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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여행/인도기행(2009년)

아그라 포트(Agra Fort)

by 연우아빠. 2008. 12. 16.
인도에 다녀온 3박6일간 이야기(2008.12.9~12.14)

인도는 대리석과 붉은 사암이 많아서 건축재료로 많이 사용한다. 17세기에 지은 아그라 포트는 야무나 강변에 있는 무갈 제국의 성으로 타지마할 서쪽 2km 지점에 있다. 붉은 사암으로 만든 둘레 약 2.5km인 거대한 성으로 이중 성벽과 야무나 강을 이용한 거대한 해자를 두르고 있다. 들어가자마자 역시나 많은 사람들이 가이드를 하겠다고 달라붙는다. 가이드의 도움을 받으면 성 전체를 돌아보는데 더 효과적이지만 가이드를 받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인도의 역사에 대해 깊이 있는 지식도 없고 이 나라 시스템이 체계적이지 않은바 제대로 된 가이드가 누구인지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샤 자한은 검은 타지마할을 지으려다가 아들인 아우랑제브에게 잡혀 이 성에 유폐되었고 죽을 때까지 자힝기르 궁전 전망대에서 타지마할을 바라보며 사랑했던 뭄타지 마할을 생각했다는 슬픈 이야기가 전해 온다. 하얀 대리석 건물과 붉은 사암건물이 단조로운 대조를 이루지만 과거에 이 성은 아름다운 보석과 유리 그리고 바람에 하늘거리는 하얀 비단으로 가득했고 수천명의 상인들이 물건을 들고와 궁전 마당 바자르에서 왕궁에 사는 사람들에게 물건을 팔았던 북적이는 성이었다. 지금은 그 아름다운 장식품을 약탈자들이 훔쳐 가버렸고 이 성의 주인 샤 자한도 세상에 없다. 커튼은 사라지고 다만 아름다운 장식이 가득했던 자리만 텅 빈채 남아 있다.

 

성 안에서 사진을 찍는데 누군가 뒤에 다가와 내 허리를 붙든다. 뒤 돌아보니 인도청년 세 사람이 두려움과 호기심이 섞인 눈으로 우리를 보고 있다. 사진을 같이 찍고 싶었던 모양이다. 내가 그들의 허리를 당겨 사진을 찍으려고 하자 그 청년들이 바들바들 떤다. 그 떨림이 내 손에 전해져 무척 놀랐다. 이 소장 말로는 인도인들은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순박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그런데 여럿이 모이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격렬해진다고 한다. 아마도 영국인들은 이런 인도사람들이 두려워서 3명 이상 모이는 집회를 법으로 금지했었나 보다. 그 청년은 내 카메라에도 관심이 많았나보다. 카메라 잡는 모습이 이런 카메라를 다뤄본 사람인데 DSLR 카메라가 자기 생각처럼 작동이 안되자 당황해 한다. 그 용기없는 청년들은 자기들 사진 찍어 달라는 소리도 하지 못한다. 우리 사진기에 찍힌 모습을 보여주자 신기한 듯 한참을 들여다 본다.

 

자항기르 궁전 쪽 1층을 둘러 보고 있을 때 영국인(?) 청년과 여행을 온 한국 대학생인 듯한 친구가 “한국에서 오셨나요?”라고 묻더니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한다. 자항기르 궁전 마당에 하수도 시설과 함께 우물처럼 생긴 곳이 있었는데 거기에서 영화 “300”에 나온 장면을 흉내내서 영국인 친구와 함께 설정 샷을 찍어 달라고 한다. 여기 오가는 관광객 가운데 누구도 그의 의도를 제대로 표현해 주지 못했다고 한다. 한국인 청년이 발로 영국인 청년의 배를 밀면 영국인 친구가 코믹한 표정으로 구덩이로 떨어지는 설정 샷이다. 지나가는 관광객들이 다들 재미있다고 와서 구경한다. 사진을 찍어 보여주었더니 두 사람 모두 아주 만족해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재미있는 친구들이다.

 

아그라 포트는 부드러운 사암으로 지은 건물이라 섬세한 세공이 가능했다. 그 때문에 구석구석 장식이 빼곡해 한치도 빈틈이 없다. 무갈제국은 이런 공사를 할 때 인도 근처에 있던 나라는 물론 멀리 유럽에서도 기술자를 불러들였다고 한다. 17~18세기 세계적인 부자나라였던 무갈제국은 이런 대규모 토목공사로 국력이 약해졌고 폴투갈, 프랑스, 영국 같은 제국주의자들의 침략을 받아 식민지로 전락해 착취당했고 오늘날 비참한 인도를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대대적인 토목사업을 벌인 나라치고 오래 유지했던 나라가 거의 없다.

 

시간이 모자라 아그라 포트를 절반정도 보고 나왔다. 3시에 아그라포트를 출발해 델리까지 돌아오는데 5시간이나 걸렸다. 해가 넘어 가는 고속도로를 따라 화물열차가 달려가는 것이 보인다. 고속도로에는 수십마리씩 떼를 지어 다니는 소도 있고, 고속도로 바로 옆은 농토이거나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이다. 좀 황당하다. 델리 근처에 오자 자동차가 엄청 밀리는데 길 옆에 빈 터에 도저히 굴러갈 것 같지 않는 너무나 낡은 버스가 끝없이 서 있다. 이 소장 말로는 델리로 출퇴근 하는 인근 지역 사람들이 타고 다니는 버스라고 한다. 외국인들이 버스를 봐서는 어느 지역으로 가는 버스인지 구별을 할 수가 없는데 현지인들은 용케도 그걸 알아보는 모양이란다. 작은 도시락 하나를 들고 출퇴근으로 편도 2시간이 넘는 먼 길을 오간다고 한다. 최근에 델리에 지하철을 놓기 위해 공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1950년 헌법으로 카스트를 정한 인도는 상위 카스트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하위 카스트 사람이 부유해 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한다. 자기들이 독점하고 있는 부와 권력을 나누어주면 귀찮기 때문이라고 한다. 교육열은 무척 높지만 교육을 시킬 수 있는 돈을 가진 사람은 인도 인구의 10%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 델리는 모두 8개 구획으로 되어 있는데 델리를 수도로 삼았던 왕조마다 다른 지역에 수도를 건설했기 때문에 8개 지역을 델리라고 부른다. 올드 델리와 뉴 델리로 구분하는 것은 외국사람들의 구분법이고 이들은 모두 델리라고 부른다고 한다.

 

우리 차를 운전한 친구는 오늘 19시간 동안 토막잠을 자가며 밥도 거의 굶고 운전을 한 셈인데 이 친구가 결국 사고를 쳤다. 이 소장의 지시를 제대로 따르지 않고 제 멋대로 운전을 한 모양이다. 수고비를 줄 생각이었는데 이 친구의 얕은 꾀가 결국 화를 불러왔다. 우리나라 사람 인정상 그렇게 하지는 않을텐데 이 소장은 렌트카 회사 사장에게 항의 전화를 했다. 이 나라에서는 계약을 한 댓가 이 외에 친절을 베푸는 것은 오해를 불러온다고 한다. 고용한 사람이 인정을 베풀면 자기보다 카스트가 낮아서 그런 줄 오해한단다. 오랜 식민지배 탓에 눈치가 아주 발달해 있고 외국어 3~4개는 할 줄 안단다. 물론 쓰는 것은 못하지만...이방인이 우리의 친절이 이 친구에게 결국 나쁜 결과를 몰고 온 셈이 되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는 말을 다시 새긴다.

 

8 시쯤에 한국에서 예약한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해 저녁을 먹었다. 우리가 도착하자 반갑게 “안녕하세요? 어서오세요” 하며 맞이해 준 작은 여자아이가 있어 이 집 딸인줄 알았는데 여기서 일하는 네팔아이란다. 16살이고 밍밍이라는 여자아이인데 얼마나 똑똑한지 몇 달만에 한국말도 다 배웠다고 한다. 문득 불쌍한 생각이 든다. 저렇게 똑똑한 아이가 공부를 할 수만 있다면 네팔에서 장관도 할 수 있겠다 싶다. 잘 산다는 것의 의미가 뭔지 생각이 복잡해지는 나라다. 인도는 숙박비가 장난이 아니다. 2인용 게스트 하우스 하루 숙박비가 100달러나 한다. 전 인구의 70%가 하루 1달러도 벌지 못하는 나라에서 호텔 숙박비는 최소 230$ 수준이라고 한다. 정말 할 말이 없는 나라다. 인도는 외국인이 토지나 주택을 소유하지 못하며 도소매업에도 종사하지 못한다고 한다. 게스트 하우스를 하는 사람들은 모두 현지인의 집을 임대해서 한단다. 3~4층짜리 집들이 모여 있는 이 동네는 층별로 정원이 있고 시끄러운 자동차 소음도 거의 없어 조용하다. 겉으로 보기에는 부자동네 같지도 않은데 동네 전체를 둘러싼 경비 철망이 있고 경비인력도 있다. 건조한 곳이라 먼지가 심한 듯 주변에 있는 나무는 잎사귀마다 모두 투텁게 흙먼지가 쌓여있다.

 

인도에 도착한지 20시간만에 그리고 어제 잠자리에서 일어난 지 33시간 만에 이불을 덮고 잠을 청할 수 있었다. 우리는 델리 기온이 더운 편이었는데 델리 사람들은 춥다고 한다. 정말 깊이 깊이 잠들었다.

 

 

타지마할 서쪽 2km 지점에 아그라 포트(Agra Fort)가 있습니다.

무갈제국(세계사 시간에 무굴제국이라 배웠을 겁니다)의 샤 자한이 아들인 아우랑제브에게 폐위되어 갇혀 있었던 성이며
무갈제국의 수도였던 곳입니다.

아그라 포트 가는 고속도로

 

이게 고속도로라면 믿으시겠습니까? 자전거, 오토릭샤, 오토바이, 자동차가 뒤엉켜 달리는 고속도로.
톨게이트도 없고...

 

고속도로에 이런 풍경도 있습니다. 수십마리씩 떼지어 다니기도 하데요.

 

점심 먹으러 들어간 무갈호텔 인도식당. 외국인이 사먹을 수 있는 곳은 이런 호텔 밖에 없다고 합니다.

 

양고기에 탄두리에서 구운 난이라는 빵을 곁들여 먹는 음식입니다.

 

탄두리에 구운 난과 소스
우리 돈으로 세명이서 2만원 정도 썼는데 인도에서는 경악할 금액입니다.
맛은 정말 좋습니다.

 


아그라 포트 외벽. 사암으로 만들었습니다. 엄청 큽니다.

 

해자를 건너면 입장료 받는 곳이 있습니다.

 

다람쥐들이 엄청 많이 놀고 있습니다.

 

강당인데 2층 발코니입니다. 아름다운 대리석 장식이 있습니다. 뒷 벽면 장식은 이 땅을 약탈한 자들이 다 가져갔습니다.
여기에 무갈제국 황제가 나와서 백성들이나 이야기를 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2층 건물인데 아래쪽 광장은 바자가 열리던 곳입니다.
왕궁에 사는 여자들이 상인들이 물건을 가지고 앞 광장에 들어오면 난간에 서서 살 물건을 불러준다고 합니다.
궁중의 여자들이 외간 남자와 만나지 못하도록 했기 때문에 생겼다고 합니다.

 

건너편에서 보면 이렇게 생겼습니다. 
이 건물에는 원래 아름다운 커튼이 장식되어 있어서 시원한 그늘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저 정자에서 폐위된 샤 자한이 야무나 강 건너편에 있는 타지마할을 바라보며 죽은 뭉타지 마할을 그리워 하며
눈물을 흘리다 죽었다고 합니다.

 

야무나 강 물줄기를 끌어들여 엄청나게 큰 해자를 만들어 성을 방어했습니다.

 

벽을 장식한 아름다운 미술품들은 모두 뜯겨 나가고 흔적만 남아 있습니다.

사진을 찍고 있는데 인도 청년들이 슬금슬금 다가오더군요.
같이 찍자고 끌어 당겼더니 저에게 잡힌 잘생긴 청년이 바들바들 떨더군요.
인도는 유사 이래 외적과 전쟁을 해서 한번도 이긴 적이 없다고 합니다.
식민지 생활을 오래해서 외국인에 대한 두려움도 무척 크다고 하더군요.
역사는 돌고 돈다는데 언제가 무갈제국의 영광스러운 역사처럼 인도가 다시 부흥할 수 있을까요?

 

가공하기 좋은 사암이라서 구석구석 빈틈없이 문양을 채워놓았습니다.
여백의 미를 모르기는 유럽과 마찬가기인데 같은 아리안 족을 조상으로 해서 그런가 봅니다.

 

 

델리로 가는 고속도로

 

델리를 가는 고속도로변의 폐허

 

자전거도 오토바이도 다니는 고속도로

 

이럭저럭 이불을 덮고 잠을 자지 못한 지 34시간이 넘었습니다. 지평선이 많은 인도에서 해가 넘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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