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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여행/러시아(2015년)

바이칼에 가다(7/8)

by 연우아빠. 2015. 9. 18.

광복 70년 한겨레 바이칼 평화 대장정(7/8)

(제5회 민족의 시원 바이칼을 향한 평화대장정)

 

(7) 2015.08.23.(일) : 바이칼 알혼섬 관광

 

7시가 되기 전에 눈이 떨어졌다.

창밖을 내다보다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공기 속에 나무 타는 냄새가 섞여 있다.

별을 볼 수 없다는 것은 어젯밤에도 확인했지만 하늘의 해를 보니 달처럼 보인다.

얼마나 짙은 연무인지 짐작이 간다.

 

곳곳에 작은 들꽃이 무리를 지어 자리고 있다.

자전거 빌려주는 곳이 있는데 200루블을 받는다고 씌여있다.

자물쇠도 채워 놓지 않아서 호텔 직원들이 근무시작 전에는 아무나 타고 다닐 수 있는 상태.

역시 돈에 대한 개념은 자본주의 국가와는 다르다.

 

저 멀리 고압송전탑이 보였다.

아침을 먹고 우리는 어제 타고 온 그 미니버스를 타고 알혼섬 투어에 나섰다.

추울 것이라 예고한 것과 달리 바이칼은 서늘한 바람이 불 뿐 반팔 소매로 다니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오늘은 알혼 섬 북쪽 끝 하보이 곶까지 올라갔다 오는 여정.

초원을 태우는 불 때문에 시야가 별로 좋지 않아 많이 아쉽다.

죽은 나무는 쓰러진 채 자연의 순환에 맡겨져 있고, 구지르 마을 처럼 사람이 사는 마을이라 해도 인적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인가는 점점이 흩어져 있을 뿐, 도로는 따로 있다고 할 수가 없는 비포장 도로이다.

노련한 기사들은 조금도 요철이 적은 흙길을 찾아 운전을 한다.

바이크 여행자들이 몇 사람 보였고, 트래킹을 하는 사람도 드물게 있었다.

 

물이 차고 줄어들 때 움직이는 악어처럼 보인다는 악어바위에서 잠시 하차했다가

스탈린이 만들었다는 뻬시얀까 수용소를 돌아보았다.

80여년전에 이 곳에 수용된 사람들은 얼마나 고독했을까?

소비에트 시절의 잔혹한 역사에 몸서리치는 사람도 있고 그 시절이 좋았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니

사람의 가치관에 따라 세상을 달리 본다는 것이 섬뜩하다.

 

사간후슌은 해운대처럼 넓은 백사장이 있었다.

우리를 신발을 벗고 파도치는 바이칼에 조금씩 걸어 들어갔다.

물은 수영을 해도 좋을 정도로 미지근했다.

 

깎아지른 절벽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바이칼 호수는 6천만년전에 생성되었다고 하는데 육지의 갈라파고스라고 할 만큼 자연생태학에 있어 중요한 지역이다.

알혼섬 최북단인 하보이 근처에서 기사들이 우리 점심을 준비하는 동안

우리는 걸어서 1시간 정도 트래킹을 했다.

 

기차와 버스 안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우리에게 좋은 트래킹 장소였다.

내려다보기에도 아찔한 절벽이 이어진다. 굴러떨어지면 뼈도 못추리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만큼 오싹한 높이.

 

절벽 위에서 바라보는 바이칼 호수는 바닥이 훤히 보일정도로 맑았다.

바이칼 호수의 귀염둥이인 물범은 차가운 물을 좋아해 이맘때면 북쪽으로 올라가버려 보기 힘들다고 한다.

물범은 지혜로워서 얼음이 어는 시기에는 자기가 사냥할 구멍을 확보하기 위해 얼음이 얼지 않도록 물속으로 들락날락한다고 한다.

그리고 얼음구멍 뒤에 새끼를 숨겨 두기 때문에 옛날 사냥꾼들이 물범 새끼를 보고 쫓아갔다가

얼음구멍에 빠져 죽는 경우가 많아서 귀신이 붙었다며 물범을 사냥하지 않는다고 한다.

지금은 개체수가 많이 줄어서 멸종 위기종으로 보호하고 있다고 한다.

 

바이칼 호수에는 온천이 솟는 곳이 많은데 이 곳은 겨울에 얼음이 아주 얇게 언다고 한다.

겨울에 차가 다닐만큼 바이칼이 단단하게 얼지만 현지인의 안내없이 함부로 다니다가 얇은 얼음이 꺼져 죽기도 한단다.

올 2월에도 러시아 고위 공직자의 아들이 차를 갖고 바이칼 호수를 질주하다가 얼음이 꺼지는 바람에 죽고 말았다고 한다.

 

하늘 높은 곳에서는 솔개가 바람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고 있다.여기에도 성황당 같은 장소가 있다.

어김없이 오색천과 동전들이 수북하다.

세찬 바람을 피해 핀 들꽃은 모두 조그마하지만 형형색색 다양하다.

트래킹을 마치고 나서 미니버스로 돌아오니 기사분들이 우리를 위해 알혼 주민들이 먹는 식사를 준비해 두었다.

바이칼에서만 나는 생선인 오물로 국을 끓였는데 그 맛이 담백한게 생각보다는 훨씬 맛있었다.

우리가 식사를 하는 동안 바이칼 갈매기들이 우리 주변에 날아와 진을 쳤다.

관광객들이 먹고 난 뒤에 음식을 이들이 해치운다고 한다.

우리 식사시간이 길어지자 주변에 가까이 다가와 얼른 일어나라는 듯 시위를 한다.

 

식사를 마치고 용변은 이쪽 숲과 저쪽 숲을 나눠 남녀가 따로 이용하란다.

숲 속에는 말똥이 많으니 조심하라는 말과 함께...과연 천지에 말의 흔적이 널렸다.

 

점심을 마치고 우리가 간 곳은 일명 <사랑의 바위>.

그러나 부리야트 인들이 아들을 낳지 못하는 부인을 절벽 아래로 떨어뜨린 곳이라는 얘기를 듣고 나니 북위의 효문제 이야기가 생각났다.

흉노의 선우는 첫 번째 아들을 낳는 여자를 죽인다고 한다.

그 아들이 선우가 되었을 때 외척이 발호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한다.

효문제는 처음으로 이 풍습이 야만적이라 하여 금지시켰다.

유목민인 브리야트는 아들로 대를 잇기 위해 이런 잔인한 일을 저질렀던 모양이다.

가을바람처럼 차가운 바람이 불어서 방풍옷을 입었다.

 

우즈릐는 남해안의 몽돌해안처럼 모래사장이 아닌 몽돌로 만들어진 호안이 있는 곳이다.

양말을 벗고 물속에 발을 담갔다.

황량한 모래색과 뿌연 공기로 인해 세상은 마치 갈색사진처럼 보인다.

낮은 지대라서 그런지 소와 말을 방목하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부르한 바위에 도착했다.

일부에서는 이 곳울 고우리민족의 발원지라고 하는 모양인데

예니세이강에서 한반도에 이르는 벨트는 고대 교통로였기 때문에 선사시대부터 문화적 유사성은 늘 있었던 지역이다.

그 전승이 유사하다 하여 이곳을 민족의 발원지로 비정하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고 본다.

지금은 러시아가 밀고 들어와 이질적인 유럽문화가 이식되었고

동서냉전으로 인해 문화벨트가 단절되었지만 한반도에 협력관계가 형성된다면

다시 수천년간 그러했듯이 교역로가 열릴 것이라고 본다.

브리야트 족은 이 곳을 신성하게 여기는데 샤먼들이 기를 받기 위해 많이 온다고 한다.

부르한 바위는 철분이 많아서 붉은 색을 띠고 있다.

 

부르한 바위 아래 몽돌 호안에서 손과 발을 물에 담궜다.

커다른 유람선이 지나간다. 정말 바다 같은 곳이다.

이르쿠츠크에서 앙가라강 상류를 따라 알혼섬까지 오는 유람선이 잇는 모양이다.

수상레저 기구를 타는 곳도 있는 것으로 봐서 성수기에는 관광객이 제법 오는 모양이다.

이 오지에 오토바이를 타거나 또는 걸어서 여행을 온 사람들도 있었다.

그 가운데는 한국 대학생도 있어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돌아오는 길에 후지르 근처에 있는 알혼섬 민속박물관에 들렀다.

건물은 작고 볼품없었지만 어쩌면 다시 볼 수 없는 이 지역의 토착문화 흔적을 담아 놓고 있었다.

19세기 하딩을 비롯한 제국주의 탐험가들이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 일대를 훑고 다니면서 이 지역에 대한 관심은 높아졌다.

그러나 고유문자가 없는 사람들이 문자로 된 기록을 남긴 것이 없어 인류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알려지기도 전에 사라지고 말았다.

남은 유산이나마 외부의 영향으로 변질되기 전에 원형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 되고 말았다.

 

박물관 구경을 끝으로 낮에 알혼섬을 돌아보는 여행은 끝났다.

저녁을 먹고 하늘의 별을 볼 계획이 잡혀 있었지만 혹시나 하는 기대는

짙은 연기 때문에 알혼섬에 다시 와야한다는 인연을 남기는 것으로 정리해야 했다.

10시쯤에 캠프파이어와 샤슬릭 파티를 할 계획이니 모두들 시간을 맞춰 나오라고 안내해 준다.

 

숙소에 들어와 반야를 하러 가려고 준비하는데 “아뿔싸!” 지갑이 없다.

뒷주머니에 넣었던 것 같은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기념품을 살지 몰라서 4천루블을 넣어둔 것인데....

이번 여행은 처음에 배터리와 판초우의를 잃어버리며 시작하더니 마지막까지 잃어버리는군. 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할 수 없지.

 

준기와 한결이를 데리고 마지막으로 반야를 하러 갔다.

자작나무로 몸을 두드리는 것은 생략하기로 했다.

반야와 수영만으로도 충분히 효과를 느꼈기 때문이다.

반야에 들어가는데 어린 여자 둘이 소리를 지르며 수영장으로 달려간다.

 

반야 안에는 중년의 러시아 남자 혼자 있었다.

준기는 씩씩하게 “도브릐 베체르(Добрый вечер!)” 하고 저녁인사를 건넸다.

그 분은 약간 긴장한 웃음을 띄우며 도브릐 베체르! 하고 화답했다.

 

그 분은 긴장한 목소리로 자기는 러시아 사람이라고 하면서 우리 국적을 물었다.

우리가 까레이라고 하자 남이냐 북이냐를 물었다.

남쪽이라고 했더니 “서울?”하고 되물었다.

그렇다고 했더니 자기는 서울에 가 본 적이 있다고 하면서 바이칼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나는 안되는 러시아어로 내 이름을 이야기하고 이름을 물었다.

그는 웃음을 지으며 자기 이름이 세르게이라고 말해 주었다.

하루 이틀 익힌 러시아어라 인칭 대명사 대신 사물을 지칭하는 대명사를 썼던 것이다.

 

악수를 하고 반야를 즐기고 있는데 조금 뒤에 예쁜 여자아이 둘이 들어오는데 아까 수영장으로 달려가던 그 자매였다.

자기 딸이라고 하면서 딸 아이 둘의 이름을 가르쳐 준다.

어떨결에 두 소녀와도 인사를 하고 같이 반야를 하다가 수영을 하러 갔다.

 

한 시간 쯤 반야를 하고 나서 캠프파이어 약속장소로 가기로 했다.

준기와 한결이를 먼저 보내고 김 선생과 같이 가려고 했는데

목포에서 같이 온 일행 가운데 영감님과 이야기를 나누느라 그만 시간이 많이 지체되고 말았다.

준기와 한결이는 11시가 넘어 잠을 자러 들어갔다.

 

자리에 앉고 보니 모두들 샤슬릭을 먹으며 자기 소개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가족 또는 부부끼리 온 사람들이 참 많았다.

이런 여유를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는데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

자기 가족으로 소개한 뒤에 노래를 한 곡씩 부르며 아름다운 시베리아의 밤의 정취를 흠뻑 느끼고 있다.

한국 무용을 전공한 분은 우아한 춤사위까지 보여 주어서 많은 박수를 받았다.

 

내 차례가 되어 소개를 하고, 이번 여행 소감을 이야기하고 나니 어김없이 노래를 시킨다.

이번 여행 내내 많은 사람들과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느라 사실 목이 살짝 쉰 상태였지만 부르기 쉬운 <연가>를 선창하며 함께 불렀다.

12시가 넘어서도 끝나지 않는 자리를 피해 새벽 1시가 좀 넘은 시각에 숙소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아쉬운 여행길이 이렇게 마지막을 맞고 있었다.

 

 

알혼 섬에 있는 바이칼뷰 호텔 마당에 핀 야생화

 

 

짙은 연무로 하늘의 해가 달처럼 보인다.

바이칼뷰 호텔은 1층으로 된 구조물로 컨테이너 박스처럼 생겼다.

 

 

호텔 수영장. 반야를 하다가 이 물에 뛰어들어 수영을 하면 피로가 싹 풀린다.

 

 

알혼섬 선착장에서 바이칼뷰까지 타고 왔던 4륜구동 미니버스.

알혼섬 투어에는 이 차를 사용한다. 우직한 러시아 사람을 닮은 듯한 완전 기계식 자동차.

 

 

브리야트족의 이동식 천막 가운데 한 종류

사냥을 갈 때 이런 텐틀르 친다.

 

 

짙은 연무로 기대했던 쾌청한 사진은 불가능했다.

 

 

사람이 손을 대기에는 엄두가 나지 않는 거대한 자연. 스탈린이 만든 수용소 근처에 숲.

 

 

바이칼을 찾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방갈로 같은 숙소를 짓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고.

러시아 사람들이 주말 별장인 다차로 쓰는 경우도 많다.

 

 

파도 치는 바이칼과 모래사장

 

 

생각보다 물은 따뜻한 편이었다. 바이칼 호수 심층에는 온천도 수십개가 솟는다고 한다.

 

 

뼤씨얀까 수용소 근처 모래사장이 있는 곳

이 곳은 강제수용소에 수용된 사람들이 건설한 접안 시설의 잔해

 

 

샤간후슌 곶에 있는 붉은 색 삼형제 바위. 인육을 먹지 말라는 아버지의 명의 어긴 독수리 삼형제가 바위로 변했다는 전설이...

 

 

알혼섬 최북단 하보이(브리야트 말로 송곳니라는 뜻) 곶을 향해 가는 트래킹

바람이 무척 강해서 서늘하다.

 

 

아찔한 절벽 아래 호수 바닥이 훤히 보인다.

 

 

절벽에는 구절초 같은 국화종류의 꽃이 피어 있다.

 

 

하보이 곶을 향해 가는 트래킹 코스는 한쪽이 아찔한 절벽을 이루고 있다.

 

여기에 세르게(우리나라 장승)가 서 있다. 역시 샤머니즘의 풍습대로 돈, 담배가 쌓여 있다.

 

 

스텝지역이어서 나무가 자라기 어려운 곳이지만, 바이칼 호수에서 올라오는 안개 덕분에 큰 침엽수림이 곳곳에 자라고 있다.

 

 

말로예 모레, 그리고 발쇼에 모레를 볼 수 있는 하보이 트레킹 코스

 

 

<하늘문>. 저 바깥 쪽은 100m가 넘어 보이는 아찔한 낭떠러지다.

 

 

이 척박한 땅에 예쁜 꽃이 곳곳에 피었다. 종류도 아주 다양하다.

 

 

우리가 트레킹을 다녀오는 사이 미니버스 운전을 하는 현지인들이 브리야트식으로 알혼섬 특산인 오물탕을 준비해 놓았다.

꼬리까지 달려 있어 비주얼은  별로지만 맛은 정말 고소하고 담백하다.

 

 

우리 일행 가운데는 고추장, 라면, 그리고 야전식량을 챙겨 오신 분들이 있었다.

 

 

바이칼 물범 네파(Nerpa). 아직 물이 따뜻해 이 녀석들은 바이칼 호수 북쪽 끝에서 머물고 있어서 볼 수 없었지만

귀여운 이미지는 이렇게 물병에 상표처럼 인쇄되어 있다.

 

 

두 얼굴을 가진 <사랑의 바위>. 아들을 낳아 대를 이어야 하는 브리야트족은 

이곳이 아들을 낳게 해 달라고 합방을 하는 곳이기도 하면서 아이를 낳지 못하는 부인을 

이 바위 절벽에서 떨어뜨려 죽였다는 후덜덜한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우주릐 몽돌 호변. 소와 말을 방목하고 있다.

 

 

우주릐 몽돌 호변. 바이칼 호수에서 유일하게 몽돌로 호변이 조성되어 있다.

 

 

부르한 바위로 가는 길에 있는 세르게가 줄지어 서 있다.

 

 

달인지 해인지 구별이 안 갈 정도로 짙은 연무가 낀 알혼섬의 낮

 

브리야트 족의 신성지역 부르한 바위. 사진에 보이는 개는 다른 두마리와 함께 이곳에서 계속 머무는 듯 하다.

갈매기를 보더니 마구 짖으며 달려간다.

 

 

부르한 바위 가까이 가보기 위해 언덕을 내려가는 도중에 발견한 꽃

 

 

아래에서 올려다 본 부르한 바위. 점점 무너져 내리고 있다고 한다.

이 곳의 돌은 철분을 많이 갖고 있어서 붉은 색을 띤다.

 

 

 

부르한 바위에서 차가 있는 곳으로 가는 도중에 되돌아 본 모습

 

 

후지르에 있는 알혼섬 민속박물관. 키릴문자로 무제이(МУЗЄЙ)라고 씌여 있다. 실내는 촬영금지.

 

 

박물관이 있는 후지르 마을

 

 

후지르 마을 근처에 있는 기념품 가게

 

 

알혼섬 마지막날을 위한 양고기 샤슬릭 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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