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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여행

한여름에 느끼는 추위 .. 방태산자연휴양림

by 연우아빠. 2009. 8. 5.

한여름에 입김 호호 불며 야영을 하다

2009.7.30~8.2(3박4일)

나도 정원 초과 하고 싶지 않다고요.

여름철 추첨에서 5년만에 당첨. 그것도 방태산 방태방. 작년에는 주워서 갔었는데 8월달 추첨에서는 탈락. 주어진 여건에서 활용성을 높이려고 같이 갈 일행을 수소문 했으나 다들 일정도 안맞고... 아버지는 너무 멀다고 자신 없어 하시면서 빠지겠다고 하고, 아내는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라고 나에게 얘기하지만 그 이유를 매번 고려해야 하는 것을 피하고 싶은 심정도 어느정도 있는 건 사실. 누나는 회사가 한참 바쁠때라 휴가를 낼 수 없다하고....그래서 너무 멀리 있어서 부르기 곤란하다고 생각했던 부산과 영주에 사는 동생들에게 의향을 물었더니 의외로 오겠다고 한다. 오랜만에 삼형제 가족만 함께 한 여름휴가.

29일 밤에 출발할 짐을 간단하게 챙기는데 아내가 한마디 던진다.

“야영 안해?”
(속으로 “아니 이게 웬일?” 하면서) “작년에 방태산 야영장 잡으려면 어떤지 겪어 봤잖나?”

“그럼 삼봉이나 미천골이라도 한번 들어가 봐야지. 2박 3일은 넘 짧잖아.”
“거기도 별반 차이 없을 걸”
“그래도 혹시 모르니 야영준비도 해 가지고 가자고!”

짐은 많았지만 속으로 얼마나 흐뭇했는지. 까짓거 하룻밤 줄 서서 자리 한번 잡아보지 뭐.

30일 오전 아내는 독서논술지도사 시험 치러 나가고, 그 사이에 자동차 정기검사를 갔다 왔다. 출발전에 곰배령 가보자고 신문 스크랩 한 것을 가지고 내려온 아내. 김밥 몇 개 사고 12시 30분쯤 출발했는데 양평에서 막힐 것을 생각해 새로 개통한 춘천고속도로를 이용했더니 방태산까지 겨우 2시간 30분. 갑자기 용화산, 삼봉, 방태산, 용대가 너무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민영 고속도로인 탓에 통행요금이 무려 6,400원(외곽순환도로와 44번 국도와 연결된 삼봉IC까지 포함하면 8,600원). 그래서 차들도 별로 없어 효과는 만점인데. 자고로 조세, 국방, 도로, 철도 등 사회간접자본을 민간에 맡겨서 오래 유지된 나라가 없다. 이건 국가가 해야 할 공공서비스고 우리 그 서비스를 무료로 이용해야 할 권리를 갖고 있는 납세자라고..... 뻥뻥 뚫린 고속도로를 무료로 질주하는 독일이 무척 부러운 순간이다.


방태산휴양림 청소년 야영장, 42번 데크에서 계곡 옆에 텐트를 친 모습을 봅니다.
정면에 보이는 3동은 7.31일 새벽에 제 뒤에 줄섰던 고교동창이라는 3가족입니다.

전날 날아온 문자가 조금 찝찝하다. “입실인원 초과하면 입실 거부합니다”. 작년에도 휴양림 관리소 직원과 한번 실갱이가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방태산 휴양림은 대기 1순위로 한달을 기다려도 도대체 예약을 취소하는 사람이 없으니 낸들 어쩌겠나. 조금 걱정스러웠는데 아니나 다를까 입구에서 규정인원 초과하면 벌점 부과한댄다. 최대한 자세를 낮추고 조용히 지내다 가겠다고 양해를 구하고 아이들에겐 절대 숙소 안에서 뛰면 안된다고 주의를 주었다. 아래층에서 시끄럽다는 항의가 들어오면 바로 퇴실조치한다는 어마어마한 조건을 걸고 입실하긴 했다. 요즘 야영장 사정을 물어보니 하루에 데크 10여개 정도는 교체가 된다고 하고 새벽 2시쯤 줄서면 가능하다는 얘기를 해 준다. 장담은 절대 못하고.

짐을 풀어놓고 저녁에 먹을 채소를 씻는데 손이 너무 시려서 호호 불어가며 씼었다. 밖에서 오랜만에 연우랑 배드민턴을 쳤다. 한시간 쯤 치다보니 5시쯤 막내동생이 도착했고, 둘째도 휴양림 입구라고 한다. 동생들 들어올 때마다 사람 숫자를 가지고 협박(?)을 하더란다. 내 돈 내고 들어온 곳이지만 이해한다. 당신들이 이 여름동안 얼마나 많은 민원에 시달리고 있는지...그래도 살짝 기분은 상한다.

휴양관 앞 데크를 잡고 오랜만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숯불구이 준비를 했다. 다른 집을 보니 다들 마트표 숯에다 번개탄 아니면 착화탄에 종이 불쏘시개에다가 부채질을 하면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아마도 여름에만 휴양림에 오시는 분들인 듯. 우린 은주아빠께 전수받은 경험과 나름 노하우가 많이 쌓여서 그물망 바닥에 불쏘시개용 마른 잔가지를 주워 깔고 그 위에 숯을 올렸다. 토치를 그물망 아래에 넣고 불을 붙이자 사람들이 손을 멈추고 우리를 신기한 듯 쳐다본다. 오랫동안 숯을 방안에서 냄새제거용으로 쓰다가 가져왔더니 습기를 머금은 듯, 2~3일 베란다에서 바짝 말렸는데도 조금씩 튄다. 그 소리에 사람들이 더 몰려오고.. 그러더니 옆에 자리잡은 가족이 착화탄에 불을 붙여 줄 수 있냐고 부탁한다. 우리 아래층에 들어온 가족이라 얼른 해 드리고 안면을 텄다. 이 집도 정원 초과한 듯해서 조금은 안심이 된다. 소세지를 구워 아이들을 먼저 주고 영주에서 사온 품질 좋은 목살을 직화로도 굽고 훈연으로도 익혀 맛있게 먹었다. 금년들어 한달에 한번 정도만 간신히 휴양림 출입을 한데다 숯불구이 금지 휴양림만 다닌 때문인지 준기는 “음, 숯불구이야 반갑다!”하면서 너스레를 떤다. 그동안 못만나 안달을 하던 아이들은 사촌들끼리 휴양림이 좁다고 뛰어다니면 놀고 제비처럼 가끔 들어와 한입씩 받아먹고 간다. 남은 불로 감자를 굽고 그래도 남은 숯불은 웨버에 넣어 밀봉해 불을 껐다.


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모습. 엄마없으면 절대 가만히 있지 못하는 네살된 질녀가 야영장 숲속에서 혼자 낮잠을 잡니다.

저녁을 먹고 야외 식탁에 앉아 느긋하게 차를 마시며 숲을 즐기자고 했지만 모닥불을 금지하고 있는데다 해가 넘어가고 나서는 기온이 뚝 떨어지는 다들 방안으로 들어가자고 한다. “시원해서 아주 좋은데....”라는 혼자만의 아쉬움을 접고 정리하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방안은 다락이 있어 어른 6명, 어린이 7명이 잠자는 데는 문제가 없지만 생활하기에는 좁긴하다. 이번 휴가기간 동안 뭘 할거냐고 아내가 묻길래, “이 많은 사람이 어딜 움직이겠냐고요. 그냥 숲속에서 숲을 즐기다 가는 쪽으로 하자고요. 부산에서 언제 방태산까지 와보겠어요?”라고 못을 박았다. 저녁 먹는데만 3시간 가까이 썼으니 다들 그냥 수긍하는 분위기.

건강을 위해 그리고 가족간 유대를 위해 아이들 어릴 때 여행도 자주하고 야영도 하라고 동생들에게 권유하며 함께 나이들어가는 동생 가족들의 건강을 걱정해 준다. 이번에는 아이들이 많아서 등산은 하지 않을 것이고, 2km 정도 되는 순환산책로나 숙소에서 야영장까지 오르내리는 길을 돌아볼 것을 권했다. 아이들은 밖에서 자기들끼리 잘 놀고 있길래 어른들만 데리고 이단폭포 구경 가자고 나섰다. 숙소에서 얼마 되지 않는 곳에 가족야영장을 들러 휴양림 야영장은 어떤 환경인지 설명해주고 2단 폭포를 향해 올라갔다. 이 길에는 길을 밝히는 불빛이 전혀 없다. 헤드렌턴은 내가 가진 것 2개 밖에 없고 인기척이 없으니 갑자기 오싹한 느낌이다. 중간 쯤 가다가 다들 돌아가자고 해서 내려오는데 동생이 얘기한다.

“이럴 때 뒤를 돌아보면 안돼!”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제수씨들이 뒤를 돌아보면서 “옴마야!”하면서 호들갑을 떤다. 이걸 시작으로 돌아가면서 어렸을 때 귀신얘기, 호랑이 얘기를 하고, 무서운 경험담이며 급기야 “빨간 종이를 줄까? 파란 종이를 줄까?”하는 아내의 이야기가 나왔을 때는 나도 갑자기 오싹해졌다. 역시 두려움은 심리적인 것이라고 하지만 캄캄한 산길에서 담담할 장사가 어디 몇이나 될까나?

한밤중에 줄을 서시오!


휴양관 위쪽 마당바위. 튜브를 가져 갔어야 하는데...그래도 작은아빠가 가져온 튜브랑 보트를 타며 즐겁게 잘 놀았다고 하네요.

숙소로 돌아와서 가져간 가벼운 침낭은 모두 사용하도록 내려놓고 혼자서 차를 끌고 어두운 길을 짚어 안내소로 내려왔다. 여기까지 왔는데 혼자서 하룻밤만 고생하면 여름철 방태산 야영기회를 가질 수 있겠다 싶어 야영 대기줄에 서기로 했다. 아내가 내일 아침에 내려가면 안되냐고 하는데 아무래도 확실하게 해 두는게 좋을 것 같았다. 헌데 안내소는 불빛도 없고 입구는 차단기를 내려놓은 채 관리소 짚차로 가로막아 놓았다. 나갈 수가 없는 상황. 2~3분쯤 고민하고 있는데 눈을 비비며 직원 한사람이 나온다. 내일 야영 번호표를 받고자 대기하려고 왔다고 하니 그냥 이 안에 있어도 된다고 한다. 입구에 1대가 와서 대기 중인데 그분에게만 말해두면 되지 않겠냐고 하면서. 하지만 밤새 먼 길을 달려올 사람들에게 그렇게 하면 새치기 당하는 느낌을 줄 것 같아 나가서 대기하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차를 치우고 밖으로 나가 두 번째에 차를 댔다. 밤 11시 30분. 의자를 뒤로 젖혀 침낭을 펴서 덮고 잠을 청했지만 영 불편하다. 4년전 덕유산 휴양림에서 폭우를 만나 우리가 예약한 산막이 침수돼 4인실에서 11명이 자고 아버지와 둘이서 차 안에서 새우잠을 자던 생각이 났다.

이럴만한 가치가 있나? 이거 괜한 욕심 아냐? 싶기도 하고,

아냐! 이런 경험도 나름 재미있잖아. 언제 이런 경험 다시 해보겠어. 그나마 숙소가 당첨돼서 이렇게 느긋하게 대기하고 있으니 지금 이리로 열심히 달려오고 있는 사람들에 비해 얼마나 여건이 좋으냐고...하룻밤 이렇게 자고 나면 한여름 성수기에 방태산 야영장에서 야영을 편안하게 할 수 있으니 충분한 값어치가 있다고...속으로 자문자답하며 빙긋 웃었다.

시트에 누워 잠자는 게 아무래도 불편해 이리저리 뒤척이고 있는데 밤 12시 조금 넘어 또 한 대가 도착했다. 부인에게 야영 짐 가운데 몇 개 빠진 것을 타박하는 남자 목소리. “내가 회사에서 돌아오기 전에 미리 준비를 해 두라고 했는데 이게 뭐냐?”며 티격태격한다. 차를 내 뒤에 대지 않고 관리소 옆 공터에 대고 작은 텐트를 꺼내 거기에 잠자리를 만든다.

“저러면 내일 다른 사람들에게 순서 가지고 시빗거리가 될텐데”

잠이 달아나자 또 불편한 시트가 영 맘에 안든다. 결국 2열과 3열 시트를 완전히 펼쳐 두 다리를 쭉 뻗고 자는 쪽으로 낙착. 자리를 다시 잡고 막 잠을 청하는데 내 뒤로 또 한 대가 들어와 차를 댄다. 새벽 1시.

“대단한 사람들이군!”


사진은 결코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준기가 혼나고 있는 것 같은 모습 같지 않나요? ^^

얕은 잠을 자는 동안 어느새 날이 밝고 사람들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아침 6시 15분. 관리사무소 앞에는 대학생인 듯한 사람 두명이 서 있다. 아마도 야영 데크번호표를 받으려는 모양이다. 휴양림 밖으로 나가는 사람들 때문에 관리소 직원이 바리케이트를 잠시 치우고 9시부터 접수번호를 부여한다고 알려준다. 뒤를 돌아보니 내 뒤에 7대가 더 서 있다.

“생각보다 많지 않네!?”

차 안에서 사람들이 하나 둘 나와 서로 이야기했다. 주로 수도권에서 오신 분도 있고 연령대도 40대, 50대, 60대 다양하다. 내 뒷차에는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녀 3쌍이 한차로 오셨는데 각각 데크를 하나씩 받는다고 하니 그 뒤에 서신 분이 걱정이 가득하다. 마지막에 선 분은 새벽 2시에 도착했다고 한다. 7시 반쯤 직원이 나와서 도착 순서대로 번호를 적었다. 일단 11번까지 줄 선 분들은 차단기 안으로 들어오도록 했다. 학생 두명은 아래쪽 민박집에 머물고 있는데 차가 없는 자기 같은 사람들은 표를 못받느냐고 항의했지만, 도착 시간을 확인해보니 6시. 결국 둘은 포기하고 민박집으로 돌아갔다.


베테랑의 포스가 보이는 위쪽 데크의 텐트.
부부께서 한 달 째 야영중이라고 합니다. 빨래집게와 보조폴을 이용해 완벽한 비닐하우스를 만드시고
데크보다 긴 텐트를 지지하기 위해 나무로 만든 틀까지 덧대어 장기야영자세가 완벽한 사이트입니다.
이 분들은 눈 내릴 때 쯤 내려간다는 우스개를 하십니다. 무척 부러운 모습.

야영장 확인하는 직원이 내려올 때까지 기다리며 서로 인사를 나누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야영에 한가락 하는 사람들도 있고, 여름에만 야영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 분은 고등학교 다니는 아이를 데리고 야영을 다닌다고 하는데 필요한 소품은 자기가 직접 만들어 쓴다고 한다. 국립휴양림 야영장을 안가본데가 없다고 하시는 분이 계셔서 물어봤더니 경기도와 강원도에만 국립휴양림이 있는 줄 알고 계셨다. 이런, 세상은 넓고 고수는 많다. 방태산 휴양림 개장하기 전부터 여기를 다니셨다는 50후반 아저씨는 세상에 20년 정도 방태산을 다니면서 주억봉을 한번도 올라가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아침가리골만 열심히 들락날락.. 사람의 취향은 참 다양하다. 서로 알고 있는 정보를 주고 받으며 심심함을 때우고 있을 때 야영장에 올라가신 분에게 무전 연락이 왔다. 오늘은 야영장에서 나가는 팀이 11개란다.

그 동안에도 차단기 바깥에는 10여대 넘게 줄을 선 차가 있다. 앞에 아무도 없으니 좋아라 하셨다가 이미 새벽 두시에 도착한 사람이 11가족이나 있고 야영장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을 듣고는 실망이 크시다. 휴양림 직원은 야영데크 예약제를 하면 관리비용 때문에 하루 3만원 정도로 금액이 올라갈 거라고 한다. 줄 선 사람들 모두 데크 예약제는 반대란다. 3만원이나 돈을 내면서 위치도 주변 지형지물도 모르는 데크를 누가 예약을 하겠냐고. 휴양림 숙소도 여름에 추첨제가 아니라 평소처럼 선착순으로 하는 게 옳다고 다들 한마디씩 하신다. 나도 데크 예약제랑 숙소 추첨제 반대다. 잠시 기다리는 동안 숙소로 올라가 어제 먹다 남은 구운 감자 두 개를 가지고 안내소로 다시 내려왔다. 그걸로 아침을 때우고...


야영장에서 엄마에게 엉겨 웃고 있는 준기. 세상에 걱정근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금년부터 방태산도 목공예 체험을 무료로 실시한다고 해서 아이들을 불러왔다. 목공예실이 작아서 연우와 사촌 희원이 둘만 들어가고 다른 애들은 나중에 해보자고 돌려 보냈다. 10시쯤 야영장 징수직원이 표 11개를 가지고 내려왔다. 가족야영장 1개가 있길래 내심 그걸 바랬는데 앞에 있는 분이 그 표를 가져간다. 부부만 오셨는데 제일 큰 데크를....나도 모르게 “그거 저에게 양보하시면 안될까요?” 하는 말이 튀어 나왔다. 하지만 누가 그걸 양보해 주겠어. 우리 텐트가 올라갈만한 크기인 42번 데크를 받았다. “드디어, 한여름 성수기에 방태산 야영을 하는구나” 아이처럼 신이 났다. “어렸을 때 해 봤어야 할 일을 뒤늦게 하는데도 그렇게 좋을까?” 아내가 한마디 던진다.

둘째 동생은 아침에 매봉령을 다녀왔다고 한다. 아침을 먹고 나서 오늘 생일을 맞은 조카 둘을 위해 케익을 마련했다. 한 녀석은 아침에 생일 케익을, 다른 녀석은 저녁에 케익을 자르기로 하고. 다들 서로 촛불을 끄겠다고 나서서 결국 촛불은 세 번을 끄게 되고...모두들 밖으로 내 보내 마당바위에서 물놀이를 하도록 했다. 수영을 배웠기에 튜브 같은 물놀이 도구를 가지고 오지 않았는데 수영을 할 만한 장소가 아니라서 연우랑 준기는 입맛만 다시고 말았다. 점심을 먹고 마당바위 물속에 드러누워 감전된 듯 짜릿한 차가움을 느끼며 한여름 더위를 날려보내다가 혼자 야영장으로 올라갔다. 막내는 옥수수를 사고 자동차 연료도 충전할 겸 아이들을 남겨놓고 밖으로 나갔다.


방태산 야영장에 사이트를 구축하다


청소년 야영장 한 가운데 자리잡은 42번 데크. 야영 16번만에 제대로 모든 것을 설치해 봅니다.
휴양림 야영장은 나무와 경사진 터 때문에 가는 곳마다 사이트 구축이 쉽지는 않습니다.
2시간 동안 치고, 이틀간 보강해서 이런 모습을 만들었습니다. 그 덕에 시간은 잘 갑니다.

텐트를 치고 있는데 위쪽 텐트에서 막 퇴직하신 듯한 분이 나오셔서 혼자 야영 왔냐고 물어보시더니 도와주신다. 앞에 자리한 텐트에서는 퇴직 하신 지 꽤 오래 된 듯한 분이 오셔서 관심을 보이시고...나중에 알고 보니 위쪽 텐트에 계신 분은 부부만 방태산에 여름부터 눈이 올 때까지 야영을 하신다하고 앞쪽 텐트에 계신 분은 한달 이상 동안 친구, 후배, 가족을 파트너로 번갈아 맞이하면서 함께 야영을 하신다고 한다. 성수기 직전에 여유 있게 들어오셔서 명당에 자리잡고 계시니 야영을 즐기시는 분에게 이보다 더 좋은 조건은 없을 듯하다. 앞쪽 텐트에 계신 분은 야영장비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분으로 내가 직접 만든 소소한 물품에 대해 관심이 많으시다. 그 분 질문에 대답하다 보니 내가 갖고 있는 장비들은 세트로 된 것은 하나도 없다. 두 분 모두 오랜 야영경험이 묻어나는 사이트를 구축해 놓으셨다. 주변에 텐트는 일반 야영장과 달리 형형색색 한가지도 같은 텐트가 없다.

탁 트인 평지가 아닌 곳이라 타프 설치하는 장소마다 여건이 달라서 고생을 하는데 빨리 치라고 성화를 하는 사람이 없으니 이모저모 궁리해가며 다음에 어떻게 사이트를 구축하는 게 편리한지 차근차근 생각해가며 작업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동생들과 조카들이 모두 올라와 사이트와 야영장 환경을 보더니 무척 땡기는 모양이다. 꼬맹이들은 야영장 주변에서 놀잇감을 찾아 신나가 놀고 아직 뛰놀지 못하는 막내동생네 조카 둘은 어느새 텐트 안에서 잠이 들었다. 휴양관 앞과 야영장은 10도 정도는 기온 차이가 나는 것 같다. 시원한 바람과 숲내음에서 제대로 된 “휴양”을 느끼고 숲속에 빠져 들어간다. 아내도 이젠 야영이 주는 편안함 때문에 휴양관 보다 야영장이 좋다고 한다. 숙소에 내려가 저녁을 먹고 아내와 준기 그리고 준기 형아를 졸졸 따라다니는 다섯 살짜리 조카 녀석 이렇게 네 사람은 야영장으로 다시 올라왔다.(요 녀석은 준기 형아 쫒아 다니느라 작년 5월달에 노고단에도 혼자 걸어 올라갔던 녀석이다)


사이트 윗쪽에 있는 나무에 독버섯이 보입니다. 꽤 예쁘던데요.

앞 텐트에 계시는 할아버지는 이것저것 궁금한 것이 많다. 우리가 저녁 먹으로 내려간 사이에 우리 텐트를 보다가 타프 스토퍼를 보고 한참을 들여다봤단다. 이 분, 나름대로 국내에 있는 거의 모든 장비를 다 알고 있다고 자부하시는 분인데 당최 처음 보는 스토퍼라 궁금해서 내가 올라오기만 기다렸다고 한다. 칫솔로 집에서 만든 것이라고 했더니 옆 텐트 아저씨도 불러서는 감탄을 거듭하신다. 수십년 야영 경험에서 나온 온갖 장비 얘기랑 산속에서 야영하신 경험담이 술술 나온다. 이 분은 비싼 외제 장비로 도배를 하고 다니는 요즘 세태가 별로 맘에 안들기도 하고, 또 국산제품들 너무 성의없게 만들어서 외국제품들이 밀려들어오게 만드는 것도 맘에 안들고, 싼 것만 찾아서 전체적으로 질을 떨어뜨리는 소비자들도 비판하신다. 내가 갖고 있는 물건이야 여기저기 따로따로 사 모은 것하고, 집에서 혼자 만든 것하고, 다른 폐품에서 재활용 하는 것이니 자기 취향에 딱 맞으신 듯 가족들 제껴놓고 우리 쪽에 자주 오신다.


8월2일 아침에 아주 큰 나방 한마리가 나무둥치에 앉았습니다.
맞은 편 사이트에 계신 할아버지 말씀이 얼마 못가서 죽는 나방이라고 합니다.
날아가지도 못하더군요. 거의 10cm는 돼 보이는 엄청 큰 나방이었습니다.

밤이 되니 겨울처럼 입김이 하얗게 나온다. 겨울 침낭을 2개만 가져오고, 4계절 침낭 4개를 두겹씩 겹쳐 쓰려고 가져왔는데 아무래도 춥지 않을까 싶다. 아내와 5살짜리 조카에게 겨울 침낭을 줬다. 자다가 오줌이 마려워 새벽 2시에 깼는데 차가운 기온 때문에 머릿속이 따갑다. 아내가 “한여름에 추워서 떨다니 제대로 된 피서네” 하는 것을 보니 이젠 제법 이런 환경에 익숙해 진 듯. 어쩌면 야영하는 분들은 몸에 열이 많은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남녀 모두 찬물만 나오는 샤워장에서 태연히 샤워를 하고, 이런 기온 속에서도 반팔소매, 반바지 입고 다니는 것을 보면. 따뜻한 모닥불이 있으면 참 좋을 것 같은 그런 환경. 텐트 안에는 이슬이 맺히지 않았는데 플라이 입구에만 이슬이 맺혔다. 볼일을 보고 다시 잠을 청했다.

누군가 우리를 깨운다. 눈을 떠보니 부산 제수씨. 시계를 보니 6시가 좀 넘었다. 숲이 우거진 야영장이라 다른 휴양림보다 야영장이 어둡다. 등산로 입구까지 올라가보려고 나섰는데 아무도 없고 큰 짐승을 만날까봐 같이 가려고 우리텐트로 왔다고. 얼른 옷을 입고 아내와 함께 셋이서 산으로 올라갔다. 하산길 입구까지 약 1시간 정도 걸어 들어갔다가 되돌아 나왔다. 입구 갈림길에서 방태산에 대한 정보도 없이 조개화석이 나오는 봉우리를 가겠다고 혼자 등산을 오신 분이 있어서 아마도 배달은석을 찾는 것 같아 주억봉을 거쳐 가는 길을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나도 작년에 멋모르고 혼자 일주를 했지만 역시나 혼자서는 위험하다. 코스도 길고, 큰 산이라 위험한 짐승을 만나거나 조난을 당하면 곤란하기 때문에 최소한 두 명 이상이 같이 움직이고 방태산 휴양림 전화번호를 가지고 등산을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이번 여름에도 상당히 많은 비가 온 듯 곳곳에 나무 다리가 제자리에서 옆으로 많이 밀려나 있다. 제수씨는 가을에 한번 와 봤으면 좋겠다고 한다. 하지만 부산에서는 너무나 먼 길...이번에도 오는데 8시간 걸렸다고 한다. 신불산과 영남알프스가 부산에서 다니기에 정말 좋은 곳이니 이번 10월달에 억새 구경하러 내려갈 때 부르겠다고 약속하고 아이들과 함께 아침 먹으러 숙소로 내려갔다.


짜잔! 정상정복! 택도없는 나무 밑둥치 위에 올라가 정상정복을 외치는 준기.
준기 뒤에 있는 텐트는 정말 크더군요.

퇴실준비를 마치고 마당바위에서 기념촬영을 한 다음 두 동생네는 휴양림을 떠났다. 아이들을 위한 별다른 프로그램이 없었지만 오랜만에 만난 사촌들끼리 너무 재미있었다고 한다. 방태산 우거진 숲이 주는 즐거움이 도시에서 갇혀 자라는 아이들에게 큰 선물이 되었으리라 생각해 본다. 막내 동생은 야영을 본격적으로 해 보고 싶어하는 눈치이고, 둘째 제수씨도 휴양림 여행에 너무 즐거워해서 영남알프스를 계절별로 다녀보라고 권했다. 아쉬운 작별을 하고 더 뜨거워진 햇살을 피해 야영장으로 올라왔다.

아침에 야영데크 배정문제로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고 한다. 다들 차를 차례로 대고 기다렸는데 아주머니 몇분이 자기들이 먼저 왔다고 해서 시비가 붙었고 결국 휴양림 측에서 줄선사람 1명, 차량대기 1가족 이런 식으로 지그재그로 데크를 배정해 평소처럼 차를 대고 밤새 기다렸던 사람들이 항의를 심하게 하고...결국 휴양림에서 데크 배정을 차량 주차 순서대로 한다고 공고문을 써서 붙였다고 한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이런 사회 정말 짜증이다. 연우가 휴양림 밖에 나가보자고 했지만 이 더운 날에 더구나 휴가 피크라는데 어딜 나가겠냐 싶어 살살 달래서 야영장 안에서만 놀았다. 점심으로 간식으로 라면을 끓여 먹고 잠깐 사이에 아내와 연우는 시원한 텐트 안에서 세상 모르게 잠이 들었다. 나도 낮에 자고 싶은데 이상하게 야영장에서 낮잠을 한번도 자질 못했다. 설거지를 하는데 물이 너무 차가와 뼈가 시리다. 다른 사람들은 세제가 잘 씻겨 나가지 않는다고 하고 특히 기름이 묻은 식기는 더 그렇단다. 내 뒤에서 밤을 샜던 아저씨께서 원두커피 찌꺼기로 기름묻은 그릇을 닦으면 아주 잘 닦을 수 있다고 하고, 맞은 편에서 설거지 하던 분은 쌀뜨물에 밀가루를 풀어서 닦으면 좋다고 한다. 손을 호호 불어가며 설거지를 마치고 준기와 함께 야영장 옆 개울에 내려가 바위에 앉아 얼음 같은 물에 발을 담궜다. 신음소리가 저절로 난다.

오후 3시쯤 둘째네가 인제에서 물놀이 하다 엄청난 소나기를 만났다고 전화를 했다. 그때부터 천둥이 치면서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온다. 다들 플라이나 타프를 치는데 어떤 텐트에는 커다란 비닐을 꺼내 데크 전체를 덮어 버렸다. 방태산 야영장은 나무가 우거져서 심한 바람이 숲 위로 지나가는 관계로 비닐을 쳐도 바람에 날릴 일은 없을 것 같다. 나도 재작년 검마산에서 달새님께 받아 두었던 비닐을 꺼내 타프로 가리지 못하는 데크 부분을 가려서 비에 젖지 않게 했다. 내일이면 철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몹시 아쉽다. 비구름이 몰려오자 다섯 가족이 철수를 했다. 그 데크는 순식간에 다른 사람들이 올라와 텐트를 편다. 일반 야영장에 가야할 거대한 텐트도 들어왔는데 360cm × 310cm 데크에 올라가질 않는다. 한순간 쏴아 하는 소리와 함께 야영장 숲 꼭때기 부분이 흔들린다. 하늘에는 비가 내리는 것이 분명한데 야영장 숲속은 빗물이 떨어지지 않는다. 울창한 숲은 비를 한참동안이나 막았다. 땅은 전혀 젖지 않고 10분쯤 내리던 비는 그쳤다. 야영장에서는 숯불 사용을 금지하고 있어 김치찌개를 끓여 저녁을 먹었다. 아이들은 일기를 쓰는 동안 물을 끓여 물병에 담아 유담포처럼 아이들 침낭 속에 밀어 넣었다. 아쉬운 야영의 마지막날 그냥 쉰다. 방태산 여름 성수기 야영을 해본 것에 나름 만족하며 잠을 청했다. 너무 추워서 샤워를 생략했다. 앞으로 항상 겨울 침낭을 챙겨가지고 야영을 다니리라.

아쉬운 귀가


방태산 2단 폭포. 17-70mm 광각렌즈는 상단과 하단 폭포를 한 화면에 다 잡더군요.

8월2일 한밤중에 2번이나 잠을 깼다. 너무 차가운 날씨 때문에 자주 화장실에 가야 하는 게 조금 흠이다. 계곡에서 제법 떨어진 곳에 자리잡았는데도 물소리는 정말 크다. 아침밥을 해먹고 아쉬운 짐을 쌌다. 3박4일 휴가는 너무 짧지 않냐고 앞 텐트에 계신 어르신이 섭섭해 한다. 다음에 다른 야영장에서 또 만나지 않겠냐며 악수를 청하신다. 손이 참 두텁고 따뜻한 분이다. 이런 곳을 찾는 분은 다들 온화함이 배어있어 마음의 평화를 더 많이 느낀다.


엄마에게 물 공격 했다가 된통 당하는 준기. 그래도 즐거운가 봅니다.

내려오다 이단폭포에 잠시 내렸다. 폭포 앞에 도착하니 서늘한 물보라가 차가운 기운을 뿜어 낸다. 한여름에 이보다 더한 천국이 없다. 새로 산 렌즈로 들여다보니 상단과 하단 폭포가 모두 파인더 안에 들어온다. 이 맛에 광각렌즈를 쓰겠지. 다음을 기약하며 방태산을 벗어나 근처에서 맛있는 찰강냉이를 한푸대(20개) 사서 싣고 홍천으로 내려왔다. 작년에 먹었던 장원막국수가 생각이 나지 않아서 양짓말화로구이에 들렀는데 이젠 그만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고기는 기름이 지나치게 많고 너무 많은 손님 때문에 밥 먹는 즐거움이 없다. 자욱한 연기와 뜨거운 열기 때문에라도 맛집이라는 유명세에서 이젠 벗어나야겠다. 홍천IC를 거쳐 춘천 고속도로를 타는데 라디오에선 고속도로마다 막히지 않는 곳이 없다고 하고 특히 영동고속도로는 세군데가 수십 km씩 막힌다는 소식. 여긴 비싸서 그런지 잠시 지체만 있었을 뿐 그야말로 고속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창문을 여니 시원한 수리산 바람이 내가 휴양림 같은 숲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


폭포 옆에 핀 며느리밥풀꽃.
이현세의 만화 <며느리밥풀꽃에 대한 보고서>를 대본소에서 봤을 때 며느리밥풀꽃이 어떻게 생겼나 되게 궁금했는데
특이한 모습에 슬픈 전설이 깃든 꽃이네요. 어쨋거나 며느리는 힘든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