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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여행

무서운 폭우 속에서 야영을...천관산자연휴양림

by 연우아빠. 2007. 8. 31.

가장 무서운 폭우를 만난 천관산자연휴양림  

2007.8.28~8.29(1박2일)

순천만을 나와 천관산 휴양림까지 가는 길 역시 100km에 가까운 긴 길이다. 2번 국도는 자동차 전용도로로 마치 고속도로와 같다. 처음 가는 곳이라 해가 지기 전에 휴양림에 도착하려고 하니 맘이 급하다. 결국 사단이 벌어지고 말았으니 앞에 너무나 태연히 40km 속도로 가는 트럭을 10여분간 뒤따르다 참지 못하고 추월을 했는데 기다렸다는 듯이 경찰관이 나타난다. 운전면허증을 보자고 하더니 이 지역 사람이 아니라고 계도차원에서 위반사실 등록만 하고 범칙금 발부는 하지 않겠다고 한다. 서두르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천관산에 도착해 휴양림 가는 길로 들어섰다. 다행히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할 것 같은데 네비게이션은 8km 남았다고 나오는데 도로 표지판에는 15km 남았다고 나온다. 이게 무슨 조화일까?


천관산자연휴양림 입구표지석.
여기서 비포장 산길을 달려 7km를 더 가야 휴양림이 있다.


천관산휴양림 가는 길에서 보이는 산 아래 마을


8km를 더 가니 천관산자연휴양림 입구표지가 보이는 곳에서 네비게이션은 안내를 중단한다. 입구에 내려 안내판을 읽어보니 휴양림은 7km를 더 들어가야 한다고 되어 있다. 오는 길에 폭우가 내린다는 예보도 들었고, 걱정하는 준기엄마가 휴양림에서 야영하지 말고 숲속의 집에 묵으라고 한다. 나도 어젯밤 혼자 야영하면서 조금 기가 꺾인 탓이라 웬만하면 휴양림을 한번 돌아보고 나와서 목포 쪽으로 가서 자리라고 생각했다. 다시 차를 끌고 휴양림 가는 길로 들어섰다. 비포장 길을 따라 3km쯤 들어가니 동백나무 보호지역이 있는데 동백나무가 무리를 지어 빽빽이 자라고 있었다. 잠시 사진을 찍고 멀리 산을 바라보니 과연 도립공원으로 지정할 만한 절경이다. 비포장 길은 산기슭을 따라 꼬불꼬불 계속 돈다. 30분쯤 지나서 마침내 휴양림 앞에 도착했는데 직원인 듯한 분이 사무실에 나오더니 묻는다.




휴양림 가는 길. 교행에 불편함이 없는 정도

휴양림을 보러 왔노라고 대답하니 어디에서 왔냐고 묻는다. 서울에서 혼자 왔다는 대답에 꽤 놀란다. 이 먼 곳까지 휴양림을 찾아 오다니, 그것도 혼자서....야영데크를 물어보니 1명이 야영하고 있단다. 한가족이 아니고 단 1명. 야영데크가 다 비어 있고 먼길 오셨으니 데크 사용료를 받지 않는다고 하신다. 다시 돌아나갈 일을 생각하니 “애라, 이왕 예까지 왔는데 야영하자”하고 휴양림 안으로 들어갔다.



휴양림가는 계곡 아랫마을

휴양림은 숲이 잘 조성되어 있어서 아늑하고 분위기가 좋다. 숲속의 집은 야영장 가는 길 좌우에 조성되어 있어서 차 소리가 조금 거슬릴 것 같다. 캠프 파이어장은 덕유산 휴양림 이래 처음 본다. 야영장에 올라가니 심장수술을 한 뒤 건강회복을 위해 혼자 여행다닌다는 30대 후반의 남자였다. 안동에서 전라남도 지역여행을 위해 서쪽에서부터 동쪽으로 여행하고 있다고 한다. 대단한 사람이다. 텐트를 치고 보니 야영데크에 텐트를 고정시킬 고리가 없다. 폴을 배달받았기에 가져온 타프도 칠까 생각해지만 내일 혼자서 걷을 일이 귀찮아서 텐트만 쳤다. 저녁을 해 먹고 샤워를 했다. 야영장은 좋은데 샤워장은 화장실과 같이 쓰고 있어 야영객이 사용하기엔 턱없이 부족할 듯하다. 데크마다 야외식탁이 하나씩 붙어 있어 가족끼리 야영할 때 좋겠는데 이 깊은 산에 계곡물이 상당히 부족하다. 같은 야영장에 있는 분은 텐트를 치지 않고 차안에서 자겠다고 한다. 10시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동백정에서 보이는 천관산. 구름에 싸여 있다.

벼락과 천둥소리, 그리고 엄청난 빗소리에 눈을 뜨고 시계를 보니 12시 13분, 빗소리는 청옥산 야영 때보다 몇 배 크게 들렸고 번개는 불과 1km도 되지 않는 곳에서 점점 더 가까운 거리로 다가왔다. 번개와 천둥이 심해지자 휴양림 안에 모든 가로등을 껐다. 바람도 점점 심해져 팩을 박지 않은 플라이가 흔들린다. 엄청나게 내리는 비에 이너텐트 천정 그물망을 통해 물방울이 두어방물 튀었다. “이거 침수되는 거 아닌가?”하는 생각에 일어나 살펴보니 엄청난 비에 이너텐트 위에 물방울이 두어개 생겼다. 차에 가서 잘까 텐트에서 잘까 잠시 고민하다가 떠내려 갈 일은 없고 산사태 날 곳은 아니니 그냥 자보자고 잠을 청했다. 바람이 너무 심해 나갈 엄두를 못내겠다. 일단 무거운 짐에 끈으로 플라이를 묶고 다시 잠을 청했지만 예사 비와 바람이 아니다. 아침까지 엄청난 폭우는 단속적으로 잠을 깨웠고 천둥과 번개는 나를 아주 겸손하게 만들었다. 한편으로는 이 것도 아침 해가 뜨면 끝날 일이라는 턱없는 믿음으로 나를 합리화시키기도 했다.


천관산의 달. 밤9시 무렵. 이 때만 해도 하늘은 괜찮았음

자는 둥 마는 둥 눈을 뜨니 새벽 5시 30분, 비는 세차가 내렸지만 텐트는 다행히 침수되지 않았다. 등산용 런닝셔츠를 벗었다. 어차피 폭우속에 나가면 옷이 젖을테니 맨몸으로 나가는게 나을 것 같았다. 플라이를 열고 밖에 나가니 여전히 세찬 폭우가 앞을 가렸다. 취사장 쪽으로 걸어가 쌀을 씻고 밥을 할 준비를 하면서 보니 3~5분 간격으로 비가 세차가 쏟아진다. 잠시 잦아들었다가 다시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쏟아지는 비는 그렇게 계속내렸다. 일단 비가 잦아든 틈을 타 텐트를 잽싸게 접었다. 내가 생각해도 그렇게 신속하게 접은 것이 신기할 정도다. 대충 텐트와 플라이를 자동차 짐칸에 우겨 넣고 세면도구와 옷가지만 들고 널찍한 취사장에 자리를 잡았다. 낙안 휴양림과 같이 취사장은 정말 크고 잘 만들어 놓았다. 함께 야영한 사람은 차안에서 아주 편안하게 잘 자고 있다. “차에서 잘 걸 그랬군” 하는 중얼거림이 저절로 나온다. 그래도 무사히 비바람을 견딘게 다행이다.



밤새 쏟아진 폭우에 완전히 젖은 플라이

밥을 먹고 세수를 하고 우산을 쓰고 휴양림 탐색에 나섰다. 천관산은 너무 멋진 모습이었지만 비바람과 목포가서 일을 봐야하는 일정 때문에 바라보고 사진 찍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짧은 탐방로를 돌아보고 내려와 안동 아저씨에게 여행 잘 하시라는 인사를 하고 8시 조금 넘어 목포를 향해 출발했다. 목포를 가는 도중 강진에 있는 다산초당을 비롯한 윤선도 유적지, 땅끝마을의 유혹이 나를 괴롭혔지만 차를 그리로 끌고 갈 수는 없었다. 휴양림에서 야영한 것만으로 만족하고 나중에 다시 휴가를 내서 돌아보리라 다짐했다. 작년 3월 이 길을 지나면서 “내가 언제 다시 이길을 오랴?”고 했지만 올해도 또 오지 않았는가?



천관산의 운해

목포에 들러 회사 일을 마치고 나오려니 선배님들이 “여기까지 와서 강진, 해남을 가보지 않고 가는 게 쉬우냐?”고 둘러보고 저녁먹고 천천히 올라가라고 말씀들을 하신다. 하지만 25일부터 계속된 야영과 긴 운전으로 피로를 느끼고 있었고, 300km가 넘게 남은 귀경길 걱정에 다음을 기약하며 귀가 길을 재촉했다. 전남 서남해안은 작년 3월보다 훨씬 활기 있어 보여서 좋았다. 이번 겨울 꼭 <나의문화유산답사기> 세대답게 남도 여행을 할 기회를 만들어야겠다. 자동차 계기판을 보니 910km를 운전한 것으로 나옵니다. ^^


천관산휴양림의 캠프파이어장


천관산자연휴양림 아래에 보이는 저수지


천관산 휴양림 산책로에서 찍은 꽃

* 이 글은 다유네(
http://www.dayune.com/)에 올렸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