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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여행

어처구니를 빼먹고 간 대관령자연휴양림

by 연우아빠. 2007. 8. 13.

어처구니를 빼먹고 간 대관령자연휴양림  2007.08.09~11

어처구니를 빼먹고 간 여행

8월 휴양림 예약을 실패하고 대기모드에 들어갔다. 꿈꾸는 자는 행복하다, 희망이 있으므로.... 비록 휴양림 예약에는 실패했지만 대기는 제일 좋은 곳으로 하자는 생각에 방태산, 미천골, 대관령 휴양림 세 곳을 선정하고 그 가운데 제일 좋은 방만 대기를 걸었다. 8월11일부터 19일까지 휴가를 갈 생각이었지만 팀원들의 여름휴가 일정을 받아보니 16일은 사무실에 아무도 없는 탓에 내가 희생하기로 했다. 하여 8박9일의 야심찬 휴가는 포기하고.....  마침내 대관령휴양림에서 제일 좋다는 다람쥐방을 당첨자가 포기하는 바람에 줏었다. 우현맘님, 유니맘님, 석이아빠님, 수피님 후기와 블로그를 미리 읽어보고 대관령에서 보낼 휴가를 흐뭇하게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맘 때마다 파동치듯 한반도를 휘감는 제트기류에 더하여 제 힘을 쓰지 못하는 태평양 고기압은 온 국민을 열 받게 만들고 있었다. 중복이 지나면 패야할 벼이삭도 나오지 않았다하고, 여름 성수기 장사에 기대를 걸고 있는 상인들, 그리고 계곡에서 물놀이 할 생각에 이제나 저제나 기대하는 아이들을 화나게 한 국지성 집중호우는 우리를 내내 괴롭혔다. 그래도 휴양림에는 빈방이 나오지 않는 것으로 봐서 갈만한 사람은 다 가는 모양이다. 하긴 연우네도 나섰는데....


8월 9일

엄청난 비가 계속 올 거라는 예보를 마치 증명이라도 하듯 출발전날 밤부터 오기 시작한 비는 아침에 눈을 떴는데도 여전히 내리고 있다. 심한 바람과 함께.... 그래도 우리는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을 했다. 마음 속으로는 이번 휴가에는 기필코 나돌아다니지 않고 휴양림 안에서 등산이나 하고 책이나 읽으면서 시체놀이나 하며 뒹구리라 생각했기에 비가 오는 것이 그다지 신경쓰이지는 않았다. 10시 30분에 영동고속도로에 올라 동쪽을 향해 달려가는 동안 용인을 지나면서부터 비는 그치고 구름만 잔뜩 낀 날씨였다. 간간이 막히긴 했지만 그럭저럭 큰 어려움 없이 원주를 지났다. 진부IC 근처 부일가든(033-335-4002)에서 점심을 먹고 월정사를 들렸다가 대관령휴양림 근처에 있는 양떼목장과 풍력발전소를 들리기로 했다. 하지만 원주를 지나면서 다시 강한 비바람이 쏟아졌고, 할 수 없이 월정사는 돌아오는 길에 들리기로 하고 점심을 먹으로 부일가든으로 갔다. 1년에 한두번 들릴 기회밖에 없다보니 부일식당과 부일가든을 헷갈린다. 늘 가고 싶은 곳은 부일식당인데 부일가든이랑 부림식당을 간 것도 두어번 된다. 부일식당과 남매사이라는데 맛도 식단도 거의 같지만 그래도 부일식당에 가는게 더 좋다. 허나 이번에도 역시 부일가든에 먼저 들리게 되었다.

23가지 산나물반찬을 차린 밥상을 받으니 소박한 무채색 식단이 이렇게 마음을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는 사실에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은 진리라고 되뇌인다. 오후 2시쯤 아이들이 가고 싶어하는 양떼목장으로 들어서니 갑자기 몰려드는 안개에 어디가 어딘지 앞이 보이지 않는다. 자동차에 달린 빛은 모두 동원했건만 3미터 앞이 보이지 않는다. 시속 5km의 극저속으로 조심조심 네비게이션에 의지해 양떼목장 앞 주차장에 도착했다. 간신히 빈자리를 찾아 차를 대고 내리니 보이는 것은 바로 옆에 주차해 둔 차밖에 없고 천지사방을 모르겠다. 사람들 소리를 듣고 길을 잡아 따라가니 양떼목장 가는 길 표지가 있다. 언덕을 올라가니 매표소에서 꽤 비싼 건초비(입장료)를 받는다. 돈을 내려는데 갑자기 억수같은 비가 쏟아진다. 할 수 없이 자동차까지 뛰어가서 우산과 우비를 가져왔는데 아뿔사! 사진을 찍으려고 꺼낸 카메라에 SD카드가 없다. 맷돌을 돌리는 작은 어처구니가 없어 맷돌을 쓰지 못한다는 어처구니 없는 현실.... SD카드를 집에 놓고 온 것이다. 비도 오고 엄청난 안개에 사진도 찍을 수 없어서 아이들을 달래 돌아오는 날에 다시 들리기로 하고 에너지전시관(풍력발전소)도 패스하고 휴양림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우리가 출발하자 강한 비바람이 더욱 세차게 몰아쳐 순식간에 안개를 날려 버렸다. 알 수 없는 산속 날씨다.

대관령을 넘어 아래로 내려오는데 네비게이션에 신경을 쓰다가 휴양림 입구 표지판을 보지 못하고 그냥 아래로 지나쳐 내려왔다. 네비게이션은 대관령박물관 옆길로 들어가는 길을 안내하는데 대관령 옛길이었다. 차 한 대가 간신히 통과할 수 있는 좁은 길을 반대쪽에 다른 차가 올까 조마조마한 가운데 겨우 통과하니 대관령 휴양림 1km 표시가 보인다. 휴양림에 도착해 체크인을 하고 짐을 올리는데 비는 오고 짐은 포장이사처럼 규격박스가 아니라서 한번에 옮기기가 쉽지 않다. 비옷을 입고 짐을 올리는데 땅은 폭우로 여기저기 패여 있고...땀으로 목욕을 하고서야 차라리 비를 맞고 올라가는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 눈만 없다면 웃옷은 전부 벗고 짐을 나르는게 나을 것 같다. 작년 현지아빠가 했을 고생을 생각하며 웃었다. 휴양림에서 준비해 놓은 손수레가 있는데 가져간 사람마다 다시 가져다 놓기 싫어해서 그런지 거의 한집당 1개 수준으로 마련해 놓았다.

다람쥐 방에 들어가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창밖을 보니 2005년 덕유산 휴양림이 생각이 난다. 비가 너무 와서 산사태 때문에 우리가 예약한 산막이 흙에 침수되어 새우잠을 자며 보낸 휴가가 생각나 계속 내리는 비가 좀 걱정스럽다. 해발 고도가 겨우 400미터에 불과한 낮은 지대에 자리잡은 휴양림이라는 것이 실망스러웠다. 쏟아지는 비에 주변 돌아볼 생각도 나지 않고 옷도, 양말도, 신발도, 마음도 젖어 맥이 탁 놓인다. 계속되는 천둥, 번개, 비바람에 바깥 활동은 전혀 할 수 없었고 금바위다리 위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엄청난 물줄기, 다람쥐방 앞에 있는 목교 아래로 쏟아져 내려오는 흙탕물은 좀 오싹한 느낌을 주었다. 밤이 되어서도 그칠 생각을 하지 않고 계속 쏟아지는 폭우...그 흙탕물 계곡 휴양관 건너편에는 그래도 많은 야영객들이 텐트를 치고 큰 비닐을 길게 잘라 타프처럼 5~6개 데크를 전부 덮는 비닐 막사를 만들어 놓고 여름을 즐기고 있었다.

가져간 전기그릴로 고기를 구워 채소쌈을 싸먹으면서 내일도 비가 온다는데 어떻게 할까 생각을 하면서 짐을 정리하다가 어처구니없이 온 사실 하나를 더 발견했다. 아침부터 연우가 “아빠! 이거 아빠 칫솔이지?” 하면서 열심히 가족 칫솔 치약을 챙기고 다니더니 이 녀석이 칫솔 치약을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을 못한다.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오! 맙소사!!!!

안내소에 물어보니 휴양림 입구 마을 구판장에 가면 있다는데 이미 밤이 늦어 문을 닫았을 것 같다는 얘기..게다가 비도 많이 오고 좁은 길이라 교행도 힘들어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내일 날이 밝으면 사러 가야지. 과일로 입안 청소를 좀 하고 다행히 가져간 가그린이 있어서 그걸로 대충 때우고 찝찝한 가운데 일찍 자기로 했다.(칫솔은 토요일날 집에 돌아와서 겨우 찾았다. 침대 옆에 좁은 틈에 숨어 있었다). 자다가 몹시 더워서 깼다. 새벽 1시... 잠이 오지 않는다. 하늘에서는 전쟁이라도 났다보다. 번쩍번쩍 우르르 콰쾅, 용과 이무기의 전쟁인가? 심란하다. 너무 더워서 문을 열었더니 물 쏟아져 내리는 소리가 장난이 아니다. 문을 닫을 수 밖에 없었다. 심야전기로 난방이 들어와서 너무 덥고 습기가 많아 이리뒤척 저리뒤척 하다가 3시쯤 잠이 들었다.


8월 10일

새소리에 잠을 깨니 6시가 조금 못됐다. 날씨는 구름이 잔뜩 낀채였지만 다행히 비는 그쳤다. 아버지와 함께 아침 산책을 나섰다. 라파엘아빠의 일월산 소나무 사진처럼 일렬로 줄을 선 소나무들이 아름답다. 솔고개를 넘어 초가집, 물레방아, 잔디광장, 야생화정원, 산림문화교육관 앞에 있는 체력단련장을 둘러보고, 도둑재로 올라가는 등산로 입구에 있는 정자에 올랐다. 산 사이로 동해바다가 보인다. 파랗다. 그 바다 위로 하얀구름 검은구름이 층층이 일어난다. 일출을 구경하기에 좋은 자리다. 역시나 야영객이 많다. 한낮에는 무척 더울 것 같다. 7시가 안 된 시간인데도 벌써 뜨거운 바람을 느꼈다. 신기하게도 돌배나무가 있어서 아침 먹고 아이들에게 구경시켜 주어야 겠다고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압력밥솥에 아침을 해 먹었는데 모두 평소보다 많이 먹는다. 밥맛이 참 좋다. 가족 모두 솔고개 넘어 산책을 나섰다. 솔고개 앞 표지판에서 매미가 허물을 벗어놓은 것을 발견했는데 사진에서만 봤지 실물은 처음이다. 연우는 덥다고 힘들다고 잔소리가 심하다. 솔고개에서 팔을 벌리고 서 있으니 시원한 바람이 겨드랑이 사이를 간질이며 지나가는 것이 자연선풍기다. 아무도 없으면 웃옷 벗고 삼림욕하면 좋겠다. 그 사이에 하늘이 파랗게 얼굴을 내밀고 마치 가을처럼 새털구름이 하늘에 걸리고 더운 기운이 심하게 올라오기 시작한다.

12시쯤 주문진 남애항으로 길을 잡았다. 가는 도중에 연료를 보충했는데 작은 감자꾸러미를 주신다. 역시 강원도다. 경상도횟집(033-671-3735)에서 점심먹기. 남애항에 단층으로 회센터처럼 자리잡은 곳에 6호집이다. 가시를 잘 먹지 못한데다 아이들이 있어 세꼬시보다는 그냥 회를 먹기로 했다. 자연산모듬회 중간크기를 시켰는데 가격은 8만원이다. 조개탕 → 놀래미 모듬회 → 성게 → 가자미 세꼬시 → 매운탕(미역죽 포함) 순서로 나오는데 맛도 너무 좋고 주인이 너무 친절하고 정감 있는 분이다. 모듬회에는 세꼬시를 얹어 오셨다. 이 집이 세꼬시가 전문인데 가시 때문에 먹지 못하는 것 같아서 잘게 다듬어 가시가 거의 씹히지 않을만큼 세밀하게 다듬었다고 하신다. 정말 맛있다. 다음 주에 동해안을 다시 여행할텐데 이 집에 다시 들리고 싶다.

점심을 너무 맛있게 먹고 강릉시내에 들어가 경포대로 옮긴 참소리 박물관을 구경하기로 했다. 몇년전부터 경포호 근처에 있는 지금 자리로 옮긴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강릉시와 박물관 사이에 갈등이 있어서 실행되지 못하다가 이제사 옮겼나보다. 외관도 멋있고 내용물도 작년보다 더 볼만하다. 해설사의 친절하고 재미있는 해설과 함께 돌아본 박물관은 정신적인 사치를 누리기에 충분하다. 앞 팀이 출발한 다음에 입장을 한 때문에 음악감상실에서 3곡을 먼저 듣고 나서 투어를 하고난 다음에 다시 세 곡을 더 듣고 앵콜로 한 곡을 더 들었다. 음악에 대한 조예는 전혀없지만 웅장하고 감미로운 음향기기의 선율은 여행의 맛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참고로 희귀한 진공관 스피커는 평일에는 가동하지 않고 8월 한달동안 매주 토요일 저녁에 음악감상회를 따로 열어서 그때만 가동한다고 한다. 너무 오래되고 귀한 장비라서 특별한 대우를 해야 할 것 같긴 한데 조금 아쉽다. 참소리 박물관을 나와 아이들이 좋아하는 경포대 현대호텔 레스토랑으로 갔다. 아버지는 지금 나보다 젊었던 옛날 강릉을 회상하며 너무나 많이 변한 경포대를 보고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다고 하신다. 경포호는 내 어릴 적에 비해 너무나 작아졌고, 논밭과 아파트가 그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아버지는 사라진 경포대호텔을 기억하고 계셨다. 그 호텔에서 찍은 동생과 어머니의 흑백사진이 내 맘 속에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게 하는 작은 아이콘으로 자리잡고 있다. 지금 그 자리에 현대호텔이 자리잡고 있다. 나는 이 호텔에서 그때의 행복감을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어서 매년 들리기로 했다. 준기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즐거웠던 작년 이맘때를 이야기 한다. 작년과 달리 바닷가에 사람이 별로 없다. 아마 비가 계속 와서 그런 모양이다. 그나마 있던 사람들은 갑자기 쏟아지기 시작한 비로 순식간에 사라지고, 상인들은 튜브랑 물놀이 기구들을 트럭에 싣고 어디론가 옮겨간다. 여름 휴가철 장사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는 사람들에게 원망스러운 비가 될 듯...

두터운 먹구름에 6시 무렵부터 하늘이 캄캄해지고 쏟아지는 비를 뚫고 이마트에 가서 칫솔과 치약, 간식거리를 샀다. 대형마트에 들리고 싶지 않지만 비를 핑계로 또 편리한 짓을 하고 말았다. 휴양림으로 돌아오는데 백두대간에는 흰구름과 검은구름이 층층이 쌓이면서 비바람이 몰아친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일기예보는 내일은 비가 계속온다고 한다. 강원도 인제, 양구 수재현장을 뉴스에서 보니 다음 주에 예약해 놓은 설악콘도와 방태산 휴양림 갈 일이 은근히 걱정이다. 점심이 너무 맛있어서 먹다가 보니 과식을 했나보다. 저녁 8시가 되어도 도무지 밥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아이들이 라면, 라면 하고 졸라서 결국 라면 한 개 끓여서 아이들만 먹고 어른들은 복숭아, 빵, 삶은 옥수수를 두어개 먹고 간만에 시원하게 칫솔질을 하고 잘 수 있었다. 칫솔질을 하니 살 것 같다. 세찬 비, 천둥 번개에도 불구하고 베란다 문을 열었다. 물소리가 아무리 시끄러워도 더운 것 보단 낫겠다 싶어서 야영텐트 속을 생각하며 잠을 청했다.


8월 11일

아침에 일어나니 하늘이 너무 맑았다. 아버지, 아내와 함께 출렁다리까지 올라갔다. 초막철교 아래에 있는 목교를 건너 한쉼터 방향으로 올라가는 길을 탐색해 보니 아이들을 데리고 구경할만해서 아침을 먹고 그리로 나섰다. 커다란 너럭바위가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있어 폭포도 많고 계곡물은 맑고 얼음처럼 차가웠다. 한쉼터에 도착해 너럭바위 위에서 잠시 물에 발을 손을 담그며 놀았다. 낙엽 경주(나뭇잎을 물위에 놓아 누구 나뭇잎이 빨리 내려가나 놀이)를 하며 더위에 지친 몸을 잠시 자연에 맡겼다. 아래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더운 기운을 머금고 있다. 아무리 울창한 숲속이지만 해발 고도가 낮으니 더운 기운이 나나보다. 조그마한 소금쟁이가 떠다니는 것을 보다가 물에서 올챙이를 발견했는데 아내가 손으로 건져보니 올챙이가 아니라 어린 도롱뇽이었다. 얼마나 작던지 어른 손가락 한마디 길이밖에 되지 않았는데 주변에 이 녀석 하나 밖에 없다. 길을 잃어버린 도롱뇽이었을까?

작년 삼봉휴양림에서 도롱뇽을 직접 봤던 연우와 준기는 너무 작은 도롱뇽을 신기하게 들여다봤다. 엄마가 손에 물을 가득담아 도롱뇽을 건져 올리니 자기들도 해보겠다고 나섰다. 도롱뇽이 화상을 입을까봐 손에 물을 미리 담으라하고 조심조심 물과 함께 아이들 손으로 옮겼습니다. 도롱뇽이 움직이면서 손바닥에 간지럼을 느낀 준기는 금방 놓아줘 버렸다. 도롱뇽아 미안하다... 얼른 친구찾아 잘 살거라.. 유니맘님, 후기에서 도둑재 갔던 이야기를 봤던 터라 휴양림 안내도를 보며 도둑재에 올라가 볼 생각을 여러번 했지만 날씨도 너무 후덥지근하고 비도 오락가락하고 아이들도 힘들어하여 결국 포기하고 초막철교 쪽으로 내려와 다람쥐방 앞에 있는 목교 아래에 물놀이를 하러 갔다. 물에 발을 들여 놓는 순간 얼굴에 붙는 거미줄 느낌, 자세히 보니 목교 건너편부터 반대쪽까지 초대형 거미줄을 쳐 놓았다. 욕심 많은 거미였나? 넓은 휴양림답게 스케일 큰 거미다. 역시 바위로 이뤄진 계곡답게 물빠짐이 좋아서 인지 흙탕물은 하룻만에 맑은 물로 바뀌었고 수량도 물놀이하기 적당하게 줄었다. 어제까지 그 무지막지하던 물살이 언제 그랬냐 싶다.

작년, 뼛속깊이 파고들었던 그 차가운 삼봉휴양림 계곡물과 달리 대관령 휴양림의 물은 몸을 담그고 있을만했다. 아이들 튜브에 머리를 얹고 물속에서 마냥 잠자고 싶다. 준기를 튜브에 태워 물살에 한번 맡겼더니 기겁을 하고 물 가장자리에서만 논다. 자기 허리까지 오지도 않는 물이 무섭나보다. 연우는 준기보다 그래도 2년 더 살았다고 물에서 잘 논다. 기온이 올라가니 집에 가기가 싫다. 비 때문에 제대로 즐기지 못한 휴가를 오늘 밤 늦게까지 즐기고 싶다. 야영객들이 하나둘 들어온다. 다람쥐 방 위쪽 야영데크가 텅텅 비다시피 한 것을 보고 텐트를 가지고 올걸 그랬다고 했더니 준기엄마가 눈을 흘긴다. 하긴 아버지를 모시고는 무리다.

온몸을 찬물에 적시고 나서 라면을 끓여 다람쥐방에 딸린 야외식탁에서 개미들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너무 맛있다. 옥수수를 삶고 물을 2통 얼리고 3통을 더 준비해 아이스박스에 담고 떠나기 싫은 휴양림을 뒤로 하고 길을 나섰다. 대관령 옛길 입구에 있는 대관령박물관에 들러 대관령 주변 역사를 둘러보았다. 작은 박물관이지만 볼거리가 쏠쏠하게 널려있다. 2시쯤 준기가 노래 부르는 양떼목장을 향해 대관령을 올라갔다. 다니는 차도 별로 없어서 최대한 직선에 가깝게 갔다. 다른 차가 있으면 위험천만한 짓이다. 옛 대관령 휴게소에 주차를 하니 햇살이 너무 따갑다. 이대로 양떼목장 갔다가는 살이 익을 것 같다. 에어콘이 있을 것 같은 에너지 전시관에 먼저 가서 풍력발전과 에너지에 대해 공부도 좀 하고 에너지에 대한 체험도 했다. 3시가 넘으니 그래도 좀 낫다싶어 우산을 양산대용으로 가지고 양떼목장으로 갔다. 양떼 목장으로 오가는 사람이 양떼보다 더 많다. 보는 사람도 힘들겠지만 보여주는 양들도 고생이다. 이 더운 여름에 그 두꺼운 털코트를 입고 있으니 제정신을 차릴 수 있겠는가? 몇 녀석은 아예 그늘에서 늘어져있고, 몇 녀석은 철조망 근처에서 숨을 헉헉 몰아쉬고 있다. 안됐다.

아이고 어른이고 양털을 만져보고 풀을 뜯어 먹이를 줘본다. 그 가운데서도 선남선녀들 배경해주느라 양들이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한바퀴 돌아 나무에 묶어놓은 그네도 한번씩 태우고 건초 주는 곳에 도착해 보니 목동들 대신 손님들이 건초를 먹이느라 시끌벅적하다.


줄을 서시오!
차례차례 줄 서서 양에게 건초를 바치고(?) 나오니 얼음처럼 차가운 지하수가 우리를 반긴다. 얼음처럼 차다. 손수건을 적셔 땀을 닦고 내려오니 4시가 좀 넘었다. 양떼목장은 사업 아이템이 괜찮아 보인다. 손님에게 입장료 받고 손님 손을 빌려 양을 먹이고... 문득 앨빈토플러가 쓴 부의미래가 생각난다. 손님에게 일시키고 돈은 더 받는 새로운 돈벌이...흐흐흐.

비가 와서 못갔던 월정사를 찾았다. 자연휴양림을 알기 전, 월정사를 향해 가던 길에 전나무 숲을 보며 얼마나 경탄을 했었던지... 그 길은 여전히 그 모습대로 우리를 반겨준다. 예전에 잤던 만우민박도 한층 업그레이드 된 모습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월정사는 몇 년전에 비해 많이 다듬었다. 특히 박물관은 대단히 현대적으로 말끔해졌다. 아이들에게 유물 설명도 하면서 시원하게(아니 발바닥은 차가웠다) 구경하고 계곡 옆길로 내려왔다. 2003년 월정사 전나무 숲은 우리에게 감동이었다. 허나 우리 등에는 연우와 준기가 업혀 있었고, 비가 와서 우산까지 들고 다녀야 했다. 2007년 월정사 전나무 숲은 여전히 감동적이었다. 엄청난 계곡물은 마치 용이 달려가듯 넘실거리며 파도를 탄다. 래프팅을 하면 용의 등을 타고 나는 기분일까? 달아오를대로 달아오른 공기와 차가운 계곡물은 어스름이 깔리는 시간에 하얀 물안개를 만들어 올려 계곡을 안개 속에 감춰 넣기 시작한다. 사진기를 들고 있으면 이 느낌을 온전히 느꼈을까? 너럭바위 위에 앉아 손발을 담그고 하얗게 피어오르는 물안개를 보고 있으니 집에 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100년이 넘은 거대한 나무가 벼락을 맞아 죽은채 서 있고, 2005년 홍수에 거대한 나무가 쓰러져 곤충들의 집이 되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50미터 바깥에서 나무에 벼락이 떨어지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빛이 번쩍하는 순간 “짜~악”하는 소리와 함께 15미터 쯤 되는 나무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껍질이 뱀이 휘감는 모습으로 벗겨져 날아가는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월정사 전나무 숲길에 그렇게 벼락을 맞은 나무가 중간쯤 부러진 채 서 있다. 비록 국립공원이지만 적당한 시기에 순차적으로 벌목하고 새로 심는 작업을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마냥 머물고 싶은 전나무 숲은 아쉽게도 2km남짓... 되돌아 올라오는 길도 너무나 짧다. 월정사 입구는 물론 상원사까지도 도로를 아스팔트로 덮었나보다. 인간은 나무는 방치하면서 땅은 숨쉬지 못하게 덮는 짓을 하고 있다. 아버지는 이 숲이 너무나 아름답다고 감탄하셨다. 다음주말 설악콘도에 갈 때 길은 멀지만 이 길로 해서 동해안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다시 보고 싶다.

어스름이 깔리는 길을 내려와 근처 마을에서 옥수수를 사고, 김치 담글 배추를 다섯포기 샀다. 대파도 함께...이번에는 제대로 부일식당(033-335-7232)에 들렀다. 산채백반과 황태구이를 주문해서 정말 정말 맛있게 비벼 먹었다. 우리도 비벼먹고, 다른 손님들도 다 비벼먹는데 바로 옆에 앉아 있는 부부가 눈치를 보더니 주인을 부른다.

“매뉴에는 비빔밥이 없는데 다들 비빔밥을 먹네요?”
“비뎌 드실라믄 비빔그릇을 달라고 하셔야지요.” ....

다들 웃었다.

밥을 먹은 뒤에 마시는 시원한 숭늉은 어느 음료수에 비할 수 없는 맛이 있다. 8시에 식당을 나와 고속도로에 올랐다. 시원하게 달리지도 못했지만 그닥 막히는 곳도 없이 3시간만에 집에 도착했다. 우리가족이 15번째로 찾아간 국립자연휴양림 여행은 이렇게 끝났다. 3박 4일 같이 보내려고 했지만 2박3일은 너무 짧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