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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여행

회문산에서 지리산까지 (2)

by 연우아빠. 2008. 5. 7.

회문산에서 지리산까지(지리산)

2008.5.3~5(2박3일)



바래봉 철쭉을 배경으로 간만에 설정샷으로 찍어봅니다.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바래봉 철쭉 구경을 왔습니다.
먼지가 심하게 날리고 5월달 날씨 답지 않게 기온이 30도가 넘었습니다.


지리산자연휴양림 연립동입니다. 방 사이에 텐트를 쳐서 아이들 놀이방을 만들었습니다.

 


4일 아침, 비가 올 것 같은 날씨인데 가족들과 함께 노고단에 올라갑니다.


정상부근에 있는 나무데크입니다. 훼손을 막기 위해서 나무로 만들어 놓았다는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이라 지리산이 힘들겠습니다.


조카(4살)와 함께 노고단 표지석을 배경으로...
2005년 1월생인데 큰아버지인 저보다 42년이나 일찍 지리산에 올라와 보네요.^^
그래도 업히지 않고 걸어서 혼자 따라왔으니 대단합니다.


노고단 정상에서 섬진강 쪽을 배경으로...


노고단 정상에서 섬진강 쪽을 바라보는 전망대


쌍계사 계곡 방향이라고 했던가?


5일 새벽에 일어나 지리산자연휴양림의 하늘모습을 담아 봤습니다.


지리산휴양림 휴양관.
휴양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저런 식으로 돌이나 콘크리트로 만든 건물을 싫어하는데
어쩌다가 휴양림을 찾는 사람들은 저런 편리한(?) 건물을 더 좋아하더군요.


지리산자연휴양림 입구쪽에 있는 연립동 숙소


휴양림 안쪽 계곡, 희귀한 큰부리까마귀 2마리가 살고 있는 곳입니다.


전날 비가 와서 그런지 계곡물이 보기좋게 흐릅니다.


애벌레 선생님의 숲해설. 구수한 남도 말씨로 수많은 참여자들을 즐겁게 휘어 잡습니다.


실상사 앞 논에 개구리가 구경하는 우리를 살핍니다.
사람들이 해꼬지를 하지 않아서 그런지 사람을 겁내지 않습니다.


실상사 대웅전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실상사의 이력을 말해주는 듯, 옛날 건물에서 나온 기와 조각을 쌓아 올려 놓았습니다.


통일기 신라 삼층석탑 양식을 갖춘 실상사 3층석탑.
비슷한 시기에 조성한 감은사 3층 석탑과 아주 많이 닮았습니다.


실상사 소나무, 하회마을에 있는 만가지 소나무랑 닮았네요.


실상사 범종각


신라 통일기에 지리산에 실상사를 처음 세운 증각대사 응료탑비


실상사 매표소를 지나면 입구를 지키는 벅수


경남 함양, 최치원이 함양태수로 있을 때 조성한 함양상림


최치원이 함양태수로 있을 때 조성한 함양상림. 물에 사는 많은 생물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함양상림. 요즘 보기 힘든 청개구리


함양과 관련이 있는 역사인물의 흉상을 모아 놓은 조각공원



아쉬운 바래봉

  가족들은 아침을 끝냈고 뒤늦게 혼자 아침을 먹었다. 떠나기 아쉬워하는 아이들은 할아버지와 아내를 따라 물고기 잡으러 개울가로 가고 혼자 남아 설거지를 하고 짐을 꾸렸다. 자형은 평택에서 지리산휴양림으로 출발한다고 연락이 왔고 나는 바래봉 철쭉을 보고 나서 노고단을 들러 휴양림에 들어갈 계획이었다. 하루에 봉우리 3개를 올라가는 게 무리일 것 같았는데 3살부터 칠순 노인까지 17명 식구가 모이면 다른 일정을 생각하기 어려울 것 같아 일단 시도해 보기로 했다. 2시간쯤 지나 11시가 되어서 아이들이 돌아왔다. 도랑치고 가재구경, 올챙이가 물벼룩을 잡아먹는 것도 보고, 심지어 올챙이가 올챙이를 잡아먹는 것도 봤다고 신나서 얘기한다. 친절하고 따뜻한 회문산휴양림을 뒤로하고 바래봉을 향해 길을 잡았다. 전북 남원시 운봉읍 용산리 산4번지 축산과학원 가축유전자원시험장(063-620-3500) 바로 위쪽에 자리잡은 바래봉은 철쭉으로 유명한 곳인데 5월 첫주부터 철쭉제를 열고 있었다. 수많은 간이음식점들이 진을 치고 있는데 그늘은 하나도 없고 뙤약볕이 한여름이나 다름없다. 시간관계상 국수로 때우고 바래봉을 올라갔다 오려고 했는데 국수하나 내 오는데도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짜증이 구름처럼 밀려오면서 바래봉에 대한 이미지를 구기는 이런 음식점을 남원시에서 철저하게 관리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역 자원을 잘 다듬고 주변을 정비해 사람들이 잊지않고 찾아오게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남들은 없는 것도 만들어 사람들을 끌어 들이는데....

  아마도 30도가 넘을 것 같다. 아이들이 짜증을 내기 시작하고 아버지도 힘들어하신다. 결국 2.4km밖에 안되는 등산길을 중도 포기하고 중간쯤 간 곳에서 꽃사진과 아이들 사진 몇장만 찍고 내려왔다. 아내가 “우리 내일 새벽 일찍 한번 와 볼까?”한다. 그랬으면 오죽 좋겠냐만서도 예전 경험으로 봐서 가족이 모두 모이면 그런 것은 언감생심이다. 바래봉 중턱에서 주변 모습이 시원한데 너무 아쉽다. 누나네 가족은 벌써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일단 휴양림 안에 들어가 숲 구경을 하고 있으라고 말하고 나서 계획을 바꿀 수 밖에 없었다. 노고단은 내일 올라가자...어른들만 가든지 어른들과 애들을 따로 놀게 하던지.

 

지리산휴양림

  휴양림에 도착해 써리봉 숙소로 올라갔다. 생각보다 무지 가파르다. 오르내릴 일이 걱정스럽다. 게다가 숙소 앞에 있는 계단도 짐나르느라 몇 번 오르내렸더니 다리가 땡긴다. 어른 10명 아이 7명 대가족이 이 숙소에 다 잘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텐트를 가져갔는데 산목련님 말씀대로 텐트가 방과 방사이 베란다에 쏙 들어간다. 이로서 4명 잠자리 추가 확보. 텐트를 쳐 놓았더니 아이들이 모두 여기서 놀겠다고 몰려든다. 금새 자리 뺏겼다. 안내소에 가서 지리산 등산지도 같은 것이 없는 지 물었더니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밖에 없다고 들어와서 보라고 한다. 거기에서 마침 애벌레님이 머리를 감고 나오셨다. 산목련님 사진에서 본 모습보다 실물이 더 정감있게 생긴 분이다. 아침 10시에 숲해설, 토요일 오후 8시에 숲속야학을 한다고 안내소에서 설명해 주셨는데 준기는 곤충과 애벌레 때문에 기대가 컸다. 얼른 숙소로 돌아와 저녁 준비를 했다. 정읍 산외에서 사온 한우 등심구이, 풍성한 채소쌈, 양파무침, 누나가 해온 맛있는 김치, 순창 고추장마을에서 사온 고추장이 어우러져 세상에 다시없는 진수성찬이다. 생각보다 고기를 적게 먹어서 내일 저녁에 또 먹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이미 8시 반이 넘어 버렸다. 어쩔 수 없이 숲속야학을 포기하고 내일 가자고 준기를 달랬다. 텐트 안에 전등을 연결해 주니 밤새도록 거기서 놀 태세다. 앞 동에 들어온 사람들은 무지 시끄럽다. 역시 단독이 좋겠는데...아이들을 달래 밤 11시 쯤 잠자리에 들도록 했다. 연립동에는 다락에도 난방이 들어와 각자 잠자리를 마련하니 굳이 텐트를 치지 않아도 잠자리가 충분했지만 준기가 텐트에서 자겠다고 해서 나와 준기만 텐트에서 새로 산 침낭 성능 테스트를 해 보기로 했다. 안내소에서는 새벽에 춥기 때문에 아직 야영객이 거의 없다고 한다. 저녁 먹기전에 돌아보니 4가족이 야영을 하고 있다. 3살 4살 조카아이들이 잠자리에 낮설어서인지 밤새 칭얼대다가 새벽에 잠들었단다.

  4일 아침 새벽에 눈이 저절로 떨어진다. 상쾌한 새소리와 햇살이 온 몸에 맑은 기운을 불어 넣는다. 아들은 침낭 속에서 아주 잘자고 있다. 침낭이 더워서 지퍼를 열어놓고 잤는데 준기도 밤에 더웠는지 침낭 밖으로 튀어 나온 것을 다시 집어넣어 놓았다. 휴양림 안내도를 들고 아버지, 누나와 함께 휴양림 임도를 따라 돌았다. 내려가다가 왼쪽으로 꺾어지니 비린내(비리내) 계곡이라 부르는 계곡이 하나 더 있다. 오늘 노고단에 갈거라고 했더니 정작 지리산에 와보고 싶어하셨던 아버지는 힘이 들어서 안되겠다고 우리들만 다녀오라고 한다. 감기를 심하게 앓고 있는 막내동생과 아버지만 휴양림 안에서 머무르고 우리는 10시 반쯤 성삼재휴게소를 향해 출발했다.

  날씨는 조상님 덕분에 그런지 구름이 잔뜩 끼어 있고 기온은 어제보다 상당히 많이 떨어져 추위를 약간 느낄 정도였다. 작년 한라산에 올라갔던 5월 하순에도 산 꼭대기에서 부는 바람에 손끝이 시렸던 기억이 났다. 라파엘 아빠님이 써 놓은 등산초보자 글에서도 본 터라 바람이 심하니 방풍용 옷을 챙기라고 가족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성삼재에 도착하니 길옆에 차를 줄지어 주차해 놓았고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차는 나오는 차가 있어야 들어가는 상태다. 마냥 기다리기 뭣해서 주차 안내원에게 물어보니 저 아래 보이는 시암재 휴게소에 대고 걸어오는 방법도 있다고 한다. 가까워 보여서 가족들을 모두 내려놓고 자형과 나는 차를 시암재 휴게소에 대고 걸어서 올라왔다. 빤히 보여서 가까운 줄 알았더니 나중에 지도를 찾아보니 6.4km나 된다. 애고고...걸어 올라 가느라 힘 다 뺐다. 가족들이 보이지 않아 전화를 했더니 벌써 올라가고 있단다...에라 의리 없는 마누라

  자형과 함께 올라가는데 자연석을 깨뜨려 등산로를 포장하고 있다. 너무 많은 사람이 밟고 다니는 탓에 산이 견디질 못하는 때문일까?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막내 제수씨와 3살짜리 질녀가 보인다. 등산에 짐이 될 것 같아 포기하고 여기서 기다리겠단다. 가만히 있으면 추울 것 같아 방풍용 자켓을 주고 부지런히 따라 올라가니 20분쯤 지났을까 가족들을 만났다. 걸음이 무지 빠른 누나는 벌써 앞질러 갔단다. 자형도 뒤따라 올라가고 둘째네와 네 살짜리 막내 조카를 데리고 세월아~ 네월아~ 노고단을 향해 올라갔다. 계단을 무지 싫어하지만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올라가는 길은 나무계단으로 만든 지름길을 선택했다. 여기 왜 올라가느냐고 연우가 끊임없이 딴지를 건다. 아빠 엄마 스틱을 하나씩 뺏어들고 올라가다가 찬바람이 많이 불자 냉두드러기 돋는다고 불평이 점점 커진다.

  “한라산에도 잘 올라갔는데 그보다 낮은 산에 왠 불평이 이렇게 많으냐. 너희들 부모 잘 만난 줄 알아라, 아빠는 46살에 처음 지리산에 왔는데 너희는 겨우 11살에 지리산 구경을 하지 않느냐!”

  연우가 지리산 가자고 우긴 것도 아닌데....누나에게 전화가 왔다. 노고단 정상이란다. 언제 오냐고, 먼저 내려가서 막내 제수씨랑 있으라고 얘기하고 애들을 이끌고 한참만에 노고단 대피소 도착했다. 저기 노고단 봉우리를 가리키며 이제 얼마남지 않았다고 했다. 연우 얼굴에는 붉은 두드러기 증세가 보이기 시작했다. 바람이 변화무쌍하다. 바람이 심하게 불다가도 모퉁이만 돌아서면 언제 그랬냐 싶은 그런 바람이 체온을 급격히 떨어뜨리는 것 같다. 아이들에게는 우비를 바람막이 대신 입히고 모자를 씌우고 대피소 앞에서 사진을 찍고 내쳐 노고단 봉우리를 향해 올라갔다. 출발한지 두 시간 넘게 걸려서 노고단에 도착했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멋있다. 눈 앞에 있는 반야봉(5.6km), 천왕봉(23.4km) 표지를 보니 마구 달려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 4살짜리 막내조카부터 11살 희원이까지 어린녀석들이 대견하다. 주변 등산객들의 칭찬을 한 몸에 받으며 차례대로 노고단 비석에 세워놓고 기념촬영을 해 주었다. 여긴 아직 2~3월 날씨 같다. 해가 나지 않아서 아이들이 그나마 지치지 않고 잘 올라온 것 같다. 아이들이 너무 추울 것 같아서 대피소로 내려왔는데 라면 끓여먹는 냄새가 미치겠다. 이런게 있는 줄 알았으면 코펠을 가져 올라와 라면이나 끓여 먹을 걸..... 지리산 곳곳에 과거에 훼손된 상태와 현재 복원중인 상태를 비교하는 사진과 안내문을 붙여 놓았다. 저렇게 많은 사람이 밟고 다녔다니...아래쪽으로 내려오면서 연우의 냉두드러기가 잦아든다. 전보다 상태가 좋다. 보통 2~3일 지속되었는데 이번에는 내려오자마자 잦아들고 가려움도 없는 모양이다. 다행이다.

  성삼재 휴게소에서 간식을 먹으며 기다리게 하고 혼자 시암재 휴게소로 내려갔다. 여전히 차들이 많이 올라온다. 체력이 떨어졌는지 올라갈 때 속도나 내려갈 때 속도나 별반 차이가 없다. 빗방울이 몇 개씩 날린다. 시암재 휴게소에서 국밥을 사서 먹고 나오니 빗방울이 아까 보다 많이 떨어진다. 성삼재에서 가족들을 태우고 지리산 주변 절을 찾아 가려고 했는데 비가 본격적으로 내리기 시작해 포기하고 휴양림으로 되돌아 왔다. 비오는 가운데에도 휴양림 텐트가 2개 더 늘었다. 석유버너인가 대형 버너에 펌프질을 하고 타프와 비닐을 지붕삼아 야영을 즐기는 모습을 보니 입맛이 당긴다. 새벽에 휴양림을 한바퀴 돌고 추위속에서 노고단을 올라갔다 왔는지 몸이 노곤하다. 심한 바람과 함께 비가 쏟아진다. 텐트를 걷고 오늘은 다락에서 자야겠다. 저녁을 먹고 8시 숲속야학을 준기랑 갈 생각이었는데 오늘은 숲속야학이 없단다. 이럴수가......준기의 실망이 엄청나다. 내일 아침 숲해설이라도 꼭 들어야 할 것 같다. 저녁을 먹으며 멀리 떨어져 있는 형제 자매들이 오랜만에 편하게 비를 바라보며 아늑한 방안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내일 떠나는 것이 너무 아깝다. 다락에 잠자리를 펴니 너무 아늑하고 좋다. 따뜻한 바닥에 누우니 온몸의 피로가 싹 풀리는 것 같다. 밤새 비바람 소리가 요란한데 앞 동의 사람들은 밤늦도록 고성방가에 지칠줄 모른다.

  5일 새벽 저절로 눈이 떠진다. 밤새 몰아치던 비바람과 천둥은 언제 그랬냐는 듯 솜사탕 같은 흰구름과 함께 사라졌다. 물을 머금은 연두색 잎들은 돌아갈 천리길 걱정을 잊게 만든다. 카메라를 들고 휴양림 한바퀴를 돌아보러 나섰다. 너무 상쾌하다. 몸도 아주 가볍다. 까마귀가 남쪽 하늘로 날아간다. 지리산휴양림 계곡에 요즘 개체수가 희귀해진 큰부리까마귀가 산다는데.

  아버지께서는 여전히 몸이 무겁다고 하신다. 회문산과 지리산에서 새벽마다 임도를 한바퀴씩 돌았으니 무리가 온 것 같다. 일찍 출발하는 자형이 아버지를 모시고 먼저 올라가기로 했다. 천천히 구경하고 오라고 하시는 아버지를 배웅하며 아이들을 데리고 숲해설을 들으러 내려갔다. 애벌레님이 숲해설을 맡으셨다. 구수한 광주 억양과 사투리, 사람을 즐겁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사람이다. 곤충의 애벌레를 좋아한다고 하니 준기와 딱 맞는 분이다. 바위 틈속에 모래 구멍을 보여 주며 이게 무엇이냐고 묻는다 준기를 제외하곤 아무도 모른다. 그 구멍속에서 곤충 한 마리를 꺼내 돌려가며 보여 준다. 준기는 신이 났다.

  “개미귀신입니다”

  애벌레님은 준기를 불러 내더니 사람들 앞에 세우고 설명을 해 보라고 한다. 신이 난 준기가 읊어대는 것을 들어보니 이건 좀 심하다 싶다. 곤충도감을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다 외우고 있는데다가 집에서 키우고 있는 개미귀신 경험담까지 덧붙였다. 사람들은 감탄을 연발하며 열렬한 박수를 보내고 “몇학년이냐?”고 물어본다. 애벌레님이 귀한 한마디를 해 주신다. “책을 열심히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자연에 나와서 직접 체험해 보는 것이 더 귀중합니다” 그리고 단순히 사람입장에서 익충, 해충을 구분하는 것이나 생태계의 힘에 사람이 함부로 개입하는 잘못을 범해서는 안된다는 예를 설명해 준다. 자연에서 배우는 지혜를 접할 기회가 적어진 아이들이 한편으론 측은하다. 머릿속에 든 지식을 체험지식으로 바꿀 수 있도록 더 많은 기회를 아이들에게 줘야겠다.

  애벌레님은 산에 들어오는 것은 살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산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을 구별하는 것이라고 말하고는 먹을 수 있는 풀을 가르쳐준다. 수첩을 들고 갔어야 했는데 이거 영... 취나물, 제비꽃, 생강나뭇잎 ... 몇 개만 기억이 나는데 생김새를 다 기억하지 못하겠다.

  지리산휴양림에 오시는 분들은 꼭 이 분의 강의를 들었으면 좋겠다. 너무 재미있게 이끄신다. 나뭇꾼과 선녀 이야기를 안다고 손을 든 사람을 불러내서는 이야기를 해 보라 시키고 사람들 박수를 이끌어낸다. 나뭇꾼과 선녀 이야기가 지리산과 관계있는 이야기라는 건 처음 들었는데 지리산 벽소령 쪽 능선에 부자(父子)바위와 관련이 있단다. 지리산 아랫마을이 5월이면 지리산 휴양림은 4월, 그리고 벽소령 쪽 능선은 아직 2~3월 정도란다. 능선에 연두색이나 초록색이 없는 것이 그런 차이였나 보다. 산이 높으니 같은 산에서도 이런 차이가 나는구나.

  비리내 또는 비린내 계곡에는 큰부리까마귀가 사는데 KBS 자연다큐멘터리 팀이 촬영을 들어 왔다. 비리내 계곡은 빨찌산 토벌 때 죽은 사람들의 시체가 산을 이루고 그 피가 내를 따라 흘러 피비린내가 진동해서 비린내, 또는 비리내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 계곡에도 이름을 남기지 못하고 기억에서 사라진 수많은 생령들이 서려있다. 한반도에서 빨찌산 활동을 시작한 것은 일본제국군의 강제징집을 피해 탈출한 조선사람들이 일제 때 시작했다고 한다.

  이번 숲 해설을 통해 애벌레님에게서 또 많은 것을 배웠다. 부산 사는 둘째가 숲해설 도중에 집으로 떠나고 막내 동생네도 귀가 길에 올랐다. 숲해설이 끝나고 애벌레님은 아이들을 위해 숲속야학을 개방해 채집한 곤충표본을 보여 주셨다. 준기에게는 너무나 신나는 일이었다. 다시 짧은 산책을 마치고 11시 반쯤 짐을 싣고 휴양림을 나왔다.

  많은 식구들과 함께 하느라 노고단 밖에 가보지 못한 것이 너무 아깝다. 구례 화엄사도 지척에 두고 가지 못했고...아쉬운 마음에 휴양림 근처에 있는 실상사에 갔다. 실상사 입구에 양쪽으로 벅수(장승)이 서 있고 거기부터 논을 연밭으로 만들어 놓은 곳이 있다. 아이들은 그쪽이 더 재미있는 모양이다. 올챙이도 보이고 논고둥이 보인다. 어렸을 때 저거 많이 주워다 삶아 먹었는데. 보통 올챙이보다 다섯배 정도 커보이는 대형 올챙이가 보인다. 저게 황소개구리 올챙이일까?

  신라 말기에 건축했다는 실상사는 고려시대 철불도 있고, 오래전에 무너진 듯한 건물터와 기와파편을 쌓아 놓은 곳도 있다. 명부전 문에 명부전 배치도와 설명이 붙어 있어서 자세한 공부를 할 수 있겠다. 신라 감은사 탑과 같은 쌍탑이 대웅전 좌우에 있는데 꼭대기는 쇠로 만들어 놓은 것 같다. 감은사 탑은 용의 이빨 역할인데 실상사 쌍탑은 무슨 역할일까? 규모는 작게 남았지만 보물과 같은 유물이 상당히 많이 남아 있고, 워낙 조용했던 탓에 건물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어서 부처님 머리 위에 부처님을 호위하는 목룡이 조성되어 있는 것을 처음 보았다. 나오는 길에 절 앞에 있는 연못에서 뱀이 물 속을 헤엄쳐 건너는 것을 보았다. 사진을 얼른 찍었는데 거리가 멀어서 흔들렸다. 건너편 둑방길로 가보니 뱀이 풀 사이에 숨어 있다. 아이들에게 뱀이 숨은 곳을 가리키니 자연 속에 살아 있는 뱀을 처음 봐서 아주 신났다.

  실상사를 나와 함양상림 쪽으로 출발했다. 멋진 지리산제일문을 지나니 뱀처럼 고불고불한 산길이 끝없이 이어진다. 오도재를 이리저리 돌아 전망대에 도착하니 지리산이 마치 병풍처럼 팔을 벌리고 있다. 어제부터 라면 타령을 하는 아이들과 함께 여기에서 라면을 먹고 상림에 도착하니 오후 3시 40분.

  1,100여년전 함양 태수로 왔던 최치원이 홍수를 막기 위해 둑을 따라 나무를 심고 숲을 조성했다는 상림은 담양의 관방제림과 비슷한 역할이었나 보다. 따가운 햇살이 비치는 바깥날씨와 관계없이 시원하고 아늑한 공원은 도시 안에 이런 공원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오직 물의 힘만으로 돌리는 물레방아도 있고 숲 주변에 조성해 놓은 논에는 연꽃을 키우는 모양이다. 많은 물고기와 올챙이, 청개구리도 눈앞에서 뛰어 다닌다. 백로가 열심히 먹이를 잡아 먹고 있는 곳에 청개구리가 헤엄치고 있는데 그리로 가면 안된다고 준기가 난리다. 청개구리가 말을 알아 들었는지 우리가 있는 논둑 쪽으로 헤엄쳐 오더니 연잎 아래에서 우리를 빤히 쳐다본다. 사진 수십장을 찍는 동안 눈한번 꿈쩍하지 않고 아이들 관찰 대상이 되 주었다. 도감에서 보는 개구리 보다 살아 있는 개구리가 훨씬 신기하고 귀여운 모양이다. 준기는 이번 여행에서 필을 받았는지 이번 연휴에는 창녕 우포늪 탐사를 가잔다. 아이들이 여행을 통해 부쩍 자라는 것을 느낀다. 아내도 이번 여행을 통해 야영도 하겠다니 앞으로 숲에 갈 기회가 좀 더 많아질 것 같다. 다음은 또 어디를 가 볼까나?