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숲여행

과수원 같은 대관령자연휴양림 야영장

by 연우아빠. 2009. 6. 30.

과수원 같은 대관령자연휴양림 야영장

2009.6.26~6.28(2박3일)


대관령 신/재생에너지 전시관의 공중부양 탁구공


양양 남애항 방파제 아래쪽 바닷가


남애항 바닷가 바위틈에서 우리를 관찰하고 있는 집게발 게


요절한 천재문인, 시대를 앞서간 진보적 지식인 남매와 그 가족을 기리는 허난설헌 허균 남매 생가터(시비 공원)


언젠가 현지아빠께서 글을 남겼습니다. "야영장에 누워 하늘을 보고 싶다"


돌배나무 사이에 간만에 각잡고 서 있는 우리 텐트


휴양림 안 자생식물원에는 파란 산수국도 있고


바로 옆에는 분홍색 산수국도 있습니다. 토양 산성도에 따라 색깔이 달라진다고 유진맘께서 얘기하셨었죠?


솔고개를 넘는 길에는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흐뭇한 소나무가 쭉쭉 하늘로 솟아 오르고...


현지아빠님이나 저는 여름에 다시 가고 싶지 않은 비지땀 고개 위에 멋진 숲속의 집이 있지요.


다시 솔고개로 돌아오는 길에는 야영장으로 올라오는 차들이 잘 피해 다니라고 볼록거울도 있고요.


대관령 양떼목장에는 양을 지키는 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돼지만큼 뚱뚱한 양들이 더위를 피해 나무그늘에서 피서를 즐기고 있고
일부는 더위를 참으며 풀을 뜯고 있습니다.
위에 양들은 본성에 충실한 듯하고, 아래에 양들은 팬서비스 정신이 투철한 듯 합니다.


내 돈주고 받은 건초를 갔다 바치건만 넘들은 눈길한번 제대로 주지 않고.....


"절을 태우려거든 내 몸도 함께 태우시오!"
방한암 선사의 일갈에 문화와 멋을 아는 국군은 상원사를 태우지 않고 철수를 하고
그 덕분에 상원사에 아름다운 국보와 전설의 실물이 그대로 지금까지 남아있게 되었지요.

6.25 때도 이렇듯 여유가 있었건만 지금 그때보다 여유있고 잘 사는데 갈수록 걍팍해지는 '피플'들은
누구의 유전자를 물려받았수?
사진은
방한암 선사님의 사리탑 부도


상원사 지혜수 샘물에 표주박이 마치 올챙이 같습니다.


오직 50mm(디지털 환산으로 75mm) 표준렌즈로만 찍으니 건물 전경은 언감생심이네요.
그래도 절이 잘 나왔다고 나름 만족....


암살 위기에서 세조를 구해준 고양이를 기리는 상원사 고양이 석상


오대산 동피골 야영장 근처 섶다리


시원한 물가에 앉아 올챙이랑 물고기를 관찰합니다. 역시 여름에는 계곡이 제일이죠?


26일 금요일, 바람 속에서 야영하다.

6월 둘째 주에 유럽출장을 다녀온 뒤, 몸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다. 내심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신종인플루엔자에 감염된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한 생각도 떨쳐버릴 수 없었다. 한달에 한번만 휴양림 가기로 정해놨었으나 숲의 정기가 부족해 건강이 많이 나빠졌다는 생각도 나를 사로잡았다. 역시 마음은 만병의 근원이자 치료사인 모양.

2년전 카메라 메모리카드를 가져가지 않아 대관령휴양림에서 보낸 휴가 사진이 없는 것을 핑계삼아 대관령휴양림에서 야영을 하기로 정했다. 2년전 여름에 본 대관령휴양림 야영장에 대한 기억이 상당히 좋았던 것이 많이 작용했다. 남편 때문에 슬슬 휴양림에서 야영하는 재미에 빠지고 있는 아내는 반쯤은 반기면서 음식들을 챙겼다. 거리를 재보니 우리 집에서 207km. 명절 때 시골 내려가던 거리와 똑같다. 간만에 가는 길이라 금요일 오후에 반차를 내고 짐을 꾸리기로 했다. 주은아빠는 2주 후에 가리왕산 야영장에 가자는데 가족들에게 슬쩍 운을 띄웠더니 연우랑 준기는 아주 좋단다(가리왕산의 훌륭한 냉온수 샤워장 때문이죠).

아이들에게 방과 후 수업 끝나면 도서관 가지 말고 바로 집으로 오라가 말했건만 4시 15분에 수업이 끝나는 준기가 4시 40분이 돼서야 도착했다. 왜 늦었냐고 했더니 돌아오는 길에 지렁이가 꿈틀거리고 있더라나. 그냥두면 지나가는 자전거나 사람들 발에 밟혀 죽을 것 같아서 안전한 숲속으로 옮겨 놓고 오느라고 늦었단다. 이걸 화를 내야하나 말아야 하나. 해가 떨어지기 전에 도착해서 텐트를 쳐야 하는데...밤에 도착해 저녁 먹는 것이 힘들어서 아내는 남은 밥으로 유부초밥을 싸고, 저녁에 텐트 치고 간단하게 먹고 자기로 했다. 기온은 상당히 높았다. 일기예보에 강릉지역 낮 최고 기온은 35도, 밤에는 열대야 현상이 있다고 한다. 주말에 더위를 찾아 가는 격이 아닌지 모르겠다. 4시 50분 드디어 출발. 영동고속도로는 2~3군데 정체 구간이 있었지만 그래도 주말보다는 아주 상태가 좋았다. 쉬지 않고 달려서 7시 45분쯤 대관령 휴양림 매표소에 도착했다. 그제서야 서두르느라 성영아빠께 받은 준기 등산화를 빠트리고 왔다는 것을 알았다.

매표소에서 야영비를 계산하고 수련관 앞 야영장에 도착한 것은 8시쯤. 그런데 이거 바람이 태풍급이다. 게다가 바람이 부는데도 별로 시원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냥 땀이 마를 정도. 야영장에는 우리 아래쪽에 2가족, 주차장 쪽에 1가족이 있다. 텐트 칠 자리를 이리저리 보다가 돌배나무에 둘러싸인 넓은 데크를 잡고 텐트를 쳤다. 나침반을 들고 방향을 잡은 다음 동남방향으로 출입구를 놓았다. 이제 15번째 야영이라 그런지 가족들의 짐나르기 협조상태가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다. 텐트를 치고 하늘을 보니 서쪽 언덕위에 붉은 초승달이 떴다. 달을 보고 연우가 “아빠! 내일도 굉장히 더울려나봐.”라고 한다. 아닌게 아니라 내가 봤던 달 가운데 제일 붉었다. 엄청나게 불어대는 바람에 타프 치기는 포기하고 텐트를 데크에 꽁꽁 붙들어 맸다. 아래쪽에 두 집은 동해에서 온 가족인데 바람이 심해서 그런지 텐트를 데크 아래에 쳤다. 맘 속으로 “내일 가리왕산이나 삼봉으로 옮겨?” 하는 생각이 굴뚝같다.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샤워장을 찾아 갔는데 샤워장은 문을 잠궈 놓았다. 게다가 수련관 제일 위쪽 구석에 있어서 밤에 귀곡산장 찾아가는 기분이다. 사람이 거의 없었기에 혼자 남자 화장실 문을 잠그고 안에서 간단하게 샤워를 했다. 아내와 연우는 몹시 피곤했는지 10시도 되기 전에 꿈나라로 갔다. 준기는 비행기 소리 같은 바람소리에 몹시 불안한가 보다. 간간히 숲을 휩쓸고 가는 듯한 바람소리는 텐트를 찟어 놓을 것 같다.

출입구 플라이가 바람에 이그러져 이너텐트 출입구 앞까지 닿을 듯 밀려 들어온다. 그때마다 준기는 “아빠! 우리 신발 날아가면 어떡하지?”하며 벌떡 일어나 불안해 한다. “준기야! 우리나라에는 그런 바람 안분다. 토네이도는 미국에나 분다. 데크에 텐트 잘 붙들어 매 두었으니 걱정말고 자거라.”하며 안심을 시켰다. 그래도 이 녀석이 계속 일어났다 누웠다 한다. “준기야! 신중하기를 깊은 바다와 같이, 무겁기를 태산과 같이!”라고 하면서 속으로 나도 걱정했다. 예전에 칠보산에서 야영했던 우탁이 아빠가 밤새 비행기 날아가는 듯한 바람소리에 한 숨도 못잤다고 했던 생각이 났다. 그래도 사전수전 제법 겪은 야영경력이 도움이 되었는지 잠시 후 꿈나라로 갔다.

27일 토요일, 땡볕 속에서 느긋한 여행

밝은 새소리에 눈이 자동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휴양”을 하리라 결심했기에 일어나지 않았다. 해발 고도가 너무 낮아서 그런지 휴양림에 와서 이렇게 더워보기는 처음이다. 애고 어른이고 더워서 침낭 밖으로 다 기어 나온 채 자고 있었다. 짐작컨대 5시 조금 넘은 것 같다.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다가 일어나 화장실에 갔다. 아직 7시도 되지 않은 시각. 하늘은 맑고, 바람 한 점 없이 조용하다. 나지막한 돌배나무 때문에 꼭 과수원 안에 텐트를 친 것 같다. 여름철 야영을 생각한다면 차라리 소나무를 심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다. 해가 더 올라오기 전에 어제 치다 만 타프를 얼른 쳤다. 아이들은 밤새 더웠나 보다. 휴양림 같지가 않단다. 여름야영은 가리왕산이나 삼봉으로 가잔다. “니덜이 야영의 맛을 알아?”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그 사이에 아내가 김치찜으로 아침을 준비해 맛있게 먹었다. 어제 같은 바람을 생각한다면 대관령휴양림에서 숯불 피우는 것은 정말 위험한 일이다. 앞으로도 이 휴양림은 계속 숯불피우기 금지구역으로 남을 것 같다. 해가 하늘위로 올라올수록 야영장 안이 점점 더워졌다. 아래쪽 텐트에 있던 분들은 밖으로 나들이 가고 우리만 남았다. 너무 더워서 가리왕산이나 삼봉으로 옮겨 볼까 하고 네비게이션을 검색해 봤더니 두 곳 모두 대관령에서 80km 이상 떨어진 곳이라 포기했다.

관리사무소에 연락해 샤워장을 열어달라고 부탁했다. 가뭄이 심해 지하수가 많이 줄어든 모양이다. 오전 10시에 한번, 오후 2시에 한번 이렇게 2번 문을 여는데 오늘은 손님이 몇분 없으니 열어놓겠다고 하셨다. 잠시 후 찬물로 샤워를 하고 나니 조금 살 것 같다. 아이들은 시원한 그늘 아래에 있는 탁자로 옮겨가서 밀린 공부를 하고 어른은 누워 하늘을 봤다. 조용하고 나른한 한여름 파란 하늘. 어릴 때 마루에 누워 하늘을 보던 그 나른함이 밀려온다.

준기가 묻는다.
“아빠, 이 나무는 뭐예요?”
“응! 돌배나무야”

“먹을 수 있어요?”
“아니, 먹으려고 키우는 것은 아니지”

“에이, 그럼 쓸데없잖아?”
“그렇지 않단다. 이렇게 생겼어도 배나무 종자 개량이나 신품종을 만들 때 꼭 필요해.
비록 못생기고 볼품없이 작아도 돌배나무는 충분히 세상에 많은 기여를 하는 나무야”

“응, 그렇구나.”

어렸을 때 초등학교 선생님은 이런 말을 했었다.

“세상에는 3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다. 꼭 필요한 사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사람, 없는게 더 좋은 사람...
너희들은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폭력적이고 끔찍한 가르침이다. 세상에 모든 생물이건 무생물이건 필요없는 것은 없다.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세상의 모든 것은 우주를 덮을만한 거룩함이 있다.
나는 볼품없는 돌배나무를 보며 준기에게 그 말을 해 주고 싶었다.

점심 무렵 준기가 신재생에너지전시관을 가보자고 졸랐다. 2년전에 갔던 곳인데 거기서 뭘 했는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대관령 언덕길을 거슬러 올라 20분쯤 가니 정상 근처에 거인국 바람개비 같은 풍력발전기가 고개를 내민다. 전시관 안은 시원하기도 하고 아이들이 직접 작동해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기구들이 있다. 자전거 발전기, 바람의 힘, 바람의 모습을 직접 볼 수도 있어서 한시간 정도 시간 보내기는 아주 좋다. 화력과 원자력을 대체할 조력, 파력 발전자원이 풍부한 우리나라가 왜 이런 쪽에 일찍 눈을 돌리지 않았을까 싶다. 월정사 가 볼까 하다가 내일 돌아가는 길에 들려 보기로 하고 늦은 점심을 먹으러 남애항 경상도횟집으로 갔다. 변함없이 친절하고, 변함없이 맛있는 가자미 세꼬시. 하지만 아내와 아이들은 가시가 좀 불편한 듯 넙치회를 주문했다. “이 집은 가자미 세꼬시가 전문인데....” 내가 한마디 했더니 주인께서 웃으시며 가자미 세꼬시를 조금 얹어서 내 주시겠다고 한다. 전채요리로 조개탕, 멍게, 해삼, 개불, 소라 조금씩 내오니 입에 군침이 가득 고이는데, 무채 하나없이 오직 넙치와 우럭으로 접시를 깔고 가운데 연꽃밥처럼 가자미세꼬시를 얹어 내 온 회는 넷이서 먹기에 양이 좀 많았다. 거기에 성게를 먹고, 볶은 콩가루를 얹어 만든 맛있는 죽을 마다하지 못하고 마저 비우니 마지막 매운탕은 도저히 먹을 재간이 없다. 매운탕을 싸 달라고 해서 들고 나왔다. 이렇게 먹고도 겨우 7만원하니 야영은 손익분기점만 지나면 정말 효과만점인 여행 방법이다.

터질 듯한 배를 감당하지 못하고 방파제에 올라 느릿느릿 바다구경에 나섰다. 전복 양식장이라 써 놓은 얕은 바다에는 커다란 집게를 자랑하는 작은 게들이 바위 틈새로 들락날락하며 사람구경을 한다. 물결을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해초 사이에는 작은 물고기들이 어울려 자란다. 바위 마다 강태공들이 낚시를 드리우고 일찍 찾아온 동해바닷가의 여름을 즐기고 있다. 빨간 버섯처럼 생긴 등대까지 어슬렁어슬렁 걸어갔다. 대학생 같은 젊은 사람들 예닐곱이 젊은 날의 추억을 열심히 사진에 담고 있다. 유럽사람들은 대부분 똑딱이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거의가 DSLR을 들고 다닌다. 어쩌면 이런 첨단을 지향하는 성향이 단시일에 대한민국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 올렸는지 모르겠다.

가 본 지 10년이 넘은 오죽헌을 들릴까 하다가 작년에도 여전히 공사중이었던 허난설헌 허균 남매의 기념관이 생각나서 그쪽을 가보기로 했다. 깔끔하게 마무리한 남매의 기념관은 시대를 앞서간 천재 남매의 기록을 잘 정리해서 보여준다. 스승인 이달에게서 받은 영향이 컸던 탓일까? 신분차별과 남녀차별의 시대를 뛰어 넘고자 했던 허균은 당대 선비들에게 입에 담지 못할 비난을 받으며 죽음을 맞았고, 수백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시대를 앞서간 그의 철학이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한평생 호의호식하며 사는 게 인생이라면, 시대를 앞서 치열하게 사는 것 역시 인생이 아니겠나. 허균이 중국에 사행을 갈 때마다 누나인 허초희(난설헌)의 시를 소개해 우리나라보다는 중국에서 더 유명했던 허난설헌. 꼭 여성을 지폐인물에 넣어야 했다면 사임당 보다는 난설헌에 점수를 주고 싶다. 어쨌거나 강릉은 사임당, 난설헌 같은 여성 인재와 초당 허엽을 비롯한 허씨 문장가들까지 조선의 정신세계를 풍성하게 했던 많은 인재를 배출했다. 두 남매의 기념관 뒤에는 해송이 숲을 이루고 있어 굳이 다른 곳을 둘러보러 쫒아가고 싶지 않다. 나즈막히 내려앉는 석양을 받으며 해송 속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여행하는 사람의 발을 머물게 한다.

길거리에서 얼음과자를 사먹고 휴양림으로 돌아왔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야영장에는 20세대가 넘는 사람들이 들어와 야영장이 꽉 찬 느낌이다. 2인용 텐트를 치고 나지막히 작은 타프를 쳐 놓고 의자에 앉아 여유를 즐기는 연세 드신 부부부터 젊은 부부까지 모두들 나름의 즐거움을 찾아 주말 저녁 나절을 즐기고 있다. 서산에 뜬 달에는 붉은 달무리가 끼었다. 오랜만에 배드민턴을 꺼내 연우랑 한 게임하고, 축구공을 꺼내 온 가족이 패스놀이를 했다. 과식을 해서 그런지 뱃속이 영 좋지 않다. 꼭 멀미나는 것 같다. 샤워를 하고 아이들이 공부를 시작했다. 사방에서 프라이팬에 고기 굽는 냄새가 나니 공부하던 아이들이 배 고프단다. 엄마아빠 만큼 음식을 많이 먹어댄 녀석들이 뱃속에서 거지를 키우나? 공부 끝나면 라면을 끓여 주겠다고 약속하고 텐트 앞에 돗자리를 깔고 하늘을 보며 누웠다. 남쪽 하늘에 별이 초롱초롱 빛나기 시작한다. 가스렌턴을 켰더니 순식간에 사방에서 날파리가 날아와 타프 안쪽 면을 빼곡하게 채운다. 렌턴을 끄고 플라이를 닫았다. 텐트 바깥이 선선해서 오늘 같은 날은 밖에서 비박을 해도 될 것 같다.

사람이 많아서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가 제법 사람 사는 동네 같다. 예전에는 저녁 무렵에 동구밖에서, 골목에서 아이들끼리 이렇게 뛰어 놀았는데 요즘은 그 많은 아이들을 학원이 다 잡아먹었나? 다들 학창시절에 공부에 대해 일가견이 있을텐데 아이들 학대(?)하는 이런 시스템에 순종해야 하는 이건 뭐람. 취사장에서 이를 닦던 한 아이는 왜 집에 가지 않느냐고 엄마에게 매달린다. 아직 초등학교 입학 전인 듯 한데 컴컴한 야영장이 낯선 모양이다. 라면을 2개 끓여서 맛있게 먹고 10시쯤 잠자리에 들었다. 바람은 불지 않고, 어제보다 시원하긴 한데 그래도 침낭 속은 덥다.

28일 일요일, 오대산 야영을 꿈꾸며

지저귀는 새소리와 부서지는 햇살 때문에 눈을 떴다. 아침 5시. 야영장은 고요하다. 다시 눈을 감고 잠을 더 청했다. 사방을 감싸고 있는 신선한 기운은 오랜만에 개운한 맛을 전해온다. 6시에 일어나 쌀을 씻어 놓고 산책삼아 길을 나섰다. 야영장 서쪽 작은 계곡에 자생식물원을 조성해 놓았는데 파란색과 분홍색 산수국, 노란 원추리, 머리를 풀어헤친 패랭이 꽃 등등이 저마다 올망졸망 아름다운 모습을 뽐내고 있다. 한여름에 그 많던 계곡물은 거의 메말라 안쓰럽다. 이 지역 가뭄이 심한가 보다. 우람한 소나무를 바라보며 솔고개를 넘어 숲속의 집 쪽으로 올라가 보았다. 2년전 짐을 나르던 그 깔딱고개는 짐나르기 편하게 포장을 했고, 안내소에서 손수레를 빌려주나 보다. 한여름에 이 언덕길로 짐을 나르는 일은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 한 때 베스트 방이었던 다람쥐 방을 제외하고 주변에 있는 숲속의 집이 깔끔하게 새단장을 하거나 새로 지어서 상대적으로 다람쥐 방이 제일 쇠락해 보인다. 8시쯤 텐트로 돌아와보니 이런 놀라운 일이! 기계치인 아내가 버너를 이용해 밥을 짓고 있었다. 내 속맘을 알았는지 아내가 “놀랬지?”하고 묻는다. 아내는 몸 상태가 오랜만에 개운하단다. 피로가 싹 풀리는 느낌이라나. 이건 필시 휴양림 야영 중독증!!!

사람들이 아침을 먹고 하나 둘 철수를 하고, 아내와 아이들이 샤워를 하는 동안 천천히 철수 준비를 했다. 11시 30분 준비를 마치고 휴양림을 나왔다. 예전보다 진입로를 넓혔고, 군데군데 교행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서 예전처럼 아찔한 경우는 없을 듯하다. 준기가 가고 싶다는 양떼목장으로 갔다. 입장료 11,000원을 내고 목장으로 올라가니 해발 고도가 높아서 그런지 땡볕과 함께 시원한 바람이 불어서 걸을만하다. 양들도 사람 사는 모습과 비슷하다. 어떤 녀석들은 시원한 나무그늘 아래서 쉬고 있고, 어떤 녀석들은 땡볕에서 풀을 뜯느라 바쁘고, 어떤 녀석들은 일없이 땡볕에 서서 헉헉대고 있다. 어떤 녀석은 암양에게 계속 지분댄다. 준기는 겁은 나지만 양을 직접 만져본다. 양들은 이빨이 튼튼해 풀뿌리까지 뜯어 먹기 때문에 우리나라 같이 집중호우가 오는 곳에는 땅을 황폐화시킨다고 했더니 “맞아. 갈라파고스 섬도 그래서 황폐하게 됐어”라고 준기가 맞장구를 친다. 한바퀴 돌고 내려와 그네한번 타고 양들에게 건초를 가져다 먹여보는 시간. 그 많은 사람들이 와서 쉴새없이 먹이를 주는데도 양들은 계속 먹이를 달라고 한다. 얘들은 도대체 과체중 걱정은 하지 않는가? 얼음처럼 차가운 지하 150m 암반수를 뽑아 올린 물로 목을 축이고 목장을 나왔다.

주차장 앞 가게에서 파는 찰강냉이를 사려고 했다.

준기가 가게 아줌마에게 묻는다.

“이거 중국산 아니예요?”
“국산인데”
“에이, 아직 찰강냉이 나올 때가 아닌데 중국산 아니예요?”

10살짜리 꼬마에게 이 말을 들은 아주머니는 울컥 하더니
“이거, 작년에 수확한 국산 냉동 찰강냉이다” 하신다.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두 개를 사고, 얼음과자를 하나씩 더 샀다. 시원하게 하나씩 먹으며 오대산으로 향했다. 2003년 오대산을 여행하며 묵었던 민박집이 그대로 있다. 저 집 뒷산에 달팽이를 놓아 주었다고 했더니 준기가 “그 달팽이 지금도 살고 있을까?”하고 물어본다. "그 달팽이가 농작물을 괴롭혔다면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월정사를 가려다 오랜만에 상원사로 가기로 결정했다. 월정사는 갈 때 마다 공사중이다. 이번에는 앞 개울에서 정문으로 들어가는 길에 다리를 돌로 새로 만들고 있었다. 대단히 미안하고 죄송한 일이지만 월정사에서 상원사 가는 멋진 길을 차를 끌고 올라갔다. 10km. 언젠가 이 길을 꼭 걸어서 올라갈 날이 있겠지. 2시쯤 상원사 주차장에 도착해 어슬렁 어슬렁 걸어 올라갔다. 이 거대한 숲에서 나오는 상쾌함 때문에 잠시나마 속세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아, 여기서 살았으면 좋겠다” 했더니 준기가 “이리로 이사오면 되잖아”라고 한다. “그럴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냐?”

6.25 때 상원사를 지킨 방한암 스님 이야기를 해 주며 계단을 올라 샘물 앞에 도착했다. 표주박에 물을 떠서 시원하게 한잔 마셨다. 가물어서 그런지 예전처럼 물이 퐁퐁 솟아오르지 않는다. 준기도 마시길래 한마디 했다.

“준기야, 방금 마신 물이 무슨 물인지 아니?”
“몰라요.”
“이제 넌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한다”
“왜요?”
“이 물은 지혜수란다. 지혜롭게 되지 않으면 곤란한 물이지”
“헉!”

연우가 거든다.
“아빠! 이 물을 마시고도 지혜롭게 안되면 어떡하는데?”
“그럼 오대산 동대에 가서 총명수를 마셔야지”
“거기는 멀어요?”
“음, 좀 멀지”

지혜수 기둥에 쓰여 있는 오대산 각지의 물 이름을 보더니 준기는 자못 심각해진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신라 성덕왕 때 만든 상원사 동종(국보), 조선의 세조를 도왔다는 고양이를 기리는 석상, 세조의 병을 고쳐 준 문수동자 상도 보았다. 이 먼 곳까지 단체로 찾아온 관광버스가 줄지어 서 있고 늦은 시간에도 계속 사람들이 들어온다. 절에서 내려와 아까 들어올 때 봤던 동피골야영장을 둘러보려고 나섰다. 오대산 국립공원 안에 자리잡은 동피골 야영장은 이 여름에 그야말로 천국이다. 맨땅이지만 주변은 완벽한 밀림이고 하늘과 땅에 울창한 나무로 햇빛이 뚫고 들어올 여지가 없다. 일요일 오후라 그런지 사람들은 거의 없고, 텐트를 친 흔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봐서 그닥 붐비는 계절은 아닌 것 같다. 노련한 캠퍼 한 가족은 맨땅에 널직한 매트를 깔고 텐트 위에는 타프 대용으로 커다란 비닐을 덮어 완벽한 안락함을 구현해 놓았다. 저렴한 캠퍼의 모습에 감탄하는데, 아내가 이 야영장에 꼭 야영을 해 보고 싶다고 한다. 아내는 드디어 캠핑의 즐거움에 스스로 빠지고 있는 모양이다. 속으로 “나야 좋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빙긋이 웃어 준다. 이제 슬슬 국립공원 야영장도 한번씩 다녀 줘야 하는데.... 대관령 휴양림 야영장보다 여기가 더 나은 듯 하다. 여기서 야영한다면 오대산 적멸보궁을 지나 오대산 정상 비로봉까지 다녀오기에 딱 좋겠다. 야영장 안내판 사진을 한 장 찍고 조금 더 내려와 섶다리 앞에 차를 대고 잠시 물을 만져 본다. 우리가 참여하는 바람에 미리 자리잡고 호젓함을 즐기고 있던 중년부부께 방해가 된 듯해 심히 죄송하다.

오대산입구에 있는 오대산식당(033-332-6888)에 들러 늦은 점심겸 저녁을 먹었다. 산채정식 1인분 15,000원이라는 가격이 놀랍지만 2인분 + 공기밥 2개를 시키고 준기가 좋아하는 감자전을 하나 추가했다. 23가지 반찬은 짜지도 싱겁지도 않아 입맛에 딱 맞았고 비빔그릇을 부탁해 비벼 먹어도 그 맛의 조화가 깨지지 않는다. 아이들도 각각 공기밥 한그릇씩 다 비웠다. 남은 반찬은 싸서 집에 가져왔다. 4시 50분. 이제 집을 향해 기분 좋게 달렸다. 다시 북상한 장마전선 때문에 간간히 비가 왔다. 야영할 곳은 많고 시간은 부족하다. 이렇게 우리가족 15번째 야영은 행복하게 끝났다.

피로도 말끔히 사라지고 새로운 활력을 채우고 올 수 있게 야영은 최소한 2박3일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느낀 대관령휴양림 야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