 캠페인이나 벌린 Movement가 아니라 전쟁이었습니다.
마땅히 안중근 장군이라 불러 그분의 광복전쟁 수행의 정당성을 후세들에게 명확하게 알려야 할 것입니다.


시간이 늦어 다음에 다시 들리기로 하고 400번 시내버스를 타고 다시 천안역으로 돌아와 용산행 급행 전철을 탔습니다.
천안의 명물 호두과자를 사서 맛을 봅니다.


오는 동안 준기는 엄마랑 쌀, 보리 놀이를 합니다.

뒹굴뒹굴 시체놀이를 하면 무료하게 보낼 수 있었던 일요일에 이런 재미를 함께하게 해 주신 유진네 가족에게 감사드리며,
날이 따뜻해지면 다음에는 경춘선을 타고 남이섬에 가보자고 했습니다. 운전을 하지 않으니 얘기도 많이 할 수 있고 아주 좋은 여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