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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여행

곰배령 천상꽃밭과 방태산 야영

by 연우아빠. 2009. 8. 17.

곰배령 천상꽃밭과 방태산 야영

기간 2009.8.14~16(2박3일) 야영

8월14일(금) 

정모 해 보겠다는 계획은 몇 번이나 연기하여 이젠 ‘되는 사람들만이라도 모이자’로 변경한 상태가 되었다. 장소도 몇 번 왔다갔다 하다가 결국 방태산 야영으로 낙착. 모라꼿 태풍이 몰고 온 때늦은 더위 때문에 국립 휴양림 야영장은 다시 미어터지고 있다는 소식. 그나마 미천골은 계곡이 너무 깊어 야영객이 들어가서 일일이 나갈 데크를 탐문해서 인수받는 방식이라고 해서 포기했다. 폭우 때문에 비었던 야영장이 방태, 미천골, 삼봉 모두 다 차버렸다고 한다. 이젠 방태산 참석 가능한 팀이 유진네, 현지네, 우리 이렇게 3가족만 확정. 다시 왔다갔다 하면서 머리 썩히지 말고 운에 맡기고 그냥 가자는 아내의 말에 동의하며 상린아빠님의 안깨산장 야영을 비상대책으로 생각하고 방태산에 가서 줄 서보기로 했다.

13일 밤, 내일 오후에 반차를 내고 출발하자고 아내와 얘기하던 중에 준섭맘님의 문자 메시지. 나연네와 함께 오겠다는 소식. 순간 더욱 고민은 깊어지고. 야영장 확보가 무엇보다 급해지기 시작했다. 14일 새벽 걱정 때문에 얕은 잠만 자게 되었는데 새벽에 꿈 속에서 빈 데크 4개를 발견했다고 좋아라 하며 잠을 깼다. 꿈이었다. 약간 허탈. 그리고 약간은 희망. 그래! 굳은 의지로 한번 밀어보자!


무심코 풀지 않고 버려둔 노끈이 1년 뒤에는 나무에 이런 상처를 입힙니다. 노끈을 제거한 뒤 선명하게 나무에 남은 노끈 자국

오전 근무를 마치고 오후 반차를 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급한 마음인데 버스에 탄 정신이 조금 온전치 못한 듯한 할아버지 한 분이 계속 신경 쓰인다. 승객들에게 산본역 간다고 내리는 곳 가르쳐 달라다가 금정역 간다고 했다가 금정역에는 내리지 않고 산본역 간다고 하고...그 버스 산본역 가지 않는 버스라 다른 버스 타야한다고 사람들이 얘기하는데 계속 오락가락 하신다. 우리 집 근처에 내리면 산본역 가는 마을 버스가 있으니 저를 따라 내리라고 말씀 드렸는데 사실 속으로 그러고 싶지 않았다. 얼른 가서 준비해도 2~3시간 걸릴 텐테 길 막히기 전에 출발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꾹 누르고 할아버지를 뫼시고 내렸는데 이분이 더 오락가락 하신다. 금정역 간다 하셨다가 산본1동 간다고 하셨다가 몇 번을 말을 오락가락 하시고, 걷는 것도 상당히 불편해 보였다. 에라. 늦게 가면 가지 뭐, 하면서 찬찬히 할어버지의 행선지를 확인하는데 결론은 군포역 앞에 있는 결혼식장 가는 것. 할아버지 혼자 횡단보도 건너기 위험할 것 같아 같이 모시고 우리집과 반대쪽으로 가는 버스 정류장으로 안내를 해 드리고 집으로 올라갔다. 오랜만에 ‘착한 일’ 한번 했다는 생각도 하면서(착한 일을 한다는 의식이 없이 해야 진짜 착한 일인데 하는 생각도 하면서...)

짐을 허겁지겁 싸고 차에 실으니 땀이 비오듯하고 급하게 서둘다 보니 문단속도 제대로 안됐었나 보다. 다음날 우리 집에 온 신문을 치우러 찾아오신 아버지께서 우리집 현관이 제대로 잠겨 있지 않더라는 전화를 하셔서 경악했다.


우리 식탁에 날아왔다가 준기에게 잡힌 여치. 관찰하고 나서 풀어 주었습니다. 그래도 여치는 많이 놀랐겠죠?

아무튼 경춘고속도로 위에 올라서니 그래도 아직은 여유 있는 속도. 맘 속으로 꿈에 본 데크 4개를 되새기며 열심히 달렸다. 현지아빠님은 일이 밀려들어 도저히 이번 모임에 동참할 수 없게 됐다고 연락해 주시고, 게다가 회사에서는 날아온 전화는 예산 심의를 지금 들어갔다고 일요일까지 할 것 같다면서 오늘밤과 일요일에 사무실에서 대기해 달라는 연락이 왔다. 내가 차를 돌릴 수도 없고 구조조정 워낙 심하게 해 놔서 대신 해 줄 인력도 없고...주말마다, 또는 일요일에만 골라서 예산심의 하는 것 같아 열도 났다. 사실 다 바빠서 그렇다는 것을 이성적으로는 이해하지만 감성적으로는 열 밖에 나지 않는다. 예산 담당 부서에 ‘나도 할 만큼 했다. 이젠 니들이 방어해라. 빼째라!’ 하고 싶었지만 사무실에 남아 있는 막내 직원에게 대기하다가 긴급상황 발생하면 연락을 달라고 해 두고 6시 조금 지나 홍천 IC를 빠져 나왔다. 여차하면 가족 모두 차 안에서 하룻밤을 자야 할 상황. 이때 걸려온 미확인 전화 한통. 배달은석님의 목소리. 부인의 휴대폰이라면서 혹시 방태산 오고 있냐고 물어 본다.


저녁 산책길(8월15일) 이단폭포 올라가는 중입니다.

이를 두고 천사의 목소리라고 해야 하나? 오늘까지 야영하려고 비용을 지불 했는데 지금 나가야 할 상황이라고 청소년지구 야영장으로 오라고 한다. 갑자기 머릿속을 울리는 환희의 송가. 오늘 낮에 만난 할아버지에게 왠지 잘 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심하게 들었었는데 그 보답을 이렇게 빨리 해 주시남? 하는 단순한 생각도 하면서 여유를 좀 가지면서 달렸다. 연료가 달랑달랑해서 아내가 저기! 하는 주유소에 들어가 기름을 넣고 나니 불과 1분만에 2주전에 넣었던 리터당 1백원 할인할 수 있는 카드제휴 주유소가 나온다. 현지아빠님은 아내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온다는데 나는 아내 말을 잘 들으면 매번 꽝이라고 아내에게 농을 던졌다.

저녁 7시 10분쯤 휴양림 도착해서 야영장으로 올라가 작년 청옥산 야영 이후 배달은석님 부부를 오랜만에 만나 반갑게 인사를 했다. 배달은석님이 짐을 정리하는 동안 먼저 쌀을 꺼내 밥 지을 준비를 했다. 사방에서 날아오는 구수한 밥 냄새와 음식냄새 때문에 배가 많이 고팠다. 배달은석님이 떠나고 어둑해진 가운데 텐트를 쳤다. 데크가 작아서 우리 텐트 하나 올라가니 공간이 20cm밖에 남지 않았다.


추위를 몹시 타는 연우. 겨울에 쓰는 1인용 담요를 두르고 이단 폭포로 올라갑니다. 앞에 가시는 분은 유진맘님.

야영객들 곳곳에서 숯불을 피워 고기를 구워먹고 있다. 준기도 숯불구이 먹고 싶다고 하고. 하지만 방태산에서는 휴양관 앞만 제외하고는 금지하고 있는 사항. 준기에게 후라이 팬에 고기 볶아 먹자고 달래고 밥을 지었다. 세면장 같다 온 아내가, 2군데 데크는 타프만 쳐 놓고 있는 집도 있다고 한다. 잠은 다른 데크에 텐트 쳐 놓고 자고, 놀 때는 타프만 쳐 놓은 데크에서...지난 11일, 12일 내린 폭우 때문에 모두 강제 철수 시켰다가 다시 들어올 때 이런 빈익빈 부익부가 생긴 모양이다. 2주전 눈 내릴 때 나간다는 어르신 부부는 여전히 그 자리에 그 모습 그대로 야영하고 있더라고 아내가 전해준다. 해서 일부러 찾아가 인사를 드렸더니 몹시 반가워 한다. 12일날은 철수령이 내려 다들 폭우 속에 텐트를 걷고 나갔지만 이 분은 텐트를 그냥 두고 산 아래 민박집에서 하루 주무시고 다시 올라오셨다고 한다. 정말 대단하신 분이다.

그 사이에 이미 8시 50분. 혹시나 싶어 차를 끌고 안내소를에 내려갔다. 벌써 내 앞에 한분이 먼저 오셔서 대기 중이다. 나도 두 번째에 줄을 섰다. 준섭맘님과 나연맘님도 거의 도착할 때가 되었다는 연락이 온다. 그 사이에 네 사람이 더 왔다. 조마조마하다. 10번 안으로 번호를 받아야 할텐데. 아내가 전화를 했다. 반찬을 넣어 둔 아이스박스를 내리지 않아서 저녁을 못 먹고 있다고. 헉! 지금 되돌아 올라갈 수도 없고. 번호표 받아서 빨리 올라가겠다고 하고 시간이 가기를 초조히 기다린다.


유진맘님이 이름을 얘기해 주시길 물봉선이랍니다.
이단폭포 앞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꼭 신라나 가야 사람들이 쓰던 뿔잔처럼 생겼습니다.

사람들이 먼저 접수해 주면 안돼냐고 한마디씩 했지만 휴양림 직원들은 게시해 놓은 원칙대로 해야 시비가 없다고 10시에 접수 시작한다고 다시 한번 얘기했다. 사무소 팀장은 나를 알아본다. “아니, 다녀 가신 지 얼마 됐다고 또 오셨습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너무 하시는 것 아닙니까?” 하고 웃는다.

“이번에는 자의반 타의반입니다 ^^, 그리고 청소년 지구 야영장에 한 집에서 데크 두 개씩 사용하는 곳도 3군데나 있던데 거기 비하면 양반이죠.” 했더니 어제 그제는 야영장이 상당히 비어 있어서 어쩔 수가 없었단다. 여기에도 빈익빈 부익부.

9시 좀 넘어 은주아빠가 전화를 했다. 줄 서 있다고 했더니 “상린아빠님 잡아 놓은 민박집에 가서 텐트를 치시지 뭔 생고생인가요. 나는 그리 못합니다”하며 웃는다. 상린아빠님의 확인전화가 다시 오고 이어 이어서 유진아빠께 전화해서 내가 대기하고 있으니 걱정말고 아침에 출발하라고 전화를 했다. 9시 40분쯤 준섭이네와 나연이네가 도착해 일단 줄을 먼저 섰다. 혜원이와 준섭이, 그리고 나연이가 씩씩하게 뛰어와 반갑게 인사를 한다. 준섭이가 준기를 찾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준기를 데리고 내려올 걸..하는 생각이 든다.


가족지구야영장에서 저녁을 먹습니다.

2주 전에는 밤새 차를 세워놓고 대기하느라 외통길에 차들이 오도가도 못했는데 휴양림 관리사무소에서 방법을 바꾸었다. 밤 10~12사이에 관리소에서 대기자에게 접수번호를 차례로 부여하고 다른 숙소에 가서 편히 자고 다음날 08:50분까지 관리소 앞으로 오면 순서대로 데크를 부여하겠다고 한다. 가족이 있는 사람들은 대기하기에 훨씬 편해졌다. 10시에 나는 2번, 준섭이네가 7번, 나연이네가 8번으로 접수했다. 두 분은 늦은 밤에 낯선 곳에 가서 텐트를 치는 것보다 여기 공터에 치고 하루밤을 새우는 게 낫겠다고 하신다. 벌써 다른 가족이 텐트를 쳤다. 남은 공간은 텐트 한 동 정도 들어갈 만큼. 얼른 직원주차장 공터에 텐트를 하나 치고 아이들은 거기에 들어갔다. 내일 아침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배고프다고 아우성치는 아이들을 향해 야영장으로 올라갔다.

10시 30분에 올라와 좁은 공간에 쭈그리고 앉아 헤드렌턴을 켜고 오징어 볶음으로 늦은 저녁식사를 마쳤다. 얼른 양치질을 한 다음 아이들을 재웠다. 밤 12시가 넘어 혼자 샤워장으로 올라갔다. 땀을 많이 흘려서 그런지 2주전과 달리 물이 별로 차지 않다. 날씨가 그만큼 더워진 것인가? 찬물로 샤워하고 머리감고 누우니 뽀송뽀송한 침낭이 천국 같다. 정말 몸도 마음도 바쁜 하루였다. 데크가 계곡 바로 옆이라 물소리가 엄청나다.

 

8월15일(토)

새벽, 잠자는 도중에 갑자기 온 숲속의 상쾌한 정기가 내 몸 안으로 밀려들어 오는듯한 느낌. 조금 불편했던 무릎이랑 어깨에서 상쾌한 느낌이 나고 더부룩했던 뱃속이 청소한 듯 가벼워진다. 아침인가 싶어 일어났는데 3시 45분.

오줌 누러 화장실로 올라가는데 그 시간에 들어온 등산객들인지 맨땅에 2~3인용 작은 텐트를 바닥에 치고 3팀이 술자리를 벌여 놓았고. 타프를 친 데크에도 그 시간까지 술자리를 이어가고 있다. 취사장 옆 공터에는 1인용 비박텐트 속에서 비박하는 두 사람이 있다. 대한민국에는 대단한 사람이 정말 많은 것 같다. 하늘에 그믐달이 초롱초롱하고 별이 쏟아져 내린다. 야영장에는 지난번과 달리 밤새도록 가로등을 끄지 않는다. 다시 들어가 잠을 청한다. 플라이 입구 쪽만 이슬이 맺혔다.


곰배령 가는 길. 노란조끼는 탐방안내소에서 지급하는 것입니다. 어린이는 입지 않아도 된다고 합니다.
얼마나 숲이 우거졌는지 ASA 800으로 놓고 사진을 찍었는데도 빛이 부족해 컴컴합니다.

아침, 눈을 뜨니 6시 15분. 일어나 텐트 밖으로 나오니 숲을 감싸고 있는 자욱한 안개. 오늘도 무척 더울려나. 숲 속은 추위를 느낄 정도라는데 나는 너무나 상쾌하고 기분이 좋다. 심호흡을 하고 주변 청소를 한 다음, 작은 나무에 작년에 묶어 놓은 듯한 낡은 노끈을 올라가 끊었다. 선명하게 남아 있는 노끈이 파고 든 자리. 한여름 야영객들 가운데 행락에만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 너무 많다. 노끈은 물론이고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나무 밑둥에 그냥 방치해 나무뿌리가 썩어 쓰러지는 거목들이 많다는 뉴스를 보았는데 우리 데크 앞 소나무도 자동차에 치이고 긁히고 해서 상처에 송진이 흐르는 녀석이 있다. 휴양림 데크 사이로 다람쥐들이 열심히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주워 먹는다. 맨날 사람들이 먹던 것만 주워 먹다가는 겨울에 도토리랑 밤을 어떻게 까서 먹으려고 저러나....

아침을 준비하고 있는데 유진이네가 5시에 출발해서 거의 다 왔다고 연락. 9시쯤에 도착 가능하다고 한다. 필요한 것이 없냐고 다시 물어본다. 아침을 얼른 먹고 준섭이 보겠다는 준기를 태우고 안내소로 내려갔다. 대기자 22명. 나온 데크는 24개. 다행이다. 그런데 혜원이가 손에 붕대를 감고 있다. 으잉? 준섭맘이 지난 밤에 혜원이가 가스렌턴을 만져서 화상을 입었다고 한다. 밤에 병원을 찾아 인제까지 나가서 응급조치는 했는데 서울에 화상전문병원에 전화를 했더니 시간이 지나면 안된다고 빨리 데리고 오라는 연락. 하지만 혜원이는 오른손에 붕대 감고 있으면서 야영하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준섭, 혜원, 나연 셋은 목공예실에서 열심히 뭔가를 만들고 있다.

준기와 준섭이는 이산가족 상봉하는 것 같은 분위기다. 너무 너무 좋아하는 준섭이와 준기. 함께 목공예하면서 신이 났는데 혜원이 치료 때문에 바로 돌아가야 한다는 얘기를 듣자 아이들 모두 야영하자고 고집을 부린다. 준섭이는 혼자 남아도 준기랑 야영한다고 해서 준섭맘만 괜찮다면 준섭이 우리가 데리고 있다가 집으로 보내겠다 했지만 그렇게까지 폐를 끼칠 수 없다고 하여 어쩔수 없이 집으로 가야만 하는 상황. 순간 준기는 눈물이 그렁그렁...대신 오서산 밤따기 할 때는 꼭 같이 가자고 준섭맘님이 달래고..나는 슬퍼하지 말고 짧은 시간 동안이지만 저기 계곡에서 물놀이라도 함께 하라고 아이들에게 얘기했다. 준섭이는 그 짧은 시간에 해 데크 번호표 받는 동안 둘은 앞 계곡으로 뛰어 내려갔다.


곰배령 가는 길. 강선마을 근처에서 찍은 작은 폭포. 이런 폭포가 상당히 많습니다.
그냥 풍덩 뛰어들고 싶은 곳입니다만 무척 춥습니다.

번호표를 나눠주기 전에 관리사무소 직원은 아름다운 계곡을 오래 보전하려면 여러분 모두 깨끗하게 사용하고 금지 규칙을 잘 지켜 주셔야 한다고 당부했다. 아침에도 고기를 굽고 있는 몇몇 가족들을 보고 내려온 터라 처벌 없는 규칙이 얼마나 사람들을 개선시킬 수 있을까 회의가 살짝 들었다. 협조를 하겠지만 여기저기서 날아오는 숯불구이 냄새는 계속 갈등을 일으킬 것이고 규칙을 지켜 가스렌지에 구워먹는 사람과 이웃에서 숯불을 구워먹는 사람 간에 비교가 안 될 수가 없다. 절대적 진리를 추구하는 성인군자들만으로 된 세상은 없으니까. 아침도 거의 못 먹고 데크 확보에 목매달고 있는 처지에 별 형이상학적인 배고픈 생각을 다 한다고 속으로 한번 웃고...

준섭맘님께 오늘은 데크 사정이 좋으니 귀가하시기 전에 준섭맘님 차례에 만약 가족지구 데크가 남는다면 그걸 선택해서 저에게 주십사고 부탁했다. 4팀을 가능하면 가까운 곳에 모두 모으려는 생각이었는데 현실적인 확률이 매우 낮을 거라 생각했다. 헌데 생각보다 가족지구 야영장 데크가 많이 나와서 잘하면 이곳으로 옮겨와 유진네랑 같이 있을 수 있겠다 싶다. 여기서라면 휴양관까지 가서 숯불구이 해 먹을 때 이동거리가 짧아서 좋을 것 같고 마당바위가 가까워 물놀이 하기에 좋을 것 같다. 준섭맘님이 그렇게 해 주시겠다고 하셔서 나는 가족지구 2번 데크를 잡았다. 다행히 사람들이 대부분 청소년 지구 야영장을 선택해 준섭맘님 차례에 계획대로 3번 데크를 확보할 수 있었다.


곰배령 가는길, 강선마을에서 옛날처럼 키우는 닭.

이때 유진네가 도착했다. 서로 인사를 시켜 드리고 오늘 바로 돌아가야 한다는 상황설명을 했다. 함께 하지 못하는 안타까움. 지난밤에 하루를 세운 보람이 없어진 아까움. 아쉽고 섭섭해 하는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손을 흔들며 다음을 기약했다. 아침을 드시고 가셔야 하기에 근처에 두부로 유명한 맛집을 찾으신다. 상린아빠님 블로그에서 예전에 본 기억이 있어 상린아빠님과 주은아빠께 연락해 고향집(031-461-7391) 전화번호를 찾아 네비게이션으로 찾아 드리고 아쉬운 이별. 혹시 병원에 가 보고 괜찮다고 하면 다시 오시라고 하고 배달은석님께 받은 데크는 반납하지 않고 갖고 있겠다고 했다. 어차피 오늘 들어오는 사람보다 데크가 많이 나왔으니....

준기 데리고 야영장 올라가 짐을 싸서 유진이네와 같이 가족지구로 내려갔다. 유진이네는 중간에 타이어가 펑크 나서 고치느라 시간이 많이 지체됐다고 한다. 새벽에 출발하지 않았더라면 도착하는데 애를 먹었을 거라고 한다. 아마도 개학 전 마지막 주말인 학생들이 많아서 여행 떠난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 우린 그런 생각도 없이 틈만 나면 짐싸는데....현실과 많이 동떨어진 생활인가? 텐트를 치는 동안 준기는 식탁으로 날아온 여치를 잡았다. 관찰만 하고 반드시 다시 돌려 보내기 할 것을 환기 시키고...


아내가 찍어준 사진 가운데 최근에 제일 잘 나온 듯.
뒤에서는 유진아빠께서 유진맘님을 찍고 있습니다. 제 뒤에 수백년 된 나무가 있습니다.

점심 때 휴양관 앞에 가서 고기 구워 먹자고 했다. 점심 때는 휴양관 사람들 가운데 숯불구이 하는 사람도 거의 없고, 또 점심 때 먹으면 활동하는데 에너지로 쓰지만 저녁에 먹으면 잠자면서 모두 살로 갈 것 같아 점심때 먹는 게 좋겠다고 했다. 하지만 가족 야영장에 도착하니 고기 굽는 냄새와 숯불연기가 야영장을 가득 채우고 있다. 데크에 텐트를 치고, 점심 먹으며, 우리도 작게 피워서 먹자고 굽기 시작. 원리원칙을 철저하게 지키는 유진아빠지만 작은 유혹에 슬쩍 넘어가는 인간적인 모습도 좋다. 웨버에 숯을 넣고 훈연을 하면 거의 표시가 나지 않는데 화로에 구우니 연기 징하게 퍼진다. 가족 야영장은 계곡 건너편에 지나다니는 휴양림 관리직원들에게 누가 뭔 짓을 하는 지 한눈에 금방 띄는 자리. 결국 주의 받고 잠시 후 종료(원칙을 지키려는 고생을 감수할 것인가? 남들이 깨는 원칙을 함께 깨뜨려 조금 편해 볼 것이냐? 이것에 대한 고민은 나를 포함한 소시민 누구나 피해갈 수 없는 덫이겠지요?). 차라리 한 곳을 정해 거기에서 숯불구이를 할 수 있게 해 주었으면 정말 좋으련만...

숲속 그늘에서 구워 놓은 고기를 안주 삼아 느긋하게 계곡물을 바라보며 자연냉장고에서 막걸리, 소주, 맥주를 차례대로 꺼내 천천히 즐기고, 수박도 먹고, 낮잠도 자고, 유진이의 종횡무진 태백산 종주기를 실감나고 재미있게 듣고 배꼽을 잡고 웃기도 했다. 정말 명랑 쾌활한 소녀. 아마 그 여행이 유진이 평생에 아주 진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누구는 입시 때문에 태백산 종주에 참여하기도 한다는 놀라운 사실도 처음 들었다. 아이들 키우는 이야기하며 정말 오랜만에 야영장에서 만난 즐거움을 만끽했다. 두 분은 내일 곰배령 탐방 4명을 예약해 놓았다고 하신다. 8시 출발 팀이라 아이들은 그 시간에 일어나지 않을 것이니 이번에는 부부 4사람만 갔다오자고 한다. 이렇게 고마운 선물을.....위로 2단 폭포까지 아래로 휴양관까지 산책을 하며 휴양림의 오후를 여유 있게 즐겼다. 유진아빠님 새로 산 렌즈로 열심히 테스트도 하고, 재미있는 표정과 동작으로 휴일의 여유를 맘껏 누려본다. 준섭맘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다행히 혜원이는 치료만 하면 괜찮을 거라고 한다.


곰배령에 도착하면 눈을 시원하게 해 주는 하늘꽃밭.

오후 늦게 한 분이 우리 주변을 돌며 애타게 빈 데크를 찾고 있다. 우리 데크에 오더니 오늘 나가는 팀이 있느냐고 물어 본다. 데크 배정 방법을 설명해 주고 오늘 24개 데크가 나왔는데 빈 데크가 없더냐고 물었더니 다 배정된 모양이다. 너무나 간절한 그 분의 얼굴을 보며 준섭이네가 혹시 돌아오면 쓸 생각으로 갖고 있던 데크 번호표를 그 분에게 드렸다. 데크 사용료를 주겠다고 하는 것을 거절했다. 나에게 선의를 갖고 데크를 양보해 주신 분들과 또 가족을 위해 데크를 간절히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이만한 행운은 거저 나눠 줄 만하지 않은가? 어제 우리가 생각지도 못하게 받았던 데크가 우리를 얼마나 기쁘게 했던가. 7천원으로 7만원 이상의 행복과 과분한 감사 인사를 받은 것으로 충분했다.

밤 10시가 넘어서야 곰배령 탐방 출발지점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공공기관 직원들은 모두 퇴근했을 시간. 어쩔 수 없이 휴양림 안내소에 내려가 인터넷 검색을 해서 그 근처에 있는 카페 전화번호를 알았다. 연락을 했더니 카페에서 4백미터만 더 가면 출발점이라고 알려 준다. 내일 우리 차를 타고 가기로 하고 네비게이션 검색해서 세팅완료. 계곡 바람이 시원하고 좋은데 여자분들은 춥다고 한다. 화롯불도 피우지 못하게 하니 가스렌턴을 켰다. 야영의 최대 장점을 꼽으라면 많은 대화와 자연현상과 생활패턴이 일치가 되는 점이다. 대화 분위기를 돋워 주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 가스렌턴은 나름 괜찮은 도구다. 전기가 없으니 해가 지면 자고 해가 뜨면 일어나는 생활이야말로 가장 원초적인 모습이 아닐까? 그러고 보니 오늘 대충 세수만 하고 머리도 감지 않고 이도 닦지 못했다. 그냥 문명화의 때를 벗지 못한 덜 된 원시인. 거울도 없으니 편하다. 어떤 모습이었을까? 여행을 계속 할수록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횟수는 줄어든다.


성영아빠님이 오셨으면 저 봉우리들 이름을 다 가르쳐줬을텐데....하면서 웃어봅니다.

가족 지구는 데크는 크고 좋은데 계곡 바로 앞이라 다이빙대 높이만큼 되고 물 소리가 너무 커서 좋지 않다. 밤에 놀 때야 좋지만 야영을 해 본 사람이라면 절대 이런데다 야영장을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해가 지자 습기 때문에 침낭이랑 텐트도 눅눅하다. 눅눅함을 불평하는 아이들과 아내를 위해 재작년에 자형에게 얻어 둔 핫팩을 꺼내 하나씩 침낭 속에 넣어주고, 나도 하나 시험삼아 써 보기로 했다. 가족 지구에는 계곡 물이 바로 앞이라고 그러는지 샤워장이 없어서 땀을 흘린 다음 씻는 게 영 불편하다. 화장실은 청소년 지구 보다 깨끗하고 취사장이 아주 가까운 것이 좋긴 했지만...세수하고 발만 씻고 침낭에 들어가니 상쾌한 잠자리가 아니다. 폭포 같이 떨어지는 물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꿈나라로 들어갔다.

8월16일(일)

아침 5시 35분 기상. 7시에 휴양림을 출발하기 위해 머리감고(사진 찍을 거니까 ^^) 세수하고 배낭을 챙겼다. 사진기, 사과 4개, 물병을 챙기고 유진이네가 가져온 옥수수를 쪄서 한 개씩 먹고, 나머지는 아이들 먹을거리로 남겼다. 빵도 1개씩 먹고 네 사람만 곤히 잠든 아이들을 두고 7시에 곰배령을 향해 우리 차에 네 명이 타고 출발했다. 휴양관 아래쪽 주차장에서 방향을 돌리는 대형 버스를 만났다. 우리가 비켜갈 길도 내주지 않은 채 방향을 돌리는데 아무리 봐도 초보 운전자가 분명하다. 앞길을 막고 있어 시간 늦을까봐 조마조마한데 이 차는 큰길까지 계속 앞길을 막으며 간다. 안내소에서 2번 데크는 반납하고 3번 데크만 오후까지 쓰기로 했다.

곰배령 찾아 가다가 진동산채 식당에서 점심 먹자고 찜해 두고. 속도를 냈다. 인적이 드문데 완만한 경사지라 아무 좋은 풍경이다. 아침가리골을 지나며 가을에 한번 단풍을 봤으면 좋겠다는 욕심을 또 내본다. 22km에 불과한 거리인데도 비포장 도로가 제법있어서 50분 걸렸다. 가는 길에 불쌍한 오소리 한 마리가 차에 치여 죽어 있다. 비포장 도로에 들어서자 아무도 없을 것 같은 숲 속 곳곳에 민박집, 팬션, 카페가 줄지어 있다. 대형버스를 타고 단체로 오는 사람들도 있나보다. 혹시나 예약하고 못오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했는데 곰배령에 오겠다는 사람들 가운데 그런 경우는 거의 없나보다. 탐방로 앞에 도착해(주차비 3천원) 예약자 이름 확인하고 개별 조끼를 받아 입고 올라갈 준비를 했다. 8시에 출발하는 우리팀을 이끌 숲해설가는 상당히 늦는 모양이다. 우리 탐방객들만 먼저 올라가라고 한다. 곰배령 정상 너머는 국립공원이므로 출입금지라면서 지켜 달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조끼는 반드시 반납해야 하고. 그러니까 조끼는 원점 회귀를 위한 인질인 셈?


우린 잘 찍어 줬건만 정말 성의없이 찍어 주신 어떤 분의 희안한 인증 사진. 이게 뭡니까?

삼삼오오 사람들을 따라 산길을 올라가는데 사람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는 극상림 숲은 서어나무 군락이 많고 모든 것이 깨끗하다. 햇빛은 숲을 사이사이에 뚫고 들어와 빛내림 현상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준다. 대나무 마디 같은 마디마디가 특징인 속새군락을 지나고, 옛날 화전민 마을이었던 곳에 심어놓은 잣나무 군락. 그리고 마지막 마을인 강선마을 전방 1.3km 표지판. 강선마을에는 닭을 방사하는 집도 있고 토종벌을 치는 집도 있다. 인공적인 자재를 많이 쓰지 않고 지은 집과 장독대는 가진 것은 별로 없었지만 참 편안했던 어린 시절 우리집을 보는 것 같다. 몇백년 된 거대한 나무. 넓은 계곡, 징검다리, 멧돼지를 막기 위한 나무울타리. 사람의 손길을 타지 않아 쓰레기가 없는 깨끗한 숲, 맑은 계곡, 작은 폭포들...국립휴양림을 다니며 좋은 숲을 많이 봤지만 곰배령은 그에 못지 않은 조용한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역시 자연은 사람이 더럽히지 않는 것이 정말 중요한 모양이다.(곰배령 정상에서 발견한 담배꽁초는 정말 기분이 나빴다.)

길을 오르내리며 여기 사는 사람들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 은퇴후 귀농에 대한 가능성, 아이들 교육에 대한 서로의 생각, 아이들의 천재성과 재능에 대한 이야기들. 정말 자연휴양림을 통해 너무 너무 좋은 이웃을 사귀었음에 감사하고 이런 행운을 누릴 수 있음에 감사했다. 아이들의 천재성과 재능을 부모가 기다려 주지 않고 발견하지 못해 꺾어 버리는 잘못을 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고 서로의 얘기에 진심으로 공감을 했다.


아쉽게 흔들렸지만 표정 정말 좋은 두분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고 노래했나 봅니다.

아침을 부실하게 먹고 출발한 길이라 그런지 시원한 숲속인데도 땀이 비오듯 한다. 곰배령 못미쳐 평평한 바위에 앉아 사과 1개씩 나눠먹고 사진기는 배낭에 집어 넣었다. 사진을 찍어봤자 실제 풍경에 미치지 못하고 직접 와서 보는 게 좋을 것이고 그리고 너무 힘들고....생각보다 오래 걸린 등산길. 완만한 트레킹 코스가 대부분이라 조금 지루한 느낌이 들 때쯤 도착한 언덕마루. 2시간 넘게 걸린 듯. 마치 5월처럼 화사하게 온 천지에 핀 아름다운 꽃.

작년 8월1일에 봤던 방태산 구룡덕봉의 꽃밭보다 훨씬 아름답고 멋진 꽃밭, 그리고 더위를 날려 버리는 탁 트인 시야와 상쾌한 바람. 사람이 별로 없는 호젓함이 주는 잔잔한 평화. 땀을 흘리며 올라올 만한 곳이었다. 예약자 중에 오지 않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다들 빠짐없이 올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시 한번 유진네 가족에게 감사. 오래 있고 싶었지만 아이들 걱정에 20여분 만에 산을 내려오기 시작.

내려오다 잠시 휴식하며 복숭아를 나눠 먹고 있는데 검은색과 갈색이 섞인 황조롱이(?) 한 마리가 계곡 낮은 수풀 사이에서 소리도 없이 날아오더니 순식간에 아내의 뒤편 둔덕에 있는 쥐를 사냥해 수풀 속으로 번개처럼 사라지는 모습을 보았다. 날개 소리조차 나지 않는 완벽한 비행. 쥐의 비명만 없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없는 훌륭한 사냥꾼 황조롱이. 카메라를 들고 있었지만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찍을 틈도 없었다. 이런 희귀한 모습을 직접 본 것만으로도 일생의 귀한 행운으로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솔바람의 식물박사 유진맘님이 앉은부채라는 식물을 보더니 설명해 준다. 멧돼지가 좋아하는 식물인데 저걸 먹으려고 온 산을 다 파헤친다고 한다. 다음에 산에 가다가 저 식물이 보이면 그 길은 피해야 겠다. 집에와서 찾아보니 앉은부채는 독성이 있다고....


오랫만에 만났으니 여러장 찍어도 되죠?

휴대폰이 되지 않아 아이들 소식이 궁금했는데 12시쯤 주차장에 돌아와서야 연락이 되었다. 지환이가 라면을 끓여서 나누어 먹고, 빵도 먹고, 다른 간식거리도 찾아 먹고 잘 놀고 있다는 연락. 돌아오는 길에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이야기, 부부간에 가족간에 대화없이 평생을 지내다가 퇴직 후에 “낯선 당신”이 되어 갈등을 겪는 사람들 이야기를 하며 가족이 함께 하는 시간들을 소중하게 해야 하는 것에 120% 공감하며 휴양림으로 돌아왔다. 그 와중에도 자료를 요청하는 감독관청 과장의 전화....나야 반갑긴 했지만 다들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 지. 레알 마드리드는 노는 것을 잘 기획해서 연간 1조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는데 우리도 좀 놀면서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법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휴양림에 돌아오니 12시 50분.

반납한 우리 데크 옆에는 벌써 다음 사람들이 들어와서 기다리고 있다. 서둘러 짐을 유진네 데크로 옮기고 빨랫줄을 널어 습기 가득 찬 침낭, 텐트를 널어서 말리며 맘님 두 분이서 전을 부칠 준비를 했다. 지환이가 요리에 관심이 많다고 해서 재료준비는 엄마들이 하고 처음 두어 장을 부친 다음에는 지환이가 전을 부쳤다. 요즘 아이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놀라운 요리 솜씨에 막걸리 한잔, 남은 맥주 한잔...간식으로 한 장씩 먹고 먹다가 어느새 다 사라지고. 옥수수 먹고, 남은 라면 5개 끓여서 먹고, 수박, 복숭아 먹고 유진아빠 말씀대로 정말 휴양다운 휴양을 즐겼다. 그리고 유진아빠는 꿈나라로..그리고 나도 유진네 텐트에서 아주 달콤한 한시간 낮잠. 아이들 모습을 보며 그 사이 많이 자랐다는 느낌. 정신적으로도 많이 큰 듯.

준기는 어제 내가 봤던 도마뱀을 발견하고 먹는 것에 동참하지 않고 열심히 바라본다. 지환이가 빗자루를 가지고 나무로 올라가는 도마뱀을 쓸어 내리니 준기가 질색을 한다. 나무위로 올라갔던 도마뱀은 한참 있다가 다시 내려왔다. 준기는 꼬리와 몸통 색깔이 다르다고 아마 꼬리를 한번 잘랐던 도마뱀 같다고 한다. 다람쥐도 사람들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아주 가까이 다가와서 심지어 사람들에게 밟힐 것 같은 불안감을 준다. 어제 우리에게 데크를 하나 얻어갔던 분은 오늘 나간 사람이 많은 지 가족지구 쪽 데크를 얻어 옮겨 왔다. 반갑게 인사를 하면서...

계곡에 발을 담그고 시원한 여름오후를 즐기며 “놀기 위해 일하는 사람”으로서 행복감에 젖어 본다. 유진이네가 검봉산에 야영데크가 있다고 해서 이번 주말에 우리 가족은 가리왕산 대신 검봉산 야영으로 급선회 했다.(돌아오는 길에 더 추워지기 전에 데크 위에서라도 비박 체험을 한번 해보자고 가족들을 꼬시고 있다. 어쩌면 더 간단한 장비로 야영의 재미를 느낄 수도 있을 것이라 설득하면서...별로 심한 반대를 안한다. 반대해도 내 고집대로 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어슬렁 어슬렁 야영장을 휘젓고 다니는 작은 도마뱀

황금색 햇빛이 비스듬히 계곡을 비추는 시간, 아쉬움을 접고 짐을 싸기 시작했다. 준기 맘은 나무젓가락으로 우리 데크 주변에서 우리 보다 먼저 버린거나 흘린 사람들 쓰레기까지 열심히 주워 쓰레기 봉투에 담았다. 짐을 정리해 휴양림을 나선 시간은 오후 5시. 관리사무소 앞에서 유진아빠는 2번데크 야영비라며 7천원 냈다. 관리직원의 의아한 표정. 오후 1시 넘었으니 하루치 더 내는 것 아니냐고 하니 그런 사람이 거의 없었던 듯 애매한 표정을 짓는 관리소 직원들. 유진아빠께서 “받으셔도 당연하고 안 받으시면 저는 좋고요 ^^” 하면서 웃으니 직원들이 웃으면서 됐다고 돌려주더란다. 대신 사용하지 않은 음식물 쓰레기 봉투는 그냥 반납하고.

안내소를 지나 좀 내려가다가 아내가 준섭이가 놓고 온 옷을 한번 찾아봐 달라던 준섭맘의 부탁을 상기시켰다. 아차! 싶어 차를 세우고 안내소에 연락해 놓고 다시 내려가는데 전화가 왔다. 직원들이 계곡에서 주워 놓은 옷이 있다고 와서 보랜다. 해서 차를 되돌렸는데 대형 버스가 밀고 내려온다. 피할 수 없는 외통길. 어쩔 수 없이 아찔한 길을 어렵게 어렵게 후진해서 한참을 내려왔다. 좁은 길에 양쪽 고랑에 처박거나 등산객들이랑 부딪칠까 진땀이 났다. 안내소에 올라가 확인해 보니 준섭이 옷이 맞다. 다시 유진이네를 쫒아 진동산채집에 올라가 저녁을 함께 했다. 목이버섯과 석이버섯을 먹어보라고 조금 내 주는데 특이한 버섯이다. 정말 맛있는 산채비빔밥을 먹고 6시 반쯤 유진네와 인사를 했다. 아쉬워하는 우리 아이들. 어쩌면 우리는 따뜻하고 다정하고 속 마음을 털어놓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이웃이 좋아서 휴양림을 열심히 다니는 것이 아닐까?


지환이가 전을 부치겠다고 해서 시범을 한번 보여주시는 중.
지환이가 부친 전을 아주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사위 삼고 싶으신 맘님들은 미리 줄을 서시오!!!!!  ^^;;

지난 번에 샀던 집에 들러 옥수수를 다시 사서 주유소에 들러 연료를 채웠다. 이제 집에 가는 길만 남은 셈. 주유소를 나와서부터 홍천 도착할 때까지 SUV차량 8대가 비상등을 켜고 시속 40km 속도로 달리고 있다. 동호회 회원모임인가? 느린 속도에 답답하게 늘어서는 차량들이 꼬리를 문다. 이건 교통방해다. 홍천 IC 진입하는 주변은 차가 엄청 막힌다. 경춘고속도 강촌IC에서 화도까지 34km 구간이 막힌다고 했지만 서울 진입 도로 가운데는 제일 나은 상황이라 그냥 홍천 IC올라 고속 주행 시작. 강촌IC 근처에 오자 막히기 시작한다. 상린아빠님 전화가 왔다. 유진네를 강촌휴게소에서 만났다고 한다. 강촌휴게소 도착하니 인산차해.

세면장에서 세수하던 중에 상린아빠를 우연히 만났다. 제대로 인사도 못드리고.. 오서산에서 만날 것을 기약하며 작별을 했다. 막 출발하려는데 앞서간 유진네에서 문자연락이 왔다. 꼼짝도 하지 않는다고. 다시 휴게소 가고 싶다고....출발을 미루고 연우가 산 오징어 구이를 간식으로 먹고 이를 닦고 10시 30분 다시 출발.

아이들은 유진이의 태백산 종주 여행기가 재미있다고 한다. “그럼 이번 여행기를 너희들이 한번 써 볼래?” 했더니 써 보겠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이젠 눈을 붙이라고 하고, 너희들이 가장 일어나기 싫은 상태일 쯤 집에 도착할 거니 깨우더라도 잠투정 하지 말고 얼른 집에 올라가 안락한 잠을 잘 생각을 하라고 미리 다독거렸다. 다행히 화도 IC를 지나 3차선으로 넓어지는 곳에서 제 속도를 회복해 12시 27분 집에 도착. 미리 알려준 때문인지 예전과 달리 별 투정 없이 일어나 얼른 베개를 들고 집으로 올라가는 두 아이. 제법 컸음을 많이 확인한 이번 여행이었다. 함께 못한 다른 가족들을 아쉬워하며 17번째 야영을 무사히 재미있게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