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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여행

신불산휴양림과 창녕 우포늪

by 연우아빠. 2008. 7. 15.

신불산휴양림과 창녕 우포늪

일곱번째 야영 이야기  / 2008.7.11~13(2박3일)


신불산자연휴양림 상단과 하단 가운데 있는 파래소 폭포



 파래소 폭포의 커다란 바위를 뚫고 자란 나무



물이 너무 맑아서 돌 하나하나가 다 선명하게 보이는 파래소 폭포



고대 사람들이 고래사냥을 하던 모습을 담고 있는 울산 대곡리 암각화를 전시해 놓은 암각화박물관(울산)



고대 사람들이 고래사냥을 할 때 사용했던 배 모형



고래 벽화를 맞춰보는 퍼즐 놀이. 암각화박물관은 아이들에게도 흥미를 끌 많은 요소를 갖췄습니다.



실물이 있는 대곡리로 갑니다.



태화강 강물이 많이 불어서 가까이 갈 수 없습니다.
저 아래 반질반질하게 깍아 놓은 듯한 곳이 대곡리 암각화가 있는 곳입니다.
신라의 진흥왕이 왕이 되기 전에 다녀갔다는 글씨도 남아 있습니다.



대곡리 공룡 발자욱 화석이 있는 장소



중생대에 여기는 호수였던 모양입니다. 호수 물결무늬가 화석으로 남았습니다.
청동기 시대만 해도 이 지역은 바다가 바로 앞까지 들어왔다고 합니다.



달성에 있는 비슬산 군립공원입니다. 비슬산 휴양림은 국립휴양림 야영장보다 훨씬 좋습니다.
여행을 다니더라도 일기쓰기와 수학공부는 게을리 해서는 안되겠죠? 밀린 공부를 하는 중입니다.



저녁이 되니 시원해서 책읽기에 참 좋았습니다.



우리의 목적인 창녕 우포늪에 왔습니다. 우포늪 생태전시관입니다.



전시관에는 다양한 형태로 우포늪을 이해하고 생물의 모습을 이해하도록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론을 공부했으니 이제 직접 현장을 가 봐야죠?
7살 때부터 사진 찍을라치면 이상한 표정을 짓는 준기



입구에서 왼쪽으로 돌아 6백미터를 가면 전망대가 있습니다. 전망대에서 망원경으로 우포늪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용료를 내고 소 달구지를 타고 전망대까지 올 수 있습니다.



중백로가 날개 짓을 합니다.



물닭이 수초 사이에서 빠져나와 먹이를 찾고 있습니다.



 나비잠자리입니다. 태어나서 처음 본 잠자리 종입니다.



5월, 강화도 함허동천 야영 때 유진이네가 6월 둘째 주 삼봉휴양림 야영가자는 제안을 모두 좋다고 했는데, 오랫동안 비어있던 회사의 보스 자리에 새로 임명된 분이 6월 13일에 부임한다는 소식이 뜨더니 토요일, 일요일 이틀 동안 업무보고를 받겠다고 합니다. 제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부류의 사람이 바로 다른 사람의 휴식을 빼앗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다른 부서는 모두 나오는데 실장님이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해서 우리 팀은 저 혼자만 나오겠다고 하고 옆에 팀은 과장급 이상은 다 나오는 것으로 결정했습니다. 우리 팀원들이 나와야 하는 게 아니냐고 했지만 제가 그럴 필요 없다고 했습니다. 이미 두 달 전부터 거의 다 준비된 업무보고서인데 줄줄이 나와 아까운 휴식을 빼앗길 필요가 없다고 말렸습니다. 내가 쓰러지면 백업 해 줄 사람이 있다는 확신이 설 때 사람들은 과중한 노동을 이길 힘을 가진다고 합니다. 저는 그 말을 믿습니다.

어쨌거나 함께 가기로 한 분들에게 야영을 가지 못하게 됐다는 사실을 알리고 가족들에게도 알렸습니다. 우리 아들 원성이 하늘을 찌릅니다. “맥이 빠진다” “토요일, 일요일에 왜 회사에 가는데?” 등등...

해서 6월 넷째 주에는 오랫동안 가고 싶어 했던 우포늪 탐사를 가기로 했습니다. 준기 엄마가 너무 멀다고 못간다고 하고 연우도 안간다고 하는데 웬일인지 엄마에게 찹쌀떡처럼 찰싹 달라붙어 다니는 아들이 그럼 아빠하고만 가겠다고 합니다. 다들 놀랬습니다. 그래도 가족끼리 함께 다닌다는 철칙을 깨기 싫어하는 준기엄마가 함께 가겠다고 하자 연우도 가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6월 넷째 주에 막내 동생이 서울에 와서 수술을 하느라 우리 여행계획은 다시 7월 둘째 주로 미뤘습니다. 7월 첫째주에 은주아빠께서 서울대공원 야영장 잡아 놓았다고 유혹을 하시데요. 아흐..

연료비도 비싼데 이왕 멀리 가는 것, 우포늪 가는 김에 신불산, 운문산 휴양림에서 각각 1박을 하기로 했습니다. 주말에 남쪽 지방에 비가 올 거라는 예보에 폭염주의보 걱정은 덜었습니다만 먼 길을 이동하면서 2박3일 이동야영을 하기에는 젖은 텐트를 다시 쳐야하는 문제가 있을 것 같아 7월11일(금) 숙박은 신불산휴양림 하단 단풍나무 방을 잡았습니다. 처음 가보는 곳에 저녁에 도착해 텐트 쳐야하는 부담도 덜자고 했는데 상단 휴양관에도 대기를 걸었다가 출발 3일 전에 상단 가지산 방으로 갈아탔습니다. 준기에게는 6월말부터 우포가면 뭘 할 건지 계획을 세워보라고 했더니 도서관에서 우포늪에 관한 여러가지 책을 빌려 수첩에다 열심히 정리를 합니다. 들여다 보지는 않았습니다.


7월 둘째주 내내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수지침을 맞으면서 몸 상태를 조절하고 금요일은 휴가를 냈습니다. 학교 마치면 도서관에 들리지 말고 바로 오라는 신신당부를 해 놓고 아이들을 학교로 보내고 오전에 출발준비를 했습니다. 함께 가지 못하는 아버지께는 죄송한 맘이 들었지만 먼 길 달려가 야영을 하기에는 연세가 무리일 것 같아 무거운 맘으로 출발을 합니다. 아버지 혼자 계시면서 2박3일 동안 음식 차려 드시도록 이것저것 준비한 탓에 체력 약한 준기맘은 출발 할 때 이미 녹초가 되었습니다. 영하 29도에서 견디는 침낭 2개, 그리고 준기와 제가 쓸 여름용 침낭 2개와 예비용 침낭 2개, 체력보강을 위한 닭백숙 재료, 채첩국 재료, 과일, 버너, 랜턴 등등 한달이 넘게 휴양림을 가지 않았던 때문인지 이것저것 준비하는데 시간도 많이 걸리고.


주 초 예보와 달리 주말에 비가 오지 않는다고 해서 휴가 인파가 좀 걱정스러웠습니다. 영동고속도로 → 여주JC →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타고 칠곡 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가 간당간당하는 연료계기판을 보고 3만원(15리터)만 채웠습니다. 고속도로 주유소 연료비가 너무 비싸서. 준기 맘이 우포늪 먼저 갔다가 휴양림 들어가야지 100km나 되는 길을 어떻게 왕복할 거냐고 지청구를 하는 바람에 잠시 헷갈렸습니다만 6시쯤 우포늪 도착하면 어떻게 구경할 수 있냐고 해서 다시 원래대로 휴양림으로 직행길을 잡았습니다. 경산을 지나 55번 고속도로를 따라 내려가다가 밀양IC에서 나와 24번 국도를 타고 신불산휴양림으로 향했습니다. 금요일에 출발해서 그런지 차는 많았지만 내려가는 속도는 시속 100km 내외를 계속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밀양을 지나 24번 국도가 편도 1차선으로 좁아지는 곳에 도착할 무렵부터 연료 계기판에 불이 들어왔습니다. 비싼 연료비 할인받을 수 있는 GS칼텍스 주유소가 나오면 넣겠다고 생각했는데 가지산 입구까지 GS주유소는 건너편에만 있고 울산 가는 방향으로는 나오지 않는 겁니다. 예전에도 경고등 들어오고 100km 가까이 간 경험이 있어서 그냥 갔는데 첩첩산중으로 올라가는 길이더군요. 게다가 다시 신불산휴양림 상단으로 가는 길(69번 지방도로)은 더 가파른 길이더군요.


처음엔 영남알프스의 장관에 감탄을 하면서 갔는데 이젠 연료 떨어지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에 경치 감상은 저 멀리 달아납니다. 신불산 상단 올라가는 경사길 주변에 보이는 모습은 아름다운 산을 자르고 할퀴는 중장비와 사람의 손이 남긴 흔적들이 많이 보입니다. 상단가는 길과 하단 가는 길에서 갈라져 상단으로 가는 길에 들어서니 곳곳에 간신히 교행이 가능한 지점이 몇 군데만 있는 좁은 길을 따라 2.5km를 더 들어갑니다. 휴양림에 도착해 방 열쇠를 받고 가장 가까운 주유소를 물어보니 울산 쪽으로 20km 넘게 내려가야 한다는 말에 걱정이 커졌습니다. 널직한 휴양관 주차장에 차를 대니 6시가 조금 넘었습니다. 대단히 빨리 온 셈이네요.


짐을 내리고 좌우를 둘러보니 몇 개 안되는 야영데크가 보입니다. 2~3개만 빼고 사람들이 다 들어와 있습니다. 저녁꺼리로 닭백숙을 준비하던 준기맘이 물어봅니다.

“혹시 수저를 챙겼던가?” “안챙겼어? 야영용 박스 안에 작은 숟가락은 있는데..”
“혹시 양념통 못 봤어?” “그건 내가 모르지”
“안 보이는데? 사와야 하지 않을까?”
“연료도 간당간당하고 밤에 지리도 잘 모르는데 어딜 가서 사와? 그냥 이웃집에서 빌리면 안될까?”
“그럼 당신이 빌려와”

하지만 얼굴가죽이 너무 얇아서 남에게 그런 소리는 전혀 못하는 준기맘이나 나는 서로 얼굴만 쳐다보면서 멀뚱멀뚱 했다. 준기맘이 다시 잔소리 하길래 안내소에 전화를 해서 소금을 좀 얻을 수 있을지 물었더니 주겠다고 하신다. 오줌도 싸지 않았는데 작은 그릇을 들고 소금 얻으러 안내소에 갔다. 듬직하게 생긴 안내소 젊은 아저씨가 250cc짜리 병에 담긴 소금 한통을 내 준다. 감사 인사를 드리고 가져와 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닭백숙을 먹는데 땀을 많이 흘려 그런지 닭이 좋아서 그런지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 “역시 생협 제품이 좋지?” 아내가 한마디 한다. 요즘 닭들이 기름기가 많아서 느끼한 편인데 이번 닭은 어렸을 때 시골에서 키워서 먹던 닭처럼 맛이 좋다.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TV를 켠 준기가 “신불산 휴양림 나빠!!!”하고 울먹거린다. 뭔 소린고 했더니 준기가 금요일 저녁에 빼놓지 않고 보는 EBS 방송의 ‘로봇파워’가 이 동네에서는 나오지 않는 거다. 휴양관에서 그 프로그램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금요일 출발을 따라 나섰는데 다른 방송은 다 잘나오는데 유독 EBS 방송만 나오지 않는다. 나원 참. 

아내가 우포늪을 두 번 왕복하는 건 무리라고 하는데 숫자상의 거리와 실제로 달려본 길은 많이 다른 것 같다. 신불산에서 내일 야영을 하고 간월재 등산, 울산 대곡리 암각화 박물관 구경하고 모래 창녕으로 가는게 어떻겠냐고 한다. 10월초 3일 연휴 때 운문산휴양림을 오는 것으로 해야 할 지 내일 연료 채우고 나서 고민해 봐야겠다. 오늘은 먼길을 왔으니 일찍 자자고 하고 애들 일기를 쓰고 10시 쯤 해서 잠을 청했다. 그러나 휴양관에는 온통 시끌벅적한 사람들 소리에다가 방음이 전혀 되지 않는지 옆방 사람들 말 소리가 그대로 다 들린다. 더워서 문을 열어 놓고 잤는데 새벽에 추워서 문을 닫았다. 

12일 아침, 아름다운 새소리에 눈을 뜨니 아침 5시. 이번주 내내 아팠기 때문에 혹시 무리할 것 같아 눈을 다시 감고 다시 잠을 청했다. 눈을 떠 보니 6시 30분, 새 소리도 상쾌하고 아침 공기는 벌써 덥다. 아침 쌀을 씻어 놓고 카메라와 삼각대, 등산지팡이만 가지고 파래소 폭포 쪽으로 길을 나섰다. 마침 여러 사람이 파래소 폭포 쪽으로 아침 산책을 간다. 무늬만 오토캠핑장을 지나 폭포를 향해 내려가는데 300m를 앞두고 갈림길이 나온다. ‘전망대’ 750m 팻말을 보고 오른쪽으로 꺾어 전망대로 올라갔다. 아프고 난 다음이라 그런지 가파른 길을 올라가니 땀이 비오듯 한다. 게다가 날벌레는 왜 그렇게 따라다니는지. 가까운 길이라 생각해 작은 물병도 챙기지 않고 나선 것을 후회했다. 하지만 땀을 닦으며 천천히 올라갔다. 

길 앞으로 거무튀튀한 독사 한 마리가 스르륵 지나간다. 조금 있다가 내 손가락보다 굵은 민달팽이 한 마리도 지나간다. 독사인줄 알고 깜짝 놀랐다. 7시 40분쯤 ‘무장공비지휘소’ 팻말이 붙어 있는 전망대에 도착했다. 역시나 더운 기온 때문에 전망은 별로였고 나뭇가지 사이로 울산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보인다. 건너편에는 간월재 올라가는 길이 가지산 중턱을 따라 뱀처럼 산을 감고 있다. 전망은 엉망이었지만 기록사진을 찍고 있는데 준기맘이 문자를 보냈다. 아침밥 다 됐는데 어디있냐고. 먼저 밥 먹으라고 답을 보내고 서둘러 내려와 파래소 폭포에 도착했다. 폭포 바로 앞에서도 폭포처럼 생긴 것은 보이지 않더니 나무 계단을 돌아 가파른 길을 내려가자 한줄기 폭포가 떨어진다. 아무도 없다. 

너무 더워서 등산복 웃옷을 벗고 런닝셔츠 차림으로 삼각대를 설치했다. 이번에는 제대로 폭포 사진을 찍어 보리라. 열심히 구도를 재고 있는데 여자 3명이 시끌벅적하게 내려온다. 조리개를 최대한 조이고 셔터속도를 1/3초 정도로 내렸다. 손 때문에 카메라가 떨릴 것 같아 타임 셔터를 눌러놓고 카메라 혼자 찍도록 손을 뗐다. 필름 카메라를 열심히 찍으러 다녔을 때는 1/15초까지 삼각대 없이 흔들리지 않고 찍을 수 있었는데 기계가 너무 정밀해 진 것인지 내가 나이가 든 것인지 헷갈린다. 20여분 동안 이리저리 폭포사진을 찍고 폭포 앞에 큰 바위를 뚫고 자란 큰 나무 등걸을 찍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정말 커다란 민달팽이를 또 만났고 무당개구리 한 마리가 나뭇잎 사이에서 완벽하게 위장을 하고 있다. 숙소에 도착하니 9시. 아침을 먹고 10시쯤 가족과 함께 다시 파래소 폭포로 갔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벌써 사람들이 몰려 들어오고 야영장은 빈 곳이 없다. 어제 저녁에 야영데크를 잡아 놓을 걸 하는 뒤늦은 후회를 했다.

파래소 폭포를 가는 동안 햇볕이 들지 않는 숲이 계속 이어져 산책하기에는 딱 좋다. 이 쪽 지형은 신생대에 빙하가 있었던 곳이 아닌가 싶다. 너덜지대 같이 깨진 바위가 아주 많고 두부처럼 반듯한 사각형 바위도 보인다. 폭포에 도착하자 아까보다는 사람들이 많다. 하단 휴양림 쪽에서 올라온 사람들도 많고 여기에 휴양림 숙소가 있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도 여럿 있다. 시원한 물줄기를 구경하며 연우는 아빠따라 물수제비 뜨는 연습을 한다. 운동신경이 제법 발달한 연우는 몇 번 연습하더니 물수제비 뜨기에 성공했다. 준기는, 아들에게 이런 얘기하면 안되는데 군대 고문관 같은 분위기다. 그래도 굴하지 않는다. 요즘 한참 재미있게 보고 있는 시턴 동물기에 나오는 산양의 제왕 ‘크랙’을 닮은 돌맹이를 찾았다고 신났다.

이제 그만 돌아가자고 연우와 준기를 데리고 가려는데 잔뜩 주워놓은 예쁜 돌을 가지고 가려고 한다. 사람들이 여기 있는 돌을 주워가면 아름다운 폭포는 모든 것을 잃게 된다고 설득을 하자 못내 아쉬워하며 큰 바위 아래에 돌을 묻는다. 다음에 와서 돌이 잘 있는지 보겠다고 한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아기 다람쥐가 길을 가로질러 간다. 갑자기 앞에 짙은 회색을 띤 작은 동물이 나타났다. 순간 놀랬는데 분명 두더쥐다. 어렸을 때 두더쥐 굴은 몇 번 봤지만 야생상태인 두더쥐는 나도 처음 봤다. 귀엽고 깔끔하게 생긴 몸매에 빨갛고 넓적한 앞발을 가진 두더쥐는 우리 눈앞에서 땅속으로 들어가려고 파다가 단단한 것이 있는지 위쪽으로 올라가 다시 판다. 당황을 해서 그런지 여의치 않자 다시 바위틈 사이에 있는 덤불속으로 들어간다. 잠시 몸을 숨겼나 싶어 카메라를 꺼내 찍으려고 하는데 움직임이 전혀 없다. 조심스럽게 덤불을 헤치고 보니 그 짧은 사이에 땅을 파고 사라져 버렸다.

11시가 넘어서 짐을 꾸리고 안내소에서 가르쳐 준 석남사 방향으로 내려갔다. 운문산휴양림에 연락을 하니 데크가 15개 있는데 대기자만 34명이라고 한다. 성영아빠께서 가르쳐 준 비슬산휴양림 생각이 나서 전화를 했는데 역시나 빈 데크가 없다고 한다. 한참을 더 내려가 시내에서 연료를 넣고 운문산을 포기하고 어떻게 할까 하다가 아내가 대곡리 암각화를 보러 가자고 한다. 30km도 안되는 가까운 곳에 있다. 삼국시대에는 경주에서 울산까지 연이어 마을이 있었다고 하는데 정말 가까운 거리인가 보다. 도로 표지판에 경주, 언양, 울산, 대구, 청도, 밀양이 보인다.

큰 길에서 갑자기 자동차 1대 지나갈 만큼 좁은 길로 우회전해서 잠시동안 긴장하며 들어가니 넓고 잘 포장해 놓은 길이 나타난다. 전시관 안내소부터는 중앙선도 없는 좁은 길로 내려간다. 버스 한 대 지나가면 길이 꽉 막힐 것 같다. 전시관 안으로 들어가니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잘 만들어 놓았다. 실물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은 완벽한 복제품과 영상장비를 적절하게 세팅해서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아이들이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도록 어린이 체험실도 운영하고 있고 관련 책자를 볼 수 있는 아늑한 방도 만들어 놓았다. 선사시대 사람들이 타고 고래사냥을 했던 나무배 복제품도 전시해 놓았다. 다만, 한가지 이런 전시관이나 박물관에 갈 때 마다 눈에 거슬리는 것은 3~4천년 사람들은 모두 긴 머리 풀어헤친 귀신 스타일에 열대지방 사람처럼 아랫도리만 걸치고 있는 모습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1만년 전 부터는 현재 기후와 거의 비슷한 상태였는데도 왜 이런 스테레오 타입을 반복하고 있는지 이해가 안간다. 아마도 일본의 박물관이나 전시관을 모방해서 그런게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한다. 더운 여름에 움집에서 살기 불가능한데 열대 지방에서나 가능할 땅을 판 움집이라든가, 2천년 전에 옻칠로 매끈하게 가공한 빗이 남부지방에서 발굴되었음에도 빗질도 하지 않은 산발한 머리카락이라든가, 4계절이 뚜렷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윗도리를 벗은 채로 살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하는 것은 ‘원시인’ 이라는 제국주의적 시각이 현대인의 무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전시관을 나와 대곡리 암각화를 보러 들어갔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500m쯤 걸어 들어가니 태화강 건너편에 암석으로 된 산이 줄지어 있다. 예전에는 여기까지 바닷물이 들어 왔다고 한다. 고래를 이 강 안으로 몰아넣어 잡기도 했다고 한다. 신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새긴 그림에 신라인들이 와서 글씨를 새겨 놓았다. 진흥왕이 왕이 되기 전에 여기를 다녀간 흔적도 글씨 속에 있다. KBS 역사 스페셜에서도 여러차례 여기를 주제로 한 방송을 했다. 태화강이 막고 있어 가까이 가서 볼 수는 없고 강 건너편에서 보자니 뭐가 뭔지 잘 보이지 않는다. 무심코 물수제비 뜨기를 하고 있다가 안내하는 분에게 제지를 받았다. 내 죽을 힘을 다해 돌을 던진다고 해도 태화강 너비의 1/10도 못 넘길 것 같은데 국보가 있는 지역이라 위수지역인가 보다. ^^;;

땡볕을 뒤로 하고 우포늪 쪽으로 가보기로 했다. 야영할 곳을 찾지 못하면 밤늦게까지 구경하고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다. 석남사를 지나면서 비슬산휴양림에 다시 전화를 했다. 역시나 야영데크가 없단다. 혹시나 해서 맨땅 야영이 되는지 물었더니 맨땅 야영이 된다고 한다. 그길로 바로 비슬산 휴양림으로 달려갔다. 5시 20분쯤 창녕에서 달성 쪽으로 가는 길에 아내가 도리원(055-521-6116)이라는 으리으리한(?) 음식점을 발견하고는 저기 가보잔다. U턴해서 가기도 어려운 곳인데 자동차 전용도로를 빠져나와 동네 한바퀴 돌아서 되짚어 올라갔다. 역시나 2km 이상을 지나쳐야 U턴을 할 수 있는 곳인데 중앙분리대가 끊어진 곳에서 불법 좌회전을 해서 그 집으로 내려 갔다. 고래등 같은 기와집에 외관상으로는 한상에 10만원 쯤 하는 그런 집 같다. 잠이 든 준기를 놔 두고 가게에 들어가 가격을 대충 확인하고 자리를 잡은 다음 숯불구이 3인분을 시켰다. 잠든 준기를 안고 자리로 데려 왔는데 깰 생각을 안한다. 잠시 후 음식이 나왔는데 신지식인으로 지정받은 이 집 주인이 전통을 살려 개발한 각종 발효음식이 한상 가득하다. 경상도 음식이 맛없다는 통념을 깬 정갈하고 맛깔스런 맛이다. 대나무 통밥을 곁들여 맛있게 먹고 있는데 준기는 여전히 한밤중이다. 아내가 아들 배고픈 걱정을 하길래 숯불구이 한 점을 입에 갖다 댔더니 눈을 번쩍 뜬다. 그러고는 바로 앉아서 투정 한마디 없이 밥을 맛있게 먹는다. 나와 아내, 그리고 연우는 배꼽을 잡고 웃었다. 43,000원. 착하지 못한 가격이었지만 숙박비 대신 맛있는 것 먹고 지역경제에 기여했다는 생각했다. 가족 수가 많다면 1인당 단가는 더 내려갈 수 있을 것 같다. 반찬이 21가지인데 하나하나가 정말 맛있었다. 이탈리아 본젤라또처럼 우리나라도 비싸지만 맛있고 한국전통이 물씬 풍기는 이런 식당이 성공했으면 좋겠다 싶다.

6시가 넘어 비슬산 휴양림 근처에 도착했는데 예상했던 것 보다 아주 괜찮은 곳이다. 산세도 멋지고 한참을 올라가는 것이 남쪽이지만 상당히 시원할 것 같은 느낌이다. 주차장 앞에 차를 대고 리어카 2대에 짐을 나눠 실었다. 주차비는 야영하면 이틀치(4,000원)을 받는단다. 마침 내려오는 사람이 있어서 경사가 어떠냐고 물었더니 아주 쬐금 힘쓰면 된다고 웃는다. 비슬산휴양림의 리어카는 보통 리어카보다 아주 작아서 그런지 연우와 준기는 서로 자기가 끌어 보겠다고 나선다. 경사가 완만해서 쉽게 올라갔는데 거리가 600m란다. 야영장 입구부터 경사길이다. 리어카를 너무 작게 만들어서 앞에서는 끌 수가 없다. 발 뒷꿈치가 리어카에 자꾸 걸리는데 운동화를 신었으면 발목 인대를 다칠 것 같다. 혹시 빈 데크가 없나 찾아보니 몇 개가 보인다. 그 가운데 제일 가까운 쪽에 있는 곳에 짐을 내렸다. 계곡물 바로 옆은 그늘이 없고 밤에 물소리가 시끄러울 것 같아서 길 가 나무그늘 쪽을 택했다. 활엽수 그늘이라 새들이 와서 실례를 할 지 몰라 텐트 위에 타프를 쳤다. 은주아빠 덕분에 중고품으로 싸게 산 강철 팩은 이번에도 아주 쓸 만하다. 은주아빠에게 배운 스토퍼 묶는 법을 그새 까먹었는데 몇 번 실패하고 나서 제대로 기억을 되살렸다.

아내가 짐 정리를 하면서 혀를 찼다. 짜증도 내고. 더위 때문에 불쾌지수가 높은 것은 이해가 가지만 그렇다고 잔소리를 해 봤자 문제가 해결 되는 것도 아닌데 “뭔 잔소리여?” 속으로 생각하며 얼른 텐트와 타프치기를 끝냈다. 더운날 저녁에 다시 6백미터를 되짚어 내려가 리어카를 입구에 반납하기가 귀찮다. 어차피 낼 아침에 철수 할 거니 그냥 데크 옆에 놔두기로 했다. 아내가 냉샤워장이 야영장 위쪽에 있다고 해서 준기를 데리고 씻으러 갔다. 올라가면서 보니 철수한 사람들이 많다. 빈 데크가 아주 많고 위쪽이 아래쪽보다 조건이 훨씬 좋아 보인다. 매점 옆길에 있는 냉샤워장에 들어가 얼음처럼 차가운 물로 샤워를 하니 하루종일 더위에 지친 몸에 생기가 돈다.

휴양림 다니면서 아이들이 일기쓰기를 소홀히 하는 것 같아 난중일기는 안된다고 아이들에게 다짐을 받았다. 이순신 장군이야 나라를 구하느라 바빠서 일기를 나중에 몰아서 쓴 탓에 나중일기이자 난중일기가 되었지만 너희들은 나라 구하러 다니는 것이 아니니 그날 일기는 그날 쓰라고 다짐을 했던 터라 랜턴을 밝히고 헤드렌턴을 모두 모아 일기 쓰도록 했다. 둘 다 일기를 쓰고 나서 밀린 수학숙제를 끝냈다. 9시가 넘자 서늘한 바람이 산 위에서 불어 내려 온다. 아무래도 추위에 약한 아내와 연우에게 겨울용 침낭을 주고 준기는 여름용 침낭을 두겹으로 만들어 집어넣었다. 나는 더워서 여름 침낭 하나만 해도 답답하다. 아내는 새벽에 춥다고 텐트 출입문을 모두 닫고 연우와 준기는 덥다고 침낭 밖으로 삐져 나와서 잔다. 고도가 높아서 남쪽이지만 생각보다는 아주 서늘해서 좋다. 


13일 아침, 6시에 일어나 쌀을 씻어 안치고 준비해간 올갱이 국을 끓였다. 역시나 사람들이 물밀 듯이 들어온다. 어제 들어올 때 입구에 리어카가 4대 밖에 없었는데 급기야 관리소 차들이 다니면서 야영장에 있는 리어카를 모조리 회수해 간다. 데크 야영비는 1만원, 맨땅 야영은 3천원을 아침에 받으러 다닌다. 아침을 맛있게 먹고 나서 아내가 기분이 많이 좋아진 모양이다. 비슬산 휴양림이 웬만한 국립휴양림보다 낫다고 평했다. 준기도 또 오고 싶단다. 등산객들이 많이 올라오고 비슬산 정상이 눈앞에서 나를 유혹했지만 우포늪에 가야하는 일정 때문에 10시쯤 냉샤워를 다시 한번 하고 짐을 정리했다. 마침 야영하러 온 한 가족이 우리가 짐을 싸는 모습을 보고 옆에서 기다린다. 생각보다 우리 짐이 많아서 오래 걸리자 아저씨가 도와주겠다고 나서신다. 아이들 나이를 보니 우리 부부랑 비슷한 연배인 것 같다. 경기도에서 왔다는 말에 많이 놀라신다. 비슬산은 보통 달성이나 대구 사람들이 오는 곳인데 멀리서 어찌 알고 왔냐고 놀래고, 전국을 싸돌아다닌다는 말에 더 놀래고 아들녀석이 우포늪 가고 싶어해서 왔다는 말에 더 놀란다. 자기는 화물차 운전을 하기 때문에 아이들이랑 많이 놀아주지 못하는데 부럽다고 하시면서 아이들 데리고 가까운 다른 지역 휴양림을 다녀보던지 해야겠다고 이것저것 물어 보신다. 야영장 입구까지 짐을 같이 내려 주시고 즐겁게 지내시라는 인사를 남기고 헤어졌다. 주차장에 도착해 짐을 차에 올리고 나자마자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진다. 많이 쏟아지길 기대했는데 역시나 잠깐 지나가는 비. 그 탓에 더욱 덥다.

비슬산에서 창녕까지는 국도와 45번 도로가 나란히 가는 곳인데 국도 상태가 아주 좋다. 40분 정도 밖에 걸리지 않아 우포늪 생태전시관 앞에 도착했다. 생태 전시관은 내가 상상했던 이상으로 너무 잘 만들어 놓았다. 내부 배색도 사람들에게 편안한 느낌을 준다. 우포늪에 서식하는 여러 식물과 동물 표본을 잘 갖추어 놓았고 현미경을 통해 식물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게 꾸며 놓았다. 사각통을 맞춰 우포늪을 거쳐가는 새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조형물도 있고 천정에는 계절별 철새 모습도 잘 만들어 놓았다. 전시관에서 사전 교육을 하고 전시관 옆 식당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었다.

우포늪 입구에는 자전거를 빌려 주는 곳(2시간 이내, 2천원)과 소달구지(어른 2천원, 전망대 입구까지만)를 타는 곳이 있다. 나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자전거를 못타기 때문에 걸어갔다. 햇볕을 피하기 위해 큰 우산을 펼쳐 들고 갔다. 전망대까지 540m란다. 2시간 정도밖에 구경을 할 수가 없어서 먼저 서쪽에 있는 전망대로 가서 전체 모습을 보기로 했다. 우포늪은 국제습지보호협약(람사, Ramsar)에 가입되어 있는 보호습지로 우포(소벌)을 중심으로 북쪽에 나무벌(목포), 동쪽에 모랫벌(사지포), 서쪽에 쪽지벌 이렇게 큰 습지 4개가 있다. 소벌과 나무벌 소산(우항산)이 있어 소벌이라고 한다. 전체 면적은 2,762,926㎡라고 하는데 앞에 서면 정말 넓다는 감탄이 나온다. 자전거를 타도 2시간 정도 걸려야 한바퀴를 돈다고 하니 정말 대단하다.

더위에 지친 아내는 전망대 아래 산들바람이 부는 벤치에 앉아 기다리기로 하고 연우와 준기를 데리고 헉헉 거리며 전망대 계단을 올라갔다. 고진감래라더니 시원한 에어컨이 쌩쌩 돌아가는 전망대에서 성능 좋은 망원경으로 소벌을 훓어 본다. 오리가 새끼를 데리고 일렬로 서서 헤엄치는 모습, 왜가리, 해오라기, 백로들이 물 속을 노려보며 사냥하는 모습이 곳곳에 보인다. 10여분을 관찰하고 늪으로 내려왔다. 늪 주변 탐방로 외에 갈대 숲 사이로 작은 퇴적지들이 있는데 사진을 찍으러 들어가는 남녀 2쌍을 보고 따라 들어가 봤더니 눈 앞에서 노랑부리를 한 중백로가 날아와 사냥을 시작한다. 짧은 초점거리를 탓하며 135mm 렌즈로 찍어 봤지만 깨알만하다. 중백로가 서쪽으로 서서히 자리를 옮기며 사냥하는 동안 바로 앞에 있는 갈대숲에서 흰 혹이 달린 까만 물닭이 고개를 내밀더니 이리저리 먹이를 찾는다. 멀리서 봤을 때는 그저 초록색이었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자연은 온통 저마다 바쁘다. 발아래 소벌 가장자리를 온통 뒤덮은 마름은 작은 하얀꽃을 피웠고 개구리밥과 마름이 섞여 있는 물 밑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한 준기는 장화를 신고 발목까지 물이 차는 늪으로 들어가 수첩에 미리 적어온 뭔가를 열심히 관찰한다.

동쪽이 대대리 쪽으로 걸어가다가 검은 무늬를 가진 처음 보는 잠자리를 발견했다. 집에 와서 백과사전을 찾아보니 나비잠자리란다. 태어나서 처음 본 특이하게 생긴 잠자리였다. 늪 가장자리에서 조금 떨어진 갈대 숲에서는 어김없이 검은 물닭이 둥지를 틀고 있는지 자주 출몰하고 메뚜기, 풀무치, 콩중이, 여치 같은 곤충들이 발검음을 옮길 때마다 사방으로 날아다닌다. 대대리 둑 방향과 전망대로 갈라지는 곳에 철새 관측소에 인상 좋은 아주머니 한분이 아이스콘을 팔고 있다. 아내, 연우, 준기 것 3개만 주문했더니 3단씩 올려서 준다. 개당 1천원. 그러더니 서비스라며 1단만 올린 것을 하나 더 주신다. 아주머니는 일찍 팔고 들어가야지 이 땡볕에 뭘 하겠냐고 웃으시면서 밀려드는 손님들을 즐겁게 맞이한다. 날씨가 너무 더워서 그런지 구경하러 온 사람들은 드문드문 있고 생태환경 연구하는 분들인지 인솔자를 따라 15명 정도 한팀이 해설을 들으며 열심히 메모하고 사진을 찍는다. 늦으면 귀경길이 막힐 것 같아 대대리 둑방 위에서 한동안 관찰하다가 되돌아 왔다. 돌아 나오는데 단체 관광버스 6대가 길을 막고 들어온다.

4시 20분 전시관 앞을 출발해 45번 고속도로를 타고 집으로 달렸다. 중간에 상주에서 천안으로 가는 30번 고속도로를 탈까 생각했지만 워낙 막힘없이 잘 가는 지라 여주에서 막히더라도 30분만 지체하면 바로 속도를 낼 수 있을 것 같아 중간에 한번 쉬고 여주까지 3시간이 채 걸리지 않아서 도착했다. 집에 도착하니 8시 20분, 아이들이 정말 지루해 하지 않는 상쾌한 귀경길이었다. 생각지 못한 연료보충 실패와 예상했던 비가 오지 않아 더위에 지쳐 아쉽게도 간월재를 올라가보지 못했고 지척에 둔 운문산을 가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며 시간을 많이 낭비했지만 역시 말로만 들은 정보보다는 몸으로 직접 체험한 정보가 더 유용했던 여행이었다. 오랜만에 숲에 들어가 야영을 하고 와서 그런지 몸 상태가 아주 양호하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준기는 7월 넷째주 금요일 순천만 답사 갈 계획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좋은 휴양림과 나쁜 휴양림에 대해 다시한번 이야기 한다.


* 준기가 보는 좋은 휴양림과 나쁜 휴양림

좋은 휴양림 : 금요일 저녁 EBS를 볼 수 있는 휴양림
나쁜 휴양림 : TV가 안 나오는 휴양림, 신불산 휴양림은 특히 아주 나쁜 휴양림이랍니다. TV는 잘 나오는데 EBS만 안나와서.... 우리는 뒤집어 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